교육열이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

 

내가 처음부터 '맹모'들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사교육 현장에서 대치동 엄마들을 만나며 내 생각은 점차 달라졌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녀교육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하는 듯 보였다. "선생님, 이 동네에서 살려면 나 하고 싶은 거 다 못해요" "애가 대학교에만 들어가면 이 동네 떠날 거예요" 등 종종 학부모들은 내게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곤 했다.

 

왜 굳이 주거비용도 많이 들고 이렇게 치열한 곳에 입성해서 아이들은 공부에 치이고 엄마들은 그렇게 희생하면서 사는지 아이가 없을 땐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교육을 아웃사이더 입장에서만 바라봤던 것이다. 차츰 경력이 쌓이면서 나는 대치동(교육열의 상징적인 동네로서 강남 인근 맹모들이 모인 지역을 편하게 '대치동'이라고 부르겠다) 학부모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이사를 간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는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대다수는 영어 유치원 출신이었고, 외국에서 생활했던 아이들도 꽤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영어 실력을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해 사립초등학교에 아이를 진학시킨 학부모들은 하교 후에도 영어 수업보충을 위해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생들은 대개 강남 근처에 사는 등 비교적 거주지역이 다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2학기에 접어들면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치동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특히 아이가 공부에 두각을 드러내는 가정이면 더욱 그랬다.

 

왜일까? 대치동이 아닌 지역에서는 상위권 성적의 아이를 받아줄 동네 학원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성적 수준에 맞는 학원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 학생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수준에 맞게 지도해줄 선생님과 학원을 찾아 대치동으로 가는 것이다. 강남 인근 지역 학생들은 모두 대치동 학원가를 이용하며, 방이동, 잠실, 강동구, 광진구 심지어 남양주에서도 아이가 조금만 공부를 잘해도 엄마가 직접 운전을 해서라도 아이를 대치동 학원가로 보낸다. 심지어 유명한 강사의 수업을 듣기 위해 일산의 초등학생들이 팀을 짜서 주말에 대치동과 송파동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

 

결국 대치동이 아닌 곳에 거주하면서 대치동 학원까지 차를 운전해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엄마들은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난 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두어 시간을 인근 카페에서 기다린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본의 아니게 찬찬히 그 동네를 살피던 엄마들은 종국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 이 동네로 이사 오고 싶다."

 

엄마들의 눈에 보이는 대치동은 '노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동네다. 거친 욕을 하는 아이들도 없고, 유해시설도 없다. 실제 대치동 스타벅스에 들어가면 대부분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는 학생들과 이 학원과 저 학원 수업 사이 비는 시간에 잠시 머물며 공부하는 학생들로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어 조용하다. 이른바 '스타벅스 도서관'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번은 네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대치동 스타벅스에 들렸다. 한창 저지레를 일삼는 나이의 어린 아들이 조용히 있을 리가. 큰 소리를 내며 산만하게 움직이는 아들과 나를 바라보는 누나와 형들의 눈초리가 무척이나 매서워 나는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곁에 있던 아들도 한마디 했다. "엄마, 이 동네 누나들은 다 책을 들고 다니네."

 

어린 아이들까지 감지하는 동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내신성적에서는 불리할 수 있지만, 공부하라는 잔소리 없이도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들 틈에서 자녀를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자꾸 대치동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놀고 싶어도 함께 놀 친구들이 없는 동네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노는데 우리 아이에게만 공부하라고 잔소리해야 하는 동네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물론 대치동의 십대들이라고 아이돌에 무관심하고 패션에 신경 안 쓰겠는가? 나이대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고 스타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손 놓을 정도로 푹 빠져서 사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대치동 아이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입이 거친 아이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 서쪽의 대치동격인 목동 역시 분위기가 비슷하다. 근방에 유흥가도 없거니와 대부분 학원 다니느라 아이들이 바쁘다 보니 어쩌다 친구들과 시간 맞춰서 놀려면 시험이 끝난 당일이나 아주 특별한 날에만 미리 약속을 잡아 논다고 한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가재울뉴타운에서도 학원을 보내기 위해 목동까지 운전을 해서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들이 있을 정도다.

 

이 글을 읽으면서 대치동이나 목동 분위기에 거부감이 드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창 즐겁게 뛰어놀고 많은 경험을 쌓으며 자유롭게 살아야 할 아이들이 너무 공부에만 목을 매는 게 아닌가 싶을 수 있다. 초등학교 때는 아이를 놀려야 한다는 교육관을 가진 이들도 많다. 본인이 겪은 입시 지옥을 자녀에게도 겪게 하고 싶지 않을 수도.

 

나 역시 사교육이 모든 아이들의 학습 효과를 보장한다거나 명문대가 그들의 인생에 더없는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어떤 주변의 움직임에도 동요 없이 일관성 있게 지켜나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그러한 교육관이 흔들리고 변하기 시작하면서 터진다. 느긋한 마음으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후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첫 성적표에 엄마 아이 할 것 없이 '멘붕'이 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학원가를 기웃거리고 실력있는 과외 교사를 찾아 수소문하게 되는 것이다. 혹은 부모는 가만히 있는데 아이가 선포하기도 한다. "엄마, 나 학원 좀 좋은 데 알아봐주세요. 과외 좀 시켜주세요."

 

이와 같은 상황이 아이의 성적이 나쁠 때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아이의 성적이 좋으면 더 큰 욕심이 생겨서, 성적이 나쁘면 위기감이 생겨서 그런다. 심지어 현재 성적이 형편없는 데다 아이 역시 공부에 의지가 거의 없어서 사교육을 시킨다고 해도 교육비용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 될 게 뻔한데도, 이성적으로 판단해 자녀의 대학 진학을 '쿨'하게 포기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무리해서라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과외시키는 에듀 푸어(교육비를 대느라 빚을 내다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을 일컬음)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하우스 푸어도 모자라 에듀 푸어까지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층은 대한민국 중산층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 약 70%가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고소득층은 대한민국 제도권 교육 밖에 있는 이들이라 열외로 두고자 한다. 저소득층은 사실상 아이 학업에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 열외로 두고자 한다. 중산층을 나누는 기준은 각종 자료와 통계를 기반으로 작성된 객관적인 분류일 테지만, 스스로 보기에 나는 도시 서민에 해당하는 것 같다. 매달 대출이자를 갚느라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 자녀교육비와 노후자금에 대한 걱정도 겸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모두 중산층이라고는 해도 그 형편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일단 결혼할 때 양가의 도움으로 집을 장만할 수 있었던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신혼부부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다. 그후 맞벌이를 하며 대출이자를 갚아나가던 어느 날, 아이가 생긴다. 결혼할 때부터 '하우스 푸어(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을 일컬음)'의 길로 들어선 이들은 아이가 자라면서 '에듀 푸어'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에듀 푸어는 아마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사실 자녀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부모라면 줄이기 힘든 것이 바로 교육비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기하급수적으로 하향곡선을 이루게 된 것도 이 교육비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세대와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지 않는다. 학교에 들어가면, 아니 유치원에 들어가면, 아니 심할 경우 영유아기 때부터 아이들은 반강제적으로 교육 시장에 진입한다. 이것이 너무나 당연하기에 결혼을 한 젊은이들도 그 시장 진입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아예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대한민국 교육 시장은 그 규모가 큰 것은 물론, 약육강식의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왜 우리나라 중산층들이 아이 교육에 올인하는 걸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전통적으로 그래왔고 변하지도 않는 이유. 바로 '우리 아이만큼은' 잘 살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나는 비록 하우스 푸어이고 에듀 푸어가 됐지만, 내 아이만큼은 이렇게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 나는 비록 못 배워서 가난하지만 내 자식만큼은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마음이 대를 이어 이렇게 전해 내려온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대에는 계층 간의 이동이 더욱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부자 부모를 두지 않은 이상, 좋은 직업을 가지고 최소한 남들처럼 살려면 교육을 통한 사회적 지위 상승밖에 답이 없다. 물론 교육의 방법이 이전 시대보다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영어 때문에 사회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은 경험을 가진 부모라면 아이의 영어교육에 특별히 힘을 쏟는다. 반면 좋은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남과 다를 바 없이 언제 잘릴지 모르는 월급쟁이 신세를 한탄하는 부모는 공교육의 대안인 혁신학교에 열광한다. 부모들의 교육열은 다양해지고 더욱 치열해졌다.

 

중산층일수록 자녀교육에 더욱 올인하는 것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실제 중산층들은 어느 정도의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걸까?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가계 지출 중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28%이며 이는 약 81만 원이라고 한다. 가계가 적자 상태이거나 부채가 있는데도 평균 이상으로 교육비를 지출하는 에듀 푸어도 전국적으로 82만 4,000가구에 이른다. 자녀가 유치원 이상에 재학 중인 가구 9곳 중 1곳 꼴이다.

