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통해 공부머리를 끌어올린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컴퓨터의 부품을 업그레이드하듯 아이의 뇌가 구조적,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뇌로 변신함을 뜻합니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1000억 개의 신경세포들은 시냅스라는 틈으로 서로 연결돼있습니다. 이 틈이 얼마나 조밀하고 원활하게 연결되어있느냐가 그 사람의 지적, 정신적 능력을 결정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 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 연결 방식이 계속해서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뇌 과학에서는 이것을 '뇌의 신경가소성'이라고 합니다.

 

뇌를 많이 쓰면 시냅스의 연결 방식이 개선, 강화되고 많이 쓰지 않으면 연결이 퇴보하거나 끊어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수학 공부를 많이 하면 수학 문제를 풀 때 쓰이는 시냅스의 연결이 조밀해지고 더 나아가 자동화됩니다. 처음 덧셈 뺄셈을 배울 때는 한참을 고민해야 합니다. 관련 시냅스의 연결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덧셈 뺄셈을 익히고 나면 숫자가 달라져도 쉽게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관련 시냅스의 연결이 완성되어 뇌 속에 덧셈 뺄셈이라는 도로가 하나 뚫린 셈입니다. 이 상태에서 계속 반복해서 문제를 풀면 덧셈 뺄셈에 관한 시냅스 연결 조합이 자동화됩니다. 덧셈 뺄셈 문제를 보자마자 조건반사적으로 순식간에 풀 수 있게 되죠.

 

반대의 현상도 일어납니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던 어떤 사람이 10년 넘게 영어를 쓰지 않으면 관련 시냅스 조합의 연결이 끊어집니다. 영어를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시냅스의 연결이 이어지고 끊어지는 것은 특정 지식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고력, 언어능력의 수준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2014년 OECD는 22개 회원국의 국민 15만 명을 대상으로 실질 문맹률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실질 문맹이란 글자를 소리로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을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를 말하는데, 그 조사 결과가 자못 충격적입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실질 문맹률이 22개국 중 3위를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 중 상당수는 전자제품 설명서나 약 사용법 같은 간단한 글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언어능력이 이렇게 낮은 것은 세계 최저 수준의 독서율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평소 길고 어려운 글을 읽는 훈련을 거의 하지 않으니 글을 읽고 이해하는 시냅스 연결이 죄다 풀려버린 것이지요.

 

말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뇌에는 말을 관장하는 전문 영역인 베르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우리 유전자 속에 프로그래밍된, 타고난 능력인 셈입니다. 반면 글 읽기는 타고난 능력이 아닙니다. 글은 인위적으로 배워야만 익힐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현생 인류가 등장한 것이 20만 년 전인데 문자가 만들어진 것은 기껏해야 6천 년 전의 일이니까요.

 

우리 뇌에는 읽기를 관장하는 영역이 따로 없기 때문에 글을 읽으려면 뇌의 여러 부위가 축구 경기를 하듯 팀플레이를 펼쳐야 합니다. 후두엽은 눈으로 받아들인 시각 정보를 측두엽에게 패스합니다. 측두엽은 시각 정보를 재빨리 표음 해독합니다. '사람'이라는 글자를 사람이라고 읽고, '손가락'이라는 글자를 손가락이라고 읽는 식으로 말입니다. 측두엽으로부터 해독한 글자를 넘겨받은 전두엽은 그 글자의 의미를 추론합니다. '사람'이라는 글자와 실제 사람을 연결짓고, '손가락'이라는 글자와 실제 손가락을 연결짓습니다. 다음은 이렇게 해독한 단어들을 연결합니다. 비로소 '그 사람의 손가락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큰 상처가 있었다'라는 문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뒤이어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아프겠다', '안됐다'는 식의 감상을 내놓습니다.

 

이렇듯 문장 하나를 해석하려면 뇌의 거의 모든 부분이 총동원되어야 합니다. 숙련된 독서가라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왜 상처를 입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남자일까? 여자일까?'와 같은 의문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의문들은 글을 보다 깊고 긴밀하게 이해하도록 만듭니다.

 

책을 읽을 때 뇌가 전방위적으로 활성화된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일본 도후쿠대학교 의학부의 가와시마 류타 교수도 그런 연구를 진행한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해 뇌 활동을 촬영했는데, 다른 활동을 할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을 읽을 때 뇌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집니다. 책 읽기는 머리를 활발하게 쓰는 활동입니다. 독서야말로 두뇌를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쉽고 훌륭한 방법입니다.

