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

 

독서는 분명히 인생의 커대란 무기가 되지만 단순히 '양'만을 중시한다면 고루한 교양주의, 즉 지식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다. 반드시 '질'을 동반해야 한다.

 

독서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핵심은 그 책을 읽어야 할 필연성에 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읽어야 한다. 당연한 듯 보이지만 교양주의에 빠지게 되면 흥미도 없고 내용도 잘 이해되지 않는 책이라도 일단 읽어서 지식을 쌓아놓자는 욕망으로 흐르기 쉽다.

 

흥미가 없는 책을 읽으면 지식도 남지 않고 저자와 대화할 의욕도 일어나지 않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필연성'이 열쇠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가 나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얘기를 들으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치게 된다. 다른 사람에 의해 내 존재가 부정되면 깊은 좌절감이 들고 커다란 의혹이 생기는 데 이때 사람이라면 뭔가를 갈구하게 된다. 타인의 공감일 수도 있고, 위로의 한 마디 말일 수도 있으며,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돌파구가 될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것이 필요할 때 책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 기분을 '알게(안다 = 지식 x 철학적 사고)'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서'를 토대로 실생활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해봄으로써 보다 깊은 철학적 사고를 익힐 수 있다.

 

여기서 철학적 사고법을 익히기 위해 도움이 되는 두 번째 요소인 '경험'이 중요해진다. 글로벌 인재들은 책을 읽어(독서)얻은 지식의 토대 위에 자신들의 경험을 쌓아감으로써 내면의 상승 의지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부정됐다고 느낄 정도의 경험은 큰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순풍일 때 얼핏 전진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역경 속에서 더 강하게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역경은 각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역경 = 나의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는 때

 

역경이란 나의 부족한 점과 맞서기 위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곧 전진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역경이 사람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세계 1%의 철학수업_ 후쿠하라 마사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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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6. 4. 9. 12:17

 

비용 대비 최고의 효과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철학적 사고로 이어진다. 본래 철학은 '앎에 대한 학문'이다.

 

"물질이란 무엇인가?"

"신이란 무엇인가?"

"우주란 무엇인가?"

 

이처럼 '앎' 전반에 걸쳐 탐구하는 학문이 철학이다.

 

내가 수많은 글로벌 인재들을 만나서 인상적으로 느낀 점 중 하나도 이 '안다는 것'에 대한 그들의 놀라운 탐욕이다. 그냥 '안다'고 하면 추상적인 표현이 돼버리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안다 = 지식 x 철학적 사고

 

철학적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2가지가 있다. 다름 아닌 '독서'와 '경험'이다.

우선 '독서', 즉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내가 만난 글로벌 인재들을 보면 대부분 엄청난 독서가들이다. 특히 고전문학과 철학책을 많이 읽어서 지식의 토대가 굉장히 견고하다.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식의 토대가 없으면 비록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도 독서를 무척 좋아해서 바쁜 와중에도 1년에 100권 이상은 읽고 있다. 애써 짬을 내서 서점에 들러 책 표지를 훑어보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 내용 확인도 없이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이라도 흥미롭다고 느껴지면 일단 사고 본다.

 

책과의 만남도 하나의 인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에 대한 투자는 아까지 않고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나는 비용을 적게 들여 스스로를 성장시켜주는 것들 중 책 만큼 비용 대비 효과가 큰 것은 세상에 없다고 믿는다.

 

세계 1%의 철학수업_ 후쿠하라 마사히로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4. 9. 12:06

 

손을 드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손을 들어라! Raise your hands!

나는 수업 시간에 캠페인처럼 학생들에게 손 들기를 강조한다. 나의 수업은 자발적인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에 팀을 구성하는데 팀장을 뽑으려고 손을 들라고 하면 학생들은 나와 눈이 마주칠까 고개를 숙인다. 손을 드는 학생들은 거의 미국, 프랑스, 독일, 스폐인 등 외국 학생들이다. 보다 못한 내가 한국 학생들을 지목하면 그제야 슬며시 손을 든다.

 

손을 들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 이건 명명백백하다. 기회는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나를 반겨 주지 않는다. 기회로 보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손을 들고 그것을 잡아야 그다음 순서로 나아갈 수 있다. 손을 들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손을 드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동시에 내 자신이 나를 위해,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신호이다.