 

나는 부동산으로 아이 학비 번다_ 월천대사(이주현)

by 미스터신 2020. 1. 28. 21:10

사교육 시장에 오래 몸담았던 나 역시 미취학 아동들에게 너무 많은 선행 학습과 무리한 학원 스케줄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놀게만 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이제 저는 공부할 나이가 되었으니 그만 놀고 공부에 매진하겠습니다" 라고 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냥 아무 걱정 없이 노는 게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어른도 마찬가지 아닌가? 인간은 으레 편한 쪽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어릴 적부터 공부가 아니더라도 무엇 하나라도 정확하고 완벽하게 해내는 훈련을 시킬 필요가 있다. 끝을 보고 성과를 경험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자유롭게 놀면서도 어느 정도의 제약을 가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학습량이 늘어도 큰 거부감 없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반면 어릴 적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마냥 자유롭게 노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어느 날 엄마가 이젠 공부해야 할 나이라며 다잡을 때 갑자기 엄마가 나한테 왜 이러는지 당황하면서 반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함께 놀던 친구들은 지금도 노는데 왜 나는 못 놀게 하는 건가 싶은 원망까지 생겨 부모와 자녀 사이에 금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내가 교육 현장에서 수차례 겪은 사례들이다.

 

초등학생 때 아이의 자율성을 인정해 제약을 하지 않던 엄마가 중학생이 된 아이를 갑자기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시키게 되면, 아이가 선생에게도 반발하게 된다. "선생님 왜 이렇게 단어가 많아요?", "선생님 이걸 어떻게 하루에 다 풀어요?" 하며 불만을 품는다. 엄마가 아이보다 기가 세다면 마지못해서라도 아이가 수업을 따라 오지만, 아이가 엄마보다 기가 세다면 결국 선생과 맞지 않는다며 수업을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되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나라 교육 실태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건 다른 문제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현실이다. 부모에게 있어 소중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을 잘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현실을 회피할 수 없다면 현명하게 맞닥뜨려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 도무지 교육비를 줄일 수 없는 사회라면, 좀 더 현명한 방식으로 '교육열'을 불사를 필요가 있다.

 

사교육계에 몸담은 지 10년 그리고 부동산에 대해 공부한 지 3년만에, 엄마로서 또 부동산 투자자로서 내가 찾은 답은 바로, '학군 부동산 투자'였다. 자녀교육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무리해서까지 좋은 학군 지역으로 이사를 간 사람들은 결국 유해시설이 없는 면학 분위기의 명문 학교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고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 쯤엔 자연스럽게 부동산 시세 차익까지 덤으로 얻게 되는 '일석이조'의 이득을 본다. 이것이 내가 숱하게 목격해온 진실이었다.

 

"맹모에게 상을 주는 사회인 것 같아요. 친구 하나가 자녀교육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를 갔어요. 학원가도 가깝고 학교 분위기도 좋아서 아이 공부를 수월하게 시켰죠. 그런데 살다 보니 아파트 가격까지 올라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하더라고요."

 

내 강의를 듣고 난 수강생 중 한 분이 남긴 강의 후기다. 내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분명하다. 자녀교육 문제로 노후 준비는 엄두도 못 내는 중산층들이 똘똘한 부동산 한 채를 장만함으로써 자녀교육과 노후 준비까지 함께했으면 하는 것이다. 자녀교육과 노후자금,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변화무쌍한 우리나라 교육 시장의 현황을 이해하고 이에 따라 아이를 좋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시킬 수 있는 학군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자산 수준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을 짜보는 것이다. 자, 그럼 학군을 염두에 두고 우리나라 교육 시장의 현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나는 부동산으로 아이 학비 번다_ 월천대사(이주현)

by 미스터신 2020. 1. 24. 12:11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뛰어난 리더십과 활동성, 좋은 성적 등으로 자신감과 성취욕이 넘치는 이른바 '알파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여학생들의 평균 성적이 남학생들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하다. 현행 수행평가 체제도 여학생들에게 매우 유리한 구조다. 비교적 꼼꼼하고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여학생들이 프로젝트성 수업이나 발표 수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수업시간에 배포된 학습 프린트 모으기 같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남학생들을 능가한다. 기본 교과 시험에서 여학생들이 상위권을 점령하는 분위기다. 의대나 법대의 수석을 여학생이 차지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남녀의 기본적인 학력 차이를 초등학교 때부터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대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짝궁인 여자 친구가 알림장을 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귀가한다. 오죽하면 남자아이를 키운 선배 엄마들이 후배 남자아이 엄마에게 가능하면 같은 반 여자 친구의 엄마와 꼭 친해질 것을 귀띔해줄까?

 

학부모들은 늘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얼 배우는지,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는지 등을 궁금해하는데, 남자아이들은 단체로 기억을 잃어 버리는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그저 "몰라" 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학교에서 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자초지종을 알고 싶은데, 통 말을 안 해주고 본인은 이미 그 일을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한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따지듯 담임교사에게 연락할 수도 없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그럴 때, 바로 같은 반의 친한 여자아이 엄마가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말은커녕 본인이 불리할 땐 귀도 막아버리는지 대답도 잘 않는 남자아이들에 비해 여자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말하길 좋아하지 않는가. 이런 남녀의 기본적인 성향 차이로, 화성에서 온 남자아이들은 금성에서 온 여자아이들에게 상위권 성적을 양보해주기 마련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이런 경험을 해온 남학생의 부모들은 고등학교만큼은 아들을 남고에 진학시키고 싶어 한다.

 

남학생 부모들이 아들을 남고에 진학시키고 싶어 하는 건, 성적의 불리함 때문만은 아니다. 사춘기 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큰 시험, 바로 '연애'도 걱정되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다 보면 한창 피 끓는 아이들이 이성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문제는, 남학생 여학생이 함께 연애를 하는데도 연애 따로 공부 따로 알아서 척척 잘하는 여학생과 달리, 남학생들은 한번 연애를 시작하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성적 관리에도 상당한 지장이 초래된다. 이래저래 멀티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남자아이들의 성향은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

 

그렇다면 아들이 연애를 시작한 것을 감지했을 때 엄마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애써 감추고 무조건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잘하라는 것이 선배 아들 엄마들의 충고다. 혹여 여학생의 마음이 식어 아들을 차버리기라도 하면, 단순한 남학생들은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성적까지 뚝뚝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아들의 여자 친구를 만난 엄마들은 "얘, 수능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우리 아들한테 헤어지자고 먼저 말하지 말아주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온다고 한다.

 

이제 고작 다섯 살 된 아들을 둔 나 역시 우리 아들이 남고에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미 삼아 포털 검색창에 '서울 남자고등학교' 라는 단어로 검색을 했다. 그런데 역시 나와 같은 엄마들이 많은 모양이다. 서울에 있는 남자고등학교를 알려달라는 질문이 꽤 있었다. 서울시 고등학교는 고교 선택제이다. 따라서 남자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인근 단지의 경우 꾸준히 수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나 그 학교가 단대부속고등학교나 보성고등학교처럼 명문이기까지 하다면 더더욱 말이다.

 

나는 부동산으로 아이 학비 번다_ 월천대사(이주현)

by 미스터신 2020. 1. 19. 11:10

이준석 최고위원께서는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운영하면서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육의 문제들을 나름대로 느꼈을 텐데,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육에 대한 환상을 깼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암기식 교육을 하고 있고, 교육 선진국에 가면 굉장히 창의적인 교육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게 착각입니다. 암기는 대단히 중요해요. 암기는 좋은 공부이고, 공부하지 않고 교육이 잘 되는 나라는 없어요. 미국은 정말로 책을 외울 정도로 많이 읽거든요. 거의 모든 과목이 그래요. 나중에 인용하려고 해도 우선 외우고 있어야 하잖아요. 외우지 않고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그 문장이 암기 상태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놀면서 공부하자, 저는 그런 공부는 없다고 봐요. 제가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하면서 아이들을 많이 상대했는데, 당시 크게 느낀 점이 뭔지 아세요? 원리를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풀어 보는 거였어요. 문제를 풀면서 익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거든요. 문제 풀이는 오직 시간을 투여해 공부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외국에서도 수학 공부를 할 때 문제 풀이를 다 하거든요.

 

저는 아이에게 약간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학교에서 없어진 성취도 평가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시험을 보면 국어, 영어, 수학 등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나옵니다. 그런 학생들을 공부시킬 방법을 찾아야 해요. 그것을 하지 않고 의무교육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봐요.

 

조지 부시가 했던 교육정책 중에서 NCLB(No Child Left Behind)라는 게 있어요. '어떤 아이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퍽 낭만적인 표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낙오 방지법'으로 번역되었어요. 그 교육정책이 아주 성공적이었어요. 성취도 평가를 학교마다 보고, 금방 결과가 나오겠죠.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많이 나온 학교에 대해서는 선생을 교체하고, 지원금을 끊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했어요. 학생이 아니라 학교를 채찍으로 때리는 겁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의 성적이 많이 오르게 되었거든요.

