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계발하는 것에 돈을 받는 직업

 

누군가 나에게 아나운서로서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 뭐냐고 하면 나는 단연 이것을 말하고 싶다. 나 지신을 계발하는 것이 나의 일에 도움이 되는 직업, 그래서 나는 아나운서를 사랑한다.

 

영화를 보는 것, 책을 읽는 것, 인터넷을 서핑하는 것, 드라마를 보는 것, 음악을 듣는 것, 사람들을 만나 대화 나누는 것,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관람하는 것 등등, 이런 모든 활동이 나와 내 방송에 도움이 된다.

 

방송은 기본적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어서, 지금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콘텐츠들을 알아야 한다. 아니, 아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함께 느끼고 호흡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챙겨본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지금 누구를 선호하고 왜 그러한지 공감하려 애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나도 기본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즐겁다. 즐거우면서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니! 물론 때로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이런 문화적 향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 직업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의무적으로 공부하듯이 찾아보기도 한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확한 문구가 기억나지 않지만 뉘앙스를 최대한 전달해본다. "글쓰기를 못하는 이유는 지식의 빈곤이다." 이 말은 나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글쓰기나 말하기를 잘 못하겠다고 하면, 보통 우리는 글쓰기나 말하기의 기술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인풋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아웃풋이 없다는 신랄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아나운서는 기본적으로 하루에 많은 말과 글을 쏟아내야 하는 직업이다. 라디오에서 청취자 사연을 읽고 멘트를 하거나, 인터뷰에서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서로 나누거나, 아니면 잡지에 글을 싣거나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계속 말과 글로 내보내야 한다. 이때 만약 채워지는 것이 없다면? 금방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소진되고 말 것이다. 우물에 충분한 물이 있어야, 계속해서 퍼낼 것이 아닌가? 물이 다 떨어져가는 우물에서 쥐어짜내듯 퍼오는 말과 글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수준 이하일 것이다.

 

아나운서들에게 자기계발이란 필수불가결의 것이다. 그래서 늘 멈추지 않고 노력해야하는 직업이다. 이러한 직업적 숙명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만족스럽게 한다. 나의 좌우명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다. 다른 누구를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나는 늘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나와 비교한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런데 아나운서는 억지로라도 나를 발전하게 한다. 그리고 심지어 내가 나를 계발하는 그 일에 돈까지 준다. 이렇게 멋진 직업이라니, 가끔 이 부분을 생각하면 나는 내가 아나운서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나운서 절대로 하지마라_ 유지수 백원경 이지민 서연미 채선아

by 미스터신 2021. 10. 9. 21:12

만약 교육의 힘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삶을 지배하는 수많은 가치와 관계들이 있겠지만, 교육만큼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것이 있을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단지 학교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육은 물론 스스로 만들어가는 평생교육 및 자기교육의 프로그램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인들을 통해, 친구들을 통해, 심지어 스쳐 가는 사람들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배우는 것들이 모두 교육의 일부다.

 

<배움의 발견>의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는 17세가 되도록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다. 심지어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념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딸이 문명화된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딸은 아버지가 만들어낸 문명 바깥의 세계를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향해 힘차게 노 저어 간다. 언제 세상이 멸망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모르몬교 근본주의자 아버지의 세계관이 어린 타라의 인생을 지배했지만, 타라는 독학으로 명문대에 입학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배움의 길을 끝없이 정진한다.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은밀한 학대,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병이 나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 모두가 폭력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게 된 타라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딸로 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타라의 순수한 영혼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문장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를 감동시킨다. "내가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친 30년 동안 읽어본 가장 훌륭한 에세이 중 하나입니다." 타라는 늘 모욕당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칭찬을 들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모욕당할 준비를 하고 살아갈 정도로 자존감이 약했던 타라는 자신에게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빛나는 재능이 있음을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학생은 가짜 사금파리가 아니에요. 순금이에요."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타인'과의 만남은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잠자고 있던 진짜 자아를 눈뜨게 한다. 타라는 교육을 통해 성공의 기회를 잡으려 한 것이 아니라, '진짜 나 자신이 되는 길'을 찾은 것이다. 우리는 혼자서는 자신의 재능이나 숨은 열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내 안에 반짝이는 숨은 잠재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힘이다.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심리 수업 365_ 정여울

by 미스터신 2021. 9. 26. 20:49

부지런한 독서가 정신적 성장을 돕는다

 

책을 귀하게 여기며 살았기 때문인지 내 제자들이 책을 사랑하지 않고 책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심지어는 교재를 프린트해 가지고 시험만 치르면 되는 듯이 착각하는 학생들도 있다. 공부는 학점을 따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대학을 나오면 전혀 책을 읽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학생들은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한다. 따라서 체계적이며 문제의식을 갖춘 독서와는 담을 쌓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전혀 대학다운 분위기가 자라지 못한다.

