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다른 창의적인 수는 어떻게 생각해냅니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프로 바둑 기사들은 아마도 다들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수가 떠오른다고. 즉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알고서 창의적인 수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풀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번쩍 새로운 수가 떠오르는 것이다. 프로 기사들이 초읽기에 몰린 순간에도 기발한 묘수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평소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처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창의성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끈질긴 탐구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태어나면서부터 천재적인 두뇌를 부여받았다고 해도 호기심과 탐구심이 없다면 창의성은 발현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창의적인 생각을 창의성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 유명 미술가나 음악가 같은 사람만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의성은 꼭 뭔가를 발명한다거나 새로운 예술품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창의성은 도처에 있다. 나는 우리 아내가 나를 위해 해주는 요리에서도 창의성을 느낀다. 똑같은 음식을 해도 뭔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내가 만든 식혜는 맛도 좋지만 마신 후 속이 편하다. 강정이나 엿 속에서는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개운함이 느껴진다. 뭘 넣었냐고 물어보니 식혜에는 생강을 살짝 넣었고 강정에는 귤껍질을 채로 썰어서 넣었다고 한다.

 

나는 창의성은 넓은 의미가 '남과 다른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생각'은 그냥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얻게 된다.

 

아내가 똑같은 음식을 남과 다르게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더 맛있게, 더 건강하게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즉 가족들에게 식혜를 먹이고 싶은데 너무 많이 먹으면 식혜의 찬 성질 때문에 배가 아플 테니까 이걸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따뜻한 성질의 생강을 넣는 것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강정이나 엿은 텁텁해서 금방 물리기에 개운함을 주는 귤껍질을 넣는 것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의 과정은 어느 분야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바로 문제의식과 질문이다. 이 문제를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상식과 지식을 동원하여 추측을 한 후 해결책을 찾아나간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바로 창의성의 과정이다. 따라서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끊임없이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질문해야 한다.

 

창의성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바로 '질문'이다. 질문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나 문제나 결핍 등에 예민한 사람이 한다. 즉 문제가 눈에 보이면 해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의력의 실체는 창의적인 능력이 아니라 뭐든 의문이 생기면 '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에 있는지도 모른다.

 

바둑 고수들을 보아도 그렇다. 바둑에 관한 한 우리는 절대로 궁금한 것을 못 참는다. 풀지 못하는 수를 만나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 길을 걸으면서도 볼일을 보면서도,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그 생각뿐이다. 과감하게 동료 기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는 경우도 많다. 머리를 맞대면 훨씬 빠르게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국기원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루이나이웨이 9단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반갑게 다가와 그림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 이 정석에서 돌의 수순을 이렇게 바꿀 경우 다음 전개가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바둑 기사들이 흔히 알고 있는 '고바야시 정석'이었다. 정석은 오랜 시간 검증을 거쳐 가장 모범적이라고 인정된 것이기에 좀처럼 의심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루이9단은 뭔가 석연치 않은 모양이었다. 돌 하나를 바꿈으로써 우리가 믿어온 고바야시 정석이 무너지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루이 9단은 중국의 여류 바둑 기사로 1988년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9단에 오른 인물이다. 온화하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그녀의 바둑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중국기원과의 불화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조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을 떠돌며 무려 10년 동안 바둑을 두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한국기원과 이야기가 잘 되어 1999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했다. 중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여기서 13년을 살았는데, 그 사이에 놀라운 기록을 많이 세웠다. 여류기전 우승을 26번이나 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한국 최초로 물론 세계 최초로 남자를 꺾고 왕위에 올랐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국수전이었고 아프게도 그때 꺾인 남자 상대가 바로 나였다. 루이나이웨이는 우리나라 바둑사에 최초의 여성국수이자 유일무이한 외국인 국수로 기록되어 있다.

 

루이 9단의 질문은 나도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곧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 후에 이창호를 비롯하여 여러 후배 기사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있어서 그때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이건 루이 9단이 질문한 건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우리는 바둑판도 없고 그림도 없었지만 신나게 토론을 벌였다. 처음에는 정말 루이 9단의 의심처럼 정석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좀 더 토론을 해보니 역시 판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더구나 그걸 증명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이창호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수를 발견해냈다.

 

만약 루이 9단이 고바야시 정식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이것 때문에 골치 아플 일도 없었겠지만 새로운 발견을 해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의문을 품었기에 우리 모두 함께 고민을 했다. 덕분에 창의적인 새로운 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처럼 모든 발견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왜 이런 거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게 정말 최선일까?'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는다면 생각은 시작되지 않는다.

 

바둑 기사들은 상대방의 한 수 한 수를 절대로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왜 거기에 두었을까?', '이 수에 무슨 의도가 있는 걸까?' 비록 주어진 시간은 짧지만 우리는 무섭도록 집중하여 생각을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내어 다음 수를 결정한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도 바둑처럼 이렇게 한 수 한 수 깊게 생각하여 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막연한 느낌으로 결정하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압력이나 강요에 의해서, 혹은 시간에 쫓겨서 아무렇게나 결정한 일들은 반드시 후회를 낳는다.

 

따라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면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당장 답을 찾기 힘들다고 회피해서도 안 된다. '이 문제는 왜 이런 걸까?',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까?', '무엇이 옳은가?', '어떤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답을 구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질문과 대답의 사유체계가 바둑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공부, 일, 인간관계, 자기관리 등에 두루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암기하는 지식은 오래가지 않지만 질문과 대답을 통해 이해한 지식은 내 것이 된다. 단지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것만으로 실력과 능률이 향상되며 인격적으로 더 완성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고민하여 얻은 답이 늘 최선의 결과를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후회도 적고 책임질 마음의 자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왜?"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이야말로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때다.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집중하여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근본적인 이유가 있으며 반드시 더 나은 방법이 존재한다.

 

생각하는 게 재미없고 골치 아플 수도 있다. 당장 대답이 떠오르지도 않고 오히려 혼란만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침내 그 답을 찾아냈을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답을 찾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고,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본인만의 체계가 완성되면 보다 빠르게 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바둑 고수들이 가만히 앉아서 수십 수를 내다보는 것도 수많은 훈련을 한 덕분이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성격에도 변화가 와서 훨씬 신중하고 사려 깊으며 적극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맞서서 해결하는 사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조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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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6. 4. 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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