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노년생활의 포트폴리오

 

자연스러운 식사와 충분한 수면, 꾸준한 운동을 통해 정신력과 체력, 마음챙김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머릿속의 보상체계와 몰입력을 갖춘 상태라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 역시 이러한 도메인들의 위력을 직접 경험했다. 한참 호른 연주에 빠져 있을 적에 더 잘하기 위해 연습시간을 무턱대고 늘리던 때가 있었다. 업무시간 외의 시간을 확보하려다 보니 자는 시간을 줄이고 운동시간도 빼내고 끼니도 거르며 연습시간을 마련했다. 지금 돌아보면 무척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매일 연습했지만 연주의 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소리는 더욱 거칠어졌고 실수는 늘었다. 오기가 생겨서 연습량을 매일매일 더 늘리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몇 개월 동안 이러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가 노르웨이 음악원의 호른 연주자 율리우스 프라네비키우스의 글을 읽고 생각을 바꿨다. 그는 호른 연주자가 되려면 악기 연주를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스트레칭과 명상, 요가, 알렉산더테크닉을 연습하고 수영과 조깅 등의 운동을 하며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자야 한다고 역설했다. 프라네비키우스는 4M의 도메인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만드는 선순환을 알았던 것이다. 그의 조언을 따라 4M 도메인을 점검했고 연습시간은 줄이는 대신 나머지 도메인에 시간을 더 할애했다. 이후 몇 달에 걸쳐 소리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베움 자체도 마찬가지다.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자가 정리한 지식의 요약본 또는 그중에서도 핵심만 모은 것을 시험에 대비해서 외우기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공부하면 시험성적을 향상시키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지금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학문의 전선을 넓혀왔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반대로 번거롭더라도 꾸준히 근본적인 사실관계와 전문가들의 사고과정을 따라가는 연습을 하면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생각의 틀을 만들 수 있다. 또한 학문적 지식이 형성되는 과정에 토대가 되었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저명한 투자자 찰리 토머스 멍거는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머릿속에 생각의 격자를 만드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고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연관성이 별로 없는 A, B, C 세 가지 학문 분야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분야의 어떤 질문에 대해서 좁고 깊게 반복해서 고민하기보다 B, C 분야에서는 비슷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하면 A분야를 보다 새롭고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식과 사고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라고 생각한다.

 

격자를 구성하는 공부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본인이 직접 배우고 경험한 것만 아는 화석형 전문가가 된다. 화석형 전문가의 특성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공예나 예술, 순수과학 등 90의 완벽성을 99.99로 담금질하기 위해 평생 노력해야 하는 분야의 전문가는 무척 좁은 범위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분야에서조차 다른 분야의 지혜가 필요할 수 있다. 전문성을 현실의 다양한 상황에 응용하거나, 문제의 해결방안을 도모하는 과정은 광범위하게 연결된 격자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용 영역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화석형 전문가로 전락하면 두 가지 비극이 발생한다. 첫째는 개인적 비극이다. 사회와 환경은 변화하는데 자신이 보유한 부가가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기능들을 갖추지 못하는 상황도 생긴다. 워드프로세서를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는 일본의 고위 관료들이 그 예다. 둘째는 사회적 비극이다. 잘못된 피드백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화석형 전문가는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융합연구를 하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화석형 전문가들이 모여 앉아 있다면 의미 있는 시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직업 현장에서는 업무영역이 아무리 전문적일지라도 그 일을 하는 개개인은 스스로 제너럴리스트적 자질을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거대한 격자를 형성하는 역량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보수하는 능력은 끊임없는 읽기와 생각하기, 쓰기를 통해 갖출 수 있다. 영상이나 사진, 짧은 글이 주는 인공적인 자극원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이 능력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특별한 규율과 노력이 필요하다. 술이나 당분, 담배를 끊을 때와 마찬가지로 심리적, 신체적으로 어떤 상태일 때 스마트폰이 주는 싸구려 자극원에 탐닉하는지 스스로 분석해보고 그러한 상황이 되면 마음챙김이나 책으로 우회할 습관 통로를 만드는 것이 좋다. 각종 알림을 끄고 책이나 머릿속 생각에 집중할 시간을 30분에서 1시간 단위로 달력 앱에 표시하고 이 시간에는 약속이나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 방법도 있다.