 

이제 막 초등 6학년이 된 학생 둘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한 아이는 숙련된 독서가이고, 다른 한 아이는 독서 경험이 없는 초보 독서가입니다. 두 아이에게 뇌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한 후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를 읽게 합니다. 두 아이의 뇌 활동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터프츠대학교에서 인지신경학과 아동 발달을 연구하는 매리언 울프 교수는 자신의 저서 <책 읽는 뇌>를 통해 초보 독서가와 숙련된 독서가의 차이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책을 읽는 동안 초보 독서가의 뇌는 뇌 전체가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반면 숙련된 독서가의 뇌는 뇌의 일부만 활발해집니다. 이는 초보 독서가는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를 이해하기 위해 뇌를 풀가동해야 하는 반면 숙련된 독서가는 뇌를 조금만 써도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앞서, 특정한 지적 활동을 반복하면 관련 시냅스 조합의 연결이 자동화된다고 했습니다. 책 읽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보 독서가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단어 뜻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문장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우뇌와 좌뇌를 모두 활용해야 하는 거죠. 매리언 울프 교수는 이것을 '배측 경로를 이용한다'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숙련된 독서가는 독서 과정 중 상당 부분이 자동화돼있습니다. 글자의 모양을 파악하고, 뜻을 연결하고, 그렇게 파악한 어휘들을 조합해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복잡한 과정이 쭉 뻗은 고속도로처럼 하나의 세트로 간결하게 구조화돼있는 겁니다. 그래서 숙련된 독서가는 좌뇌만으로 글을 읽는 효율적인 방식을 쓰는데, 이것을 '복측 경로 혹은 하측 경로를 이용한다'라고 합니다.

 

공부를 요리에 비유하자면 배측 경로를 사용하는 초보 독서가는 요리를 처음 해보는 자취생과 같습니다. 이 자취생이 요리를 하려면 먼저 인터넷으로 레시피부터 찾은 후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마트에 가서 요리 재료를 사서 돌아온 후에야 어설프게나마 요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복측 경로를 사용하는 숙련된 독서가는 유능한 팀원이 10명쯤 딸린 특급 음식점의 주방장과 같습니다. 필요한 재료는 이미 냉장고 안에 완벽하게 준비돼있고, 레시피는 머릿속에 빈틈없이 정리돼있습니다. 일단 요리가 시작되면 재료 손질과 같은 기초 조리 과정은 팀원들이 알아서 대령합니다. 주방장은 오로지 요리 자체에만 집중하면 되죠. 빠른 시간 안에, 큰 힘 들이지 않고,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자취생과 특급 음식점 주방장이 요리 경연대회에 나가면 누가 이길까요?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결과는 자명합니다.

 

1, 2차 급변동 구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아이의 성적을 결정합니다. 그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기초가 아니라 언어능력입니다. 언어능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이유가 더 필요한가요? 책 속에 답이 있습니다.

 

공부머리 독서법_ 최승필

by 미스터신 2019. 7. 6. 10:01

초등학생들이 달리기 경기장 출발선 앞에 서있습니다. 신호탄이 울리자 아이들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트랙 위에는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초등 1학년, 2학년, 3학년.... 초등 4학년 지점을 지나는 순간 남자아이 하나가 그만 넘어지고 맙니다. 그새 다른 아이들은 저만치 앞서 달려갑니다. 남자아이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앞서가는 친구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런 문구가 떠오릅니다.

 

"초등 4학년, 기초가 중요한 때입니다."

 

오래전에 있었던 학습지 TV 광고의 한 장면입니다. 초등학생때부터 기초를 탄탄히 쌓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다는 협박 아닌 협박이 담긴 광고였습니다. 이것은 공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입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뒤처지게 된다. 저는 이것을 '공부기초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공부기초 이론은 저학년 기초가 약하면 고학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더하기 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는 아이는 곱하기 나누기를 제대로 배울 수 없고, 곱하기 나누기가 서툰 학생은 인수분해를 손도 못 댄다는 논리입니다.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아래 벽돌을 튼튼하게 쌓지 않고 무슨 수로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한 이 논리가 우리 사회의 무수한 교육 풍경을 만듭니다.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두신 부모님 중 올백 점에 연연하는 분이 많은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올백 점을 못 맞으면 고학년이 되었을 때 성적이 얼마나 많이 떨어질까?' 하고 불안해하시는 거죠. 완벽한 기초를 쌓아 고학년 때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기초를 튼튼히 쌓았음에도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반대로 기초는 형편없는데 고학년이 되어 성적이 오르는 준우 같은 아이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초를 극복하는 것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어능력이 높고 의지만 굳건하다면 교과 공부에 필요한 기초 지식은 짧은 시간 안에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수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초등 1학년은 1년 내내 더하기 빼기를 배웁니다. 더하기 빼기라는 연산 논리를 이해하고 습득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1학년 아이의 평균 사고력, 그러니까 언어능력이 그 정도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수학에 관한 지식만 모두 잊어버려서 더하기 빼기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면 어떨까요.

