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비범한가?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어디에 비범성이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_ 하워드 가드너 교수

 

2013년 5월, 그해 미국 IT 업계에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청년이 만든 소셜네트워킹사이트인 텀블러가 야후에 11억 달러, 한화로 약 1조 2276억 원에 인수되었다는 사실이 발표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 이후 미국 IT 업계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이 청년의 이름은 바로 데이비드 카프. 그는 '제2의 페이스북 신화'라는 평가와 함께 26세 나이에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한다. 사람들은 20대에 갑부가 된 그를 저커버그와 비교하곤 한다. 하지만 카프가 학교를 그만둔 것은 저커버그보다도 어린 나이, 고작 열다섯 이었다.

 

부모의 강점 중심 교육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자주 이용하는 소셜사이트라고 언급한 텀블러. 오바마가 카프와 함께 찍은 재미있는 '움짤(움직이는 사진)'은 백악관 공식 텀블러 계정에 올라와 온라인상에서 한동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다소 생소한 텀블러는 어떤 사이트일까? 텀블러는 2007년 문을 연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마이크로 블로깅 사이트로, 트위터와 블로그의 장점만을 모아 서비스한다. GIF 애니메이션(움짤) 만들기 기능을 제공하고 모바일에서 글, 사진, 동영상 등을 손쉽게 올리고 공유하는 기능 덕분에 미국의 10~20대로 하여금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등지게 하고 있다. 정식 한국어 버전을 지원하지 않던 2013년에 이미 국내 SNS 유입률 1위를 달성했으며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3억 명이 넘는다.

 

이런 텀블러를 만든 카프는 1986년 뉴욕 맨해튼에서 영화음악 작곡가인 아버지와 과학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카프의 부모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의 부모처럼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어린 카프가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고 하면 음악수업을 받도록 했고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보스턴에서 열리는 MIT 로봇 경연대회에 직접 데리고 갔다.

 

그리고 마침내 열한 살 때 그는 운명처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접하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컴퓨터 관련 서적을 사주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줌은 물론 당시에는 상당히 고가였던 애플 컴퓨터까지 사주며 아들의 흥미를 더욱 북돋아주었다. 불타는 열정을 갖고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카프는 전문 프로그래머의 실력을 갖춘 뒤 이웃에 있는 회사들의 웹사이트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카프가 열네 살 때 카프의 어머니는 자신이 가르치는 한 학생의 부모가 애니메이션 회사의 경영자라는 것을 알고 아들을 그 회사에 인턴으로 보냈다. 카프의 재능을 알아본 경영자는 사내 프로젝트에 바로 그를 투입시켰다. 카프는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났고 천부적이 타이밍 센스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는 몇 년 뒤 카프가 만든 텀블러에 투자해 텀블러의 이사가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카프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막연하게나마 MIT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학교는 너무 따분했고, 방과 후에는 집에 돌아와 밤새 방 안의 컴퓨터에만 붙어있었다. 카프는 점점 은둔형 외톨이처럼 되어갔다. 운동이나 여자친구를 더 좋아할 나이에 컴퓨터에 빠져 있는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머니는 속상해하거나 아들을 꾸짖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결단을 내린다. 그것은 어느 부모도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너는 컴퓨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학교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렴."

 

자녀에게 고등학교를 그만두라고 권유할 한국의 부모가 있을까? 카프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부모는 아마도 이렇게 설득하고 강요했을 것이다.

 

"고등학교도 안 나오면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니? 낙오자가 되는 거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공부해. 대학은 졸업해야지!"

 

이런 말을 들은 자녀는 사회와 부모가 원하는 길로 힘없이 자신의 방향을 바꿀 것이다. 하지만 카프의 어머니는 아들의 강점이 무엇인지만 관찰했다. 학교와 사회의 틀에 아들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자유롭게 고유한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진짜 교육을 시키고 싶었다.

 

컴퓨터에 마음을 뺏겨 밤을 새는 아들을 지켜봤어요. 카프가 자신의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것은 다름 아닌 컴퓨터였습니다.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것이었죠.

 

카프는 그날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제안이 너무 뜻밖이라 카프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컴퓨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자퇴를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방식 덕분에 아무 제약 없이 오롯이 자기가 좋아하는 컴퓨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때 그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카프는 자퇴 후 3년간의 홈스쿨링을 통해 몇 명의 선생님과 함께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에만 매진했다. 그때 배운 일본어 덕분에 열일곱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인공지능 로봇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서 실력을 다질 수 있었고, 이때부터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카프는 몇 달간 경험을 쌓은 후 뉴욕으로 돌아와 스타트업 회사였던 어번베이비에서 수석프로그래머로 일한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 계기 역시 카프의 뛰어난 실력 덕분이었다. 당시 어번베이비는 기술적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마감까지는 겨우 48시간만이 남아 있었지만 해결 방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카프의 지인이 카프를 이 회사의 경영자에게 소개했고, 그는 4시간도 안 되어 문제를 해결했다. 덕분에 그는 열일곱살이라는 나이에 수석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었다.

 

이후 어번베이비가 씨넷에 매각되면서 자신의 수중에 수십만 달러가 들어오자 카프는 드디어 기다리던 도전을 시작한다. 친구들이 대학에 들어갈 나이에 컨설팅 회사이자 자신의 첫 회사인 데이비드빌을 창업했고, 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나온 아이디어로 투자를 받아 텀블러를 창업하기에 이른다. 직원은 단 한 명, 사무실은 어머니의 아파트였다. 카프의 어머니는 아들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아파트를 뛰어다니며 이렇게 외쳤다고 회상한다. "엄마, 이런 게 있어요! 이런 게 있어요!"

 

매혹적인 디자인과 편리한 사용성 등 젊은 세대가 원하는 기능을 갖춘 덕분에 텀블러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7만 5000명의 사용자를 끌어들이며 대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총 1억 25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2011년에 버진 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등 여러 곳으로부터 85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젊지만 탄탄하게 다져진 실전 경험과 실력을 갖추고 21세에 카프가 시작한 작은 스타트업 회사는 5년 만에 26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미국 IT 업계의 선두회사로 눈부시게 도약했다. 이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한 분야에만 매달린,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분야에만 매진할 자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글 부사장에서 야후 최고 경영자로 전격 발탁된 뒤 텀블러에 끊임없이 구애했던 마리사 메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카프는 이 세대의 전설이 될 거예요.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바꾼 기업가로서 말이죠.

 

'창의성'이라는 선물

 

저커버그가 '공유'라는 가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면 카프는 '창의성'이라는 선물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유튜브에는 동영상만 올리고, 플리커에는 사진만, 트위터에는 140자 이내의 글자만 올려야 한다는 규제가 답답했다. 우리가 무심코 당연히 여겼던 규칙을 그는 '억제'라는 문제점으로 인식한 것이다. 창의성은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배울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이런 사이트들이 소통, 공유방식을 바꾸어놓긴 했지만 강요와 규제로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창의성을 놓쳤다고 말한다. 학교가 강요와 규제로 일관된 틀에 학생들을 집어넣으면서 창의성을 빼앗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카프는 사용자들이 웹에서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표현하게끔 만들고 싶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개발된 텀블러였기에 창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특히 자기를 표현하기 좋아하는 십대들의 텀블러 이용자 수는 페이스북을 넘어섰다.

 

그가 얼마나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집착했는지는 과거 텀블러 창업 시절 카프가 뽑았던 첫 직원이자 유일한 직원이었고, 지금은 인스타페이퍼 창업자가 된 마코 아먼트에게서 들을 수 있다. 그는 카프가 오직 텀블러 개발에만 집중한 워커홀릭이었으며, 초창기에 '투자를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걱정스럽게 말이라도 꺼내면 '제품에 집중하면 돈은 당연히 따라온다'며 일축했다고 회고한다. 동시에 그는 "나는 카프처럼 제품 지향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딱 한 사람 봤는데, 바로 스티브 잡스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카프는 팔로어 숫자를 공개하는 트위터에 대해 "팔로어가 몇 명인지, 몇 개의 글을 올렸는지 공개하는 트위터는 단순히 숫자로 사용자 가치를 평가한다." 라며 일침을 가했다. 인기와 영향력을 얻기 위해 사용자들은 양질의 것보다 자극적이고 가벼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마치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는 문화가 깃들어 있지 않다."고 비난한 것처럼, 성공 그 자체보다는 사용자 가치를 우선시하는 카프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학교 안에 꿈을 묶어두지 마라

 

한국고용정보원이 2014년 1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00인 이상 기업의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남성은 33.2세, 여성은 28.6세라고 한다. 정규직을 얻기 힘들다 보니 스펙 쌓기 등 취업준비로 졸업을 미루거나, 기존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몇 군데를 거쳐 직원 100인 이상의 기업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취업을 위해 대체 무엇을 33년간이나 배우고 있는 걸까?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초,중,고에서 똑같은 과목을 배우고, 대학에서는 모두가 원하는 회사를 가기 위해 다시 똑같은 취업준비에 매진해온 우리를 보자. 일일곱에 사회로 뛰어들고 스물한 살에 창업해, 불과 스물여섯 살에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든 소셜미디어로 억만장자가 된 카프와 비교해보면 너무나 한심한 상황이 아닌가?

