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주역, 데이터 과학자

 

에스토니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데이터를 분석해 가치를 뽑아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대표적인 직업이 데이터 과학자다. 데이터 과학자는 갖가지 경로로 수집, 축적되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일정한 패턴과 상관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분석하고 결정하는 일을 한다.

 

미국의 <매킨지 보고서>는 2018년 미국 내 데이터 과학자가 16만 명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데이터 과학자라는 직업이 생긴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초임 연봉이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로 치솟았고, 여기에 미국 백악관까지 가세해 지난 오바마 정부는 2015년 최초로 정부의 데이터 정책을 총괄하는 수석 데이터 과학자를 행정부에 임명하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데이터 과학자를 '21세기 가장 섹시한 직업'이라고 부른다. 데이터 과학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 가장 각광받는 직업으로 등장했다.

 

우리나라 데이터 산업의 일자리 역시 미국처럼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데이터 과학자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데이터 과학을 배우려는 열기 또한 뜨겁다.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마케팅에 활용하는 국내 데이터 솔루션 전문 회사 엔코아의 경우 데이터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수업의 경쟁률이 10대 1에 달한다. 이밖에도 데이터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많은 강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고, 오픈 소스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배우는 공개 모임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2016년 발표한 일자리에 관한 통계를 보면, 2020년까지 단순 사무직을 비롯해 72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 대신 21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데, 새롭게 생기는 대표적인 일자리는 데이터, 컴퓨터, 수학 분야다. 현재 7세 이하의 어린이가 사회에 나가 직업을 선택할 때가 되면 그들 중 65퍼센트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데이터 과학자가 아무리 필요하다 해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수학 교육,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비해 사라지는 일자리는 너무 많고,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모두가 될 수 없는 그 길을 위해 우리는 데이터와 수학에 머리를 파묻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에스토니아의 어린이로부터 들어보자. "저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요. 축구를 하는 데 지금 하는 수학 교육이 도움이 될 것 같냐고요? 물론이에요.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도 통계를 비롯한 컴퓨터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데이터 과학자라는 직함을 갖지 않더라도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자기 일을 잘 정리해 데이터화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넓은 의미의 데이터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데이터를 이용하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만약 장사를 한다면 손님이 언제 많이 올지, 어떤 물건이 많이 팔릴지부터 시작해, 데이터를 활용해 무궁무진한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분야에서든 데이터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게임 체인저란 정해진 룰의 범위 안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아예 게임의 룰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1, 2, 3차 산업혁명은 누군가가 1을 만들어 놓으면 그걸 N개로 늘려가는 수평적 확장의 개념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0으로부터 1을 만드는 수직적 혁신을 의미한다.

 

수직적 혁신은 전혀 다른 단계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저장장치가 비디오테이프에서 CD로, 그리고 USB로 발전한 것처럼, 모방을 통한 확장이 아니라 아무도 아직 건드리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이 수직적 혁신이다. 그런 수직적 혁신을 일으키는 이들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원하는 인재다.

 

데이터 과학이 만들어낸 쿠팡의 성공

 

게임 체인저의 예는 가까운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과학기술 전문지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서는 매년 세계적 혁신기업을 발표하는데, 50대 스마트 기업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한국의 기업이 있다. 이들이 뽑는 혁신기업의 조건은 굉장히 까다롭다. '깜짝 놀랄 만큼 세상을 바꿀 만한 기술이 있는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혁신적인가', '압도적인 창의적 기술로 시장의 근본 틀을 바꿀 기업인가.'

