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지능을 어떻게 발달시킬까?

 

공부지능을 개발하려면 뇌를 반복적으로 자극해 뇌의 기본 단위인 뉴런과 뉴런을 연결해주는 시냅스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뇌는 동시에 여러 기능이 발달하지 않는다. 즉, 아이의 언어능력, 사회성, 정서지능, 집중력, 감정표현능력 등이 전부 동시에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발달한다. 이는 뇌가 영역별로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고, 각 영역이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뇌가 한꺼번에 발달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특히 공부지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IQ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중에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아이들을 교육할 때 자주 참조하는 내용이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피아제는 아이의 지능을 검사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정신적 성숙, 다시 말해 아이의 인지발달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단계를 거쳐 순서대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피아제가 정리한 인지발달 단계는 크게 감각운동기, 전조작기, 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로 구분된다. 감각운동기는 0~2세, 전조작기는 2~7세, 구체적 조작기는 6~7세경부터 11~12세, 마지막으로 형식적 조작기는 11~12세부터 성인기 초기까지에 해당한다. 각 단계별로 주로 발달하는 인지능력이 다른데, 이는 뇌가 발달하는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반면 공부지능을 구성하는 또 다른 핵심 요소 EQ의 발달 단계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한 편이다. EQ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오랜 기간을 두고 발달할 수 있는 지능이기도 하고, EQ라는 개념이 1990년 미국 예일대 심리학 교수인 피터 샐로비와 뉴햄프셔대 존 메이어 교수에 의해 처음 정의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연구를 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EQ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순차적으로 발달한다. 아이는 태어난 후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이해한다. 또한 동생이 태어나거나 유치원에서 또래와 어울리면서 사회성을 키우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기도 한다. 이처럼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EQ 또한 발달할 수 있지만 아이 혼자서는 어렵다. 아이들의 EQ는 부모가 어떻게 도와주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뇌와 공부지능은 기본적으로 각 영역별로 발달하는 시기가 다르지만 각 영역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골고루 발달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피아제의 인지발달 단계를 기준으로 각 단계별로 인지능력뿐만 아니라 EQ, 집중력, 창의력 등의 공부지능이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정리해보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모든 아이들이 피아제의 4단계에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이 속한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거나 배우는 것이 느린 아이, 반대로 훨씬 빨리 배우는 아이를 모두 보았다. 이는 생체연령과 정신연령이 달라 생기는 문제다.

 

이런 아이들은 인지발달 단계에서 예외적인 아이들로, 선생님과 부모가 면밀한 관찰을 통해 아이가 어떤 단계에 속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런 다음 아이의 단계에 맞는 교육을 해야 인지능력을 발달시키고, 더 나아가 공부지능까지 연결해 개발시킬 수 있다.

 

감각운동기(0~2세) : IQ와 EQ, 신체능력 고루 발달

 

감각운동기는 피아제 인지발달의 첫 단계로 0~2세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뇌가 가장 빠르고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다.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등 뇌의 전 영역이 고루 발달하면서 IQ와 EQ의 바탕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IQ와 EQ는 물론 신체능력도 골고루 발달한다. 이처럼 0~2세까지는 뇌의 어느 한 부분만 발달하는 것이 아니므로 공부지능 전 영역이 고루 발달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감을 자극해 주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일찌감치 한글을 가르치는 부모들도 많은데, 그림책을 보여만 주기보다는 읽어주거나 책을 직접 만져보게 하는 등 오감을 모두 활용하면 IQ와 EQ를 동시에 발달시킬 수 있다.

 

특히 생후 18개월 전까지는 신체를 많이 사용하는 체험을 통해 다양한 감각을 경험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감각 기관이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다양한 감각을 체험하는 것이 뇌의 발달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물건이나 음식을 빨고, 만지고, 던지는 것을 방해하지 말고, 위험하지 않은 이상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아이의 소근육이 성장하고 감각을 사용하는 방법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우선 새로운 환경에서 단순한 반사를 한다. 신생아가 입술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빨아대는 '빨기 반사'가 대표적이다. 이미 이 단계의 신생아들도 그들의 반사를 도식화한다. 즉 신생아들이 머리와 입술을 동시에 움직여서 움직임이 엉키지 않도록 행동의 과정을 정한다는 뜻이다. 신생아들은 젖꼭지나 입안에 닿은 물체의 크기에 맞추어서 빨기 반사를 조절하기도 하며, 젖을 찾기 위해 머리와 입술의 움직임을 조정하고, 심지어 젖병이 입에 닿기 직전에 미리 이를 예측하여 입을 벌리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 반사적으로 한 행동을 계속 반복해서 완벽히 익숙해지면 이것을 기초로 의도적으로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른 행동에까지 익숙해진 다음에는 스스로 다양한 행동을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해 보려고 한다.

 

이렇게 발달한 아이는 대상 영속성 개념을 가진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물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엄마가 아이 앞에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아이는 두리번거리면서 엄마를 찾는다. 그러다가 엄마가 손을 치우면 엄마가 갑자기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재미있어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때는 대상 영속성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엄마의 얼굴이 손으로 가려져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각운동기에는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 주어야 하는데, 이를 심리학 용어로 '애착'이라고 한다. 엄마가 아이를 보고 행복해하고, 아이가 웃으면 함께 웃고, 엄마의 체온을 느끼게 하는 행동은 훗날 아이의 언어능력과 정서적 안정, 대인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가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보다 지능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데, 이는 모유와 분유의 성분 차이보다는 엄마와의 신체적 접촉을 통한 안정감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분유를 먹이더라도 아이를 품에 꼭 안고 눈을 맞추면서 충분한 교감을 나누면, 모유를 먹은 아이들 못지않게 지능이 발달할 수 있다.