 

심리학자 엔더스 에릭슨은 무슨 일이든 10년을 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10년의 법칙'을 주장했다. 카프는 열한 살때 재능을 발견했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모 덕분에 10년 후인 스물한 살에 과감히 창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부모가 자녀를 일찍 성공시키기 위해 학교를 자퇴시키고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다만 아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해주는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만큼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프는 자퇴를 결정하게 된 이유를 첫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했고 둘째, 학교에서는 그것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아이에게 재능이 있는데 학교가 그것을 채워줄 수 없는 환경이라면 부모는 지혜와 통찰력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의 잠재력과 재능은 뒷전인 채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과목은 다 배우고 잘해야 한다거나, 대학은 꼭 나와야 한다는 등의 고정관념에만 매달려 있다. 부모의 맹목적 믿음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꿈에 대해 고민하기는커녕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도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몰아갈 뿐 아니라 밤늦게까지 원하지도 않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로봇으로 만들고 있다. 깨어있는 부모가 도와준다면 자녀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으로 더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하워드 가드너도 "누가 비범한가? 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어디에 비범성이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카프의 성공 스토리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학교 밖에 있음에도 교실속에 아이의 꿈을 묶어 두고 있을 많은 부모에게 질문을 던진다. 1등 하는 아이만 비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장 소중한 당신 아이의 비범성은 어디에 있는가?

 

학력파괴자들_ 정선주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5. 25. 09:17

 

만 배의 이익을 왜 마다하랴

 

: 책을 읽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최고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독서

 

중국 송대의 개혁 정치가 왕안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후대에 전한다.

 

"독서에는 비용이 들지 않고, 독서하면 만 배의 이익이 있다."

 

강연을 하러 가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이 질문에 100가지의 답도 해줄 수 있다. 독서가 주는 만 배의 이익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이유를 알려주고자 한다.

 

1. 독서를 통해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

 

유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간접경험은 그야말로 마법의 세계나 다름없다. 또 다른 세계를 여행하고 다른 이의 우주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여러 저자들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남들이 경험한 것이다. 어차피 겪게 될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알고자 한다면 아직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남의 경험담을 통해 간접경험하는 것이 최선이다.

 

_ <서른 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 중에서

 

독서는 간접체험을 통해 정규교육에서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연마하게 해주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며,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_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중에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과 상황을 직접 경험해보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게 바로 독서다. 지금 앉아 있는 곳에서 시공을 초월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책에는 한 인간이 겪은 성공과 실패 등 모든 경험이 녹아 있다. 때문에 책 한 권에서 시련과 고통, 역경 및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노하우를 얻을 수 있고, 순수한 감동을 받을 수 있으며, 때로는 강한 정신력을 훈련할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나 또한 책이 없었다면 여전히 암울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책을 통해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를 배웠고, 성공하는 삶을 위해 어떤 습관을 가져야 하는지를 배웠다.

 

2. 독서로 자신의 무지를 깨우칠 수 있다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자신의 우물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서를 하면 수많은 우물을 퍼다 자신의 우물을 채울 수 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걸 몰랐다. 내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며 살았다. 그러니 주위의 충고나 조언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만 나의 무지를 모른 채 살았다. 하지만 다행히 책을 만나 조금씩 좁고 어두운 세상을 벗어날 수 있었다. 수많은 갈래의 길과 수없이 뻗어 있는 생각의 존재를 알고 나니 깨닫는 것들이 많아졌고, 내 세상은 그 전보다 훨씬 풍부해졌다.

 

3. 책을 읽으면 사람과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사람을 보는 시선이나 관점이 부드러워지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선입견이 줄어들고 포용력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 책을 읽자 부정적이든 내가 변했고, 내가 변하자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해주는 것에서 시작한 인간관계는 사람과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나는 지금도 이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진리를 책을 통해 계속 배워나가는 중이다.

 

4. 독서는 '힐링' 그 자체다

 

나는 책을 읽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느낀다. 책을 읽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책 읽는 순간은 지적 허기를 채워주는 경이로운 시간이다. 더불어 인생이 좀 더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살면서 화가 나거나 불평불만이 가득한데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나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책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감정들이 차분해진다. 또한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마음을 반성하게 된다. 나는 지금껏 책 읽기보다 더 좋은 힐링 도구를 찾지 못했다.

 

요즘 힐링이 열풍이지만 독서야말로 힐링에 큰 역할을 한다. 감정회로를 활성화시켜 변연계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적 영역인 대뇌피질, 특히 전두 전야에도 감동적인 지적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전두전야 단련에도 큰 도움을 준다.

 

_ <인생내공> 중에서

 

5. 책을 읽으면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 된다

 

책을 많이 읽으며 생각하는 힘을 기른 사람들은 늘 자신감이 넘치고 사고가 자유롭다. 지식의 폭만큼 사고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머릿속에 글자를 우겨 넣기 위한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다.

 

일독일행 독서법_ 유근용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5. 11. 08:23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복잡미묘한 문제들을 바둑판 위의 일로 대입해서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좀 어렵긴 해도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지 않을까.

 

바둑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대국을 벌이게 되면 먼저 머릿속으로 판을 그려야 하고 이기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바둑은 절대로 처음 생각했던 대로 풀리지 않는다. 상대방 역시 이기기 위해 똑같이 치밀하게 판을 그리고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둑판 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태클을 당한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해서 궁지에 몰리기도 하고, 살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 한 수 한 수마다 목숨이 걸린 문제가 발생하는 곳, 바로 바둑판 위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프로 기사들은 늘 구사일생의 삶을 살아가는 문제 해결의 고수들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세로 세상을 바라본다. 아주 어릴 때부터 수많은 난제들에 부딪치며 살아왔고, 결국에는 그들이 해결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스스로 풀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그 문제를 풀고야 만다. 그러니 세상사를 바둑판이라고 생각한다면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 문제는 반드시 해결된다. 해결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근성만 있으면 된다.

 

그 근성이란, 바로 생각이다.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성.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 그리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상식, 체계적인 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을 나는 '생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바둑적 사고법'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바둑 기사의 마인드야말로 이러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사가 바둑판과 같다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당장은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악화될 것처럼 보이지만, 의지를 갖고 바라본다면 해결책은 반드시 있다. 물론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일 수는 없다. 최상이 아니라면 최선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혹은 양보와 타협을 하거나 깨끗이 포기하고 다른 목표로 옮겨가는 것 역시 일종의 해결책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날벼락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그것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고 회피하고 외면한다.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이전에 먼저 지쳐버려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한다. 바둑으로 치자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데나 돌을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바둑 기사들은 절대로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초읽기에 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집요하게 다음 수를 고민한다. 설사 끝이 보이는 바둑이라 하더라도 돌을 던지기 전까지는 한 수 한 수 최선을 다 한다. 호수가 아니라면 묘수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악수나 과수라도, 치열하게 고민하여 스스로 선택한다.

 

바둑에는 뜻하는 목표가 있고, 논리가 있고, 게임의 법칙이 있다. 바둑 기사의 마인드는 일종의 지략가다. 전략과 전술을 세워 포석을 하고 끊임없이 판세를 읽으며 한 수 한 수 신중하게 돌을 놓는다.