 

수업을 예로 들면 손을 들어 팀장이 되는 학생들은 그 직책을 맡아야만 느낄 수 있는 조직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 구성원 간의 역학 관계, 개별 구성원의 특징 파악 등에 관한 것들을 비로소 알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발표의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손을 들지 않고 그저 묻혀 있듯 지내다 보면 스쳐 지나가 기억에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학생들은 손을 들어 주목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은 주목하고 있는데 혹시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어쩌나 미리 걱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실수를 한다 해도, 그래서 친구에게 창피를 당한다 해도 그것은 인생에서 그렇게 의미 있을 큰 일이 아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경험,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치를 영영 떠나보내는 것에 비하면 순간의 두려움은 먼지처럼 가볍고 보잘것없다.

 

자신을 드러내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도 알게 된다. 타인의 시선은 두 번째이다. 손을 들지 않으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 반응하고, 어떤 기회를 포착하고자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무리 속의 한 명, 드러날 것도 주목받을 것도 없는 사람,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고 말 뿐이다.

 

내가 대학 강의를 통해 손 들기 운동을 펼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는 하지 않는다. 이 말은 패배한 적 없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공통된 변명이다. 시도하면 실패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돌려 말한 것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말하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손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채 젊음을 보낸 이들은 거개가 실패한 인생을 살게 마련이다.

 

실패할 것을 미리 생각하고, 실패가 기다리고 있으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나는 실패한 적은 없어. 왜? 손을 들지 않았으니까' 하는 자기변명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청춘이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시기에 부단히 손을 들며 도전을 했던 기억은 가슴 뻐근한 성취의 쾌감만이 아니라, 때로는 참담한 실패의 기억까지도 머지않은 미래의 비옥한 자양분이 되어 새로운 나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실패는 나를 진화하게 하는 동력이다.

 

손을 들어야 다음 기회가 생긴다. 몰랐던 것을 알 수도 있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도 역시 손을 들어야 알 수 있다. 손을 들어 기회를 잡았다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거나 못하는 일이라는 것도 손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빨리 알 수 있다. 손을 드는 일은 그 순간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원하는 방향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다음 순서를 볼 수 있는 유일한 티켓이 바로 손 들기이다. 그것으로 많은 일이 연결될 수 있다.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하겠다고 하는 것, 내가 한번 이뤄 보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언제나 성과가 있다. 자신이 맺은 유무형의 네트워크는 한 단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은 당신의 문입니다

 

2014년 1월 17일, 북경 시내 캠핀스키 호텔에서 자그마한 행사가 열렸다. 쓰촨성 야안시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한국의 청소년들이 선플 본부 홈페이지에 올린 1만여 개의 추모의 글이 담긴 추모집과 선플 음악회를 통해 마련한 2만 달러를 전달하는 행사였다. 행사가 끝난 후, 나는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수많은 공익 프로그램과 <나는 가수다>를 만든 MBC TV 김영희 국장이 갑자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이 20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한,중 양국의 네티즌이 상대 국가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동영상을 제작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옳다고 판단되면 실행에 바로 옮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추진하겠습니다"라고 선포했다. 만일 제작된다면 한,중 양국에서 최초로 이루어지는 일로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함께했던 영상물 제작자 심영인 사장에게 촬영을 의뢰했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북경 천안문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중국 시민들을 만나 촬영을 했다. 심영인 사장은 영상 제작의 귀재이다. 그가 촬영하는 비디오는 모두 풍부한 감성이 담긴 뛰어난 예술적 영상으로 태어났다.

 

심 대표와 나는 귀국하자마자 광화문 광장에 나가 한국 시민들이 중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영상을 촬영했다. 나중에 이 영상은 한중 네티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영상으로 태어났다. 내가 하는 이런 일련의 일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들에 불과하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당신도 쉽게 할 수 있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두드려야만 이루어진다.

 

내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한 첫 단계는 바로 이 손 들기에서 시작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실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 내 생각을 다 알아주고 모든 것을 다 준비한 뒤에 나를 그 자리에 앉히는 일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어떤 사람이 평생 동안 기다렸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그 문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다.

