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하든 그 분야에서 성공하는 길은 농사와도 같다.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던가. 허리를 구부려 밭을 갈고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뙤약볕에서 김을 매고 잊지 않고 제때 물을 줘야 한다. 무엇보다 농사꾼이라면 때를 앞서 결실을 따려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농사는 당장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활동이다. 개인적으로 과수원에서 포도 농사를 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가만히 보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비가 오나 눈이오나 비료 주고 가지치기를 하고 일일이 봉투 씌우고 약 뿌리고 한다. 옆에서 너무 고생하는 걸 봐서 그런지 가을철에 포도 한 박스를 보내올 때면 공짜로 먹기 황송할 때가 많다.

 

투자도 농사와 똑같다. 씨를 뿌리고, 잡초를 관리하며, 수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듯 투자도 장기적인 계획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고도 성과가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잡초를 제거하고 비료를 주는 등 가을의 수확을 기대하며 놀리는 모든 손길이 자기 계발을 하는 과정이다.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병충해를 입거나 잡초에 짓눌리는 것처럼 자기 계발 없이는 달콤하고 튼실한 성공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자기 계발은 농사에서 화학비료를 쓰듯 나무가 처음 싹수가 있다고 해서 모두 좋은 묘목이 되지 않는 것처럼, 못생긴 나무가 자라 큰 고목이 되는 이치와 같다. 자기 계발은 지적인 것일 수도, 신체를 단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늘날 도시 문화는 무엇이든 즉각적인 결과를 산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만족도, 성장도 당장 결론이 나야 한다. 3분 내 끝내는 게임과 동영상, 쇼츠에 익숙해지다 보니 상영 시간이 2시간 넘어가는 영화조차 진득하게 앉아서 시청할 인내심이 없다. 이와 관련해 스탠퍼드대학 애나 렘키 박사의 책 <도파미네이션>을 읽은 적이 있다. 현대인들이 도파민 중독으로 뇌를 길들여서라는 것이다.

 

생활 전반의 일이나 놀이에서 단기간 성과든 실패든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현대인은 불안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인 관계, 어학 공부, 지적인 자기 계발 등 집중해서 시간을 꾸준히 투여해야 하는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지적인 자기 계발 중 독서는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하다. 독서는 중요한 부의 거울이다. 난 바쁜 와중에도 한 달에 최소한 4권 정도는 읽으려고 한다. 틈나는 대로 국내외에서 나오는 주요 연구 자료를 찾아 읽는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와 경제, 경영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오랜 친구다. 이 자료를 통해 뉴욕, 런던, 상하이에 가지 않고도 세계 경제나 금융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IMF 등을 통해 깊이 있는 자료를 읽는 것도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주가 전망이 비교적 정확했던 것도 이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투자의 핵심은 기다림의 미학을 발휘하는 것이고, 독서는 그 기다림의 동반자다. (중략)

 

모든 게 그렇겠지만 투자는 농사를 닮았다. 농사에 완벽이 없듯 나 역시 늘 경제 상황을 들여다보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공부에는 끝이 없다. 지금쯤이면 이골이 날 법도 한데 어제의 지식으로 오늘의 경제 상황을 분석하는 놀부가 되지 않으려고 오늘도 연구실의 불을 밤늦도록 밝힌다.

 

난 '누구나 부자 되는 00가지 방법'이나 '나는 00으로 수십 억을 벌었다'와 같이 유튜브나 서점 가판대를 점령한 현란한 수사에 동요하지 않는다. 어제 내가 돈을 벌었다고 돈의 모든 이치를 깨달았다는 만용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그냥 어제처럼 오늘도 열심히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부지런히 가꿀 뿐이다. 나머지는 땅이 알아서 열매로 돌려준다.

 

절기는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오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농사의 로드맵이다. 거시경제에서 말하는 여러 이론과 사이클 역시 이런 절기와 같다. 모든 것에는 사이클이 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3장 1~2절) 라고 했다.