 

바둑은 승부가 걸린 게임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해결하기 위해 갖은 수를 생각해내야 한다. 때로는 벼랑 끝으로 몰리기도 하고, 때로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때로는 스스로 저지른 실수로 큰 희생을 치러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목표는 바뀌지 않는다. 즉 이기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날마다 생존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자신만의 바둑을 두고 있다. 하루에 한 점씩 바둑을 두었다면 지금 나의 바둑은 어디까지 진행된 것일까? 아직 포석 단계일까? 혹은 이미 절반쯤 진행되었을까? 벌써 마지막 승부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에 있든 스스로 돌을 던지지 않는 한, 혹은 판을 모두 채우지 않는 한, 인생이라는 바둑은 끝나지 않는다. 현재 어떤 위기에 있더라도 아직 살아날 희망이 있다. 바둑이 내게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집중하여 생각하면 반드시 답이 보인다. 심지어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조차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의외의 답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바둑에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실수도 기회도 모두 내가 만든다. 그만큼 승리는 짜릿하고 패배는 아프다. 하지만 그만큼 더 성장한다.

 

삶은 그 자체로 시련이다. 오로지 생각하는 힘만이 그 시련을 의미있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그 과정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조훈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4. 27. 10:33

 

예전에 바둑 대국은 참으로 길었다. 지금은 2~3시간 안에 끝나는 바둑이 대부분이라 아무리 길어도 4~7시간이면 끝나지만 20년 전만 해도 제한시간이 각자 5시간이라서 초읽기까지 합하면 총 대국 소요시간이 11시간이 넘기 일쑤였다. 지금도 기억난다. 1993년 이창호와 두었던 기성전 결승대국. 보통 밤 9시~10시면 대국이 끝나는데 그때의 대국은 7판이 전부 밤 11시를 넘겼다. 아마 한국 바둑 역사상 가장 늦게 끝난 대국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약과다. 일본은 지금도 오래 두는 바둑으로 유명하다. 기성, 명인, 본인방전의 '빅3'대회는 제한시간이 각자 8시간이다. 둘이 합하면 16시간에 이르니 하루에는 다 소화할 수 없어서 이틀을 잡고 진행한다. 너무 길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것도 굉장히 짧아진 것이다. 1930년대에는 제한시간이 각 40시간에 이르는 바둑도 있었고, 1940년대까지만 해도 제한시간이 각자 13시간이어서 3일에 걸쳐 대국을 진행한 적도 있다. 지금처럼 이틀로 줄인 것도 일본으로서는 상당히 노력한 결과다.

 

바둑에서 제한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제한시간이 많으면 그만큼 수읽기가 깊어진다. 내가 어떤 수를 두면 그로 인해 전개될 앞으로의 판세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예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따라서 제한시간이 넉넉하면 더욱 효율적이고 함축적인 수가 나오게 된다. 바둑을 예술로 생각하는 일본은 긴 수읽기를 통해 보다 완벽하고 능률적인 수를 생각해내는 걸 바둑의 '도'이자 '미'라고 여겼다. 그래서 일본 바둑은 지금 같은 광속의 시대에도 8시간의 장고바둑을 고수하고 있다.

 

반대로 제한시간이 짧아지는 속기바둑은 깊은 수읽기보다는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여 둘 수밖에 없다. 바둑 기사에게는 이 역시 중요한 훈련이지만 아무래도 실수가 나올 확률이 높다. 그만큼 내용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진다.

 

속기 바둑과 장고 바둑 중에 무엇이 옳으냐고 묻는다면 그저 웃을 수 밖에.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형식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 수 한 수 장고를 하여 최고의 실력을 겨루는 것도 의미가 있고, 빠르게 감각을 대결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프로 기사라면 두 가지 다 훈련이 되어야 한다.

 

바둑은 감각만으로 둘 수도 없고 실력만으로 둘 수도 없다. 나는 초중급자들에겐 오히려 빨리 두라고 말한다. 그 시절에는 열심히 생각한다고 해서 꼭 좋은 수가 나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때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수를 놓아서 만족도 하고 후회도 하면서 자신만의 바둑 감각을 쌓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서서히 수읽기가 되기 시작한다. 또 수읽기를 더 열심히 하다 보면 덩달아 감각도 좋아진다.

 

이처럼 속기와 장고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의 경향은 빠른 쪽으로만 흘러간다. 요즘 국내 대회는 제한시간이 각자 1시간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5분, 10분, 20분짜리 초속기 대회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반면에 2시간, 3시간의 장고 바둑은 두세 대회 정도밖에 없다. 과거에는 장고 바둑이 80퍼센트의 점유율을 이루고 속기 바둑이 20퍼센트 정도 비율이었다면 지금은 역전되어 속기 바둑이 80퍼센트, 장고 바둑이 20퍼센트가 됐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건 인정한다. 컴퓨터 게임과 스마트폰의 아찔한 속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대여섯 시간이 넘는 긴 바둑을 지켜보는 건 고역일 터다. 그렇지 않아도 바둑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긴 호흡의 바둑만 고수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는다. 속기 바둑은 일단 빠지면 컴퓨터 게임을 능가하는 박진감과 스릴이 있기 때문에 젊은 팬을 끌어들이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바둑의 질적 측면을 본다면 지나치게 속기전으로 흐르는 건 위험하다. 이건 그만큼 프로기사들이 한 수 한 수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줄어드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얕고 빠른 잔머리 회전만 발달시키고 깊은 사유의 능력은 쓰지 않게 되는 것이다.

 

쓰지 않는 능력은 퇴화하게 마련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바둑은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는 깊은 사유를 통해 발달해왔다. 현대 바둑의 틀과 수준을 진일보시킨 우칭위안의 바둑이나 신포석을 창안한 기타니 미노루의 바둑, 처절하고 지독한 수로 점철되는 조치훈의 바둑과 어떤 위기에도 흔들림이 없는 이창호의 견고한 바둑 등 모든 위대한 기풍은 오랜 사유를 통해 탄생했다. 그런 사유가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기에 최고의 기사들은 제한시간을 막론하고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속기 바둑에만 길들여진 젊은 프로들은 장고 바둑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길게 오랫동안 고민해본 적이 없기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기원 소속의 배태일 박사가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하여 발표한 자료가 있다. 물리학자인 그는 속기와 장고 바둑 사이에 진짜 바둑 실력의 함수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조사를 통해 그의 주장을 입증했다. 그는 젊은 프로 기사들을 '속기에 강한 그룹'과 '장고 바둑에 강한 그룹'으로 나누어 랭킹을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속기에 강한 기사들은 20~22세 때 실력이 최고조에 이른 이후로는 별로 늘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장고 바둑에 강한 그룹은 20대 초반에는 부진하지만 오히려 25세 이후로 실력이 늘어나 국제기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배태일 박사는 한국 바둑이 최근 들어 국제대회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는다. 국제대회도 시대에 맞춰 1시간짜리 속기전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잉창지배나 춘란배, 삼성화재배 같은 권위있는 대회는 2~3시간 장고 바둑을 고수하고 있다. 이창호와 이세돌이 활약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대회는 한국 기사들이 우승을 싹쓸이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중국 기사들이 우승을 차지하고 있고 일본 기사들도 대단한 활약을 한다. 바둑의 내용면에서도 우리가 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것이 너무 빠른 것만 추구하다가 우리가 치르게 된 대가라고 생각한다. 빠른 것은 쾌감을 준다. 재미있고 짜릿하다. 하지만 그것만 쫓다 보면 신중하고 사려 깊은 태도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정말로 진지하게 오랫동안 고민하여 결정해야 하는 때에 경솔한 판단을 하게 된다.

 

바둑 밖에서도 똑같다. 어른들이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매사에 너무 즉흥적이다. 이들은 이성보다도 감정을 앞세우고 기분에 따라 행동한다. 좋은 마음을 자제하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인내하지 못한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경솔한 행동, 후회할 일을 너무 많이 저지른다. 바둑으로 표현하자면 눈앞의 몇 수를 예측하지 못하고 잘못된 수를 놓는 것이다. 상사의 꾸지람에 즉흥적으로 사표를 냈다가 후회한다거나, 친구나 가족에게 모진 말을 퍼부어 상처를 준다거나, 실수나 잘못을 거짓말로 둘러댔다가 들통이 나는 일이 반복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 우리는 그럴수록 진지하고 신중한 사고를 훈련해야 한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은 조금만 더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일이다. 논문 표절로 고위 공직자 후보에서 낙마하는 사람이나 한마디 실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유명인 등 장기적인 면에서 깊게 생각하지 않은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우주류'로 유명한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은 단 하나의 수를 결정하기 위해 제한시간 8시간 중 무려 5시간 7분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 5시간 7분 동안 그는 정말 진지한 얼굴로 바둑판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은 그 장면이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바둑알 하나 놓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5시간이 넘게 고민을 한 것일까?

