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예쁜 아이들 많아?", "말은 잘 들어?" 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보통은 "당연히 아이들은 예쁘지. 가끔은 아닐 때도 있지만!" 하며 웃어넘깁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아?" 라고 묻는 말은 약간의 선입견이 포함된 느낌이라 절대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저는 저 말에 절대 '아니!'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나머지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선행학습을 통해 성적만 우수한 학생들은 더욱 예쁘지 않습니다. 주입식 교육 또는 학원 공부에 한껏 취해 자신이 또래보다 앞서 있다는 착각에 빠진 아이를 데리고 수업하면 속된 말로 '가르칠 맛'이 안 납니다. 수업 내용은 이미 기계적으로 배워왔기 때문에 아이는 교사에게 집중하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쌓이다 보면 교사와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지요. 자신은 답을 알고 있다고 답을 툭툭 말하는 경우까지 있는데, 그렇게 수업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양반입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떤 아이를 좋아할까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아니고, 운동을 잘하는 아이도 아니고, 리더십이 좋은 아이도 아닙니다. 바로 '인사'를 잘하는 아이입니다. 물론 리더십이 좋고 운동도 잘하며 공부까지 잘한다면 너무 훌륭한 학생이지요. 하지만 그런 장점을 모두 갖고 있어도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으면 '땡!'입니다. 인사는 너무나도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생각보다 그 기본적인 것들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면, 아이들은 등교할 때 또는 하교할 때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이런 인사는 정말 기본이라서 대부분 잘 지키지요. 여기서 제가 강조하는 인사는 세심한 '감사'의 인사말, '미안함'의 인사말, '배려'의 인사말입니다. 수업을 할 때 활동 중에 수업자료를 나누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각 모둠의 나눔이들은 나와서 자료를 받아가세요~"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나와서 두 손으로 자료를 받고 그냥 자리로 돌아갑니다. 어떨 때는 그 누구도 "감사합니다!" 또는 '꾸벅' 하나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인사가 중요하다고 교육하는데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면 고민이 늘어납니다. '오늘(지금) 인사교육을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뫼비우스의 띠를 돌 듯이 수없이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틈이 날 때마다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한두 명을 제외한 아이들은 한 번 하고 잊어버립니다. 자료를 나누어줄 때마다 '어른에게 물건을 받을 때에는 양손으로 받고 감사를 표하는 거예요. 가벼운 목례도 좋습니다'라고 말하기는 참 어렵고 껄끄럽습니다. 그래서인지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아이는 기억에 콕 박힐 만큼 너무나 예뻐 보입니다.

 

'인사성'이란 단순히 인사를 얼마나 잘하는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사에 감사함을 표현하고, 필요할 때는 사과와 유감을 표하며, 자신의 주변을 보살피는 행동입니다. '인사와 진로가 도대체 무슨 관계야?'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인사는 민주시민으로서 기본 자질이고, 기본 자질은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줍니다. 인사가 누군가에겐 꿈을 이루는 데 윤활제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초등학교의 학교폭력 사태는 중, 고등학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흘러갑니다. 우선 초등 수준의 학교폭력은 아이들 사이의 사소한 장난이나 다툼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거나 또는 일대다 구도로  변화하는 순간, 다툼은 학교폭력 사안으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아이들 사이의 틀어진 감정이 부모에게 옮겨가고, 부모들 간에 감정이 상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소송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모가 법적 책임을 논하며 싸우고 있을 때 아이들끼리는 화해하고 잘 노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쉽게 화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되짚어 보면 초등학생의 학교폭력 사건은 대부분 단순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는 실수하기 마련이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충분히 사과할 법한 일이라서 서로 사과하고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지요. 물론 사건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건은 이렇게 쉽게 해결 가능한데, 아이들 사이에서 왜 해결되지 못했을까요?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사건 당시 양쪽이 서로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말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초등학교의 학교폭력 사건은 어느 정도 종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과의 말 한마디, 다시 말해 '인사' 한마디가 부족한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사는 단순히 "안녕하세요!"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에서 사소한 일에도 "고맙습니다"라고 감사를 표현하고,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전하며, 상대를 존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인사입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인사'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얽히고설킨 문제를 해결하듯 인사가 만능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인사 잘하는 아이는 친구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물론 사소한 다툼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평소에 인사를 잘하는 아이는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신뢰감이 높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실수해도 친구들이 너그럽게 받아주고 이해해 줍니다. 애초에 어떤 실수를 하거나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해도 다른 친구들이 그 학생을 믿고 지지해 줍니다. 잘못한 일이면 사과할 테니까, 또 좋은 일에는 예쁜 말을 해 주는 친구니까, 어느 쪽이든 믿고 지지해 주는 겁니다. 마치 우리 어른들이 사회성이 좋고 대인관계가 원만한 친구가 한 실수는 비교적 쉽게 넘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아이들의 세계도 어른들의 사회생활과 똑같습니다.

 

학교에서 교직원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교육, 대처교육 등의 연수를 실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근무하는 학교 외에 타 학교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례를 접하게 됩니다. 실제 학폭위가 열린 사례들을 확인해 보면 공통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끼리 서로 사과의 인사가 부족했던 것, 부모님끼리 연락하는 과정에서 서로 존중과 위로의 말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 그 두 가지로 사건이 더욱 확대되었다는 것이지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부모님은 물론 가해자의 부모님도 무척이나 속상해합니다. 하지만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사과의 인사, 존중의 말 한마디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학교폭력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합니다.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과 학교 등의 교육공동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러한 문화를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인사교육' 아닐까요? 학교폭력과 안전문제를 걱정하는 만큼 어른인 우리가 나서서 모범을 보이고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초등 진로교육이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만든다_ 이영균

by 미스터신 2021. 2. 8. 21:01

어떤 학생이 미래에 창의적인 인재가 될지, 어떤 분야에서 그러한 역량을 발휘하게 될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가상의 신화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존의 연구들은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 지식을 많이 습득하고, 그 지식을 활용하여 호기심을 해결해 보는 경험을 많이 쌓을 때 미래에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용어로 표현한다면 지식의 양과 질, 지식을 습득하는 기술,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 호기심과 의지 같은 자질들이 창의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식의 양을 늘리고 지식의 질을 높이며,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해 보는 기술을 익히고, 호기심 같은 개인적 자질을 키울 수 있는 학교 교육이 이루어져야 창의성이 길러진다.