 

어디일까? 44위에 오른 쿠팡이 바로 그곳이다. 어떻게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나 엘지가 아닌 국내 스타트업이 세계적 혁신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 사실 2013년만 하더라도 쿠팡은 소셜커머스 업체들 사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데 2년 뒤 매출이 무려 23배나 상승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비밀은 쿠팡의 물류센터에 있다. 쿠팡 물류센터에는 일반 물류센터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 작동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포장하기 전 제품의 배치 방식이다. 종류별, 항목별 규칙은 찾아볼 수 없다. 아기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옆에 식료품인 과자가 놓여 있는 식이다.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여성들이 많이 주문하는 것 중에 여성용품과 식품, 아기용품이 같이 잘 팔리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배치했습니다. 데이터 시스템을 기반으로 상품을 진열하고 배치한 덕분에 집품의 효율을 최대한 높여 '로켓 배송'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쿠팡 관계자의 말처럼, 관련 없는 물건들이 마구잡이로 배열된 것처럼 보이는 속에 데이터 과학이 숨어 있다. 창업 첫해인 2010년 60억원이었던 쿠팡의 거래액은 2014년 2조 원으로 껑충 뛰었다. 300배 넘게 급증한 비결은 이렇듯  철저한 데이터 분석에 있었다.

 

데이터에 기반한 독특한 진열 방식은 제품을 고르고 포장하는 데 걸리는 동선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줄여준다. 포장이 완료되면 자동 분류 시스템이 정보를 읽어 배송 목적지별로 분류한다. 이 시스템은 트럭의 목적지별 예상물량까지 정확하게 계산한다. 물류 매입부터 배송까지 원스톱 서비스는 데이터 과학이 만든 시스템이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전달하는 과정에도 역시 데이터를 이용한다. '쿠팡팬'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에는 배송 정보가 공유되어 첫 고객인지, 재구매 고객인지, 언제 배송이 약속되어 있는지, 고객의 요청사항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아이가 있는 고객이 배송 시 초인종을 누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면 쿠팡맨은 해당 메시지를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하여, 다른 쿠팡맨이 해당 가정을 방문해도 벨을 누르지 않도록 하는 식이다. 데이터 과학으로 만들어진 쿠팡맨과 로켓 배송을 통해 2015년 쿠팡의 배송 시스템 만족도는 98퍼센트에 이르렀다. 일반 택배 배송의 만족도 39퍼센트와는 비교 불가의 수치다.

 

꼴찌에서 일등이 될 수 있었던 쿠팡의 혁신, 그 중심에는 바로 데이터가 있었다. 이를 통해 쿠팡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2015년에는 일본의 IT 기업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 원이 넘는 투자를 받기도 했다.

 

대치동이 범접할 수 없는 시골 초등학교의 멋진 교육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7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매일 열다섯 시간씩이나 낭비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구구단을 외우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보다 구구단을 못 외운 상태에서 곱하기를 할 때 다양한 방법을 스스로 찾는 과정을 통해 논리적인 사고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점수로 줄을 세우기 위해 학생을 문제 풀이 기계로 키우는 교육,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여전히 묶여 있는 우리의 교육은 이에 비하면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 시골의 아주 작은 학교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교생이 80여 명밖에 안 되는 충북 진천의 초평초등학교가 그곳이다. 학생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한번 들여다보자.

 

5학년 학생들의 반에서는 교육용 로봇인 햄스터를 이용하는 수업이 한창이다. 학생들은 능숙하게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한다. 명령어를 프로그래밍해서 햄스터 로봇이 구석구석 청소하게 하는 것이 이날의 과제다. 학생들 스스로 회전 시간, 이동 방법, 방향 바꾸기 등 로봇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범위를 논리적으로 설계한다.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학생들은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로봇 청소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알고리즘, 논리적 사고, 컴퓨터적인 사고를 끊임없이 향상시킨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프로그램 설치도 잘 못했어요. 처음에는 컴퓨터를 굉장히 낯설어했지요. 이제는 과제를 주면 제가 가르치지 않은 부분까지도 잘 수행해요. 컴퓨터 언어를 이용해 창의적으로 과제를 풀어나가면서 아이들의 컴퓨터적 사고력이 굉장히 많이 늘었어요."