 

하지만 그 한 수의 차이는 실로 지대한다. 당장은 그저 돌 하나의 위치일 뿐이지만 긴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승부에 결정적 차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잘못 놓은 돌 하나가 훗날 내 목을 조이거나 내 등을 치는 약점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어떤 바둑을 하겠다는 다케미야 9단의 선택이기도 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그날 치를 대국이 영토 분쟁이 될 수도 있고 대마싸움이 될 수도 있다. 바둑의 미학을 중시했던 다케미야 9단은 그 5시간 7분 동안에 머릿속에서 수백 판의 바둑을 두고 허물고 두고 허물기를 반복하였을 것이다. 마침내 놓은 결정의 한 수, 그것은 세상을 향해 나는 이런 바둑을 펼쳐보겠다, 이런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그의 선언이었다. 결국 이 바둑에서 다케미야 9단은 승리했다. 나는 이것이 생각의 승리이자 실력의 승리라고 믿는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조훈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4. 27. 10:10

 

부모들은 고민에 빠진다.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키고, 학습지도 풀게 하고, 인터넷 강의도 듣게 했건만, 성적은 갈수록 더 떨어질 뿐, 자녀가 공부를 할 만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잘 안 나오면 부모 입장에서는 무척 당혹스럽다. 필자의 한 지인은 "우리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는 하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걱정이다"는 말을 5년째 되풀이 하고 있다. 그가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중1 아들은 고2가 되었다.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길래 성적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인 것일까? 지인에게 아들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지인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아들은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고, 학원자습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밤 열두 시간 다 돼서야 집에 들어왔다. 집에 와서도 밤 1~2시까지 공부를 했다. 나는 지인의 아들처럼 오랜 시간을 공부하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은 학교에 와서도 학원숙제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늦은 저녁까지 학원수업을 들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밤늦게까지 학원숙제에 매달렸다. 아이들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게 살았지만, 성적은 언제나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왜 성적이 부진했던 것일까?

 

나는 명문대 합격생과 학습법에 대한 연구를 수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명문대생의 합격수기서와 학습법 관련 책을 백 권 넘게 읽었고, 지금도 매달 신간을 구입해서 읽고 있다. 자녀교육서나 합격수기서를 읽어본 적 있는 부모라면 책에 소개된 방법들을 내 아이에게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지 난감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책에는 그럴듯한 공부법들이 소개되어 있었지만, 그것들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저자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책을 썼기 때문일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쓴 책들도 적용이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저자에게 최적화된 공부법을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똑같이 적용시킨다는 것도 무리였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과 특급 영재에 속했던 저자들 간의 차이가 너무 컸다. 명문대생들과 제자들 사이의 접점을 찾아보려 했으나, 종국에는 참새와 독소리의 공통점을 찾아내려는 시도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약간 과장하면 명문대생들과 내 제자들의 공통점은 학생이라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한편 저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사교육이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방해가 되었다'는 이들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교사의 설명을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노트필기는 되도록 자제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오답노트를 만들라'는 이들이 있었고, '시간낭비일 뿐이다'라는 이들도 있었다. '문제집을 백 권 넘게 풀었다'는 이들이 있었고, '두세 권만 풀었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상반된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 무척 혼란스러웠다. 특히 일부 학생들이 합격 비결로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거론할 때면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그동안 나는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혼란과 당혹감은 명문대생들의 합격수기서와 학습법 관련 책들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차츰 해소되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각양각색의 공부법을 관통하는 공부의 '제1원칙'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제1원칙은 자녀교육의 제1원칙으로 삼아도 손색없을 만큼 절대적인 법칙이다. 제1원칙은 자녀를 키우면서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 올바른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제1원칙은 풍문에 현혹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소신 있게 자녀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1원칙은 자녀교육의 실패확률을 대폭 낮춰줌과 동시에 성공 확률을 대폭 높여준다. 대체, 그 원칙이 무엇이냐고? 제1원칙을 찾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야 한다.

 

도착한 곳은 몇 년 후 미래. 어느 여름날. 당신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고, 현재 시각은 밤 11시.

겨우(?) 밤 11시인데, 애가 벌써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란 당신.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잠시 숨을 고른 후, 운을 떼었다.

"얘야, 너도 내년이면 고3인데, 너무 일찍 자는 거 아니니? 공부 좀 더 하고 자거라."

"엄마, 갑자기 왜 그래? 난 하루에 4시간만 공부하는 거 몰라?"

 

4시간만 일(공부)하고 퇴근(?)하겠다는 미래의 아들(딸)에 대한 당신의 대처가 궁금하다. 그냥 자도록 내버려두겠는가, 공부를 좀더 하는게 어떻겠냐고 회유하겠는가? 당신이 4당 5락을 입시의 진리로 받들던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4시간 공부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을 것 같다. 사실, 고등학생에게 하루 4시간 공부가 과도한 학습량은 아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일일 학습시간은 4시간이 훌쩍 넘는다. 이는 하루 4시간 공부로는 명문대 합격은커녕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4시간만 공부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자녀 때문에 근심에 잠긴 당신에게, L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왜냐하면 그 또한 고교시절 내내 하루 4시간만 공부했기 때문이다. 공부한 시간만 놓고 판단했을 때, 당신 아이나 L군이 명문대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필자도 고3, 재수생, 삼수생, 장수생으로 기나긴 세월을 입시 공부에 매달려 봐서 잘 안다. 하루 4시간 공부로는 서울 소재 대학은커녕 지방 국립대도 장담할 수 없다. 하루에 4시간만 공부하고 책을 덮어 버린 배짱 두둑한 L군, 그는 과연 어느 대학의 배지를 달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입학했다. '설마, 서울대?' 그렇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최고 학부에 합격했다는 사실이다. '최고 학부라 함은?' 의대 말이다. '하루 4시간 공부로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혹시 재수라도 한 건 아닐까?' 그렇진 않다. 그는 스무 살 현역으로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L군이 명문대에 들어갔다면 다른 수많은 학생들 또한 명문대에 들어갔어야 함이 마땅하다. 4시간 이상 공부하는 고등학생은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학생들은 L군처럼 탁월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L군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하루 4시간 공부로 어떻게 최고 대학의 최고 학부에 합격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효율성에 있었다. 즉, 그는 최소의 학습시간을 투입해서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효율적인 공부를 했던 것이다. 수업시간을 쉬는 시간처럼 보내는 대다수 학생들과 달리, 그는 수업시간에 단 한 번도 한눈을 판 적이 없었다. 그는 수업시간을, 기본개념을 다지고 내신시험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적극 활용했다. '고액 과외나 족집게 강의를 들었던 것 아닐까? 놀랍게 또는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L군은 고교시절 내내 사교육을 일절 받지 않았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 어떻게 명문대에 합격할 수 있는지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볼 때, 사교육을 받지 않느 것이 공부에 훨씬 더 유리하다. 왜 그렇냐고?

 

배운 것을 가능한 많이, 오래 기억할수록 공부의 효율성은 높아진다. 그렇다고 한다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야 할까? 쉼 없이 새로운 내용을 배워야 할까, 배운 내용을 수시로 익혀야 할까? 알다시피 사람의 기억력이란 그리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바로 앞쪽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려보라. 불과 일분 전에 읽은 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 않은가. 당신의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원래 인간의 뇌가 망각에 취약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깜빡깜빡 잘 잊어버려서 때때로 불편하고 낭패를 볼 때도 있지만, 망각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평생 경험하는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저장된다면 우리는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망각 덕분에 과거의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일상에서 망각은 때때로 유익하지만, 공부에서 망각은 치명적이다. 망각은 선별과 자비를 모른다. 때문에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까지도 망각의 강 저편으로 끌어가 버린다. 책장을 넘기고 있는 아이는 지식의 조각들을 매순간 망각의 강에 흩뿌리고 있다. 망각의 강을 타고 떠내려가는 지식 조각들은, 즉각 건져내지 않으면 망망대해 속으로 영영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결국,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 지식을 주워 담았던 아이의 머릿속에는 한 조각의 기억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한 남자가 수백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유럽 여행을 떠났다. 긴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첫날. 소파에 앉아 지친 심신을 달래며 여행의 추억에 젖어들려는 찰나, 남자는 자신의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행히 지갑에는 비행기 왕복 티켓이 남아 있었고, 두 장의 티켓을 통해서 자신이 15박 16일 동안 유럽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무지한 남자, 여행을 다녀온 것이 맞을까?