 

어떤 학생이 무게 100kg의 역기를 들려고 한다. 그런데 그 학생은 지금 50kg밖에 들지 못한다. 자신의 현재 역량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100kg의 역기를 들고자 하는 마음이 곧 호기심과 의지라는 잠재력이다. 그런데 호기심만으로 100kg의 역기를 들 수는 없다. 역기를 들려면 근육의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을 쓸 줄 아는 기술도 필요하며, 꾸준한 연습과 훈련도 필요하다. 의지, 근육, 기술을 갖추면 누구나 100kg의 역기를 들 수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 그 학생이 100kg의 역기를 들어 올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여기서 역기를 들 수 있는 근육이 바로 지식이다.

 

기존의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면 새로운 지식을 만들지 못한다. 고등학생에게 지식이란 교과서에 한정된 지식만 의미하지 않는다. 교과서는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지식의 기본 골격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교과서에 나온 지식만 배워야 한다면 지식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할 수 없게 된다. 학생은 전수된 지식만이 아니라 학교 안팎에서 접하게 되는 모든 지식을 받아들이고,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학생이 더 많은 영역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학생의 사고를 가두는 울타리가 되면 창의성 교육은 작동하지 않는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사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정규 수업과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학생 스스로 지식을 채워 갈 수 있도록 자극하고 장려하자는 말이다. 교사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교사는 지식의 전수자이면서 동시에 학생 스스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환경을 마련해 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무엇'을 아는 것도 지식이고, 그 지식이 만들어진 '과정'과 '의미'를 아는 것도 지식이다. 수학 공식에 수치를 대입하여 답을 찾았다고 해서 그 공식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수학 공식이 어떤 원리와 개념 정의에 근거하며,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 공식이 고안되었고, 그 문제는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해결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지식이 만들어진 '과정'과 '의미'를 안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 지식의 내용만이 아니라 '과정'과 '의미'를 알고 있을 때 지식은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는 근육이 된다.

 

교과 학습량이 줄더라도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는 근력을 갖추고 있으면 '학력'은 오히려 높아진다. 과거의 학력은 '지식'만 평가했지만 지금은 지식을 넘어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 주체성, 다양성, 협동성 등이 포함된다. 이것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 곧 새로운 '학력'이다. 고등학교 교육의 일부분에서라도 학생들은 지식의 근육을 키우는 경험을 해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을 만드는 도구로서 지식은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넓이와 깊이로 측정되는 지식의 양

 

그릇이 넓고 깊을수록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양이 늘어나듯이 지식의 양은 넓이와 깊이로 표현된다. 넓이의 '최소 기준'은 교과서 지식이다. 학생이 교과서 지식조차 알지 못한다면 지식의 최소 넓이를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과도하게 세분된 과목 구분, 선택형 교과과정, 문이과 구분(교과에 의한 구분은 명목상 해소되었지만, 수능에 의한 구분은 여전히 유지되어 이수 교과에도 문이과 구분이 실재한다) 등이 교과지식의 최소 넓이를 확보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여러 과목을 통합하여 교과목의 수를 줄이고 모든 학생이 기본적으로 이수해야 할 교과의 폭을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학생은 스스로 지식을 넓혀야 한다. 교실은 지식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그런데 EBS 교재에 나오는 문제 풀이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면 교실은 지식의 확장을 막는 공간이 된다.

 

지식의 깊이란 암기-이해-적용-융합의 각 단계 가운데 어느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융합의 단계를 논외로 한다면, 지식의 깊이에는 세 단계가 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가 암기된 지식이다. 암기에 의한 학습은 동일한 문제가 동일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얻게 해 준다. 하지만 단순 암기된 지식은 다른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지식이 만들어진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리를 이해하여 얻은 지식은 암기된 지식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의 문제들에 한정된다.

 

하나의 원리를 알아서 열 가지 원리를 깨우치려면 알고 있는 하나의 원리를 다른 영역에 적용해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 두 문제가 같은 원리에 의해서 풀릴 수 있는지, 풀리지 않는다면 원리를 어떻게 바꾸어 적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새로운 원리가 필요한지 경험해 보는 훈련이 영역 전이적 통찰력을 키우는 학습이다.

 

영역 전이적 통찰력이란 한 영역에서 얻은 지식을 그와는 맥락이 다른 영역에 적용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적용 훈련을 통해 얻은 지식은 훨씬 더 넓고 깊은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게 해준다. 주어진 규칙이나 틀에 맞춰진 기계적 사고가 아니라, 다각도의 접근을 통해 문제를 새롭게 규정할 때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의 목적은 무엇인지, 현재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중심 개념이 무엇인지,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 활용되는 지식은 무엇이고 어떤 지식이 더 필요한지, 핵심 주장은 무엇인지, 행간에 숨어 있는 함축이 무엇인지, 생략된 전제가 무엇인지, 관점이 무엇인지, 맥락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창의적 지식을 만들어 내는 생각이 도구다.

 

하지만 대개 고등학교 교육은 암기와 이해에 머문다. 원리 이해가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단순한 원리 이해만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 목욕탕 물이 넘치는 것을 본 사람이 아르키메데스뿐일까.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본 사람도 뉴턴만이 아니고, 주전자에서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장면을 와트만 본 게 아니다. 교과 지식의 이해를 넘어서 교과 지식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고 관찰하는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주도적인 학습 경험이 만드는 지식의 질

 

암기-이해-적용의 단계로 지식이 깊어지는 과정을 학생 스스로 주도할 때 지식의 질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정규 교과 수업에서 학생이 주도적인 학습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교실 수업이 바뀌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학생 스스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영역은 대개 독서와 탐구 활동이다. 하지만 학생에서 읽으라는 책을 읽고 학교에서 준비한 탐구 활동 프로그램에 수동적으로 참여하여 얻은 지식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리 유용하지 않다. 독서와 탐구 활동은 뭔가를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지식을 알아가는 과정도 학생이 주도적으로 수행하여 얻어야 창의력을 높이는 근육으로 발전한다. 그렇게 하려면 학교는 학생이 학습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모든 수업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수업은 그러해야 한다. 지식의 넓이와 깊이를 학생 스스로 갖추면 지식의 질이 높아지고, 지식을 습득하는 기술도 함께 따라온다. 그래서 지식을 넣어 주는 수업보다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기술을 길러 주는 수업이 학교에 필요하다.

