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교육의 힘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삶을 지배하는 수많은 가치와 관계들이 있겠지만, 교육만큼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것이 있을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단지 학교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육은 물론 스스로 만들어가는 평생교육 및 자기교육의 프로그램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인들을 통해, 친구들을 통해, 심지어 스쳐 가는 사람들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배우는 것들이 모두 교육의 일부다.

 

<배움의 발견>의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는 17세가 되도록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다. 심지어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념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딸이 문명화된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딸은 아버지가 만들어낸 문명 바깥의 세계를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향해 힘차게 노 저어 간다. 언제 세상이 멸망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모르몬교 근본주의자 아버지의 세계관이 어린 타라의 인생을 지배했지만, 타라는 독학으로 명문대에 입학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배움의 길을 끝없이 정진한다.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은밀한 학대,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병이 나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 모두가 폭력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게 된 타라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딸로 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타라의 순수한 영혼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문장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를 감동시킨다. "내가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친 30년 동안 읽어본 가장 훌륭한 에세이 중 하나입니다." 타라는 늘 모욕당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칭찬을 들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모욕당할 준비를 하고 살아갈 정도로 자존감이 약했던 타라는 자신에게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빛나는 재능이 있음을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학생은 가짜 사금파리가 아니에요. 순금이에요."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타인'과의 만남은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잠자고 있던 진짜 자아를 눈뜨게 한다. 타라는 교육을 통해 성공의 기회를 잡으려 한 것이 아니라, '진짜 나 자신이 되는 길'을 찾은 것이다. 우리는 혼자서는 자신의 재능이나 숨은 열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내 안에 반짝이는 숨은 잠재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힘이다.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심리 수업 365_ 정여울

by 미스터신 2021. 9. 26. 20:49

있잖아요. 새로운 공부를 하면 참 머릿속에 안 들어오죠? 제가 요새 과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정말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어요. 기본적으로 고등학교 때도 그쪽은 공부를 안 했거든요. 저는 문과였으니까. 그래도 왜 그렇게 이과 공부를 싫어했나 모르겠어요. 물리, 수학, 이런 공부 정말 싫어했거든요? 특히 수학 공부 정말 싫어했는데, 내가 왜 그렇게 수학을 싫어했을까 생각을 해봤더니 선천적으로 못했던 건 아니었어요. 다만, 저는 그쪽 공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인 거예요. 근데 문과 쪽 공부는 아마 평균보다 빨리 이해했던 거 같아요. 글을 읽거나 시를 읽을 때 뜻을 이해하고 토론하는 건 머리가 잘 돌아갔거든요.

 

반면에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건 이해하는 데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요즘 공부를 해보니까 오랫동안 책을 읽고 애를 쓰다 보면 결국은 이해를 하더라는 거죠.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요. 근데 고등학교 때 그 공부를 포기한 이유는 내가 이해하기 전에 너무 빨리 이해하라고 재촉하거나 아니면 이해해야 하는 시한을 정해놓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번 시간에 배운 거는 다음 시간까지 이해해야 하고 중간고사 때까지는 완벽히 익혀서 시험 본다." 그러고 시험을 본 거 아니에요?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난 이해를 못했으니까 시험 점수가 잘 나올 리가 없고 그렇게 시험에 몇 번 실패하고 야단맞고 이러다 보니까 아, 이건 나랑 맞지 않는가 보다 하고 포기했던 거죠. 그게 학교 다닐 때 공부였던 것 같아요.

 

이해할 수 있는 시한은 사람마다 다 다른데, 그런 시한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 이게 학교 공부 아닐까요? 그럼, 학교밖 공부는 어떨까요? 요즘에 제가 물리학, 수학 공부 왜 재밌게 하는 줄 아세요? 아무도 시험 안 봐요. 아무도 평가 안 해요. 그리고 언제까지 이해하지 못하면 너 바보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편하더라고요. 이해될 때까지 읽고 물어보고 시험은 나 스스로 완벽히 이해했을 때 이미 100점 맞은 거 아니겠어요?

 

혹시 학교 다닐 때 공부에 굉장히 짓눌리셨던 분들,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던 분들, 그리고 좌절하셨던 분들은요, 나이 들고 뭐가 됐건 다시 시작해보세요. 시험 보지 않는 공부, 기한을 정해놓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공부를 하게 되면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구나를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나이 들어 하는 공부가 참 즐거운 것 같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저 어릴 때 공부 못했어요, 라고 말하지 마세요. 우리가 했던 건 암기였거든요. 공부가 아니었다고요. 다 외울 때까지 하는 게 암기라면, 깨달을 때까지 하는 게 공부예요. 이제 제대로 된 공부를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깨달음을 향한 나를 위한 공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최고의 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여러분도 나만의 진짜 공부를 시작해보세요.

 

김미경의 인생미답

by 미스터신 2021. 5. 7. 21:10

있잖아요, 사람이 살면서 가져야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의 힘이 있죠. 사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생겼거나 큰일이 닥쳤을 때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판단하고, 판단만큼 책임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것만이 아니죠. 사실 우리의 매일 매일은 크고 작은 의사 결정, 판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생각의 힘 중에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가 오늘 여러분과 얘기해보고 싶고 또 생각해보고 싶은 생각의 힘이 바로 '내관력(內觀力)' 이라는 겁니다.

 

사실 내관력이라는 것은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하거든요. 옛날에 한의를 하는 분들이 그랬다고 하죠. 맥을 짚을 때 어떻게 짚나요? 진맥을 하면서 몸을 들여다보는 거죠. 간이 상했는지 폐가 상했는지, 폐 때문에 이런 문제가 오는 거다, 위 때문에 얼굴에 문제가 생겼다, 이런 식으로 모든 걸 통합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힘. 아주 작은 단서를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바로 내관력이라고 하거든요.

