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고래에게도 칭찬을 하니 춤을 추더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우리 아이들을 칭찬해주면 얼마나 신나게 춤을 출까요? 우리는 어제오늘 아이들에게 무슨 칭찬을 했는지 떠올려봅시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 교육을 외부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영어 발음을 좋아지게 하는 학원이 있다면 학원비가 비싸더라도 그 학원에 보냅니다. 수학 잘 가르치는 학원이 멀리 있다면 차를 태워서라도 보내지요. 예체능 잘하는 학원 알아보느라 여기저기 물어보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기도 합니다. 아이 머리가 좋아진다면 비싼 돈을 주고라도 총명탕을 먹이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돈도 시간도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인정, 존중, 지지, 칭찬'에는 참으로 인색합니다. 이런 것을 해주면 아이 자존감이 살고, 그 자존감이 동기부여의 싹을 키워 자기주도 학습 능력이 향상되는데 말입니다. 결국 아이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는 집중하지 않고, 내 아이를 학원에 맡기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학과 대학원, 각종 연수 등에서 수석을 하고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교육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각종 교사 연수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과목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교육학'입니다. 교육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이 뭔지 아십니까? 인정, 존중, 지지, 칭찬 이론입니다. 저는 교육학의 여러 이론들을 열심히 공부하여 모든 과목에서 A+라는 매우 우수한 점수를 받았으나, 정작 실천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교육학은 '죽은 지식'이었던 겁니다.

 

저는 정말 칭찬에 인색했습니다. 아들이 전교 1등을 한 성적표를 가져와 "엄마, 저 1등 했어요" 라고 목소리에 힘을 줘 말하면 "야, 목소리에 힘 빼고 지난달 성적표 가지고 와" 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성적표를 비교하며 말했습니다. "국어는 올랐네. 그런데 수학은 왜 떨어졌어? 너 수학 얼마짜리 학원 다니고 있는 줄 알아? 과학, 사회는 왜 이 점수야? 평균 97점으로 1등 했다고 자만하지 마. 너희 학교 수준이면 강남가면 중간도 못 해"라고 말하며 아이의 기를 죽였습니다.

 

강남 엄마들보다 아이들을 더 잡는 엄마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강남 언저리 사는 엄마들입니다. 바로 옆 동네지만, 여러 여건상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니 늘 불안한 것이지요.

 

저는 오래전 강남에 살다가 첫 발령이 다른 동네로 나는 바람에 아예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서로 비슷하던 집값이 세월이 흐르며 어찌나 차이가 나는지, 다시는 강남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늘 강남 언저리를 맴돌면서 우리 아이들 종합학원은 강남으로 보냈고, 어떻게 하면 강남 아이들과 엮어 과외를 시킬까 궁리하곤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주 자주 들은 말 중 하나가 '강남'인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강남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를 치고 그곳에 잘 가지도 않습니다.

 

아들은 그나마 공부를 잘해서 덜 혼났습니다. 세 살 때부터 한글을 읽기 시작했기에 저는 아들이 천재라고 여겼고, '내 아이는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딸은 세 살은커녕 일곱 살이 되도록 한글을 못 읽으니 기가 막혔습니다. 더군다나 2월생이다 보니 한글을 못 뗀 일곱 살에 학교에 입학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밤늦도록 열심히 연습하여 학교를 보냈건만 딸이 받아 온 첫 받아쓰기 시험 점수는 60점이었습니다. 정말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60점짜리 시험지를 조심스레 내놓으며 딸이 사인을 해달라고 합니다.

 

"나는 이 점수에 사인 못 한다. 어떻게 이런 점수를 받니? 내 인생에 처음 보는 점수다. 이 점수를 맞고 집에 오고 싶대? 밥이 넘어가? 오빠는 늘 100점 받았어. 너는 어떻게 된 거니? 도대체 누굴 닮았어? 우리 친정 식구들은 다 공부 잘했는데."

 

이런 말을 하며 야단을 치면 딸은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그러면 "뭘 잘했다고 울어. 눈물 뚝 그치고 얼른 들어가 공부 못 해?" 하고 야단을 더 칩니다.

 

그 후에 딸은 80점을 맞아 왔습니다. 딸은 20점 올랐다고 좋아하는데, 그 점수에 성이 차지 않은 저는 "시험이 좀 쉬웠니?" 라며 비아냥거렸습니다. 100점을 맞으면 신이 나서 시험지를 흔들며 "엄마, 나도 오빠처럼 100점 맞았어"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칭찬이 그리웠을까요? 그런 딸에게 저는 "너희 반 아이들 다 100점이지? 100점 몇 명이야?" 라며 확인하는 모진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아들과 딸에게 왜 그런 말을 하며 살았을까요?

 

나중에 우리 아이들 자퇴하고 폐인 되고 자살 준비하라고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을 다른 집 아이들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핑계로 그런 짓을 한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더 잘할 줄 알았습니다. 더 겸손할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아들과 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인지, 얼마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아이들 가슴에 꽂히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여 아이들의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아 동기부여의 싹을 자르고,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상실하게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한 그 비난의 말들이 애초에 신이 우리 아이들에게 주신 어마어마한 잠재력까지 죽이는 엄청난 행위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마 반성문_ 이유남

by 미스터신 2018. 1. 15. 12:35

우리 아이들 모두 동기부여가 팍팍 되어서 원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동기를 북돋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중요한 것 두 가지를 꼽는다면, 자존감과 목표입니다.

 

자존감이란 뭘까요? '나 참 잘하고 있어. 내가 하면 참 잘해. 난 뭐든지 잘할 수 있어. 나란 존재는 참 괜찮은 존재야.' 이런 생각이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자존감은 어디서 올까요? 하늘에서 떨어질까요, 아니면 땅에서 솟을까요? 맞습니다. 자존감은 칭찬에서 옵니다. 인정, 존중, 지지, 칭찬을 받은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을까요? 아니면 멸시, 천대, 비난, 경멸을 받은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을까요? 당연히 전자의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자존감 형성은 선천적 요인보다 후천적 요인이 큽니다. 어떤 일을 했을 때 칭찬을 들으면 그 일을 더 잘하고 싶을 겁니다.

