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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13. 20:21

 

진은영

 

전문가 집단이 잘못해서 특수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고 상담을 오히려 거부하게 만들었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기지촌에서 영화작업하는 친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전문가 집단뿐 아니라 시민사회 집단도 기지촌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을 마치 증언기계처럼 다뤄서 생기는 문제들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피해자의 목소리와 실상을 알려서 그들을 돕겠다는 선량한 의도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매순간의 만남에서 한사람을 한사람으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텐데요. 전문가들이 피해자 혹은 내담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손쉽게 대상화하고 또 어떤 실수를 빈번하게 저지르는지를 얘기해주시면 많은 분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듯합니다.

 

정혜신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이건 하지 말아야 한다 하는 것들이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근본적으로는 욕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현장에 들어간다는 것이 전문가에게는 일종의 스펙이 될 수 있거든요. 세월호 현장에서도 많이 느꼈지만, 이렇게 주목받는 현장에서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서 얻은 콘텐츠가 있다고 하면 그 집단 내에서는 그게 권력처럼 여겨지는 거예요. 단원고에 가서 보니 학교 교사들, 교육청 장학사 등등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서 '내가 어떤 전문가인데 무슨 치료를 해줄 수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 하는 제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와서 교사들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거예요.

 

제게도 그런 연락이 많이 오고요. 물론 선한 의도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스펙을 쌓기 위해서나 자신의 인정욕망 때문에 오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실은 제 안에도 그런 욕망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걸 인정하고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경계해야 하는 거예요. 그 성찰이 잘 되지 않거나 자신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생기고, 무엇보다 피해자를 대상화하게 되는 거죠.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봅니다.

 

특히 고문피해자들처럼 오래된 트라우마를 지닌 분들은 그동안 그분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논문도 많고 프로젝트도 많아서 그럴 때마다 자신들의 상처만 들쑤셔지고는 금방 버려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상담할 때 처음에는 엄청 어려움이 많았어요.

 

또 내 이야기만 듣고 검사 몇가지 하고 가는 거 아니냐, 당신도 똑같지 않으냐는 거죠. 그건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 경험 때문인 거죠. 상담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일 뿐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전문가 집단이 잘못 접근하면 자신들의 고통이 대상화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사실 이런 성찰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자원봉사는 댓가 없이 하는 활동이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자신의 그런 욕망을 인정하기가 더 쉽지 않은 거죠. 그래서 댓가 없는 일을 할 때 더 치열한 성찰과 자기검열이 필요한 것 같아요.

 

....

 

주변에서 보면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상담대학원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살면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고, 아이를 기르면서도 힘든 일이 많아서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데 잘 풀리지가 않으니까, 자신의 그런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동기 때문에 상담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거죠. 그래서 학교에서 온갖 이론을 배우고 기법을 배우는데, 이게 맞지 않는 교육이에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10퍼센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상심리학이 아니라 90퍼센트를 해결하기 위한 정상심리학, 적정심리학인데 10퍼센트를 위한 공부만 하는 거잖아요. 그것도 아주 기술적으로요. 그런 교육을 받고 학위를 따고 자격증을 따봐야 스스로에게 도움도 안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어요.

 

'와락'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또다른 자원봉사자를 만나서 결혼한 사십대 초반의 치유활동가가 있어요. 이 사람이 회사원인데 일이 너무 재미없고 보람도 없고, 자기가 너무 무의미하게 사는 것 같대요.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제가 대학원 대신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프로젝트와 상담학교를 제안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나서 직접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안산에서도 하고 강남구에서도 하고 일주일에 나흘씩 그렇게 열심히 해요. 그러다보면 사람들이 달라지는 걸 눈으로 보게 되잖아요. 평생 이런 느낌을 주고받으면서 살아본 적이 없는데, 그 경험이 너무 좋다고 해요. 대단한 이론이 아니라 몇가지 근본적인 것만 가지고도 실제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보니까 놀라운 거죠. 그것이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입니다. 복잡한 기술이나 기법이 아니라 이런 적정심리학을 구현하는 것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는 그런 적정심리학의 근본적인 것들을 잘 정리해보고 싶어요.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정혜신 ◎ 진은영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5. 17:48

 

"나라에 태평한 세월이 계속되면 병사들은 모두 나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때에 변란이라도 일어나면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몇 해가 지나면 우리 병사들도 강해지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_ 서애 유성룡