 

무엇이든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생존기술이자 내재역량의 밑거름이 된다. 만약 선천적 자질을 타고났더라도 일정 수준에 도달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려면 지속적인 훈련시간이 상당히 필요하다. 글쓰기든 악기 연주든 관심이 취미를 넘어 경력이 되려면 다음의 결과값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

 

투입한 시간 x 몰입 정도(시간 밀도) x 습득 능력(인지기능)

 

이 때문에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는 여정은 잠재력만을 보고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스타트업이나 기업의 주식에 장기투자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초기에 투입한 노력이나 시간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기량을 갈고닦는 습관과 체계를 유지하면 나이나 바쁜 정도와 무관하게 능력의 포트폴리오는 두텁게 만들 수 있다. 자산 포트폴리오의 작은 일부를 잠재력이 높은 작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처럼, 일주일에 2~3시간 정도는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해봐도 좋다는 의미다.

 

이러한 방식으로 역량을 관리하다 보면 몰입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의 순서가 조금씩 바뀔 것이다. 자산을 관리하듯이 자신의 능력들을 확인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다 보면 점진적으로 본업, 부업과 취미가 바뀔 수 있다. 몰입하고 싶으면서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경제적 보상을 끌어낼 수도 있다. 사회경제적으로는 은퇴가 필요 없는 삶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은퇴한 것과 마찬가지로 충만하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굳이 파이어 FIRE 나 욜로 YOLO 처럼 삶의 한 극단을 선택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견고한 역량 포트폴리오는 더 고차원적인 욕구 충족으로 연결 되기 때문에 보상회로는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건강한 보상회로와 고차원적 욕구 충족이 '나에게 중요한 것'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싸구려 자극원에 기댈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저절로 가속노화 요인들을 피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서 도파민 분비 방식을 바로잡는 삶으로 이어진다. 내적 충만은 외적인 것을 비교하는 마음을 잠재워 쓸데없는 지출을 줄여준다. 결과적으로 더 적게 일해도 경제적으로는 더 풍요롭다. 이렇게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스스로의 4M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불편하고 번거로워 보이는 공부의 습관이 거대한 보상으로 돌아오는 기전이다. 점차 낙도를 즐기는 삶이 완성되는 것이다.

 

(중략) 예를 들어 젊은 성인은 동물성 단백질, 특히 붉은 고기의 섭취를 줄이고 체지방이 쌓이지 않게 하는 식단이 4M의 내재역량 유지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미 신체가 쇠약하고 영양결핍 상태인 노년기 인구는 근육 생성을 촉진하는 동물성 단백질을 절제하면 오히려 4M이 전반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

 

(중략) 스마트폰과 SNS의 사용량은 우울감과 연관되어 있다. SNS의 사용량이 많은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또래에 비해 외로움을 더 많이 느낀다. 몇몇 실험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은 감소된다. 왜 그럴까? SNS는 이름 그대로 사회관계망이지만 사람과의 진짜 관계를 통해 생성되는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을 분비시키지는 못한다. 또한 사용자가 더 많은 시간을 플랫폼에 매여 있도록 설계된다. 스크롤을 하다가 새로운 정보가 보이면 사용자의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타인이 자신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면 마찬가지로 도파민이 분비된다. 팔로워가 늘어나면 또 도파민이 나온다. 하지만 자극이 멈추면 곧바로 따분함과 권태감이 찾아온다. 결국 마음에는 스트레스, 공허감,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의 결핍만 남는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을 자극하기도 한다. 현재의 불만족을 자극해서 소비를 부추기고 우울감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_ 정희원

by 미스터신 2023. 9. 28. 17:56

나는 1991년에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그후 2년간 연수생활을 거쳤다. 1992년에는 사법연수원 내에서 다양한 실무교육을 받았고 1993년에는 법원, 검찰청,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정 기간 수습 과정을 거쳤다.

당시 나는 연수과정을 마치고 나면 당연히 검사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모두 공무원 출신이었기에 공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고 두 분이 항상 입버릇처럼 "우성이는 반드시 검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사회정의를 위해 불의와 맞서는 검사의 모습을 동경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1993년 1월부터 4월 말까지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판사시보 생활을 마친 나는 1993년 5월부터 8월까지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검사시보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지방검찰청에 출근하는 첫날 나는 앞으로 내가 몸담을 검찰에서의 생활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다는 설렘에 무척이나 마음이 들떠 있었다.

