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뭐든지 잘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접고,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나 자기가 가진 능력 중에 뛰어난 것이 있음을 일찍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 그것에 스스로 매진할 수 있는 지구력을 키워 주어야 한다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_ 박경애

적극적인 격려는 소극적인 자극보다 효과 면에서 더 좋은 방법이지만 남용하면 효과가 줄어든다_ 천허친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14. 09:06


교육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지능이 보통(IQ 85~115) 수준만 되면 어떤 공부도, 어떤 일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바라는 일을 성취하고 못하고는 노력의 정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아이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큰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리가 비상한 아이일지라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원대한 꿈을 이루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_ 박경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14. 08:50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당시 우리를 몹시도 괴롭히던 못 말리던 문제아가 있었다. 그는 늘 칼을 갖고 다녔다. 그 칼은 칼집에 접어 넣으면 7~8센티미터 정도의 길이였지만, 펼치면 배로 늘어나 아이들에게는 섬뜩한 인상을 줄 만했다.

 

망나니 친구는 그 칼을 갖고 다니며 수시로 이리저리 던지곤 했다. 특히 아이들이 필기하려고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불시에 나타나 손 주변에 칼을 홱 내리꽂았다. 그리고 기겁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친구와 5년 동안 줄곧 같은 반이었다. 등교할 때면 그 친구 얼굴이 떠올라 발길을 돌리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가 멀리 다른 학교로 전학 가버리거나 아예 이 세상에서 제발 싹 꺼져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선생님들도 그를 아예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했다. 교실 창문이 깨지거나 누군가 코피가 터지면 선생님들은 대뜸 이런 말부터 던졌다.

 

"또 네가 그랬지? 너 말고 그런 짓 할 사람이 누가 있겠니?"

 

그는 1학년 때부터 줄곧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나 그저 그가 말썽만 부리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그가 매일 점심을 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그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도 아무도 몰랐다. 그의 얼굴이 시퍼렇게 멍든 채 나타나도 아무도 몰랐다. 그가 또 누군가와 싸움을 벌였으려니 했다.

 

그런데 5학년 담임선생님은 달랐다. 어떻게 알았는지 망니니 친구가 점심을 거른다는 걸 알고 도시락을 따로 챙겨왔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매일 챙겨왔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나자 친구가 변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느 날 그가 또 창문을 깼다. 우리는 벌벌 떨었다. 선생님은 인자했지만 잘못에 대해선 몹시 엄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망나니 친구 대신 벌을 뒤집어써야 할 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전원이 단체기합을 받아야 할 게 뻔했다. 드디어 선생님이 교실에 나타났다.

 

"깨진 유리창 빨리 치워."

 

선생님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뒤 망나니 친구를 따로 불러 말했다.

 

"창문이 깨졌지?"

 

과거 선생님들은 으레 "또 네가 그랬지?" 라고 했었다. 하지만 5학년 담임선생님은 "너"를 지칭하지 않고 "문제"만을 지적했다. 그리고 말없이 이 고개를 푹 수그린 그의 손을 슬며시 잡고는 미소만 짓는 것이었다. 잠시 후 선생님이 말했다.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게 뭐지?"

 

친구가 잠시 후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이 제 아버지였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친구의 다른 면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가 땅바닥이나 종이쪽지에 그림을 끼적거리는 걸 보고 그림에 흥미를 갖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친구에게 "넌 미술에 소질이 있구나"라고 말하는 걸 자주 들었다.

 

선생님은 그의 재능을 꿰뚫어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선생님의 칭찬이 없던 재능을 만들어낸 것일까? 친구의 그림 실력은 정말 나날이 좋아졌다. 그림에 취미를 붙이자 서서히 다른 과목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적이 일어났다. 친구가 남을 괴롭히는 일이 싹 사라진 것이다. 5년 내내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칼도 자취를 감췄다.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친구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1년 후 졸업식 날, 그 친구는 최우등상을 받았다. 모든 선생님이 '이 아이는 구제불능이야' 하고 바라보자 그는 정말 구제불능의 망나니가 됐다. 하지만 그 담임선생님이 '이 아이에게도 숨겨진 재능이 있을 거야'라고 바라보자 정말 숨겨진 재능이 튀어나왔다.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소년이 있었다. 공부도 못하고 친구들과 뛰어놀지도 못했다. 늘 교식 구석에 틀어박혀 어서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리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는 일이 벌어졌다.

 

"야! 교실에 쥐가 나타났다!"

 

삽시간에 교실은 난장판이 됐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쥐를 잡기 위해 난리를 떨었지만 아무도 그 쥐가 어디 숨어 있는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모두 체념하고 있을 때 조용히 앉아 있던 소년이 외쳤다.