 

에디슨 어머니와 저를 한번 비교해보겠습니다. 에디슨이 말을 잘 들었습니까? 아시다시피 에디슨은 세계적인 말썽쟁이였죠. 그러나 에디슨 위인전 그 어디에도 부모님이 아이를 야단쳤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선생님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에디슨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퇴학을 당합니다. 그래도 그의 어머니는 "너는 그 사람들과 조금 다를 뿐이야" 하고 아들의 독특한 행동을 인정해주면서 받아줍니다. 또한 "엄마와 함께 재미있게 공부하자"라며 에디슨 눈높이에 맞춰 공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에디슨이 부린 말썽 중 유명한, 닭장에서 알을 품는 일화가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아이들이 알을 품었으면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닭장에 당장 쫓아 들어가 일단 등짝부터 때렸을 겁니다. 그리고 "네가 여기서 알이나 품을 때야? 얼른 가서 숙제하고 공부해"라고 야단을 쳤을 겁니다.

 

또한 "너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유행인지도 몰라? 뉴스도 못 봤어?" 라고 다그치며 "얼른 일어나, 닭털이 콧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기관지도 약한데 기침하면 어쩌려고. 얼른 가서 샤워해"라고 윽박질렀을 겁니다. 제 나름대로는 기관지 약한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에서 야단친 것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에디슨 어머니는 남달랐습니다. 그녀는 아이가 놀라지 않게 살금살금 닭장으로 들어가 아이의 귓전에 대고 부드럽고 잔잔한 목소리로 "너는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했니? 앞으로 대단한 일을 하겠구나"라며 칭찬했다고 합니다. 아이의 호기심과 잠재력을 인정하고 칭찬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하는 일은 거의 비슷합니다. 어떤 아이라고 태어나면서부터 대단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 행동을 인정해줘야 아이 자존감이 올라가고,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은 동기부여의 싹을 키울 수 있습니다.

 

에디슨 어머니가 "한 번만 더 그런 짓 해봐. 집에서 쫓겨나는 수가 있어!"라며 혼을 냈다면 에디슨은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오늘날의 에디슨도 없었을 것입니다. 에디슨은 계속 엉뚱한 시도를 하면서 전기를 발명하고, 결국 인류 문명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전기 발명은 알다시피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에디슨에게 자존감이 없었으면 그 역경을 이겨낼 수도 없었을 겁니다. 에디슨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인정, 존중, 지지, 칭찬을 통해 아들의 자존감을 키워주었고, 그 자존감이야말로 에디슨이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정, 존중, 지지, 칭찬은 자존감을 살리는 핵심 요소이면서 코칭의 가장 중요한 기술입니다.

 

엄마 반성문_ 이유남

by 미스터신 2018. 1. 15. 12:12

자녀를 성품도 역량도 탁월한 '금상첨화'의 사람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능력, 즉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갖춘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저는 뒤늦게 여러 공부를 하고 나서야 두 아이가 왜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아이들은 타인주도 혹은 엄마주도 학습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의 스케줄을 쫙 짜주었습니다. 월요일 가는 학원, 화요일 가는 학원, 수요일 가는 학원을 일일이 다 짜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하라는 숙제를 하고, 엄마가 가라는 학원에 가고, 엄마가 풀라는 문제집을 풀고, 엄마가 읽으라는 책을 읽으며 자랐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가르치는 해에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학년을 올려 보내면 여지없이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부모님들은 "선생님께 배울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학년이 올라가니 성적이 떨어져 걱정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잘 가르쳤는데 다른 선생님들은 그렇게 못 가르치는구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가 선생님이 주도하는 학습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타인주도 학습은 언젠가 한계에 다다릅니다. 우리 집 아이들에겐 고3과 고2가 그때였는데, 아이에 따라 시기가 다를 뿐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반드시 한계에 부딪히는 날이 옵니다.

 

제가 대학에서 강의할 때 보니 많은 학생이 그 힘든 입시 지옥을 뚫고 비싼 등록금 내고 입학을 했다가 1학년 1학기도 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었습니다. 일명 '반수'를 하러 가는 거였습니다. 2학기에도 많은 학생이 사라집니다. 재수하러 가는 것이지요.

 

그나마 1학년 때 그만두는 학생들은 용기 있는 학생입니다. 부모가 무서워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다니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점 이수가 안 되어 4년이 지나도 졸업을 못 하거나, 어찌어찌 힘들게 졸업한다 해도 이것이 본인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대학 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취업했다가 다시 대학 가는 사람들도 있고, 4년제 대학 졸업하고 다시 전문대를 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 데 있습니다. 부모나 교사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에만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능 성적에 맞춰 부모님이, 선생님이, 학원 강사가 가라는 대학에 가는 것이죠. 자기 스스로 못 하고, 타인에 의해 선택을 강요당하면서 안타까운 결과가 속출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 인생 낭비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자기주도 학습 능력은 어떻게 생길까요? 많은 교육학자들은 세 가지를 꼽습니다. '동기, 행동, 인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동기'라고 합니다

 

무엇을 배울 때 '동기'는 정말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동기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엄마, 난 잠이 안 와."

"왜?"

"공부하고 싶어서."

 

아이가 이런 말을 하면 또 어떨까요?

 

"엄마, 아침에 밥 좀 빨리 해주면 안 돼? 난 이 세상에서 학교 가는 일이 제일 좋은데, 엄마가 밥을 늦게 줘서 학교를 빨리 못 간단 말이야."

 

"아빠, 방학은 왜 이렇게 길어요? 빨리 방학이 끝났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은 서점에 가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데, 우리 집엔 책이 없어요. 텔레비전 좀 꺼주세요.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엄마 아빠는 눈치 없이 왜 텔레비전을 자꾸 켜시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잘 하지 않습니다. 바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어떤가요? 그런 일을 할 때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식사 시간이 되어도 나중에 먹겠다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들이 원해서 공부를 하고, 원해서 해야 할 일을 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 역시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엄마 반성문_ 이유남

 

by 미스터신 2018. 1. 15. 11:56

좋은 생활습관은 공부지능과 통한다

 

공부지능을 폭발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시기는 초등학교 6년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동안 개발되는 지능이라 할 수 있다. 정서지능과 관련된 능력 중에는 60대에 정점을 찍는 것들도 있으니 평생에 걸쳐 개발되는 지능이라 해도 무방하다.