 

홍수나 가뭄을 예상해 우물을 파고 둑을 막아 대비를 하듯 투자 역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달걀을 바구니에 담듯 안전하게 배분해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땀으로 거둔 열매는 저마다 차익 실현, 목표한 금액, 성공으로 돌아올 것이다. 제때 거두지 않으면 썩어버린다. 때를 대비하라. 어떻게 전망하고 준비할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밭에 나가며 땅에서 투자의 지혜를 구한다.

 

부의 거울_ 김영익 교수

by 미스터신 2025. 4. 27. 08:24

머리가 좋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정신의학적으로는 일단 인지기능이 좋아야 한다. 인지기능은 기억력, 계산력, 지남력, 독해력, 추상적 사고능력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또한 시각 공간 협업 기능, 정보처리 속도 등도 포함되며 지식, 상식 등과도 관련이 높다. 그러나 단지 이러한 역량을 평가하는 소위 아이큐가 높다고 해서 머리가 좋다고는 하지 않는다. 단지 인지기능이 좋다고만 할 뿐이다.

 

심리학적으로 머리가 좋다고 하는 데는 더 광범위한 능력이 포함된다. 여기에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심리지능도 포함된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절제하고 표현하는 역량,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해서 상대방에게 전달한 다음 그 반응에 따라서 자기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역량, 대인관계에서 시의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는 역량, 즉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때는 주장하고 순응할 때는 순응하고 잘 어울릴 때는 어울리고 혼자서도 건강하게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역량 또한 머리가 좋은 것과 연관이 있다.

 

상담하다 보면 인지기능은 아주 뛰어난데 대인관계 역량이나 감정 조절 능력은 높지 않은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들은 자기가 지금 하는 행동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고 느껴지는지도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심리지능이 발달하지 않은 탓이다. 그들은 마음을 먹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사회적 성취를 이룬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진척이 없다. 설령 있다 해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고는 한다.

 

간혹 성공한 리더들 중에도 그러한 심리지능이 낮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본다. 따라서 머리가 좋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지적인 능력뿐 아니라 삶에서 경험하는 여러 스트레스와 위기를 잘 극복해 내는 능력을 갖춘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신의학적으로 머리가 좋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소들을 다  살펴봐야 한다. 그렇다면 오행을 통해 그러한 역량을 가진 사람을 가려낼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그동안 여러 기업이나 조직의 리더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의 사주를 분석한 결과 앞서 기술한 인지기능과 심리지능을 모두 갖춘 사람들의 오행학적 특성을 알아볼 수 있었다. 우선 오행의 균형과 조화가 갖추어진 사주가 있다. 화, 수, 목, 금, 토의 오행이 골고루 갖추어진 사주는 어떻게 봐도 좋은 사주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그 오행의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는 사주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인지기능과 심리지능의 역량을 고루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인수와 식상이 잘 발달한 경우에도 머리가 좋은 사주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인수란 한마디로 나의 뿌리가 되는 오행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수가 드러나지 않는 사주는 그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므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본다. 또한 공자의 말씀대로 아는 것은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아는 것을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는 역량을 상징하는 식상이 잘 발달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을 상징하는 오행이 금이면 토가 인수이고, 식상은 수가 된다. 자신을 상징하는 오행이 수라면 목이 식상이고 금의 오행이 인수에 해당한다. 그러한 오행의 균형과 조화가 잘 발달되어 있는 경우다. 신금이 많은 사주도 머리가 좋을 확률이 높다.(중략)

 

그러나 내 사주가 이런 구조를 갖지 않았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앞서 기술했듯이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소우주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소우주 안에 들어 있는 보물을 잘 발견해서 키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경제적 역량이 우수한 사주와 그렇지 못한 사주

 