"이 문은 당신의 문입니다. 나는 당신이 말하면 열어 드리려고 이곳에 줄곧 있었습니다."

 

문지기에게 열어 달라고 했으면 벌써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터인데, 단 한 번도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기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내가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음을 시사하는 이야기이다.

 

기회는 내가 만들어야 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내가 원하면 내가 먼저 손짓을 해야 기회가 비로소 내게 미소를 보낸다.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드는 맨 처음 시작은 바로 손 들기이다. 정말 쉬운 방법이다.

 

결국, 좋은 사람이 성공한다_ 민병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3. 31. 08:52

 

나는 오늘을 산다

 

나는 거의 나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지낸다. 나를 찾아오는 제자들에게도 올해 몇 살이냐는 식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처음 만나면 만난 대로 나이를 묻고, 나이를 묻지 않은 채로 친해지는 중이라면 또 그래서 나이를 묻는다.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이다.

 

지금도 일간지 등의 매체에서 이름 뒤 괄호 안에 나이를 밝히는, 마치 법칙 같은 관행이 남아 있기도 하다. 유명인의 결혼 기사가 나도 두 사람의 나이 차이에 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전 국민이 모두의 나이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중요하다. 나이를 알아야 친구를 할지, 존대를 할지, 아니면 슬쩍 말을 놓을지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이는 그 사람의 행동의 당위성을 고려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잇값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는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나이를 기준 삼아 경험치의 다소를 정해 누군가는 가르치려 들고 또 누군가는 배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왜 이렇게 나이에 집착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 박혀 있는 유교 사상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같은 유교 문화권인 중국, 일본도 나이에 관한 질문은 결례에 해당한다고 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글로벌 에티켓을 다룬 <어글리 코리언, 어글리 아메리칸>을 처음 쓴 것이 1993년이다. 그때부터 2014년까지 다섯 차례나 증보판을 내면서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아 고쳐야 할 '어글리 코리언' 에티켓으로 '개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가 포함되어 있다.

 

아주 친하지 않다면 묻지 말아야 질문들이란 나이, 결혼의 유무, 자녀의 유무, 연봉에 관한 것이다. 그중 가장 거리낌 없이 늘 묻는 것이 바로 '몇 살인가'이다. 나이가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할까? 나이는 업무를 하는 데에도, 친교를 나누는 데에도 별 의미가 없는 요소이다. 나이는 젊음이나 늙음을 우리끼리의 잣대에 맞춰 표현하려는 이른바 기호일 뿐이다.

 

나는 젊었을 때에도 나이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생 때부터 파트타임으로 영어를 가르쳤는데 너무나 젊은 나이의 학생이 어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된 입장이어서 더욱이 그랬다. 그래서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나이를 말하는 것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다만 오늘을 살고 있을 뿐, 내가 몇 살이 되려고 몇 살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늘 사회자가 하는 멘트 중 하나가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십니까?"이다.

 

지금 이 나이가 어때서?

 

나는 미국 유학 시절부터 방송에 나오는 오늘까지 계속 미디어에 노출이 되어 있다. 과분하게도 국민 영어 선생님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보통 남자가 대학원에 다니는 나이와 방송에 나온 나이를 얼추 계산해 보면 내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이로 살지 않는다. 나이는 현재의 나를 설명하는 데 아무런 상관 요소가 없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목표가 자꾸만 생긴다. 내 컴퓨터에는 가까운 미래, 먼 미래에 반드시 하고자 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올해 88세의 이케아의 창업주가 좋은 예이다. 그는 경영권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 두었지만 여전히 회사의 고문으로서 많은 것을 관여하고 있다. 나이로만 보자면 은퇴한 지 수십 년이 지나 흔들의자에서 무릎 담요나 덮고 있어야 어울리겠지만 아직도 열정적으로 이케아의 미래를 일구고 있다. 여전히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비행기를 탈 때에는 이코노미 석에 앉는다는 그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농담 같은 진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죽을 시간도 없다."

 

그는 10분은 무척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88세의 나이에도 10분 간격으로 배치된 빡빡한 일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여기에서도 나이에 집착하면 '88세의 할아버지가 무척 건강하시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이를 거둬들이고 생각하면 필생의 사업을 일구려는 집념에 찬 한 남자의 열정적인 성공기가 먼저 보일 것이다.