 

뜬금없이 남자를 등장시킨 까닭은 당신 아이가, 여행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처럼, 무의미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갈하기 위함이다. 나는, 어리석은 남자처럼 어리석게 공부하는 아이들을 매일매일 목격한다. 아이들은 학교, 학원, 집을 순회하며 하루 종일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어제 배운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잊어버릴 거라면 실컷 놀고 푹 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렇다고 아이들을 놀리자는 말은 아니다. 망각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대처일 것이다. 다행히 망각을 극복할 비법이 있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이라서 비법이라는 표현을 쓰기가 좀 민망한데, 비법은 복습이다. '에잇, 비법이 고작 복습이야? 참 시시하네.'

 

이런 식으로 복습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자녀의 기억력을 과신해선지, 어린 자녀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부모들은 복습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자녀가 끊임없이 배우기를,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 결과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학원에서 배우고, 과외로 배우고, 인터넷으로 배우고, 학습지로 배우고, 하루 종일 배우기만 하다가 잠자리에 든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무언가를 또 배우는 아이에게 복습이 가능할까? 복습을 안 하면 오늘 배운 지식들은 망각의 강물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학생이라면 누구나 사교육과 자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둘 다 하면 안 되나?' '하루가 48시간으로 늘어나지 않는 한, 자습과 사교육을 양손에 거머쥐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봄 초록의 싱그러움과 가을 낙엽의 정취를 동시에 만끽할 순 없는 법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L군 또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고, 자습을 선택했다. 사교육을 완전히 배제한 그는 모든 공부시간을 자습으로 채워 넣었고, 자습시간 동안 심화학습과 수능공부에 주력했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 4시간만 공부했기 때문에 잠도 충분히 잘 수 있었다. 하루에 7시간씩 수면을 취했고, 저녁 식사 전후로 한 시간씩 쪽잠도 잤다. 충분한 수면 덕분에 그는 깨어있는 동안 공부에 완벽히 몰입할 수 있었다. L군은 자신의 공부 방식을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공부시간이 적었지만 실제로 공부한 양은 다른 학생들의 두세 배에 달했다."

 

명문대 합격생들은 자신만의 공부 노하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공부 비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것이다.

 

'효율적으로 공부하라!'

 

이 문장이 바로, 공부의 제1원칙이다. 그리고 자녀교육의 절대 법칙이다. 뼈 빠지게 일한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혹독하게 공부한다고 해서 우등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이 4시간을 공부하지만, 어떤 학생은 유명대학에 가고, 어떤 학생은 무명대학에 간다. 열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열심히는 기본이고, 제대로 해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공부를 한다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도 학습량과 실력은 쌓이지 않는다.

 

당신 아이가 학창 시절 내내 비효율적인 공부를 한다면 당신이 자녀교육에 쏟은 열정과 헌신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자녀교육에 실패한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더구나 자녀교육의 실패는 부모의 실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녀교육의 성패에 따라 자녀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부모로서 성공하고 싶다면, 당신 아이가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가기 원한다면 공부의 제1원칙을 자녀교육의 제1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자녀교육을 함에 있어서 모든 선택과 판단의 기준을 '효율성'에 두어야 한다.

 

초등 6년이 자녀교육의 전부다_ 전위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4. 11. 14:03

 

'꿈꾸는 다락방'으로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지성, 그는 전주교대를 졸업한 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고, 현재는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나는 그에게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끼곤 하는데, 그가 전주에서 교육대학교를 다녔던 시기에 나 또한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가 초등 교사로 재직하던 시기에 나 또한 초등 교사였고, 그는 작가로서 나의 롤모델이기 때문이다. '인생아, 고맙다'는 이지성이 겪은 이십대 시절의 방황과 아픔을 상세히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한다.

 

"세상 무엇이 가로막더라도 작가의 길을 가겠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작가가 되겠다,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이지성은 저서에서, "내 젊은 날은 방황과 고독, 결핍과 상처로 얼룩진 암흑 그 자체였다"고 회고한다. 그는 대학시절 내내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처절하게 노력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졸업을 앞두게 되었고, 깊은 절망에 빠졌다. 당시의 착잡한 심정을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4학년이 되자, 친구들은 화사하고 멋진 정장을 입고 교생실습을 나갔다. 친구들이 그렇게 어른스러워 보일 수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작가도 되지 못하고 교사도 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는 건가.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내 인생은 무엇인가. 학교에만 가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열아홉 살에 대학을 갔다고 하니,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 일이다. 잠시, 우리의 스물두 살을 떠올려보자. 당신은 스물두 살 때 무얼 하고 지냈는가? 평범하게 살았다면 대학생활의 낭만을 만끽하고 있었거나, 군대에 가 있었거나, 직장을 다녔거나, 취업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지성처럼 존재에 대한 회의와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방황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이지성의 글을 읽으면서 젊은 날 그가 감내해야 했던 시련과 아픔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시련과 아픔이 부러웠다. 뭐 그런 걸 다 부러워하냐고? 세속적인 기준만을 놓고 따졌을 때, 스물둘 전위성은 스물둘 이지성보다 남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신 7등급이라는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포자기의 나날을 보내던 내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시기가 고2겨울 즈음이었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2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셈이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법,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었고, 나에겐 시간이 더 필요했다. 재수를 했다. 원서를 한 군데도 넣지 못할 만큼 참패했다. 삼수를 했다. 원서를 넣은 세군데 대학에 모조리 낙방했다. 삼수를 실패한 것도 암울한데, 한 달 뒤에 입영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나는 몰랐다. 최종 학력이 고졸인 스물두 살 남자는 군대에 강제 징집된다는 사실을. 끌려가듯 훈련소에 입소했다.

 

스물셋 이지성은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주어지는 교대 졸업장을 손에 쥐었지만, 스물셋 전위성은 삼수를 실패한, 고졸 학력이 전부인 군인이었다. 부끄럽다, 초라하다, 비참하다, 죽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내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한 적도 없다. 그건 내가 긍정적 사고방식을 소유한 낙관주의자라서가 아니었다. 인생과 앞날을 걱정할 만큼 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개념으로 살았기 때문에 삼수를 실패했어도 고통스럽지 않았고, 군대에 끌려갔어도 슬프지 않았고, 고졸 학력이 전부였어도 절망하지 않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던가. 나에게는 아품마저도 사치였다. 아픔을 느낄 수 없는 청춘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희망도, 절망도,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정신적 뇌사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것이 방황, 고독, 상처, 결핍, 좌절로 점철된 스물둘 이지성을 내가 부러워하는 이유다. 지금 내 신세를 한탄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당신 아이가 나와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나는 왜 이십대 중반까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해야 했을까? 성공한 이들은 나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그들은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최적의 환경,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우월한 조건을 갖췄던 것일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희귀병을 앓고 있는 1급 지체장애인, 뺑소니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못 쓰게 된 청년, 불의의 사고로 오른손을 잃게 된 군인,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다섯 살에 고아가 된 아이, 16개월 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는 고교자퇴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있는 고졸청년, 15년째 출판 거절을 당하고 있는 무명작가. 이들은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실패할 확률이 높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이들이 성공은커녕 밥 벌어 먹고 살기도 힘들 거라고 판단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나는 최고다 될 것이다", "나는 성공할 것이다"라고 외쳤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네 분수를 알아라.", "너 미쳤냐?"라고 비아냥거렸다.

 

여기, 주제 파악 못하는 젊은이가 또 한 명 있다. 학창 시절, 그의 번호는 언제나 1번 아니면 2번이었다. 키가 158.7c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젊은이는 예술대학에 지원했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그는 단돈 30만 원을 들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시장골목 한 구석에 있는, 보증금 없는 월 12만 원짜리 방을 구했고, 3개월 과정의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그는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발성 연습을 했다. 지독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았다. 그는 공연에서 남자주인공으로 열연하게 되었고,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연기상도 받았다. 연기학원을 수료하던 날, 학원장은 면담 자리에서 그에게 말했다.

 

"넌 키가 유난히 작아서 연기 활동하는 데 장애가 많을 거다. 아마 방송 출연은 어려울 거야. 방송 관련된 다른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

 

이것은 작은 시련에 불과했다. 그의 삶은 탈락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MBC 공채시험에 4번, KBS 공채시험에 3번 떨어졌고, 수년 동안 원서를 넣은 대학에 모조리 낙방했다. 연이은 실패에 좌절한 그는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수면제 40알을 모았고, 옥상 난간에 서보기도 했다.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너처럼 운 없는 놈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다."