 

내관력은 어떻게 길러질까요? 우리가 무엇인가 판단할 때 급히 판단하는 것도 있지만, 깊게 생각해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본질까지 내려가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내관력을 기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한 가지를 깊게 공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를 깊게 들여다보건, 수학을 깊게 들여다보건, 기타를 치면서 악기를 깊게 들여다보건, 그림을 보건, 내관력은 누구나 공부하는 실력, 점수와 상관없이 우리가 일생을 통해서 훈련할 수 있거든요. 여러분도 그런 걸 하나 가지시면 생각의 깊이가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얼마 전부터 사주 명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내관력을 키우기에 너무나 좋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험 보는 거 아니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누가 3개월에 한 번씩 시험을 친다고 하면 시험에 나올 만한 거, 100점 맞을 만한 공부만 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내관력이 안 생기잖아요.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시험과 관계없이 꾸준히 그냥 내 생활처럼 내 삶처럼 공부를 한다면 우리의 내관력이 커지지 않겠어요? 여러분도 내관력이 커질 수 있는 공부 하나, 그런 취미 하나 택해보시면 어떨까요?

 

김미경의 인생미답

by 미스터신 2021. 4. 19. 21:02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

 

1. 지식보다 역량이 더 중요하다

2. 학생 주도의 수업이 효과적이다

3. 21세기는 새로운 교육을 요구한다

4. 인터넷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5. 전이 가능한 역량을 가르쳐야 한다

6. 프로젝트와 체험 활동이 최고의 학습법이다

7.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의식화 교육이다

 

역자 후기 | 지식 없으면 창의성도 없다

 

10여 년 전에 광주 인근 고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 몇 분과 회식을 하면서 학생지도의 어려움에 대하여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공부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수가 이전에 비해 점차 많아지고, 학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점을 걱정했다. 특히, 학부모들조차 자녀가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하거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함께 우려했다.

 

학생들은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고, 선생님들은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을 만나는데 선생님들이 가르치려고 해도 학생들이 배우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를 하려 해도 기초학력이 부족하여 이해할 수 없어서 결국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라는 분석, 입학정원에 비해 대입 응시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부를 못해도 대학에 갈 수 있으니 편하게 학교 다니려 한다는 분석 등이 나왔다. 필자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론의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재의 학교교육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신문과 방송에 자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21세기는 지식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지식의 가치가 중요한 시기다. 21세기 학교는 학생들이 지식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평생 동안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도 길러 주어야 한다. 그런데 기대와는 정반대로 학교 지식교육은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조차 경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식교육을 경시한 결과는 심각한 학력 저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지식조차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역자는 중학교 때 공부하지 않아,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기초학력이 확보되지 않아 공부를 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너무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공부의 재미를 느끼고 싶어도, 교과서를 읽고 체계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고 싶어도 뜻을 모르는 말이나 단어가 계속 나오면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생님께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잠을 잘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기초부터 가르친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들은 모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어느 정도 노력해 보다가 쉽게 포기하게 된다. (중략)

 

오츠 교수는 핀란드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낸 국가라고 해서 모방하려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철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핀란드 교육의 진면목을 분석했다. 그는 핀란드의 평소 학교생활에서 시험과 숙제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15세에 대학진학계열과 직업계열로의 진로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시험을 치루는데, 이것이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능력별 반편성이 없는 대신에 결석한 학생들이 결석 기간 동안 배우지 못한 내용을 철저하게 공부시켜 주는 보충학습 시스템이 이를 보완해 주고 있으며, 가정에서 독서와 토론을 강조하는 문화도 효과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핀란드 교실 수업을 참관해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교사 주도의 전통적인 수업이 주로 이뤄지며, 학생 중심의 토론 수업이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또한 루터교의 영향으로 1686년부터 법적 결혼 조건으로 일정 수준의 문해력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도 다른 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닉 깁 차관은 영국 보수 성향의 연구기관인 정책연구센터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가브리엘 살그렌의 논문 '핀란드 교훈의 실상'에 나온 자료를 인용하여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이 역량중심에서 지식중심으로 바꿔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그렌은 많은 국가들이 핀란드 교육성공을 모델로 여겨 역량 중심 교육개혁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핀란드의 교육성공은 최근의 교육개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더욱이 역량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한 결과 교육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분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핀란드가 교육성공 국가로 인정받은 계기가 된 2000년 제1차 PISA와 2003년 PISA 결과는 이를 만든 그 이전의 전통적인 교사 주도 교육 덕택이며, 마침 그때 역량 중심의 교육개혁이 이뤄진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2015년 PISA에서 읽기 4위, 수학 13위, 과학 5위까지 추락한 것은 교사주도의 수업 등 전통적인 교육문화에서 학생 주도의 수업 방식으로 바뀐 결과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교육이 역량 중심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영국과 핀란드의 교육과정 개정 사례를 드는 경우가 많은데, 살그렌의 분석을 참고하여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중략)

 