 

"선생님, 그 쥐는 지금 벽장 속에 숨어 있어요."

 

모두가 단단히 준비를 갖춘 채 벽장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쥐는 쉽게 잡혔다. 선생님이 그를 불러 칭찬했다.

 

"너에겐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 있구나. 네 귀는 정말 특별하구나!"

 

이 한 마디가 소년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유일한 강점을 키워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적인 팝 음악가로 성장했다. 앞이 안 보였던 스티비 원더의 이야기다. 한 가지 강점만 파고들다 보니 그 강점이 점점 커져서 모든 약점을 완전히 뒤덮고도 남았던 것이다.

 

 

빌 게이츠는 직원들을 뽑을 때 학력을 보지 않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한 가지만 본다고 한다. 그건 바로 창의력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된 직원들에게는 최고의 근무환경을 만들어주고, 능력보상제도인 스톡옵션도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입사한 사람들 중 2천 명 이상이 2년 만에 백만장자가 된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주당 80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근무한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학력과 창의력과는 큰 관련성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들은 하버드나 예일 등 명문대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평범한 대학에서 오히려 더 많이 배출된다. 2007년 이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인 25명의 학력을 보면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MIT 등 알려진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은 여덟 명뿐이다. 나머지는 안티오크 칼리지, 워싱턴, 드포우, 켄터키 유니온, 홀리크로스, 헌터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출신들이 많다. 노벨화학상은 어떨까? 역시 명문대 출신은 예닐곱 명 정도다. 나머지는 네브라스카, 베레아, 아우스버그, 호프 등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열 다섯 명 중 열 명이 홋카이도 대학 등의 지방대 출신이다.

 

창의성은 암기식 학교성적이 좌우하는 게 아니다. 가능성 역시 학벌에 좌우되지 않는다. 10년 후, 20년 후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잘하는 단 한 가지 강점에 미친 듯이 파고드는 사람이 10년 후, 20년 후에 그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건 분명하다.

 

왓칭, 신이 부리는 요술_ 김상운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13. 19:55

 

머리를 쓰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분석적인 사고는 어느 정도 체계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에 자꾸 깊이를 더해야 하는 단계가 되면 자기 머릿속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뭔가 순간적 깨달음을 얻기 쉽게 하는 방법이라거나 또는 선생님만의 독자적 사고 패턴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지요.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이게 뭐지?'라는 궁금증이 생기면 '아, 그렇구나!'라고 이해가 될 때까지 이리저리 생각하기를 좋아했어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여름에 콜라를 마시려 할 때였습니다. 병에 빨대를 꽂았더니 빨대가 훅 떠오르는 겁니다. 대부분 귀찮게 여기겠지요. 그런데 저는 '어? 이거 뭐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빨대가 왜 떠올랐을까? 빨대와 콜라의 관계에 관해 한동안 생각했지요.

 

그렇게 해서 빨대 주위에 탄산가스 기포가 가득 생겨서 빨대와 기포의 무게 합이 액체보다 가벼워졌기 때문에 떠올랐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콜라와 빨대를 끊임없이 주시하는 아이였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정도였을 겁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 들어가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왕관의 무게 측정 방법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무렵이라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따끈따끈한 밥 위에 가쓰오부시(말린 가다랑어를 대패로 아주 얇게 깎아 낸 식재료)를 올리면 가쓰오부시가 춤을 추듯이 마구 움직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재미있어서 '이건 또 뭘까?'하는 의문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결론은 이랬습니다. 밥의 열기 때문에 따뜻해진 공기가 가벼워져서 상승기류가 생기고, 가쓰오부시가 그 상승기류로 인해 떠오른다. 그런데 밥에서 나는 김이 가쓰오부시에 닿으면 마른 가쓰오부시가 수분을 흡수하게 되어 무거워지기 때문에 다시 밥 위로 내려앉는다. 그 반복 작용이 가쓰오부시가 춤추는 것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해야 직성이 풀렸어요.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알아보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지요. 호기심이 왕성했어요. 조금씩 이해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렸고, 마지막에 가서 의문이 풀리는 순간에는 대단히 기분이 좋았어요. 몰랐던 것을 안 순간 가슴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 느낌을 잊지 못하고 지금도 저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싶어서 연구를 계속하는 겁니다.