 

좌절은 했어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평생을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이 있었고, 희극배우가 되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옥탑방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방송국을 보면서 다짐했다.

 

"난 저기 꼭 들어간다. 방송국아, 기다려라. 지금은 내가 여기서 너를 보지만, 언젠가는 방송국에서 여기를 볼 날이 있을 것이다."

 

그는 7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KBS 공채시험에 합격한다. 현재 그는 영화, 연극,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시련과 좌절을 딛고 성공을 일궈낸,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능인 김병만이다.

 

그들은 성공은커녕 실패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났거나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고, 스무 살에 가장이 되었다. 찢어지게 가난했고, 타고난 재능도 없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었고, 그로 인해 수없는 좌절과 실패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악조건에 굴하지 않았고, 암울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았으며, 거듭되는 실패에 무릎 꿇지 않았다. 끈질기게 도전했고, 무소의 뿔처럼 전진했다. 이러한 불굴의 정신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들이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꿈과 목표에 있었다. 그들에겐 생각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간절한 꿈이 있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뤄내고 싶은 비장한 목표가 있었다.

 

흔히,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을 꼽는다. 이 말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생뚱맞다. 부모가 자녀의 학업성취에 중요한 변수라는 사실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부모 요인에 재력, 무관심, 정보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성적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는 학생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다. 그 의지와 노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꿈과 목표다. 실제로 명문대 합격생들은 확고한 꿈과 명확한 목표를 갖고 공부에 임했다. 그들은 원하는 대학, 가고 싶은 학과, 장래희망을 학창 시절에 이미 확고히 정해 놓았다. 여기서 잠깐, 서울대생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했다. 물론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공부를 했지만, 크면서 서울대에 진학하고 싶은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참 열심히 공부했다."

"중학교 때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교 1등은 해야 된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서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전교 1등을 꼭 해야 한다는 목표를 확실하게 세웠다. 이것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1등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다. 그 후 나는 정말로 1등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반문하는 부모들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서울대는커녕 반에서 중간도 못가는 실력이다. 공부에 특출난 재능을 갖춘 명문대생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아이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들이 서울대에 갈 수 있었던 것은 꿈이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갈만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 아닌가? 꿈과 목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잘하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런 의문을 품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명문대에 들어갈 만큼, 공부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학생들도 이루고 싶은 간절히 꿈과 목표가 있는데, 재능도 실력도 노력도 부족한 당신 아이에게 꿈과 목표마저 없다면, 대체 무슨 수로 그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꿈도 목표도 없는 당신 아이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죽어라 공부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목숨걸고 공부하는 그들을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당신의 어린 자녀에게 기권과 포기부터 가르칠 셈인가"

 

때때로 나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회한에 잠기곤 한다. '나느 왜 스물넷까지 고졸백수로 살아야만 했던가.' '수없이 자문해 보았지만, 결론은 항상 똑같았다. 순리대로 흘러간 것이다. 인생이 잘 풀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남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특출난 재능도 없었고, 출중한 실력도 없었다. 환경도 상당히 열악했다. 무엇보다도 꿈과 목표가 없었다. 눈물날 만큼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이 없었다. 죽음을 각오할 만큼 비장한 목표가 없었다. 꿈 없는 내 청춘은 신경세포가 괴멸된 듯 무감각했다. 목표 없는 내 젊음은 뇌세포가 마비된 듯 무기력했다.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스물넷의 8월 1일을. 그날은 내 생일도 아니었고, 어떤 기념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새롭게 태어난 역사적인 날이었다. 재능도 없었고 환경도 열악했지만, 간절한 꿈과 비장한 목표를 갖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훌륭한 교육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고, 교대 입학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듬해 나는 고졸백수를 탈출했고, 4년 뒤 초등 교사가 되었다.

 

당신 아이에겐 꿈이 있는가? 목표가 있는가? 공부를 안 한다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걱정할 일이 아니다. 당신이 진짜로 걱정해야 할 것은, 꿈 없는 당신 아이가 고통도, 좌절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식물인간처럼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목표 없는 당신아이가 이십대 중반까지 고졸백수로 살면서 아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렇게 살아봤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신 아이에게 꿈과 목표가 없다면 성적이 떨어지는 것보다, 재수 삼수를 하는 것보다, 청년 백수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암울한 일이다.

 

재능이나 환경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성공의 조건은 노력이다. 99%의 노력이 천재를 만들고, 많이 아는 사람도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재능과 실력도 노력을 했을 때만 갖출 수 있는 것이다. 당신 아이가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것이 공부든 다른 무엇이든 쉼 없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그 쉼 없는 노력은 꿈과 목표로부터 나온다.

 

일등, 백점, 우등생, 명문대, 성공은 꿈과 목표라는 씨앗을 뿌렸을 때 비로소 거둘 수 있는 열매들이다. 많은 부모들이 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씨앗을 뿌리지 않고, 열매만 수확하려 든다. 자녀에게 목표를 세워보라고 조언하지 않고, 날을 세워서라도 백점을 받아오라고 종용한다. 꿈을 가지라는 말은 하지 않고, 학원을 가라는 말만 한다. 당신은 어떤 부모인가? 백점 맞아라, 학원가라를 외치는 부모인가? 꿈이 무엇이냐, 무슨 목표를 세웠냐고 묻는 부모인가?

 

꿈과 목표는 인생이라는 배의 목적지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꿈과 목표없이 사는 인생은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다. 꿈 없는 인생의 끝은 좌초요. 목표 없는 인생의 결말은 난파다.

 

초등 6년이 자녀교육의 전부다_ 전위성

 

꼭 꿈과 목표가 있어야만 노력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꿈과 목표가 없어도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꿈과 목표가 있다면 끊임없이 노력할 확률은 높다. 꿈과 목표가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데, 억지로 꿈과 목표를 세울 순 없다, 그래도 어쨌든 참고가 될 만한 글이기에 올려본다.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4. 11. 13:08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부모의 말 한마디에 자녀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로, 자신감입니다. 자녀를 우등생으로 키워내고 싶은가요? 오늘부터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아들아, 넌 할 수 있어!"

"딸아, 네겐 그것을 해낼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어!"

 

어떻게 하면 이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먼저 자신감을 심어주는 부모의 말이 자녀교육에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겠지? 논문을 검색해볼까? 성공한 부모들과 명문대생들의 예화를 찾아볼까?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례들을 싣지 않기로 했다. 자신감이라는 정서적 요소를 무미건조한 통계 수치로 치환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성공한 부모들의 사례나 명문대생들의 일화는 식상한 면이 없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논문이나 성공담을 소개하는 것으로는 메시지 전달에 흡입력이 떨어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호소력 짙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긴 고민 끝에, 내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저자나 독자 모두 논문의 숫자놀음은 따분하고 머리 아플 테고, 일면식도 없는 성공자들의 목소리를 나열하는 것보다는 저자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이 독자들의 가슴에 더 와 닿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 나는 비관과 절망의 포로가 되어 자포자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일일곱 꽃 같은 나이에 인생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이다. 포기와 나태의 대가를 치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학하고 두 달 만에 중간고사를 치렀고, 며칠 뒤에 성적표가 나왔다. 48명 중 10등이었다. '10등이면 잘한 것 아닌가?' 벌써 잊었는가? 뒤에서 10등이었다. 내 앞에 38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밀려드는 좌절감, 한국말로 진행되는 수업을 알아듣지 못하는 당혹감, 해답지를 봐도 뭔 소린지 몰라서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참담함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간혹 어떤 책들을 읽다 보면 저자가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과대 포장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지금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내 말은 과장이 아니다. 고교시절의 방황 때문에 나는 스물네 살까지 고졸백수로 살아야 했다. 믿거나 말거나, 진짜로 그랬다. 당시에는 '짜증난다, 재수없다, 죽고 싶다'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겨우 열일곱 나이에 비관과 염세의 늪에 빠져 인생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절망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이 많은 부모라면 여기서부터 좀 더 진지하게 읽어주길 바란다.

 

밑바닥을 모르고 끝없이 침전하던 나를 건져 올려 준 사람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는 내 인생의 은인이자 구세주였다. 은인이 내게 공부를 가르쳐 주거나 장학금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내게 준 선물은 바로 이것이었다.

 

"넌 할 수 있어!"