 

지식을 습득하는 몇 가지 기술

 

우리는 수업 방식을 두고 이런 비유를 들곤 한다.

 

A. 교사가 학생의 식탁 위에 생선 요리를 차려 주고 먹으라고 하는 교육

B. 교사가 물고기를 잡은 후 학생에게 요리법을 가르쳐 주고 학생이 직접 요리하여 먹는 교육

C. 교사가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학생은 스스로 물고기를 잡아서 요리하여 먹는 교육

D. 교사는 여러 가지 음식의 재료를 알려 주고, 학생은 스스로 원하는 재료를 구해서 요리해 먹는 교육

 

A 방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교사 주도형 학습이고, D 방식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교육이다. D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는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일부 수업에서만 할 수 있는 방식이다. A 방식은 나쁘고 B,C,D 방식으로 갈수록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네 가지 방식은 학생의 수준과 교육 목표에 따라서 혼합적으로 조합할 수 있다. 모든 학생이 배타적으로 하나의 방식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창의성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창의력 중심의 교육을 위해서 A 방식 위주로 진행되던 기존 수업의 일부라도 B,C,D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지식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는 심화된다. 지식을 얻는 기술은 새로운 교수, 학습 방법이 필요하다. 학생이 다양한 수업 방식을 경험하고 스스로 지식을 채워 가는 훈련을 한다면 창의성 교육은 실현될 수 있다. 교실 수업과 관련하여 교수법 권위자인 조벽 교수는 <인재 혁명>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1)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탐색해 보고 그것에 대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시간을 주라. 학생들이 어떤 과제에 대해 생산적으로 몰입해 있고 그 과제를 끝마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을 때는 간섭하지 말라.

2)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흥분시키는 교실환경을 조성하라.

3) 흥미롭고 유용한 교수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하라.

4) 학생들이 실수가 허용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독려된다고 느끼는 교실 분위기를 조성하라. 적절한 정도의 소음과 어수선함, 자율이 허용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하며, 학생에게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기술은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창의성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학교 수업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과 방법이 바뀌어야 하며, 학교가 변화하려면 대학 입시가 창의성 중심으로 달라져야 한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창의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평가해야 고등학교도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대학 입시가 먼저 변화되어야 초, 중, 고등학교에서 창의성 교육이 이루어지며, 호기심, 의지, 협력, 공감과 같은 인성적 특성도 키워진다.

 

창의혁명_ 서울대학교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

 

by 미스터신 2020. 12. 12. 11:48

요즘 공부가 잘되는 것 같다. 문제집을 풀어도 좀처럼 틀리는 경우가 없고, 자습 시간에 공부하는 게 힘들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문제집을 펼칠 수 있고, 오랜 시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일 수 있다. 아, 드디어 나도 상위권으로 진입한 걸까? 성적표에 좋은 등급이 찍히길 기대하며 시험 날만 기다린다. 그리고 얼마 후 시험을 치르고 받아 본 성적표. 이럴 수가. 점수가 그대로다. 아니, 오히려 등수가 떨어졌다. 난 분명 열심히 했고 문제집도 잘 푸는데 왜 이러지?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공부를 잘한다는 선배한테 물어봤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

 

"네가 아는 것만 공부해서 그래."

 

우리는 틀린 문제에서 더 많이 배운다

 

재차 강조하지만 공부는 힘들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주 잠깐이지만 공부가 할 만하고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문제를 맞힐 때' 이다.

 

문제집을 푸는 건 힘들어도 문제집을 채점할 때는 비교적 편한 마음이 든다. 문제를 대부분 맞혔다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공부할 의욕도 샘솟는다. 특히 수학 같은 과목에서 이런 경향이 유독 심하다. 나 역시 고3 때 문제집을 풀 때는 동그라미를 치고 싶은 마음에 한 문제 한 문제에 온 힘을 다 했다. 반면에 문제집을 풀었는데 동그라미 개수가 적으면 기분이 나빠질뿐더러 공부 의욕도 뚝뚝 떨어진다. 틀린 문제는 다시 풀어 봐야 하고, 오답 노트도 써야 한다. 기껏 열심히 문제를 풀었는데 할 일이 더 늘어나 버렸으니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밖에.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생긴다. 문제집을 열심히 풀었는데 틀린 문제가 많으면 공부 의욕도 떨어지고 기분이 나빠지니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맞히는 문제'만 풀기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문제집을 비교해 보자.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열 문제 중 네 문제를 틀렸다. 본인 성적에 맞춰 기본개념 수준의 문제집을 택했기에 다행히 반 이상은 맞힐 수 있었다. 어려운 문제도 몇 개 있고 계산 실수 등으로 아쉽게 틀린 문제도 있어서 네 문제를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공부 잘하는 학생은 열 문제 중 몇 문제를 틀렸을까? 공부를 잘하니까 다 맞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사람이니까 실수도 가끔 할 테니 한두 문제? 아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똑같이 네 문제를 틀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네 문제를 틀렸어야만 한다.

 

우리는 정답을 많이 맞히는 것이 공부를 올바르게 하는 징표라고 착각한다. 물론 어떤 문제를 엄청 오랜 시간 끙끙대면서 맞혔다면 그 문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맞힌 문제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문제를 맞혔다는 것은 이미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잘 끄집어내는 훈련을 했다는 뜻이다. 정말 제대로 된 '배움'은 틀린 문제에서 나온다. 내가 아는 개념을 내가 아는 방식으로 해석해서 '맞힌 문제'가 아닌, 내가 아는 개념을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해석해서 '틀린 문제'로부터 말이다.