 

긴 세월 동안 공부지능 영역별로 집중 개발해 주어야 하는 적기는 제각각 다르다. 하지만 공부지능을 개발하는 내내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다. 바로 잘 먹고, 잘 자고, 꾸준히 운동하는 좋은 생활습관이다.

 

생활습관이 공부지능과 무슨 상관이 있나 의아할 수도 있지만 꽤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부지능을 관장하는 뇌는 균형 있는 영양소 섭취, 충분한 수면 시간, 꾸준한 운동을 통해 그 잠재력이 발휘된다. 그중 잘 먹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뇌는 우리가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의 약 18퍼센트를 소모할 정도로 신체 기관 중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도 그럴 것이 뇌는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일한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뇌간을 풀가동한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니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지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

 

뇌에 에너지를 공급하려면 하루 세끼 규칙적인 식사를 해야 한다. 특히 아침밥은 거르지 않는 편이 좋다. 잠을 자는 동안 뇌는 주에너지원인 포도당을 다 소모해 아침이면 무척 배고픈 상태가 된다. 밥을 굶으면 기운이 없듯이 뇌도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면 인지능력도 떨어지고 집중력과 주의력도 떨어진다.

 

좋은 식습관과 더불어 운동과 수면도 공부지능을 개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생활습관은 후천적으로 공부지능을 높여 주는 환경적 요인인 셈이다. 그것도 어느 특정 기간에만 작용하는 요인이 아니라 공부지능 개발 적기 내내 꼭 필요한 요인이다.

 

매일 30분만 운동해도 머리가 좋아진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운동을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정말 그럴까? 2007년 3월 26일자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에 실린 내용은 이런 편견을 깨기에 충분하다. 일리노이 대학교 찰스 힐먼 박사는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 259명을 대상으로 체질량을 측정한 뒤 앉은 채 팔 뻗기, 달리기, 팔굽혀펴기와 윗몸 일으키기 등의 기초 운동을 시켰다. 이후 아이들의 운동 능력과 일리노이주 학년 표준 시험에서 거둔 그들의 수학, 읽기 성적을 서로 비교했다. 결과는 운동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비만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성취도가 낮았다.

 

운동을 하면 뇌 세포에 혈액과 영양이 잘 공급돼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들을 이어 주는 시냅스를 많이 만들어낸다. 시냅스 수의 증가는 그만큼 두뇌의 기능이 발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운동을 할수록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향신경성물질이 많이 생긴다. 이 물질이 많을수록 더 많은 양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고차원적인 사고도 가능해진다.

 

조지아 대학의 운동과학 교수 필 톰포로프스키도 운동이 뇌를 발달시키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운동을 하면 뇌의 전 영역이 두루두루 발달하지만 특히 전두엽에 엄청난 양의 뇌 조직이 성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운동과 지능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노년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신체 운동이 뇌에 미치는 효과는 사실 어린아이에게 미치는 효과가 훨씬 더 강력하다. 전두엽은 약 20세가 될 때까지도 개발될 여지가 많이 남아 있으므로 적당량의 운동, 심지어 발야구 시합을 한 차례만 해도 뇌가 효과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연구 결과에 따라 미국 켄터키주 상원의원 케이티스타인은 8학년(우리나라 중2)까지 매일 30분씩 운동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리노이주 네퍼빌에서는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 읽기 수업을 하기 전에 체육 수업을 먼저 했는데, 그 결과 아이들의 성적이 많이 향상되었다. 그 밖에도 운동을 할수록 머리가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미국은 체육 수업을 강화해 매일 1시간씩 운동을 시키는 추세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가 체육 수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공부지능을 개발하는 데 있어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많은 부모가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하기를 원하는데, 정말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 바란다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운동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밖에 나가 30분만이라도 신나게 운동하면 오히려 공부지능이 개발되고 공부도 더 잘할 수 있다.

 

잘 자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4당5락'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4시간 자면 합격이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로, 지금도 여전히 입시를 앞둔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것 같다.

 

하지만 잠을 줄여 공부를 잘하겠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특히 뇌가 활발히 발달하는 시기인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잠을 충분히, 잘 자야 한다. 그래야 뇌가 발달하고 공부지능을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수면 밸런스'의 저자 한진규 박사에 의하면 수면은 몸의 휴식과 회복, 학습 능력 향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인간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하루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은 반드시 잠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잠은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는 동시에 기억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뇌에 계속 자극을 주면 더 발달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인간의 대뇌 신경세포는 일정 시간이상 계속 자극을 받으면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이 시기를 '불응기'라고 하는데, 이때가 바로 지친 대뇌 신경세포들이 잠시 쉬는 시간이다. 뇌가 스스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한 자구책인 셈이다.

 

인간의 뇌는 잠을 자는 동안 기억과 학습, 문제해결과 창의력, 비판 능력에 필요한 신경 네트워크를 자극하고 조직하는 데 꼭 필요한 신경전달 물질을 생성한다. 잠을 자는 동안 인간의 뇌는 외부의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낮에 익힌 지식이나 기술 등의 방법을 다시 반복하며 저장한다. 낮에 짧은 시간 동안 기억한 단기 정보들을 잠을 자면서 장기 기억장소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것은 꿈을 꾸는 '렘 수면'을 하는 동안 주로 이루어진다.

 

렘 수면은 몸은 자고 있지만 뇌는 깨어있는 상태이다. 보통 잠이  든 뒤 약 90~120분 사이에 이루어진다. 잠자리에 누우면 서서히 잠이 들어 몸도 뇌도 모두 잠자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다시 서서히 뇌가 깨면서 렘 수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잠을 푹 자야 렘 수면도 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렘 수면은 하룻밤에 4~7회씩 약 77분 간격으로 나타나고 사람마다 차이는 있으나 2~4회 정도 계속 반복된다. 기억을 잘 저장하고, 감정과 감성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과정도 이때 일어난다고 한다.

 

이처럼 잠은 공부지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로 전날 낮에 공부를 한 뒤 밤에 충분히 잠을 자고 시험을 본 학생과, 밤을 세워 공부한 학생을 놓고 비교 분석을 했더니 충분히 잠을 자고 시험을 본 학생의 성적이 훨씬 더 좋게 나왔다.