검사실에서 내가 할 일은 피의자들을 앞에 두고 경찰에서의 진술과정을 재확인한 다음 빠진 부분을 보완하여 수사기록을 완성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 사람은 이런 죄를 지은 것이 확실하니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검사시보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므로 복잡한 사건보다 피의자가 이미 경찰에서 자신의 범죄사실을 자백한 사건이나 피해가 크지 않은 사건들을 주로 배당받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사하는 과정에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이다.

내가 검찰청에서 처음으로 배당받은 사건은 속히 '아리랑치기(절도죄)' 사건이었다.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한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아리랑치기라고 한다. 참고로 술에 취한 사람이 정신이 차리는 것을 보고 폭력을 행사하면 그때부터는 속칭 '퍽치기(강도죄)'가 성립된다.

 

'대학생인 김00은 1993년 4월 00일 23시 30분경 부산 북구 만덕동 000 주변에서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 최00 의 양복 윗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현금 5만 원을 절취했다'는 것이 범죄사실의 요지였다.

김 군은 범행 직후 마침 근처를 순찰하던 방범대원에게 적발되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는데 이미 경찰에서 범행 일체를 자백했으므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나는 김 군에게서 범죄사실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모두 들은 뒤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김 군의 사정이 참으로 딱했다.

 

김 군의 어머니는 신장이식을 위해 병원에 입원중이었는데 꽤 많은 수술비가 필요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밖에 없어서 현재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기에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근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날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됐고 그 피해자가 몸을 뒤척일 때 양복 안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발견하고는 순간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일단 범죄사실에 대한 진술을 정리한 뒤 김 군의 딱한 사정을 상세하게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했다. 그리고 김 군이 현재 대학교에서 장학생이며 학교에서 봉사상을 받은 내역도 알아내어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에 포함시켰다. 이렇게 작성한 조서를 검사님께 보여드렸더니 검사님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조 시보님, 이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가 아니라 변호인이 작성한 변론요지서 같습니다. 아랫부분은 전혀 필요 없는 부분입니다. 모두 지우세요." 라고 말했다.

 

사실 검사님의 말이 옳았다. 형사 사법 시스템의 구성요소인 판사, 검사, 변호사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검사는 범죄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과 입증을 해야 하고 변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정상참작 사유를 최대한 주장해야 하며,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을 종합하여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나는 검사의 입장에 있으면서 변호사로서의 주장을 한 셈이었다. 겸연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멀뚱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사건을 맡았다. '직장인 박00는 1993년 4월 00일 21시 45분경 부산 중구 남포동 000번지 소재 포장마차에서 옆자리에 있던 피해자 길00(17세, 고등학생)와 시비를 가리던 중 격분하여 피해자를 주먹으로 가격하여 안면부 타박상 등 전치 3주에 이르는 상해를 입혔다'는 것이 범죄 사실의 요지였다.

멀쩡한 직장인이 무슨 이유로 고등학생을 때렸을까. 솔직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박 씨에게 피의자를 폭행하게 된 이유를 자세히 물었다.

 

그날 박 씨는 친구와 같이 포장마차에 들렀다가 옆자리에서 아주 시끄럽게 떠들며 담배를 피고 있던 길 군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장교 출신인 박 씨는 고등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모습이 심히 거슬렸다.

그는 점잖게 "어이, 학생들. 좀 조용히 하지?"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길 군이 "거참, 제기랄. 아저씨는 아저씨 일에나 신경 쓰쇼!" 라면서 대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반응에 화가 난 박 씨는 벌떡 일어서며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너 학생 아냐?" 라고 소리쳤고, 길 군은 "학생이든 뭐든, 당신이 연필 한 자루라도 사줘봤어?" 라면서 대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밀치며 몸싸움을 하다 박 씨가 날린 주먹이 길 군의 뺨을 강타하고 말았다. 설명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마 그 상황에 처했다면 나도 박 씨와 비슷하게 행동했으리라. 나는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면서 범죄사실을 간단히 서술한 다음 당시 왜 박 씨가 길 군을 때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써내려갔다. 울분에 찬 눈빛으로 피의자신문조서의 검토 결과를 기다리는 나에게 검사님은 다시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셨다.