 

아는 것만 공부하지 마라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잘 모른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문제를 틀리는 것이 힘 빠지는 일이기도 하고, 그러잖아도 힘든 공부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난도라서 오답이 자주 나오는 문제집은 머리가 아프니까 피하고 비교적 거의 다 맞힐 수 있는 문제집을 선택한다. 그러다가 성적이 안 오른다 싶으면 더 어려운 새로운 문제집을 푸는 것이 아니라 이미 푼 문제집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푼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큰 폭의 성적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아는 것만 반복해서 공부하기 때문이다.

 

내 수학 실력은 고등학교 3학년 때가 전성기였던 것 같다. 수학을 가장 잘 풀던 시절인 고3 때도 문제집을 풀면 문제의 절반 정도를 틀렸다. 모의고사에서는 거의 100점을 맞는 수준이었지만 왜 문제집을 풀면 절반 정도를 틀렸을까? 내가 선택한 문제집은 21번, 30번과 같은 킬러 문항만을 모아 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형편없는 정답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너무 어려운 문제만 모아 놓아서 문제집을 풀 때마다 항상 끙끙대며 고생했다. 2시간 동안 한 문제를 못 푼 적도 많았다. 고3 때만 놓고 보면 수학 공부가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이렇게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수학을 잘한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이미 충분히 아는 문제를 점검하고, 이미 아는 개념을 복습하고, 별로 어렵지도 않은 문제집을 풀며 '동그라미 중독'에 걸려 있었다면, 내 수능 수학 성적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쉬운 문제에 집착하는 현상은 잠이 많아서 공부를 안 하거나 게임 혹은 다른 취미에 빠져 공부를 놓아 버리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망친다. 후자의 경우에는 뭔가 문제인지 잘 알고 있다. 어딘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쉬운 문제에 집착할 때는 그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더 무서운 점은 서서히 공부가 망해 가는 것을 눈치채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항상 자기를 성찰하며 되새기자.

 

'아는 것만 공부하지 마라.'

 

공부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_ 송영준

 

 

by 미스터신 2020. 12. 5. 12:59

얼마 전 인지심리학자 키스 스타노비치는 읽기에 관한 연구에서 단어 지식의 발달에 관해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유년 시절 어휘가 풍부했던 아이가 나중에도 어휘가 풍부해지는 반면 어휘가 빈곤했던 아이는 자라서도 어휘가 빈곤해진다면서 이런 현상에 '마태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신약성서의 복음서 이름에서 따온 말이지요. 배경 지식에 관한 마태-에머슨 효과라는 것도 있습니다. 즉 폭넓게 제대로 책을 읽은 사람은 읽기에 적용할 자원이 많아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적용할 자원이 적어지면서 추론과 연역, 비유적 사고의 기초가 부실해지고 결국에는 가짜 뉴스든 날조 뉴스든 불확실한 정보의 희생물로 전락하기 쉽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청소년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경 지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깊이 읽기의 나머지 과정이 작동하는 빈도도 줄어들어 이미 알고 있는 것 바깥으로는 나가지 않게 되지요. 지식이 진화하려면 계속 배경 지식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실 정보는 증명될 수도 없고 확증될 수도 없는 외부 원천에서 옵니다. 이런 정보를 우리가 어떻게 분석하고 활용할 것인지, 새로운 정보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계속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가 우리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배경 지식과 분석적 사고를 통한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질이나 우선순위가 정확한지, 혹시 외부의 동기와 선입견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정보를 받아들이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테너는 "뛰어난 기술을 생산해낸 지성이 되레 그 기술로부터 위협받는다면 수치스러운 일" 이라고 썼지요. 인간이 그런 덫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최근 컨퍼런스에서 앨버타 대학교 도서관의 제럴드 비즐리 관장은 디지털 전환이 책의 운명에 미칠 영향에 관해 이렇게 말했지요. "현재 상황은 해결될 수 없습니다. 해결될 때까지 우리는 '책의 특성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독자의 특성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독자의 특성은 독자가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끝이 납니다.

 

루이 파스퇴르는 획기적인 과학 연구에 관한 이런 말을 남겼지요. "행운은 준비된 정신에만 찾아온다." 이 우아한 발언은 깊이 읽는 뇌에서 배경 지식의 역할을 설명하는 말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것은 준비된 정신을 어떻게 읽기에 적용하고, 우리가 구축하는 정보를 어떻게 분석적인 기술로 분석하며, 그렇게 걸러진 생각들을 어떻게 완전히 새로운 생각과 통찰의 재료로 사용하느냐의 주제로 논의를 이어가기 위한 적절한 연결부라고 하겠습니다.

 

다음 논의로 넘어가기 전에 과학소설 작가인 에일린 건이 남긴 '아주 짧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녀의 여섯 단어짜리 소설은 얼핏 우주여행에 관한 것으로 보이는데,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분의 STEM 세포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마태 효과'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다. 아내인 사회학자 해리엇 주커먼과 함께 고안했다고 한다. 마태복음 25장 29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일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뜻하는 말로, 사회학계에서 연구자의 명성에 따라 지원도 격차도 벌어지는 것을 지칭했는데 그 후 다른 연구 분야에서도 쓰기 시작했다.

 

* STEM은 21세기 융합교육의 주요 과목인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의 영문 약자이면서, stem cell은 만능 세포인 줄기세포를 뜻한다.

 

다시, 책으로_ 매리언 울프

by 미스터신 2020. 11. 22. 11:49

처음에 태어났을 때 아이는 이 세상에서 '자기'와 '자기가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없다. 아이가 '자기'라는 감각을 깨닫기까지는 몇 개월이나 걸린다.

 

조금 자란 아이가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이며 노는 것은 곧 '자기'라는 것을 발견한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놀곤 한다.