 

이 책 [징비록]은 미국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우리의 고전이다. 하지만 슬프고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필자가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세 번  이상 정독을 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비록 적은 다른 형태, 다른 모습으로, 다른 형식으로 우리 민족을 괴롭히겠지만 그러한 환란에 대처하는 우리 국민들과 지도자들의 정신과 자세는 임진왜란 때의 그 때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세 번 이상 정독하게 되면 최소한 국민들의 마음 자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임진왜란 때 우리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준비 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더 큰 요인은 당장 눈앞에 적이 나타났을 때, 담대하지 못하고 하나같이 도망치고, 혼비백산했다는 데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모두가 겁쟁이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국력이 분산되고 흩어지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준비가 부족했더라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온 국민과 관리와 병사들이 왜적을 물리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까지 수많은 백성들이 적의 창칼에, 그리고 굶주림에, 그리고 같은 나라 사람들의 칼에 허망하게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라도, 아무리 부끄럽고 답답한 역사라도 체험을 하고, 부끄러워하고, 반성을 하게 된다면, 나중에 어떤 위기가 닥친다고 해도 그러한 체험을 하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은 국민들보다는 훨씬 더 잘 대처해 나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든 어떤 전쟁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영화에서 우리가 겪은 이런 답답함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공격해 오자 지레 겁을 먹은 중국군은 대항을 포기하고 항복해 버린다. 수천 명의 중국군은 총 한 번 쏘지 않고 그냥 그 도시를 일본군들에게 내 주었다. 수천 명이 넘는 중국군, 정확히 수만 명이 될 지도 모르는 끝이 없는 중국군 포로들은 무기를 그대로 압수당한 후 몰살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결단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은 비겁함이라고, 그래서 용기 있는 사람이 되자고, 가장 큰 비겁함은 죽음을 두려워해서 적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항복하거나 도망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절대 전쟁을 하게 되면, 절대로 항복하거나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의 선조들 중 많은 이들이 거의 대부분 도망을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죽음을 각오하고 용감하게 맞서 싸우신 위대한 선조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이 훨씬 더 비겁했고, 나약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이런 현상이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이 이 책을 쓴 이유는 책 제목에 잘 나타나 있다

 

서애 선생은 [시경]에 나오는 이 말인,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懲)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毖)'는 말의 뜻과 같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매우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왜적이 매우 지략이 뛰어나고 간교한 자들이었다는 것과 이순신 장군이 모함에 빠져 옥에 갇히게 된 것도 역시 이들의 계략에 우리가 넘어갔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이었다. 정말 귀신같았고, 지략이 뛰어났고, 누구보다 용감하고 담대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를 위해서 하늘이 내려준 귀인이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임진왜란을 승리로 끝마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수군 10만 명을 막아 준 한산도해전의 승첩이었다.

 

"왜적들은 싸움을 시작한 이래 오직 수군에게만 패하였는데, 이를 분하게 여긴 도요토미는 고니시에게 어떻게 해서든 조선의 수군을 무찌르라고 명령을 내렸다. 정면으로 붙어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고니시는 계략을 꾸몄다. 김응서에게 호감을 사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이용해 이순신이 모함에 빠지도록 술수를 부렸고, 그런 후에는 원균을 바다 한가운데로 유인해 습격한 것이다. 그의 간교한 계략에 빠져 큰 피해를 입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_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징비록], 195쪽

 

이 책의 중반까지는 답답함과 억울함과 부끄러움만이 존재 했었다. 하지만 후반부터 이순신 장군, 의병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천 년 동안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임진왜란 그 후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와 정황, 스토리도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임진왜란의 생생한 실상과  국내외적인 정세, 전쟁 이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이며 구체적인 전개와  서술은 이 책의 저자인 서애 선생의 능력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다.

 

이 책은 매우 가치가 높은 책이다. 책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서애 선생은 작품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은 문학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책에 속한다. 즉 이 책은 역사적, 문학적으로 최고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책을 12년 동안의 혹독한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한국 학생들이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 한국의 교육의 맹점을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임진왜란은 왜적이 시작한 것이지만, 우리 백성과 군사들을 죽이고 굶주림에 죽어가게 했던 것은 무능하고 어리석었던 관리들이었다.

