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에서 "옆집 아줌마를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등장한 적이 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바로 이거다!"라고 느낀 적이 있고, 내가 쓴 책 '나부터 교육혁명'에도 그 이야기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옆집 아줌마'의 위력은 너무나 크다. 여기서는 이 이야기를 좀 더 깊이 들어가 본다.

 

우선, 내가 여기서 '옆집 아줌마'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아줌마 또는 어머니 자체가 문제라고 하는 건 아니다. '옆집 아줌마' 이야기의 본질은, 아빠는 돈벌이 기계로 전락하고 동시에 엄마는 아이의 성적 관리자가 되어버린, 우리 모두의 뒤틀린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바람직한 모습은, 엄마나 아빠가 일정한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되 하루 중에 한 나절만 일하고 그 외 시간의 많은 부분을 자녀 교육이나 자녀와 함께 활동하는 데에 쓰는 것이다.

 

지금처럼 엄마 아빠의 일이 이분법적으로 나눠진 상태로, 그리하여 엄마가 아이 교육,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이의 점수 올리기나 일류대 입시 준비를 전적으로 담당하다 보니 사실상 엄마도 아빠 못지않게 중노동을 수행한다. 잔업, 철야, 특근도 마다않고, 또 상사로부터 꾸지람을 먹으며 자존감이 상하는 일도 겪어가며 돈 벌어다 주는 아빠나,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엄마나 삶의 스트레스는 극한에 이른다. 이 모든 것은 시급히 바꿔야 할 현실이다.

 

이런 잘못된 현실을 정확히 인지한 위에서 이제 '옆집 아줌마' 이야기를 다시 보자. 이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아무리 자녀 교육에 관한 좋은 강의를 듣고 아무리 좋은 교육 서적을 읽은 뒤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막상 다음 날 '옆집 아줌마'만 만나고 나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옆집 아줌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기에 우리가 아무리 단단히 결심을 해도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마는가?

 

옆집 아줌마가 먼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인성교육이고 자연교육이고 대안교육이고 말은 참 좋지.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앞으로 더 살벌해질 세상에서 과연 아이가 먹고살 수나 있을까?"

 

그렇다. 역시 생계 문제다. 생각해보니 지금 아빠도 바로 그 생계 전선에서 매일 힘겹게 살고 있지 않은가? 경쟁은 치열하고 사회가 만들어놓은 사다리 질서에서 높은 등급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아이도 나처럼 '뺑이치고' 살게 될 것 같다. 심하면 서울역 같은 데서 보는 노숙자처럼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돈다. 갑자기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옆집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결론은 "그래, 사실 그 말도 맞네. 아이고, 이를 어쩌나? 혹시 좋은 학원이나 과외 선생 아는 데 있어요?" 로 끝난다.

 

이제 이 부분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하나씩 따져보자.

첫째, 그런 식으로 경쟁 교육을 받는 가운데 과연 부모인 나는 행복하게 자라왔던가? 우리 스스로의 경험을 반추해보자는 얘기다. 만약 중3이나 고3을 다시 한 번 해보라 하면 기꺼이 할 것인가? 지금은 어떤가? 우리의 아이들은 오늘도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는가? 만일 본인도 행복했고 아이도 진정으로 행복하게 느낀다면 그렇게 계속 가면 된다. 사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도 '모두 행복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아이나 어른이나 지금의 모습이 행복하다면, 더욱 치열하게 경쟁적으로 공부하도록 하면 된다. 그것이 참 행복의 길로 느껴진다면 말이다.