 

교육에서는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해요. 제가 자주 말하는 공정한 경쟁입니다. 현재 한국 교육은 경쟁 둔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봐요. 저는 학교교육에 바람직한 경쟁을 만들고, 성취도 평가 제도를 도입해 기초학력이 미달인 학생을 찾아내 그들에게 교육을 집중해야 한다고 봐요. 이렇게 되어야 의무교육이라 할 수 있죠.

 

현재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은 정시와 수시로 나뉘어 있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 수시, 그중에서도 학생부 종합 전형입니다. 이준석 최고위원께서는 미국 대학에 수시 전형으로 입학했는데, 특별히 우리나라의 수시 제도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먼저 아직 신뢰 사회가 구축되지 않아 생긴 일로 보는데요. 제가 미국 하버드 대학에 제출한 에세이는 한국에서 작성해서 보냈던 것입니다. 내용은 제가 과학고 다닐 때 학생회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삼성에 연락해서 새 컴퓨터를 지원받았던 일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 일과 중국 지도자가 댐 공학도라는 사실에 착안해 공학도 역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을 썼어요. 당시 하버드 대학 입학사정관이 그것을 보고 다른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어가 부족한 저를 뽑은 겁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제가 공부하는 데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거예요. 나중에 제 에세이를 채점해 놓은 것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에세이가 하버드 대학 입학하는 데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하버드 대학 다닐 때 저보다 학업 성적이 많이 떨어지는 팔레스타인 친구가 있었어요. 저런 친구를 하버드 대학에서 왜 뽑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친구를 뽑은 것은 그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조국으로 돌아가 지도자가 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친구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도 일취월장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냈고요. 괄목상대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하버드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판단이 옳았던 거죠.

 

미국 대학은 우리와 다르게 대학이 다양한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그 책임도 학교가 지는 구조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식으로 입시 제도를 개편하고, 사립대가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가진다면 우리나라 대학도 미국처럼 될 거라고 믿어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준석 최고위원께서는 과학도이고, 전공이 컴퓨터라 남다른 견해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논리학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정치도 치열하게 논리적 대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영 논리로 가지 않습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계 때문에 일을 빼앗기는 사람들과 기계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 사이에 치열한 갈등이 있을 것인데,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논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는 거지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백과사전식 지식은 가치를 많이 잃을 겁니다. 그것은 컴퓨터가 감당할 테니까요. 그래서 학교교육에서 논리 교육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봐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무기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하는 논리라는 것은 정량적인, 이성적인 논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비이성적인, 계량화가 불가능한 가치들을 포함한 겁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창의성은 바로 비이성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이긴 신의 한 수, 그 힘도 논리를 이길 수 있는 비논리에서 나왔다고 봐요.

 

공정한 경쟁_ 이준석

by 미스터신 2019. 11. 2. 13:56

지식도서 다독가는 강제로 만들 수 없다

 

제대로 읽은 지식도서 한 권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책을 읽으며 습득하는 지식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핵심은 방대한 분량의 지식을 이해하고, 상호 연결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머릿속에 지식 처리 전용 '광통신망'이 깔린다는 사실입니다. 이 광통신망은 성능이 매우 뛰어나서 일단 깔고 나면 지식 습득에 있어서 엄청난 성능을 발휘합니다.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이런데 10권, 100권을 읽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실 저는 이런 경우를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감히 단언하자면 <코스모스> 수준의 지식도서를 10권 이상 제대로 읽은 학생은 전국을 탈탈 털어 0.01%도 안 될 겁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례를 찾기는 아주 쉽습니다. 지적능력으로 놀라운 업적을 이룬 위인급 인물을 아무나 고른 후에 그 사람의 성장기를 살펴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식도서 다독가들은 거기 죄다 모여있습니다.

 

지식도서 다독가들은 저처럼 아주 적은 수의 지식도서를 꼭꼭 씹어먹듯 읽는 경우와 전혀 다른 방식의 독서를 합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책을 한 번만 읽죠. 그런데도 여러 번 읽은 것처럼 책 속에 담긴 지식을 완벽에 가깝게 흡수해냅니다. 이런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지식도서를 제대로, 많이 읽은 덕분입니다. 폭넓고 탄탄한 기초 지식, 높은 수준의 언어능력, 지식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 덕분에 어떤 지식도서든 훤히 꿰뚫어 보며 읽을 수 있습니다.

 

지식도서 다독가들은 거대한 고래가 바닷물을 집어삼키듯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집어삼킵니다. 그게 무엇이 됐든 매일 새로운 지식을 자양분으로 삼아야만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그 결과 그들은 더 강한 '광통신망', 압도적인 지식, 세계를 꿰뚫어 보는 눈을 얻습니다. 이쯤 되면 학교 공부는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 대부분은 이미 다 아는데다 설사 모르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보잘것없을 만큼 쉽기 때문이죠. 학습에 있어서 이들은 초능력자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지식도서 다독가는, 어딘가에 생존해 있을지도 모르지만 발견된 적은 없는 멸종 위기종 동물과 같습니다. 우리의 교육현실이 이들의 생존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저 멀리 별천지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만약 자녀가 어리다면 이 장을 특별히 신경 써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지식도서 다독가에는 크게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이 네 유형의 경계선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1번 유형이 2, 3번 유형의 특징을 가질 수도 있고, 3, 4번 유형이 1번 유형의 특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 유형 분석은 아이를 지식도서 다독가로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식도서 다독가로 성장하는 원리를 알면, 아이가 다독가의 자질을 보일 때 그 싹을 꺾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식도서 다독가는 강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강제로 시도했다가는 부작용만 낳을 뿐입니다.

 

유형 1. 활자중독형

 

활자중독형은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는 유형입니다. 쉽게 말하면 도서관 서가의 A열부터 Z열까지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다 읽어버리는 식입니다. 발명완 에디슨,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연쇄 창업마라는 별칭을 가진 테슬라 CEO 엘론 머스크 등이 이 유형에 속합니다.

 

도서관을 정복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열정이 필요합니다. 에디슨은 초등학교 때 퇴학을 당하는 바람에 시간과 열정을 얻을 수 있었고, 빌 게이츠는 도서관에서 미친 듯이 책만 읽다가 아들의 정신이 이상하다고 여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병원 진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손에서 책을 놓는 법이 없었던 엘론 머스크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도 저 혼자 독서를 하는 기행을 일삼았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이 되기도 전에 이미 읽은 책의 권수가 만 권을 돌파했습니다. 경위야 어떻든 도서관 어린이실을 통째로 정복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독서를 하면 아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인재가 됩니다.

 

도서관 어린이실 서가는 어른들이 이용하는 문헌정보실 서가와 구조가 같습니다. 역사, 과학, 철학, 사회, 정치, 문학 등 모든 분야의 책이 다채롭게 비치돼있죠. 다른 점은 책의 수준이 어린이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뿐입니다. 어린이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 유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에 유치한 문학, 유치한 지식은 없습니다. 다만 어렵고 복잡한 것을 쉽게 친절하게 설명해놓았을 뿐이죠. 따라서 어린이실의 서가를 정복한다는 것은 세상 모든 종류의 지식을 머릿속에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어떤 아이가 어린이실에 비치된 역사책 전부를 제대로 읽는다고 가정해보죠. 한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읽는다는 것은 그 분야의 지식을 반복 확장해서 학습함을 의미합니다. 한국사 통사 책을 한 권 읽으면 아이는 한국사의 대략적 흐름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도서관에는 한국사 통사 책만 수십 종 넘게 비치돼있습니다. 담고 있는 지식은 비슷하지만 책마다 조금 다른 관점, 조금 다른 강조점, 조금 다른 서술 방식을 갖고 있죠. 따라서 수십 종에 이르는 한국사 통사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국사 통사 지식을 조금씩 다른 관점으로 수십 번 반복 학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교과서를 달달 외워 습득한 지식과는 전혀 다른 입체적이고도 해박한 지식을 얻게 됩니다.

 

처음 통사 책을 읽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구나', '고구려라는 나라에는 광개토대왕이라는 사람이 있었구나' 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접합니다. 이렇듯 처음 통사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국사라는 새로운 지식을 만나는 행위입니다. "안녕. 반가워" 하고 인사를 하는 거죠.

 

두 번째 통사 책을 읽을 때는 다른 관점, 다른 서술 방식으로 같은 지식을 다시 습득합니다. 단군왕검이 다시 고조선을 세우고, 광개토대왕이 다시 북방을 정복하죠. 그러면서 아이는 첫 번째 통사책을 읽는 과정에서 획득했던 지식을 강화하고, 놓쳤던 지식을 새로이 머릿속에 입력하게 됩니다. 처음 읽을 때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활약했다는 것만 알았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기가 조선 중기였고, 50년 후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는 식이죠. 한국사 지식이라는 커다란 퍼즐망이 서서히 채워집니다.