 

부모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러 사람과 교감하면서 언어를 배우고 다양한 종류의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통해서 사회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IQ는 물론 EQ가 동시에 발달하는 셈이다.

 

뇌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발달한다. 긴장이 심하면 뇌가 쪼그라들어 활성화하기 힘들다. 따라서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편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럴수록 뇌가 편해져서 정서적으로는 물론 인지능력을 발달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전조작기(2~7세) : 언어가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

 

피아제의 인지발달 두 번째 단계인 전조작기는 약 2~7세에 해당하는 시기다. 뇌의 발달 측면에서 보면 측두엽과 후두엽이 가장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측두엽은 언어능력을 담당하고 후두엽은 시각 정보처리를 담당한다. 즉 언어능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여서 이때 다양한 언어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도와주면 아이가 빠르고 쉽게 언어를 배울 수 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은 전조작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히 IQ와 EQ를 동시에 개발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본격적으로 말을 배울 때 부모가 아이들에게 말을 자주 걸고 아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반응하면, 아이의 언어능력이 발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높아진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고 있다는 느낌이 아이로 하여금 긍정적인 자아를 갖게 한다.

 

측두엽과 함께 시각 정보를 담당하는 후두엽도 활발하게 발달하므로 다양한 시각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말을 가르칠 때 동물 그림을 활용하면 훨씬 빨리 언어를 익힐 수 있고, 측두엽과 후두엽이 자극을 받아 더욱 발달할 수 있다.

 

동화책 읽어주기도 언어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 좋은데, 이는 아이가 엄마의 목소리에서 심리적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전조작기는 2~4세의 '전개념적 사고 단계'와 4~7세의 '직관적 사고 단계'로 나뉜다. 4세 이전의 아이들에게 "토끼가 무엇인지 아니?"하고 물으면 대부분 '털이 하얘요', '귀가 길어요'등 토끼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답을 하지, '토끼는 동물의 한 종류예요' 같이 토끼의 개념을 언어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려워한다. 이 무렵 아이들은 보통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에 집중하는 전개념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전개념적 사고 단계에서는 시각적인 교구나 책이 지능발달에 효과적이고, 4~7세의 직관적 사고 단계에서는 일정한 줄거리를 담고 있는 책들이 도움이 된다. 만일 우리 아이가 4세인데 전개념적 사고를 넘어 6세의 직관적 사고를 한다면 신체연령은 4세지만 정신연령은 6세라고 볼 수 있으므로 6세에 맞는 지적 자극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의 세심한 관찰을 통해 정신연령에 맞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시중에는 많은 종류의 시각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책과 교구재 등이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하면 공간지각능력, 집중력, 단기기억력 등의 동작성 지능이 효과적으로 발달한다. 가베, 팩토, 오르다 등이 대표적인 교구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도 난이도에 따라 수준을 분류한 것을 선택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언어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 미국에서는 아동 도서의 난이도를 매우 정밀하게 분류한다. 책에 쓰인 내용과 단어의 난이도, 문장의 길이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여 아이의 영어 독서능력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렉사일 지수', 'AR지수', 'RL지수' 등으로 구분한다. 특히 미국의 아동 전문 출판사 스콜라틱스의 책은 지수에 맞게 난이도를 높혀 가며 읽히면 언어성을 키워주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지수를 사용하지 않지만 아동 전문 출판사인 교원이 발달 단계와 읽기 수준에 따라 분류한 책들을 출간하고 있다. 같은 제목의 동화책이더라도 5세, 7세, 10세 연령별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하였는데, 이는 책의 난이도를 고려하였다는 뜻이다. 아이에게 읽어줄 책을 선정할 때도 아이의 선체연령이 아닌 정신연령에 맞는 책을 골라주는 것이 좋다.

 

구체적 조작기(6~12세) : IQ 전 영역과 집중력 발달 시기

 

구체적 조작기는 6~7세부터 11~12세까지,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6년이 바로 이 시기에 속한다. 또 '생각하는 뇌'라고 불리는 전두엽과 전두엽 중에서도 가장 앞부분에 있는 전전두엽이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다. 공부지능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IQ와 EQ는 이 전전두엽, 전두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초등학교 6년이 공부지능을 개발하는 최적의 시기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부지능의 부가적인 요소인 집중력도 만 6세 이후부터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인지적, 논리적인 면에서 매우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전 단계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형태가 변해도 양과 부피는 보존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따라서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의 특징을 넘어서 물체들을 색깔과 형태에 따라 상위 항목과 하위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다. 크기나 무게에 따라 순서대로 배열할 수 있으며 논리적인 추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시기 아이들의 논리적 사고는 자신의 경험과 많이 관련되어 있어서 성인처럼 추상적인 내용을 추리하지는 못한다. 만약 신체연령이 5세인데도 논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다면 그 아이의 정신연령은 5세가 아니다. 구체적 조작기에 이미 도달하였기 때문에 그 때에 맞는 교육을 시켜야 적기 교육인 것이다.

 

10세 이상인 아이의 뇌는 반복적인 행동을 했을 때 시냅스가 발달하고 정교해지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특히 적기를 잘 생각해서 다양한 체험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나는 특히 이 시기에 수학과 국어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학과 국어 공부를 통해서 구체적 조작기의 뇌를 매우 정교하게 발달시킬 수 있다.