 

그러나 내가 나의 과거를 되돌아 보고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살하는 아이들,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 교실 붕괴를 촉진하는 아이들, 탈학교를 결심하는 아이들을 곰곰 생각해보면 결론은, 이 모든 일이 지금의 현실 속에서 결코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들이 아닌가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너도 나도 자기 자식을 전쟁과 같은 입시 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그것이 행복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스스로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다른 말로, 보다 슬기로운 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런 식으로 경쟁 교육을 계속한 것이 지난 50년 정도의 대한민국 교육이었다. 대학 입시, 나아가 일류대 합격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고교로부터 중학을 거쳐 이제는 초등 수준까지 내려갔다. 심지어 유치원 때부터, 아니면 태아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사람도 많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몇 년 전, 어떤 엄마가 세 살짜리 아이의 혀 밑 근육을 잘라 영어 발음을 원어민처럼 하게 만든다고 하는 바람에 해외 토픽감이 된 적도 있다. 다른 편에서는 많은 부모들이 초등 아이들을 억지로 부모 품으로부터 떼어내 '조기유학'을 시키기도 했다. 모두 바람직한 결과를 얻은 게 아닌데도 말이다.

 

특히, 이른바 '기러기 아빠'들의 애환이나 자살 소식이 들릴 때면, 과연 우리가 이성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결론은, 우리 모두가 미쳐 돌아간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식으로 가면 과연 10년이나 20년 뒤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과연 더욱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난공불락의 엄청난 실력을 듬뿍 다지고 배움의 기쁨에 행복해하며 모두 멋진 실력자가 될까? 옆집 아줌마가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모두들 따라 갔을 때 이 세상은 과연 좋아지는 걸까, 아니면 갈수록 나빠지는 걸까? 우리가 길을 가도, 이게 죽으러 가는지 살러 가는지는 알고 가야 하지 않을까?

 

셋째, 아이의 생계 문제는 굳이 부모가 일일이 걱정하지 않아도 아이가 머리가 커지면 스스로 고민하게 되어 있다. 생각해보라.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가 모든 걸 마련해주는 것이 진정 행복할까 아니면 아이가 커서 독립해 숟가락 하나라도 스스로 장만할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일까? 옛말에 "아이 먹을 것은 자기가 갖고 태어난다."고 했다. 우리가 진정 걱정할 것은 아이의 생계가 아니라 꿈이다. 꿈을 키우는 아이, 그 꿈을 좇아 즐거운 마음으로 실력을 키우는 아이, 그 실력을 자기 행복만이 아니라 사회 행복을 위해 쓸 줄 아는 아이, 바로 이런 '일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행복한 세상이 된다.

 

그렇게 꿈을 키우고 실력을 키워 사회 헌신까지 하는 아이들은 생계 문제도 거뜬히 해결한다. 꿈을 좇아 정진하는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실력을 인정받아 먹고살 길도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호화판으로 살지는 못해도 소박한 살림살이는 탈 없이 이어나갈 수 있다. 그렇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편, 매일같이 생계 걱정만 하며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초라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다른' 상상을 하지 못하니, 결론은 뻔하다. 늘 생계에 허덕거리며 살거나, 생계 해결을 한답시고 대부분 돈과 권력에 종속되거나 아부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이들은 삶의 중심이 없기 때문에 수시로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재테크 이야기만 하고 산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속물 사회 또는 물신주의 사회가 될 것이다.

 

반면에 자신의 꿈과 소신에 따라 사는 이들의 인생은 향기가 나고 멋이 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멋진 사회, 행복 사회가 될 것이다. 이제, 옆집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며, 바로 그 옆집 아줌마조차 진정한 자신의 삶을 되찾도록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교육혁명_ 강수돌

by 미스터신 2016. 3. 14. 08:04

 

아이에겐 최적의 학습환경과 학습 시기가 있다. 그 환경과 시기를 놓치면 오히려 더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적의 학습시기보다 최적의 학습환경이 더 중요하다. 부모와 함께하는 환경보다 더 나은 최적의 조건은 있을 수 없다.