 

우리 군사들은 왜적에 의해서도 많이 죽었지만, 우리의 무능하고 어리석었던 관리들에 의해서도 많이 죽었다. 이러한 사실이 이 책에는 가감 없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용궁 현감 우복룡은 마침 고을 군사들을 거느리고 병영을 향하고 있었다. 영천에 이르러 길가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을 무렵, 하양의 군사 수백 명이 그 앞을 지나고 있었다. 방어사에 귀속되어 가던 군사들이었다. 말을 탄 채 지나가는 군사를 본 우복룡은 그들을 붙잡았다. 그러곤 큰 소리로 질책했다.

 

'너희 태도를 보니 반란을 일으키려는 군사들이 틀림없구나.'

 

깜짝 놀란 군사들은 병사의 공문을 내보이며 변명했다. 그러나 복룡은 듣지 않았다. 그러곤 자신의 병사들을 시켜 그들 모두를 죽이도록 명했다. 결국 온 들은 시체로 가득 찼다. 이 소식을 들은 순찰사 김수는 우복룡의 행동이야말로 공을 세운 것이라고 임금께 보고했다. 급기야 우복룡은 통정대부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정희적 대신 안동 부사에 임명되었다.

 

이 후 하양 군사의 가족들은 조정의 사신을 만나기만 하면 말을 가로막고 그들의 원통한 사정을 울음으로 호소했다. 그러나 이미 이름이 높았던 우복룡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_ 유성룡, 김흥식 옮김, [징비록], 49~50쪽

 

임진왜란 중에는 이렇게 무고한 백성들이, 병사들이 어리석고 무능한 관리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갔던 것이다. 조선 중기의 무신 신각은 관리의 무고를 받아 결국 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것이 아니라 무지하고 몽매한 그리고 악한 관리 때문에 억울한 참형을 당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각은 김명원의 부장이었다. 그런데 한강 싸움에서 패하자 김명원을 따라 가지 않고 이양원을 따라 양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 그곳에 온 함경우도 병사 이혼과 함께 서울로 들어가 민가를 약탈하던 적을 격퇴시켰다. 이야말로 왜적이 우리나라에 침략한 후 처음으로 승리한 싸움이었으므로 백성들은 감격해 모두 나와 환호했다. 그럼에도 김명원은 임진강에서 올린 장계에 이렇게 썼다.

 

'신각이 제 멋대로 다른 곳으로 가는 등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우의정 유흥은 글을 읽은 대로 임금께 보고했다. 결국 조정에서는 신각을 처형하기 위해 선전관을 파견하였는데, 마침 그때 신각의 승리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조정에서는 부랴부랴 사람을 뒤쫓도록 했으나 이미 선전관의 손에 신각이 죽은 후였다."

 

_ 유성룡, 김흥식 옮김, [징비록], 79쪽

 

임진왜란 때 우리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적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위기 대처 능력 부재에 있었던 것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임금부터 조정의 신하들과 전국의 관리들과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왜적을 막는 데 집중했더라면 수많은 병사들과 백성들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왜적을 막는 데 집중함으로써 피해와 손실을 극소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신각은 용맹하고 청렴한 무관이었고, 여러 가지 공도 세운 훌륭한 장군이었다. 그런데 억울하게 아무 죄도 없이 무능하고 어리석고 이기적인 관리의 무고를 받아 죽었던 것이다.

 

이렇게 왜적을 막아내는 데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에 분산이 되자 국력은 더 약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100년에 걸친 태평성대가 우리 백성들과 관리들로 하여금 전쟁을 잊게 했고, 그 어떤 대비도 하지 않게 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다가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니, 모두 우왕좌왕하다가 혼비백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제일 위층인 임금부터 아래층 백성까지 확고한 원칙과 신념과 기준이 없었던 것이다. 나약했고, 무지했고, 어리석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나약하지 않았고, 무지하지 않았고, 어리석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역시 남달랐다. 이순신 장군의 남다름과 비범함과 지혜를 엿볼 수 있었던 대목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운주당이라는 집을 지었다. 그는 그곳에서 장수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연구하면서 지냈는데, 아무리 졸병이라 하여도 군사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와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모든 병사들이 군사에 정통하게 되었으며,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장수들과 의논하여 계책을 결정하였던 까닭에 싸움에서 패하는 일이 없었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3. 1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