 

"허허, 조 시보님. 그럼 조 시보님 의견은 피의자를 처벌하지 말자는 겁니까? 검사가 그런 온정적인 입장을 취하면 도대체 법질서는 누가 지킵니까? 이 아랫부분은 피의자신문조서에서는 전혀 필요없는 부분이니 싹 지우십시오."

 

그렇게 나의 검사시보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나는 검사란 직업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동기들 중에는 피의자가 아무리 사정을 이야기해도 "그건 당신 사정이고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잖습니까? 그 사정은 변호인에게 이야기하세요." 라면서 어렵지 않게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나는 피의자의 범죄행위와 그 사람이 처한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 몹시 어려웠다.

 

결국 4개월간의 검사시보 생활을 마치면서 내린 결론은 나의 진로가 검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 성격을 갖고 검사로서 일을 한다면 나도 힘들 것이고, 조직에도 바람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변호사의 길을 택했고 수습생활을 했던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도울 우 祐' , '정성 성 誠' 으로 지어주시면서 당신 손주가 평생 남들을 돕는 마음으로 살 것을 바라셨다고 한다. 결국 이름을 따라가게 된 건지 변호사로서 보낸 지난 17년을 돌아봤을 때 내가 가장 뿌듯하게 여기는 점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을 고를 때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게 되지만 부모님의 기대나 주위의 고려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검사가 아닌 변호사로 진로를 바꾸는 과정에서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만약 내가 검사시보로서 수습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별다른 고민없이 부모님의 기대를 좇아 검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상당한 심적 고통이 따랐으리라. 직업을 선택할 때 적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이젠 너무 흔한 충고가 되어버렸지만 나로서는 수습 경험을 통한 적성의 발견이 인생의 큰 줄기를 바꿔놓았기에 이 말에 뼈저리게 공감한다.

 

모든 이에겐 자기에게 맞는 일이 있으며 이를 거스르며 살다보면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는 법이다. 내게 맞는 운명의 옷을 입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인생의 이치가 아닐까.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_ 조우성 변호사

by 미스터신 2023. 9. 24. 20:30

과거의 과학자들은 지능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사람의 지능은 유전자에 의해 거의 결정되며,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해도 성인이 된 후에는 더 발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어릴 적에 한 번쯤 "뇌세포는 죽기만 하지 새로 생기지 않아"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최근 신경 가소성 이론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뇌는 사용하기에 따라 신경세포들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쓸수록 좋아진다는 것이다. 노먼 도이지 박사의 '기적을 부르는 뇌'에는 이런 사례가 수없이 나온다. 공간 감각이 없는 사람, 자폐증 환자, 포르노 중독자, 강박증 환자, 시각장애인의 뇌가 드라마틱하게 변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또한 런던 택시 기사들의 뇌를 촬영해봤더니 일반인들보다 월등히 큰 해마(뇌에서 공간과 기억을 맡는 부분)를 갖고 있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런던 시내에 있는 25000여 개의 도로와 광장을 외웠기 때문이다. 뇌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훈련에 따라서 IQ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상상 훈련만으로 몸의 근육이 단단해지기도 한다. "난 머리가 나빠서 안 돼" 따위의 말은 할 수 없는 세상이 왔다. (중략)

 

내가 스물한 살에 파격적 성장을 이룬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원래의 지식이 100 정도였다고 하자. 그리고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딱 1퍼센트의 지식 증가가 이루어진다고 하자. 그렇게 1년에 12권씩 읽었다고 가정하면 10년 뒤 지식의 양은 얼마가 될까? 놀랍게도 330, 즉 3.3배가 된다. 겨우 한 달에 한 권 읽었을 뿐인데도! 그런데 당시 나는 1년 남짓 수백 권의 책을 읽었다. 물론 모두 다 정독한 것도 아니고 개중에는 별로인 책도 많았지만, 중요한 건 머릿속에 새로 들어온 지식이 좀비가 돼서 다음 지식을 전염시키고(흡수하고), 다시 그다음 지식을 전염시키는 과정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복리로 불어난 지식 덕분에, 군대 갈 때까지 7년간 대입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언어영역 만점을 맞을 수 있었다.