 

이 학생이 더하기 빼기를 완벽하게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될 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의 언어 수준에서 더하기 빼기는 쉬워도 너무 쉬운 연산이기 때문입니다. 초등 1학년에게는 1년간 갈고 닦아야 하는 교과 학습량이 고등 1학년에게는 10분이면 습득할 수 있는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모든 과목이 이런 식의 기초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초등 6학년 과학 지식이 없다고 해서 중등 1학년 과학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수학 외의 과목들은 기초가 부족해도 교과서만 충실히 이해하면 얼마든지 만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준우 같은 아이들이 이런 사실을 증명합니다. 중학교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언어능력만 갖추어도 얼마든지 부족한 기초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중요한 기초는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글을 읽고 이해하는 언어능력입니다.

 

뛰어난 독서가이지만 독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학교 공부에 의욕이 없고, 목적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로는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스티브 잡스의 초등학교 성적표에 적힌 평가입니다. 잡스는 초등 3학년 때까지 상습적으로 학교를 빼먹는 문제아였습니다. 당연히 성적도 나빴죠. 교과 지식의 관점에서 보자면 잡스는 형편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잡스가 달라진 것은 초등 4학년 때였습니다. 담임이었던 힐 선생님의 배려와 관심이 잡스의 마음을 움직인 덕분입니다. 잡스는 힐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우등생으로 변신했습니다. 잡스의 학습능력에 깜짝 놀란 힐 선생님은 잡스에게 '수학능력(학문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평가'를 받게 했습니다. 잡스의 수학능력은 고등 2학년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초등 4학년이었던 잡스는 고등 2학년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가졌던 겁니다. 고등 2학년 학생이 초등 4학년 교실에 앉아있었던 셈이니 다른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잡스는 '사기 캐럭터'였던 거죠. 잡스가 이런 수준의 언어능력을 갖게 된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독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덕분입니다. 독서만큼 언어능력을 확실하게 끌어올려 주는 방법은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드실 겁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명문대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언어능력 평가를 해보면 그런 아이들은 독서 여부와 상관없이 백이면 백 언어능력이 높습니다. 평생 가야 책 한 권 읽지 않았다는 중등 2학년 학생이 수능 국어영역 80점을 넘긴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언어능력이 높은 것은 지능보다는 기질적인 요인이 큽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 집요한 성격, '왜 그럴까?' 하고 의문을 품는 사고 패턴 덕분에 일상생활이나 학교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언어능력이 저절로 성장합니다. 한마디로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 세상을 읽을 줄 아는 아이죠. 이런 아이가 책을 읽지 않고 명문대에 들어갔다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통탄할 일입니다. 이런 기질의 아이는 독서 효과도 매우 크게 나타납니다. 엄청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의 잠재력이 독서를 하지 않음으로써 묻혀버린 셈입니다.

 

초등학교 때 몇 점을 받느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아이가 또래 연령 대비 어느 정도의 언어능력을 갖추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언어능력이 높아도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는 간혹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능력이 낮은데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언어능력이 낮은 아이는 1차 급변동 구간에서 무조건 성적이 떨어집니다. 논술 강사 생활 12년 동안 단 한 번의 예외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어능력이 바로 학습능력입니다.

 

공부머리 독서법_ 최승필

by 미스터신 2019. 7. 6. 09:57

심사위원 만장일치 최우수상으로 손색이 없는 글을 접하게 되어 심사위원의 한 명으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 한국 정치사의 여러 주제를 다루는 기존의 연구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글이며 충분히 최우수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 글이다.

