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 8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평생 적어도 40년은 일을 해야 한다. 대개 20대 중후반에서 60대 후반까지는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셈이다. 그래도 남은 노년이 20년 이상이나 된다. 그렇다면 100세 시대를 살게 될 우리 자녀들은 과연 평생 몇 년이나 일을 해야 노후를 무사히 보내게 될까? 아마 부모 세대보다도 최소한 10년은 더 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적어도 50년간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자녀가 직업(진로)을 선택하는 일은 그 자녀의 인생의 절반, 황금기의 전체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런 인식도 없이 오로지 당장 레벨이 좀 더 높은 대학에 진학하는 데만 목을 매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이른바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을 최고의 보람과 자랑으로 삼고 있다는 말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방치하거나 깨닫지도 못한 채로.

 

인생의 목적이 대학일 수는 없다. 남들이 알아주는 일시적인 과시일 수도 없다. 어떤 직장이나 직업 자체일 수도 없다. 그 모든 것은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이자 과정일 뿐이다. 인생의 목적이 서야 비로소 그 적절한 수단들을 조합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네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들의 인생 목적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수단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선후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버릇이나 예의가 없어도 괘념치 않고, 오로지 부와 명성만을 거머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 뿐이다.

 

인생의 목표 또는 목적이 먼저 서야 평생 후회하지 않고 종사할 직업을 찾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다. 의사나 변호사가 안정된 직업에다 명예도 높고 돈을 많이 번다니까 다들 법대나 의대를 보내느라 난리다. 재벌 대기업에 취직하기 유리한 명문 경상대학에 보내느라 혈안이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의시나 변호사에 관심은 있는지, 조직생활에 맞기는 한지, 다른 더 특출한 재능은 있는지 하는 것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딱 맞는 일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일단 되어 놓고 거기에 맞춰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한다. 너도 사회에 나가 철이 들면 부모 말이 옳다는 걸 깨닫게 될 거라고 열변한다.

 

그러나 진정 당신의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지금까지의 그런 생각은 잠시 멈추고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기를 바란다. 우리 부모들에게 혜민 스님이 전하는 말 한마디만 음미해보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노후에 고생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 오래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노후 30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결정되는 것 같다. 그러니 짧게 보지 말고 길게 보며 아이의 장래를 결정하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당장 중간고사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몇 백배는 더 중요한 일이다. _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우리나라 학사체계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이과/문과로 구분해 진로의 큰 줄기가 갈라진다. 대다수가 대학 전공도 자신의 적성을 모른 채 결정하는 현실에서 고등학교 2학년부터 진로를 선택한다는 것은, 이과/문과의 구분 자체가 학문적으로 모호하다는 점은 놔두고라도 불합리한 일이다. 자신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대학 진학에 이과가 유리한지 문과가 유리한지를 따져서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자신의 적성과 진로가 아니라 대입에의 유리/불리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이과/문과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육현장에서의 실태가 이러한데도 이 오래 묵은 '고2 문과/이과 선택'제도는 여전히 건재하고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필자 역시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때 이 제도 앞에서 막막했다. 이때 나는 누구에게서도 이과와 문과의 명확한 차이를 듣지 못했다. 더욱이 내가 어떤 부분에 재능이 있는지, 무엇을 전공할 것인지, 진로에 대한 어떤 방향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이과를 선택했다. 왜 이과를 선택했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이과를 선택했으니 대학 전공 역시 자연계열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수능을 보고 점수에 맞는 학과를 고르다 보니 생물학과를 선택했다. 생물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관련 분야에 취업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취업준비도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먼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회생활하며 느낀 것이지만 필자는 자연계열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인간이다. 생물학자가 되지 않는 한 생물학이 내 사회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생물학을 전공했다고 하니까 여자친구가 툭 하면 "자기야, 저 꽃 이름이 뭐야?" "저 나무 이름은 뭐야?" 하며 물어대는 통에 진땀만 빼야 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그랬다. '너도 모르는데 내가 어찌 알겠니?'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다시 했다. 성인이 되어서야 내가 어떤 것에 재능이 있고, 호기심이 깊고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도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그 배움의 황금기를 내게 맞는, 그러니까 내 꿈(인생의 목표)과 직결된 분야를 공부하며 보냈다면 지금의 나의 삶이 훨씬 풍부해져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나는 내 아이들만큼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이들이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중학교 1학년생이 고교생이 되는 2018년부터 고교에서 문과/이과 계열 구분이 사라지는 등 교육과정이 개편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정권교체에 따라 수시로 바뀌고 교육부장관이 바뀌면 또 바뀐다. "교육 백년대계"는 말뿐으로, 현실은 오년대계도 못된다. 이것이 교육을 망치는 주범 가운데 하나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공계 출신의 취업이 힘들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미 수년 전부터 상황이 역전되었다. 취업시장에서 이공계 출신이 각광받는 가운데 인문계 출신은 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대학에서는 인문 관련 강의가 속속 폐강되고 있고, 관련 학과마저 정원이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폐지되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인문 관련 출판시장도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산업지도의 변화에서 비롯한 지각변동이다. 먼저 새로운 일자리 자체가 이공계 분야를 중심으로 파생, 확산되고 있는 반면 인문계 분야의 일자리는 빠르게 축소되고 있는 추세다. 또 주로 인문계 전공자들의 일자리였던 기획, 관리, 마케팅 분야가 고도로 자동화됨으로써 채용 인원 또한 대폭 줄어들며 이공계 출신들도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인문계 자원은 남아서 넘쳐나는 가운데 이공계 자원은 없어서 못 뽑는다고 기업들이 아우성이니, 앞으로 이공계 쏠림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문학의 융성 없이는 과학의 발전도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는 데에 있다. 인류문명 발달의 원천은 인문학에 있다는 사실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바다. 그래서 걱정이다.