하브루타, 질문이 있는 교실 등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수업방법을 교사들이 함께 연구하고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또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교사들은 다양한 수업상황에 따라 다양한 교수법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 참여형 수업 강조가 상대적으로 교사의 수업 지도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하브루타나 질문이 있는 수업의 배경 이론인 학습 피라미드 이론은 강의를 들으면 5% 기억할 수 있고, 읽으면 10%만 기억할 수 있는 반면, 질문하면서 가르치면 90%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의 설명식 수업이 매우 비효과적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학습 피라미드 이론은 에드가 데일의 '경험의 원추'를 오용한 것으로 10% 단위로 실험 결과가 제시된 근거가 없을뿐더러 과학적인 실험 연구에서 나올 수 없는 통계라고 한다. 또한 학문적 권위를 의미하는 미국행동과학연구소 또는 국립교육연구소로 번역되고 있는 연구수행 기관명은 실제로는 국책연구기관이 아니며, 성인들의 의사소통 훈련을 전문으로 하는 사설단체이다. (중략)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역량은 중요하지만 지식이 없으면 역량을 개발할 수 없다고 본다. 다양한 교수법중에서 교사가 설명해 주면서 질문과 확인 그리고 환류해 주는 직접교수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찾고자 하는 영역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정확한 정보를 찾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학생들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교사로부터 먼저 배우고 있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영국의 교육상황을 다룬 것이다. 시기적으로 1999년부터 2012년까지의 교육상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교육과정 내용 측면에서 지식보다는 역량이 강조되고, 방법 측면에서 교사가 수업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터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 그 결과 학력 저하 등의 문제들이 나타났다. 2013년부터는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새로운 교육상황이 전개되었다. 이전과 정반대로 역량보다 지식이 강조되고, 수업의 주도권이 학생으로부터 교사에게 환원되었다. 그 결과 학력 향상 효과,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자신감 제고 등 바람직한 교육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영국의 교육과정을 상당 부분 참고하고 있다. 우리의 2009 개정 및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지식보다 핵심역량을 강조하는 것과 교사 주도의 수업보다 학생 주도의 활동 중심 수업을 강조하는 것은 영국의 1999년부터 2012년까지의 교육과정이 강조한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과거 영국의 교육 문제들을 우리도 겪고 있는 이유가 바로 영국의 교육과정을 모방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권장하는 교육과정 목표와 교수법을 실제 수업에 적용하기 힘들어 하고, 기초*기본 학력 미달 학생들의 증가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점차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증거도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의 교육현상에 대해 의문을 드러내고, 함께 혁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_ 데이지 크리스토둘루 (김승호 옮김)

by 미스터신 2021. 3. 20. 13:55

호기심을 키운다

 

햇살 풍토의 따스함과 격려는 아이의 호기심을 싹트게 하고, 호기심은 흥미로, 흥미는 독서에 대한 열정으로 자라게 한다.

 

이와 같이 햇살의 따스함도 사과나무가 잎눈에서 싹을 틔우게 하고 잎, 줄기, 뿌리를 성장시켜서 이 성장이 더 큰 성장을 촉진한다. 아주 매섭게 추운 날에도 햇빛은 세포들이 수분과 양분을 실어나를 수 있도록 사과나무 표면을 따스하게 한다. 아이의 긍정적인 세계관과 롤모델에게서 받은 큰 꿈은 자신의 관점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호기심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는 세상이 안전하고 신나는 곳이 되면 아이가 탐험하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고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가의 부모와 교사는 아이가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미지의 것을 탐험하도록 독려했다. 또 아이의 질문에 정답을 주는 대신에, 여러 가지 답을 함께 찾으면서 아이가 답을 찾는 방법을 터득하게 했고, 후속 질문들을 유도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험위주 풍토는 아이들의 질문을 거부하고 어른들이 정한 질문에 대한 정답만 찾도록 만든다. 아이들은 그 정답을 암기하고 기억하는 훈련을 받는다. 그래서 예기치 않았던 질문, 독특한 질문, 엉뚱한 질문은 비웃음거리가 되거나 학습진도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점점 질문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호기심이 충족되면 더 많은 호기심과 흥미가 생긴다. 독서는 혁신가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혁신가의 부모가 가장 좋아하는 여가활동이었다. 혁신가의 가정에서는 부모가 독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다음에도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아이에게 책에서 읽은 흥미로운 이야기들, 오락거리, 상상, 환상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또 아이가 배운 것이나 읽은 것을 일상생활과 관련을 지을 수 있는 활동이나 방법을 제공했고, 그것을 심층적으로 함께 탐구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아이가 어릴 때에도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서의 배울 기회에 대해서 아이에게 설명해주고, 아이의 미래 교육 계획에 대해서 아이와 함께 상의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나 학위를 따는 것을 장려하기보다는 배움 자체의 중요성과 배움의 기쁨과 열정을 아이에게 더 강조했다. 학교를 오래 다니지 않았던 혁신가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독서를 통해서 자기 전문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집에서 아버지에게 대부분의 교육을 받았고, 토머스 에디슨은 학교를 석 달만 다닌 뒤에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1년이 좀 안 되게 학교를 다녔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열 살때까지만 학교에 다녔다.

 

학교를 다닌 기간에 관계없이 모든 혁신가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독서와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열망을 추구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하거나 원하는 지식과 기술을 얻기 위해서 끊임없이 책으로 혼자 배웠다. 또 강의, 연수, 학회를 통하거나 전문가를 만나서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자기 관심분야에 대한 혁신가의 어린 시절부터의 흥미는 한결같은 호기심, 부단한 독서와 배움을 통해 전문성을 계발하면서 평생 지속되는 창의적 열망으로 이어졌다.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도 혁신가는 초심자와 같은 호기심을 끝까지 잃지 않아서, 그 길고 험난한 창의과정을 흥미진진하고 신나게 만들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호기심이 충만했을 뿐이다"고 했다. (중략)

 

공부를 즐겁게 만든다

 

햇살 풍토는 아이가 공부할 때 재미와 즐거움을 맛보게 도와준다.

 

이와 같이 따스한 햇살도 꽃가루를 달콤하게 만들어서 벌, 나비, 새, 동물들이 사과나무의 꽃가루를 옮기는 일을 마음껏 즐기게 한다. 혁신가들의 부모와 교사는 아이가 어떤 주제나 과목을 재미있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줬다. 그들은 아이가 공부를 해야 되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로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과정에서 배움과 독서에 대한 열정이 자라나도록 했다. 특히, 아이가 어떤 주제나 과목을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소개해서 아이가 단박에 빠져들게 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이 다섯 살때 헤르만이 나침반을 보여준 것,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예닐곱 살 때 랭이 탄소마이크로폰을 신나고 재미있게 소개해준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다른 동양의 부모들이나 교육자들처럼 나 역시 한국에서 내 아이들이 피아노나 미술을 처음 배울 때, 나는 아이들이 빨리 빨리 진도 나가는 데만 급급했지 피아노나 미술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어서 스스로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창의과정의 시작이기 때문에, 혁신가들의 부모와 교사는 "창의적인 표현은 완벽하지 않은 것으로 시작한다" 고 아이에게 가르쳤다. 그들은 또한 '공부하기-놀기' 이분법을 거부해서 아이가 공부할 때는 노는 것처럼 재미있게 하고, 또 놀 때는 공부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열심히 하게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험위주 풍토는 재미와는 거리가 멀고, 쉬는 시간을 없애 아이들의 틀밖 상상력을 억누른다.

