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부모의 말 한마디에 자녀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로, 자신감입니다. 자녀를 우등생으로 키워내고 싶은가요? 오늘부터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아들아, 넌 할 수 있어!"

"딸아, 네겐 그것을 해낼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어!"

 

어떻게 하면 이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먼저 자신감을 심어주는 부모의 말이 자녀교육에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겠지? 논문을 검색해볼까? 성공한 부모들과 명문대생들의 예화를 찾아볼까?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례들을 싣지 않기로 했다. 자신감이라는 정서적 요소를 무미건조한 통계 수치로 치환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성공한 부모들의 사례나 명문대생들의 일화는 식상한 면이 없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논문이나 성공담을 소개하는 것으로는 메시지 전달에 흡입력이 떨어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호소력 짙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긴 고민 끝에, 내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저자나 독자 모두 논문의 숫자놀음은 따분하고 머리 아플 테고, 일면식도 없는 성공자들의 목소리를 나열하는 것보다는 저자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이 독자들의 가슴에 더 와 닿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 나는 비관과 절망의 포로가 되어 자포자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일일곱 꽃 같은 나이에 인생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이다. 포기와 나태의 대가를 치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학하고 두 달 만에 중간고사를 치렀고, 며칠 뒤에 성적표가 나왔다. 48명 중 10등이었다. '10등이면 잘한 것 아닌가?' 벌써 잊었는가? 뒤에서 10등이었다. 내 앞에 38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밀려드는 좌절감, 한국말로 진행되는 수업을 알아듣지 못하는 당혹감, 해답지를 봐도 뭔 소린지 몰라서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참담함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간혹 어떤 책들을 읽다 보면 저자가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과대 포장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지금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내 말은 과장이 아니다. 고교시절의 방황 때문에 나는 스물네 살까지 고졸백수로 살아야 했다. 믿거나 말거나, 진짜로 그랬다. 당시에는 '짜증난다, 재수없다, 죽고 싶다'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겨우 열일곱 나이에 비관과 염세의 늪에 빠져 인생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절망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이 많은 부모라면 여기서부터 좀 더 진지하게 읽어주길 바란다.

 

밑바닥을 모르고 끝없이 침전하던 나를 건져 올려 준 사람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는 내 인생의 은인이자 구세주였다. 은인이 내게 공부를 가르쳐 주거나 장학금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내게 준 선물은 바로 이것이었다.

 

"넌 할 수 있어!"

 

고작 다섯 글자였지만, 내겐 천금보다 값진 말이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린 줄 알았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은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내게 편지로, 전화로, 만날 때마다 쉼 없이 외쳐댔다.

 

"넌 할 수 있어!"

"네겐 무한한 능력이 있어!"

"넌 무조건 잘 될 거야!"

 

자폐적 삶을 살아가던 내 처지에선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그런데 아는가? 아무리 무능하고 비관적이고 무기력한 사람일지라도 '넌 할 수 있다'는 말을 수년 동안 반복적으로 들으면 두뇌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2년이 흘렀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아무런 변화도, 성과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은인은 여전히 외쳐댔다.

 

"넌 할 수 있어!"

 

그 쉼 없는 외침에 나를 감금했던 절망의 벽이 조금씩 금갔고, 갈라진 틈에서 새어 나온 빛줄기들이 나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희망의 빛이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어', '그냥 되는대로 살자',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비관에 빠져 있던 나에게 희망의 날개가 돋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거 같아!',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지 몰라!','사람답게 살고 싶다!'

태양이 지평선까지 내려앉은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아침을 소생시키듯,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은 비관과 절망에 빠진 나를 소생시키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내게도 그 능력이란 게 있을지도 몰라.'

그와 동시에 나를 끝까지 믿어준 은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날 믿어주는데, 그 믿음을 져버릴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절망의 벽을 깨부수고, 빛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절망의 동굴을 벗어나 희망의 광야로 들어선 것이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만일 내게 은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절망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었을 거라고, 밑바닥 삶에서 희망을 꿈꿀 수 없었을 거라고,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은인을 생각할 때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감사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른다.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서 밝힌다. 은인은, 나의 친누나였다.

 

당신은 어떤 부모인가? 자녀에게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한 적이 있는가? 자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적이 있는가?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눈에서 감사의 눈물 대신 원망의 눈물을 쏟게 만들고 있다. 자신감은 불어넣지 않고, 잔소리만 불어넣고 있다.

 

당신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 줄 사람이 있는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희망의 밧줄을 던져줄 사람이 있는가? 수년 동안 변화와 진전이 없어도 끝까지 믿어 주고 격려해 줄 사람이 있는가?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안타깝지만, 당신 아이에게는 그런 은인이 없을 것 같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우리 아이에게 그런 사람이 왜 없나? 엄마인 내가 있는데! 아빠인 내가 있는데!'

 

그렇다. 당신 아이에게 은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바로 당신이다. 오직 당신 밖에 없다. 그 어떤 사람도 당신 아이에게 '넌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당신이 수십 년을 살아오는 동안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던 사람이 몇이나 있었던가를. 당신 아이도 똑같은 처지다. 부모인 당신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당신 아이 또한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평생 듣지 못할 것이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자녀교육의 진리다. 특히,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잘 새겨듣기 바란다. 이제 당신이 자녀의 공부에 도움으 줄 수 있는 일은 오직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 밖에 없다. 물론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많은 부모들이 '공부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한다. 반면 '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부모는 없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자녀에게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준 적이 언제였던가.

 

당신이 자녀에게 불어넣어 주어야 할 것은 잔소리가 아니다. 자신감이다. 오늘부터 "공부해라!", "공부해라!", "공부해라!" 대신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외치는 부모가 되라. 오늘 당신이 외친 이 말 한마디가 자녀의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자신감, 당신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이자,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초등 6년이 자녀교육의 전부다_ 전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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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6. 4. 11. 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