 

처음에는 희미했던 세계가 다양한 지적 자극을 통해 점점 또렷하게 그 모습을 아이에게 드러낸다. 유명한 교육학자인 프뢰벨의 말처럼 아이들은 보고 듣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더 보고 듣고 싶어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아이의 지능은 부모가 생애 초기에 얼마나 풍부한 지적 자극을 주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물론 유전이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유전은 아이 지능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결정할 뿐이다. 아이의 지능이 상한선과 하한선 중 어느 위치에 존재하느냐는 72개월 이내에 부모가 만들어 주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는 부모의 유전적인 요소가 매우 우수해서 지능의 하한선은 100, 상한선은 200으로 태어날 수 있고, 어떤 아이는 그보다 조금 떨어져서 지능의 하한선은 80, 상한선은 180으로 태어날 수 있다.

 

유전적으로 뛰어난 아이를 낳은 부모가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초기 환경을 잘 이해하지 못해 풍부한 지적 자극을 주지 못했다고 하자, 그러면 아이의 최대 지능은 그 아이의 하한선인 100에 머무르고 만다.

 

반면 유전적으로는 조금 떨어지지만 초기 환경을 잘 이애한 부모는 부지런히 아이에게 지적 자극을 줌으로써, 그 아이가 발전할 수 있는 최대 능력인 지능이 180인 아이로 키울 수 있다.

 

즉 부모의 유전보다는 부모가 사랑과 배려로 아이를 키우면서 섬세하게 지적 자극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아이에게 잠재된 최대 지능이 천재의 지능이라 할지라도 부모에게서 풍부한 지적 자극을 받지 못하면 아이는 평균 이하의 지능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풍부한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난감은 부모이다. 부모가 아이를 쳐다보는 것, 아이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 자연에 나가 신나게 자연을 경험시켜 주는 것, 아이를 칭찬해 주고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것, 열심히 책을 읽어 주는 것 등은 모두가 아이의 오감을 자극한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순수해야 한다. 먼저 아이의 눈빛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것을 상호 주시라 한다. 부모가 아이를 즐겁게 바라보는 것은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있어서는 다른 사람과 첫 번째로 맺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것이 발전되어 아이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면 상대를 배려하고 주의해야 한다는 협력의 기본을 배우게 된다.

 

엄마가 종종 전화 통화나 요리, 청소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아이와의 관계를 중단시키는 일이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 한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엄마를 볼 때 엄마도 자기를 바라봐 주기를 원한다.

 

생후 4~6개월 사이에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아이가 보고 있는 것을 부모도 함께 바라보는 공통 인식이다. 아이가 흥분된 소리나 몸짓으로 장난감을 가리킬 때, 아이가 기대한 대로 부모가 아이의 시선을 좇아 아이의 신호나 몸짓을 정확하게 읽어 주면 아이는 여기서 협력을 배운다.

 

그러나 이 작업을 실패하면 아이가 아장아장 걷는 시기가 되었을 때, 다른 아이들과 협력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장난감을 나누어 쓰지도 않고 혼자서 독차지하거나,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 아이들을 밀치는 등 독선적인 아이가 된다. 뿐만 아니라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는 아이로 성장할 수도 있다.

 

배려 깊은 사랑이 행복한 영재를 만든다_ 푸름아빠 최희수

by 미스터신 2020. 7. 25. 10:42

누구나 살면서 무수한 불행과 실패의 순간을 마주합니다.

그중에는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너무 큰 불행도 있어요.

 

저도 1997년 외환 위기 때 심각한 순간을 경험했어요.

결혼 7년 만에 겨우 장만한 집도 잃고,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지방으로 내려가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했어요.

 

그때 저는 사람이 돈 때문에 궁지에 몰리면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여기서 핸들을 꺾어서 중앙선을 침범하면

간단하게 죽을 수 있겠구나.'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만큼 뼈아프게 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그때 제가 뭘 했는지 아세요?

이 악물고 책을 읽었어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수없이 고민하며 책을 썼어요.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저는 다시 강단에 설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람은 불행한 순간에 하나의 운이 풀리기 때문이에요.

가장 최고치로 몰입할 수 있는 힘이요.

 

불행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내 불행이 전부인 것 같고, 슬픔과 좌절에 쉽게 빠져요.

이 말은 곧 몰입하기 쉬운 상태라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불행할 때 책을 읽어야 해요.

 

힘들 때 책 읽으라고 하면 미쳤냐는 소리를 듣겠죠.

"이 상황에 책이 눈에 들어오냐?"

아마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사람은 불행할 때 가장 몰입이 잘돼요.

책 한 권을 읽어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요.

 

예전 같으면 다른 사람의 아픈 이야기를

미담 정도로 치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불행에 빠져 있을 때는 감정 이입이 되면서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펑펑 눈물을 쏟아내요.

어떤 책을 읽어도 다 내 이야기 같고,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라며 아이디어가 막 샘솟아요.

 

불행 때문에 예민해진 내 마음이 공명하는 거예요.

이미 바닥을 쳤기 때문에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지푸라기를 잡는 거예요.

책 속에는 잡고 싶은 지푸라기가 너무 많아서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신선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책 속에서 평소의 나였다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새로운 길을 만나요.

그게 너무 신나서 '내일은 무슨 책을 읽을까' 하며

열심히 책을 읽어요.

그렇게 내 인생이 불행의 공간에서

책 읽는 공간으로 장소를 옮겨요.

그러다 문득 '나 잘 살아내고 있구나' 희망을 봐요.

그렇게 서서히 불행의 시간을 빠져나오고,

책을 통해 얻은 나 자신에 대한 희망을 지렛대 삼아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다짐해요.

그렇게 순차적으로 불행의 시간을 견뎌내고 빠져나와서

결국 털어내요.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슬프고 외롭고 힘들고 울고 싶은 날에는

반드시 책을 읽으라고요.

지금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돼도

내 인생이 불행의 수렁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면

책을 꺼내 읽으세요.

당신을 다시 일상으로 건져낼 동아줄이 될 거예요.