 

이렇게 6~7권의 한국사 통사 책을 읽고 나면 아이는 이제 다음장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훤히 알 정도로 한국사 지식에 능통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책들 사이에 서로 다른 관점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스무 권, 서른 권을 읽고 나면 사건들의 상호 관계까지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머릿속에 한국사 통사라는 지식 체계 하나가 완전한 형태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제 아이는 자기가 원할 때 언제든지 그 지식을 꺼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원하지 않을 때도 툭툭 튀어나옵니다. 한국사 지식이 내면화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식을 생각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이점이자 성장입니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다가 유람선을 봤다고 해보죠. 가뜩이나 도로가 막혀 심심했던 아이는 자연스레 거북선을 떠올립니다. 처음에는 한강 위에 거북선을 띄워 유람선을 공격하는 상상 놀이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문득 거북선의 유별난 모습에 생각이 미칩니다. '거북선은 왜 등딱지 같은 덮개로 덮여있을까? 하고 의문을 품게 되는 거죠. 그리고 '거북선은 전쟁용 배니까 당연히 잘 싸우기 위해서겠지. 그런데 등딱지가 있는 게 왜 싸움에서 유리하지?' 하는 식으로 생각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고대 해군의 전쟁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전쟁 방식을 알아야 등딱지가 왜 유리한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는 고대 해군의 전쟁 방식을 모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의 한도 내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죠. 아이가 본 해상 전투라고는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영화 속 장면뿐입니다. 해적들은 유람선을 약탈할 때 사다리나 줄을 이용해 그 배로 건너갑니다. 그런데 등딱지가 있으면 그렇게 건너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거북선의 등딱지에는 무수히 많은 송곳이 박혀있습니다.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거북선의 등딱지는 적군이 우리 배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입니다. 여기서 생각이 더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등딱지로 왜군이 넘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것은 왜군이 그만큼 배 위에서 전투를 잘했다는 뜻입니다. '같은 군사인데 왜 왜군이 배 위에서 더 잘 싸울까?' 아이는 책에서 읽은 전투 지식을 머릿속에서 찾습니다. '중국의 주무기는 창, 한국의 주무기는 활, 일본의 주무기는 칼'이라는 내용을 떠올립니다. 아이는 다시 사고 실험을 합니다. 조선 배와 왜의 배가 만납니다. 조선 배가 주무기인 활을 쏩니다.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배의 나무 기둥이나 선실로 몸을 숨기면 화살을 맞지 않을 테니까요. 왜군이 배를 바짝 붙이고 조선 배로 넘어옵니다. 칼을 잘 쓰는 왜군이 조선군을 쉽게 이깁니다. 그런데 왜 창이 아니고 칼일까? 아이는 잠시 생각합니다. 배 위의 공간이 좁습니다. 긴 창을 휘두르면 이것저것 걸리적거리는 게 많을 겁니다. 짧은 칼이 훨씬 유리하겠죠.

 

머릿속에서 하나의 지식 체계를 완벽하게 입력해두면 이런 식으로 곱씹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곱씹는 과정에서 아이는 지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흡수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책 속의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와 완전히 일체화된, 살아있는 지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지식은 다른 유형의 역사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반복 학습됨과 동시에 세밀화됩니다. 아이는 시대 배경을 훤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세종대왕과 광개토대왕 위인전을, 유물에 관한 책을 읽습니다. 지식이 상호 연결되며 강화됩니다.  어린이실의 역사 서가를 정복할 때쯤이면 아이는 준전문가급의 지식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이 많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를 상호 연결해 복잡다단한 하나의 지식 체계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처리하는 능력이 어마어마하게 향상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죠.

 

이런 식으로 문학, 과학, 사회, 정치, 철학 분야의 도서를 모조리 독파합니다. 아이가 쓸 수 있는 생각의 재료가 점점 늘어납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역사의 지식 체계를 머릿속에 넣은 아이가 읽는 문학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읽는 문학과 전혀 다릅니다. 역사와 문학을 독파한 아이가 읽는 과학책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읽는 과학책과 전혀 다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 분야가 머릿속에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그런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렇지 않은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과 전혀 다릅니다.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지식 네트워크를 이용해 해석할 수 있고, 그 해석의 과정을 통해 강화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통섭적 인재, 세상을 읽는 눈을 가진 지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교과서를 봅니다. 교과서는 자신의 지식 네트워크에 이미 구축된 내용을 앙상하게 추려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언어수준도 턱없이 낮습니다. 교과서를 한 번 읽으면 공부가 끝납니다. 따로 공부할 과목은 수학과 영어뿐입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금세 끝납니다. 아이의 지식 처리 능력이 외국어의 지식 체계, 교과 수학의 연산 수준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을 통째로 읽어내는 사람은 천재입니다. 이들의 천재성은 뛰어난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칠 듯한 독서 욕구에 있습니다. 운동 중독자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온몸이 근질근질한 것처럼 잠시도 활자를 읽지 않으면 뇌가 근질거려 견디지 못하는 것, 그래서 항상 책을 손에 달고 다니고, 어쩌다 책이 없을 때는 하다못해 광고판이나 제품설명서라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바로 이것이 천재성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독서에 대한 강렬한 열망 말고 그 무엇도 이렇게 책을 읽게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형 2. 탐구형

 

탐구형은 호기심에 이끌려 책을 읽는 유형입니다. 활자중독형이 방사형 독서를 한다면 탐구형은 선형 독서를 합니다. 예를 들어 국내 최연소 박사인 송유근 씨는 어린 시절 바람을 무척 신기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바람을 다룬 책을 읽었습니다. 바람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이번엔 바람의 힘을 이용한 요트나 돛단배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요트나 돛단배를 다룬 책들을 읽었고, 항해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탐구형은 이런 식으로 호기심을 쫓아가며 책을 읽습니다. 독서를 통해 호기심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지식이 쌓이고, 지식이 쌓이는 과정에서 다시 호기심이 생기는 거죠. 독서 방식 자체가 '지식의 구조'와 꼭 닮아있습니다.

 

탐구형은 공격적인 독서를 합니다. 책을 읽는 원동력이 호기심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왜?', '어떻게?'라는 질문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발생하는 사고의 양이 많고, 책 속의 지식도 깊이 흡수합니다. 책 한 권 한 권의 독서 효과가 클 수밖에 없죠. 또 탐구형은 종종 본인의 언어능력을 몇 단계 뛰어넘는 책을 읽는 괴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 기계 문명은 어떻게 시작됐을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고 해보죠. 아이는 어린이책을 통해 '기계 문명은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호기심이 풀리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제임스 와트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증기기관 발명에 도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고, 그 사실에 의문을 품을 테니까요. '그전에는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증기기관을 왜 하필 그때 여러 사람이 만들려고 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거죠. 이렇게 의문을 쫓다 보면 아이는 결국 어린이책의 경계선을 넘게 됩니다. 자신의 언어능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책에 손을 대게 되는 거죠. 청소년용 도서, 심한 경우 성인용 도서까지 독서 지평을 넓힙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또래의 수준을 뛰어넘는 언어능력과 지식,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을 탑재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아이는 교과 학습 정도는 우습게 해치울 수 있는 능력자가 됩니다. 만약 아이의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면 아이는 결과적으로 활자중독형과 마찬가지로 전 분야의 지식을 폭넓고도 깊게 쌓게 될 겁니다.

 

사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독서 이력을 본다는 것은 탐구형 독서가의 선형 독서, 다시 말해 독서 목록을 통해 아이의 지적 호기심이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는가를 보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고등학생 필독서 위주로 독서 이력을 작성하죠. 그래서 서울대학교 입학처장이 매년 추천도서를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를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학생의 지적 여정'을 보려는 거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유형 3. 마니아형

 

활자중독형, 탐구형과 함께 지식도서 다독가의 3대 유형을 이루는 것이 바로 마니아형입니다. 활자중독형이 팔방미인, 탐구형이 지식탐험가라면 마니아형은 한 우물만 파는 특정 분야 전문가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마니아형이 될 기본 자질을 갖고 태어납니다. 아이라면 누구나 흥미로워하는 분야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는 로봇이나 비행기를 좋아하고, 또 어떤 아이는 공룡이나 화산을 좋아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관심사를 잃게 됩니다. 어른들이 아이의 관심사를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한 분야만 좋아하는 것을 나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돈에 열광한다고 해보죠.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아이가 경제에 관한 책만 읽고, 투자나 창업, 주식 같은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겁니다. 다른 책은 손도 안 대려 합니다. 이 경우 부모님은 자연히 걱정을 하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돈, 돈 하는 것도 마뜩잖고, 지금 돈에 관해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돈에 대해서도 이런데 만약 공륭이나 로봇, 패션 등에 열광한다면 정말 한숨만 나올 겁니다. "그런 책 읽을 시간 있으면 영어 단어나 외워"라는 말이 절로 나오겠죠.