 

관찰력이 대단했군요. 그런데 초등학교 때는 보통 '일단 외우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 '이건 뭘까?' 하는 아이들의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제 수업은 그런 부분을 별로 크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측면이 확실히 적다고 봅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암기해야 하는 게 사실이고, 구구단을 모르고 초등학교를 졸업해서도 안 되겠지요. 그렇지만 2~3분만이라도 '어떻게 생각하니?', '생각해 봐'라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요? 저는 전체를 달달 외우는 수업을 싫어했습니다. 백지도에 평야, 하천, 산지의 이름을 써놓고 외우는 수업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도통 점수가 안 나왔습니다. 그래도 한자를 외우는 건 좋아했어요. 한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배웠으니까요. 상형문자, 형성문자 등의 구분이라든지 부수가 뜻을 나타내고 방은 소리를 나타낸다는 구성 방식을 알면 이치를 알고 접근할 수 있지요.

 

역사도 연호나 인물명 암기는 젬병이었는데 역사 드라마에는 흥미를 느꼈습니다. 과학자의 전기도 자주 읽었습니다. 대발견의 이면에는 하나하나의 맥락이 있지요. 유소년기의 환경과 경험이 훗날의 대발견으로 이어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다이내믹한 드라마에 가슴이 뛰었어요. 우리는 아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훈련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뭔가를 부수고 새로 구성하는 작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담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이라는 작업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쌓게 해서 대담성을 길러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학을 하는 사람은 데이터와 추론을 쌓는 과정에서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순간을 반드시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때 잘 판단해서 정말 문제가 있을 때는 미련 없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학의 역사를 보면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 최초의 대전환입니다. 그 이후 '빛은 파장이다'라는 믿음이 깨졌습니다. '빛은 입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전자'라는 소립자는 입자라고만 여겨지다가 파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기존에 당연시되던 사항들을 전제로 사물을 이해하던 사고의 토대는 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에 대한 개념조차 바꾸었습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달리는 누군가에게는 느리게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과학은 이전의 사고방식을 버려야만 하는 순간을 끊임없이 맞이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지금 상식이라 여겨지는 내용들도 머지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런 변화 속에서 탐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 들어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사물을 보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물리학의 바깥 영역에서는 실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책을 읽어 보면 상당히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었습니까?

 

제가 학위를 따고 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때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입니다. 당시 소립자론에서는 표준 모델, 우주론에서는 빅뱅 모델이 정립되었습니다. 그 두 이론이 잘 수렴되면서 기본 방향성이 옳다는 분위기가 확립되던 시기였지요. 학계로서는 한편으로 뿌듯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차 무엇을 더 알아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 교착상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탓에 과학자들이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퇴짜를 맞기 일쑤였어요.

 

그런데 그 후 10년가량 지났을 때, 그 지식적 토대의 취약성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물리학이 갑자기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지요. 가장 놀라웠던 것은 1998년에 발견된 '암흑에너지'입니다. 암흑에너지가 발견됨으로써 '우주는 빅뱅이라는 폭발로 인해 시작되었으나, 중력의 영향으로 점점 그 세력이 약해져 팽창이 느려지고 있는 상태다'라는 종래의 사고방식이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무언가가 중력에 반하는 작용을 해 우주의 팽창을 부추기고 가속화하고 있더라'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2003년에는 우주 에너지의 정체가 상당히 정확하게 규명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흔히 '물질'이라 불렀던 원자가 우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4%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초등학교 때 '만물은 원자로 구성된다'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던 것지요. 또 사람들은 우주라는 단어를 들으면 밤하늘에 빛나는 아름다운 별들을 떠올리지만, 별과 은하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5%밖에 되지 않습니다. 원자를 제외한 나머지 95%의 정체를 보면, 22%가 '암흑물질'이고, 73%가 '암흑에너지'입니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모두 현재로서는 그 정체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우주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우주의 95%는 아직 수수께끼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기존의 물리학 이론에 거대한 균열이 발견된 셈이고, 이를 계기로 물리학은 엄청난 패러다임 전환기에 돌입했습니다. 거대한 균열을 발견한 이들이 줄줄이 노벨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연구자들은 그 균열을 어떻게 수선할지를 놓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을 생각하는 데에만 지난 10년가량이 흘렀습니다. 이제 겨우 실제 실험과 관측에 들어가, 뭔가가 발견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안게 된 상황이지요. 최근의 흐름은 그렇습니다.

 

암흑에너지, 암흑물질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쯤에서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질문을 할까 하는데요. 어째서 그런 사실을 이제야 발견한 걸까요?

 

실은 1930년대에 중력만으로는 설명하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은하단을 관측하던 연구자들이었지요. 은하단에는 수많은 은하가 모여 있는데, 각 은하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데도 불구하고, 위치가 고정적인 것을 보고 연구자들이 이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은하들이 중력의 작용으로 서로 끌어당기고 있다지만, 고정적으로 그 자리에 머무르려면 눈에 보이는 별의 중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지요.