 

MKTV 김미경TV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불행은 잠시 당신을 스쳤을 뿐이에요."

 

김미경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불행이 나한테 주는 선물이 있을까? 모든 불행은 방향을 두 개 갖고 온다. 하나는 이것 때문에 잘못될 방향. 하나는 이것 때문에 도약할 방향.

오늘부터 나는 나의 불행했던 모든 과거와 작별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불행 대신 감사로 가득 채울 것이다. 그렇게 감사하다 보면 '불행이라는 녀석'이 내 마음을 다시는 흔들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관리를 잘해야겠다.

'선실아, 불행은 말이야. 잠시 너를 스쳤을 뿐이다. 이제 날개를 달고 다시 도약하면 내 삶은 더욱 위대해질 것이다.

'최초 고백! 미경 언니가 삶을 놓아버릴 뻔했던 서른넷 가장 힘들었던 순간'

이라는 영상이 내게 힘이 되었듯이 훗날의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타인에게 힘을 주려면 스스로를 성장시켜야 한다. 열심히 성장해서 내년에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메신저가 되고 싶다. - 최선실 님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_ 김미경

by 미스터신 2020. 7. 11. 06:47

아파트에만 조망권이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람의 생각에도 조망권이 있어요.

다른 사람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을 더 높게 멀리 보려면

생각의 조망권이 높아야 합니다.

 

특히 엄마의 생각 조망권이 정말 중요해요.

엄마의 선택이 곧 자녀의 인생이 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거든요.

 

아들이 자퇴를 선택했을 때,

당시 제가 물리학이며 양자 역학이며 주역 등에 심취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아들의 사건을 엄마의 관점이 아니라

우주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거든요.

 

'고작 16살에 평생 하고 싶은 것을 알아내다니,

나중에 엄청 잘되려고 지금 학교를 그만두는 거구나.'

마치 남의 집 아들이 자퇴한 것처럼

내 아들의 사건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바라보게 된 거예요.

 

반면 우리 남편은 엄청 겁을 먹었어요.

기존의 사회적 잣대로만 아들의 자퇴를 바라보니까

엄청난 불행이라고 생각할 수박에요.

 

그래서 부단히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해요.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수록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의 현상을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남의 생각과 남의 시선과 남의 철학을 빌려서

깨닫는 연습을 해야

더 높은 곳에서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어요.

이게 바로 생각의 조망권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생각 조망권이 낮은 사람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요.

'착하게 살았는데 왜 내가 이런 큰 병에 걸렸지?'

'나쁜 친구들 꾐에 넘어가서 잠깐 방황하는 걸 거야.'

이렇게 눈앞의 현실조차도 엉뚱하게 해석해버려요.

자신의 생각과 관점이 전부인 사람은

자신의 이해를 벗어나는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물귀신처럼 주변 사람들을

자신이 있는 지하까지 끌어내려요.

'엄마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감히 나를 배신해?'

자신의 꿈을 좇아 자퇴를 선택한 아들에게

온갖 죄책감을 강요하면서

기어이 꿈을 포기하게 만들어요.

엄마의 생각 조망권이 아들의 인생까지 지하로 끌어내리는 거죠.

 

생각 조망권까지 포함해서 엄마예요.

좋은 어른, 좋은 엄마로 살고 싶다면

생각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돼요.

자녀의 생각 조망권을 지상 15층으로 끌어올리느냐,

아니면 지하 5층으로 끌고 내려가느냐,

이 차이가 진짜 부모의 실력입니다.

 

MKTV 김미경TV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지적인 힘이 부족하면 스스로의 불행을 크게 해석하게 돼요. 비참한 오늘을 살지 않을 방법은 미래를 사는 거예요. 그러니 공부하세요. 모든 메시지는 해석하기 나름이에요. 꺾인 나뭇가지는 반드시 다른 방향을 가리키죠. 책을 읽으면 다른 문을 열고 나가서 다른 곳을 보게 되고 층이 다른 조망권이 생겨요. 인생을 바라보는 조망권이 달라지면 인생을 다르게 해석하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특히 나를 대하는 방법이 달라져서 늘 나를 위한 좋은 선택을 하게 돼요. 조망권이 달라지면 사랑하는 내 아이들을 위한 좋은 선택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남이 아닌 나에게서 찾다 보니 스트레스가 줄고 불평불만이 줄었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며 자존감이 높아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도 예전과는 다른 각오로 임하게 됐다. 더욱 적극적으로 더욱 열정적으로 마지막으로 평생 책을 읽고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성장할 나의 모습이 설레고 너무 기대가 된다.  - 박시연 님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_ 김미경

by 미스터신 2020. 7. 3. 11:49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꾸고 있나요?

그렇다면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과 '연결' 되십시오.

다른 생각,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과 나를 연결시켜야

다른 차원의 삶으로 건너갈 수 있어요.

 

제가 피아노 학원 선생님을 하던 시절,

하루 종일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면

허무한 감정이 밀려들곤 했어요.

다른 사람들과 좋은 책도 읽고 싶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토론도 해보고 싶은데

제 주변에는 그걸 같이할 만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학부모들, 동네 사람들,

매일 마주치는 그 사람들은 매일 같은 이야기만 했으니까요.

 

그러다 우연히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세미나를 알게 됐고,

수강료가 꽤나 비쌌지만 돈을 열심히 모아서 수업을 들었어요.

과장을 좀 섞어 말하자면,

그 세미나는 마치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연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나보다 5단계쯤 고수인 사람들과 마주 보고 앉아서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는데,

저도 모르게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고급 단어가 막 나오는 거예요.

각자 읽은 책 내용을 발표했는데,

저는 제가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잘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내 안에 숨은 재능을 밖으로 꺼내려면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돼야 하는 거구나.

그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의 재능을 꺼내는

연결의 파이프였구나.

앞으로 어떤 사람들과 연결되느냐에 따라

내 안의 무수한 재능이 밖으로 꺼내지겠구나.

 

책을 읽어서 배우는 건 절반에 불과해요.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배워야 비로소

나머지 절반이 채워집니다.