 

나이는 내가 태어나 몇 해째 되었는지 알게 하는 시간의 개념일 뿐이다. 우스갯소리로 생일날 케이크에 꽂을 초의 수를 정하려고 기억하는 숫자일 뿐이다. 외국에서는 이마저도 상관없이 꽂기도 한다. 나이가 나의 경계를 정해서는 안 된다. 나이가 내 행동의 반경을 정해서도 안 된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위해 충실히 노력하면 그뿐이다. 나잇값을 고려할 것도, 나이에 걸맞은 행동인가 아닌가도 생각할 필요도 없다.

 

공중도덕을 해하거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 나이에 영어 공부를 시작해도 될까요?"

"이 나이에 결혼도 못했는데 괜찮을까요?"

"이 나이에 직장을 옮기고 싶은데 어쩌죠?"

 

큰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중이라면 나이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 원한다면 하면 된다. 몇 살의 당신이 아닌, 목표가 분명한 당신이 원하면 하는 것이다.

 

결국, 좋은 사람이 성공한다_ 민병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3. 31. 08:23

by 미스터신 2016. 3. 24. 12:40

 

옛날에 나무 네 그루가 모여 살았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최고라고 뽐냈다. 첫 번째 나무가 자랑한다. "나는 단단하고 몸통이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최고급 가구를 만드는 목수들이 나를 좋아하지." 두 번째 나무는 "나는 아주 맛있는 열매를 많이 맺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나를 아주 좋아하지"라며 으쓱한다. 세 번째 나무가 이에 질세라 뽐낸다. "나는 아주 향기로운 예쁜 꽃들을 많이 맺기 때문에 귀부인들이 나를 아주 사랑하지."

 

구석에 쳐 박혀 있던 네 번째 나무는 아무 자랑도 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구불구불 자라고 껍질도 딱딱한 그 나무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저마다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를 말하던 나무들은 사람들에 의해 하나둘 베어졌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네 번째 나무만 덩그러니 남는다. 더운 여름이 오자 사람들이 이 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아, 이 나무 그늘 정말 시원하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500여 년 전 중국의 철학자 장자가 말한 '무용지물'. 즉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의 우화다. 왜 장자는 무용지용을 말했을까? 도대체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 철학자들은 왜 이렇게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것일까?

 

한 회사에서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던 연구원이 있었다. 개발하는 것마다 접착력이 떨어지자 그는 사내 게시판에 공고를 낸다. "이 쓸모없는 접착제가 필요한 사람은 가져다 쓰세요." 이때 성경책 북마크용 접착제를 개발하던 연구원이 그 접착제를 쓰겠다며 찾아온다. 자신이 개발 중인 접착제는 접착력이 너무 강해 한 번 책장에 붙이면 뗄 때마다 종이가 찢어져서 고민이었다. 그런데 접착력이 떨어지는 쓸모없는 접착제를 가져와 사용해보니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해도 괜찮았다. 이것을 시장에 내놓자 대박이 터진다. 바로 3M의 '포스트잇'이야기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 된 실제 사례다.

 

조롱박으로 물병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물병은 물을 충분히 담을 수 있고 또 가지고 다니기에도 편리해야 한다. 그 용도에 꼭 맞는 조롱박만을 골라 물병을 만들었다. 어느 해, 엄청나게 큰 조롱박만 주렁주렁 열리자 고민에 빠진다. 큰 조롱박으로 물병을 만들면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고, 조롱박을 잘라도 너무 커서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조롱박을 헐값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자 가게 밖에 수북이 쌓아 놓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와서 그것을 쓸어 담아가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그 큰 조롱박 둘레에 그물을 씌운 다음, 그것을 허리에 동여매고 물에 띄었다. 조롱박이 커서 공기를 충분히 담을 수 있었기에 둥둥 잘 떴다. 조롱박 안에 물을 담는 것이 신통치 않으면, 바깥에 담을 수도 있지 않은가! 장자가 말하는 무용지용의 또 다른 사례다.

 

장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물의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은 사물에 내재된 속성이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용처를 아는 사람에게는 쓸모 있는 것이고, 용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리만이 있을 뿐이다.