 

초평초등학교 교사의 말처럼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은 작은 시골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교실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교육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초등학교 교육비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대학교, 나아가 대학원과 유학까지 모든 교육비를 지역사회가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2008년에 학생 수가 50명까지 줄어들면서 폐교라는 최후통지를 받은 아픈 과거가 있었다. 그런데 2009년 이 마을 주변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받은 보상금을 모아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모든 주민이 적게는 몇백만 원, 많게는 몇천만 원의 보상금을 선뜻 내놓은 결과, 초평초등학교 학생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앞선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초평초등학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맞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부터 초중등학교에 소프트웨어 교육이 의무화한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수학 교육은 그대로 하면서 소프트웨어 교육만 더하는 식은 곤란하다.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문과, 이과를 나누면서 수학 공부의 범위를 미리 정해버리는 방식에 대해서도 과연 옳은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소위 문과에 속하는 과목은 상상력을 키워주는 학문인데, 그것이 수학, 데이터 등과 만나 융합할 때 큰 폭발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미분이 무엇인지 통계가 무엇인지 싹 다 잊어 버리는 교육이 아니라, 원리를 알아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자기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악보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원하는 멜로디를 그릴 수 있고 악보만 봐도 멜로디가 떠오르듯이, 수학은 우리의 생각과 논리를 전개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즉 수학을 잘 활용하면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낼 수도, 접할 수도, 확장할 수도 있다.

 

우리는 두 개의 지구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발로 딛고 있는 지구이고, 또 다른 지구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디지털 지구이다. 첫 번째 지구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축구 경기장에 놓인 침대 하나에 불과하지만, 국경이 없는 디지털 지구는 무한하다.

 

물리적 지구가 무대였던 1, 2, 3차 산업혁명은 좁디좁은 지구에서 물건을 만드는 하드파워 경제를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어느덧 우리 앞에 쓰나미처럼 닥친 4차 산업혁명에서 거대한 파도를 헤쳐 나갈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상상이라는 총알에, 도전이라는 방아쇠를 당겨, 혁신이라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소프트파워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은 과거를 고집하는 자가 아닌 미래를 상상하는 자다. 상상의 힘으로 거대한 혁신을 만드는 사람. 0을 1로, 낫씽(nothing)에서 썸씽(Something)을 만들어내는 사람. 이를 위한 교육은 더 넓고 평등하게, 더 새롭고 자유롭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수학적 사고와 데이터 마인드를 갖춰야 살아남는다_ 손현철 PD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합니까?'

 

녹화 때 미래참여단의 한 학부모가 던진 질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로 2020년까지 15개 선진국에서 700만 개의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 반도 안 되는 200만 개의 새 일자리가 생긴다고 하니, 자식을 둔 부모의 불안과 염려에서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절박한 물음이었다. 갓 대학에 입학한 딸을 둔 나 역시 학부모로서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그램 역시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먼저 신생 기업과 인재 채용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기 위해 전문가들을 만나고 관련 매체를 찾아봤다. 4차 산업혁명의 선두에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 데이터 기술 관련 기업이 급증하는 추세였다. 2015년 이후 선진국의 신생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데이터 기반 업체들이었다. 미국의 데이터 관련 기업은 2011년 150개에서 2016년 3800여 개로 늘어났다. 당연히 데이터 전문 인력 수요도 늘어났다. 2016년 1월 미국의 취업전문 사이트 글래스도어는 1700개 직업 중 미래 최고의 직업으로 데이터 과학자를 선정했다. 평균 연봉 1억 3000만 원, 미국 내 상위권 소득이다. 2011년 매킨지는 2018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150만 명의 데이터 관련 전문가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했다.

 

더욱 상징적인 사례도 보였다. 2015년 2월 오바마 대통령이 패틸 박사를 미국 행정부 최초의 수석 데이터 과학자로 임명했다. 그의 임무는 미국 정부가 생산하고 관리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도 축적된 데이터를 미래 자본으로 활용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오죽하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 시대의 핵심 자원은 석유가 아니라 데이터다. 미래의 데이터는 일종의 생산자원이며, 미래의 생산력은 바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컴퓨팅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국내 대학에 개설된 데이터 전문학과는 손에 꼽을 정도다. 국내 굴지의 한 데이터솔루션 업체는 적합한 능력을 갖춘 인력을 채용하기가 어려워지자, 자체 데이터 아카데미를 개설해서 수료한 사람 중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뽑아 쓴다. 왜 이런 인력 수급 지체현상이 일어날까? 결국 교육의 문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인 데이터를 분석하고 통찰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전문가들은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학이라니?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수학을 포기하는 소위 '수포자'가 반을 훨씬 넘는 나라에서 데이터 마인드를 키우는 교육이 가능하기나 할까?