 

취업 포털사이트 인크루트는 대학 4학년 졸업예정자 3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6명이 여전히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중 절반이 진로를 정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자신의 적성과 흥미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미 진로를 정한 4명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서 진로를 정했을까? 그중 절반 이상이 적성과 흥미에 상관없이(혹은 모른 채로) 진로를 정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들 절반 이상이 그때껏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교생으로 내려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소질도 모른 채 학과를 선택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더구나 일단 좀 더 레벨이 높은 대학에 들어가고 보자는 식의 입시경쟁이 만연한 가운데 설령 자신의 적성과 소질이 뭔지를 안다 한들 그런 것이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현실이니, 이래저래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의 적성이나 소질과는 거의 무관하게 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타고 갈 인생 버스의 종점을 SKY로 생각한 부모들의 욕심과 착각이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전공학과보다는 대학의 레벨을 우선해온 관행은 역사가 깊다. 우리 사회의 보여주기식 성과주의의 폐해다. 필자가 알고 지내는 한 선배는 지방 명문고 출신인데, 어느 술자리에서 고3 때 대학입시에 얽힌 비극을 전했다. 그때도 학교의 평판이나 교사의 능력이 서울대를 비롯한 SKY에 몇 명 보내느냐로 가름되었는데 특히 학력고사 300점 이상 몇 몇, 서울대 진학 몇 몇은 전국 고등학교 랭킹을 매기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담임선생님들이 '서울대 많이 보내기'를 진학지도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원래 의대에 뜻이 있어 점수에 맞춰 Y대 의대에 가려는 학생을 강압하여 서울대 수의과대로 보내고, K대 경영대학에 가려는 학생을 강압하여 서울대 농대에 보내는 식으로 서울대 진학률을 2퍼센트나 더 올린 결과 그해 전국 톱을 차지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강압에 의해 서울대에 간 그 학생들 대부분이 결국 휴학이나 자퇴를 하고 다시 대입을 치러 이듬해 자신이 원하는 학과를 찾아 갔다는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요즘에는 이런 식의 강압은 없을지 모르지만 대학의 레벨에 우선순위를 두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는 짜 맞추기는 여전하다.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에 따른 인생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입이 끝나면 많은 학생들이 노량진 고시학원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전공은 전공일 뿐 자신의 진로와 무관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전공을 전혀 살리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기업에서도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무슨 전공을 했으니 업무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까 대학은 소질을 계발하고 전공을 연마하는 장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위한 간판으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연고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좀처런 개선되기 힘들 것이다.