 

2017년 서울대학교 우수 리포트 공모대회 최우수상 수상작에 대한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안도경 교수의 평이다. 서울대학교 우수 리포트 공모대회는 학기별로 개최되며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학부생들이 작성한 리포트를 받아 수상작을 가리는 권위 있는 대회다. 이 대회에는 전공, 교양 수업 등에서 A+성적을 받은 수천 장의 리포트가 제출되고 오직 소수의 리포트만이 예선을 통과할 수 있다.

 

이런 대회에서 위와 같은 평을 받은 이는 바로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는 오석 마스터다. 그는 이 대회에서 팀으로 출전해 최우수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같은 대회에서 개인적으로 작성한 리포트로도 소수만이 통과할 수 있는 본선에 합격했다. 서울대학교 학부생 중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것이다. 뛰어난 글쓰기 실력 덕분인지 그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 거의 매 학기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높은 학점을 유지했다. 또한 최근 2019학년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편입 전형에도 합격했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 실력과 뛰어난 공부 성과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가지 사이의 연결 고리에 바로 '철학하는 연습'이 있다. 그가 말하는 철학하는 연습이란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생각 단련법이다. 그는 일련의 철학하기 연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트이고 사색을 통해 언제든지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독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라

 

오석 마스터는 중학교 시절 비교적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칼의 노래'를 쓴 김훈 소설가나 '삼국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으로 유명한 이문열 소설가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 또한 일본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 나쓰메 소세키 등 일본의 문학이나 철학책을 즐겨 읽었다. "철학이나 문학 책을 읽다 보니 조금씩 사고가 트이는 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국어 시험지를 보는데 글이 너무 쉽게 느껴졌어요. 다소 어려운 책들을 읽는 연습을 하다 보니 학교 공부를 하면서 보는 책들은 크게 어려울 게 없었죠."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철학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철학 관련 서적들은 고도의 집중력과 독해력을 요구한다. 그 또한 처음 철학 책을 읽을 때는 뜻을 알기 어려운 단어들과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철학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꼼꼼히 독해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독해하는 실력이 또래 학생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항상 제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기준을 두고 제 한계를 매번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다 보면 그것보다 쉬운 수준의 책이나 글은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그 덕분에 고등학교 국어 영역 시험은 쉽게 준비할 수 있었어요."

 

지난 수능에서 국어 영역이 역대 최고 난이도로 출제되어 많은 학생이 혼란에 빠졌다.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고 수학에서도 교과 과정이 축소되면서 점점 국어 과목에서 난이도를 높여 변별력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해마다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많지 않은 고3 학생들이 아니라면 평소에 수준 높은 책읽기 연습을 통해 독해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공부 마스터들은 꾸준한 독서를 통해서 국어실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논술과 면접 시험에 대비했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 재학 중인 유도혁 마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고교 시절 최대한 꾸준하게 독서를 하려고 했습니다. 선생님들로부터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받고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공부로 독서가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로 수준 있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도서를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꾸준한 독서는 글쓰기 및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키고 사고의 폭을 넓혀 결과적으로 면접 및 논술 시험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

 

오석 마스터가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책을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보는 일이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잠시 덮고 내용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철학자 혹은 글의 작가와 끊임없이 대화한다 생각하고 제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 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제 삶에 적용해 저를 성찰하고 주변의 사람과 사회 문제에 적용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철학하기 연습을 통해 그는 언제 어디서든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한다. "저는 일상 속에서 책 없이도 공부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급식실에 줄을 서 있거나 아침 조회를 할 때 밥을 먹으면서도 공부할 수 있었어요. 공부했던 것들을 재료 삼아 머릿속에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저만의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 보는 겁니다. '어떤 내용이 있었지?', '왜 그렇지?', '그건 무슨 의미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해 보는 거죠. 그게 고전시가든 수학 개념이든 영어 문법이든 머릿속에서 그 내용의 바닥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생각해 봅니다."