 

혁신가들의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이 장기 목표에 도달하도록 공부할 때나 다른 것을 배울 때, 그것을 놀이처럼 즐기도록 격려한다. 어린 혁신가는 독서와 배움에 대한 열정때문에 공부하는 것이 힘들거나 지루하기는커녕 재미를 느끼며 호기심을 채우며 자란다.

 

미래의 교육_ 김경희 교수

by 미스터신 2021. 3. 6. 15:54

어떤 학생이 미래에 창의적인 인재가 될지, 어떤 분야에서 그러한 역량을 발휘하게 될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가상의 신화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존의 연구들은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 지식을 많이 습득하고, 그 지식을 활용하여 호기심을 해결해 보는 경험을 많이 쌓을 때 미래에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용어로 표현한다면 지식의 양과 질, 지식을 습득하는 기술,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 호기심과 의지 같은 자질들이 창의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식의 양을 늘리고 지식의 질을 높이며,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해 보는 기술을 익히고, 호기심 같은 개인적 자질을 키울 수 있는 학교 교육이 이루어져야 창의성이 길러진다.

 

어떤 학생이 무게 100kg의 역기를 들려고 한다. 그런데 그 학생은 지금 50kg밖에 들지 못한다. 자신의 현재 역량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100kg의 역기를 들고자 하는 마음이 곧 호기심과 의지라는 잠재력이다. 그런데 호기심만으로 100kg의 역기를 들 수는 없다. 역기를 들려면 근육의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을 쓸 줄 아는 기술도 필요하며, 꾸준한 연습과 훈련도 필요하다. 의지, 근육, 기술을 갖추면 누구나 100kg의 역기를 들 수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 그 학생이 100kg의 역기를 들어 올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여기서 역기를 들 수 있는 근육이 바로 지식이다.

 

기존의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면 새로운 지식을 만들지 못한다. 고등학생에게 지식이란 교과서에 한정된 지식만 의미하지 않는다. 교과서는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지식의 기본 골격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교과서에 나온 지식만 배워야 한다면 지식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할 수 없게 된다. 학생은 전수된 지식만이 아니라 학교 안팎에서 접하게 되는 모든 지식을 받아들이고,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학생이 더 많은 영역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학생의 사고를 가두는 울타리가 되면 창의성 교육은 작동하지 않는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사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정규 수업과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학생 스스로 지식을 채워 갈 수 있도록 자극하고 장려하자는 말이다. 교사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교사는 지식의 전수자이면서 동시에 학생 스스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환경을 마련해 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무엇'을 아는 것도 지식이고, 그 지식이 만들어진 '과정'과 '의미'를 아는 것도 지식이다. 수학 공식에 수치를 대입하여 답을 찾았다고 해서 그 공식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수학 공식이 어떤 원리와 개념 정의에 근거하며,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 공식이 고안되었고, 그 문제는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해결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지식이 만들어진 '과정'과 '의미'를 안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 지식의 내용만이 아니라 '과정'과 '의미'를 알고 있을 때 지식은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는 근육이 된다.

 

교과 학습량이 줄더라도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는 근력을 갖추고 있으면 '학력'은 오히려 높아진다. 과거의 학력은 '지식'만 평가했지만 지금은 지식을 넘어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 주체성, 다양성, 협동성 등이 포함된다. 이것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 곧 새로운 '학력'이다. 고등학교 교육의 일부분에서라도 학생들은 지식의 근육을 키우는 경험을 해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을 만드는 도구로서 지식은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넓이와 깊이로 측정되는 지식의 양

 

그릇이 넓고 깊을수록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양이 늘어나듯이 지식의 양은 넓이와 깊이로 표현된다. 넓이의 '최소 기준'은 교과서 지식이다. 학생이 교과서 지식조차 알지 못한다면 지식의 최소 넓이를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과도하게 세분된 과목 구분, 선택형 교과과정, 문이과 구분(교과에 의한 구분은 명목상 해소되었지만, 수능에 의한 구분은 여전히 유지되어 이수 교과에도 문이과 구분이 실재한다) 등이 교과지식의 최소 넓이를 확보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여러 과목을 통합하여 교과목의 수를 줄이고 모든 학생이 기본적으로 이수해야 할 교과의 폭을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학생은 스스로 지식을 넓혀야 한다. 교실은 지식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그런데 EBS 교재에 나오는 문제 풀이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면 교실은 지식의 확장을 막는 공간이 된다.

 

지식의 깊이란 암기-이해-적용-융합의 각 단계 가운데 어느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융합의 단계를 논외로 한다면, 지식의 깊이에는 세 단계가 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가 암기된 지식이다. 암기에 의한 학습은 동일한 문제가 동일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얻게 해 준다. 하지만 단순 암기된 지식은 다른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지식이 만들어진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리를 이해하여 얻은 지식은 암기된 지식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의 문제들에 한정된다.

 

하나의 원리를 알아서 열 가지 원리를 깨우치려면 알고 있는 하나의 원리를 다른 영역에 적용해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 두 문제가 같은 원리에 의해서 풀릴 수 있는지, 풀리지 않는다면 원리를 어떻게 바꾸어 적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새로운 원리가 필요한지 경험해 보는 훈련이 영역 전이적 통찰력을 키우는 학습이다.