 

그래서 무언가 보이지 않는 무거운 물질이 존재하고, 그로 인한 중력이 발생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가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관측기술이 미흡했고, 관측 데이터가 있다 한들 그것을 해석할 이론이 발달하지 못해 그 이상을 알아내거나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물질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 관해 '빛을 내지는 않지만 거대질량을 가진 물질'일 거라 추측했고, '암흑물질'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암흑물질은 현재 관측 가능한 일반 물질의 약 5배나 되는 질량을 가졌고, 우주 탄생의 기원이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즉 빅뱅으로 인해 암흑물질이 생겼고, 암흑물질들이 모이자 그 중력으로 인해 보통의 원자들이 끌려들어와 별이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은하로 성장했다는 줄거리입니다.

 

별은 생명의 원천이니까 그 별을 만든 암흑물질이 없었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암흑물질은 우리 주위에도 대량으로 존재하면서 우리 신체를 통과하고 다닌다고 여겨집니다. 신체를 통과한다고 하면 뭔가 기묘하고 무서운 느낌도 들겠지만, 보통의 물질과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암흑물질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는 은하계 안에서 초속 220km라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은하계로부터 튕겨 나가지 않고 그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도 암흑물질 덕분입니다. 지구의 공전속도도 무려 초속 30km나 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초등학교에서 우리가 매초 30km 로 움직이는 구체 위에 있다고 가르쳤다가는, 상상만 해도 현기증을 일으키는 아이가 나올까 봐 안 가르치는 거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빠른 속도지요.

 

도쿄대 리더육성 수업, 문제해결의 사고력편_ 요코야마 요시노리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8. 10:12

 

'위장은 쓰면 쓸수록 지치지만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 라는 말이 있다. 어지간한 청개구리가 아니라면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 머리가 좋아지기를 원한다. 사람은 모든 것을 타고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고의 규율을 획득하고 노력한다면 머리가 좋아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단순히 머리를 쓰기만 하면 되느냐? 그렇지 않다. 두뇌 사용법에는 궁리가 필요하다. 그 방법으로 세 가지를 들어본다.

 

두뇌 활동의 세 가지 궁리

 

우선 두뇌의 컨디션이 좋은 시간대를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한다. 하루 중에도 머리 회전이 잘될 때와 그렇지 않은 때가 있다. 대부분은 이른 아침에 머리가 가장 잘 돌아간다고 한다. 실제로 경험해 보면 단순히 머리가 잘 돌아갈 뿐 아니라 지금까지 각기 별개로 보이던 현상을 정리하고 통합하는 사고가 가능하다. 명확한 단계를 밟기보다 순간적으로 각 부분이 전체 틀 속으로 수렴되는 느낌이 든다는 의미다.

 

두 번째로 남보다 10배 더 생각해야 한다. 남이 한 번 생각할 때 나는 열 번, 남들이 열 번 생각할 때 나는 백 번 생각하면 된다. 통상 백 번씩이나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보니 천 번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러 번 반복해 생각하면 뇌 속에서 뉴런이 동시에 작동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스스로도 의외라고 여길만큼 사고가 순조롭게 전개된다. 이렇다 할 목표 없이도 계속 생각할 수 있는 인내력을 획득하려면 그런 순간을 경험해야 한다.

 

세 번째로 가능한 오감을 동원해 생각해야 한다. 오감 중에서는 특히 눈과 손이 중요하다. 손을 써서 생각한 것을 눈을 통해 비판적으로 바라본 후, 개선점을 발견해 다시 한 번 손을 써서 생각하는 작업을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길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이 세가지 방법의 공통점은 '분석하는 사고'가 아니라 '구성하는 사고'라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문제해결력을 디자인하는 사고'다. 다시 말해 디자인 작업은 가설의 설정과 검증을 반복하는 일이다. 단 가설은 분석으로부터 귀납적 또는 연역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번뜩임이 필요하다. 번뜩임에도 훌륭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처음부터 훌륭한 무언가가 나오지는 않는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생각하는 사이에 갑자기 나타나는 법이다. 그 과정을 통해야 가설은 눈에 띄게 좋아진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가설을 만들고, 그 타당성과 유효성을 시험해 봐야 한다. 제대로 안 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면 된다. 그런 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 시도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작업을 인내심 있게 계속해야 최초의 가설이 유치해 보일 정도로 단련된, 아무나 쉽게 생각해 내지 못하는 가설에 도달할 수 있다.

 

문제해결 디자인이란 귀납적이지도 연역적이지도 않으며, 하물며 학문도 아니다.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딸 수 있는 분야도 아니지만 긴 훈련이 필요한, 고도의 전문적 기능이다. 그 가설검증형 추론은 '경험지'적 훈련을 통해 반복 연습해야 한다. 통합은 방법론이 없는 작업이지만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접근법은 반복 작업이다.

