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는 북유럽에 있는 스칸디나비아의 작은 나라다. 인구는 약 560만 명이며 국토는 한반도의 5분의 1 크기다. 사계절이 있으나 날씨가 나쁘기로 유명하다. 수도 코펜하겐에서 해가 온전히 비치는 날이 1년에 겨우 50여 일 정도다. 진눈깨비가 자주 내리는 겨울은 춥고 음습하다. 천연자원도 특별히 많지 않다. 가장 높은 산이 173미터로 전국이 평평해 빼어난 경치도, 세계인의 주목을 끌 만한 관광지도 없다. 이처럼 땅도 좁고 날씨도 불순하고 풍광도 볼품없는 나라지만 행복지수에서는 세계 1위다.

 

덴마크에 거주하는 우리나라 교민은 코펜하겐과 그 외 지역을 다 합쳐봐야 대략 300명쯤 된다. 미국이나 유럽의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 비해 덴마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높지 않음을 보여주는 숫자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는 우리에게 큰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개인과 공동체가 모두 행복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UN은 2012년부터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156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해 국가별 행복도를 보여주는 보고서인데, 여기서 덴마크는 2012년에 이어 2013년에도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17위, 독일은 26위, 한국은 41위(2012년에는 56위)였다. 이 조사는 다음의 중요 변수 6가지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 각 나라의 국민 1000명에게 사회적 안전망(만일 당신이 큰 어려움에 처하면 도움을 청할 만한 누군가가 있는가), 자유(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가), 관용의식(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는가), 주관적 부패지수(정부와 기업의 부패가 어느 정도인가)를 묻고, 이 응답들과 1인당 국민소득, 기대수명을 점수로 환산해 총점을 내는 방식이다. 덴마크는 다른 글로벌 조사기관들이 실시하는 행복지수 조사에서도 1위를 하거나 최상위권에 속해왔다.

 

나는 세 차례에 걸친 덴마크 취재에서 택시기사, 식당 종업원, 주부, 고등학생, 대학생, 교사, 교수, 공무원, 언론인, 목사,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정말 UN의 발표대로 세계 1위의 행복도를 누리고 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요즘 걱정거리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놀랍게도 모든 사람의 반응이 한결같았다. 딱히 걱정거리가 없다면서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마치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듯 애써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한참 궁리하다가 결국 별로 없다고 말했다. 걱정거리가 너무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까?"

 

이번에도 내가 만난 덴마크 사람들 모두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양한 직업,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답은 비슷했다. 한두 명이라도 행복하지 않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올 법한데 그렇지 않았다. 코펜하겐에 살고 있는 미국인, 아시아인, 한국인 등 외국인 30여 명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살아보니 정말 덴마크가 행복한 사회인가" 라는 질문에 대부분 "그렇다, 참 부럽다"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왜 행복한지 찾아냈습니까?"

 

한국에서 덴마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사람들은 꼭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나는 덴마크의 행복한 일터, 행복한 사회, 행복한 학교를 취재하면서 발견한, 그들을 진정 행복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을 뽑아내려고 노력했다.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독자들에게 그 6개의 키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자유 : 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

 

자유의 다른 이름은 '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덴마크인들은 자유를 누리고 산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자유로운 삶은 초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다져진다.

 

덴마크의 초등학교는 우리의 중학교 과정을 포함해 9학년제인데, 7학년까지는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 없다. 자연히 등수도 없다. 공부를 잘한다고 상을 주는 일도 없다.

 

왜 그럴까? 공부를 잘하는 것은 여러 가지 능력 중 하나일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학생들은 마음 편하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색할 수 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학생들이 각자 자존감을 갖고 스스로 선택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데 교육의 중점을 둔다.

 

덴마크의 학생들은 고등학교 진학 전에 1년간 '인생학교'에 간다. 이 기간 동안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스스로 점검한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1년 정도 해외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했다. 대학 진학 여부조차 정해두지 않았지만 다들 여유가 있었다. 자기 앞날은 스스로 결정한다고 입을 모았다.

 

안정 : 사회가 나를 보호해준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즐길 수 있는 자유는 안정감에서 나온다. 덴마크 사회는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아주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다. 우선 병원 진료비가 평생 무료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개인별로 주치의가 정해진다. 동네 주민 1600명의 주치의로 일하고 있는 25년 경력의 의사를 만났을 때, 그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담당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가정에서 쌓이는 스트레스까지 상담해준다고 말했다.