 

이를 바탕으로 오석 마스터는 고3 때까지 7~8시간을 꾸준히 자면서 좋은 공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잠을 줄이면 저는 깊이 있게 생각을 밀고 나가기가 힘들어서 잠을 최대한 충분히 잤어요. 그러다 보니 깨어 있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되요. 일종의 압력이 그쪽으로 작용하게 되는 거죠." 철학하기 연습은 과목별로 성과를 끌어올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 수학 문제를 풀 때 문제를 보자마자 손부터 댑니다. 저도 철학 책을 읽기 전까지 20퍼센트 정도만 구상해 놓고 문제를 풀었어요. 그러고는 미지의 목적지를 찾아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식으로 수학 문제를 풀었죠. 그런데 철학 책을 읽고 나서는 60퍼센트 이상을 이미 구상해 놓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어요. 길을 찾고 나서 손을 대기 시작한 거죠. 예전의 저와 철학 책을 읽은 이후의 저는 사고력이 비교가 될 수 없었죠. 그 이후 수학 시험을 볼 때 시간이 부족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수학 과목 외에도 어떤 과목이든 문제를 풀고 나면 문제를 다시 회상하면서 직접 더 선택지를 만들어 보고 자체 테스트를 해 보거나 출제자의 관점으로 생각하며 공부했다. 어떤 참고서든 문제집이든 단순히 받아들이는 방식의 공부보다 한 스텝, 두 스텝을 더 나아간 것이다.

 

오석 마스터 외에도 모든 마스터는 책에 나온 내용을 주어진 대로 좇아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책에 나와 있지 않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 필요한 재료로 책의 내용을 활용하는 것이다. 주어진 대로 따라가기만 해서는 결코 만점 받는 공부를 할 수 없다.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사고 체계에 맞춰 내용을 다시 정렬해야 한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송지원 마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을 때 항상 의문을 품으려 노력하고 그것에 대해 책을 찾거나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교과서에서 무미건조하게 서술되어 있던 내용이 생생하게 다가오면서 암기식 공부가 아니라 이해식 공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책 한 권으로 사고력 기르는 법

 

오석 마스터는 철학 책뿐 아니라 다양한 문학 작품을 통해 철학하기 연습을 심화시켜 나갔다. "꼭 철학이라는 걸 좁은 의미로 파악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넓은 의미에서 김훈 소설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이나 어떤 책이든 모든 것에는 그 책을 쓴 사람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오석 마스터는 이러한 사유의 과정을 머릿속에만 가둬 놓는 데 그치지 않고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생각을 공유하며 사고를 심화시켜 나갔다. 고3이 되어서도 학교 친구들과 철학이나 인문학 책을 나눠 읽고 쉬는 시간마다 토론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 그는 고3 시절 9월 모의고사를 1주일 앞두고 철학 책에 빠져 1주일 동안 그 책만 두 번을 봤는데 9월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로 인해 단순히 공부를 통해 지식을 늘리는 것보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말한다.

 

앞서 공부를 잘하는 상위 0.1% 학생들의 공통점이 '메타 인지'에 있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메타의 뜻은 '~의 위에서', '~을 초월하여'이다. 즉, 메타 인지는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오석 마스터는 철학하기를 통해 메타 인지를 끌어올리는 연습을 꾸준히 해 온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자기 성찰의 과정이 공부에는 물론 고등학교 3학년 때 자기 소개서를 쓸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자기 소개서를 쓸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삶에 대한 해석이나 의미 부여가 중요합니다. 저는 철학하기를 통해 제 생각과 마음을 꾸준히 정돈하는 연습을 해 왔고, 그를 통해 우선 선발이라는 성과를 만들어 준 자기 소개서를 써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서울대학교에 다니며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정치사상 수업을 강의하는 교수님은 늘 이런 말을 했다. "공부는 생각을 연마하는 고도의 훈련 과정입니다. 깊이 있게 생각을 한다는 것은 세 가지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

 

오석 마스터는 바로 이 세 가지 방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단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습 내용을 누구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처리해 낼 수 있는 뛰어난 사고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내가 만난 공부 마스터들은 공통적으로 뛰어난 정보처리 능력과 몰입력을 보였다. 그 비결은 수업이나 책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자신만의 사고체계에 새롭게 구조화시키고, 그 과정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른 데 있었다.

 

성장은 편안하고 안락한 상태를 벗어나 한계라고 느껴지는 그 구간을 뛰어넘을 때만 이뤄진다. 내가 쉽게 읽는 수준, 쉽게 생각하는 수준, 그 한계의 끝에서 읽고 생각해야만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꼭 철학 책이 아니어도 좋다. 자신의 수준보다 한 단계만 높은 책을 한 권 정하고, 그 바닥까지 파보겠다는 생각으로 읽어 보자. 그러다 보면 단 한 권의 책을 통해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자신의 공부 내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 마스터 플랜_ 조승우

 

 

 

by 미스터신 2019. 6. 8. 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