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요, 사람이 살면서 가져야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의 힘이 있죠. 사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생겼거나 큰일이 닥쳤을 때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판단하고, 판단만큼 책임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것만이 아니죠. 사실 우리의 매일 매일은 크고 작은 의사 결정, 판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생각의 힘 중에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가 오늘 여러분과 얘기해보고 싶고 또 생각해보고 싶은 생각의 힘이 바로 '내관력(內觀力)' 이라는 겁니다.

 

사실 내관력이라는 것은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하거든요. 옛날에 한의를 하는 분들이 그랬다고 하죠. 맥을 짚을 때 어떻게 짚나요? 진맥을 하면서 몸을 들여다보는 거죠. 간이 상했는지 폐가 상했는지, 폐 때문에 이런 문제가 오는 거다, 위 때문에 얼굴에 문제가 생겼다, 이런 식으로 모든 걸 통합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힘. 아주 작은 단서를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바로 내관력이라고 하거든요.

 

내관력은 어떻게 길러질까요? 우리가 무엇인가 판단할 때 급히 판단하는 것도 있지만, 깊게 생각해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본질까지 내려가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내관력을 기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한 가지를 깊게 공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를 깊게 들여다보건, 수학을 깊게 들여다보건, 기타를 치면서 악기를 깊게 들여다보건, 그림을 보건, 내관력은 누구나 공부하는 실력, 점수와 상관없이 우리가 일생을 통해서 훈련할 수 있거든요. 여러분도 그런 걸 하나 가지시면 생각의 깊이가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얼마 전부터 사주 명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내관력을 키우기에 너무나 좋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험 보는 거 아니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누가 3개월에 한 번씩 시험을 친다고 하면 시험에 나올 만한 거, 100점 맞을 만한 공부만 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내관력이 안 생기잖아요.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시험과 관계없이 꾸준히 그냥 내 생활처럼 내 삶처럼 공부를 한다면 우리의 내관력이 커지지 않겠어요? 여러분도 내관력이 커질 수 있는 공부 하나, 그런 취미 하나 택해보시면 어떨까요?

 

김미경의 인생미답

by 미스터신 2021. 4. 19. 21:02

서양은 분명 동양과 비교했을 때 사고 체계가 본질적으로 외향적이다. 자기 표현이 중요하고 언제 어디서든 토론과 논쟁, 발표가 생활화되어 있다. 교실을 벗어난 과목이 더 많고, 활발한 교외 활동을 한 학생에게 높은 성적을 준다. 내향적이고 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설 곳이 많지 않은 생태계다.

 

주목받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곳에서 나는 거침없이 주장하고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벼랑 끝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나를 홍보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외향적 기질을 온 몸에 두른 탓에 주목받고 표현하고, 설득하고 비판하는 것에 온통 길들여진 상태로 고요한 한국의 교실로 돌아왔다. 한국에 오니 친구들은 내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했다. 나의 직설적이고 강한 어투에 상처받았다고 토로했다. 주장이 너무 강해서 다가가기 힘들고 말 붙이기가 무섭다고, 친해지기 힘든 성격이라고 말했다.

 

내향적인 본질을 무시한 채 표면적인 외향적 기질만을 뒤쫓기 바빴던 나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 이도 저도 아닌 성격이 되어 있었다. 나는 국제학교를 다니며 익혀온 나의 습성을 원망했다.

 

서구의 교육 방식이 이상적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계급 사회에 기반한 철저한 능력주의, 그것이 서구식 교육 방식이다. 다르고 독특하면 매도하고 고립시키는 것이 한국의 방식이라면, 비슷하고 특징이 없으면 재능없다고 무시하는 것이 서구의 방식이다. 내향적인 성격은 소수 집단이다. 극히 적은 내향인들을 위한 배려는 없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아이들은 너드(괴짜, 찌질이)가 될 뿐이다.