 

단, 구체적 조작기에는 생체연령과 정신연령을 동일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전조작기까지는 생체연령과 정신연령의 차이가 크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 조작기에 접어들면 뇌의 기능이 폭발적으로 개발되어 같은 나이라도 정신연령이 크게 차이 날 수 있다. 아이의 생체연령은 8세지만 정신연령은 다를 수 있으므로 내 아이의 정신연령이 몇 세인지를 찾아내는 일도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난이도에 따라 분류된 교재나 교구 중에서 아이가 다소 힘들어하는 부분을 찾거나 정기적인 지능검사를 통해 아이의 정신연령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만일 아이의 수준보다 쉬운 책을 반복해서 읽어준다면 적기에 지능이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나는 연구소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칠 때, 공부지능의 발달을 돕기 위해 독일에서 개발된 '루크'를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언어성과 동작성, 집중력을 골고루 개발할 수 있는 뇌 과학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이다. 연산력과 작업기억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서울교대 배종수 교수가 개발한 18단계로 이루어진 '머리셈 교재'를 함께 활용한다. 기억력과 집중력을 함께 키워주기 위해 뇌가소성 이론을 근간으로 개발된 '브레인 HQ 프로그램'도 사용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체적 조작기는 아이들의 지능이 매우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기다. 이때 얼마만큼 지능을 발달시키느냐에 따라 이후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사고가 얼마나 가능하느냐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적으로 지능을 개발해야 한다. 구체적 조작기에 해당하는 약 6~9년 동안 그때그때 적기에 맞는 책, 교구, 교재 등을 활용하면 유전적으로 타고난 지능을 강화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형식적 조작기(11~18세) : 논리적 추리력 발달 시기

 

형식적 조작기는 파이제 인지발달의 마지막 단계로, 11~12세경부터 성인기 초기까지 계속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들의 사고는 성인들처럼 발달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추상적인 내용으로 논리적인 추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때부터는 '여기, 그리고 지금'의 상황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한 아이가 울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상황을 보고 구체적 조작기의 아이는 '나도 예전에 넘어져 운 적이 있어. 아마 저 아이도 넘어져서 우는 걸 거야'라고 생각한다. 반면 형식적 조작기의 아이는 '배를 잡고 우는 것을 보니 배가 아픈가 봐', '큰 아이가 들고 있는 장난감을 보면서 우는 것을 보니 장난감을 빼앗겼을 거야' 등 자신의 경험과 상관없는 추리도 할 수 있다. 형식적 조작기의 아이는 명제를 이해할 수 있어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지능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역시 생체연령으로 발달단계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요즘은 특히 생체연령은 구체적 조작기에 해당하는데 정신연령이 형식적 조작기 수준인 아이들이 많다. 피아제가 인지발달 단계를 연구했을 때보다 뇌와 인지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더 발달하기도 했고, 충분한 영양 공급, 조기교육, 교육기관의 발달, 교수방법의 발달, 교육열 증가로 인해 아이들의 정신연령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교육에 있어 독해력과 어휘력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공부는 구체적 조작기에 맞는 학습이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공부는 형식적 조작기에 하는 것이 좋다. 수학에서도 11세까지는 연산이나 계통 수학 개념 위주의 공부가 수학적 사고력과 지능 개발에 도움이 되고, 사고력 수학이나 문제해결력을 요구하는 심화 문제는 고학년이 되어서 접근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데 종종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심화 문제를 풀고 사고력 수학을 재미있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아이의 지능을 검사해 보면 상위 2퍼센트 이내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정신연령으로 보면 6학년 수준인 셈이다. 이 아이의 경우 신체연령은 구체적 조작기이지만 정신연령은 형식적 조작기이기 때문에 사고력 수학을 공부해도 적기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연령이 형식적 조작기에 미치지 않는 아이들이 심화 문제와 사고력 수학을 한다면 별 효과가 없는 수준의 학습이 되고 만다.

 

이처럼 생체연령과 정신연령이 다른 경우가 많으므로 생체연령의 기준에 연연해하지 말고 정신연령을 기준으로 내 아이에게 맞는 수준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뇌를 최대한 발달시켜 공부지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뇌는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공부지능은 분명 타고나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후천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공부지능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하는 근거는 바로 '뇌가소성'에 있다. 뇌가소성이란 뇌는 성장을 다하면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말한다. 즉, 예전에는 뇌를 구성하는 뇌세포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습이나 환경에 따라 뇌세포가 계속 성장하거나 쇠퇴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뇌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완성되어 있다. 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과거에는 아이의 뇌를 새하얀 도화지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의 지능이 타고나기보다 태어난 이후 부모와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뇌의 구조가 알려지면서 아이의 뇌가 하얀 도화지가 아니라 처음부터 많은 것이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의 뇌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뉴런은 임신 6개월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아이가 태어날 때는 1000억 개 가량이 완성된다. 이는 성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개수다. 즉, 신생아의 뇌와 성인의 뇌는 적어도 기본 구조에서만큼은 큰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아이는 텅 빈 도화지 같은 뇌가 아니라 이미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도화지 같은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 많은 사람의 견해다. 공부지능이 반은 타고난다고 보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태어날 때 이미 뇌가 꽤 정교한 밑그림을 갖춘 상태라면, 부모가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도 뇌가 알아서 발달할까? 밑그림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 자체가 완성된 그림은 아니다. 태어날 때 뉴런의 개수가 성인과 비슷하다고 해서 태어나자마자 성인처럼 유창하게 말을 하거나 일어나 걸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뉴런은 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신경세포지만 뉴런만으로 뇌가 발달하지는 않는다. 뉴런이 뇌의 기본적인 성능을 결정한다면, 세밀하고 치밀한 행동은 뇌에 있는 뉴런들을 이어 주는 시냅스의 수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시냅스는 생후 4개월까지 급속하게 늘어나며, 다양한 경험을 하면 시냅스의 수가 많아진다. 아이가 생후 한 살이 지나면 뇌에서 쓰지 않는 시냅스를 없애기 시작하는데 이를 '가지치기'라고 한다. 시냅스가 많을수록 뇌가 할 수 있는 능력도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냅스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가지치기는 시냅스를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쓰지 않는 시냅스를 버리는 일은 아이의 뇌가 중요한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구분해서 선택한다는 뜻이다. 컴퓨터와 달리 뇌는 환경에서 중요한 것을 골라 스스로 발전하고 변화한다.