 

도쿄대 리더육성 수업, 문제해결의 사고력편 / 도쿄대학 EMP, 요코야마 요시노리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8. 09:23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원래 나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워낙 자신감이 없어 학교에 가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공부도 못했다.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뒤 지방 대학에 진학해 의학 공부를 해보았지만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다. 간디는 겨우 5개월 버티다 중퇴하고 말았다. 부모는 전 재산을 털어 그를 영국으로 유학 보냈다. 그곳에서 간신히 법을 전공하고 인도에 돌아와 변호사가 되었지만 사건을 따내지 못해 좌절감 속에 살았다.

 

"변호사도 나에겐 안 맞는 것 같아. 차라리 다른 직업을 갖는 게 낫겠어."

 

그러던 중 요행히 한 사건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법정에서 발언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 도저히 말을 못하겠어. 손도 떨리고...."

 

간디는 자신의 발언 순서가 되는 순간 안면몰수한 채 냅다 줄행랑을 쳤다. 어쩔 수 없이 동료 변호사가 대신 나서서 반대 심문을 진행해야 했다.

 

간디는 스스로 변호사 재목이 못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형의 도움으로 당시 영국령이었던 남아프리카로 떠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백수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다른 도시에 가기 위해 기차 일등칸에 타고 있었다. 그런데 백인 경관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화물칸으로 자리를 옮기라는 것이었다.

 

"경관님, 전 일등칸 돈을 내고 탔어요. 그런데 왜 화물칸으로 가야 합니까?"

"일등칸은 백인만 타게 되어 있소."

"그런 부당한 법규는 없습니다."

 

간디가 따지고 들자 경관은 그를 기차에서 끌어내렸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러면서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민 온 인도인들이 겪는 온갖 수모가 떠올랐다.

 

'이게 바로 내 소명이구나. 힘없는 인도인들을 위해 싸우는 것.'

 

그때부터 그는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먼저 한 인도인이 부탁했던 민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산더미 같은 자료들을 철저히 파헤쳐 사건을 법정 밖에서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부터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인도인들이 모두 그에게 몰려들었다.

 

간디는 인도 교민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구세주로 떠올랐다. 그의 명성이 인도 본국에까지 알려지면서 민족운동의 지도자로 급속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놀라운 변화였다. 단지 목적의식을 찾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숨어 있던 능력이 꽃을 피웠다. 이처럼 배역을 찾으면 일도 빛나고 자신도 빛난다. 석가모니도 배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위대한 인생 계획을 방해하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떤 일을 끝내지 않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어떤 일도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목적의식을 직업과 연결한다. 그래서 실직하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다. 영국 카디프대학의 맨셀 에일워드 교수가 조사한 바로는, 6개월 이상 실직하면 하루에 담배 400개비(20갑)를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장기간 실직하면 혈압이 오르고 심장질환, 당뇨, 암 발생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또한 실직한 젊은이들의 자살 위험은 취직한 젊은이들보다 40배나 더 높다.

 

하지만 생각만 돌리면 실직은 참된 배역을 찾기 위한 뜻밖의 값진 기회가 될 수 있다. 참된 배역은 깊은 고통과 고민과 고독 속에서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마음을 텅 비울 때 영감처럼 문득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고한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30세에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던 순간을 이렇게 술회했다.

 

"해고를 당하면서 저는 성공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인생 최고의 창의력이 솟아났습니다."

 

그는 해고 직후 5년 동안 넥스트를 창립하고 픽사를 만들고 아내를 만났다. 그래서 해고가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핸리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쓸모없는 모든 생각을 몽땅 털어버리고 오로지 인생의 진정한 목적에만 마음을 두기 위해서였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들만을 생각하고, 마침내 죽음과 마주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당신이 지금 지독한 고독에 잠겨 신음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생의 참된 배역을 찾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다. 그럴 때는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것이 텅 빈 완벽한 고요 속에서 영혼이 눈을 뜬다. 영혼이 눈뜨면 참된 배역은 저절로  드러난다.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김상운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0. 10. 20:19

 

한 방학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소년이 혼자서 자신의 사물함을 비우고 있었다. 아직 캠프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사물함을 비우고 있을까? 그때 갑자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야, 말더듬장이 바보다!"

"어디? 정말! 신난다!"

 

한 아이가 번개처럼 달려와 소년이 든 가방을 걷어찼다. 가방이 내동댕이쳐졌고 물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른 아이가 필통을 발로 쾅 짓밟았다. 미동도 않고 서 있는 소년의 뒤통수를 누군가 주먹으로 갈겼다. 한 아이가 그걸 보고 외쳤다.