 

어른의 눈에 아무리 한심해 보이는 분야라도 열광하는 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설사 그 지식이 실제로 쓸모없다 하더라도 말이죠. 왜냐하면 그 강렬한 관심사가 지식도서를 읽는 힘이 되어주고 더 나아가 언어능력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로봇을 좋아해서 로봇 책만 읽는 아이가 있다고 해보죠. 원하는 대로 책을 공급해준다면 이 아이는 이내 시중에 나와있는 로봇 책을 모조리 독파하게 될 겁니다. 로봇에 대한 흥미도가 높아 멈추지 못한다면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기계 공학으로 관심사를 확장하거나 자기 연령대보다 높은 수준의 로봇 공학책을 읽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니아라면 독서의 지평이 양방향으로 확장될 겁니다. 기계 공학을 읽으면서 동시에 수준 높은 로봇 공학책도 읽는 거죠. 물론 로봇이 등장하는 이야기책도 포함될 겁니다. 이런 식으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청소년용 도서를 넘어 성인용 도서까지 정복한다면 아이는 또래를 압도하는 언어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로봇이라는 특정 분야의 지식 체계를 준전문가급으로 소화한 아이에게 고등학교 교과 공부는 그다지 어려울 게 없습니다.

 

마니아형에게는 또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마니아형의 강렬한 관심사는 강렬한 꿈을 낳습니다. 이것은 위인들의 또 다른 공통점입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을 수립한 마오쩌둥은 혁명가와 영웅들의 전기를 끼고 살았던 영웅 마니아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투자 전문가인 워런 버핏은 여덟 살 때부터 경제, 투자, 주식 책을 끼고 살았던 돈 마니아였고,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외계인 마니아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아이가 열광하는 분야가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응원해주세요. 황당한 것이든, 돈이 안 되는 분야든 상관없습니다. 열정을 잃지 않는 한 아이는 스스로 발전할 것입니다. 입시 정도는 손쉽게 해결할 거고요.

 

유형 4. 활용형

 

활용형은 책을 일종의 사용설명서로 여기는 유형입니다. 무언가를 배울 목적으로 책을 읽죠. 바둑을 배우기로 했다면 바둑 이론서들을 먼저 읽고, 컴퓨터를 새로 샀다면 컴퓨터 이론서들을 섭렵하는 식입니다. 초등 저학년 때 그 특징이 드러나는 나머지 세 유형과 달리 활용형은 보통 청소년이 되어야 그 특징이 발현됩니다. 대부분의 실용 이론서가 성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세 유형과 마찬가지로 활용형도 언어능력이 높습니다. 실용적인 정보 위주의 독서를 하기 때문에 교과 관련 지식이 쌓인다거나, 세계관이 성장하는 효과는 거의 없지만 공부머리의 상승효과만큼은 큽니다. 독서의 목적상 책을 사용설명서 읽듯 꼼꼼하게, 구체적인 정보를 기억해가며 읽기 때문이죠.

 

활용형은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하기 위해 만전을 기합니다. 그래야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부분은 표시해뒀다가 거듭해서 읽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따로 정리해서 외우기도 하죠. 활용형에게 독서는 책 속의 정보들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파악하는 훈련인 셈입니다. 게다가 활용형들은 이렇게 정리하고 파악한 지식을 곧바로 실전에서 써봅니다. 바둑 이론서로 공부한 내용을 바둑을 배우며 써먹고, 컴퓨터 관련 서적으로 쌓은 지식을 컴퓨터를 다루며 쓰죠.

 

이 과정에서 활용형은 자신이 어떤 부분을 잘못 파악했는지, 어떤 부분을 파악하지 못했는지를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추가 독서를 합니다. 글 속의 정보를 파악하는 능력이 계속 업그레이드됩니다. 그 위력은 예상외로 커서 교과 학습에서 어마어마한 효율성을 발휘합니다.

 

지식도서 다독가의 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탐구형이 활자중독형의 특징을 가질 수도 있고, 마니아형이 활용형처럼 책을 읽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무수히 다양한 변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변용에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지식도서 다독가는 자발성에 의해서만 태어날 수 있고, 그 자발성의 근원은 호기심이라는 사실입니다.  활자중독형은 세상 모든 지식을 궁금해하고, 탐구형은 마음속에서 떠오른 호기심을 쫓습니다. 마니아형은 열광하는 분야에 대한 활화산 같은 호기심을 품고 있으며, 활용형은 자신이 새로이 발을 내딛는 분야를 알고 싶어합니다.  부모님께서 '이런 지식은 알아야 하니 읽어라'라고 말하는 순간, '이 전집은 네 나이 때 꼭 읽어야 해'라고 강제하는 순간, 호기심의 싹은 사그라지고 맙니다. 자발성은 호기심의 짝입니다.

 

공부머리 독서법_ 최승필

by 미스터신 2019. 7. 6. 11:55

독서를 통해 공부머리를 끌어올린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컴퓨터의 부품을 업그레이드하듯 아이의 뇌가 구조적,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뇌로 변신함을 뜻합니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1000억 개의 신경세포들은 시냅스라는 틈으로 서로 연결돼있습니다. 이 틈이 얼마나 조밀하고 원활하게 연결되어있느냐가 그 사람의 지적, 정신적 능력을 결정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 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 연결 방식이 계속해서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뇌 과학에서는 이것을 '뇌의 신경가소성'이라고 합니다.

 

뇌를 많이 쓰면 시냅스의 연결 방식이 개선, 강화되고 많이 쓰지 않으면 연결이 퇴보하거나 끊어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수학 공부를 많이 하면 수학 문제를 풀 때 쓰이는 시냅스의 연결이 조밀해지고 더 나아가 자동화됩니다. 처음 덧셈 뺄셈을 배울 때는 한참을 고민해야 합니다. 관련 시냅스의 연결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덧셈 뺄셈을 익히고 나면 숫자가 달라져도 쉽게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관련 시냅스의 연결이 완성되어 뇌 속에 덧셈 뺄셈이라는 도로가 하나 뚫린 셈입니다. 이 상태에서 계속 반복해서 문제를 풀면 덧셈 뺄셈에 관한 시냅스 연결 조합이 자동화됩니다. 덧셈 뺄셈 문제를 보자마자 조건반사적으로 순식간에 풀 수 있게 되죠.

 

반대의 현상도 일어납니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던 어떤 사람이 10년 넘게 영어를 쓰지 않으면 관련 시냅스 조합의 연결이 끊어집니다. 영어를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시냅스의 연결이 이어지고 끊어지는 것은 특정 지식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고력, 언어능력의 수준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2014년 OECD는 22개 회원국의 국민 15만 명을 대상으로 실질 문맹률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실질 문맹이란 글자를 소리로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을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를 말하는데, 그 조사 결과가 자못 충격적입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실질 문맹률이 22개국 중 3위를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 중 상당수는 전자제품 설명서나 약 사용법 같은 간단한 글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언어능력이 이렇게 낮은 것은 세계 최저 수준의 독서율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평소 길고 어려운 글을 읽는 훈련을 거의 하지 않으니 글을 읽고 이해하는 시냅스 연결이 죄다 풀려버린 것이지요.

 

말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뇌에는 말을 관장하는 전문 영역인 베르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우리 유전자 속에 프로그래밍된, 타고난 능력인 셈입니다. 반면 글 읽기는 타고난 능력이 아닙니다. 글은 인위적으로 배워야만 익힐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현생 인류가 등장한 것이 20만 년 전인데 문자가 만들어진 것은 기껏해야 6천 년 전의 일이니까요.

 

우리 뇌에는 읽기를 관장하는 영역이 따로 없기 때문에 글을 읽으려면 뇌의 여러 부위가 축구 경기를 하듯 팀플레이를 펼쳐야 합니다. 후두엽은 눈으로 받아들인 시각 정보를 측두엽에게 패스합니다. 측두엽은 시각 정보를 재빨리 표음 해독합니다. '사람'이라는 글자를 사람이라고 읽고, '손가락'이라는 글자를 손가락이라고 읽는 식으로 말입니다. 측두엽으로부터 해독한 글자를 넘겨받은 전두엽은 그 글자의 의미를 추론합니다. '사람'이라는 글자와 실제 사람을 연결짓고, '손가락'이라는 글자와 실제 손가락을 연결짓습니다. 다음은 이렇게 해독한 단어들을 연결합니다. 비로소 '그 사람의 손가락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큰 상처가 있었다'라는 문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뒤이어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아프겠다', '안됐다'는 식의 감상을 내놓습니다.