 

영역 전이적 통찰력이란 한 영역에서 얻은 지식을 그와는 맥락이 다른 영역에 적용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적용 훈련을 통해 얻은 지식은 훨씬 더 넓고 깊은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게 해준다. 주어진 규칙이나 틀에 맞춰진 기계적 사고가 아니라, 다각도의 접근을 통해 문제를 새롭게 규정할 때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의 목적은 무엇인지, 현재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중심 개념이 무엇인지,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 활용되는 지식은 무엇이고 어떤 지식이 더 필요한지, 핵심 주장은 무엇인지, 행간에 숨어 있는 함축이 무엇인지, 생략된 전제가 무엇인지, 관점이 무엇인지, 맥락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창의적 지식을 만들어 내는 생각이 도구다.

 

하지만 대개 고등학교 교육은 암기와 이해에 머문다. 원리 이해가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단순한 원리 이해만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 목욕탕 물이 넘치는 것을 본 사람이 아르키메데스뿐일까.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본 사람도 뉴턴만이 아니고, 주전자에서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장면을 와트만 본 게 아니다. 교과 지식의 이해를 넘어서 교과 지식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고 관찰하는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주도적인 학습 경험이 만드는 지식의 질

 

암기-이해-적용의 단계로 지식이 깊어지는 과정을 학생 스스로 주도할 때 지식의 질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정규 교과 수업에서 학생이 주도적인 학습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교실 수업이 바뀌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학생 스스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영역은 대개 독서와 탐구 활동이다. 하지만 학생에서 읽으라는 책을 읽고 학교에서 준비한 탐구 활동 프로그램에 수동적으로 참여하여 얻은 지식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리 유용하지 않다. 독서와 탐구 활동은 뭔가를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지식을 알아가는 과정도 학생이 주도적으로 수행하여 얻어야 창의력을 높이는 근육으로 발전한다. 그렇게 하려면 학교는 학생이 학습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모든 수업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수업은 그러해야 한다. 지식의 넓이와 깊이를 학생 스스로 갖추면 지식의 질이 높아지고, 지식을 습득하는 기술도 함께 따라온다. 그래서 지식을 넣어 주는 수업보다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기술을 길러 주는 수업이 학교에 필요하다.

 

지식을 습득하는 몇 가지 기술

 

우리는 수업 방식을 두고 이런 비유를 들곤 한다.

 

A. 교사가 학생의 식탁 위에 생선 요리를 차려 주고 먹으라고 하는 교육

B. 교사가 물고기를 잡은 후 학생에게 요리법을 가르쳐 주고 학생이 직접 요리하여 먹는 교육

C. 교사가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학생은 스스로 물고기를 잡아서 요리하여 먹는 교육

D. 교사는 여러 가지 음식의 재료를 알려 주고, 학생은 스스로 원하는 재료를 구해서 요리해 먹는 교육

 

A 방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교사 주도형 학습이고, D 방식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교육이다. D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는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일부 수업에서만 할 수 있는 방식이다. A 방식은 나쁘고 B,C,D 방식으로 갈수록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네 가지 방식은 학생의 수준과 교육 목표에 따라서 혼합적으로 조합할 수 있다. 모든 학생이 배타적으로 하나의 방식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창의성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창의력 중심의 교육을 위해서 A 방식 위주로 진행되던 기존 수업의 일부라도 B,C,D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지식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는 심화된다. 지식을 얻는 기술은 새로운 교수, 학습 방법이 필요하다. 학생이 다양한 수업 방식을 경험하고 스스로 지식을 채워 가는 훈련을 한다면 창의성 교육은 실현될 수 있다. 교실 수업과 관련하여 교수법 권위자인 조벽 교수는 <인재 혁명>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1)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탐색해 보고 그것에 대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시간을 주라. 학생들이 어떤 과제에 대해 생산적으로 몰입해 있고 그 과제를 끝마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을 때는 간섭하지 말라.

2)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흥분시키는 교실환경을 조성하라.

3) 흥미롭고 유용한 교수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하라.

4) 학생들이 실수가 허용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독려된다고 느끼는 교실 분위기를 조성하라. 적절한 정도의 소음과 어수선함, 자율이 허용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하며, 학생에게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기술은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창의성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학교 수업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과 방법이 바뀌어야 하며, 학교가 변화하려면 대학 입시가 창의성 중심으로 달라져야 한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창의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평가해야 고등학교도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대학 입시가 먼저 변화되어야 초, 중, 고등학교에서 창의성 교육이 이루어지며, 호기심, 의지, 협력, 공감과 같은 인성적 특성도 키워진다.

 

창의혁명_ 서울대학교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

 

by 미스터신 2020. 12. 12. 11:48

이준석 최고위원께서는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운영하면서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육의 문제들을 나름대로 느꼈을 텐데,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육에 대한 환상을 깼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암기식 교육을 하고 있고, 교육 선진국에 가면 굉장히 창의적인 교육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게 착각입니다. 암기는 대단히 중요해요. 암기는 좋은 공부이고, 공부하지 않고 교육이 잘 되는 나라는 없어요. 미국은 정말로 책을 외울 정도로 많이 읽거든요. 거의 모든 과목이 그래요. 나중에 인용하려고 해도 우선 외우고 있어야 하잖아요. 외우지 않고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그 문장이 암기 상태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놀면서 공부하자, 저는 그런 공부는 없다고 봐요. 제가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하면서 아이들을 많이 상대했는데, 당시 크게 느낀 점이 뭔지 아세요? 원리를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풀어 보는 거였어요. 문제를 풀면서 익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거든요. 문제 풀이는 오직 시간을 투여해 공부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외국에서도 수학 공부를 할 때 문제 풀이를 다 하거든요.

 

저는 아이에게 약간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학교에서 없어진 성취도 평가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시험을 보면 국어, 영어, 수학 등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나옵니다. 그런 학생들을 공부시킬 방법을 찾아야 해요. 그것을 하지 않고 의무교육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봐요.

