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를 나오자마자 빵집에 가서 찾았던 것이 바로 이색팥빵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당시 천자봉 꼭대기에서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 이런 종류의 빵을 먹곤 있지만 그때 그 맛이 전혀 아니다. 왜일까?

 

훈련을 받던 당시에는 도통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특히 과자 같이 단 음식은 꿈도 못 꿨다. 사실 군에 있을 때는 이색팥빵이 아니라 건빵조차도 입에서 살살 녹았다. 졸병 시절, 나는 몰래 건빵을 숨겨 놓고 선임들이 안 볼 때 하나씩 꺼내 먹었다. 걸리면 큰 사단이 일어나는 것을 알면서도 모험을 했다. 그만큼 맛있었다.

 

세상의 모든 쾌락은 상대적이다. 만약 사탕이나 초콜릿을 매일 먹던 상황이었다면 이색팥빵이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민간인이 된 지금 나는 배가 고프지도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단 것을 먹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당시 이색팥빵의 맛을 느끼기란 불가능하다.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 반찬이 없어도 맛있는데, 배가 부르면 그 어떤 진수성찬이라도 별로 맛이 없는 것과 같다.

 

어디 음식뿐일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하루 종일 서 있을 땐 의자에 앉기만 해도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너무나 편하다. 하다못해 군에 있을 때 이전엔 그토록 힘들었던 공부가 하고 싶었다. 당시 일기장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 밖에 나가면 원없이 공부를 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바로 상대성 이론 때문이다. 훈련이 너무 힘드니 상대적으로 공부가 하고 싶어진 것이다. 고된 훈련에 비하면 차라리 공부는 너무 편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지옥 같은 훈련을 뒤로 하고 책을 볼 수 있다면 짜릿하고 행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훈련 중에는 책이란 존재를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혹 있더라도 절대 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책은 아니더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에게 영어문장을 몇 개 써서 보내 달라고 했다. 그것을 전투복 앞주머니에 넣어 놓고 틈만 나면 몰래몰래 보며 공부했다.

 

이처럼 모든 일은 상대적이다. 공부보다 상대적으로 더 힘든 일을 경험함으로써 공부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공부의 재미를 느끼려면 유혹거리들을 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시험기간만 되면 평소 거들떠도 안 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재미없었던 한국 문학 단편선집도 그렇게 흥미진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20권짜리 대하소설 '토지'도 너무 읽고 싶어졌다. 하다못해 광고 전단지도 교과서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아 읽고 싶어 안달이 났다. 실제로 읽어 보면 아주 재미있었다.

 

왜 그럴까? 이 또한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시험 공부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책 읽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험이 끝나면? 더 이상 책 읽는 게 재미있지 않다. 재미있게 놀 거리가 지천인데.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이처럼 재미도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게임은 상대적으로 공부보다 재미있다. 사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공부는 원래 재미있는 것이다. 공부를 통해 새로운 것을 알아 나가고, 세상 원리를 터득할 때의 재미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럼에도 공부보다 재미있고 짜릿한 게임을 하면 공부가 상대적으로 재미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공부의 재미를 느끼려면 반드시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 유혹거리를 멀리해야만 한다.

 

미쳐야 공부다_ 강성태

by 미스터신 2016. 2. 21.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