 

이렇듯 문장 하나를 해석하려면 뇌의 거의 모든 부분이 총동원되어야 합니다. 숙련된 독서가라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왜 상처를 입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남자일까? 여자일까?'와 같은 의문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의문들은 글을 보다 깊고 긴밀하게 이해하도록 만듭니다.

 

책을 읽을 때 뇌가 전방위적으로 활성화된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일본 도후쿠대학교 의학부의 가와시마 류타 교수도 그런 연구를 진행한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해 뇌 활동을 촬영했는데, 다른 활동을 할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을 읽을 때 뇌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집니다. 책 읽기는 머리를 활발하게 쓰는 활동입니다. 독서야말로 두뇌를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쉽고 훌륭한 방법입니다.

 

이제 막 초등 6학년이 된 학생 둘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한 아이는 숙련된 독서가이고, 다른 한 아이는 독서 경험이 없는 초보 독서가입니다. 두 아이에게 뇌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한 후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를 읽게 합니다. 두 아이의 뇌 활동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터프츠대학교에서 인지신경학과 아동 발달을 연구하는 매리언 울프 교수는 자신의 저서 <책 읽는 뇌>를 통해 초보 독서가와 숙련된 독서가의 차이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책을 읽는 동안 초보 독서가의 뇌는 뇌 전체가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반면 숙련된 독서가의 뇌는 뇌의 일부만 활발해집니다. 이는 초보 독서가는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를 이해하기 위해 뇌를 풀가동해야 하는 반면 숙련된 독서가는 뇌를 조금만 써도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앞서, 특정한 지적 활동을 반복하면 관련 시냅스 조합의 연결이 자동화된다고 했습니다. 책 읽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보 독서가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단어 뜻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문장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우뇌와 좌뇌를 모두 활용해야 하는 거죠. 매리언 울프 교수는 이것을 '배측 경로를 이용한다'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숙련된 독서가는 독서 과정 중 상당 부분이 자동화돼있습니다. 글자의 모양을 파악하고, 뜻을 연결하고, 그렇게 파악한 어휘들을 조합해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복잡한 과정이 쭉 뻗은 고속도로처럼 하나의 세트로 간결하게 구조화돼있는 겁니다. 그래서 숙련된 독서가는 좌뇌만으로 글을 읽는 효율적인 방식을 쓰는데, 이것을 '복측 경로 혹은 하측 경로를 이용한다'라고 합니다.

 

공부를 요리에 비유하자면 배측 경로를 사용하는 초보 독서가는 요리를 처음 해보는 자취생과 같습니다. 이 자취생이 요리를 하려면 먼저 인터넷으로 레시피부터 찾은 후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마트에 가서 요리 재료를 사서 돌아온 후에야 어설프게나마 요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복측 경로를 사용하는 숙련된 독서가는 유능한 팀원이 10명쯤 딸린 특급 음식점의 주방장과 같습니다. 필요한 재료는 이미 냉장고 안에 완벽하게 준비돼있고, 레시피는 머릿속에 빈틈없이 정리돼있습니다. 일단 요리가 시작되면 재료 손질과 같은 기초 조리 과정은 팀원들이 알아서 대령합니다. 주방장은 오로지 요리 자체에만 집중하면 되죠. 빠른 시간 안에, 큰 힘 들이지 않고,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자취생과 특급 음식점 주방장이 요리 경연대회에 나가면 누가 이길까요?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결과는 자명합니다.

 

1, 2차 급변동 구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아이의 성적을 결정합니다. 그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기초가 아니라 언어능력입니다. 언어능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이유가 더 필요한가요? 책 속에 답이 있습니다.

 

공부머리 독서법_ 최승필

by 미스터신 2019. 7. 6. 10:01

초등학생들이 달리기 경기장 출발선 앞에 서있습니다. 신호탄이 울리자 아이들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트랙 위에는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초등 1학년, 2학년, 3학년.... 초등 4학년 지점을 지나는 순간 남자아이 하나가 그만 넘어지고 맙니다. 그새 다른 아이들은 저만치 앞서 달려갑니다. 남자아이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앞서가는 친구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런 문구가 떠오릅니다.

 

"초등 4학년, 기초가 중요한 때입니다."

 

오래전에 있었던 학습지 TV 광고의 한 장면입니다. 초등학생때부터 기초를 탄탄히 쌓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다는 협박 아닌 협박이 담긴 광고였습니다. 이것은 공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입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뒤처지게 된다. 저는 이것을 '공부기초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공부기초 이론은 저학년 기초가 약하면 고학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더하기 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는 아이는 곱하기 나누기를 제대로 배울 수 없고, 곱하기 나누기가 서툰 학생은 인수분해를 손도 못 댄다는 논리입니다.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아래 벽돌을 튼튼하게 쌓지 않고 무슨 수로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한 이 논리가 우리 사회의 무수한 교육 풍경을 만듭니다.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두신 부모님 중 올백 점에 연연하는 분이 많은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올백 점을 못 맞으면 고학년이 되었을 때 성적이 얼마나 많이 떨어질까?' 하고 불안해하시는 거죠. 완벽한 기초를 쌓아 고학년 때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기초를 튼튼히 쌓았음에도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반대로 기초는 형편없는데 고학년이 되어 성적이 오르는 준우 같은 아이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초를 극복하는 것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어능력이 높고 의지만 굳건하다면 교과 공부에 필요한 기초 지식은 짧은 시간 안에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수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초등 1학년은 1년 내내 더하기 빼기를 배웁니다. 더하기 빼기라는 연산 논리를 이해하고 습득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1학년 아이의 평균 사고력, 그러니까 언어능력이 그 정도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수학에 관한 지식만 모두 잊어버려서 더하기 빼기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면 어떨까요.

 

이 학생이 더하기 빼기를 완벽하게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될 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의 언어 수준에서 더하기 빼기는 쉬워도 너무 쉬운 연산이기 때문입니다. 초등 1학년에게는 1년간 갈고 닦아야 하는 교과 학습량이 고등 1학년에게는 10분이면 습득할 수 있는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모든 과목이 이런 식의 기초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초등 6학년 과학 지식이 없다고 해서 중등 1학년 과학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수학 외의 과목들은 기초가 부족해도 교과서만 충실히 이해하면 얼마든지 만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준우 같은 아이들이 이런 사실을 증명합니다. 중학교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언어능력만 갖추어도 얼마든지 부족한 기초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중요한 기초는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글을 읽고 이해하는 언어능력입니다.

 

뛰어난 독서가이지만 독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학교 공부에 의욕이 없고, 목적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로는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스티브 잡스의 초등학교 성적표에 적힌 평가입니다. 잡스는 초등 3학년 때까지 상습적으로 학교를 빼먹는 문제아였습니다. 당연히 성적도 나빴죠. 교과 지식의 관점에서 보자면 잡스는 형편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잡스가 달라진 것은 초등 4학년 때였습니다. 담임이었던 힐 선생님의 배려와 관심이 잡스의 마음을 움직인 덕분입니다. 잡스는 힐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우등생으로 변신했습니다. 잡스의 학습능력에 깜짝 놀란 힐 선생님은 잡스에게 '수학능력(학문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평가'를 받게 했습니다. 잡스의 수학능력은 고등 2학년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초등 4학년이었던 잡스는 고등 2학년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가졌던 겁니다. 고등 2학년 학생이 초등 4학년 교실에 앉아있었던 셈이니 다른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잡스는 '사기 캐럭터'였던 거죠. 잡스가 이런 수준의 언어능력을 갖게 된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독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덕분입니다. 독서만큼 언어능력을 확실하게 끌어올려 주는 방법은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드실 겁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명문대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언어능력 평가를 해보면 그런 아이들은 독서 여부와 상관없이 백이면 백 언어능력이 높습니다. 평생 가야 책 한 권 읽지 않았다는 중등 2학년 학생이 수능 국어영역 80점을 넘긴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언어능력이 높은 것은 지능보다는 기질적인 요인이 큽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 집요한 성격, '왜 그럴까?' 하고 의문을 품는 사고 패턴 덕분에 일상생활이나 학교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언어능력이 저절로 성장합니다. 한마디로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 세상을 읽을 줄 아는 아이죠. 이런 아이가 책을 읽지 않고 명문대에 들어갔다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통탄할 일입니다. 이런 기질의 아이는 독서 효과도 매우 크게 나타납니다. 엄청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의 잠재력이 독서를 하지 않음으로써 묻혀버린 셈입니다.

 

초등학교 때 몇 점을 받느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아이가 또래 연령 대비 어느 정도의 언어능력을 갖추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언어능력이 높아도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는 간혹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능력이 낮은데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언어능력이 낮은 아이는 1차 급변동 구간에서 무조건 성적이 떨어집니다. 논술 강사 생활 12년 동안 단 한 번의 예외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어능력이 바로 학습능력입니다.