 

특히 유아기 때 잠은 성장, 뇌 발육, 면역 기능 그리고 감성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키가 작고,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들의 약 40~50퍼센트가 수면 장애를 호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가 부산한 행동을 하면 아이 탓으로 돌리며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아닌가 걱정하는데, 이럴 경우 먼저 아이에게 수면 장애가 있는지 살펴보는 게 좋다. 아이가 코를 골거나 입을 벌리고 자면 축농증, 비염, 소아 코골이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질병이 있으면 잠을 푹 자지 못해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되지 않는다. 성장호르몬은 깊은 잠을 자는 첫 단계 즉, 잠들고 나서 1시간 정도 지난 뒤에 가장 많이 분비되므로 아이의 숙면을 방해하는 질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야 키도 잘 크고, 면역력이 좋아지고, 공부지능도 좋아질 수 있다.

 

올바른 수면 습관을 길러주는 일도 중요하다. 성장호르몬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에 가장 활발하게 분비되므로 아이들이 늦게 자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밤에 늦게 자는 아이들의 수면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낮에는 가능하면 햇볕을 많이 쬐게 하고, 밤에는 형광등을 끈 뒤 암막 커튼 등으로 빛을 차단해 숙면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아이의 공부지능_ 민성원

by 미스터신 2018. 1. 11. 12:30

공부지능을 어떻게 발달시킬까?

 

공부지능을 개발하려면 뇌를 반복적으로 자극해 뇌의 기본 단위인 뉴런과 뉴런을 연결해주는 시냅스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뇌는 동시에 여러 기능이 발달하지 않는다. 즉, 아이의 언어능력, 사회성, 정서지능, 집중력, 감정표현능력 등이 전부 동시에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발달한다. 이는 뇌가 영역별로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고, 각 영역이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뇌가 한꺼번에 발달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특히 공부지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IQ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중에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아이들을 교육할 때 자주 참조하는 내용이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피아제는 아이의 지능을 검사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정신적 성숙, 다시 말해 아이의 인지발달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단계를 거쳐 순서대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피아제가 정리한 인지발달 단계는 크게 감각운동기, 전조작기, 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로 구분된다. 감각운동기는 0~2세, 전조작기는 2~7세, 구체적 조작기는 6~7세경부터 11~12세, 마지막으로 형식적 조작기는 11~12세부터 성인기 초기까지에 해당한다. 각 단계별로 주로 발달하는 인지능력이 다른데, 이는 뇌가 발달하는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반면 공부지능을 구성하는 또 다른 핵심 요소 EQ의 발달 단계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한 편이다. EQ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오랜 기간을 두고 발달할 수 있는 지능이기도 하고, EQ라는 개념이 1990년 미국 예일대 심리학 교수인 피터 샐로비와 뉴햄프셔대 존 메이어 교수에 의해 처음 정의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연구를 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EQ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순차적으로 발달한다. 아이는 태어난 후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이해한다. 또한 동생이 태어나거나 유치원에서 또래와 어울리면서 사회성을 키우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기도 한다. 이처럼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EQ 또한 발달할 수 있지만 아이 혼자서는 어렵다. 아이들의 EQ는 부모가 어떻게 도와주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뇌와 공부지능은 기본적으로 각 영역별로 발달하는 시기가 다르지만 각 영역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골고루 발달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피아제의 인지발달 단계를 기준으로 각 단계별로 인지능력뿐만 아니라 EQ, 집중력, 창의력 등의 공부지능이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정리해보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모든 아이들이 피아제의 4단계에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이 속한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거나 배우는 것이 느린 아이, 반대로 훨씬 빨리 배우는 아이를 모두 보았다. 이는 생체연령과 정신연령이 달라 생기는 문제다.

 

이런 아이들은 인지발달 단계에서 예외적인 아이들로, 선생님과 부모가 면밀한 관찰을 통해 아이가 어떤 단계에 속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런 다음 아이의 단계에 맞는 교육을 해야 인지능력을 발달시키고, 더 나아가 공부지능까지 연결해 개발시킬 수 있다.

 

감각운동기(0~2세) : IQ와 EQ, 신체능력 고루 발달

 

감각운동기는 피아제 인지발달의 첫 단계로 0~2세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뇌가 가장 빠르고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다.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등 뇌의 전 영역이 고루 발달하면서 IQ와 EQ의 바탕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IQ와 EQ는 물론 신체능력도 골고루 발달한다. 이처럼 0~2세까지는 뇌의 어느 한 부분만 발달하는 것이 아니므로 공부지능 전 영역이 고루 발달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감을 자극해 주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일찌감치 한글을 가르치는 부모들도 많은데, 그림책을 보여만 주기보다는 읽어주거나 책을 직접 만져보게 하는 등 오감을 모두 활용하면 IQ와 EQ를 동시에 발달시킬 수 있다.

 

특히 생후 18개월 전까지는 신체를 많이 사용하는 체험을 통해 다양한 감각을 경험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감각 기관이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다양한 감각을 체험하는 것이 뇌의 발달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물건이나 음식을 빨고, 만지고, 던지는 것을 방해하지 말고, 위험하지 않은 이상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아이의 소근육이 성장하고 감각을 사용하는 방법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우선 새로운 환경에서 단순한 반사를 한다. 신생아가 입술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빨아대는 '빨기 반사'가 대표적이다. 이미 이 단계의 신생아들도 그들의 반사를 도식화한다. 즉 신생아들이 머리와 입술을 동시에 움직여서 움직임이 엉키지 않도록 행동의 과정을 정한다는 뜻이다. 신생아들은 젖꼭지나 입안에 닿은 물체의 크기에 맞추어서 빨기 반사를 조절하기도 하며, 젖을 찾기 위해 머리와 입술의 움직임을 조정하고, 심지어 젖병이 입에 닿기 직전에 미리 이를 예측하여 입을 벌리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 반사적으로 한 행동을 계속 반복해서 완벽히 익숙해지면 이것을 기초로 의도적으로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른 행동에까지 익숙해진 다음에는 스스로 다양한 행동을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해 보려고 한다.