 

결국 뇌는 비교적 정교한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도화지와도 같지만 그 밑그림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적절한 시기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극을 주면 아이의 뇌는 좋은 방향으로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다. 반대로 꼭 필요한 시기에 제대로 좋은 자극을 주지 않으면 아이는 밑그림 단계에서 머물 수도 있다. 자극을 받더라도 스트레스나 상처와 같은 부정적인 자극을 받으면 EQ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뇌가소성을 이해한다면 반복과 강화를 통해서 뇌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학에서의 연산, 어휘 학습, 암기 훈련 등이 뇌를 효과적으로 발달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반복하기 좋은 교육이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지능을 발달시킨다.

 

사고력 수학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은 중학교 이상인 아이들에게나 가능한 얘기다. 적어도 초등학교때까지는 뇌를 발달시키는 데 사고력 수학보다는 연산이 효과적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단어를 많이 외우는 것이 지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글쓰기와 같이 표현하는 훈련은 중고등학교 이후에 하는 것이 좋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논술교육 역시 중학교 이후에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이처럼 아이의 뇌는 어떤 자극을 주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발달할 수 있다. 뇌가소성을 이해하고 적기에 적절한 자극을 줄 수 있도록 부모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초등 6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드는 최적의 시기

 

공부지능 개발의 적기는 초등학교 6년이라 보면 된다. 조금 더 넓게 잡으면 3~4세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도 포함되지만, 적기를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간이라 본다면 초등학교 6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공부지능을 기반으로 한 학습으로 초등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공부지능은 타고나는 요인이 분명 있지만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

 

내가 진행하는 공부지능 기반 학습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공부지능 중 강점 지능과 약점 지능을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나아가 기준이 아닌 아이의 공부지능에 맞춰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끼리 묶는다. 그리고 각 집단마다 현재 수준에 맞는 난이도와 진도를 설계해 수업을 진행한다.

 

보통 강점과 약점을 이야기할 때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성인에 국한된 이야기다. 자기계발할 시간도 많지 않고, 능력을 더 발전시키려 해도 개발 적기가 지나 효과가 미미할 때는 약점보다 강점에 집중하는 것이 성과를 내는 데 유리하다.

 

아이들의 공부지능을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적기에는 어느 한두 가지 두각을 나타내는 능력에만 집중해서는 곤란하다. 여러 공부지능 중 강점 지능은 더욱 강화하고, 약점 지능은 보완하려는 노력을 병행해 각 부분별 지능 간에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지능 개발 적기는 충분히 긴 시간이므로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시기에는 오히려 IQ, EQ, 집중력, 창의력 이 4가지 영역을 골고루 개발시키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초등학교 때 어떤 지능이 강점이고 약점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아이들의 잠재력이 무한한다. 그래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공부지능을 개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언어에 대한 가능성을 개발해 독해력을 키우거나 잠재해 있는 연산 능력을 끄집어 내어 어려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 수 있을 정도로 연산력과 추론력을 키울 수 있다. 이런 모든 노력들이 공부지능을 높여 주고, 스스로도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아이를 만든다.

 

아이의 공부지능_ 민성원

by 미스터신 2018. 1. 11. 11:19

그래도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장난감을 갖고 놀 시간에 글자를 가르치는 것이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라면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전두엽이 발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난감은 전두엽을 가동시키지만 단순한 글자떼기는 고작 측두엽만 가동시킨다는 사실을 모른다. 물론 측두엽은 기억과 학습, 정서까지도 관장하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학습을 기억하는 단계를 넘어 통합과 창조를 해야 하는데 부모들이 너무 측두엽 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지루한 것은 오히려 획일적인 중, 고등학교 환경이다. 지루한 환경이 좋지 않은 이유는 뇌가 지루하다고 받아들이면 도파민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흥미롭고 특히 예상하지 않았던, 도전해볼 만한 자극이 주어져야 분비된다. 텔레비전을 보는 아이의 뇌를 관찰해보면 처음에는 대뇌피질의 발화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한참 지나면 피질 활동이 잠잠해지며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뇌가 지루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주 따끈따끈한 뇌 연구 결과가 있다. 2010년에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연구진이 생후1~2일 된 신생아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신생아의 뇌가 24시간 내내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결과에 대한 연구자들의 해석이 상업적으로 잘못 이용될까 봐 걱정된다.

 

어린이의 사고 과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스위스의 심리학자 피아제는 어린이의 인지 발달을 감각 동작기(0~2세), 전조작기(3~7세), 구체적 조작기(8~12세), 형식적 조작기(13~16세)의 4단계로 분리했는데, 크게 전조작기 단계(7세 이전)와 조작적 단계(7세 이후), 2개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조작이란 심리적으로 내면화된 정신적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무언가를 비교하고 법칙을 알아내고 새로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이 조작이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추려면 7세를 넘어야 한다. 7세 이전에는 되지 않거나 설령 된다 해도 불완전하므로 전조작기라고 이름을 붙인다. 7세가 넘어 조작을 할 수 있어도 12세까지, 초등학생 때까지는 구체적 조작, 즉 지금 내 눈 앞에 진행되는 사실에 대해서만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중학생이 되어야 비로소 형식적 조작, 즉 현실 세계를 넘어서는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다.