요즘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적성을 백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현명하게 다루는 경제적 역량도 필요하다. 상담 중에 아이들에게 인생의 꿈을 물어보면 대부분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바라는 돈의 단위가 보통 백억, 천억 단위다. 그러면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안 하거나 단순히 일확천금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고등학교 교사가 상담을 받으러 왔었는데, 요즘 학생들이 수업 중에도 '주식으로 성공해서 빨리 은퇴하자'는 내용의 책을 몰래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러니 자녀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의 경제적 역량을 잘 살펴보고 어릴 때부터 적절하게 교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는 것과 재물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역량은 다른 이야기다. 따라서 자녀의 사주를 살펴봐서 재성이 드러나지 않거나 약한 경우에는 꼭 경제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은 경우, 섣부르게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가 좋지 못한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집에 돈이 많아도 자녀가 그것을 나중까지 지켜나가는 것 역시 어렵다. 때로는 재물로 인해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더욱 자녀의 경제적 역량을 부모가 잘 알아야 한다.

 

경제적 역량이 우수한 사주는 식상과 재성의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일간의 힘이 튼튼하다. 그래야 재물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한 재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되는 식상과 그 재물로 명예를 가져오는 관도 좋아야 한다. 그와 같은 경우는 정신의학적 분석에서도 책임감이 강하고 심리적 성숙도도 우수하고 유연한 적응력을 지닌 경우가 많다. 목표 의식도 매우 강해서 자신의 성취를 위해 매진한다. 그렇지 않고 재물을 뜻하는 글자는 많은데 일간의 힘이 약한 경우를 재다신약(財多身弱)사주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재물로 인해 삶의 흐름이 망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기 역량에 비해 너무 많은 재물을 탐하기 때문이다. 혹은 돈에 인색하거나 지나치게 실리적인 면만 추구하거나 한다. 그런 경우 정신의학적 분석에서도 현실적 가치를 추구하는 면이 매우 높고 인간관계에서는 경쟁 성향과 자기중심 성향이 높다.

 

또한 사주에 재물을 뜻하는 오행이 드러나지 않거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져 있지 않으면 돈에 대한 집착만 강하고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적 과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주에 비겁이 많은데 운에서 재물을 상징하는 오행이 들어오는 경우, 그 운에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높다. 재물을 두고 여러 사람이 싸우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의 경제적 역량을 꼭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면에 명리학적 분석이 큰 도움이 된다.(중략)

 

두 번째 특징은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도 없이 내 아이가 어떤 기질 특성을 가졌는지, 잠재력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진다는 점이다. 많은 부모가 내 자녀가 어떤 특성을 갖고 태어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면서 그들에게 부모의 가치관이나 희망을 강요한다. 그러나 아이는 절대 말랑말랑한 진흙처럼 부모나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성장해 주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더욱 자녀를 나만의 잣대나 기준으로 살펴보는 태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그 대신 아이의 특성을 빨리 파악해서 올바른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명리학은 이 부분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식상이 강한 특성이면 자유롭게 자기 끼를 발휘하도록 도와주고, 인수가 강하면 공부를 도와주되 한편으로는 표현력을 발휘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또한 지나치게 비겁이 강한 아이는 그 경쟁심을 누그러뜨리도록 도와주고, 관이 많은 아이는 심하게 자기비판을 하거나 불필요한 힘을 쓰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불필요하게 충이 많은 친구는 그 충동성을 다스릴 방법을 찾도록 해주고, 합이 많은 친구는 우유부단한 특성으로 결정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것을 보완해 줄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중략)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사람을 이루는 것은 선천적 본성인가, 아니면 후천적 양육의 결과인가?"라는 질문이다. 아마도 '반반의 조화'가 가장 적절한 대답일 것이다. 가로와 세로가 만나서 점이 이루어지듯이 한 사람의 삶의 흐름을 구성하는 요소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부모 역할에 전력을 다해도 나는 결국 아이 인생에 50%의 영향력밖에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라고 해서 자녀 문제에 지나치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특히 워킹맘의 경우 그러한 자책감은 진정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경험만 봐도 그렇다. 아이에게 엄마 손길이 필요한 시기에 난 늘 일에 파묻혀 있어야만 했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아이가 그것을 두고 원망할 때는 더욱 힘들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부모가 아이에게 믿음과 희망만 지니고 있으면 아이는 결국은 자기 역량을 발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도 성장한 후에는 엄마의 입장을 이해했다. 자신이 부모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았음을 이제는 안다고 내게 털어놓은 것이다.