 

한때 조기유학에 대한 찬반양론이 무성했던 적이 있었다. 조기유학을 찬성하는 부모의 대부분이 유학의 시기는 아이가 언어형성이 되기 전,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주장한다. 아이를 남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교육시키면 더 나은 삶의 고지를 점령하게 되리란 막연한 기대 때문에 아이를 서둘러 유학 보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강요된 학습환경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새로운 학습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이는 자신감을 상실한다. 어릴 때부터 자신감을 상실하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 실제로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가 아닌데 모자란 듯이 행동하는 등 여러 가지 정서 장애를 겪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은 국제전화로 어떻게 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냐고 상담을 해오기도 한다. 이들의 부모들 또한 아이 때문에 겪는 여러 가지 고통을 호소한다.

 

제대로 따라간다는 것은 남보다 특별히 잘한다는 뜻이 아니다. 남이 하는 것만큼 한다는 뜻이다. 언어가 다른 것은 접어두더라도 조기 유학에서 같이 공부하는 외국 아이는 자기 나라에서 자기 부모와 함게 생활하는 아이다. 이들은 심리적으로 안정된 아이들이다. 결코 같은 생활환경이라고 볼 수 없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간다 해도 사고 수준이 아직은 '피아제의 인지발달단계'에서 말하는 구체적 조작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부모가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구체적 조작기에는 가설적인 사고가 불가능하고 판단력이 정확하게 서지 않는다. 즉 보이는 것이 A라면 A밖에 모르고 그 외에 B나 C가 미치는 영향이나 가상의 경우를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가 사고의 논리성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머리에 무조건 주입하려고만 한다면, 그 아이는 한계를 크게 느끼게 되어 도중하차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는 태어나서 2년 동안은 자신이 타고난 반사적 신체능력을 습득하고, 이후 7살까지는 외부 환경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한다. 이 시기에 말로써 표현하는 방법을 습득하지만 구체적으로 유사성과 연관성을 추론해내는 것은 그 이후에나 가능하다. 조기유학을 통해 외국어를 마치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다른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언어학자들은 언어형성기를 대개 만 13 세 전후로 보고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아이가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유학을 보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이에겐 최적의 학습환경과 학습시기가 있다. 그 환경과 시기를 놓치면 오히려 더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적의 학습시기보다 최적의 학습환경이 더 중요하다. 부모와 함께하는 환경보다 더 나은 최적의 조건은 있을 수 없다.

 

부모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세계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한다. 조기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찾고 계발해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해내고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그러나 부모 없이는 올바른 인간관계를 설정하기 어려울뿐더러, 올바른 가족관계에 기초하지 않은 아이는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는 있어도 내면이 성숙된 인간이 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식을 잘 기르기로 소문난 부산의 장덕기내과의 장덕기 원장은 조기유학에서 실패한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장 원장의 아이들도 호주에서 조기유학을 했고 호주에 있는 동안 영어실력이 많이 늘었지만, 다시 시간을 되돌릴 기회를 준다면 아이들을 조기유학 보내지 않겠다고 말한다. 유학을 하고 돌아온 아이들이 모국어인 한국어를 제 또래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는 유학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고, 그보다 심각한 것은 아버지와 아이들과의 단절감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거의 모든 기러기 아빠들의 비애일 것이다. 아내가 아이들과 호주에 함께 머무는 동안 전화나 메신저, 이메일 등을 통해 함께 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아이들은 차츰 아버지를 잊어갔고 나중에는 찾지도 않았다 하니 아무리 아이가 지적인 인간의 조건을 훌륭히 갖추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005년 8월까지 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우지 마노르 대사의 부인 나오미 마노르 여사는 한국의 조기유학 붐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외국에 내보내기에 중학생은 너무 어리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조기유학은 물론 집을 떠나 공부하는 기숙학교도 거의 없다고 했다. 세계적 인재를 무수히 배출한 유대인들의 교육지침은 주로 탈무드와 구약성경을 토대로 하는데, 여기에는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자녀 교육의 의무를 분명히 부과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부모의 행동과 사고가 그만큼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부모의 그늘 아래 성장해야 아무리 세찬 비바람과 강한 폭풍우라도 견뎌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울 수 있다.

 

우리가 옷을 입는 동안 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하루를 따뜻하고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다_ 샐리 리스터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 박경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2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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