 

고작 다섯 글자였지만, 내겐 천금보다 값진 말이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린 줄 알았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은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내게 편지로, 전화로, 만날 때마다 쉼 없이 외쳐댔다.

 

"넌 할 수 있어!"

"네겐 무한한 능력이 있어!"

"넌 무조건 잘 될 거야!"

 

자폐적 삶을 살아가던 내 처지에선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그런데 아는가? 아무리 무능하고 비관적이고 무기력한 사람일지라도 '넌 할 수 있다'는 말을 수년 동안 반복적으로 들으면 두뇌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2년이 흘렀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아무런 변화도, 성과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은인은 여전히 외쳐댔다.

 

"넌 할 수 있어!"

 

그 쉼 없는 외침에 나를 감금했던 절망의 벽이 조금씩 금갔고, 갈라진 틈에서 새어 나온 빛줄기들이 나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희망의 빛이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어', '그냥 되는대로 살자',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비관에 빠져 있던 나에게 희망의 날개가 돋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거 같아!',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지 몰라!','사람답게 살고 싶다!'

태양이 지평선까지 내려앉은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아침을 소생시키듯,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은 비관과 절망에 빠진 나를 소생시키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내게도 그 능력이란 게 있을지도 몰라.'

그와 동시에 나를 끝까지 믿어준 은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날 믿어주는데, 그 믿음을 져버릴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절망의 벽을 깨부수고, 빛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절망의 동굴을 벗어나 희망의 광야로 들어선 것이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만일 내게 은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절망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었을 거라고, 밑바닥 삶에서 희망을 꿈꿀 수 없었을 거라고,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은인을 생각할 때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감사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른다.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서 밝힌다. 은인은, 나의 친누나였다.

 

당신은 어떤 부모인가? 자녀에게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한 적이 있는가? 자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적이 있는가?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눈에서 감사의 눈물 대신 원망의 눈물을 쏟게 만들고 있다. 자신감은 불어넣지 않고, 잔소리만 불어넣고 있다.

 

당신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 줄 사람이 있는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희망의 밧줄을 던져줄 사람이 있는가? 수년 동안 변화와 진전이 없어도 끝까지 믿어 주고 격려해 줄 사람이 있는가?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안타깝지만, 당신 아이에게는 그런 은인이 없을 것 같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우리 아이에게 그런 사람이 왜 없나? 엄마인 내가 있는데! 아빠인 내가 있는데!'

 

그렇다. 당신 아이에게 은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바로 당신이다. 오직 당신 밖에 없다. 그 어떤 사람도 당신 아이에게 '넌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당신이 수십 년을 살아오는 동안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던 사람이 몇이나 있었던가를. 당신 아이도 똑같은 처지다. 부모인 당신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당신 아이 또한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평생 듣지 못할 것이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자녀교육의 진리다. 특히,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잘 새겨듣기 바란다. 이제 당신이 자녀의 공부에 도움으 줄 수 있는 일은 오직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 밖에 없다. 물론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많은 부모들이 '공부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한다. 반면 '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부모는 없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자녀에게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준 적이 언제였던가.

 

당신이 자녀에게 불어넣어 주어야 할 것은 잔소리가 아니다. 자신감이다. 오늘부터 "공부해라!", "공부해라!", "공부해라!" 대신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외치는 부모가 되라. 오늘 당신이 외친 이 말 한마디가 자녀의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자신감, 당신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이자,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초등 6년이 자녀교육의 전부다_ 전위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4. 11. 12:11

 

옛날에 나무 네 그루가 모여 살았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최고라고 뽐냈다. 첫 번째 나무가 자랑한다. "나는 단단하고 몸통이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최고급 가구를 만드는 목수들이 나를 좋아하지." 두 번째 나무는 "나는 아주 맛있는 열매를 많이 맺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나를 아주 좋아하지"라며 으쓱한다. 세 번째 나무가 이에 질세라 뽐낸다. "나는 아주 향기로운 예쁜 꽃들을 많이 맺기 때문에 귀부인들이 나를 아주 사랑하지."

 

구석에 쳐 박혀 있던 네 번째 나무는 아무 자랑도 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구불구불 자라고 껍질도 딱딱한 그 나무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저마다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를 말하던 나무들은 사람들에 의해 하나둘 베어졌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네 번째 나무만 덩그러니 남는다. 더운 여름이 오자 사람들이 이 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아, 이 나무 그늘 정말 시원하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500여 년 전 중국의 철학자 장자가 말한 '무용지물'. 즉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의 우화다. 왜 장자는 무용지용을 말했을까? 도대체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 철학자들은 왜 이렇게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것일까?

 

한 회사에서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던 연구원이 있었다. 개발하는 것마다 접착력이 떨어지자 그는 사내 게시판에 공고를 낸다. "이 쓸모없는 접착제가 필요한 사람은 가져다 쓰세요." 이때 성경책 북마크용 접착제를 개발하던 연구원이 그 접착제를 쓰겠다며 찾아온다. 자신이 개발 중인 접착제는 접착력이 너무 강해 한 번 책장에 붙이면 뗄 때마다 종이가 찢어져서 고민이었다. 그런데 접착력이 떨어지는 쓸모없는 접착제를 가져와 사용해보니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해도 괜찮았다. 이것을 시장에 내놓자 대박이 터진다. 바로 3M의 '포스트잇'이야기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 된 실제 사례다.

 

조롱박으로 물병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물병은 물을 충분히 담을 수 있고 또 가지고 다니기에도 편리해야 한다. 그 용도에 꼭 맞는 조롱박만을 골라 물병을 만들었다. 어느 해, 엄청나게 큰 조롱박만 주렁주렁 열리자 고민에 빠진다. 큰 조롱박으로 물병을 만들면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고, 조롱박을 잘라도 너무 커서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조롱박을 헐값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자 가게 밖에 수북이 쌓아 놓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와서 그것을 쓸어 담아가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그 큰 조롱박 둘레에 그물을 씌운 다음, 그것을 허리에 동여매고 물에 띄었다. 조롱박이 커서 공기를 충분히 담을 수 있었기에 둥둥 잘 떴다. 조롱박 안에 물을 담는 것이 신통치 않으면, 바깥에 담을 수도 있지 않은가! 장자가 말하는 무용지용의 또 다른 사례다.

 

장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물의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은 사물에 내재된 속성이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용처를 아는 사람에게는 쓸모 있는 것이고, 용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리만이 있을 뿐이다.

 

철학과 입시생들의 면접을 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모두 부모와 싸우고 온다.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는 순간 전쟁 시작이다. "하고 많은 전공 중에 왜 하필 철학을 하겠다는 거냐."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말이 있다. "너 그럼 굶어 죽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 공부해서 뭐 하려고 그래." 1973년에 연세대 철학과 원서를 쓸 때의 나도 그랬다.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하셨다. 그래도 나는 무슨 생각인지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 쓸모없는 철학으로 더 오래 살아남았다. 철학, 인문학의 그 쓸모없음에 쓸모 있음이 있다.

 

실용을 앞세우는 분야일수록 정신없이 쏟아지는 이론들이 다음날이면 폐기 처분된다. 그러나 철학은 2500년 전 스승들의 말씀이 그대로 남아 우리에게 지혜와 통찰을 준다.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고전으로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철학의 힘은 현실에서 힘이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나온다. 철학한다고 돈이나 권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 철학은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일까?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다. 무엇이 쓸모 있고 없는지는 바로 우리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고, 쓸모 있는 것이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한 장자는 이 모든 것이 우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부디 철학을 만나시길. 인문학을 만나시길. 그 만남이 얼마만큼 쓸모 있을지는 온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다.