 

아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대학 출신자들이 많으면서 독서의 불모지인 나라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독서의 빈곤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면 곧 느낄 수 있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대개가 외국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 화투를 치는 사람들까지 보인다. 그들이 모두 대학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크게 잘못된 사회 풍토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메스컴이 다양하게 발달했고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사회로 변했기 때문에 독서의 필요성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또 경제와 산업이 발달하면서 책에 매달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핑계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가의 지성인들은 여전히 독서를 하고 있으며 정신적인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후진국가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그들이 우리보다도 독서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은 한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독서의 수준이 곧 그 국민의 수준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경제발전을 위해 기술개발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술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기초교육이 앞서야 한다. 모든 분야의 기초과학은 연구와 더불어 가능하며 기초과학의 연구는 책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습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학문적 성장에 필요한 체계적인 독서 필요

 

나무가 크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뿌리가 깊어야 하고 튼튼한 밑동과 줄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잎사귀들이 자라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열심히 받아들이고 있는 정보와 지식은 그 잎과 꽃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체계적인 지식과 학문적인 성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문 성장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처럼 튼튼한 기초이다.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 사상적 고전이며, 줄기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체계적인 학문과 지식이다. 지금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까지도 컴퓨터나 모바일로 정보만 얻으면 그것이 지식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한다. 그것은 기술이나 기능적인 역할에 속한다. 그 정보에 의미와 내용을 부여하고 그것을 지식으로 만들어 내는 체계적인 학문이 필요하다. 그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유감이다.

 

세계 역사도 그렇다. 선진사회에서는 인간개발이 앞서고 그 뒤에 사회개발, 그리고 경제발전과 경제개발이 뒤따른다. 그것이 역사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신사적 절차를 밟지 못했다. 서양에서는 르네상스와 휴머니즘을 먼저 겪은 후 인간과 사상과 인문학이 발전했고, 그 뒤에 사회과학이 발전했다. 그리고 정치의 변화와 사회문제의 해결이 모색되었다. 그 후에 자연과학과 기계과학이 발달하면서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 과정을 밟지 못했다. 오히려 경제개발을 먼저 추구하다 보니까 사회개발이 없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사회개발을 계획하는 동안에 인간의 정신적 가치가 탐구되지 못했다는 현실을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정신적 측면을 책임져야 할 종교계도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앙인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종교인들 중에는 주목할 만한 개신교학자나 불교학자도 없고, 신학교가 그렇게 많으면서도 체계적이고 신학서다운 저작도 없는 실정이다. 우리처럼 많은 대학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탁월한 학자나 사상가를 배출해 내지 못하고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다는 것도 숨길 수는 없는 사실이다.

 

이제라도 책을 읽는 풍토와 독서를 생활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사회 모든 면에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어떤 친구의 한탄스러운 이야기가 생각난다. 텔레비전을 아무리 보아도 책을 읽는 장면은 없다는 것이다. 또 한 친구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문화운동을 책임지고 있으니 문화가 발전할 수 없다고도 했다. 어딘가 잘못된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김형석 교수를 만든 백년의 독서

 

 

by 미스터신 2021. 9. 12. 10:30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내가 어렸을 때는 우리 집에 어린애들이 읽을 만한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집에 있는 성경과 찬송가책을 제외하고는 마을에 거의 책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나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과서 이외의 책을 읽어 보지 못했다. 우리말로 된 아동문고쯤은 학교에 갖추어 두었음 직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입학한 것이 14살 때였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학교가 숭실전문학교와 같은 캠퍼스에 있었기 때문에 전문학교를 위한 도서관이 있었다. 이층으로 된 도서관에는 많은 장서가 있었고 상급생들이 이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부분의 장서는 일본어로 된 책들이었고 전문학교 학생과 선교사들을 위한 영어책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글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1930년대에는 우리글로 출판된 책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나는 그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적지 않은 책들을 읽었다. 독서에 굶주려 있기도 했지만, 사실 독서를 하지 않고 학교 공부만 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기도 했다. 그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었으나 나는 학교 공부보다 책 읽기에 더 많은 흥미를 느꼈고 책을 읽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당시 만일 좋은 스승이나 부모님이 나의 학업과 독서를 조화롭게 이끌어 주었다면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나친 독서는 어린 나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물론 지금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습관이 나로 하여금 오늘의 사상과 문필을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종종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물론 내가 좋은 글을 쓰는 편은 못 되지만, 그때마다 나는 좋은 글을 많이 읽으라고 권한다. 그러면 자연히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다독과 정독의 조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묻는다. 나는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다"고 대답한다. 전공 분야의 독서는 자연히 정독이 될 테니까.