 

전국 초중고 교장, 교감의 97%가 '학교현장에서 노동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교육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행위 또는 그 과정" 이라 정의된다.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주는 것이다.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의 활용을 통한 사회적 기여다.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교육은 장기간 이루어지고 있지만, 익힌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장에 대한 교육은 전무한 실정이다.

 

성년인 대학생들조차 대부분 직업의식과 직업관이 바로 서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취업한 뒤에 대부분 새롭게 가르쳐야 한다. 김정일 교수(한국노동교육원)의 조사에 따르면, 가장 비중 있게 다뤄야 할 노동교육으로 직업의식과 직업관(39.7%)이 꼽혔고 노동의 가치관과 윤리(35.7%), 노동문제의 이해와 해결(9.0%), 노사관계의 특징과 본질(7.9%)이 뒤를 이었다.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제안하고 싶다. 적잖은 이들이 직업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정보 없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야 다급한 마음에 직장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을 선정해 놓고 그 직업에 필요한 계발을 꾸준히 실행하여 그 직업을 실현할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아니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먼저 직업을 정하고 그에 맞춰 직장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일반적인 직업 선택 기준은 사회 통념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의 규모, 연봉과 복지, 안정성 등 몇몇 통념이 대다수에게 기준이 되어 버린다. 인간은 제각기 기질과 역량(소질)이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통념만으로 개개인에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가장 큰 모순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결정하지 않고 일할 장소를 선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관을 갖고 일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무리다.

 

미국과 덴마크의 경우,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내 진로지도 프로그램을 통해 직업 탐색, 진로 계획에 대한 교육을 하고, 개인별 진로계획 기록부를 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학생의 진로 선택을 위한 정보를 제공, 판단, 권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 많은 선진국들이 중등기간 중 직업현장 체험을 의무화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2004년 9월부터 14~16세 모든 학생들이 '일 관련학습'을 경험해야 하는 것을 법률상 필수요건으로 규정했다. '일 관련학습'은 일에 관한 체험을 통한 학습, 일 또는 직업 활동에 관한 학습, 일에 필요한 스킬의 학습 등 일과 일에 유용한 지식, 스킬, 이해를 개발하기 위해 일과 관련된 상황을 이용하는 계획된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이 일을 통해 배우고, 일에 관해 배우며, 일을 위해 배울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다.

 

핀란드는 '직업생활 소개기간 TET'을 교육과정 일부로 두어 8~9학년과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실제 작업현장에서의 직업생활에 관한 경험을 갖게 하고 있다.

 

프랑스는 교과과정을 통해 '발견 과정', '직업세계 발견'과 같은 교과목을 학습하고, 비 교과과정을 통해 '기업체 견학활동'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 독일은 지역고용안정센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학생들에게 진로상담을 제공하거나,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 덴마크는 7~9학년 학생에게 의무교육 기간 이외 1~2주 가량의 직업체험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출처 : 비전진로교육 연구소 김희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로정보센터 진미석 선임연구위원, 인용 및 재조합)

 

우리나라도 최소한 초등학교에서 이런 직업교육과 경제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맹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고 공부만 하라고 하는 방식으로는 창의적인 인재, 주체적인 인간을 육성할 수 없다. 이론적인 지식과 실용적인 지식을 병행할 때 비로소 교육의 본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우리 아이 진로 찾아주기, 오평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2. 21:19

 

기록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독서 고수인 율곡 이이는 다독보다는 숙독을 강조했다. 그가 남긴 [격몽요결]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한 가지 책을 습득하여 그 뜻을 모두 알아서 완전히 통달하고 의문이 없게 된 다음에야 다른 책을 읽을 것이요, 많은 책을 읽어서 많이 얻기를 탐내어 부산하게 이것저것 읽지 말아야 한다." _ 이이, [격몽요결] 중에서

 

하지만 율곡 이이 선생이 살았던 조선시대와 현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독서법도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목적에 따라, 심지어 책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조선 시대에 대부분의 선비들이 선호한 독서법은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책을 읽어 뜻을 완전하게 통달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독서백편의자현'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백 번 읽으면 뜻을 자연히 알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하루에도 한국에서만 200여 권의 책이 출간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 200여 권의 책은 과거에는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의식과 패러다임과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는 책들이라는 점이다.