 

"어, 이쪽으로 쓰러진다.!"

 

그 아이는 반대편에서 소년의 얼굴에 펀치를 날렸다. 소년의 코에서 코피가 쏟아졌다.

 

"야!, 도망가자!"

"이 자식, 누구한테 알리면 죽어!"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달아났다. 소년은 코피를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목석처럼.

 

잠시 후 교사가 나타났다. 그는 금방 상황을 알아차렸다. 소년은 말을 더듬는 데다 행동이 굼떠 외톨이로 지내는 아이였다. 캠프에서는 아무도 그 소년과 놀아주려 하지 않았다. 사건을 본 교사는 캠프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 소년을 자신의 팀에 소속시켰다. 수업이 끝나면 따로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뜻밖에도 소년은 나이에 비해 생각이 매우 깊었다.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똑똑하기도 했다. 교사는 그 소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몇 년 후 교사는 그 소년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초청을 받았다. 놀랍게도 소년은 예전에 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소년은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는 대표였다. 많은 참석자 앞에서 소년은 교사와 처음 만났던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는 그때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제가 죽은 후 부모님이 제 물건들을 정리하면 더 슬퍼하실까 봐 미리 사물함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 저를 위로해주고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내미는 작은 사랑의 손길 하나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언청이 친구가 있었다. 그는 늘 놀림감이었다. 우리는 그에게는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원래 못생긴 데다 공부도 못하고 친구들과 놀 줄도 모르는 아이인 줄 알았다. 아무리 때리거나 놀려도 몸과 마음이 안 아픈 줄 알았다. 선생님들도 그 친구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4학년이 되어 새로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달랐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심술꾸러기 아이들이 친구를 놀리다가 도시락을 발로 뻥 차버렸다. 반찬과 밥이 사방에 흩어졌다. 그때 드드륵 문이 열리더니 선생님이 들어왔다.

 

"누가 그랬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도 말이 없었다. 고자질했다간 보복이 뒤따른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연 선생님이 허리를 굽히더니 바닥에 나뒹구는 밥을 정성스레 쓰레받기에 담았다. 학교에서 기르는 개에 가져다줄 요량인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한 그 친구에게 말했다.

 

"영훈이는 교무실로 오너라."

 

우리는 선생님이 그 아이를 혼낼 줄 알았다. 정말 호되게 혼났는지 영훈이는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심술꾸러기들이 달려가 물었다.

 

"너, 매 맞았지?"

 

영훈이는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선생님이랑 도시락 같이 먹었어."

 

아이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선생님이 못난 언청이 영훈이와 도시락을 나눠 먹다니! 선생님이 외톨이의 편이라니!

 

그때부터 영훈이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훈이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선생님이 수학 시험지를 영훈이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저번보다 또 점수가 올랐어."

 

사실 영훈이의 점수는 고작 60점에 불과했다. 반에서 여전히 밑바닥에 속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사실은 덮어버리고 점수가 점점 오르고 있다는 사실만 말해주었다.

 

그 말이 요술을 부렸는지 영훈이의 점수는 정말 점점 올랐다. 수학만 오르는 게 아니었다. 전 과목 성적이 조금씩 올라갔다. 꼴찌권을 맴돌던 친구는 첫 학기 말에는 중상위권으로 들어섰다. 학년 말에는 놀랍게도 1, 2등을 다툴 만큼 뛰어올랐다. 그는 더는 놀림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선생님이 보여준 작은 행동 하나, 작은 말 한마디가 언청이 소년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심술꾸러기 아이들의 인생도 바꿔놓았다.

 

우리는 다수에 휩쓸려 홀로 서 있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방관하기도 한다. 고립된 이에게는 작은 사랑의 손길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소중한 희망의 등불이 될 수도 있다. 참된 영혼은 늘 낯선 사람의 상처를 눈여겨본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그 상처가 언젠가는 나의 상처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김상운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0. 10. 19:54

 

제78회 한자 자격시험 결과(응시 1명)

 

김시우(건원초등학교 3학년, 6급합격 - 95점, 우수상)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0. 6. 19:43

 