 

또 어떤 이들은 "오늘날과 같은 각종 미디어와 정보사회에 살면서도 예전처럼 독서가 필요한가?" 하고 묻는다. 나는 "그렇기에 독서는 더욱 필요하다"고 대답한다. 정보는 생활에 필요한 보도일 뿐 내 삶을 키워 주지는 못한다. 신문과 텔레비전 등은 살아가는 데 상식을 제공할 수는 있느나 내 영혼을 살찌게 하고 삶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역시 독서는 인간적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방법임을 의심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품고 반세기에 걸친 세월을 이어 오고 있을 무렵, 한 출판사에서 나의 독서 이야기를 정리해 주기를 청해 왔다.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도 못 되고 나의 독서 생활이 어떤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망설였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살아 온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출판을 수용하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사회적으로 '책의 해'가 선포되었고 독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일이 사회 모든 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또한 그 즈음 '한우리 독서운동'에 작은 뜻이나마 모으고 있던 때여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7회에 걸쳐 연재된 내용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양의 원고가 되었다. 연재를 끝내고 이렇게 단행본으로 엮어 독자들 앞에 책으로 내놓게 되고 보니 독자들을 위해 체계적인 내용과 뜻있는 길잡이가 되는 글들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내가 대학 강단에 있으면서 더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읽었던 전문서적들은 일반 독자와 호흡이 맞지 않아 대부분 실을 수 없었던 점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즐겨 읽는 책들을 취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 자신도 그중의 몇 권은 읽었고 지금도 계속 그런 책들을 손에 잡기도 한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나의 정신적 양식이 되어 인간적 성장에 크게 도움을 주거나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므로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이다음에 어떤 필자가 나와 같은 독서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럴 것 같다. 역시 독서란 고전적 의미가 있어 값진 것이며 지성적 교양을 갖춘 독자들과의 대화가 가능할 때 그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나도 신문에 연재되고 있거나 연재되었던 문학책 등을 여러 권 읽었지만, 그런 책들은 왜인지 재음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책은 언제나 살아 있어서 객관적 생명력과 의의를 지니고 있을 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을 처음 쓴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늙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좀 지나친 표현인 것 같지만, 나는 책만 손에 잡으면 언제나 그 책의 주인공이 되고 책의 내용과 같은 삶을 호흡하게 된다. 20대의 연애 감정에 잠기거나 종교적 고뇌에 빠져 들기도 하며 철학적 사색의 심연에 머물기도 한다.

 

확실히 독서는 나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삶의 열정과 꿈을 안고 살도록 이끌어 준다. 독서가 영원한 삶을 살게 해준다면 과장이며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깊이 있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도록 이끌어 준다는 말은 결코 과장도, 거짓도 아니다. 지금도 그런 책에 도취되어 살며 어떤 연구 문제와 씨름하고 싶어 책을 들추는 때가 있다. 14살 때 독서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그 독서가 나에게 젊음과 꿈을 계속 안겨 주고 있다는 사실에 한없는 감회와 감사를 느낀다.

 

'독서의 길은 영원하다'는 말이 독자들의 고백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2021년 5월

 

김형석

 

김형석 교수를 만든 백년의 독서

by 미스터신 2021. 8. 8. 10:00

무한의 지평을 여는 상상력의 힘

 

만약, "사업을 하면서 가장 필요한 재능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상상력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상상력은 모든 꿈의 시작이며 현실로 가기 위한 첫 번째 문이다. 모든 현실은 상상으로부터 시작된다. 다행스럽게도 상상에는 제한도 없고 비용도 필요없다. 단지 상상할 수 있는 자유와 사고만 갖추면 된다.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재능 중 하나다. 인류의 모든 문명과 발전은 누군가의 상상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한 개인의 모든 환경도 결국은 나 스스로의 상상의 잔유물이다.

 

반면, 사업을 하면서 가장 위험한 요소는 무엇이냐 묻는다면 망상이라고 말할 것이다. 상상이 비현실적으로 나타난 형태가 망상이다. 망상은 스스로의 비판과 고뇌를 거치지 않은, 주관적인 자기 욕구의 표현일 뿐이다. 패배주의의 극단적 표현이 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망상이 모든 것을 허물며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나는 십 대 청소년 무렵에 좋은 상상을 찾아내어 키우는 재능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바로 독서였다. 독서는 내 생각의 균형을 잡아주고 끊임없이 사고하는 버릇을 안겨주었다. 내 사업의 성공은 독서로부터 태어났고 독서로 유지되고 있다. 미력하나마 이 책이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나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중략)

 

책을 읽으며 상상하며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독서의 힘이다. 학교공부는 독서를 통해 얻는 사고의 힘을 결코 가르치진 못한다. 나의 인식과 생각을 정리하고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스스로의 독서를 통해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한 독서 버릇은 여태껏 한번도 쉬지 않고 이어져 왔다. 처음엔 중고 책방에서 삼중당 문고판 전체를 하나하나 읽기 시작해 첫해에 100권 넘는 책을 읽었다. 등하교 시간의 차 안에서는 항상 책을 붙들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 가장 좋았던 것은 도서관에서 아무 책이나 빌려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입학식 때 하나씩 주었던 도서관 출입증에는 빌려간 책을 적어 넣는 페이지가 30여 장 있었지만 한 학기도 끝나기 전에 모두 채워버렸다. 인문서적을 즐겨 읽었으며 온갖 세계 문학을 건조한 땅에 비 받아들이듯 읽어나갔다.

 

미국에 올 때도 내가 갖고 있던 모든 책을 남김없이 싸들고 왔다. 그 이후로도 한국에 들를 때나 다른 도시를 방문하면 항상 책방을 먼저 찾아갔다. 요즘도 한 달에 책값으로 평균 300달러 정도를 사용하며 보유하고 있는 책들이 수천 권이 넘는다.