 

이렇게 발달한 아이는 대상 영속성 개념을 가진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물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엄마가 아이 앞에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아이는 두리번거리면서 엄마를 찾는다. 그러다가 엄마가 손을 치우면 엄마가 갑자기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재미있어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때는 대상 영속성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엄마의 얼굴이 손으로 가려져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각운동기에는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 주어야 하는데, 이를 심리학 용어로 '애착'이라고 한다. 엄마가 아이를 보고 행복해하고, 아이가 웃으면 함께 웃고, 엄마의 체온을 느끼게 하는 행동은 훗날 아이의 언어능력과 정서적 안정, 대인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가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보다 지능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데, 이는 모유와 분유의 성분 차이보다는 엄마와의 신체적 접촉을 통한 안정감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분유를 먹이더라도 아이를 품에 꼭 안고 눈을 맞추면서 충분한 교감을 나누면, 모유를 먹은 아이들 못지않게 지능이 발달할 수 있다.

 

부모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러 사람과 교감하면서 언어를 배우고 다양한 종류의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통해서 사회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IQ는 물론 EQ가 동시에 발달하는 셈이다.

 

뇌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발달한다. 긴장이 심하면 뇌가 쪼그라들어 활성화하기 힘들다. 따라서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편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럴수록 뇌가 편해져서 정서적으로는 물론 인지능력을 발달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전조작기(2~7세) : 언어가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

 

피아제의 인지발달 두 번째 단계인 전조작기는 약 2~7세에 해당하는 시기다. 뇌의 발달 측면에서 보면 측두엽과 후두엽이 가장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측두엽은 언어능력을 담당하고 후두엽은 시각 정보처리를 담당한다. 즉 언어능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여서 이때 다양한 언어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도와주면 아이가 빠르고 쉽게 언어를 배울 수 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은 전조작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히 IQ와 EQ를 동시에 개발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본격적으로 말을 배울 때 부모가 아이들에게 말을 자주 걸고 아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반응하면, 아이의 언어능력이 발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높아진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고 있다는 느낌이 아이로 하여금 긍정적인 자아를 갖게 한다.

 

측두엽과 함께 시각 정보를 담당하는 후두엽도 활발하게 발달하므로 다양한 시각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말을 가르칠 때 동물 그림을 활용하면 훨씬 빨리 언어를 익힐 수 있고, 측두엽과 후두엽이 자극을 받아 더욱 발달할 수 있다.

 

동화책 읽어주기도 언어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 좋은데, 이는 아이가 엄마의 목소리에서 심리적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전조작기는 2~4세의 '전개념적 사고 단계'와 4~7세의 '직관적 사고 단계'로 나뉜다. 4세 이전의 아이들에게 "토끼가 무엇인지 아니?"하고 물으면 대부분 '털이 하얘요', '귀가 길어요'등 토끼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답을 하지, '토끼는 동물의 한 종류예요' 같이 토끼의 개념을 언어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려워한다. 이 무렵 아이들은 보통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에 집중하는 전개념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전개념적 사고 단계에서는 시각적인 교구나 책이 지능발달에 효과적이고, 4~7세의 직관적 사고 단계에서는 일정한 줄거리를 담고 있는 책들이 도움이 된다. 만일 우리 아이가 4세인데 전개념적 사고를 넘어 6세의 직관적 사고를 한다면 신체연령은 4세지만 정신연령은 6세라고 볼 수 있으므로 6세에 맞는 지적 자극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의 세심한 관찰을 통해 정신연령에 맞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시중에는 많은 종류의 시각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책과 교구재 등이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하면 공간지각능력, 집중력, 단기기억력 등의 동작성 지능이 효과적으로 발달한다. 가베, 팩토, 오르다 등이 대표적인 교구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도 난이도에 따라 수준을 분류한 것을 선택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언어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 미국에서는 아동 도서의 난이도를 매우 정밀하게 분류한다. 책에 쓰인 내용과 단어의 난이도, 문장의 길이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여 아이의 영어 독서능력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렉사일 지수', 'AR지수', 'RL지수' 등으로 구분한다. 특히 미국의 아동 전문 출판사 스콜라틱스의 책은 지수에 맞게 난이도를 높혀 가며 읽히면 언어성을 키워주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지수를 사용하지 않지만 아동 전문 출판사인 교원이 발달 단계와 읽기 수준에 따라 분류한 책들을 출간하고 있다. 같은 제목의 동화책이더라도 5세, 7세, 10세 연령별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하였는데, 이는 책의 난이도를 고려하였다는 뜻이다. 아이에게 읽어줄 책을 선정할 때도 아이의 선체연령이 아닌 정신연령에 맞는 책을 골라주는 것이 좋다.

 

구체적 조작기(6~12세) : IQ 전 영역과 집중력 발달 시기

 

구체적 조작기는 6~7세부터 11~12세까지,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6년이 바로 이 시기에 속한다. 또 '생각하는 뇌'라고 불리는 전두엽과 전두엽 중에서도 가장 앞부분에 있는 전전두엽이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다. 공부지능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IQ와 EQ는 이 전전두엽, 전두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초등학교 6년이 공부지능을 개발하는 최적의 시기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부지능의 부가적인 요소인 집중력도 만 6세 이후부터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인지적, 논리적인 면에서 매우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전 단계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형태가 변해도 양과 부피는 보존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따라서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의 특징을 넘어서 물체들을 색깔과 형태에 따라 상위 항목과 하위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다. 크기나 무게에 따라 순서대로 배열할 수 있으며 논리적인 추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시기 아이들의 논리적 사고는 자신의 경험과 많이 관련되어 있어서 성인처럼 추상적인 내용을 추리하지는 못한다. 만약 신체연령이 5세인데도 논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다면 그 아이의 정신연령은 5세가 아니다. 구체적 조작기에 이미 도달하였기 때문에 그 때에 맞는 교육을 시켜야 적기 교육인 것이다.

 

10세 이상인 아이의 뇌는 반복적인 행동을 했을 때 시냅스가 발달하고 정교해지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특히 적기를 잘 생각해서 다양한 체험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나는 특히 이 시기에 수학과 국어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학과 국어 공부를 통해서 구체적 조작기의 뇌를 매우 정교하게 발달시킬 수 있다.