 

철학과 입시생들의 면접을 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모두 부모와 싸우고 온다.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는 순간 전쟁 시작이다. "하고 많은 전공 중에 왜 하필 철학을 하겠다는 거냐."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말이 있다. "너 그럼 굶어 죽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 공부해서 뭐 하려고 그래." 1973년에 연세대 철학과 원서를 쓸 때의 나도 그랬다.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하셨다. 그래도 나는 무슨 생각인지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 쓸모없는 철학으로 더 오래 살아남았다. 철학, 인문학의 그 쓸모없음에 쓸모 있음이 있다.

 

실용을 앞세우는 분야일수록 정신없이 쏟아지는 이론들이 다음날이면 폐기 처분된다. 그러나 철학은 2500년 전 스승들의 말씀이 그대로 남아 우리에게 지혜와 통찰을 준다.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고전으로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철학의 힘은 현실에서 힘이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나온다. 철학한다고 돈이나 권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 철학은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일까?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다. 무엇이 쓸모 있고 없는지는 바로 우리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고, 쓸모 있는 것이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한 장자는 이 모든 것이 우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부디 철학을 만나시길. 인문학을 만나시길. 그 만남이 얼마만큼 쓸모 있을지는 온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다.

 

철학의 힘_ 김형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31. 13:50

자녀가 뭐든지 잘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접고,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나 자기가 가진 능력 중에 뛰어난 것이 있음을 일찍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 그것에 스스로 매진할 수 있는 지구력을 키워 주어야 한다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_ 박경애

적극적인 격려는 소극적인 자극보다 효과 면에서 더 좋은 방법이지만 남용하면 효과가 줄어든다_ 천허친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14. 09:06

 

자제가 안 되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부모의 훈육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아이들은 어린 시절 자주 심하게 벌을 받았다. 심지어는 사소한 실수에도 부모로부터 뺨을 맞고, 주먹으로 맞고, 발로 채이고, 두들겨 맞고, 회초리로 맞았다. 그런데 이러한 훈육은 의미가 없다. 절제되지 않은 훈육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훈육이 무의미한 이유는 부모 자신들이 자제가 안 돼 있어서 아이들에게 그런 행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말한 대로 하고 내가 행동하는 대로 하지 마라"고 하는 부모다. 그들은 아이들 앞에서 자주 술 취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위엄도 조심성도 분별도 없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되는 대로 살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할 것이다. 부모의 삶이 무질서하고 정신없으면서 자녀들에게 절제된 생활을 가르치려는 것은 먹히지 않는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주기적으로 때리는 가정에서, 여동생을 때렸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아이를 때리면 아이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에게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하면 아이는 그 말이 이해가 될까? 어릴 때는 비교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어린 눈에 비친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부모가 하루하루 자제하고 조심스럽고 품위 있게 행동하고 질서 정연한 생활 능력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마음속 깊이 이것이 사는 방식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매일을 무질제하게 제멋대로 사는 부모를 보아도 아이들은 마음속 깊이 이것이 삶의 방식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때로 무질서하고 정신 사나운 가정에도 진실한 사랑이 존재한다. 이러한 가정에서는 절제할 줄 아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다. 의사, 변호사, 여성 사업가, 자선 사업가와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주 절도 있고 단정하게 생활하는 부모이기 쉽다. 그러나 만약 사랑이 부족한 경우 그런 부모들은, 가난하고 무질서한 가정에서 자란 여느 아이들처럼 무절제하고 파괴적이고 정리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길러낸다.

 

결국 사랑이 전부다. 사랑의 신비함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검토할 것이다. 그러나 책 전체의 유기적인 관계를 위해 이 시점에서 사랑과 훈육과의 관계에 대해 부분적이나마 간략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가치 있다는 의미이고, 어떤 것이 가치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에 시간을 투자한다. 그것을 즐기고 그것을 돌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자동차와 사랑에 빠진 십대를 유심히 보라. 아이는 그 자동차를 홀린 듯 바라보고 광을 내고 수리하고 튜닝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혹은 사랑하는 장미 정원에 있는 노인을 보라. 그는 정원에서 가지를 쳐내고 뿌리를 다독여주고 거름을 주고 정원을 자상하게 살피면서 시간을 보낸다. 자녀를 사랑할 때도 이와 같다. 우리는 아이들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돌보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제대로 훈육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자녀에게 줄 시간이 없거나 시간을 들일 마음이 없으면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에게 훈육의 필요성이 은근히 드러나는 순간을 놓치고 만다. 훈육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때도, 아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에 이를 무시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서 "그저 오늘은 아이들을 돌볼 에너지가 없을 뿐이야."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침내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 짜증을 돋우면 어쩔 수 없이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 때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 문제에는 어떤 훈육이 가장 좋을지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도 않고, 교육적 의도에서라기보다는 화가 나서 가혹하게 훈육을 하게 된다.