자제가 안 되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부모의 훈육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아이들은 어린 시절 자주 심하게 벌을 받았다. 심지어는 사소한 실수에도 부모로부터 뺨을 맞고, 주먹으로 맞고, 발로 채이고, 두들겨 맞고, 회초리로 맞았다. 그런데 이러한 훈육은 의미가 없다. 절제되지 않은 훈육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훈육이 무의미한 이유는 부모 자신들이 자제가 안 돼 있어서 아이들에게 그런 행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말한 대로 하고 내가 행동하는 대로 하지 마라"고 하는 부모다. 그들은 아이들 앞에서 자주 술 취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위엄도 조심성도 분별도 없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되는 대로 살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할 것이다. 부모의 삶이 무질서하고 정신없으면서 자녀들에게 절제된 생활을 가르치려는 것은 먹히지 않는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주기적으로 때리는 가정에서, 여동생을 때렸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아이를 때리면 아이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에게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하면 아이는 그 말이 이해가 될까? 어릴 때는 비교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어린 눈에 비친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부모가 하루하루 자제하고 조심스럽고 품위 있게 행동하고 질서 정연한 생활 능력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마음속 깊이 이것이 사는 방식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매일을 무질제하게 제멋대로 사는 부모를 보아도 아이들은 마음속 깊이 이것이 삶의 방식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때로 무질서하고 정신 사나운 가정에도 진실한 사랑이 존재한다. 이러한 가정에서는 절제할 줄 아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다. 의사, 변호사, 여성 사업가, 자선 사업가와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주 절도 있고 단정하게 생활하는 부모이기 쉽다. 그러나 만약 사랑이 부족한 경우 그런 부모들은, 가난하고 무질서한 가정에서 자란 여느 아이들처럼 무절제하고 파괴적이고 정리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길러낸다.

 

결국 사랑이 전부다. 사랑의 신비함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검토할 것이다. 그러나 책 전체의 유기적인 관계를 위해 이 시점에서 사랑과 훈육과의 관계에 대해 부분적이나마 간략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가치 있다는 의미이고, 어떤 것이 가치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에 시간을 투자한다. 그것을 즐기고 그것을 돌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자동차와 사랑에 빠진 십대를 유심히 보라. 아이는 그 자동차를 홀린 듯 바라보고 광을 내고 수리하고 튜닝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혹은 사랑하는 장미 정원에 있는 노인을 보라. 그는 정원에서 가지를 쳐내고 뿌리를 다독여주고 거름을 주고 정원을 자상하게 살피면서 시간을 보낸다. 자녀를 사랑할 때도 이와 같다. 우리는 아이들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돌보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제대로 훈육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자녀에게 줄 시간이 없거나 시간을 들일 마음이 없으면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에게 훈육의 필요성이 은근히 드러나는 순간을 놓치고 만다. 훈육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때도, 아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에 이를 무시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서 "그저 오늘은 아이들을 돌볼 에너지가 없을 뿐이야."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침내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 짜증을 돋우면 어쩔 수 없이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 때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 문제에는 어떤 훈육이 가장 좋을지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도 않고, 교육적 의도에서라기보다는 화가 나서 가혹하게 훈육을 하게 된다.

 

아이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부모는 아이가 확실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아이를 훈육해야 할 미묘한 순간도 알아차리고 애정과 배려로 부드럽게 타이르거나 야단치거나 방법을 알려주거나 칭찬을 한다. 그러한 부모는 아이가 어떻게 케이크를 먹고, 어떻게 공부를 하고, 어느 때 살짝 거짓말을 하는지, 어느 때 문제에 부딪치기보다는 문제에서 도망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대답하고, 이럴 때는 약간 조이고, 저럴 때는 약간 풀어주고, 조금 가르치기도 하고, 이야기도 좀 들려주고, 살짝 안아서 뽀뽀도 해주고, 훈계도 좀 하고, 살짝 등을 두드리면서 시간을 들여 이러한 사소한 문제를 고쳐주고 바로잡아준다.

 

그러므로 사랑이 넘치는 부모의 훈육 방식은 사랑 없는 부모의 그것보다 질적으로 월등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는 아이의 욕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결정을 내릴 때 괴로워하고 말 그대로 아이와 고통을 함께한다. 아이들은 맹인이 아니다. 부모가 자기와 고통을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당장 고마움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아이들 역시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기꺼이 나와 함께 고통을 받고 있으니 고통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닐 거야. 나도 기꺼이 괴로움을 견뎌야지" 라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자기 절제의 시작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치는 시간의 질과 양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근본적으로 사랑이 없는 부모는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서 아이에게 자주 사랑을 고백하고, 정말 친밀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한다. 아이들은 결코 이러한 공허한 말에 속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하면서 의식적으로 그 말에 집착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부모의 말이 행동과 다르다는 것을 안다.