 

동양은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한다고 비난받지만, 서양은 다름을 우상 숭배한다. 이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 폭력적이다. 개성 강하고 목소리 크고 자기 주장이 강해야 유능한 사람이라는 강박이 학교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다. 말 없고 홀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진 강점은 쉽게 주목받지 못했다. 외면 받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위협적인 무기가 있어야 했다 .눈에 드러나는 장기가 있어야 했다.

 

어릴 적 나는 배려하고 공감하고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신중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영어에 '착하다' 라는 말은 없다. '착함'은 능력도 칭찬도 될 수 없다. 착했던 나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착함을 지우고 능력과 재능을 택했고, 경청을 없애고 자기 주장을 선택했다. 내향성을 부정하고 외향성을 덕지덕지 붙였다. 경청과 자기 주장을 동시에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외향적인 사람들이라고 다 자기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청하고 존중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외향인의 전형적인 기질을 닮기 위해 나는 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어린 내게 점진적으로 성격을 바꿔갈 여유는 없었다. 배려하면서 동시에 확고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기질적으로 외향인과 내향인은 모든 면에서 다르다. 상황을 대하는 태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학습법, 인간 관계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르다. 정해진 학습법, 문제 해결법은 없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다. 사람마다 효율이 극대화되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무작정 질문하고 토론하고 논쟁한다고 훌륭한 교육이 아니다. 책을 읽고 조용히 사유하며 지식을 흡수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공부법을 따라야 한다.

 

질문하지 않는 교실은 답이 없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G20정상회담을 맞아 한국에 왔을 때 우리나라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구했다. 개최국인 우리나라에 심심한 감사의 말과 함께 질문의 기회를 선물한다고 했다.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고 보다 못한 중국 출신 기자가 끼어들었다. 한 다큐멘터리는 이 장면을 전면으로 내세워 질문하지 않는 한국 교육을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황한 표정과 어색하게 감도는 정적을 화면에 가득 담으며 질문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꼬집었다. 나는 이 장면이 상당히 불쾌했고 수치스러웠다. 질문을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도와 개성은 무시한 채 오직 '질문'에만 목을 맨다. 다큐멘터리의 취지와 관계없이 내가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질문' 자체에 거부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질문을 못하는 환경은 문제가 있지만, 질문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거다. 주변을 의식해 눈치를 보며 질문을 못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질문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스트레스를 느껴서도 안 된다. 질문을 강요하는 것 또한 질문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폭력이자 차별이 될 수도 있다. 의견을 교환하고 다수가 동의하는 현명한 답을 찾는데 분명 상호 작용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질문의 과정을 통해 정답을 구하는 사람이 있듯, 반대편에는 곰곰히 홀로 생각하며 가만히 스스로 정답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

 

주입식 교육은 비판하면서 서양식 교육 방식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주입식 태도는 왜 방조하는가. 서구식 교육 방식을 맹목적으로 쫓으면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조앤 롤링이 나올까. 학생의 기질과 성향은 외면한 채 우선적으로 서구식 교육 모델부터 주입하며 위인을 기대하는 발상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기업 업무 환경에서도 오픈 스페이스를 앞세워 사무실 칸막이를 없애거나 수직적 상하 관계를 완화한다며 개인 사무실을 지양하는 추세다. 왔다갔다 이동하는 동료들의 발소리, 오며 가며 건네는 잡담 소리, 회의실에서 스며나오는 각종 잡음... 자극을 처리하는 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내향인들은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다. 자극이 최소화된 공간이야말로 내향인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창조하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인데 말이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적 교실 책상은 열로 배치되어 있었다. 조용한 교실에서 얼마든지 골똘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환경이었다. 서양은 다르다. 교실 규모가 작아 주목이 불가피하고 책상은 동그랗게 배치해 서로를 마주보게 한다. 끊임없이 상호 교류를 독려한다. 대화와 의견을 주고받고 질문과 공유에 대한 압박을 가한다.

 

나 또한 과거에 질문하지 않는 스스로를 비난했다. 토론과 논쟁에 취약한 자신을 꾸짖고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토론을 통해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사람도 있지만, 토론의 학업적 성과가 매우 약한 사람도 있다. 발표가 학습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사람 또한 분명 있다.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 타인의 방식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만큼 자신의 재능을 망치는 건 없다. 사회적으로는 폭력이고 개인적으로는 재능 낭비다.