 

미래 사회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을 가장 잘 교육하는 나라가 어디일까 찾아봤다. 그러던 중 세계 최초의 컴퓨터 기반 수학 교육을 시작한 에스토니아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의 데이터 마인드를 키우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통계와 확률을 가르친다.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해 20여 년 만에 1인당 GNP가 열다섯 배 늘어난 나라, 북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면서, 세계적인 영상통화 앱 스카이프를 만들어낸 나라다.

 

에스토니아의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 과정이 합쳐진 김나지움까지 여러 곳의 학교, IT 융합교육지원 단체, 교육부 등을 취재했다. '스카이프 마피아'라고 불리는 스카이프 출신들이 창업한 데이터 기반 스타트업들도 만났다. 인구 130만 명밖에 안 되는 이 작은 나라는 디지털 시민권을 발급해 전 세계의 창의적인 사업가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데이터 교육 열풍을 취재했다. 이들은 대학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데이터 처리, 분석 방법을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서로 토론하면서 학습한다. 이들은 또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열고 전문가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고 정보를 교환한다. 우리가 취재한 한 모임은 십대들의 아이돌 팬 사인회처럼 열기가 뜨거웠다. 강연과 발표 내내 제도권 교육이 해주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열정, 변화하는 시대에 뒤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국내의 수학 교육을 바꿔보려는 작은 노력들도 발견했다. 삼성화재 부사장직을 그만두고 수학 교육 혁명 전도사가 된 조봉한 박사와 함께 새로운 수학 교육의 가능성을 시험해봤다. 인공지능을 전공한 조 박사는, 한국의 수학 교육이 개념 이해도 없이 문제 풀이만 무한 반복시키는 '수포자' 양산 시스템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원리 이해를 바탕으로 순차적,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학적 사고 체화 교육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시급하다고 역설한다. 제대로 된 수학 교육은 학생들이 세상의 변화와 사물들의 관계를 정량적으로 이해하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제작팀은 수원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조 박사가 개발한 수학 교육 프로그램으로 미적분의 원리를 가르쳐 보았다. 4주 동안 총 열두 시간을 놀이기구와 그림으로 재미있게 공부하고 난 뒤 수학을 전공하는 서울대생과 함께 수능문제를 풀어보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초등학생들은 미적분의 공식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 문제에 담김 의미를 읽고 답을 찾아냈다.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구체화한 21세기 들어 학생들에게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을 융합적으로 가르치는 융합인재교육(STEAM)을 시작했다. 미래 사회는 수학적 사고방식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과학, 기술, 공학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인재를 원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서열이 높은 대학에 아이들을 밀어 넣기 위해 기계적인 문제 풀이 위주의 수학을 가르치며 학생 대부분을 수포자로 만든다. 수포자가 아닌 학생들도 대부분은 대학에 합격하는 순간 지긋지긋한 수학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방송이 나간 후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데이터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평소보다 수강생이 몇 배나 늘었다는 것이다. 데이터 과학자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조금이나마 높아진 것이다. 조봉한 박사의 수학 프로그램에도 교육계의 관심이 많아졌다. 하루아침에 교육 과정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학생, 학부모, 교육자, 정책 담당자들이 우리 교육의 미래 효용성에 대해 작은 문제의식이나마 가지게 됐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교육 혁신은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교육 과정을 과감하게 바꾸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선진국 미래 세대와의 경쟁에서 영영 뒤처질지 모른다.

 

명견만리 - 정치, 생애, 직업, 탐구 편

by 미스터신 2017. 11. 16.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