 

공부머리 독서법_ 최승필

by 미스터신 2019. 7. 6. 09:57

심사위원 만장일치 최우수상으로 손색이 없는 글을 접하게 되어 심사위원의 한 명으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 한국 정치사의 여러 주제를 다루는 기존의 연구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글이며 충분히 최우수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 글이다.

 

2017년 서울대학교 우수 리포트 공모대회 최우수상 수상작에 대한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안도경 교수의 평이다. 서울대학교 우수 리포트 공모대회는 학기별로 개최되며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학부생들이 작성한 리포트를 받아 수상작을 가리는 권위 있는 대회다. 이 대회에는 전공, 교양 수업 등에서 A+성적을 받은 수천 장의 리포트가 제출되고 오직 소수의 리포트만이 예선을 통과할 수 있다.

 

이런 대회에서 위와 같은 평을 받은 이는 바로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는 오석 마스터다. 그는 이 대회에서 팀으로 출전해 최우수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같은 대회에서 개인적으로 작성한 리포트로도 소수만이 통과할 수 있는 본선에 합격했다. 서울대학교 학부생 중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것이다. 뛰어난 글쓰기 실력 덕분인지 그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 거의 매 학기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높은 학점을 유지했다. 또한 최근 2019학년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편입 전형에도 합격했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 실력과 뛰어난 공부 성과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가지 사이의 연결 고리에 바로 '철학하는 연습'이 있다. 그가 말하는 철학하는 연습이란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생각 단련법이다. 그는 일련의 철학하기 연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트이고 사색을 통해 언제든지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독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라

 

오석 마스터는 중학교 시절 비교적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칼의 노래'를 쓴 김훈 소설가나 '삼국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으로 유명한 이문열 소설가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 또한 일본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 나쓰메 소세키 등 일본의 문학이나 철학책을 즐겨 읽었다. "철학이나 문학 책을 읽다 보니 조금씩 사고가 트이는 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국어 시험지를 보는데 글이 너무 쉽게 느껴졌어요. 다소 어려운 책들을 읽는 연습을 하다 보니 학교 공부를 하면서 보는 책들은 크게 어려울 게 없었죠."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철학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철학 관련 서적들은 고도의 집중력과 독해력을 요구한다. 그 또한 처음 철학 책을 읽을 때는 뜻을 알기 어려운 단어들과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철학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꼼꼼히 독해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독해하는 실력이 또래 학생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항상 제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기준을 두고 제 한계를 매번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다 보면 그것보다 쉬운 수준의 책이나 글은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그 덕분에 고등학교 국어 영역 시험은 쉽게 준비할 수 있었어요."

 

지난 수능에서 국어 영역이 역대 최고 난이도로 출제되어 많은 학생이 혼란에 빠졌다.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고 수학에서도 교과 과정이 축소되면서 점점 국어 과목에서 난이도를 높여 변별력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해마다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많지 않은 고3 학생들이 아니라면 평소에 수준 높은 책읽기 연습을 통해 독해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공부 마스터들은 꾸준한 독서를 통해서 국어실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논술과 면접 시험에 대비했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 재학 중인 유도혁 마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고교 시절 최대한 꾸준하게 독서를 하려고 했습니다. 선생님들로부터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받고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공부로 독서가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로 수준 있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도서를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꾸준한 독서는 글쓰기 및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키고 사고의 폭을 넓혀 결과적으로 면접 및 논술 시험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

 

오석 마스터가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책을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보는 일이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잠시 덮고 내용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철학자 혹은 글의 작가와 끊임없이 대화한다 생각하고 제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 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제 삶에 적용해 저를 성찰하고 주변의 사람과 사회 문제에 적용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철학하기 연습을 통해 그는 언제 어디서든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한다. "저는 일상 속에서 책 없이도 공부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급식실에 줄을 서 있거나 아침 조회를 할 때 밥을 먹으면서도 공부할 수 있었어요. 공부했던 것들을 재료 삼아 머릿속에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저만의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 보는 겁니다. '어떤 내용이 있었지?', '왜 그렇지?', '그건 무슨 의미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해 보는 거죠. 그게 고전시가든 수학 개념이든 영어 문법이든 머릿속에서 그 내용의 바닥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생각해 봅니다."

 

이를 바탕으로 오석 마스터는 고3 때까지 7~8시간을 꾸준히 자면서 좋은 공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잠을 줄이면 저는 깊이 있게 생각을 밀고 나가기가 힘들어서 잠을 최대한 충분히 잤어요. 그러다 보니 깨어 있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되요. 일종의 압력이 그쪽으로 작용하게 되는 거죠." 철학하기 연습은 과목별로 성과를 끌어올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 수학 문제를 풀 때 문제를 보자마자 손부터 댑니다. 저도 철학 책을 읽기 전까지 20퍼센트 정도만 구상해 놓고 문제를 풀었어요. 그러고는 미지의 목적지를 찾아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식으로 수학 문제를 풀었죠. 그런데 철학 책을 읽고 나서는 60퍼센트 이상을 이미 구상해 놓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어요. 길을 찾고 나서 손을 대기 시작한 거죠. 예전의 저와 철학 책을 읽은 이후의 저는 사고력이 비교가 될 수 없었죠. 그 이후 수학 시험을 볼 때 시간이 부족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수학 과목 외에도 어떤 과목이든 문제를 풀고 나면 문제를 다시 회상하면서 직접 더 선택지를 만들어 보고 자체 테스트를 해 보거나 출제자의 관점으로 생각하며 공부했다. 어떤 참고서든 문제집이든 단순히 받아들이는 방식의 공부보다 한 스텝, 두 스텝을 더 나아간 것이다.

 

오석 마스터 외에도 모든 마스터는 책에 나온 내용을 주어진 대로 좇아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책에 나와 있지 않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 필요한 재료로 책의 내용을 활용하는 것이다. 주어진 대로 따라가기만 해서는 결코 만점 받는 공부를 할 수 없다.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사고 체계에 맞춰 내용을 다시 정렬해야 한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송지원 마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을 때 항상 의문을 품으려 노력하고 그것에 대해 책을 찾거나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교과서에서 무미건조하게 서술되어 있던 내용이 생생하게 다가오면서 암기식 공부가 아니라 이해식 공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책 한 권으로 사고력 기르는 법

 

오석 마스터는 철학 책뿐 아니라 다양한 문학 작품을 통해 철학하기 연습을 심화시켜 나갔다. "꼭 철학이라는 걸 좁은 의미로 파악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넓은 의미에서 김훈 소설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이나 어떤 책이든 모든 것에는 그 책을 쓴 사람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오석 마스터는 이러한 사유의 과정을 머릿속에만 가둬 놓는 데 그치지 않고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생각을 공유하며 사고를 심화시켜 나갔다. 고3이 되어서도 학교 친구들과 철학이나 인문학 책을 나눠 읽고 쉬는 시간마다 토론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 그는 고3 시절 9월 모의고사를 1주일 앞두고 철학 책에 빠져 1주일 동안 그 책만 두 번을 봤는데 9월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로 인해 단순히 공부를 통해 지식을 늘리는 것보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말한다.

 

앞서 공부를 잘하는 상위 0.1% 학생들의 공통점이 '메타 인지'에 있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메타의 뜻은 '~의 위에서', '~을 초월하여'이다. 즉, 메타 인지는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오석 마스터는 철학하기를 통해 메타 인지를 끌어올리는 연습을 꾸준히 해 온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자기 성찰의 과정이 공부에는 물론 고등학교 3학년 때 자기 소개서를 쓸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자기 소개서를 쓸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삶에 대한 해석이나 의미 부여가 중요합니다. 저는 철학하기를 통해 제 생각과 마음을 꾸준히 정돈하는 연습을 해 왔고, 그를 통해 우선 선발이라는 성과를 만들어 준 자기 소개서를 써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서울대학교에 다니며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정치사상 수업을 강의하는 교수님은 늘 이런 말을 했다. "공부는 생각을 연마하는 고도의 훈련 과정입니다. 깊이 있게 생각을 한다는 것은 세 가지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

 

오석 마스터는 바로 이 세 가지 방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단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습 내용을 누구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처리해 낼 수 있는 뛰어난 사고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내가 만난 공부 마스터들은 공통적으로 뛰어난 정보처리 능력과 몰입력을 보였다. 그 비결은 수업이나 책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자신만의 사고체계에 새롭게 구조화시키고, 그 과정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른 데 있었다.