 

조지 부시가 했던 교육정책 중에서 NCLB(No Child Left Behind)라는 게 있어요. '어떤 아이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퍽 낭만적인 표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낙오 방지법'으로 번역되었어요. 그 교육정책이 아주 성공적이었어요. 성취도 평가를 학교마다 보고, 금방 결과가 나오겠죠.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많이 나온 학교에 대해서는 선생을 교체하고, 지원금을 끊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했어요. 학생이 아니라 학교를 채찍으로 때리는 겁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의 성적이 많이 오르게 되었거든요.

 

교육에서는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해요. 제가 자주 말하는 공정한 경쟁입니다. 현재 한국 교육은 경쟁 둔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봐요. 저는 학교교육에 바람직한 경쟁을 만들고, 성취도 평가 제도를 도입해 기초학력이 미달인 학생을 찾아내 그들에게 교육을 집중해야 한다고 봐요. 이렇게 되어야 의무교육이라 할 수 있죠.

 

현재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은 정시와 수시로 나뉘어 있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 수시, 그중에서도 학생부 종합 전형입니다. 이준석 최고위원께서는 미국 대학에 수시 전형으로 입학했는데, 특별히 우리나라의 수시 제도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먼저 아직 신뢰 사회가 구축되지 않아 생긴 일로 보는데요. 제가 미국 하버드 대학에 제출한 에세이는 한국에서 작성해서 보냈던 것입니다. 내용은 제가 과학고 다닐 때 학생회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삼성에 연락해서 새 컴퓨터를 지원받았던 일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 일과 중국 지도자가 댐 공학도라는 사실에 착안해 공학도 역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을 썼어요. 당시 하버드 대학 입학사정관이 그것을 보고 다른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어가 부족한 저를 뽑은 겁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제가 공부하는 데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거예요. 나중에 제 에세이를 채점해 놓은 것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에세이가 하버드 대학 입학하는 데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하버드 대학 다닐 때 저보다 학업 성적이 많이 떨어지는 팔레스타인 친구가 있었어요. 저런 친구를 하버드 대학에서 왜 뽑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친구를 뽑은 것은 그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조국으로 돌아가 지도자가 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친구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도 일취월장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냈고요. 괄목상대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하버드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판단이 옳았던 거죠.

 

미국 대학은 우리와 다르게 대학이 다양한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그 책임도 학교가 지는 구조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식으로 입시 제도를 개편하고, 사립대가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가진다면 우리나라 대학도 미국처럼 될 거라고 믿어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준석 최고위원께서는 과학도이고, 전공이 컴퓨터라 남다른 견해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논리학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정치도 치열하게 논리적 대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영 논리로 가지 않습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계 때문에 일을 빼앗기는 사람들과 기계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 사이에 치열한 갈등이 있을 것인데,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논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는 거지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백과사전식 지식은 가치를 많이 잃을 겁니다. 그것은 컴퓨터가 감당할 테니까요. 그래서 학교교육에서 논리 교육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봐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무기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하는 논리라는 것은 정량적인, 이성적인 논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비이성적인, 계량화가 불가능한 가치들을 포함한 겁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창의성은 바로 비이성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이긴 신의 한 수, 그 힘도 논리를 이길 수 있는 비논리에서 나왔다고 봐요.

 

공정한 경쟁_ 이준석

by 미스터신 2019. 11. 2. 13:56

교사로서 많은 학생을 관찰하시잖아요. 명문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조언해 주세요.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릴게요. 만고의 진리 중의 하나가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정말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어요. 왜냐하면, 시험이라는 건 결국 사회에서 사용하는 언어거든요. 시험을 잘 보려면 사회의 언어로 쓰여 있는 책들을 많이 봐야 해요. 흔히 고전이라고 말하는 데 사회적인 사고와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많이 읽을수록 체계적인 사고에 익숙해져요. 내가 사회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사회적 갈등, 사회적 합의 등과 같은 사회 용어를 모르면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 할 수가 없어요.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그런 어휘력을 배경지식처럼 공부한다는 의미일 거예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타고 나는 것 같아요. 어린아이를 지켜보면 대부분 책을 좋아해요. 어떤 지식과 세계를 접하기 위한 가장 쉬운 매체인 것 같아요. 책을 다양하고 즐겁게 읽는 습관으로 이 세계에 대한 풍부한 배경 지식을 쌓아 올리고, 그 배경지식으로 인해서 학습 능력이 한 단계 뛰어 올라가는 거죠.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관련된 분야의 다양한 책을 읽으라고 조언해 주고 싶어요. 책 읽는 게 어렵다고 느끼는 학생들에게 저는 만화책도 좋다고 이야기해요. 초등학생이 읽는 만화책도 좋아요. 우선 책을 만나서 책을 읽기 시작하는 노력이 정말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상에 오래 앉는 연습을 해야 돼요. 진부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연습 없이는 명문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어요. 물론 학습은 양보다 질이라서 한 시간을 하더라도 제대로 집중해서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그 한 시간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연습이 필요해요. 책상과 의자를 아주 편하게 느끼는 연습을 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어요. 책상을 편하게 느껴서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습관을 익히는 게 중요해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님께 저는 책상을 사주라고 권해요. 식탁이나 밥상이 아니라 내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게 좋아요.

 

고등학생이라면 학교에서 많은 공부를 하는 게 좋아요. 저는 독서실보다 교실의 공부 환경이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독서실이 어두워서 집중하기 편할 수도 있지만, 학교는 학생이 8시간 이상 머무르는 곳이잖아요. 여기서 공부가 안되면 다른 곳에서도 당연히 잘 안되죠. 물론 100명 중에 한두 명은 정말 학교 이외의 장소가 더 편할 수도 있어요. 지하철같이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가 잘 되는 학생들도 있잖아요. 그런 학생이 아닌 이상은 학교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게 중요해요.