 

단, 구체적 조작기에는 생체연령과 정신연령을 동일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전조작기까지는 생체연령과 정신연령의 차이가 크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 조작기에 접어들면 뇌의 기능이 폭발적으로 개발되어 같은 나이라도 정신연령이 크게 차이 날 수 있다. 아이의 생체연령은 8세지만 정신연령은 다를 수 있으므로 내 아이의 정신연령이 몇 세인지를 찾아내는 일도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난이도에 따라 분류된 교재나 교구 중에서 아이가 다소 힘들어하는 부분을 찾거나 정기적인 지능검사를 통해 아이의 정신연령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만일 아이의 수준보다 쉬운 책을 반복해서 읽어준다면 적기에 지능이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나는 연구소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칠 때, 공부지능의 발달을 돕기 위해 독일에서 개발된 '루크'를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언어성과 동작성, 집중력을 골고루 개발할 수 있는 뇌 과학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이다. 연산력과 작업기억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서울교대 배종수 교수가 개발한 18단계로 이루어진 '머리셈 교재'를 함께 활용한다. 기억력과 집중력을 함께 키워주기 위해 뇌가소성 이론을 근간으로 개발된 '브레인 HQ 프로그램'도 사용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체적 조작기는 아이들의 지능이 매우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기다. 이때 얼마만큼 지능을 발달시키느냐에 따라 이후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사고가 얼마나 가능하느냐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적으로 지능을 개발해야 한다. 구체적 조작기에 해당하는 약 6~9년 동안 그때그때 적기에 맞는 책, 교구, 교재 등을 활용하면 유전적으로 타고난 지능을 강화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형식적 조작기(11~18세) : 논리적 추리력 발달 시기

 

형식적 조작기는 파이제 인지발달의 마지막 단계로, 11~12세경부터 성인기 초기까지 계속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들의 사고는 성인들처럼 발달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추상적인 내용으로 논리적인 추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때부터는 '여기, 그리고 지금'의 상황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한 아이가 울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상황을 보고 구체적 조작기의 아이는 '나도 예전에 넘어져 운 적이 있어. 아마 저 아이도 넘어져서 우는 걸 거야'라고 생각한다. 반면 형식적 조작기의 아이는 '배를 잡고 우는 것을 보니 배가 아픈가 봐', '큰 아이가 들고 있는 장난감을 보면서 우는 것을 보니 장난감을 빼앗겼을 거야' 등 자신의 경험과 상관없는 추리도 할 수 있다. 형식적 조작기의 아이는 명제를 이해할 수 있어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지능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역시 생체연령으로 발달단계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요즘은 특히 생체연령은 구체적 조작기에 해당하는데 정신연령이 형식적 조작기 수준인 아이들이 많다. 피아제가 인지발달 단계를 연구했을 때보다 뇌와 인지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더 발달하기도 했고, 충분한 영양 공급, 조기교육, 교육기관의 발달, 교수방법의 발달, 교육열 증가로 인해 아이들의 정신연령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교육에 있어 독해력과 어휘력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공부는 구체적 조작기에 맞는 학습이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공부는 형식적 조작기에 하는 것이 좋다. 수학에서도 11세까지는 연산이나 계통 수학 개념 위주의 공부가 수학적 사고력과 지능 개발에 도움이 되고, 사고력 수학이나 문제해결력을 요구하는 심화 문제는 고학년이 되어서 접근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데 종종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심화 문제를 풀고 사고력 수학을 재미있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아이의 지능을 검사해 보면 상위 2퍼센트 이내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정신연령으로 보면 6학년 수준인 셈이다. 이 아이의 경우 신체연령은 구체적 조작기이지만 정신연령은 형식적 조작기이기 때문에 사고력 수학을 공부해도 적기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연령이 형식적 조작기에 미치지 않는 아이들이 심화 문제와 사고력 수학을 한다면 별 효과가 없는 수준의 학습이 되고 만다.

 

이처럼 생체연령과 정신연령이 다른 경우가 많으므로 생체연령의 기준에 연연해하지 말고 정신연령을 기준으로 내 아이에게 맞는 수준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뇌를 최대한 발달시켜 공부지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뇌는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공부지능은 분명 타고나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후천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공부지능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하는 근거는 바로 '뇌가소성'에 있다. 뇌가소성이란 뇌는 성장을 다하면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말한다. 즉, 예전에는 뇌를 구성하는 뇌세포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습이나 환경에 따라 뇌세포가 계속 성장하거나 쇠퇴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뇌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완성되어 있다. 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과거에는 아이의 뇌를 새하얀 도화지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의 지능이 타고나기보다 태어난 이후 부모와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뇌의 구조가 알려지면서 아이의 뇌가 하얀 도화지가 아니라 처음부터 많은 것이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의 뇌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뉴런은 임신 6개월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아이가 태어날 때는 1000억 개 가량이 완성된다. 이는 성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개수다. 즉, 신생아의 뇌와 성인의 뇌는 적어도 기본 구조에서만큼은 큰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아이는 텅 빈 도화지 같은 뇌가 아니라 이미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도화지 같은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 많은 사람의 견해다. 공부지능이 반은 타고난다고 보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태어날 때 이미 뇌가 꽤 정교한 밑그림을 갖춘 상태라면, 부모가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도 뇌가 알아서 발달할까? 밑그림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 자체가 완성된 그림은 아니다. 태어날 때 뉴런의 개수가 성인과 비슷하다고 해서 태어나자마자 성인처럼 유창하게 말을 하거나 일어나 걸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뉴런은 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신경세포지만 뉴런만으로 뇌가 발달하지는 않는다. 뉴런이 뇌의 기본적인 성능을 결정한다면, 세밀하고 치밀한 행동은 뇌에 있는 뉴런들을 이어 주는 시냅스의 수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시냅스는 생후 4개월까지 급속하게 늘어나며, 다양한 경험을 하면 시냅스의 수가 많아진다. 아이가 생후 한 살이 지나면 뇌에서 쓰지 않는 시냅스를 없애기 시작하는데 이를 '가지치기'라고 한다. 시냅스가 많을수록 뇌가 할 수 있는 능력도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냅스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가지치기는 시냅스를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쓰지 않는 시냅스를 버리는 일은 아이의 뇌가 중요한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구분해서 선택한다는 뜻이다. 컴퓨터와 달리 뇌는 환경에서 중요한 것을 골라 스스로 발전하고 변화한다.

 

결국 뇌는 비교적 정교한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도화지와도 같지만 그 밑그림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적절한 시기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극을 주면 아이의 뇌는 좋은 방향으로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다. 반대로 꼭 필요한 시기에 제대로 좋은 자극을 주지 않으면 아이는 밑그림 단계에서 머물 수도 있다. 자극을 받더라도 스트레스나 상처와 같은 부정적인 자극을 받으면 EQ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뇌가소성을 이해한다면 반복과 강화를 통해서 뇌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학에서의 연산, 어휘 학습, 암기 훈련 등이 뇌를 효과적으로 발달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반복하기 좋은 교육이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지능을 발달시킨다.