 

뇌 속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지식 발달은 복리로 이루어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은 1년에 한 권도 안 읽는다. 이런 사람들은 책뿐 아니라 신문조차 읽기 어려워하고,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봐도 문맥을 이해하지 못해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화를 낸다. 대화를 해봐도 답답하다. 그런데 평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어떤 책이든 쉽게 소화하고, 책이 아닌 다른 글들도 잘 이해한다. 그러니 언제고 또 책을 집어 들고 고급 정보를 얻는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거의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난다. 어휘의 양이나 이해의 속도는 물론이고, 가장 중요하게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깊이에서 다르다. 꾸준한 독서로 단련된 사람은 새로운 지식이라도 기존 지식을 통해서 쉽게 흡수한다. 뛰어난 운동선수는 다른 종목의 운동도 쉽고 빠르게 배우는 것과 같다. 예전에 봤던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어느 교수가 말하길, "독서 빈부 격차는 경제적 빈부 격차보다 무서운 것으로, 삶의 양극화를 만든다"라고 했다.

 

독서 양극화는 복리로 벌어지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어릴 적부터 독서를 시작해야 한다. 젊을 적에는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다가 60세가 되어서 복리 저축 상품에 가입해봤자 복리의 혜택은 별로 보지 못한다. 워런 버핏이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 중 하나로 주식을 열한 살에야 시작한 걸 꼽았다는 사실은 '일찍 시작하기'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예다. 사실 나도 중, 고등학교 때 게임만 했던 것이 너무 아쉽다. 스물한 살이 아니라 10년만, 아니 5년만 더 일찍 독서를 시작했더라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취를 거뒀을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몇백 년 전에 살았던 가장 훌륭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예를 들어 주식이나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 혼자 낑낑거리고 있는데, 아는 고수 형님이 한두 마디 툭 던져주면 머릿속이 팍 깨이면서 눈앞이 밝아올 때가 있다. 그런데 책이란 것은 동네 형님 정도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평생 공부한 것을 압축해놓은 물건이다. 정말 좋은 책을 골라 최대한 흡수한다면, 저자가 몇십 년에 걸쳐서 어렵게 습득한 지식과 진리를 거저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략)

 

스무 살부터 뇌의 복리 저축을 실천한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동갑내기 서른 살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 된다. 이때부터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아도 자동으로 지식이 쌓인다. 배경 지식이 있기 때문에, 책이 아닌 영화만 보더라도 기존 지식이 발동해서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낸다. 사업 관련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밥 먹으러 라멘집에만 가더라도 메뉴 구성, 내부 인테리어, 직원 교육 정도, 가게의 순이익이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그 사람에겐 매일 만나는 수십 곳의 회사와 매장이 케이스 스터디가 된다. 살아가기만 해도 지식이 복리로 쌓이는 것이다. 반면 평소 아무 지식도 쌓지 않은 경우엔 아무런 안경을 쓰지 않은 것과 같기에,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설사 뒤늦게 깨닫는다 해도, 일찍 깨우친 사람과의 격차는 좁힐 수 없다. 남들도 계속 뛰고 있으니까.

 

뇌 최적화 1단계_ 22전략

 

(중략) 하지만 확실한 믿음 하나는 있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책 읽기와 글쓰기, 딱 2가지만 하자. 내가 지금 뭘 할지도 모르겠고 나중에 뭘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독, 다작, 다상량(많이 생각하기)으로 기본기를 다져두면, 훗날 뭘 하더라도 남들보다 훨씬 앞서갈 수 있을 거다.'

 

이제 십수 년이 지났다. 나는 누구보다 자유로워졌고, 또래 가운데에서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무엇보다 행복하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22전략'을 실천했다는 점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크 트웨인, 프리다 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천재들은 글쓰기를 즐겼다. 세상에 이름을 남긴 작가, 철학자, 기업가 상당수가 글을 잘 쓴다. 그들이 천재로 평가받는 이유는 글을 잘 썼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글 쓰기로 뇌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더 나은 두뇌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인과 결과가 반대다. (중략)

 

근육을 성장시키기 위해선 덤벨을 들어 올리면 된다. 마찬가지로 뇌를 성장시키기 위해선 책 읽기와 글쓰기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 이상의 방법은 없다고 단언한다. 