 

나의 관심 독서 방향은 일정치 않았다. 여름 한철은 비교문화에 관련된 책만을 주로 읽다가 가을에는 물리학 관련 자료를 읽었다. 물리학자들이 영향을 받은 철학책을 읽다 보면 수학으로 돌아오고, 그러다 느닷없이 동학관련 서적에 몰두하거나 불교서적을 즐겨 읽기도 했다. 책 속에서 다른 저자의 책이 소개되는 경우는 반드시 그 책을 찾아 읽었다. 노자에서 김용옥에서 오강남에서 김교훈에서 함석헌에서 유영모로 옮겨가듯이 독서를 즐겼다.

 

서른 후반에는 시집도 좋아했다. 좋은 한 편의 시는 소설 한 권과 같은 영향을 준다. 천성적으로 외우는 것이 부족해 전편을 외우는 시는 없어도 많은 시를 기억하고 있다. 흔히 고전 명작이라는 책들은 나이가 들어서 다시 한번 전체를 읽어봤다. 젊어서 이해 없이 읽던 시절과는 또다른 감흥을 주었다.

 

마흔이 넘어서는 물리학과 수학에 빠져 어려서 수학을 공부하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어떤 이들은 나의 이런 독서량을 지켜보며  제목이나 제대로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물론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의미와 분석은 이미 내 안에서 다시 성장해 나간다. 독서는 읽은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독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위대한 학자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노자나 러셀 또는 촘스키 같은 분도 독서를 통해서는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스승으로 모시고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그런 기회를 통해 나의 사고와 인식의 경계는 넓어져 갔다. 독서는 나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독립적 인간으로 키워냈다.

 

나는 지금 어떤 학문이나 어떤 종교나 어떤 문화에도 구속되지 않으며 나를 가르친 스승들로부터도 '독립인'이다. 특별히 역사인식이나 사고의 영역을 넓혀준 수많은 자유사상가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나는 내 인생 어느 때보다도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고 있다. 독서가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독서 습관을 가진 이후로는 늙어가는 것도 기쁘다. 죽기 전까지 항상 무엇인가 할 일이 있고, 언제까지고 배워나간다는 행복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나는 '아들에게 주는 교훈' 이라는 글을 발표했다가 갑자기 유명세를 탄 일이 있었다. 그 때 평소의 여러 글들을 모아서 <좋은아빠>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적이 있었다. 일전에 무료함을 달래려 우연히 검색창에 내 이름과 책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수도 없이 많은 곳에서, 여러 글들이 과도한 칭찬을 받으며 담겨져 있었다. 내가 여러 책에서 영향을 받았듯이 내 작은 글들도 여러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알고 너무 기뻤다. 오늘도 나는 책이 만드는 기적을 본다. 바로 인간을 바꾸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김밥 파는 CEO_ 김승호

by 미스터신 2021. 6. 25. 10:00

아주 작은 목표부터 시작한다

 

서정진은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엉뚱한 방법을 제안했다.

 

"대학 전공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학은 앞으로 살면서 위기가 닥쳤을 때 헤쳐나갈 기본 소양을 배우는 겁니다. 꿈은 변합니다. 언제든 바뀔 수 있어요. 전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은 꿔본 적이 없어요. 직장생활을 하다가 회사가 망해서 백수가 되는 바람에 사업을 한 것이니까요. 전 의학, 생명공학 전공자도 아닌데 독학해서 전 세계를 다니며 의사들 앞에서 강의하고 약을 파는 사람이 됐습니다. 제가 바이오 회사 대표를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세상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재능으로 취급되지 않았던 것, 이를 테면 먹는 것이 재능이 되고 '먹방'으로 돈을 번다. 변하는 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는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그나마 본전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실패해도 덜 억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남들도 좋아할 테니 성공 확률이 낮다. 문제는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을 때다. 그럴 땐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던 '옛날 사람' 서정진에게서 아날로그적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서정진은 "절박해지라"고 했다. 절박함이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는 것이다.

 

서정진은 외국어 학습을 예로 들었다. "터키어는 우리나라 말과 어순이 같습니다. 터키까지 비행기로 11시간이 걸리는데 직원들에게 기내에서 터키어 단어 50개를 외우라고 하고 공항에 도착하면 웬만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100개, 그리고 일주일에 500개 단어로 늘리면 조금 더 유창해집니다. 일주일 만에 4년 동안 공부한 것만큼 할 수 있게 돼요. 영어는 평생 공부해도 안되는데 일주일 만에 되는 건 당장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영어는 바로 써먹을 일이 없으니 오래 걸리는 겁니다. 제가 미국에서 2년간 있으면서 바이오 사업을 공부했습니다. 허구한 날 이게 무슨 사업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해야 할지 2년을 고민하다 보니 제 방에 전 세계 제약산업 지도가 다 있더라고요. 그렇게 공부하고 나서 노벨상을 받은 석학들하고 이야기했더니 저보고 자기들도 미처 생각 못 했던 걸 당신이 해냈다고 하더군요. 특별할 게 없는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절박했던 것밖에 없습니다. 절박한 놈은 아무도 못 이겨요."