 

세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건 잘 먹고 잘 자야 해요.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의 특징 중 하나가 체력이 약하다는 거죠. 엄마들이 놓치는 것 중 하나가 아이의 건강 상태예요. 몸이 안 좋아서 집중이 안 되는 건데, 무조건 공부하라고 학원에 보내고 과외 선생님을 붙여요.

 

미래의 공부 체력을 위해서 어렸을 때는 운동을 많이 하면 좋겠어요. 적어도 초등학교 6학년까지 축구나 농구 등 몸을 많이 쓸 수 있는 운동을 해서 기초 체력을 다지는 게 좋아요.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보면 점심시간에 나가서 축구를 한 경기를 뛰고 들어와요. 그런데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게임을 하죠. 체력은 체력대로 나빠져서 몸도 계속 비만해지고요. 그럼 혈액순환이 안 돼서 피곤하니까 수업 시간에 자는 악순환이 돼요.

 

자녀를 명문대학교에 보내고 싶은 학부모님께 드리는 조언은 이 세 가지예요. 책 읽고, 책상에 앉아 있는 연습을 어렸을 때부터 하고, 잘 먹고 잘 자라는 거죠. 사실 고3 수험생을 둔 어머니께서는 영양제나 보약도 권해요. 고3은 아무래도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없거든요.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뭐가 좀 특별한가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해야 돼요. 머리가 좀 독특한 것 같아요.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죠. 학습 몰입도도 굉장히 높아요.

 

그럼 공부는 노력이 아니라 재능에 가까운 건가요? 선생님의 개인적인 의견이 듣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공부는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투자 대비 효과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제가 아무리 좋은 선생님께 훌륭한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해도 김연아가 될 수 없어요.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투자를 안 했기 때문에 내가 김연아 같은 피겨 선수가 못된 게 아니라 김연아는 김연아로 태어난 거고 저는 저로 태어난 거죠. 그건 그냥 재능이에요. 부모님들께서 그 부분을 인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Job Propose 12) 긍정적이라면 중등교사_ 김선미 교사

by 미스터신 2018. 9. 28. 16:12

개인별, 능력별 학습의 부재

 

현재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3가지 큰 원인이 있다. 첫째, 개인별○능력별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한급에 30명 가까운 학생이 함께 공부해야 하는 교육 환경에서 개개인의 수준과 능력에 맞는 맞춤형 학습은 불가능하다. 학교 수업은 같은 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똑같은 교재와 진도로 한 선생님에게 배운다. 하지만 학년이나 나이가 같아도 아이들의 능력과 수준은 각기 다르기 마련이라 잘하는 아이도 못하는 아이도 공부가 재미없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 공부에 대한 의욕이나 성취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같은 교실에서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어도 어떤 아이는 이해하고 어떤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6학년 반에 앉아 있어도 어떤 아이는 특정 내용에 대해서는 4학년 수준밖에 모를 수 있다. 심한 경우, 잘 하는 아이 몇 명 빼고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대다수의 아이들을 상대로 헛되게 수업시간을 흘려 보내기도 한다.

 

교사들은 교육부에서 만든 학년별 프로그램에 따라 '잘하는 아이들'을 기준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상위 그룹만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초, 중, 고등학교 교사를 만나보면 "교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예전과 달라요"라는 고백을 듣게 된다. 이런 상황을 학부모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번 진도를 놓치면 그것을 따라잡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시간이 든다. 가령 초등학교 3학년이 1학년 내용을 보충하려고 들면 금방 따라갈 수 있겠지만 6학년이 4학년 내용을 보충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부족한 결손 부분을 채우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만 나갈 경우, 격차는 더 커진다. 특히 수학의 경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포자', 즉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모에 의해 억지로 하는 공부

 

둘째, 부모에 의해 억지로 과외 공부를 한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과 후 2~3개의 학원은 필수다. "남들 다 보내니 안 보낼 수가 없어요." 아마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마음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유달리 남과 비교하는 일에 민감한 건 아닌가 싶다.

 

중학교 1학년이 수학 미적분을 공부하고 초등학생이 TEPS 영어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진정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옆짚 아이가 하니까"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봐" 무조건 가르치고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들의 이러한 염려가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있다.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억지로 하다 보니 공부의 능률이 오르지 않고 집중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흥미를 잃게 된다.

 

학교보다는 낫지만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학원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각각의 아이가 지닌 개별성을 충분히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인간은 모두가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다. 한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제각각 다르다. 내 아이의 사정이야 어떻든 일단 소문난 학원에 보내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부모의 자기위안이 아닐까? '우리 아이도 저 학원에 다녀' '학원 보냈으니 그래도 잘하겠지'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강요로 얻은 지식은 마음에 남지 않는다. 어릴 때의 학습은 오락처럼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타고난 소질을 더 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새겨보았으면 하는 경구다.

 

단순암기식 문제풀이

 

셋째, 단순암기식 문제풀이 공부에 매몰되어 있다. 수학의 경우, 사고력을 키워줘야 하는 수학 학습지 중에서도 단순 연산 위주로 구성된 것들이 많다. 단순 연산 위주의 교재를 학습할수록 아이의 사고력은 저하되고 단순해진다. 기계적인 문제풀이 습관은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고민하며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과정을 배제시켜버린다. 창의력에서 멀어지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도 잃어버린다.

 

수학도 게임처럼 즐길 수 있어야 된다. 그러려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념과 원리를 모른 채 문제풀이만 강요하는 것은 아이에게 수학의 즐거움을 빼앗는 일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 원리를 모르고 공식만 달달 외우면 수학에 매료될 수가 없다. 수학은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사라지면 수학이라는 과목 자체가 싫어질 수밖에 없다. 수학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쉬운 수학 개념과 원리부터 차근차근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창의성과 독창성을 기리는 폴론스키상을 2번이나 수상한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한 세대 후면 아무 소용이 없다"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 2가지를 제시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디테일이 바뀌어도 절대 바뀌지 않는 기본 원리를 가르쳐야 하고, 평생학습 시대이므로 누구나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공부 시대이므로 앞으로 '최종 학력'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위의 3가지 문제점들을 극복할 때 비로소 아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 개인별, 능력별 학습의 부재, 부모에 의해 억지로 하는 공부, 단순암기식 문제풀이에서 탈피하여 아이가 '좋아서, 쉬워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에 답을 제시하기 위해 스스로학습법이 탄생했다.