 

서양의 기준을 정답이라 여겨 그들의 기준에 따라 공부했으나, 무엇을 배우든 공부는 괴로웠다.  공부가 즐거움인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배움을 싫어했다. 내게 맞는 학습법을 찾아 실천하면서 배움에 대한 열정은 커졌고 공부가 점점 좋아졌다. 무엇보다 학습이 뚜렷한 성과로 이어졌다. 가시적인 결과물의 성취도 또한 질부터 달랐다. 배우는 속도, 지식의 양, 사유의 깊이, 모두 압도적으로 우수했다.

 

내가 의욕 넘치게 학문에 애착을 가지게 된 이유는 공부하는 시간이 즐거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책을 수차계 반복해서 읽고 듣고 필사한다. 또 곱씹어 읽고, 신중하게 사유하고 생각을 정리해 글로 쓰면서 어느 때보다 많이 배우고 성장했으며 성취했다. 내게는 논쟁보다 독립적 사유 방식이 더 어울리는 학습법이었다. 스펀지처럼 모든 지식을 놀라운 속도로 흡수했고, 성장을 발판으로 공부는 즐거움이 되었다.

 

남다른 패션 스타일을 지니고 독특한 식습관이 있는 사람처럼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학업적 성과를 이룬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이 없듯, 학습법도 저마다 다르다. 결과로 증명하면 되고, 성과로 승부하면 된다. 서양의 방식을 쫓기보다, 우리에게 최적화된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을 우직하게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내향인입니다_ 진민영

by 미스터신 2021. 4. 6. 14:38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

 

1. 지식보다 역량이 더 중요하다

2. 학생 주도의 수업이 효과적이다

3. 21세기는 새로운 교육을 요구한다

4. 인터넷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5. 전이 가능한 역량을 가르쳐야 한다

6. 프로젝트와 체험 활동이 최고의 학습법이다

7.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의식화 교육이다

 

역자 후기 | 지식 없으면 창의성도 없다

 

10여 년 전에 광주 인근 고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 몇 분과 회식을 하면서 학생지도의 어려움에 대하여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공부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수가 이전에 비해 점차 많아지고, 학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점을 걱정했다. 특히, 학부모들조차 자녀가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하거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함께 우려했다.

 

학생들은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고, 선생님들은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을 만나는데 선생님들이 가르치려고 해도 학생들이 배우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를 하려 해도 기초학력이 부족하여 이해할 수 없어서 결국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라는 분석, 입학정원에 비해 대입 응시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부를 못해도 대학에 갈 수 있으니 편하게 학교 다니려 한다는 분석 등이 나왔다. 필자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론의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재의 학교교육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신문과 방송에 자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21세기는 지식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지식의 가치가 중요한 시기다. 21세기 학교는 학생들이 지식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평생 동안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도 길러 주어야 한다. 그런데 기대와는 정반대로 학교 지식교육은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조차 경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식교육을 경시한 결과는 심각한 학력 저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지식조차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역자는 중학교 때 공부하지 않아,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기초학력이 확보되지 않아 공부를 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너무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공부의 재미를 느끼고 싶어도, 교과서를 읽고 체계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고 싶어도 뜻을 모르는 말이나 단어가 계속 나오면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생님께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잠을 잘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기초부터 가르친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들은 모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어느 정도 노력해 보다가 쉽게 포기하게 된다. (중략)

 