 

이와 반대로, 진정으로 사랑받는 아이들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무시당했다 주장하고 억지를 부릴지라도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차린다. 이러한 인식은 황금보다도 가치가 있다. 자신이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 다시 말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느낀다면, 스스로 소중하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며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그것은 부모가 주는 사랑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러한 믿음은 어린 시절에 획득해야만 한다. 성인이 돼서 그것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다. 역으로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은 어른이 되어 시련을 겪더라도 그러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이 느낌은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돌보게 된다. 자기 절제는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다.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계획을 세우고 일의 순서를 정하는 방법을 이야기해왔으니 시간의 문제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만약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면 시간을 소중하게 느끼게 되고 시간이 소중하게 생각되면 시간을 잘 이용하고 싶어진다. 앞서 소개한, 일을 미루기 일쑤였던 재무분석가는 자기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중하게 생각했더라면 하루의 대부분을 그렇게 비생산적이고 불행하게 보내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우연히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원했다면 완벽할 정도로 잘 돌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돈을 받고 아이를 돌보는 집으로 그녀를 보내버렸다.

 

부모는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이며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끼며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절제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지적이고 유능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절제에 관한 한 가장 기초적인 학습이 필요했다. 자기 가치와 자기 시간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면, 시간을 절약하고 계획을 세우고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어린 시절에 부모의 변함없는 사랑과 돌봄을 받은 운 좋은 아이들은 자기 가치를 마음속 깊이 인식할 뿐만 아니라 깊이 안정감을 느끼면서 성인으로 자란다. 모든 아이들은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는데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은 생후 6개월에 접어들 무렵, 즉 자신이 부모와는 분리된 개별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서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은 아주 무력하다는 것, 즉 모든 삶을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한 온갖 것들을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그것이 모두 부모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에게 버림받는 것은 죽음과 같다. 아이와 관련된 것이 아닐 때는 상대적으로 무심하거나 냉담한 부모도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는 본능적으로 민감하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수백 번 수천 번 되풀이해서 확신을 시켜준다.

 

"엄마 아빠가 너 혼자 내버려두고 가지 않는다는 것 알지?"

"당연히 엄마 아빠가 너를 데리러 올 거야."
"엄마 아빠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어도 이러한 말들이 행동과 일치하면 아이들은 청소년기가 될 때쯤 버림받는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세상은 안전한 곳이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보호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될 것이다. 세상이 언제나 안전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자유롭게 이런 저런 즐거움을 뒤로 미룰 줄 알고, 즐거움을 위한 기회는 집과 부모처럼 언제나 거기에 있으며 필요하면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확실히 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부모가 죽고 없거나 버림받거나 순전히 방치되거나 재무분석가의 경우처럼 단지 사랑이 결핍되거나 해서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아이들은 실제로 상당히 많다. 그런데 사실 버림받지 않는 아이들도 부모에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받지 못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어떤 부모는 가능한 쉽고 빠르게 훈육하고 싶어서 노골적으로든 은근하게든 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부모가 아이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게 무얼 말하는지 알겠지?"

 

물론 그것은 버림받음이고 죽음이다. 이러한 부모는 아이를 조정하고 지배할 필요 때문에 사랑을 희생한다. 그 대가로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아이들은 심리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버림받은 채, 세상은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장소라는 뿌리 깊은 의식 없이 성인에 이른다. 그들은 반대로 세상을 위험하고 무서운 곳으로 인식하고 미래에 더 큰 즐거움이나 안전을 보장받는다 해도 현재의 어떤 즐거움이나 안전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는 참으로 미심쩍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아이들은 스스로 훈육할 줄 아는 역할 모델과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 하고 존재의 안전함을 신뢰해야 한다. 이러한 '자산들'은 부모의 자기 절제와 순수하고 일관된 보살핌을 통해서 획득된다. 이것이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부모에게서 이러한 선물을 받지 못할 경우 다른 곳에서 획득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그 획득 과정은 힘든 투쟁이 된다. 때에 따라서는 평생 걸릴 수도 있고 그나마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 펙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0. 1. 20:06

 

그저께는 정원을 다듬고 난 뒤에 남은 돌을 그냥 두기가 아까워서 산신각 뒤에 야트막하게 축대를 쌓았다. 덕분에 어지럽던 뒤쪽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는데, 이 일은 석공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어깨너머 배웠던 내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들쑥날쑥하고 울퉁불통 한 돌을 앞줄 아귀를 맞추어서 놓으니까 반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아주 못생긴 모양이라서 석공 손에서 천대받았던 돌이 나를 만나서 비로소 쓰임새가 있게 된 셈이다.

 

네모진 돌이든 세모진 돌이든 저마다 앉을 자리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이런 일을 하면서 담장을 쌓는 데는 크고 작은 돌과 모나고 둥근 돌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어떤 생김새든 저마다의 쓰임이 따로 있는 것. 여기에 조화와 균형의 비밀이 숨어 있다.

 

스님의 일기장, 현진스님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31.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