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복잡미묘한 문제들을 바둑판 위의 일로 대입해서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좀 어렵긴 해도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지 않을까.

 

바둑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대국을 벌이게 되면 먼저 머릿속으로 판을 그려야 하고 이기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바둑은 절대로 처음 생각했던 대로 풀리지 않는다. 상대방 역시 이기기 위해 똑같이 치밀하게 판을 그리고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둑판 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태클을 당한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해서 궁지에 몰리기도 하고, 살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 한 수 한 수마다 목숨이 걸린 문제가 발생하는 곳, 바로 바둑판 위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프로 기사들은 늘 구사일생의 삶을 살아가는 문제 해결의 고수들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세로 세상을 바라본다. 아주 어릴 때부터 수많은 난제들에 부딪치며 살아왔고, 결국에는 그들이 해결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스스로 풀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그 문제를 풀고야 만다. 그러니 세상사를 바둑판이라고 생각한다면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 문제는 반드시 해결된다. 해결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근성만 있으면 된다.

 

그 근성이란, 바로 생각이다.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성.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 그리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상식, 체계적인 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을 나는 '생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바둑적 사고법'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바둑 기사의 마인드야말로 이러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사가 바둑판과 같다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당장은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악화될 것처럼 보이지만, 의지를 갖고 바라본다면 해결책은 반드시 있다. 물론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일 수는 없다. 최상이 아니라면 최선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혹은 양보와 타협을 하거나 깨끗이 포기하고 다른 목표로 옮겨가는 것 역시 일종의 해결책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날벼락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그것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고 회피하고 외면한다.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이전에 먼저 지쳐버려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한다. 바둑으로 치자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데나 돌을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바둑 기사들은 절대로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초읽기에 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집요하게 다음 수를 고민한다. 설사 끝이 보이는 바둑이라 하더라도 돌을 던지기 전까지는 한 수 한 수 최선을 다 한다. 호수가 아니라면 묘수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악수나 과수라도, 치열하게 고민하여 스스로 선택한다.

 

바둑에는 뜻하는 목표가 있고, 논리가 있고, 게임의 법칙이 있다. 바둑 기사의 마인드는 일종의 지략가다. 전략과 전술을 세워 포석을 하고 끊임없이 판세를 읽으며 한 수 한 수 신중하게 돌을 놓는다.

 

바둑은 승부가 걸린 게임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해결하기 위해 갖은 수를 생각해내야 한다. 때로는 벼랑 끝으로 몰리기도 하고, 때로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때로는 스스로 저지른 실수로 큰 희생을 치러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목표는 바뀌지 않는다. 즉 이기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날마다 생존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자신만의 바둑을 두고 있다. 하루에 한 점씩 바둑을 두었다면 지금 나의 바둑은 어디까지 진행된 것일까? 아직 포석 단계일까? 혹은 이미 절반쯤 진행되었을까? 벌써 마지막 승부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에 있든 스스로 돌을 던지지 않는 한, 혹은 판을 모두 채우지 않는 한, 인생이라는 바둑은 끝나지 않는다. 현재 어떤 위기에 있더라도 아직 살아날 희망이 있다. 바둑이 내게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집중하여 생각하면 반드시 답이 보인다. 심지어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조차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의외의 답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바둑에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실수도 기회도 모두 내가 만든다. 그만큼 승리는 짜릿하고 패배는 아프다. 하지만 그만큼 더 성장한다.

 

삶은 그 자체로 시련이다. 오로지 생각하는 힘만이 그 시련을 의미있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그 과정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조훈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4. 27. 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