 

사고력 수학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은 중학교 이상인 아이들에게나 가능한 얘기다. 적어도 초등학교때까지는 뇌를 발달시키는 데 사고력 수학보다는 연산이 효과적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단어를 많이 외우는 것이 지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글쓰기와 같이 표현하는 훈련은 중고등학교 이후에 하는 것이 좋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논술교육 역시 중학교 이후에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이처럼 아이의 뇌는 어떤 자극을 주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발달할 수 있다. 뇌가소성을 이해하고 적기에 적절한 자극을 줄 수 있도록 부모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초등 6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드는 최적의 시기

 

공부지능 개발의 적기는 초등학교 6년이라 보면 된다. 조금 더 넓게 잡으면 3~4세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도 포함되지만, 적기를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간이라 본다면 초등학교 6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공부지능을 기반으로 한 학습으로 초등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공부지능은 타고나는 요인이 분명 있지만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

 

내가 진행하는 공부지능 기반 학습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공부지능 중 강점 지능과 약점 지능을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나아가 기준이 아닌 아이의 공부지능에 맞춰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끼리 묶는다. 그리고 각 집단마다 현재 수준에 맞는 난이도와 진도를 설계해 수업을 진행한다.

 

보통 강점과 약점을 이야기할 때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성인에 국한된 이야기다. 자기계발할 시간도 많지 않고, 능력을 더 발전시키려 해도 개발 적기가 지나 효과가 미미할 때는 약점보다 강점에 집중하는 것이 성과를 내는 데 유리하다.

 

아이들의 공부지능을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적기에는 어느 한두 가지 두각을 나타내는 능력에만 집중해서는 곤란하다. 여러 공부지능 중 강점 지능은 더욱 강화하고, 약점 지능은 보완하려는 노력을 병행해 각 부분별 지능 간에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지능 개발 적기는 충분히 긴 시간이므로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시기에는 오히려 IQ, EQ, 집중력, 창의력 이 4가지 영역을 골고루 개발시키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초등학교 때 어떤 지능이 강점이고 약점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아이들의 잠재력이 무한한다. 그래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공부지능을 개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언어에 대한 가능성을 개발해 독해력을 키우거나 잠재해 있는 연산 능력을 끄집어 내어 어려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 수 있을 정도로 연산력과 추론력을 키울 수 있다. 이런 모든 노력들이 공부지능을 높여 주고, 스스로도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아이를 만든다.

 

아이의 공부지능_ 민성원

by 미스터신 2018. 1. 11. 11:19

그렇다면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일까.

스가하라 교수에 따르면 "'엄마의 마음건강'과 '부부 사이', 보육원 등의 '보육의 질'이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줘 문제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게 연구에서 확인된 결과들이다. "중요한 건 안전한 환경에서 애정을 갖고 양육하느냐 여부"이며 "엄마뿐만 아니라 조부모나 아빠, 아이 보는 사람, 보육사 등 어떤 의미에서는 어떤 사람이 돌보더라도 괜찮다"고 한다.

40년 이상 엄마와 관련된 양육문제를 연구해온 오히나타 마사미(大日向雅美) 게이센죠가쿠엔(恵泉女学園)대학 총장은 6천 명 이상의 엄마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아직도 3세 신화가 믿어지고 있는 걸 확인하고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정말 변하기 어렵다는 걸 절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3살까지가 `대단히 중요한 시기'라는 건 사실이며 이 시기에 사랑을 받아 자신감을 갖고 남을 믿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 시기에 '엄마가 육아에 전념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바뀌어야 하며 엄마 뿐 아니라 아빠나 조부모, 이웃 등 여러 곳에서 애정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나타 총장은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 확실하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되 젊은 세대가 아이를 재울 때 그림책을 한 권 읽어주는 정도의 여유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처 - 연합뉴스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14/0200000000AKR20171114109100009.HTML?input=1179m

by 미스터신 2017. 11. 16. 16:49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주역, 데이터 과학자

 

에스토니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데이터를 분석해 가치를 뽑아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대표적인 직업이 데이터 과학자다. 데이터 과학자는 갖가지 경로로 수집, 축적되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일정한 패턴과 상관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분석하고 결정하는 일을 한다.

 

미국의 <매킨지 보고서>는 2018년 미국 내 데이터 과학자가 16만 명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데이터 과학자라는 직업이 생긴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초임 연봉이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로 치솟았고, 여기에 미국 백악관까지 가세해 지난 오바마 정부는 2015년 최초로 정부의 데이터 정책을 총괄하는 수석 데이터 과학자를 행정부에 임명하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데이터 과학자를 '21세기 가장 섹시한 직업'이라고 부른다. 데이터 과학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 가장 각광받는 직업으로 등장했다.

 

우리나라 데이터 산업의 일자리 역시 미국처럼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데이터 과학자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데이터 과학을 배우려는 열기 또한 뜨겁다.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마케팅에 활용하는 국내 데이터 솔루션 전문 회사 엔코아의 경우 데이터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수업의 경쟁률이 10대 1에 달한다. 이밖에도 데이터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많은 강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고, 오픈 소스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배우는 공개 모임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2016년 발표한 일자리에 관한 통계를 보면, 2020년까지 단순 사무직을 비롯해 72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 대신 21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데, 새롭게 생기는 대표적인 일자리는 데이터, 컴퓨터, 수학 분야다. 현재 7세 이하의 어린이가 사회에 나가 직업을 선택할 때가 되면 그들 중 65퍼센트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데이터 과학자가 아무리 필요하다 해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수학 교육,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비해 사라지는 일자리는 너무 많고,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모두가 될 수 없는 그 길을 위해 우리는 데이터와 수학에 머리를 파묻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에스토니아의 어린이로부터 들어보자. "저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요. 축구를 하는 데 지금 하는 수학 교육이 도움이 될 것 같냐고요? 물론이에요.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도 통계를 비롯한 컴퓨터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데이터 과학자라는 직함을 갖지 않더라도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자기 일을 잘 정리해 데이터화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넓은 의미의 데이터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데이터를 이용하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만약 장사를 한다면 손님이 언제 많이 올지, 어떤 물건이 많이 팔릴지부터 시작해, 데이터를 활용해 무궁무진한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분야에서든 데이터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게임 체인저란 정해진 룰의 범위 안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아예 게임의 룰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1, 2, 3차 산업혁명은 누군가가 1을 만들어 놓으면 그걸 N개로 늘려가는 수평적 확장의 개념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0으로부터 1을 만드는 수직적 혁신을 의미한다.

