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학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소년이 혼자서 자신의 사물함을 비우고 있었다. 아직 캠프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사물함을 비우고 있을까? 그때 갑자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야, 말더듬장이 바보다!"

"어디? 정말! 신난다!"

 

한 아이가 번개처럼 달려와 소년이 든 가방을 걷어찼다. 가방이 내동댕이쳐졌고 물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른 아이가 필통을 발로 쾅 짓밟았다. 미동도 않고 서 있는 소년의 뒤통수를 누군가 주먹으로 갈겼다. 한 아이가 그걸 보고 외쳤다.

 

"어, 이쪽으로 쓰러진다.!"

 

그 아이는 반대편에서 소년의 얼굴에 펀치를 날렸다. 소년의 코에서 코피가 쏟아졌다.

 

"야!, 도망가자!"

"이 자식, 누구한테 알리면 죽어!"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달아났다. 소년은 코피를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목석처럼.

 

잠시 후 교사가 나타났다. 그는 금방 상황을 알아차렸다. 소년은 말을 더듬는 데다 행동이 굼떠 외톨이로 지내는 아이였다. 캠프에서는 아무도 그 소년과 놀아주려 하지 않았다. 사건을 본 교사는 캠프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 소년을 자신의 팀에 소속시켰다. 수업이 끝나면 따로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뜻밖에도 소년은 나이에 비해 생각이 매우 깊었다.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똑똑하기도 했다. 교사는 그 소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몇 년 후 교사는 그 소년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초청을 받았다. 놀랍게도 소년은 예전에 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소년은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는 대표였다. 많은 참석자 앞에서 소년은 교사와 처음 만났던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는 그때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제가 죽은 후 부모님이 제 물건들을 정리하면 더 슬퍼하실까 봐 미리 사물함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 저를 위로해주고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내미는 작은 사랑의 손길 하나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언청이 친구가 있었다. 그는 늘 놀림감이었다. 우리는 그에게는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원래 못생긴 데다 공부도 못하고 친구들과 놀 줄도 모르는 아이인 줄 알았다. 아무리 때리거나 놀려도 몸과 마음이 안 아픈 줄 알았다. 선생님들도 그 친구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4학년이 되어 새로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달랐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심술꾸러기 아이들이 친구를 놀리다가 도시락을 발로 뻥 차버렸다. 반찬과 밥이 사방에 흩어졌다. 그때 드드륵 문이 열리더니 선생님이 들어왔다.

 

"누가 그랬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도 말이 없었다. 고자질했다간 보복이 뒤따른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연 선생님이 허리를 굽히더니 바닥에 나뒹구는 밥을 정성스레 쓰레받기에 담았다. 학교에서 기르는 개에 가져다줄 요량인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한 그 친구에게 말했다.

 

"영훈이는 교무실로 오너라."

 

우리는 선생님이 그 아이를 혼낼 줄 알았다. 정말 호되게 혼났는지 영훈이는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심술꾸러기들이 달려가 물었다.

 

"너, 매 맞았지?"

 

영훈이는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선생님이랑 도시락 같이 먹었어."

 

아이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선생님이 못난 언청이 영훈이와 도시락을 나눠 먹다니! 선생님이 외톨이의 편이라니!

 

그때부터 영훈이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훈이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선생님이 수학 시험지를 영훈이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저번보다 또 점수가 올랐어."

 

사실 영훈이의 점수는 고작 60점에 불과했다. 반에서 여전히 밑바닥에 속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사실은 덮어버리고 점수가 점점 오르고 있다는 사실만 말해주었다.

 

그 말이 요술을 부렸는지 영훈이의 점수는 정말 점점 올랐다. 수학만 오르는 게 아니었다. 전 과목 성적이 조금씩 올라갔다. 꼴찌권을 맴돌던 친구는 첫 학기 말에는 중상위권으로 들어섰다. 학년 말에는 놀랍게도 1, 2등을 다툴 만큼 뛰어올랐다. 그는 더는 놀림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선생님이 보여준 작은 행동 하나, 작은 말 한마디가 언청이 소년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심술꾸러기 아이들의 인생도 바꿔놓았다.

 

우리는 다수에 휩쓸려 홀로 서 있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방관하기도 한다. 고립된 이에게는 작은 사랑의 손길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소중한 희망의 등불이 될 수도 있다. 참된 영혼은 늘 낯선 사람의 상처를 눈여겨본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그 상처가 언젠가는 나의 상처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김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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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5. 10. 10.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