책에는 없는 살아 있는 배움은

사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어요.

 

지금과 다른 삶을 원한다면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연결되는 것에 게을러지지 마세요.

그 연결 속에 새로운 시작과 성공이 숨어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_ 김미경

by 미스터신 2020. 6. 25. 11:10

"꿈이 뭐예요?"

"하고 싶은 게 뭔가요?"

 

혹시 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겠다면

일단 책을 읽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는 건

내 머릿속에 생각의 재료가 없다는 뜻이에요.

그럴 때는 일단 채워야 합니다.

생각의 재료를 채우는 데 책만큼 좋은 게 없거든요.

 

일단 책을 읽다 보면 힌트가 하나둘씩 생길 겁니다.

그리고 생각이 발동을 걸기 시작하겠죠.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의 재료들이

서로 다양한 조합을 만들고 해체하는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아낼 거예요.

 

뭔가 배우고 싶지만 시간과 돈이 없다고요?

그럼 책을 읽으세요.

 

책을 읽다 보면 수많은 힌트를 만나게 되는데,

그중 상당수는 새로운 나를 만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아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타인에게 공감하는 나를 만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깨달음에 깊이 몰두하며

평소에는 생각조차 안 해본 일들을 고민하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만의 새로운 도전을 꿈꾸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곧 나를 만난다는 겁니다.

일상에서는 절대 만나지 못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나, 모험을 즐기는 나를

책을 읽으며 수없이 만나는 거죠.

그 만남이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고,

때로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혹시 요즘 외롭거나 자존감이 낮아진 것 같나요?

그렇다면 책을 읽어보세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인지 헷갈릴 때,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를 때,

책을 읽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까짓 책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

혹시 이런 생각이 들어도 질문하지 말고

그냥 무조건 책을 읽어보세요.

 

책을 읽는다는 건 나를 읽는다는 거예요.

나의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살다가 멈춘 사람이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든,

책을 읽다 보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발견하게 될 거예요.

 

때로는 책이 나를 살리는 귀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_ 김미경

by 미스터신 2020. 6. 18. 11:09

경제 마인드 가져야

 

'어릴 때 아이가 돈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아이들이 깊이 생각하게 하면 '경제 마인드'가 생긴다. 아이가 커서 생활현장에서 합리적인 결정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경제교육을 해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상당히 약한 면을 보인다. 그건 왜 그럴까. 우리나라는 정서적으로 상업적인 것을 폄하하고 감춰 왔다.

 

'커서 장사를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지 않은가. 부모들이 '내 자녀는 돈을 모르고 자라야 순수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돈에 대한 관심을 철저히 배제하는 가정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합리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성인이 되었을 때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1000원, 2000원짜리 주식을 사는 사람들

 

펀드매니저로 일할 때부터 수많은 주식투자가들을 접해 봤는데 대부분의 투자가들은 주식을 살 때 싼 것을 선택한다.

 

'가치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1000원, 2000원짜리만 산다. 우리나라 주식투자가 중 대부분은 평생 한 주에 10만원 이상 하는 주식을 사본 경험이 없다. 가치지향적이 아니라 단순비교를 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장사가 잘 되는 허름한 라면집과 겉만 번드르르하고 실속 없는 피자집이 있다고 했을 때, 어떤 집을 선택해야 할까? 1000억짜리 건물의 연간 임대수익이 10억 원이고, 10억 원짜리 건물의 연간 임대수익이 1억 원이라면 어떤 건물을 사야 하겠는가?

 

당연히 허름한 라면집과 10억 원짜리 건물을 사야 한다. 하지만 피자집과 1000억 원짜리 건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녀가 올바른 경제 마인드를 갖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길 원한다면, 어릴 때부터 돈은 필요한 것이고 소중한 것임을 교육해야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돈을 버는 것은 자본주의에 기여하는 일이다. 돈을 벌면 자본주의의 승차요금인 세금을 낼 수 있게 된다. 돈을 못 버는 사람은 승차요금을 낼 수 없다. 무임승차를 하고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금 내는 행위는 애국하는 일이다'

 

자녀들과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나눠야 한다. 자본주의 꽃이라는 주식, 채권, 재테크 등을 통해 돈 버는 것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생활 속에서 경제를 얘기해야

 

나는 세 자녀(고1, 중2, 초2)를 두고 있다. 자녀들에게 일부러 시간을 내서 경제교육을 하지 않는다. 평상시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자녀들에게 경제관념을 심어 준다.

 

자녀들과 자동차에 관해 이런 얘기를 나눴다.

'외관상 디자인이 똑같은데 A차는 1000만 원, B차는 3000만 원이면 어떤 자동차를 사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디자인이 똑같다면 1000만 원짜리 A차를 사겠다'고 말했다.

 

'B차가 A차보다 다섯 배 오래 쓸 수 있고, A차는 휘발유가 더 많이 든다면 어떤 걸 살래?'

 

이런 전제들을 하나씩 제시하면 아이들은 이모저모 따져 보게 된다. 이런 질문은 가치지향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조금씩 주식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가 이해를 못 해도 주식과 관련된 얘기를 들려주다 보면 흥미를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인터넷과 게임에 관심이 많으니 그 얘기부터 시작했다.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니? 게임은 많이 하니?'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아빠는 게임도 안 하면서 왜 게임에 대해서 물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얘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은 '많이 쓰면 많이 팔린다는 것이고, 많이 팔리면 회사가 좋아지고, 회사가 좋아지면 주가가 오르겠구나. 그래서 아빠가 물어보는구나'라는 걸 저절로 깨닫게 된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한두 번 이해하고 그치면 학습효과가 떨어지니 가끔 되풀이하여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일부러 얘기를 꺼내는 것보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유도하면 아이들이 관심을 가진다.