 

서정진과 같은 베이비붐세대의 꿈은 매우 단순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먹고살기 바빴던 그들의 부모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고 말하지 않았다. 진로 고민은 사치였다. 요즘은 꿈이 없으면 문제아 취급을 받는다.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기왕이면 크게 꾸라고 한다. 꿈이 꿈을 꾸지 못하게 옭아맨다. 서정진은 "꿈은 얼마든지 바꿔도 된다. 현재 꿈이 무엇인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꿈은 눈사람 같습니다. 처음부터 커다란 눈사람 모양을 만들려면 잘 안돼요. 작은 눈 뭉치를 만들어서 살살 굴려야 합니다. 작은 목표에서 시작해서 점점 더 크게 만드는 겁니다. 될 때까지 해보면 자신감도 점점 붙습니다. 그다음엔 계속 앞으로 가면 됩니다."

 

분위기 싸늘하게 만들기의 달인이 무대에서 내려올 때는 뜨거운 박수가 행사장에 가득 찼다.

 

셀트리오니즘. 셀트리온은 어떻게 일하는가_ 전예진

by 미스터신 2021. 5. 28. 14:19

있잖아요. 새로운 공부를 하면 참 머릿속에 안 들어오죠? 제가 요새 과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정말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어요. 기본적으로 고등학교 때도 그쪽은 공부를 안 했거든요. 저는 문과였으니까. 그래도 왜 그렇게 이과 공부를 싫어했나 모르겠어요. 물리, 수학, 이런 공부 정말 싫어했거든요? 특히 수학 공부 정말 싫어했는데, 내가 왜 그렇게 수학을 싫어했을까 생각을 해봤더니 선천적으로 못했던 건 아니었어요. 다만, 저는 그쪽 공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인 거예요. 근데 문과 쪽 공부는 아마 평균보다 빨리 이해했던 거 같아요. 글을 읽거나 시를 읽을 때 뜻을 이해하고 토론하는 건 머리가 잘 돌아갔거든요.

 

반면에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건 이해하는 데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요즘 공부를 해보니까 오랫동안 책을 읽고 애를 쓰다 보면 결국은 이해를 하더라는 거죠.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요. 근데 고등학교 때 그 공부를 포기한 이유는 내가 이해하기 전에 너무 빨리 이해하라고 재촉하거나 아니면 이해해야 하는 시한을 정해놓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번 시간에 배운 거는 다음 시간까지 이해해야 하고 중간고사 때까지는 완벽히 익혀서 시험 본다." 그러고 시험을 본 거 아니에요?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난 이해를 못했으니까 시험 점수가 잘 나올 리가 없고 그렇게 시험에 몇 번 실패하고 야단맞고 이러다 보니까 아, 이건 나랑 맞지 않는가 보다 하고 포기했던 거죠. 그게 학교 다닐 때 공부였던 것 같아요.

 

이해할 수 있는 시한은 사람마다 다 다른데, 그런 시한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 이게 학교 공부 아닐까요? 그럼, 학교밖 공부는 어떨까요? 요즘에 제가 물리학, 수학 공부 왜 재밌게 하는 줄 아세요? 아무도 시험 안 봐요. 아무도 평가 안 해요. 그리고 언제까지 이해하지 못하면 너 바보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편하더라고요. 이해될 때까지 읽고 물어보고 시험은 나 스스로 완벽히 이해했을 때 이미 100점 맞은 거 아니겠어요?

 

혹시 학교 다닐 때 공부에 굉장히 짓눌리셨던 분들,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던 분들, 그리고 좌절하셨던 분들은요, 나이 들고 뭐가 됐건 다시 시작해보세요. 시험 보지 않는 공부, 기한을 정해놓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공부를 하게 되면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구나를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나이 들어 하는 공부가 참 즐거운 것 같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저 어릴 때 공부 못했어요, 라고 말하지 마세요. 우리가 했던 건 암기였거든요. 공부가 아니었다고요. 다 외울 때까지 하는 게 암기라면, 깨달을 때까지 하는 게 공부예요. 이제 제대로 된 공부를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깨달음을 향한 나를 위한 공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최고의 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여러분도 나만의 진짜 공부를 시작해보세요.

 

김미경의 인생미답

by 미스터신 2021. 5. 7. 21:10

있잖아요, 사람이 살면서 가져야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의 힘이 있죠. 사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생겼거나 큰일이 닥쳤을 때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판단하고, 판단만큼 책임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것만이 아니죠. 사실 우리의 매일 매일은 크고 작은 의사 결정, 판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생각의 힘 중에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가 오늘 여러분과 얘기해보고 싶고 또 생각해보고 싶은 생각의 힘이 바로 '내관력(內觀力)' 이라는 겁니다.

 

사실 내관력이라는 것은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하거든요. 옛날에 한의를 하는 분들이 그랬다고 하죠. 맥을 짚을 때 어떻게 짚나요? 진맥을 하면서 몸을 들여다보는 거죠. 간이 상했는지 폐가 상했는지, 폐 때문에 이런 문제가 오는 거다, 위 때문에 얼굴에 문제가 생겼다, 이런 식으로 모든 걸 통합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힘. 아주 작은 단서를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바로 내관력이라고 하거든요.