 

피아제의 인지 발달 이론에 따르면 유치원 때까지는 조작이라는 것을 해보았자 한계가 있다. 아이들의 조작 행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계산하기, 크기 비교하기, 색깔 구분하기, 모양이 다른 그릇에 담긴 100밀리리터의 물을 같다고 인식하기, 특정한 사물이 관찰하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이지만 같은 대상임을 알기, 그리고 문자 습득이 있다. 듣기, 말하기는 선천적인 언어능력이지만 읽기, 쓰기는 조작 행위이다.

 

ㄱ+ㅏ+ㅇ=강, ㅁ+ㅗ+ㄱ=목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조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어머니들은 왜 이렇게 골치 아픈 음소 맞추기 얘기를 하는지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 유치원 때까지는 한글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시키니까 글자를 그리는 것이지 능숙하게 조작하지 못한다. 그래도 일찍 시작하면 좋지 않냐고 묻는 부모들에게 말한다. 너무 일찍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정신적 조작을 할 시기에 이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다. 외부에서 시키니까 하는 수동적 모방 학습의 경험 때문에 내부에서 유발되는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학습에 흥미를 잃은 것이다. 벌써 뇌 회로가 그렇게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어릴 때부터 문자 교육을 권하는 것은 인지 발달의 단계를 잘 모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나는 부모들에게 피아제의 이론에 근거해 이름을 살짝 바꾼 양육 단계를 제안한다.

6세를 기준으로 이전은 감각 운동 양육기, 이후는 상징 사고 양육기라 하겠다. 감각 운동 양육기는 감각 능력과 운동 능력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시기이다. 감각 가운데 시각의 예를 들어보자. 아기는 시각 기능을 갖추고 태어나지만 3차원 입체시가 발달해 엄마가 앞에 있든, 옆에 있든, 웅크리고 자고 있든, 아파트 10층 창문 밖으로 자기를 내려다보든 '저 사람은 우리 엄마구나' 하고 알 정도로 정교한 조준과 파악을 완성하려면 6세가 되어야 한다. 운동 능력에는 걷고 뛰는 대근육 운동과 가위질하고 단추를 채우는 소근육 운동이 포함된다. 즉 6세까지는 감각 자극에 충분히 노출되고 많이 뛰어노는 것이 뇌 발달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다치지 않고 많이 뛰어놀 공간도 부족하고 하루 종일 붙어서 아이를 보호해줄 시간도 없다. 그래도 6세까지는 뛰어노는 시간이 문자를 익히는 시간의 5배 이상 되어야 하며, 초등학생도 3학년까지는 학원 가는 시간의 3배를 놀아야 한다. 특별한 프로그램도 필요 없다. 널찍한 땅에 몇 가지 도구만 있으면 아이들은 비석치기, 사방치기, 땅따먹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하루 종일 잘 논다. 성추행이나 유괴 등의 위험이 걱정된다면 일자리를 원하는 어르신을 2인 1조로 곳곳에 배치하면 어떨까. 어르신들도 햇빛을 받으며 몸을 움직이면 치매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테니 아이들과 좋은 짝이 되지 않을까.

 

많이 걷고 뛰어놀 게 하면 뇌에서 비디엔에프라는 뇌유발신경전달인자가 발생한다. 비디엔에프는 강력한 뇌 성장 요인으로, 이 물질 때문에 뇌가 발달해 공부를 잘하게 된다. 그리고 비디엔에프가 더 이상 분비되지 않을 때 노화가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뇌 발달 차원에서 보면 중,고등학생도 아직 뇌가 발달하므로 계속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임상 교수인 존 레이티는 체육 수업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고등학교에서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전 0교시 체육 수업을 한 후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17%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규율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비율이 이전 학기에 비해 83%나 감소했다고 한다. 꼭 체육 수업이 아니라도 그냥 운동장을 돌게 하는 것도 좋다. 햇빛을 받으며 30분 이상 걷는 것만으로도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70%는 해결할 수 있다. 햇빛을 쬐며 친구들과 걸으면서 수다를 떨다보면 긴장이 풀리고 친근감이 늘어나 학교 폭력도 줄어든다. 또 비타민 D가 합성되어 뼈가 튼튼해져 체력도 좋아진다. 무엇보다 햇빛은 기분을 좋게 해준다.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것이 있다. 약물치료와 함께 라이트 테라피를 하면 효과가 좋은데, 라이트 테라피란 빛을 많이 쪼여주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파장과 세기로 광선을 쪼여주지만 햇빛을 많이 쬐는 것으로도 청소년의 우울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내가 교장이라면 운동장을 최대한 넓게 확보해서 수학 2시간 연강하고 30분 운동장을 돌게 하고, 영어 2시간 연강하고 30분 돌게 하겠다. 공부 잘해, 폭력 없어져, 체력 좋아져, 성격 좋아져, 그야말로 일석사조의 효과가 있는 교육법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은 어릴 때 좀 더 많이 뛰어놀게 하지 못한 것이다. 많이 뛰어놀면 학원에 1년 보내는 것보다 더 머리가 좋아진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라도 마음껏 뛰어놀면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해소되니 너무 속상해하지 않으려 한다. 비디엔에프는 스트레스 호르몬에 맞서는 기능도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기는 아이의 언어 상징 양육기이다. 비로소 상징, 즉 문자와 숫자를 익혀야 할 때다. 이때 집중적으로 한글을 익히면 이전에 3~4년에 걸쳐 배운 것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이다. 가르쳐주면 아이는 바로 흡수하고 활용한다.