 

교육비도 대학까지 무료다. 우리는 반값등록금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덴마크는 대학 등록금이 공짜인 것은 기본이고 대학생이 되면 매달 우리 돈으로 약 120만 원을 생활비로 받는다. 직장에 다니다 실직해도 2년까지는 정부에서 예전 월급 수준과 큰 차이 없이 보조해준다. 그리고 그 기간에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사회복지 시스템이 마련해준 안정감은 덴마크인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차분히 찾을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우리처럼 대학생의 상당수가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고시 공부를 하는 풍경은 덴마크에서 볼 수 없다. 한마디로 창의적인 도전이 가능하다. 어떤 도전을 하다 실패해도 기존 안전망이 자신을 받쳐준다는 믿음, 즉 비빌 언덕이 있기 때문이다.

 

평등 : 남이 부럽지 않다

 

덴마크 국회에서 만난 국회의원 두 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방문객 접수대까지 본인이 직접 내려와 손님을 맞이했고 정장이 아닌 청바지 차림이었다. 자그마한 자신의 방에서는 손수 음료를 대접했다. 덴마크에서 국회의원은 특별한 직업이 아니었다.

 

코펜하겐에서 만난 택시기사들도 대부분 표정이 밝았다.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20년 경력의 택시기사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의사나 변호사 친구들과도 편하게 잘 어울린다고 했다. 자신을 스스로 중산층이라 말하던 40년 경력의 식당 종업원이 한 참 동안 자랑을 늘어놓은 아들의 직업은 열쇠 수리공이었다. 식당 종업원 아버지와 열쇠 수리공 아들이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덴마크다.

 

신뢰 : 세금이 아깝지 않다

 

덴마크의 초등학교 중 절반가량은 9년간 담임이 똑같다. 나머지 절반도 최소 3년에서 6년까지 같은 담임이 지도한다. 성장기의 대부분을 한 담임과 보내는데도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불만이 없다. 교사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학생과 학부모 들은 그런 교사를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신뢰는 정치권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덴마크인들은 사회안전망 혜택을 많이 받는 만큼 세금을 많이 낸다. 부자들은 월급의 50퍼센트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 그런데도 덴마크의 고소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세금이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도 대학 다닐 때 누군가의 세금으로 혜택을 받아 공부했으니 후배들을 위해 내는 세금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정부와 시민들 사이에 오랫동안 형성된 이런 신뢰가 없다면 덴마크의 고세율 정책은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웃 : 의지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있다

 

덴마크인들은 외롭지 않다.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 근처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초등학생 6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중 두 명만 자기 자녀고 나머지는 이웃 아이들이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데 익숙하다고 했다.

 

이웃 간의 유대는 일상을 넘어 다양하게 확장된다. 특히 덴마크에서는 크고 작은 협동조합 활동이 무척 활발하다. 2013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35퍼센트가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이웃 공동체들은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되어 소외감과 외로움을 방지하고 유대감과 행복감을 뿌리내린다.

 

환경 : 직장인의 35퍼센트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덴마크는 자전거의 나라다. 코펜하겐의 직장인 중 35퍼센트 정도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이들이 이용하는 자전거도로는 도로의 한 차선을 당당히 차지한다. 개인이 친환경적인 삶을 살 수 있게 인프라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인구 50만 명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평균 출근 소요 시간은 15분 전후다. 1000만 서울에서 느끼는 번잡함,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출근길의 교통지옥이 이곳에선 없다. 자동차 공해가 적으니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리는 날도 없다.

 

덴마크는 자연에너지 강국이다. 풍력에너지 등 자연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공급에서 23.4퍼센트의 비중을 차지한다. 위험한 미래를 안고 가동되는 핵발전소도 없다. 그럼에도 에너지 자급률은 100퍼센트가 넘는다. 비록 날씨가 좋지 않아 햇볕 드는 날은 드물지만 덴마크인들은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덴마크를 다녀온 뒤부터 나는 더 이상 UN의 행복지수 조사나 다른 조사기관의 행복도 조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직접 눈으로 본 현실이 이미 풍부하게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만으로도 그들이 사는 방식과 우리가 사는 방식이 다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25.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