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생 대부분은 대학 입학을 목표로 공부한다. 그런데 그 목표는 대개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 아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이거나, 자신의 성적에 맞춘 대학이다. 왜냐하면 학생은 자신이 어떤 대학에 가면 좋은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학에 가야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그 대학을 조사하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학생들의 경우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 그러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한 대학이 아니다 보니 아무리 이름난 대학이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자퇴를 하는 학생들이 생긴다.

 

자신을 진정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대학을 선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 이후엔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에 가 보고, 그 대학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어떤 부모님들은 이러한 일을 할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더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입시 철이 다가오면 자신이 대신 대학 입시 설명회를 다니며 자녀의 공부 시간을 확보한다. 하지만 이는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빼앗는 일일 뿐 아니라, 만족을 주는 대학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 일이기도 하다.

 

만족감을 주는 대학이란 누구나가 다 좋다고 말하는 대학도 아니며, 점수에 맞춰 가는 대학도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관심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관심사를 최대한 잘 배울 수 있는 대학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채용할 때 진짜 대학 간판을 볼까?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정도는 나와야 해."

 

아직 세상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은 이러한 말에 쉽게 현혹된다. 그런데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명문대를 나와야만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것일까?

 

오늘날 한국의 어떤 기업도 서울대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뽑지 않는다. 명문대 출신이라고 무조건 채용하는 현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그들만의 인사 시스템을 구축해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찾는다. 그래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해 줄 자료도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하버드대학의 하위 30퍼센트 학생들보다 지방 대학의 상위 20퍼센트 학생들이 훨씬 더 똑똑하고, 취업한 후에도 더 많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데이터를 통해 알아냈다. 즉, 꼭 명문대가 아니더라도 어느 대학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학과에 만족하고 몰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채용을 할 때 학교 이름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학 이름이 아닌 '학과'

 

영수 학생은 심리학과를 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실제로 명문대는 아니더라도 수도권에 위치한 한 대학의 심리학과에 들어갈 정도의 성적은 되었다. 그런데 주변 어른들은 학과보다는 대학이 중요하다며 영수 학생에게 무조건 서울대학교를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영수 학생이 심리학과를 포기한다고 해서 서울대학교를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면 영수 학생이 생각한 학교보다 한 단계 높은 대학은 갈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하면 영수 학생이 가고 싶은 심리학과는 포기해야 했다. 한 단계 높은 대학의 심리학과는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영수 학생은 자신이 원하던 심리학과가 아닌, 한 단계 높은 대학의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영수 학생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영수 학생의 선택에는 자신의 성향보다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의 기대가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영수 학생의 부모님은 아들이 좀 더 높은 단계의 대학에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아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때 부모님이 생각하는 좀 더 나은 삶이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다. 아들의 적성이나 취향은 좀 더 나은 삶의 범주에 있지 않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볼 때, 이러한 선택은 결국 영수 학생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원치 않는 공부를 한다는 건 입시 준비를 해야만 했던 고등학교 과정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고, 그에 대한 결과로 좋은 학점을 받기도 힘들다. 학점이 좋지 않다면, 과연 부모님이 바라는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 단정적인 결론은 내리지 않을 것이지만, 각자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_ 김경일 교수

by 미스터신 2024. 7. 21. 09:58

사람의 뇌는 단순 계산이나 암기를 통해 발달하지 않는다. 깊은 사고와 연결적인 사고를 많이 해야만 고차 사고를 담당하는 앞이마엽(전전두엽)의 면적이 넓어지고 뇌가 발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컴퓨터는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답을 쉽고 빨리 찾아 주어 편리함을 주지만, 깊은 생각을 하지 않게 해 앞이마엽의 면적을 오히려 줄어둘게 만든다. 원하는 정보를 컴퓨터가 모두 제공해 주어 쉽게 정보 파악이 가능해지다 보니, 마치 모든 정보를 내가 진짜로 이해하고 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정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면 내가 실제로 그 정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온라인 게임은 뇌의 일부분만 쓰게 만들어 단편적인 사고를 하게 만들며, 뇌의 일부만 발달하게 된다. 이는 팝콘처럼 곧바로 튀어 오르는 것에만 반응하게 될 뿐,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진짜 현실에는 무감각해지는 '팝콘 브레인'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팝콘 브레인 현상을 막기 위해 우리는 게임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할까? 게임을 무조건 차단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무척이나 이분법적인 생각이다. 마치 19세기 후반, 마차와 자동차의 충돌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자 자동차의 속도를 시속 3킬로미터로 제한해, 결국에는 독일에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만든 영국의 '붉은 깃발법'과 같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2015년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우리 인류는 포노 사피엔스를 맞이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포노 사피엔스는 '지혜가 있는 전화기'라는 뜻으로,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만든 말이다. 즉,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러니 스마트폰에서 무수히 개발되고 소비되는 게임 역시 무작정 막는다고 될 일은 당연히 아니라는 말이다.