 

성장은 편안하고 안락한 상태를 벗어나 한계라고 느껴지는 그 구간을 뛰어넘을 때만 이뤄진다. 내가 쉽게 읽는 수준, 쉽게 생각하는 수준, 그 한계의 끝에서 읽고 생각해야만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꼭 철학 책이 아니어도 좋다. 자신의 수준보다 한 단계만 높은 책을 한 권 정하고, 그 바닥까지 파보겠다는 생각으로 읽어 보자. 그러다 보면 단 한 권의 책을 통해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자신의 공부 내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 마스터 플랜_ 조승우

 

 

 

by 미스터신 2019. 6. 8. 10:09

서유리 마스터는 삼수 끝에 2016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그녀는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문제적 남자'에 출연했고 '정관장'의 CF모델로 활약하기도 했다. 전교 꼴찌의 명문대 합격 이야기를 그린 일본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시사회 게스트로 초대받기도 했다. 그 밖의 각종 방송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수능 만점은 결코 쉽게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성과를 거두기 위해 그녀는 몇 개의 '알'을 깨고 나와야만 했다. 삼수시절 그녀의 다이어리 맨 앞장에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새로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재수, 삼수에도 흔들리지 않은 이유

 

서유리 마스터는 성공적으로 삼수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결로 '주변에 관대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꼽았다. 삼수를 하면서 무엇이든 한 발 물러서서 관조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재수 시절 주변 환경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경험 때문이었다. 수능 100일여를 앞두고 부모님이 이혼 위기에 놓였던 적도 있었다. 수능 한 달 전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 분위기는 싸늘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심적 부담감이 들었고, 공부를 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게 했다. 다행히 부모님의 일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그로 인해 받은 심리적 영향으로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서유리 마스터는, 나의 목표에 온전히 집중하려면 주변에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덕분에 삼수를 하는 동안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감정에 쉽게 영향받지 않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재수, 삼수를 하다 보면 주변에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표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는 항상 뭐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한 발 물러서서 보는 안목을 갖게 되니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눈앞에 보이는 것에 급급했다면 점점 큰 목표와 전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험생 때나 재수할 때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에 급급해서 이렇게 해야지 하는 큰 플랜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세 번째로 하다 보니 전처럼 살아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삼수할 때는 정말 전략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림을 새롭게 그리다 보니 많은 것을 바꿔낼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불규칙적이고 무리한 생활 패턴도 규칙적이고 지속 가능한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계획표를 그때그때 과제나 급한 것들로 채웠다면 삼수를 하면서부터는 장기간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고 지켜 나갔다. 예를 들어 어떤 내용을 배우면 반드시 1주일 안에 두 번 이상 복습하도록 만들었다. "조금씩 힘을 빼고 공부를 하다 보니 여러 면에서 성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새벽 2~3시까지 공부를 하면 다음 날 더 크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조금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공부하기 싫을 때도 왜 내가 공부하기 싫은지를 되돌아 보고 필요하다면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었다. "공부하기 싫은 경우가 자주 찾아온다면 당연히 참아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종종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을 갚아 나가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서유리 마스터는 이렇게 무리한 힘을 빼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더불어 이전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되니 진짜 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모르는 걸 새롭게 알려고 하면 고통이나 귀찮음이 따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스스로 피드백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예전에는 기꺼이 그걸 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렇게 알을 깨고 나오니 '컴포트 존(편안하게 느껴지는 영역, 또는 쉽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진도를 나가는 것에 급급하기보다 지금 하는 것을 더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부터 차근차근 고민했다. "예전에 수학 같은 경우 여러 문제를 푸는 데 급급했다면 삼수할 때는 한 문제를 두 가지 이상의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한 장짜리 풀이법이라고 했을 때 반 장 정도로 푸는 법은 없는지까지. 하나하나에 생각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중요한 운동 경기를 앞두고 늘 코치들은 선수에게 힘을 빼고 가벼운 마음을 가지라고 말한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다. 서유리 마스터처럼 한 발 물러서서 관조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되면 또 하나의 알을 깨고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

 

오르지 않는 성적에 얽매이지 않는다

 

서유리 마스터는 삼수 때도 재수 때처럼 성적이 속도 있게 오르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 같았으면 불안에 떨면서 조급함을 느꼈겠지만 그때의 저는 과거의 저와 달랐어요. 이미 같은 공부라 해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소한 것에 영향받지 않고 제 스스로를 믿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그녀 스스로 달라지는 자신을 확인하면서 그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당장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 오히려 서유리 마스터는 하루하루가 쌓여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생각으로 오늘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미래의 알 수 없는 결과 대신 통제할 수 있는 오늘에 집중하고자 했다.

 

"학원 모의고사를 보고 나면 그 결과에 신경 쓰기보다 모의고사 자체에서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이번 시험을 이런 자세로 봤고 국어 시험을 볼 때 다리를 떠는 친구가 신경 쓰였는데, 다음번에 이런 상황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상황 자체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서유리 마스터가 이런 과정에서 배운 것 중의 하나를 더 소개하자면 모의고사를 치르고 피드백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수학 과목 시험을 볼 때 온전히 100분을 집중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 시험부터는 아예 100분을 30분 단위씩 끊어서 문제를 풀고 1~2분 정도 지금까지 풀었던 문제들을 되돌아본 뒤 다시 30분을 새로운 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식으로 효과적인 패턴을 만들어 나갔다. 피드백을 통해 이런 노하우가 쌓이다 보니 이미 수능 시험장에 들어갈 때 서유리 마스터에게는 전투에서 이길 수밖에 없는 다양한 '무기'가 있었던 셈이다.

 

결국 그녀의 '포텐'은 수능에서 빛을 발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만점을 받은 것이다. 그 비결로 삼수 시절 내내 당장의 성적에 목을 매기보다 조금 더 높은 시야에서 공부라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을 꼽는다.

 

"당장 성적이 오르지 않아도 공부를 하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를 훈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선택한 것에 대해 만족할 수 있을 만큼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후회만 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봐야 멀리 본다

 

서유리 마스터의 말처럼 서울대학교 마스터들 또한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을 멘탈과 마인드를 유지하는 중요한 원칙으로 활용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곽철민 마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시험 결과를 최대한 비관적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잘 쳤든 못 쳤든 무조건 틀린 것 혹은 불안했던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졌습니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같은 소설을 읽더라도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 느낀 점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넓은 시야는 무엇보다 자신과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키워 준다. 더불어 자신이 처한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안목을 갖도록 한다.

 

성적 상승을 거둔 마스터들의 경우 그들이 좋은 성과를 내기 전이나 그 이후 공부라는 객관적 대상이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공부를 접하는 스스로가 성장했고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어 다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자신의 시야가 넓어지면 그토록 어렵고 답답하게 느꼈던 공부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수능에 실패하고 재수를 앞둔 학생들에게 겨울 방학 동안 여행이나 아르바이트처럼 공부와 관련 없는 경험을 꼭 쌓아 보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더 넓은 시야와 관점을 갖고 새롭게 공부를 대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넓게 바라볼 수 있다면 성공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깝고 쉽게 느껴질 것이다.

 

공부 마스터 플랜_ 조승우

 

 

by 미스터신 2019. 6. 8. 10:01

장진우 마스터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최적의 공부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공부를 하고, 휴식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내가 어떤 환경에서 공부할 때 가장 학습효율이 높을까?'를 고민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의지가 무너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왜 쉽게 좌절하는지를 계속 생각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서 저는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자'라는 나름대로의 정답은 찾은 거죠."

 

장진우 마스터는 규칙적인 생활이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을 전혀 안 하게 되었죠. 규칙적이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반드시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줄고 마음이 해이해집니다." 생활 패턴에 관성을 유지하면 오히려 생활을 유지하는 데 굳이 의지력을 소모하지 않게 되어 그만큼 고민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이라는 무기가 있으니 하고 싶은 공부를 우선순위에 놓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큰 흐름은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진우 마스터의 규칙적인 생활을 공부 시간, 규칙적인 수면, 규치적인 휴식과 운동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가 말했듯 생활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최상의 컨디션과 최상의 마인드를 유지할 수 있는 생활 패턴을 규칙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의지에 의존하지 않고도 꾸준한 노력을 해 나갈 수 있다.

 

서울대학교 마스터들 또한 규칙적인 생활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 재학 중인 김정수 마스터는 자신의 공부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즉흥적이거나 자극적인 것에 자꾸 자신만의 규칙이 무너지면 공부를 지속하기가 힘듭니다. 무슨 규칙이든 일단 정하고 한 달만 제대로 하다 보면 근육에 관성이 붙어서 이게 힘든지도 모르고 쭉 가는 것 같습니다. 너무 가혹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왜 이렇게 힘든지, 더 쉬운 방법은 없을지에 대해 자꾸 합리화하면서 바꾸다 보면 그 방법을 제대로 검증하기조차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일단 꾸역꾸역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모든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잠자는 시간이나 일어나는 시간 지키기,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등 하루에 2~3가지 생활 습관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그것만큼은 규칙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보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주일에 한두 번, 의지에 불타는 날이 아니라 꾸준하게 자신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1주일 그 자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부 마스터 플랜_ 조승우

by 미스터신 2019. 5. 2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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