 

이러한 아이의 발달 단계를 무시하고 감각 운동 양육기에 문자를 가르치면 스트레스가 된다. 이제 막 일어선 아기에게 자꾸 자전거를 타라고 하면 어떨까? 자전거가 스트레스가 되어 평생 꼴도 보기 싫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려면 흥미와 동기가 반드시 필요한데 스트레스가 된 대상에게는 흥미도, 동기도 생기지 않는다. 또 문자 학습에 치여 감각 운동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고 고작 글자만 아는 매우 협소한 인지 체계가 형성된다. 듣고 보고 걷고 뛰면 되었지 무슨 감각과 운동이 더 발달해야 하느냐는 부모님이 계실까 봐 말한다. 볼 수 있다고, 걸을 수 있다고 아이의 발달이 끝나는 건 아니다. 보기와 걷기가 합작해 어떤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장애물을 잘 피할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아이의 감각 운동 기능은 완성된다. 마데카솔과 후시딘 구입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면 비로소 이 단계에 이른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연구진은 메추라기에게 인위적 자극을 주면 감각이 빨리 발달하는지 연구하기 위해 수백 개의 메추라기 알 중 일부에 갑작스럽게 빛을 쬐었다. 정상적으로는 새끼 새가 부화된 후 빛을 쬐지만, 일찌감치 빛을 쬐면 시각 발달이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알에서 깬 새끼 새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보였다. 새끼 새의 뇌에 시각 발달이 지나치게 빨리 요구되면서 어미 새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머리에 새기는 각인 능력이 발달하지 못해 부화한 후에도 어미 새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이처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교육은 오히려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한다.

 

6세 이전은 일종의 반수면 상태라 뇌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하지 못한다. 놀면서 만지면서 듣고 보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기술을 익힐 뿐,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우리 인간은, 특히 아이는 상징보다 경험에 먼저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구체적 조작기를 거쳐야 형식적 조작기로 넘어가는 발달 과정 때문이다. 사과를 글로 배우기 전에 만져보고 맛보고 빨간 사과, 파란 사과, 노란 사과가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한다. 상징은 지식 세계를 압축해놓은 것이다. 경험보다 압축된 지식을 먼저 접하는 것은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지 못하고 달랑 비타민 한 알만 먹는 것과 같다. 한글 공부는 초등학교 입학 1년 전에 시작하면 충분하다, 우리 아이들도 모두 그랬다. 고작 두 아이를 가르쳐보고 어떻게 확신하냐고 따지는 분에게는 이렇게 말하겠다. 피아제는 고작 세 명의 자식을 관찰해서 인지 발달 이론을 만들었다. 집중적인 관찰이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한 피상적 통계보다 훨씬 신뢰감을 줄 때가 있다.

 

6세 이전에 문자와 숫자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다고 해서 책을 읽어 주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책 읽기는 중요하다. 6세 이전에는 스스로 읽도록 지나치게 강요하지 말고 책을 많이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흔히 뇌를 우주에 비유한다. 복잡한 뇌세포들의 구조가 셀수 없이 많은 별로 구성된 우주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우주의 오른쪽 끝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스스로 책을 읽는 것은 몇 억 광년 떨어진 우주의 중간에서, 쓰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몇 조 광년 더 떨어진 우주의 왼쪽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뇌의 발달 과정에 맞게 천천히 진행해야 탈도 없고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낸다. 만약 엄마가 책을 만날 읽어줬더니 아이가 어느 날 스스로 읽는다면? 물론 입을 틀어막을 필요는 없다.

 

2011년 3월에 한림대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연구 팀에서 사교육 시간과 우울증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하루 4시간 이하의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 가운데 10% 정도가 우울 증상을 보인 반면 4시간이 넘는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30%가 우울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나는 연구 결과보다 과정에 더 눈길이 갔다. 일주일에 4시간이 아니라 하루에 4시간이다. 선진국에서는 방과 후 공부 시간이 일주일에 7시간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하루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방과 후 3시간이다. 어른도 회사에서 일할 때 집중적으로 몰입하는 시간은 3시간 정도이다. 나머지는 그냥 멍하게 있거나 습관적으로 일을 하거나 떠들거나 먹거나 회의를 한다. 학교 수업만 집중해도 이미 7시간 정도 공부하고 오는데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우리는 이 난리를 쳐야 하는 것인가?

 

뇌가 폭발하는 두 번째 시기인 10세 이전까지는 원 없이 놀아야 이후 뇌가 제대로 발달한다. 굳이 학원을 보내야 한다면 공부보다는 친구와 책과 친해지는 목표만 세워야 한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까지는 상냥하던 엄마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억센 아줌마로 변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잡아먹겠다고 한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초등학교는 유치원 때보다 훨씬 더 긴장되는 곳이다. 순식간에 엄격해진 환경은 문화 충격 수준이다. 한마디로 이때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아직 인간이 아니다. 학교만 무사히 왔다 갔다 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기다. 이때 좋은 성적을 요구하거나 성실한 시험 준비를 강요하는 것은 올챙이에게 얼른 멀리 뛰어보라고 채찍질하는 것과 같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실컷 놀게 하면서 학교 숙제만 지키게 한다. 숙제는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숙제는 사회와 하는 첫 약속이다. 이 약속을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듯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후의 모든 원칙과 규율, 제재가 도통 들어 먹히지 않는다. 숙제를 무시하면 책임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간혹 유명한 학자들이 자신은 어릴 때 숙제도 하지 않고 학교생활도 엉망이었다고 말하는데, 그들은 천재라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를 잘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 천재가 아니라면 숙제를 반드시 하도록 해야 한다. 당신이 늙어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다.