 

스스로학습이 희망이다_ 박성훈

by 미스터신 2018. 6. 3. 10:11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고래에게도 칭찬을 하니 춤을 추더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우리 아이들을 칭찬해주면 얼마나 신나게 춤을 출까요? 우리는 어제오늘 아이들에게 무슨 칭찬을 했는지 떠올려봅시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 교육을 외부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영어 발음을 좋아지게 하는 학원이 있다면 학원비가 비싸더라도 그 학원에 보냅니다. 수학 잘 가르치는 학원이 멀리 있다면 차를 태워서라도 보내지요. 예체능 잘하는 학원 알아보느라 여기저기 물어보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기도 합니다. 아이 머리가 좋아진다면 비싼 돈을 주고라도 총명탕을 먹이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돈도 시간도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인정, 존중, 지지, 칭찬'에는 참으로 인색합니다. 이런 것을 해주면 아이 자존감이 살고, 그 자존감이 동기부여의 싹을 키워 자기주도 학습 능력이 향상되는데 말입니다. 결국 아이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는 집중하지 않고, 내 아이를 학원에 맡기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학과 대학원, 각종 연수 등에서 수석을 하고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교육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각종 교사 연수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과목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교육학'입니다. 교육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이 뭔지 아십니까? 인정, 존중, 지지, 칭찬 이론입니다. 저는 교육학의 여러 이론들을 열심히 공부하여 모든 과목에서 A+라는 매우 우수한 점수를 받았으나, 정작 실천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교육학은 '죽은 지식'이었던 겁니다.

 

저는 정말 칭찬에 인색했습니다. 아들이 전교 1등을 한 성적표를 가져와 "엄마, 저 1등 했어요" 라고 목소리에 힘을 줘 말하면 "야, 목소리에 힘 빼고 지난달 성적표 가지고 와" 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성적표를 비교하며 말했습니다. "국어는 올랐네. 그런데 수학은 왜 떨어졌어? 너 수학 얼마짜리 학원 다니고 있는 줄 알아? 과학, 사회는 왜 이 점수야? 평균 97점으로 1등 했다고 자만하지 마. 너희 학교 수준이면 강남가면 중간도 못 해"라고 말하며 아이의 기를 죽였습니다.

 

강남 엄마들보다 아이들을 더 잡는 엄마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강남 언저리 사는 엄마들입니다. 바로 옆 동네지만, 여러 여건상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니 늘 불안한 것이지요.

 

저는 오래전 강남에 살다가 첫 발령이 다른 동네로 나는 바람에 아예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서로 비슷하던 집값이 세월이 흐르며 어찌나 차이가 나는지, 다시는 강남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늘 강남 언저리를 맴돌면서 우리 아이들 종합학원은 강남으로 보냈고, 어떻게 하면 강남 아이들과 엮어 과외를 시킬까 궁리하곤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주 자주 들은 말 중 하나가 '강남'인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강남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를 치고 그곳에 잘 가지도 않습니다.

 

아들은 그나마 공부를 잘해서 덜 혼났습니다. 세 살 때부터 한글을 읽기 시작했기에 저는 아들이 천재라고 여겼고, '내 아이는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딸은 세 살은커녕 일곱 살이 되도록 한글을 못 읽으니 기가 막혔습니다. 더군다나 2월생이다 보니 한글을 못 뗀 일곱 살에 학교에 입학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밤늦도록 열심히 연습하여 학교를 보냈건만 딸이 받아 온 첫 받아쓰기 시험 점수는 60점이었습니다. 정말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60점짜리 시험지를 조심스레 내놓으며 딸이 사인을 해달라고 합니다.

 

"나는 이 점수에 사인 못 한다. 어떻게 이런 점수를 받니? 내 인생에 처음 보는 점수다. 이 점수를 맞고 집에 오고 싶대? 밥이 넘어가? 오빠는 늘 100점 받았어. 너는 어떻게 된 거니? 도대체 누굴 닮았어? 우리 친정 식구들은 다 공부 잘했는데."

 

이런 말을 하며 야단을 치면 딸은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그러면 "뭘 잘했다고 울어. 눈물 뚝 그치고 얼른 들어가 공부 못 해?" 하고 야단을 더 칩니다.

 

그 후에 딸은 80점을 맞아 왔습니다. 딸은 20점 올랐다고 좋아하는데, 그 점수에 성이 차지 않은 저는 "시험이 좀 쉬웠니?" 라며 비아냥거렸습니다. 100점을 맞으면 신이 나서 시험지를 흔들며 "엄마, 나도 오빠처럼 100점 맞았어"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칭찬이 그리웠을까요? 그런 딸에게 저는 "너희 반 아이들 다 100점이지? 100점 몇 명이야?" 라며 확인하는 모진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아들과 딸에게 왜 그런 말을 하며 살았을까요?

 

나중에 우리 아이들 자퇴하고 폐인 되고 자살 준비하라고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을 다른 집 아이들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핑계로 그런 짓을 한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더 잘할 줄 알았습니다. 더 겸손할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아들과 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인지, 얼마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아이들 가슴에 꽂히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여 아이들의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아 동기부여의 싹을 자르고,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상실하게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한 그 비난의 말들이 애초에 신이 우리 아이들에게 주신 어마어마한 잠재력까지 죽이는 엄청난 행위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마 반성문_ 이유남

by 미스터신 2018. 1. 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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