 

아이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부모는 아이가 확실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아이를 훈육해야 할 미묘한 순간도 알아차리고 애정과 배려로 부드럽게 타이르거나 야단치거나 방법을 알려주거나 칭찬을 한다. 그러한 부모는 아이가 어떻게 케이크를 먹고, 어떻게 공부를 하고, 어느 때 살짝 거짓말을 하는지, 어느 때 문제에 부딪치기보다는 문제에서 도망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대답하고, 이럴 때는 약간 조이고, 저럴 때는 약간 풀어주고, 조금 가르치기도 하고, 이야기도 좀 들려주고, 살짝 안아서 뽀뽀도 해주고, 훈계도 좀 하고, 살짝 등을 두드리면서 시간을 들여 이러한 사소한 문제를 고쳐주고 바로잡아준다.

 

그러므로 사랑이 넘치는 부모의 훈육 방식은 사랑 없는 부모의 그것보다 질적으로 월등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는 아이의 욕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결정을 내릴 때 괴로워하고 말 그대로 아이와 고통을 함께한다. 아이들은 맹인이 아니다. 부모가 자기와 고통을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당장 고마움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아이들 역시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기꺼이 나와 함께 고통을 받고 있으니 고통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닐 거야. 나도 기꺼이 괴로움을 견뎌야지" 라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자기 절제의 시작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치는 시간의 질과 양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근본적으로 사랑이 없는 부모는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서 아이에게 자주 사랑을 고백하고, 정말 친밀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한다. 아이들은 결코 이러한 공허한 말에 속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하면서 의식적으로 그 말에 집착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부모의 말이 행동과 다르다는 것을 안다.

 

이와 반대로, 진정으로 사랑받는 아이들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무시당했다 주장하고 억지를 부릴지라도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차린다. 이러한 인식은 황금보다도 가치가 있다. 자신이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 다시 말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느낀다면, 스스로 소중하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며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그것은 부모가 주는 사랑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러한 믿음은 어린 시절에 획득해야만 한다. 성인이 돼서 그것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다. 역으로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은 어른이 되어 시련을 겪더라도 그러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이 느낌은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돌보게 된다. 자기 절제는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다.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계획을 세우고 일의 순서를 정하는 방법을 이야기해왔으니 시간의 문제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만약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면 시간을 소중하게 느끼게 되고 시간이 소중하게 생각되면 시간을 잘 이용하고 싶어진다. 앞서 소개한, 일을 미루기 일쑤였던 재무분석가는 자기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중하게 생각했더라면 하루의 대부분을 그렇게 비생산적이고 불행하게 보내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우연히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원했다면 완벽할 정도로 잘 돌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돈을 받고 아이를 돌보는 집으로 그녀를 보내버렸다.

 

부모는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이며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끼며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절제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지적이고 유능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절제에 관한 한 가장 기초적인 학습이 필요했다. 자기 가치와 자기 시간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면, 시간을 절약하고 계획을 세우고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어린 시절에 부모의 변함없는 사랑과 돌봄을 받은 운 좋은 아이들은 자기 가치를 마음속 깊이 인식할 뿐만 아니라 깊이 안정감을 느끼면서 성인으로 자란다. 모든 아이들은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는데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은 생후 6개월에 접어들 무렵, 즉 자신이 부모와는 분리된 개별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서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은 아주 무력하다는 것, 즉 모든 삶을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한 온갖 것들을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그것이 모두 부모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에게 버림받는 것은 죽음과 같다. 아이와 관련된 것이 아닐 때는 상대적으로 무심하거나 냉담한 부모도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는 본능적으로 민감하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수백 번 수천 번 되풀이해서 확신을 시켜준다.