 

4학년이 되면 아이의 적성과 성격에 맞는 공부 방법을 찾아 뇌의 개발을 도와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고 뇌를 발달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10세부터 20세까지는 인간의 발달 과정 중 뇌 발달이 정점에 이르는 기간이다. 이때 집중적으로 뇌를 단련해야 불이 활활, 물이 펄펄, 힘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또 이 시기에는 성욕과 공격성이 늘어나 책을 통해 지식을 쌓는 시간이 없다면 쾌락과 감각만 추구하는 부정적 자극을 통제할 수 없어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없다. 대한민국 학교수업과 수능의 난이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집에서 차분히 공부하도록 도와줄 수 없는 맞벌이 부부는 학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아이가 학교 공부에 흥미를 전혀 갖지 못한다면 '너 같은 놈은 인간도 아니다'라며 삶의 의욕을 박살 내지 말고 다른 것으로 뇌를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백배 현명하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라도 학교는 큰 의미가 있다. 친구를 만나고 함께 점심 먹고 교양을 쌓는 장소가 되면 된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다른 아이들이 학원 갈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만화책도 좋으니 책을 많이 읽게 하거나 망원경으로 별을 찾게 하는 등 아이가 좋아하는 공부를 시키면 된다. 그것도 안되면 엄마보다 살림을 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하게 해도 좋다. 어떤 활동이든 열심히 하면 된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라면 딱 한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잠을 제대로 자는 것이다. 수면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공부는 모래 위에 올린 성과 같다. 수면이 학습 능력을 높인다는 연구는 매우 많다. 수면은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서적 긴장도 해결해준다. 우리가 격렬한 꿈을 꾸는 것은 낮에 경험한 부정적 정서를 내보내기 위해서이다. 아이가 떼를 쓰다가도 잠을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 웃으면서 깨는 것처럼 우리는 자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낸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분들에게 대뇌피질이 두꺼워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책도 음악도 운동도 아니고 바로 명상이다. 무언가를 계속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자신의 내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 뇌를 더 튼튼하게 해준다.

 

심리검사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을 위해 아이의 마음을 읽는 다른 방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무언가를 시도했는데 아이가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하거나 얼굴이 어두워지면, 잠을 자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엄마의 눈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면 그 즉시 멈추어야 한다. 아이에게 그 방법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아이가 '싫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면 절대로 시키지 말아야 한다. 좋다는 원어민 영어 학원도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하면 일단 멈추어야 한다. 사랑하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아이는 없다. 다만 엄마들이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을 먼저 직감하고 싫다고 할 뿐이다.  반대로 무언가를 시도했는데 아이가 잘 적응하면 그것은 아이의 장점이자 적성이 된다. 어떤 아이들은 영어 학원을 매우 좋아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그 과가 아니라면 멈춰야 한다. 그러면 영어를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절대로 영어 공부를 시키지 말아야 할까? 6개월이나 1년 후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1년 후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 어릴 때 빨리 영어를 시작할수록 발음이 좋아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내면 자신감과 동기가 없어진다. 발음이 안 좋아도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지만 자신감을 잃은 아이들은 무엇을 해도 먹고살 수 없다.

 

약한 아이는 강요보다 지지적인 환경에서 쉬운 일부터 시작해 조금씩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서서히 강해지도록 격려해야 한다. 강한 아이는 강한 면의 장점을 말해주면서 서서히 공존과 배려를 배우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의 행동과 모습은 세상의 스트레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성이다. 그 성을 억지로 무너뜨리고 아이를 180도 바꾸려고 하면 부작용만 나타난다.

 

사랑은 절대로 뒤늦은 법이 없다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한다고 가정해보자. 내 아이는 어떤 상태일까?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못 먹겠지. 그렇다면 교장 선생님을 뵙고 아이를 점심을 먹인 후 다시 보내겠다고 해야 한다. 그런 전례가 없다면 교장실에서 먹게 해달라고 해야 한다. 끈질기고 진정성 있게 호소한다면 학교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줄 것이다.

 

못하는 것이 있다면 이후의 모든 과정을 스톱시켜야 한다. 참자고 해도 아이가 참아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프다면 병가를 얻어 보살펴주어야 한다. 등, 하굣길에서 친구와 부딪치는 것이 무섭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고등학생이라도 부모가 등, 하굣길을 동반해야 한다. 그것도 못할 정도라면 자퇴시키고 몸을 추스른 후 검정고시를 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남들과 다른 내 아이와 나를 향한 세상의 눈이 당연히 무섭고 부담스럽지만 잠시 내려놓고 오지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문제가 생긴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이 부족해서, 더 정확하게는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사랑을 주어야 한다. 사랑은 뒤늦은 법이 없다. 항상 사랑해왔다면 지금부터는 지혜롭게 주어야 한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쉽게 지혜로운 사랑을 줄 수 있다.

 

"선생님이 애가 평소에 어떤지 못 봐서 그래요. 직접 보면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걸요? 내가 동생에게 웃어주거나 살짝 어깨만 두드려줘도 동생을 벽에 밀어붙이고 멱살을 잡고 식탁 위의 음식을 다 쓸어버리고 난리도 아니라고요. 완전 또라이라고요."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짐작되는 바가 있어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만약 어머니가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면 어떻겠어요? 아들보다 더 난리를 치지 않겠어요?"