 

철학의 힘_ 김형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31. 13:50

자녀가 뭐든지 잘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접고,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나 자기가 가진 능력 중에 뛰어난 것이 있음을 일찍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 그것에 스스로 매진할 수 있는 지구력을 키워 주어야 한다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_ 박경애

적극적인 격려는 소극적인 자극보다 효과 면에서 더 좋은 방법이지만 남용하면 효과가 줄어든다_ 천허친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14. 09:06

 

자제가 안 되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부모의 훈육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아이들은 어린 시절 자주 심하게 벌을 받았다. 심지어는 사소한 실수에도 부모로부터 뺨을 맞고, 주먹으로 맞고, 발로 채이고, 두들겨 맞고, 회초리로 맞았다. 그런데 이러한 훈육은 의미가 없다. 절제되지 않은 훈육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훈육이 무의미한 이유는 부모 자신들이 자제가 안 돼 있어서 아이들에게 그런 행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말한 대로 하고 내가 행동하는 대로 하지 마라"고 하는 부모다. 그들은 아이들 앞에서 자주 술 취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위엄도 조심성도 분별도 없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되는 대로 살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할 것이다. 부모의 삶이 무질서하고 정신없으면서 자녀들에게 절제된 생활을 가르치려는 것은 먹히지 않는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주기적으로 때리는 가정에서, 여동생을 때렸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아이를 때리면 아이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에게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하면 아이는 그 말이 이해가 될까? 어릴 때는 비교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어린 눈에 비친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부모가 하루하루 자제하고 조심스럽고 품위 있게 행동하고 질서 정연한 생활 능력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마음속 깊이 이것이 사는 방식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매일을 무질제하게 제멋대로 사는 부모를 보아도 아이들은 마음속 깊이 이것이 삶의 방식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때로 무질서하고 정신 사나운 가정에도 진실한 사랑이 존재한다. 이러한 가정에서는 절제할 줄 아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다. 의사, 변호사, 여성 사업가, 자선 사업가와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주 절도 있고 단정하게 생활하는 부모이기 쉽다. 그러나 만약 사랑이 부족한 경우 그런 부모들은, 가난하고 무질서한 가정에서 자란 여느 아이들처럼 무절제하고 파괴적이고 정리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길러낸다.

 

결국 사랑이 전부다. 사랑의 신비함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검토할 것이다. 그러나 책 전체의 유기적인 관계를 위해 이 시점에서 사랑과 훈육과의 관계에 대해 부분적이나마 간략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가치 있다는 의미이고, 어떤 것이 가치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에 시간을 투자한다. 그것을 즐기고 그것을 돌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자동차와 사랑에 빠진 십대를 유심히 보라. 아이는 그 자동차를 홀린 듯 바라보고 광을 내고 수리하고 튜닝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혹은 사랑하는 장미 정원에 있는 노인을 보라. 그는 정원에서 가지를 쳐내고 뿌리를 다독여주고 거름을 주고 정원을 자상하게 살피면서 시간을 보낸다. 자녀를 사랑할 때도 이와 같다. 우리는 아이들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돌보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제대로 훈육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자녀에게 줄 시간이 없거나 시간을 들일 마음이 없으면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에게 훈육의 필요성이 은근히 드러나는 순간을 놓치고 만다. 훈육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때도, 아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에 이를 무시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서 "그저 오늘은 아이들을 돌볼 에너지가 없을 뿐이야."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침내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 짜증을 돋우면 어쩔 수 없이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 때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 문제에는 어떤 훈육이 가장 좋을지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도 않고, 교육적 의도에서라기보다는 화가 나서 가혹하게 훈육을 하게 된다.

 

아이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부모는 아이가 확실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아이를 훈육해야 할 미묘한 순간도 알아차리고 애정과 배려로 부드럽게 타이르거나 야단치거나 방법을 알려주거나 칭찬을 한다. 그러한 부모는 아이가 어떻게 케이크를 먹고, 어떻게 공부를 하고, 어느 때 살짝 거짓말을 하는지, 어느 때 문제에 부딪치기보다는 문제에서 도망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대답하고, 이럴 때는 약간 조이고, 저럴 때는 약간 풀어주고, 조금 가르치기도 하고, 이야기도 좀 들려주고, 살짝 안아서 뽀뽀도 해주고, 훈계도 좀 하고, 살짝 등을 두드리면서 시간을 들여 이러한 사소한 문제를 고쳐주고 바로잡아준다.

 

그러므로 사랑이 넘치는 부모의 훈육 방식은 사랑 없는 부모의 그것보다 질적으로 월등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는 아이의 욕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결정을 내릴 때 괴로워하고 말 그대로 아이와 고통을 함께한다. 아이들은 맹인이 아니다. 부모가 자기와 고통을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당장 고마움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아이들 역시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기꺼이 나와 함께 고통을 받고 있으니 고통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닐 거야. 나도 기꺼이 괴로움을 견뎌야지" 라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자기 절제의 시작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치는 시간의 질과 양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근본적으로 사랑이 없는 부모는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서 아이에게 자주 사랑을 고백하고, 정말 친밀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한다. 아이들은 결코 이러한 공허한 말에 속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하면서 의식적으로 그 말에 집착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부모의 말이 행동과 다르다는 것을 안다.

 

이와 반대로, 진정으로 사랑받는 아이들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무시당했다 주장하고 억지를 부릴지라도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차린다. 이러한 인식은 황금보다도 가치가 있다. 자신이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 다시 말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느낀다면, 스스로 소중하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며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그것은 부모가 주는 사랑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러한 믿음은 어린 시절에 획득해야만 한다. 성인이 돼서 그것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다. 역으로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은 어른이 되어 시련을 겪더라도 그러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이 느낌은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돌보게 된다. 자기 절제는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다.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계획을 세우고 일의 순서를 정하는 방법을 이야기해왔으니 시간의 문제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만약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면 시간을 소중하게 느끼게 되고 시간이 소중하게 생각되면 시간을 잘 이용하고 싶어진다. 앞서 소개한, 일을 미루기 일쑤였던 재무분석가는 자기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중하게 생각했더라면 하루의 대부분을 그렇게 비생산적이고 불행하게 보내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우연히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원했다면 완벽할 정도로 잘 돌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돈을 받고 아이를 돌보는 집으로 그녀를 보내버렸다.

 

부모는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이며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끼며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절제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지적이고 유능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절제에 관한 한 가장 기초적인 학습이 필요했다. 자기 가치와 자기 시간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면, 시간을 절약하고 계획을 세우고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어린 시절에 부모의 변함없는 사랑과 돌봄을 받은 운 좋은 아이들은 자기 가치를 마음속 깊이 인식할 뿐만 아니라 깊이 안정감을 느끼면서 성인으로 자란다. 모든 아이들은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는데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은 생후 6개월에 접어들 무렵, 즉 자신이 부모와는 분리된 개별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서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은 아주 무력하다는 것, 즉 모든 삶을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한 온갖 것들을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그것이 모두 부모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에게 버림받는 것은 죽음과 같다. 아이와 관련된 것이 아닐 때는 상대적으로 무심하거나 냉담한 부모도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는 본능적으로 민감하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수백 번 수천 번 되풀이해서 확신을 시켜준다.

 

"엄마 아빠가 너 혼자 내버려두고 가지 않는다는 것 알지?"

"당연히 엄마 아빠가 너를 데리러 올 거야."
"엄마 아빠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어도 이러한 말들이 행동과 일치하면 아이들은 청소년기가 될 때쯤 버림받는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세상은 안전한 곳이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보호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될 것이다. 세상이 언제나 안전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자유롭게 이런 저런 즐거움을 뒤로 미룰 줄 알고, 즐거움을 위한 기회는 집과 부모처럼 언제나 거기에 있으며 필요하면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확실히 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부모가 죽고 없거나 버림받거나 순전히 방치되거나 재무분석가의 경우처럼 단지 사랑이 결핍되거나 해서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아이들은 실제로 상당히 많다. 그런데 사실 버림받지 않는 아이들도 부모에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받지 못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어떤 부모는 가능한 쉽고 빠르게 훈육하고 싶어서 노골적으로든 은근하게든 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부모가 아이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게 무얼 말하는지 알겠지?"

 

물론 그것은 버림받음이고 죽음이다. 이러한 부모는 아이를 조정하고 지배할 필요 때문에 사랑을 희생한다. 그 대가로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아이들은 심리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버림받은 채, 세상은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장소라는 뿌리 깊은 의식 없이 성인에 이른다. 그들은 반대로 세상을 위험하고 무서운 곳으로 인식하고 미래에 더 큰 즐거움이나 안전을 보장받는다 해도 현재의 어떤 즐거움이나 안전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는 참으로 미심쩍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아이들은 스스로 훈육할 줄 아는 역할 모델과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 하고 존재의 안전함을 신뢰해야 한다. 이러한 '자산들'은 부모의 자기 절제와 순수하고 일관된 보살핌을 통해서 획득된다. 이것이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부모에게서 이러한 선물을 받지 못할 경우 다른 곳에서 획득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그 획득 과정은 힘든 투쟁이 된다. 때에 따라서는 평생 걸릴 수도 있고 그나마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 펙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0. 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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