 

진짜 문제는 게임을 '오락'으로만 보는 것이다. 사람은 왜 게임에 빠져들까? 게임은 단순한 놀이나 오락이 아니다. 게임에는 규칙, 목표, 결과, 갈등 등 인간사의 모든 측면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현실적인 이익이나 이해관계와 무관한 자유로운 도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적 요소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 나가고 있다. 많이 알고 있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알리바바는 2018년 기준으로 시가 총액 세계 10대 기업 안에 드는 기업들로, 모두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직결되는 회사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중국의 텐센트라는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회사도 이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게임을 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게임을 무조건 막아야 할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게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마차와 자동차가 공존하는 거리를 모색한 독일이 붉은 깃발법을 만든 영국 대신 자동차 산업의 선두 주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유추적 사고와 깊은 사고

 

우리는 공부할 때 뇌의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야만 하는 깊은 사고를 사용한다. 덧셈이나 뺄셈처럼 단순한 계산문제나, '세종대왕이 만든 것은?'과 같은 단순 암기에는 깊은 사고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유추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문제는 깊은 사고를 해야만 풀 수 있다. 유추는 구조적 유사성이나 관계성까지 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눈은 마음의 창이다."라는 구절이 있다.눈, 마음, 창은 제각각 다른 범주에 속하므로, 얼핏 생각하기에 이 세 단어는 전혀 연결성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눈과 창은 '무언가를 볼 수 있게 하는 통로'라는 유사성을 지닌다. 이 유사성을 이어 붙여 "눈은 마음의 창이다."라는 문장이 탄생한 것이다. 

 

유추를 하기 위해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이어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때 앞이마엽과 다른 피질, 혹은 앞이마엽 안에서도 여러 가지가 연결된다. 뇌의 신경 세포들을 연결하는 것은 시냅스인데, 컴퓨터를 하는 동안에는 시냅스가 연결되지 않는다. 인터넷 서핑이나 온라인 게임 등은 우리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그냥 모든 것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분명 친절한 정보 제공자이지만, 우리가 깊게 생각하는 기회를 차단한다. 따라서 책과 같이, 읽는 사람이 글에서 묘사한 장면을 직접 만들어 내야 하는 불친절한 정보 제공자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이 불친절함은 우리가 우리의 뇌를 더 많이 쓰게끔 만들어 유추적 사고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_ 김경일 교수

by 미스터신 2024. 6. 6. 10:11

직접 경험의 효과가 더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간접 경험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사람은 세상의 모든 일을 다 경험할 수 없다. 간접 경험은 우리가 미처 체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독서는 간접 경험 중에서도 상당히 적극적인 경험에 속한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는 시각과 청각 정보를 다 제시해 주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할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독서는 글을 읽으며 시각적인 것을 떠올려야 되고 촉각을 만들어 내야 되며, 이 외에도 다른 여러가지 것들을 상상해야 한다. 이때 우리의 뇌는 왕성한 활동력을 보인다. 즉, 독서는 수동적으로 입력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입력을 필요로 하는 일인 것이다.

 

독서를 통해 입력되는 정보는 뇌의 시냅스 형성을 자극하며 뇌질환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 줄 뿐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영국의 서식스대학교 인지신경심리학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 연구팀은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독서를 권하기도 했다. 이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책을 6분 정도 읽을 경우 스트레스는 68퍼센트 감소하고, 심장 박동수는 낮아지며 근육의 긴장이 풀린다고 한다.

 

독서의 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독서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제까지 자신이 알고 있었던 세상은 한 권의 책만으로도 더 확장될 수 있다. 독서를 통해 경험하지 않아 몰랐던 세상의 일, 감각, 정서, 철학 등을 접함으로써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지금의 자신을 반성하게 하거나 성장시키는 일이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높여 주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독서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의 분비를 늘려 행복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_ 김경일 교수

 

by 미스터신 2024. 5. 18.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