22전략이란 별게 아니다. 2년간, 매일 2시간씩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말한다. 나는 이 덕분에 뇌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 스물세 살에야 대학을 들어갔음에도, 2년간 22전략을 실천하여 스물넷 겨울에 첫 사업을 성공시켰고 매월 순수익 3000만 원을 벌었다. 밑바닥에서 튀어 오르다시피 한 반전이었다. (중략)

 

인생을 바꾸는 방법은 간단하다. 의사 결정력을 높이면 된다. 인생이라는 미로에서 남들은 막다른 길로 갈 때, 나는 출구를 향한 길을 고르면 된다. 남들은 자의식에 사로잡혀 망할 주식에 달려들 때 재빠르게 익절하는 안목, 남들이 덜덜 떠는 폭락장에서 싸게 매집하는 배짱을 키우면 된다. 남들 말만 듣고 가게를 차리거나, 자기아집에 사로잡혀 사업을 벌이는 사람은 인생이 꼬일 수밖에 없다. 자의식을 해체하고 뇌를 최적화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포착하면 인생이란 게임이 진행될수록 당신은 레벨업된다. 이 인생 공략집과 치트키가 되어주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다. 의사 결정력, 창의력, 메타인지 등을 직접적으로 발달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할 때, 뇌의 일부만 사용한다. 유튜브를 볼 때, 스릴러 영화를 볼 때, 여행이나 데이트, 운동을 할 때 각각 다른 영역의 뇌를 사용한다. 하지만 책은 거의 모든 뇌 영역을 활성화해, 뇌세포를 증가시키고 지능을 상승시킨다. 우리가 독서를 할 땐 그냥 글자만 읽는 게 아니라 그 내용을 머릿속에 시뮬레이션하는데, 뇌는 실제 경험과 이 시뮬레이션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독서는 간접 경험이 아니라 직접 경험에 가깝다. 실제로 독서는 시각 정보를 담당하는 후두엽, 언어 지능 영역인 측두엽, 기억력과 사고력등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좌뇌를 활성화한다. 책 내용에 따라선 감정과 운동을 관장하는 영역까지 활성화한다. 즉 뇌 전체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독서를 하게 되면 다양한 뇌의 영역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활성화되고, 뇌 세포의 증가로 뇌 신경망이 촘촘해진다. 쉽게 말해 지능이 높아진다. 근육이 증가하듯, 뇌 근육이 증가하여 코어가 강해진다. 컴퓨터로 비유하면, 실행 속도가 무척 빨라진다. 나는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무언가 시키면, 항상 느리게 행동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이해할 때,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어떤 명령을 들었을 때 패닉에 빠지며 '수행 능력'이 떨어졌다. 그러다 20대 후반을 지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주변 그 누구보다 빠른 이해력을 갖고 어떤 상황이든 '난 상위 0.1퍼센트로 빠르고 좋은 판단을 내린다'는 확신을 품게 되었다. 과거를 생각하면 '두뇌 회전 속도가 이렇게 빨라진 게 말이 되나?' 싶을 때가 많다. (중략)

 

앞에서 근육 운동과 뇌 자극이 비슷하다고 했다. 헬스클럽에 처음 온 초보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먹는 것을 소홀히 하면서 운동만 잔뜩 하는 경우다. 몸에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상태이고, 잔뜩 펌핑된 근육도 휴식을 취하면서 진짜 근육으로 전환돼야 하는데, 그런 것은 생각 안 하고 운동만 계속한다. 그러고는 "난 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근육이 안 나오지?" 같은 소리를 한다. 공략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메커니즘을 모른 채 '운동한다는 느낌'에 집착하면 근육만 상한다. 앞에서 난 매일 잠깐 3세트씩 운동하고 잘 먹고 잘 쉬는 것만으로도 몸을 유지한다고 했다. 뇌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쓰면서 뇌에게 운동을 시켰으면, 그게 진짜 지식으로 고정되도록 충분한 휴식을 줘야 한다. 그게 잠이다.