 

"엄마 아빠가 너 혼자 내버려두고 가지 않는다는 것 알지?"

"당연히 엄마 아빠가 너를 데리러 올 거야."
"엄마 아빠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어도 이러한 말들이 행동과 일치하면 아이들은 청소년기가 될 때쯤 버림받는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세상은 안전한 곳이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보호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될 것이다. 세상이 언제나 안전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자유롭게 이런 저런 즐거움을 뒤로 미룰 줄 알고, 즐거움을 위한 기회는 집과 부모처럼 언제나 거기에 있으며 필요하면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확실히 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부모가 죽고 없거나 버림받거나 순전히 방치되거나 재무분석가의 경우처럼 단지 사랑이 결핍되거나 해서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아이들은 실제로 상당히 많다. 그런데 사실 버림받지 않는 아이들도 부모에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받지 못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어떤 부모는 가능한 쉽고 빠르게 훈육하고 싶어서 노골적으로든 은근하게든 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부모가 아이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게 무얼 말하는지 알겠지?"

 

물론 그것은 버림받음이고 죽음이다. 이러한 부모는 아이를 조정하고 지배할 필요 때문에 사랑을 희생한다. 그 대가로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아이들은 심리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버림받은 채, 세상은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장소라는 뿌리 깊은 의식 없이 성인에 이른다. 그들은 반대로 세상을 위험하고 무서운 곳으로 인식하고 미래에 더 큰 즐거움이나 안전을 보장받는다 해도 현재의 어떤 즐거움이나 안전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는 참으로 미심쩍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아이들은 스스로 훈육할 줄 아는 역할 모델과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 하고 존재의 안전함을 신뢰해야 한다. 이러한 '자산들'은 부모의 자기 절제와 순수하고 일관된 보살핌을 통해서 획득된다. 이것이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부모에게서 이러한 선물을 받지 못할 경우 다른 곳에서 획득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그 획득 과정은 힘든 투쟁이 된다. 때에 따라서는 평생 걸릴 수도 있고 그나마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 펙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0. 1. 20:06

 

그저께는 정원을 다듬고 난 뒤에 남은 돌을 그냥 두기가 아까워서 산신각 뒤에 야트막하게 축대를 쌓았다. 덕분에 어지럽던 뒤쪽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는데, 이 일은 석공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어깨너머 배웠던 내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들쑥날쑥하고 울퉁불통 한 돌을 앞줄 아귀를 맞추어서 놓으니까 반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아주 못생긴 모양이라서 석공 손에서 천대받았던 돌이 나를 만나서 비로소 쓰임새가 있게 된 셈이다.

 

네모진 돌이든 세모진 돌이든 저마다 앉을 자리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이런 일을 하면서 담장을 쌓는 데는 크고 작은 돌과 모나고 둥근 돌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어떤 생김새든 저마다의 쓰임이 따로 있는 것. 여기에 조화와 균형의 비밀이 숨어 있다.

 

스님의 일기장, 현진스님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31. 19:41

 

전 아직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주변 사람들이 꿈이나 장래희망을 물어볼 때마다 솔직히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아요. 부모님은 제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그저 돈을 잘 벌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바라세요. 그래서 장래희망을 적을 때마다 요즘 많이들 하고 싶어 하는 공무원을 써서 내곤 해요. 남들이 보면 저는 꿈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전 꿈이 없어요.

 

나는 변호사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사법고시는 수석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검사와 소장, 교수라는 직업으로 수십 년을 살았다. 많은 이들이 말하는 '성공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60년이 넘게 살아온 시점에서 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가 살아온 삶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나는 공부를 좋아하던 학생이 아니었다. 공부보단 글쓰기를 좋아하고, 말하기와 연설에 더 소질이 있었다.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곧잘 눈물을 흘렸을 만큼 감수성도 풍부했다. 방송반 활동도 열심히 하고 종교에도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적성에 맞추지 않고 성적에 따라 진로를 결정하고 보니 검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하게 된것이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 성공했다고 할 수 없었다. 내가 삶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적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사로 일하면서 우연히 비행 청소년의 눈물을 봤다. 그 눈물이 나를 운명처럼 청소년운동의 길로 이끌었다. 먼 길을 돌아 드디어 진정한 '나의 길'을 찾았다. 지금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신기루를 쫓지 않고 자신의 타고난 적성을 발견하여, 하고 싶은 일 중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진정 좋아하는 목적을 이루며 사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적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진 적성을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타고난 적성 찾기 국민실천본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적성을 찾다 보면 경제적인 문제가 걱정되는 부분이 많을 수 있다. 생활고를 겪어서 먹고살기가 힘들 수도 있다. 경제적 자립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적성을 찾게 되면 경제적인 걱정을 덜 하게 된다는 점이다. 적성을 찾으면 심리적으로 행복해지고, 돈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다. 더 나아가 적성을 찾아서 행복하게 일하게 되면 먹고살 길이 열릴 가능성도 굉장히 높아진다.