오츠 교수는 핀란드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낸 국가라고 해서 모방하려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철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핀란드 교육의 진면목을 분석했다. 그는 핀란드의 평소 학교생활에서 시험과 숙제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15세에 대학진학계열과 직업계열로의 진로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시험을 치루는데, 이것이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능력별 반편성이 없는 대신에 결석한 학생들이 결석 기간 동안 배우지 못한 내용을 철저하게 공부시켜 주는 보충학습 시스템이 이를 보완해 주고 있으며, 가정에서 독서와 토론을 강조하는 문화도 효과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핀란드 교실 수업을 참관해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교사 주도의 전통적인 수업이 주로 이뤄지며, 학생 중심의 토론 수업이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또한 루터교의 영향으로 1686년부터 법적 결혼 조건으로 일정 수준의 문해력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도 다른 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닉 깁 차관은 영국 보수 성향의 연구기관인 정책연구센터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가브리엘 살그렌의 논문 '핀란드 교훈의 실상'에 나온 자료를 인용하여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이 역량중심에서 지식중심으로 바꿔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그렌은 많은 국가들이 핀란드 교육성공을 모델로 여겨 역량 중심 교육개혁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핀란드의 교육성공은 최근의 교육개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더욱이 역량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한 결과 교육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분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핀란드가 교육성공 국가로 인정받은 계기가 된 2000년 제1차 PISA와 2003년 PISA 결과는 이를 만든 그 이전의 전통적인 교사 주도 교육 덕택이며, 마침 그때 역량 중심의 교육개혁이 이뤄진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2015년 PISA에서 읽기 4위, 수학 13위, 과학 5위까지 추락한 것은 교사주도의 수업 등 전통적인 교육문화에서 학생 주도의 수업 방식으로 바뀐 결과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교육이 역량 중심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영국과 핀란드의 교육과정 개정 사례를 드는 경우가 많은데, 살그렌의 분석을 참고하여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중략)

 

하브루타, 질문이 있는 교실 등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수업방법을 교사들이 함께 연구하고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또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교사들은 다양한 수업상황에 따라 다양한 교수법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 참여형 수업 강조가 상대적으로 교사의 수업 지도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하브루타나 질문이 있는 수업의 배경 이론인 학습 피라미드 이론은 강의를 들으면 5% 기억할 수 있고, 읽으면 10%만 기억할 수 있는 반면, 질문하면서 가르치면 90%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의 설명식 수업이 매우 비효과적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학습 피라미드 이론은 에드가 데일의 '경험의 원추'를 오용한 것으로 10% 단위로 실험 결과가 제시된 근거가 없을뿐더러 과학적인 실험 연구에서 나올 수 없는 통계라고 한다. 또한 학문적 권위를 의미하는 미국행동과학연구소 또는 국립교육연구소로 번역되고 있는 연구수행 기관명은 실제로는 국책연구기관이 아니며, 성인들의 의사소통 훈련을 전문으로 하는 사설단체이다. (중략)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역량은 중요하지만 지식이 없으면 역량을 개발할 수 없다고 본다. 다양한 교수법중에서 교사가 설명해 주면서 질문과 확인 그리고 환류해 주는 직접교수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찾고자 하는 영역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정확한 정보를 찾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학생들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교사로부터 먼저 배우고 있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영국의 교육상황을 다룬 것이다. 시기적으로 1999년부터 2012년까지의 교육상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교육과정 내용 측면에서 지식보다는 역량이 강조되고, 방법 측면에서 교사가 수업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터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 그 결과 학력 저하 등의 문제들이 나타났다. 2013년부터는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새로운 교육상황이 전개되었다. 이전과 정반대로 역량보다 지식이 강조되고, 수업의 주도권이 학생으로부터 교사에게 환원되었다. 그 결과 학력 향상 효과,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자신감 제고 등 바람직한 교육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영국의 교육과정을 상당 부분 참고하고 있다. 우리의 2009 개정 및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지식보다 핵심역량을 강조하는 것과 교사 주도의 수업보다 학생 주도의 활동 중심 수업을 강조하는 것은 영국의 1999년부터 2012년까지의 교육과정이 강조한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과거 영국의 교육 문제들을 우리도 겪고 있는 이유가 바로 영국의 교육과정을 모방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권장하는 교육과정 목표와 교수법을 실제 수업에 적용하기 힘들어 하고, 기초*기본 학력 미달 학생들의 증가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점차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증거도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의 교육현상에 대해 의문을 드러내고, 함께 혁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_ 데이지 크리스토둘루 (김승호 옮김)

by 미스터신 2021. 3. 20. 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