 

조선 시대에는 책이 많이 있지 않았고, 한 권의 책을 구하는 것도 매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굉장히 고가였다.

 

우리의 선조 중에 가장 많은 책을 집필한 혜강 최한기 선생은 매우 부자였지만, 책을 너무 좋아해서 조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책은 모두 구입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결과 부자였던 최한기 선생은 가난해졌다고 한다. 그 정도로 책이 고가였던 것이다.

 

현대는 인쇄술과 기술이 발달해서 한 권의 책값이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약간 비싼 정도이다. 책을 아무리 많이 구입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부자가 가난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또 조선 시대에는 지식의 폭발 정도가 매우 느렸다. 하지만 요즘은 몇 년만 지나면 인류의 지식과 정보의 총합을 두세 배 이상 뛰어넘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한마디로 지식과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조선 선비들은 우리가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 중에서도 중국에서 나온 책만 읽으면 되었다고 말한다면, 지금 우리들은 과거의 고전 중에서도 서양에서 나온 고전, 미국에서 생겨난 고전, 그리고 현대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검증이 안 되었지만 고전의 반열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명저들 까지 읽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와 시대적 변화 때문에 다양한 책들을 읽는 것, 즉 다독하는 것을 필자는 추천하고 있다.

 

창조성이란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질적인 것들을 융합하고 엮고 조합하는 것에서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질적인 생각과 의식에 접해야 한다.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수용과 모방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의 양의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질적 전환이 일어나 새로운 이론과 견해, 가설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인류의 모든 학문과 사상은 발전을 해 왔던 것이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사항은 다양하고 풍부한 양적 수용과 모방인 것이다. 에디슨이 최고의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전쟁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것이고,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장군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장군아기 이전에 문신으로서 다양한 책들을 읽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도 위대한 혁신가임에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스티브 잡스보다도 세종대왕이 더 위대한 혁신가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에 수천 명의 위대한 학자들이 평생을 투자해도 새로운 글자를 하나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세계의 모든 언어학자들이 찬양하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을 창조했다.

 

이것만큼 더 큰 혁신은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독서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그 당시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을 만큼 최고의 부자였고, 최고의 정상에서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과거 시험을 쳐야 하는 선비들보다 더 열심히 더 지독하게 책을 읽고 또 읽었던 위인인 것이다.

 

세종대왕의 모든 창조성과 유연성과 리더십과 백성 사랑은 바로 책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2. 20:11

 

조선조 최고의 학자, 한국 최대의 실학자,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던 다산 정약용은 필자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다. 책을 통해 필자는 그에게서 배우고 또 배웠다. 평생 배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전 독서법이다.

 

오래 전 위인들의 삶을 책을 통해 접하고, 책을 통해 매일 배우고, 가르침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법은 학생이 스승에게 매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대로 그 배움대로 집에 와서 실천하고, 사회에 나가서 행동하고, 직장에서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나은 고전 독서법이 어디 있을까?

 

바로 이런 고전 독서법이 결국 조선조 최고의 학자인 정약용이 실천한 실학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고전은 실학자처럼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방대한 글을 남긴 조선조 최고의 학자이며, 삶과 학문이 나누어지지 않았던 위대한 학자였다. 그래서 필자가 존경하고 스승으로 삼는 것이다. 그 당시 정약용을 억압하고, 유배를 보낸 세도가들은 이름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정약용은 자자손손 오래도록 이름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다산은 그의 든든한 지지자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마흔의 나이에 정계에서 쫓겨나게 되고,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말이 유배 생활이지 가난과 결핍으로 점철된 혹독한 세월이다. 물리적인 환경보다 더 혹독한 것은 정신적인 환경일 것이다.