 

영광삼촌 : "서울대 졸업, 사법고시 수석합격, 검사와 변호사."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이야기 같지? 하지만 실제 이 삶의 주인공인 강지원 변호사라는 분은 본인의 삶을 후회한다고 했어. 왜냐하면 타고난 적성과 맞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삼촌은 네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꿈에 대한 조급함, 꿈에 대한 강박관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길 바라.

 

많은 선생님과 책들이 원대한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해. 중요한 이야기지. 마치 젊어서 꿈을 갖지 못한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식이야. 그런데 강지원 변호사를 봐. 정말 그런지. 급하게 떠밀리듯 발견한 꿈이나 직업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큰 후회로 남기 마련이라고 그 분은 고백하지. 혹시나 지금 우리는 꿈이나 성공이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직업을 갖고 사는지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질문이 있지 않을까? 삼촌은 이 이야기를 네게 해 주고 싶어.

 

돌잔치에서 하는 돌잡이서부터 어른들은 '직업'을 이야기해. 유치원때부터 지금까지 어른들이 꿈을 물으면 우린 직업을 대답해야 했어.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만족할 만한 대답들을 말이야. 나는 정말 내 적성이 뭔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충분히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 누구도 그럴 기회조차 준 적이 없는데 말이지. 청소년은 꿈을 가져야 한다는 어른들의 암묵적인 압력이 우리로 하여금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꿈을 '정해 버리는' 실수를 하게 하는 건 아닐까?

 

청소년이 선호하는 직업을 조사한 결과를 보자. 의사, 공무원, 교사, 연예인이 언제나 맨 앞에 자리하고 있어. 그런데 정말로 원해서 이 꿈을 희망하게 된 걸까? 이 꿈들이 정말 청소년들이 좋아하고,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꿈일까? 여기서 재미있는 건 청소년들의 선호직업 순위와 학부모들의 선호직업 순위가 거의 똑같다는 사실이야. 부모님이 청소년의 꿈을 따르게 된 걸까, 아니면 반대로 청소년이 부모의 꿈을 대신 꾸고 있는 걸까?

 

꽃마다 피는 시기가 달라. 진달래처럼 봄에 피는 꽃이 있고, 봉숭아처럼 여름에 피는 꽃도 있고, 국화처럼 가을에 피는 꽃도 있어. 심지어 동백꽃처럼 겨울에 피는 꽃들도 있어. 다 꽃피는 자기만의 때가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은 자기 꿈을 빨리 찾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60이 넘은 뒤늦은 나이에 찾기도 하지. 기억할 건 꿈을 빨리 찾는다고 해서 꿈을 빨리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늦게 찾는다고 해서 늦게 이루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꿈을 결정하는 시기가 아니라, 그 꿈이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내 적성에 맞는 꿈이냐 하는 것이지.

 

그러니 지금, 꿈이 없어도 괜찮아. 조금 늦더라도 정말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네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더 많은 꿈을 탐색할 기회와 시간이 아직 많아. 오히려 부족한 경험과 좁은 시야로 아주 뚜렷한 꿈이나 희망 직업을 정하는 게, 너무 이르고 이상하고 억울한 선택일 수 있어. 이런 경우 부모님이나 주위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꿈들이 많거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다만 그 꿈을 붙들고 평생을 달렸는데 나이가 들어 그게 내가 정말 원한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생각해 보자는 말이야.

 

지금, 꿈이 없어도 괜찮아 / 박승오, 김영광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1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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