 

내관력은 어떻게 길러질까요? 우리가 무엇인가 판단할 때 급히 판단하는 것도 있지만, 깊게 생각해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본질까지 내려가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내관력을 기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한 가지를 깊게 공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를 깊게 들여다보건, 수학을 깊게 들여다보건, 기타를 치면서 악기를 깊게 들여다보건, 그림을 보건, 내관력은 누구나 공부하는 실력, 점수와 상관없이 우리가 일생을 통해서 훈련할 수 있거든요. 여러분도 그런 걸 하나 가지시면 생각의 깊이가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얼마 전부터 사주 명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내관력을 키우기에 너무나 좋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험 보는 거 아니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누가 3개월에 한 번씩 시험을 친다고 하면 시험에 나올 만한 거, 100점 맞을 만한 공부만 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내관력이 안 생기잖아요.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시험과 관계없이 꾸준히 그냥 내 생활처럼 내 삶처럼 공부를 한다면 우리의 내관력이 커지지 않겠어요? 여러분도 내관력이 커질 수 있는 공부 하나, 그런 취미 하나 택해보시면 어떨까요?

 

김미경의 인생미답

by 미스터신 2021. 4. 19. 21:02

서양은 분명 동양과 비교했을 때 사고 체계가 본질적으로 외향적이다. 자기 표현이 중요하고 언제 어디서든 토론과 논쟁, 발표가 생활화되어 있다. 교실을 벗어난 과목이 더 많고, 활발한 교외 활동을 한 학생에게 높은 성적을 준다. 내향적이고 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설 곳이 많지 않은 생태계다.

 

주목받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곳에서 나는 거침없이 주장하고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벼랑 끝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나를 홍보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외향적 기질을 온 몸에 두른 탓에 주목받고 표현하고, 설득하고 비판하는 것에 온통 길들여진 상태로 고요한 한국의 교실로 돌아왔다. 한국에 오니 친구들은 내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했다. 나의 직설적이고 강한 어투에 상처받았다고 토로했다. 주장이 너무 강해서 다가가기 힘들고 말 붙이기가 무섭다고, 친해지기 힘든 성격이라고 말했다.

 

내향적인 본질을 무시한 채 표면적인 외향적 기질만을 뒤쫓기 바빴던 나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 이도 저도 아닌 성격이 되어 있었다. 나는 국제학교를 다니며 익혀온 나의 습성을 원망했다.

 

서구의 교육 방식이 이상적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계급 사회에 기반한 철저한 능력주의, 그것이 서구식 교육 방식이다. 다르고 독특하면 매도하고 고립시키는 것이 한국의 방식이라면, 비슷하고 특징이 없으면 재능없다고 무시하는 것이 서구의 방식이다. 내향적인 성격은 소수 집단이다. 극히 적은 내향인들을 위한 배려는 없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아이들은 너드(괴짜, 찌질이)가 될 뿐이다.

 

동양은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한다고 비난받지만, 서양은 다름을 우상 숭배한다. 이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 폭력적이다. 개성 강하고 목소리 크고 자기 주장이 강해야 유능한 사람이라는 강박이 학교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다. 말 없고 홀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진 강점은 쉽게 주목받지 못했다. 외면 받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위협적인 무기가 있어야 했다 .눈에 드러나는 장기가 있어야 했다.

 

어릴 적 나는 배려하고 공감하고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신중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영어에 '착하다' 라는 말은 없다. '착함'은 능력도 칭찬도 될 수 없다. 착했던 나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착함을 지우고 능력과 재능을 택했고, 경청을 없애고 자기 주장을 선택했다. 내향성을 부정하고 외향성을 덕지덕지 붙였다. 경청과 자기 주장을 동시에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외향적인 사람들이라고 다 자기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청하고 존중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외향인의 전형적인 기질을 닮기 위해 나는 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어린 내게 점진적으로 성격을 바꿔갈 여유는 없었다. 배려하면서 동시에 확고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기질적으로 외향인과 내향인은 모든 면에서 다르다. 상황을 대하는 태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학습법, 인간 관계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르다. 정해진 학습법, 문제 해결법은 없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다. 사람마다 효율이 극대화되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무작정 질문하고 토론하고 논쟁한다고 훌륭한 교육이 아니다. 책을 읽고 조용히 사유하며 지식을 흡수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공부법을 따라야 한다.