 

시쳇말로 잘 나가다가 그만 망하게 되고, 주 활동무대인 세상에서 쫓겨나 시골로 귀양을 가게 되면, 더 이상 삶의 희망도, 미련도, 열정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배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3년 안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갑자기 병이 나고, 심지어 죽는 사람도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다. 매일 출근해서 갈 곳이 있고, 자신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해 주고, 강하게 해 주지만, 정년 퇴직을 하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이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심리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유배지로 귀양을 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이다. 건강만 챙겨도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다산 선생은 달랐다.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그는 마치 유배 생활을 40세부터 18년 동안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할 정도로 유배 생활이 그의 인생의 최고의 전성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 관리와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가 다산 정약용 선생을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토록 가난하고 결핍되고 혹독한 세월을 그가 인생의 최고 전성기로 반전시킬 수 있었던 힘은 결국 붓과 책이었다.

 

그가 독서와 집필을 통해 귀양을 오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책을 읽고, 방대한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유배 생활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1년 365일 그에게 허락된 것은 유배지에서의 기거일 뿐이다. 여행도, 휴가도, 취미 생활도, 친구나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다산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다산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 두고, 그의 놀라운 독서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고전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다산처럼 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산이 강조한 독서법은 먼저 바탕을 세우는 독서법이다.

 

"독서에는 반드시 바탕을 먼저 세워야 한다. 무엇을 바탕이라고 하는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할 수 없으니, 학문에 뜻을 두려면 반드시 바탕을 세워야 한다. 무엇을 바탕이라고 하는가. 효도와 공경이 바로 그것이다. 모름지기 효도와 공경에 먼저 힘써 바탕을 세운다면 학문은 저절로 몸에 베게 된다. 학문이 몸에 배면 독서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효도와 공경이라는 바탕을 세우면, 학문이 몸에 배게 되고, 독서는 저절로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효도와 공경은 인간의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마음이다. 즉, 독서를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 필자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3년 동안 다양한 독서법으로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하면서 처음 6개월 동안은 정말 바탕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 낭비식의 독서를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6개월 동안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지만, 그것은 모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독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부터 점차 독서라는 것이 제대로 되기 시작했고, 점차 독서력의 엄청난 도약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6개월 전과 후의 차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바탕이다.

그 당시의 6개월 전에는 그저 마음 관리 없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6개월 이후부터 마음 관리를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6개월 후 부터는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순수한 열정, 순전한 마음으로 모든 이들을 공경하고,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비우고, 낮추는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독서의 기술도 달라졌다. 하지만 독서의 기술, 독서의 방법이 달라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독서를 하는 필자의 마음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산의 말처럼, 바탕을 세우자, 마음이 달라졌고, 마음이 달라지자, 독서의 방법과 기술도 달라졌다. 그러자 알게 모르게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과 점차 닮아졌고, 학문하는 이유와 세상에 대한 세계관과 철학관이 다산을 닮아가게 되었다.

 

그러자 다산처럼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500권을 집필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필자도 다산처럼 닮아지게 되자, 2년 동안 45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집필하는 것은 출간하는 것보다 쉽다. 출간을 하기 위해서는 집필된 원고를 다듬고, 편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얼추 다산 선생의 집필 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다산 선생의 독서력이 필자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그의 다른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통 그는 백 권의 책을 열흘 만에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필자는 보통 하루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읽는다기 보다는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산처럼 읽고, 쓰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런데 평범했던 필자가 위대한 조선조 최고의 학자와 비슷하게 닮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전 독서의 위력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이 고전 독서의 힘인 것이다.

 

자기계발서만 읽었다면, 벤츠를 사고, 부자가 되고, 성공했을 것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부산물이 아닐까?