 

"아이는 동생이 자기보다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거예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껴야 동생도 미워하지 않고 반항도 안 합니다. 억지로 해보았지만 막상 말하고 보니 아이를 아직 사랑한다는 거 아시겠죠?"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절대로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화가 나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아이에게 화를 퍼부어대니 부부 치료도 꼭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하루에 50번도 넘게 아이에게 손찌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아들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로 더 진행되었다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들에게 멱살 잡히는 최악의 상황에 이를 뻔했다.

 

사랑의 물꼬가 터지면 기적이 일어난다

 

아이에게 이제부터라도 사랑을 주기로 마음먹었다면 사랑은 절대로 뒤늦은 법이 없다. 별은 어릴 때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뒤늦은 사랑으로 그 행복감을 회복했다. 별은 엄마가 교장실에 쳐들어간 순간 미움과 분노, 혼란감과 무력감의 벽을 무너뜨렸다. 아빠와 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방향을 잡은 엄마는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일사천리에 세상을 평정했고, 그 과정에서 별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아이가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어야 하는 보호이다. 또 자신에게 함부로한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존감을 느꼈다. 아빠는 강압적으로 1등을 요구했지만 엄마는 할 수 있는 것만 조금씩 해보자고 했으니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늘 웃어주고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엄마에게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한번 물꼬가 터진 사랑은 기적을 낳아 무려 14년 동안 분노와 적개심으로 닫힌 마음의 문을 4년 만에 완전히 열었다. 별은 남들이 보기에 좀 특이해 보일 뿐인 건강한 청년으로 자랐다. 마음을 치료하려면 아파온 시간의 2~3배 기간만큼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나의 기준을 뒤집어놓았다. 포기하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도 않으며 어제보다 1% 나은 오늘을 위해 사랑을 주며 노력하다 보니 놀랄 만큼 빠른 시간 내에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 상담을 받으러 온 부모들이 처음에는 치료 지침을 잘 따르다가도 3~4개월이 지나면 슬슬 초조해하며 6개월, 1년이 지나면 왜 아직 낫지 않느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아이가 나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세상에 너무 치였기 때문에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는 별이 엄머처럼 해보았느냐고 묻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하면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은 고생 총량의 법칙이 있는 듯하다. 발등에 고생이 떨어졌을 때 화를 내고 울고 회피할수록 고생의 시간은 늘어난다. 하루라도 빨리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갈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열린다.

 

별의 사례는 20여 년간의 임상 경력 중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첫 째, 사랑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 때로는 놀랄 만큼 빨른 시간 내에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둘째, 보호자와 치료자가 같이 아파하고 문제를 극복하며 결과까지 지켜보았던 드문 사례였다.

셋째, 치료자가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본 놀라운 사례였다. 별이 꿈에서 아버지와 화해한 것도 그렇다. 어려운 정신분석 치료 과정도 없이 별이 스스로 꿈에서 자신의 상처를 털어버렸다.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 세계도 건강해졌음을 의미한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책에 담고 싶어 "가명을 뭘로 할까?" 라고 물었더니 은이 씨가 또 감동적인 멘트를 날렸다.

 

"별로 하자. 별 자체로 빛나듯이 모든 아이들은 타고난 빛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이 아이의 빛이 다시 빛나게 도와주었을 뿐이야."

 

비록 한때 자신의 상처 때문에 아이를 잠시 방치했지만, 상처와 고통을 잘 이겨낸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은이 씨에게 나는 틈만 나면 말한다.

 

"자리 깔고 앉아!"

 

하도 내가 이 말을 해서 요즘은 조금 마음이 생겼는지 그럼 '수암골 아줌마'라고 해달란다. 별이 최근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전문대학교를 졸업하면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서 공부를 더 하고, 졸업한 후에는 정식으로 중국어 통역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안전과 사랑, 자존심의 욕구가 채워진 아이가 이제 자기실현 욕구를 보이는 것이다.

 

엄마와 별은 넉넉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 먹고 자는 안전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사랑을 주는 엄마가 있고, 대학교에 진학해 잘 적응하다 보니 별의 하위 수준의 욕구들이 4년 만에 충족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망설이던 가족에게 별은 중국어 인증 시험 인정서를 갖고 와 꼼짝없이 수용하도록 했다. 그러면 또 돈이 들테니 은이 씨는 수암골 아줌마라도 할 기세다. 별과 은이 씨가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운 일을 보여줄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 전문가를 믿으십시오. 전문가가 개입하는 시간에는 홀가분하게 자신을 벗어던지고 쉬세요.

* 희망이고 절망이고 언어적 유희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지금 할 것을 실행하세요.

* 이 모든 상황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딱 한 번만 진심으로 인정하세요. 눈물이 나온다면 크게 우세요. 하지만 그 뒤로는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말고 죄책감을 느낄 시간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더 아이를 안아주세요.

* 세상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모습'에 목숨을 걸지 마세요.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관된 모습에 아이를 맞추려고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조금 다른 현재 모습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나가세요. 단, 정상이라는 기준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마세요. 정상이라는 기준은 아이가 이 세상에서 편하게 지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 이아가 이렇게 된 이유는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임을 인정하세요. 전문가가 아이를 다루는 몇 가지 기술을 가르쳐줄 것이며 그 지침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사랑 결핍감이 해결되지 않는 한 기술을 100개 익힌들 소용이 없습니다.

 

하루 3시간 엄마 냄새_ 이현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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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6. 12. 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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