 

질문하지 않는 교실은 답이 없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G20정상회담을 맞아 한국에 왔을 때 우리나라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구했다. 개최국인 우리나라에 심심한 감사의 말과 함께 질문의 기회를 선물한다고 했다.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고 보다 못한 중국 출신 기자가 끼어들었다. 한 다큐멘터리는 이 장면을 전면으로 내세워 질문하지 않는 한국 교육을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황한 표정과 어색하게 감도는 정적을 화면에 가득 담으며 질문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꼬집었다. 나는 이 장면이 상당히 불쾌했고 수치스러웠다. 질문을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도와 개성은 무시한 채 오직 '질문'에만 목을 맨다. 다큐멘터리의 취지와 관계없이 내가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질문' 자체에 거부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질문을 못하는 환경은 문제가 있지만, 질문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거다. 주변을 의식해 눈치를 보며 질문을 못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질문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스트레스를 느껴서도 안 된다. 질문을 강요하는 것 또한 질문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폭력이자 차별이 될 수도 있다. 의견을 교환하고 다수가 동의하는 현명한 답을 찾는데 분명 상호 작용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질문의 과정을 통해 정답을 구하는 사람이 있듯, 반대편에는 곰곰히 홀로 생각하며 가만히 스스로 정답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

 

주입식 교육은 비판하면서 서양식 교육 방식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주입식 태도는 왜 방조하는가. 서구식 교육 방식을 맹목적으로 쫓으면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조앤 롤링이 나올까. 학생의 기질과 성향은 외면한 채 우선적으로 서구식 교육 모델부터 주입하며 위인을 기대하는 발상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기업 업무 환경에서도 오픈 스페이스를 앞세워 사무실 칸막이를 없애거나 수직적 상하 관계를 완화한다며 개인 사무실을 지양하는 추세다. 왔다갔다 이동하는 동료들의 발소리, 오며 가며 건네는 잡담 소리, 회의실에서 스며나오는 각종 잡음... 자극을 처리하는 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내향인들은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다. 자극이 최소화된 공간이야말로 내향인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창조하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인데 말이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적 교실 책상은 열로 배치되어 있었다. 조용한 교실에서 얼마든지 골똘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환경이었다. 서양은 다르다. 교실 규모가 작아 주목이 불가피하고 책상은 동그랗게 배치해 서로를 마주보게 한다. 끊임없이 상호 교류를 독려한다. 대화와 의견을 주고받고 질문과 공유에 대한 압박을 가한다.

 

나 또한 과거에 질문하지 않는 스스로를 비난했다. 토론과 논쟁에 취약한 자신을 꾸짖고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토론을 통해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사람도 있지만, 토론의 학업적 성과가 매우 약한 사람도 있다. 발표가 학습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사람 또한 분명 있다.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 타인의 방식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만큼 자신의 재능을 망치는 건 없다. 사회적으로는 폭력이고 개인적으로는 재능 낭비다.

 

서양의 기준을 정답이라 여겨 그들의 기준에 따라 공부했으나, 무엇을 배우든 공부는 괴로웠다.  공부가 즐거움인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배움을 싫어했다. 내게 맞는 학습법을 찾아 실천하면서 배움에 대한 열정은 커졌고 공부가 점점 좋아졌다. 무엇보다 학습이 뚜렷한 성과로 이어졌다. 가시적인 결과물의 성취도 또한 질부터 달랐다. 배우는 속도, 지식의 양, 사유의 깊이, 모두 압도적으로 우수했다.

 

내가 의욕 넘치게 학문에 애착을 가지게 된 이유는 공부하는 시간이 즐거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책을 수차계 반복해서 읽고 듣고 필사한다. 또 곱씹어 읽고, 신중하게 사유하고 생각을 정리해 글로 쓰면서 어느 때보다 많이 배우고 성장했으며 성취했다. 내게는 논쟁보다 독립적 사유 방식이 더 어울리는 학습법이었다. 스펀지처럼 모든 지식을 놀라운 속도로 흡수했고, 성장을 발판으로 공부는 즐거움이 되었다.

 

남다른 패션 스타일을 지니고 독특한 식습관이 있는 사람처럼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학업적 성과를 이룬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이 없듯, 학습법도 저마다 다르다. 결과로 증명하면 되고, 성과로 승부하면 된다. 서양의 방식을 쫓기보다, 우리에게 최적화된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을 우직하게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내향인입니다_ 진민영

by 미스터신 2021. 4. 6. 14:38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

 

1. 지식보다 역량이 더 중요하다

2. 학생 주도의 수업이 효과적이다

3. 21세기는 새로운 교육을 요구한다

4. 인터넷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5. 전이 가능한 역량을 가르쳐야 한다

6. 프로젝트와 체험 활동이 최고의 학습법이다

7.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의식화 교육이다

 

역자 후기 | 지식 없으면 창의성도 없다

 

10여 년 전에 광주 인근 고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 몇 분과 회식을 하면서 학생지도의 어려움에 대하여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공부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수가 이전에 비해 점차 많아지고, 학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점을 걱정했다. 특히, 학부모들조차 자녀가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하거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함께 우려했다.