 

인문 고전을 읽었기 때문에 필자는 다산 정약용, 세종대왕처럼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 분들의 발꿈치도 쫓아가지 못했지만, 평생 노력하고 독서에 매진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산이 쓴 많은 책들 중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쓴 책들도 있다. [소학주관]이라는 책이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을 보면, 독서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지금 내가 슬슬주 1만 섬을 얻었다 하더라도 꿰미로 꿰지 않으면 어디 간들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요즘 학문하는 방법도 이와 마찬가지다. 구경과 구류 백가에 나오는 수많은 책의 이름과 항목들이 모두 슬슬주다. 이것을 꿰미로 꿰지 않는다면 이 또한 얻는대로 곧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정약용 선생은 독서를 해도, 반드시 정리하고 요약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여야 자신의 것으로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필자가 쓴 독서법 책인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초서 독서법과 의식 독서법을 합하여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필자는 명명한 바 있다. 여기서 초서 독서법은 책을 눈으로만 보면 읽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는 문제점을 개선한 독서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 새롭게 생긴 생각들과 주견들을 노트에 정리하고, 필기하고, 요약하면서 책을 읽는 방법이 바로 초서 독서법이다. 여기에 의식 독서법은 책을 읽을 때 마음을 먼저 집중하고, 마음을 관리하면서 책을 읽는 독서법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바탕을 먼저 세우고 독서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필자가 쓴 세 번째 독서법 책인 '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독서법을 그대로 재현시킨 것이고, 그것을 현대식으로 바꾸어, 현대의 독자들이 자신의 독서력이 초급이든, 중급이든, 고급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체적으로 실제 사례를 들어 풀어 써 준 현대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을 읽으면서 눈으로만 읽으려고 하는 것은 자만이다. 왜냐하면 눈으로만 읽어서는 절대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산 선생의 말대로 얻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반드시 꿰어야만 가치 있는 보석이 되는 법이다. 고전 독서도 바로 이와 같다. 한두 번 눈으로만 읽고 그 책의 진짜 가치를 다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법으로 지금까지 그나마 유행했던 것이 토론 독서법인 것이다. 하지만 토론 독서법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 토론해 줄 친구들, 사람들이 필요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양의 고전 독서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 독서법보다는 초서 독서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이다. 필자가 토론 독서법보다 초서 독서법을 추천하는 이유는 또 있다.

 

토론 독서법은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생활 방식이 다른 것이 너무 많다. 생활 방식만 다른 것이 아니다. 당연히 지역적인 환경과 생활환경의 차이로 사고 방식도 다르다. 그런 것들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영향을 주어, 결국 DNA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세계 그 어떤 나라 백성들보다 음주가무에 강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K-POP이 전 세계를 사로잡는 이유가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DNA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양인과 서양인들의 가장 큰 차이는 사고 방식과 사고 프레임의 차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이런 차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문과 책들을 통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차이점 중의 하나가 서양인들은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할 때 사고력이 향상된다는 것과 이와 반대로, 동양인들은 혼자서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글씨를 쓸 때 사고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식 수업, 토론식 독서법은 동양인들보다는 서양인들에게 최적화된 독서법이고 수업이다.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기 보다는 동양인들에게 맞는 독서법을 실천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필자가 교육학자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필자는 교육학 학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방대한 책을 통한 지식과 이론적 근거 때문만이 아니다.

 

실제로 독서력의 도약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초서 독서법을 통해 가장 큰 도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필자가 혼자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토론 독서법보다 초서 독서법을 강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세종대왕, 모택동, 다산 선생, 정조, 박지원 등 많은 위인들이 초서를 통해, 즉 붓을 들고 쓰는 독서법을 통해 위대한 도약을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모택동이 위대한 중국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남다른 독서법 때문이었다. 그가 남긴 위대한 말을 보면 곧 알게 된다.

 

"붓을 들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모택동은 누구보다도 더 붓을 들고 쓰면서 독서를 하는 사람이었다. 세종대왕은 또 어떤가? 백 번 읽고 백 번 쓰는 독서법인 백독백습을 실천했고, 항상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결론은 이것이다. 고전은 다산처럼 읽어라는 것이다. 다산은 초서 독서법으로 고전을 구슬처럼 꿰었다. 그래서 고전의 가치를 극대화 시킬 줄 알았던 위대한 학자였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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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5. 8. 2. 1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