 

나는 아이들과 슈퍼마켓에 가서 요구르트를 고를 때면 일부러 아이에게 '판매원에게 가서 어떤 게 잘 팔리는지 물어보고 오라'고 시킨다. 아이가 '왜 물어봐요?'라고 하면 '요구르트가 많이 팔리면 그 회사가 좋아질 수도 있잖아. 주가가 오를 수 있잖아'라고 말해 준다. 그러면 아이는 단순히 요구르트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많이 팔리는 물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라면을 먹을 때도 '무슨 라면이야?'라고 물어보는 게 경제공부다. '신라면'이라고 답하면 '농심에서 만든 거구나'라고 말해 브랜드를 익히게 해주는 것이 좋다. 라면 하나만 갖고도 자녀와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이들이 '앞으로 이 라면이 계속 잘 팔릴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라면을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사물에 대해 미래까지 생각하게 되는 습관을 기를 수 있게 된다.

 

경제에 관심을 가지면 아이들의 사고가 복합적으로 변해

 

몇 년 전 삐삐와 시티폰이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휴대전화가 나오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얘기와 연계하면 아이들이 물건을 볼 때 앞으로 계속될 제품인지 아닌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했을 때도 '검색광고가 앞으로 5년 후에도 계속될까? 지금은 돈을 벌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될까?'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몇 년 전 mp3와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이용할지, 아니면 없어질지에 대한 얘기를 먼저 나누었는데,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아이들은 'mp3와 디카가 아주 편리하고 쓸모가 있어서 계속 팔릴 것 같다'고 얘기했다.

 

디카 하나를 갖고도 여러 가지 판단을 할 수 있다. 단순히 디카를 사야겠다는 생각에서부터 디카 사업을 할까, 디카 관련 주식을 살까 등. 디카 얘기를 하다 보면 필름 가게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대화를 나눌 때, 아이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물건을 화제로 삼는 게 좋다. 아이들에게 어느 회사의 휴대전화와 디카를 사용하는지 물어봤더니 휴대전화는 삼성전자의 애니콜, 디카는 롯데 캐논을 많이 쓴다는 대답이 나왔다. 디카는 진입의 장벽을 설명하기 좋은 제품이다.

 

'아빠는 삼성전자 주식을 사야겠다. 애니콜이 많이 팔리는 데다 디카 속에 플래시 메모리가 많이 들어 있으니까 삼성전자가 돈을 벌겠네. 디카가 인기 있으니까 많은 회사들이 만들잖아. 디카를 사는 사람은 많아도 파는 회사가 많으면 경쟁만 치열해지지. 그러면 주가는 안 올라. 디카 회사가 너무 많으니 디카 회사보다는 플래시 메모리를 만드는 삼성전자 주식을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휴대전화를 놓고 배터리 제조회사 얘기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얘기를 확대해 나가면 아이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건만이 아닌, 부품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게 확대되면 어떤 현상에 대한 이면까지도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경제교육에 어머니가 나서야

 

물건뿐만 아니라 영화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사람들이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많이 본다는데 영화를 제작한 회사만이 아니라 배급하는 회사도 돈을 번다. 무엇을 만드는 회사만 생각하지 말고 판매하는 회사도 생각해 봐'

 

아이들은 영화배급사가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했다. 아이들과 다양한 대화를 하며 세상에 대한 식견을 넓혀 줄 수 있다. 경기도 용인에 살 때 사방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속속 들어서는 아파트를 보면서도 아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면 어떤 회사가 좋을까?'

아이들은 '아파트 회사가 좋겠네요'라고 말하더니 곧이어 '철근, 시멘트, 페인트 회사도 좋아지겠네요'라는 데까지 생각을 확대했다.

 

아파트 하나만 놓고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길이 막히겠네'로 끝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멘트, 철근, 페인트가 잘 팔리겠다'로 연결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면 '아파트를 다 지으면 시멘트는 더 이상 안 팔리지만 도시가스는 계속 쓰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경제는 하나의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어릴 때부터 삶 속에서 느끼고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교육은 아이들과 자주 접하는 어머니들이 담당해야 한다. 자녀들과 대화하는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경제 얘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주식투자가 피터 린치는 늘 부인을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부인이 슈퍼마켓에 다녀와서 무슨 물건이 많이 팔린다는 이야기를 해 주면 피터 린치는 그 주식을 샀다고 한다.

 

회사의 회장은 슈퍼마켓에 잘 가지 않는다. 슈퍼마켓에 매일 가는 일반 직원들이 남의 제품과 자기 회사의 제품을 밑바닥부터 알고 있다. 의사결정 통로만 원활하다면 회장은 직원들에게서 정보를 듣게 되고, 그런 직원을 통해서 좋은 회사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삶 속에서 누가 좀더 관심 있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주식투자가나 사업가뿐만 아니라 유능한 직원, 유능한 국민을 만드는 차원에서도 경제 교육은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우리 국민이 경제적인 마인드로 무장되면 유태인처럼 강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도외시되는 국가는 사상누각이 된다. 돈을 벌어도 잘못된 결정, 불합리한 투자로 잃어버릴 수 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부모로부터 경제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요즘도 자녀에게 경제 얘기를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교육해 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금융입국 위해 금융고, 경제고 세워야

 

우리나라에는 현재 과학고등학교가 많은데 과학입국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금융입국이라는 것을 당국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이제 금융고, 경제고를 세워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영재교육을 시켜야 한다. 금융입국을 위해 금융교육 시스템이 탄생될 때가 왔다.

 

앞으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여름방학 때 금융캠프를 개최할 계획이다. 지금 우리나라 아이들은 영어를 익히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방학 때에는 각종 캠프에 가서 즐기고 있는데, 그 가운데 반드시 금융교육이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경제 마인드를 갖게 되면 그것을 토대로 국가를 부강하게 할 수 있다. 중국이 세계화되면 우리가 할 일이 많아진다. 중국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제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가 제조업으로는 경쟁을 할 수 없다. 중국이 발전하면 우리는 금융으로 접근하면 된다. 중국의 우량기업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경제교육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사고의 접근을 통해서 다양한 선택권을 확보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일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경제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월간조선(2005년 11월)

 

강방천의 투자이야기

by 미스터신 2020. 5. 2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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