 

학생들은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고, 선생님들은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을 만나는데 선생님들이 가르치려고 해도 학생들이 배우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를 하려 해도 기초학력이 부족하여 이해할 수 없어서 결국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라는 분석, 입학정원에 비해 대입 응시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부를 못해도 대학에 갈 수 있으니 편하게 학교 다니려 한다는 분석 등이 나왔다. 필자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론의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재의 학교교육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신문과 방송에 자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21세기는 지식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지식의 가치가 중요한 시기다. 21세기 학교는 학생들이 지식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평생 동안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도 길러 주어야 한다. 그런데 기대와는 정반대로 학교 지식교육은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조차 경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식교육을 경시한 결과는 심각한 학력 저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지식조차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역자는 중학교 때 공부하지 않아,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기초학력이 확보되지 않아 공부를 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너무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공부의 재미를 느끼고 싶어도, 교과서를 읽고 체계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고 싶어도 뜻을 모르는 말이나 단어가 계속 나오면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생님께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잠을 잘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기초부터 가르친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들은 모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어느 정도 노력해 보다가 쉽게 포기하게 된다. (중략)

 

오츠 교수는 핀란드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낸 국가라고 해서 모방하려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철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핀란드 교육의 진면목을 분석했다. 그는 핀란드의 평소 학교생활에서 시험과 숙제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15세에 대학진학계열과 직업계열로의 진로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시험을 치루는데, 이것이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능력별 반편성이 없는 대신에 결석한 학생들이 결석 기간 동안 배우지 못한 내용을 철저하게 공부시켜 주는 보충학습 시스템이 이를 보완해 주고 있으며, 가정에서 독서와 토론을 강조하는 문화도 효과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핀란드 교실 수업을 참관해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교사 주도의 전통적인 수업이 주로 이뤄지며, 학생 중심의 토론 수업이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또한 루터교의 영향으로 1686년부터 법적 결혼 조건으로 일정 수준의 문해력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도 다른 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닉 깁 차관은 영국 보수 성향의 연구기관인 정책연구센터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가브리엘 살그렌의 논문 '핀란드 교훈의 실상'에 나온 자료를 인용하여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이 역량중심에서 지식중심으로 바꿔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그렌은 많은 국가들이 핀란드 교육성공을 모델로 여겨 역량 중심 교육개혁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핀란드의 교육성공은 최근의 교육개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더욱이 역량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한 결과 교육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분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핀란드가 교육성공 국가로 인정받은 계기가 된 2000년 제1차 PISA와 2003년 PISA 결과는 이를 만든 그 이전의 전통적인 교사 주도 교육 덕택이며, 마침 그때 역량 중심의 교육개혁이 이뤄진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2015년 PISA에서 읽기 4위, 수학 13위, 과학 5위까지 추락한 것은 교사주도의 수업 등 전통적인 교육문화에서 학생 주도의 수업 방식으로 바뀐 결과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교육이 역량 중심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영국과 핀란드의 교육과정 개정 사례를 드는 경우가 많은데, 살그렌의 분석을 참고하여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중략)

 

하브루타, 질문이 있는 교실 등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수업방법을 교사들이 함께 연구하고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또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교사들은 다양한 수업상황에 따라 다양한 교수법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 참여형 수업 강조가 상대적으로 교사의 수업 지도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하브루타나 질문이 있는 수업의 배경 이론인 학습 피라미드 이론은 강의를 들으면 5% 기억할 수 있고, 읽으면 10%만 기억할 수 있는 반면, 질문하면서 가르치면 90%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의 설명식 수업이 매우 비효과적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학습 피라미드 이론은 에드가 데일의 '경험의 원추'를 오용한 것으로 10% 단위로 실험 결과가 제시된 근거가 없을뿐더러 과학적인 실험 연구에서 나올 수 없는 통계라고 한다. 또한 학문적 권위를 의미하는 미국행동과학연구소 또는 국립교육연구소로 번역되고 있는 연구수행 기관명은 실제로는 국책연구기관이 아니며, 성인들의 의사소통 훈련을 전문으로 하는 사설단체이다. (중략)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역량은 중요하지만 지식이 없으면 역량을 개발할 수 없다고 본다. 다양한 교수법중에서 교사가 설명해 주면서 질문과 확인 그리고 환류해 주는 직접교수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찾고자 하는 영역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정확한 정보를 찾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학생들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교사로부터 먼저 배우고 있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영국의 교육상황을 다룬 것이다. 시기적으로 1999년부터 2012년까지의 교육상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교육과정 내용 측면에서 지식보다는 역량이 강조되고, 방법 측면에서 교사가 수업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터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 그 결과 학력 저하 등의 문제들이 나타났다. 2013년부터는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새로운 교육상황이 전개되었다. 이전과 정반대로 역량보다 지식이 강조되고, 수업의 주도권이 학생으로부터 교사에게 환원되었다. 그 결과 학력 향상 효과,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자신감 제고 등 바람직한 교육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영국의 교육과정을 상당 부분 참고하고 있다. 우리의 2009 개정 및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지식보다 핵심역량을 강조하는 것과 교사 주도의 수업보다 학생 주도의 활동 중심 수업을 강조하는 것은 영국의 1999년부터 2012년까지의 교육과정이 강조한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과거 영국의 교육 문제들을 우리도 겪고 있는 이유가 바로 영국의 교육과정을 모방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권장하는 교육과정 목표와 교수법을 실제 수업에 적용하기 힘들어 하고, 기초*기본 학력 미달 학생들의 증가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점차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증거도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의 교육현상에 대해 의문을 드러내고, 함께 혁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_ 데이지 크리스토둘루 (김승호 옮김)

by 미스터신 2021. 3. 2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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