 

충분한 잠과 함께 추천하고 싶은 것은 멍 때리기다. 여행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먼 곳을 바라보는 것, 좋은 풍경을 보면서 가만히 있는 것, 담배 피우면서 딴 생각을 하는 것,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샤워하는 것 등을 '몽상모드'라고 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이 몽상 모드를 발동시키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나는 반대다. 이 시간은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하는 정말 귀중한 시간이다. 특히 여행은 뇌를 자극하고, 기존에 쌓아두었던 지식들을 통합하거나 정리해준다. 나도 종종 1~2주간 해외에 나가곤 한다. 대표가 자꾸 사라지니 처음엔 회사 간부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왔고, 결과적으로 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중략)

 

그렇다면 메타인지는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까? 나도 이 부분이 궁금해서 정말 많은 책과 자료를 찾아봤지만, 메타인지를 높이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들은 너무 모호했다. 그래서 내 의견을 얘기해볼까 한다. 메타인지를 높이기 위해선 2가지가 필요하다. 바로 독서와 실행력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또 책 읽기야?' 할 테니까, 짧게만 말하겠다. 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각 시대에 지적으로 가장 훌륭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책을 읽게 되면 저절로 겸손해지고 내 수준을 잘 알게 된다. 무지함에서 비롯된 자신감의 봉우리에서 빨리 내려올 수 있다.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를 가장 확실하게 알려주는 게 독서다. 자의식 과잉인 사람이 책을 안 읽는 경우, 스스로를 잘났다고 생각하고 오만에 빠지게 된다. 그런 사람의 판단은 대부분 어리석고 아무런 성취도 이뤄내지 못한다. 겸손함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의 상상 속에서 '난 똑똑해'라고 무한 합리화를 하는 것이다.

 

메타인지력을 높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실행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본인이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실행을 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책을 읽다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 나기도 한다. '이 정도 지식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같은 망상이 드는 것이다. 책만 수천 권 읽은 헛똑똑이들이 탄생하는 이유다. 책을 읽으면 지식이 많아지고 생각이 깊어지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판단력이 바로 높아지진 않는다. 그래서 실행을 통해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가설 검증을 해봐야 한다.

 

자, 어떤 사람이 트렌드 책들을 읽고 생겨난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업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초기엔 모든 지식을 흡수하여 자신만만한 상태가 된다. 당연히 대부분 실패한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지를 알게 된다. 이때의 충격은 메타인지력을 높인다. 예를 들어 스물한 살에 처음 책을 읽고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황당한 목표를 세웠다. 모든 과목이 5~6등급인 상황에서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들어간다는 목표였다. 몇 달 동안 수백 권의 책을 읽고서 내가 최고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결과야 뭐 아는 대로다. 왜 수백 권의 책을 읽어도 가난한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실행과 도전 없이 책만 읽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이다. 코치에게 피드백을 받지 않은 채 혼자 운동하는 것과 같다.

 

내가 사업을 좋아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다. 사업은 내 판단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너무나 재밌다. 철학을 배우며 학교를 다닐 때는 그게 안 돼서 무척 답답했다. 아무리 토론을 진지하게 해도 상대가 큰소리를 치면서 방어기제를 펼치면 내가 이겼는지 졌는지 알 수가 없고 심판도 없었다. TV에서 토론을 보다 보면 '그래서 누가 이긴 거야?' 싶을 때도 많았다. 심리학이나 철학에는 정답이 없다. 서로 우기고 정신승리를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사업은 다르다. 'A라는 아이템으로 B라는 마케팅을 하면 1억이 벌릴 거야.' 이 생각이 맞는지 검증해볼 수 있다. 내가 예상한 게 정말 맞는지 현실의 결과로 드러난다. 결과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예상이 틀렸다면 '내가 아직 모자라는구나' 하고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 과정에서 메타인지력이 상승한다. 현실의 사업은 내 생각이 망상인지 아닌지 준엄하게 판정해준다.

 

꼭 사업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본인이 어떤 시험에 도전하거나 현재 직장에서 맡은 일이 있다면 목표를 세우고 결과를 예측해 보라는 것이다. 그냥 머릿속으로만 자신만만해하지 말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다음 실행을 하라는 것이다. 시험에 100퍼센트 합격할 거라 장담했는데 실패했다면 시험 준비 과정에 뭐가 잘못됐는지 점검하면 된다. 직장인이라면 자기가 목표하는 바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목표 달성을 향해 정진한다. 목표를 초과 달성했든 실패했든, 실제 결과가 나오는 일을 실행해보면 메타인지가 상승하게 된다.

 

역행자_ 자청

by 미스터신 2023. 8. 19. 1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