 

그러니 부모가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믿어주고,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부모가 아이의 적성과 진로를 찾아주는 일에 성공하려면 아이 앞날에 지나치게 자기 발자국을 남기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정신과 의사의 명리육아_ 양창순

by 미스터신 2025. 3. 22. 18:44

우리나라 학생 대부분은 대학 입학을 목표로 공부한다. 그런데 그 목표는 대개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 아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이거나, 자신의 성적에 맞춘 대학이다. 왜냐하면 학생은 자신이 어떤 대학에 가면 좋은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학에 가야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그 대학을 조사하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학생들의 경우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 그러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한 대학이 아니다 보니 아무리 이름난 대학이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자퇴를 하는 학생들이 생긴다.

 

자신을 진정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대학을 선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 이후엔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에 가 보고, 그 대학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어떤 부모님들은 이러한 일을 할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더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입시 철이 다가오면 자신이 대신 대학 입시 설명회를 다니며 자녀의 공부 시간을 확보한다. 하지만 이는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빼앗는 일일 뿐 아니라, 만족을 주는 대학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 일이기도 하다.

 

만족감을 주는 대학이란 누구나가 다 좋다고 말하는 대학도 아니며, 점수에 맞춰 가는 대학도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관심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관심사를 최대한 잘 배울 수 있는 대학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채용할 때 진짜 대학 간판을 볼까?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정도는 나와야 해."

 

아직 세상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은 이러한 말에 쉽게 현혹된다. 그런데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명문대를 나와야만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것일까?

 

오늘날 한국의 어떤 기업도 서울대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뽑지 않는다. 명문대 출신이라고 무조건 채용하는 현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그들만의 인사 시스템을 구축해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찾는다. 그래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해 줄 자료도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하버드대학의 하위 30퍼센트 학생들보다 지방 대학의 상위 20퍼센트 학생들이 훨씬 더 똑똑하고, 취업한 후에도 더 많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데이터를 통해 알아냈다. 즉, 꼭 명문대가 아니더라도 어느 대학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학과에 만족하고 몰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채용을 할 때 학교 이름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학 이름이 아닌 '학과'

 

영수 학생은 심리학과를 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실제로 명문대는 아니더라도 수도권에 위치한 한 대학의 심리학과에 들어갈 정도의 성적은 되었다. 그런데 주변 어른들은 학과보다는 대학이 중요하다며 영수 학생에게 무조건 서울대학교를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영수 학생이 심리학과를 포기한다고 해서 서울대학교를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면 영수 학생이 생각한 학교보다 한 단계 높은 대학은 갈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하면 영수 학생이 가고 싶은 심리학과는 포기해야 했다. 한 단계 높은 대학의 심리학과는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영수 학생은 자신이 원하던 심리학과가 아닌, 한 단계 높은 대학의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영수 학생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영수 학생의 선택에는 자신의 성향보다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의 기대가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영수 학생의 부모님은 아들이 좀 더 높은 단계의 대학에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아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때 부모님이 생각하는 좀 더 나은 삶이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다. 아들의 적성이나 취향은 좀 더 나은 삶의 범주에 있지 않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볼 때, 이러한 선택은 결국 영수 학생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원치 않는 공부를 한다는 건 입시 준비를 해야만 했던 고등학교 과정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고, 그에 대한 결과로 좋은 학점을 받기도 힘들다. 학점이 좋지 않다면, 과연 부모님이 바라는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 단정적인 결론은 내리지 않을 것이지만, 각자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_ 김경일 교수

by 미스터신 2024. 7. 21. 0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