 

수직적 혁신은 전혀 다른 단계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저장장치가 비디오테이프에서 CD로, 그리고 USB로 발전한 것처럼, 모방을 통한 확장이 아니라 아무도 아직 건드리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이 수직적 혁신이다. 그런 수직적 혁신을 일으키는 이들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원하는 인재다.

 

데이터 과학이 만들어낸 쿠팡의 성공

 

게임 체인저의 예는 가까운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과학기술 전문지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서는 매년 세계적 혁신기업을 발표하는데, 50대 스마트 기업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한국의 기업이 있다. 이들이 뽑는 혁신기업의 조건은 굉장히 까다롭다. '깜짝 놀랄 만큼 세상을 바꿀 만한 기술이 있는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혁신적인가', '압도적인 창의적 기술로 시장의 근본 틀을 바꿀 기업인가.'

 

어디일까? 44위에 오른 쿠팡이 바로 그곳이다. 어떻게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나 엘지가 아닌 국내 스타트업이 세계적 혁신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 사실 2013년만 하더라도 쿠팡은 소셜커머스 업체들 사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데 2년 뒤 매출이 무려 23배나 상승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비밀은 쿠팡의 물류센터에 있다. 쿠팡 물류센터에는 일반 물류센터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 작동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포장하기 전 제품의 배치 방식이다. 종류별, 항목별 규칙은 찾아볼 수 없다. 아기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옆에 식료품인 과자가 놓여 있는 식이다.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여성들이 많이 주문하는 것 중에 여성용품과 식품, 아기용품이 같이 잘 팔리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배치했습니다. 데이터 시스템을 기반으로 상품을 진열하고 배치한 덕분에 집품의 효율을 최대한 높여 '로켓 배송'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쿠팡 관계자의 말처럼, 관련 없는 물건들이 마구잡이로 배열된 것처럼 보이는 속에 데이터 과학이 숨어 있다. 창업 첫해인 2010년 60억원이었던 쿠팡의 거래액은 2014년 2조 원으로 껑충 뛰었다. 300배 넘게 급증한 비결은 이렇듯  철저한 데이터 분석에 있었다.

 

데이터에 기반한 독특한 진열 방식은 제품을 고르고 포장하는 데 걸리는 동선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줄여준다. 포장이 완료되면 자동 분류 시스템이 정보를 읽어 배송 목적지별로 분류한다. 이 시스템은 트럭의 목적지별 예상물량까지 정확하게 계산한다. 물류 매입부터 배송까지 원스톱 서비스는 데이터 과학이 만든 시스템이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전달하는 과정에도 역시 데이터를 이용한다. '쿠팡팬'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에는 배송 정보가 공유되어 첫 고객인지, 재구매 고객인지, 언제 배송이 약속되어 있는지, 고객의 요청사항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아이가 있는 고객이 배송 시 초인종을 누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면 쿠팡맨은 해당 메시지를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하여, 다른 쿠팡맨이 해당 가정을 방문해도 벨을 누르지 않도록 하는 식이다. 데이터 과학으로 만들어진 쿠팡맨과 로켓 배송을 통해 2015년 쿠팡의 배송 시스템 만족도는 98퍼센트에 이르렀다. 일반 택배 배송의 만족도 39퍼센트와는 비교 불가의 수치다.

 

꼴찌에서 일등이 될 수 있었던 쿠팡의 혁신, 그 중심에는 바로 데이터가 있었다. 이를 통해 쿠팡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2015년에는 일본의 IT 기업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 원이 넘는 투자를 받기도 했다.

 

대치동이 범접할 수 없는 시골 초등학교의 멋진 교육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7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매일 열다섯 시간씩이나 낭비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구구단을 외우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보다 구구단을 못 외운 상태에서 곱하기를 할 때 다양한 방법을 스스로 찾는 과정을 통해 논리적인 사고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점수로 줄을 세우기 위해 학생을 문제 풀이 기계로 키우는 교육,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여전히 묶여 있는 우리의 교육은 이에 비하면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 시골의 아주 작은 학교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교생이 80여 명밖에 안 되는 충북 진천의 초평초등학교가 그곳이다. 학생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한번 들여다보자.

 

5학년 학생들의 반에서는 교육용 로봇인 햄스터를 이용하는 수업이 한창이다. 학생들은 능숙하게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한다. 명령어를 프로그래밍해서 햄스터 로봇이 구석구석 청소하게 하는 것이 이날의 과제다. 학생들 스스로 회전 시간, 이동 방법, 방향 바꾸기 등 로봇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범위를 논리적으로 설계한다.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학생들은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로봇 청소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알고리즘, 논리적 사고, 컴퓨터적인 사고를 끊임없이 향상시킨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프로그램 설치도 잘 못했어요. 처음에는 컴퓨터를 굉장히 낯설어했지요. 이제는 과제를 주면 제가 가르치지 않은 부분까지도 잘 수행해요. 컴퓨터 언어를 이용해 창의적으로 과제를 풀어나가면서 아이들의 컴퓨터적 사고력이 굉장히 많이 늘었어요."

 

초평초등학교 교사의 말처럼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은 작은 시골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교실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교육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초등학교 교육비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대학교, 나아가 대학원과 유학까지 모든 교육비를 지역사회가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2008년에 학생 수가 50명까지 줄어들면서 폐교라는 최후통지를 받은 아픈 과거가 있었다. 그런데 2009년 이 마을 주변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받은 보상금을 모아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모든 주민이 적게는 몇백만 원, 많게는 몇천만 원의 보상금을 선뜻 내놓은 결과, 초평초등학교 학생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앞선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초평초등학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맞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부터 초중등학교에 소프트웨어 교육이 의무화한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수학 교육은 그대로 하면서 소프트웨어 교육만 더하는 식은 곤란하다.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문과, 이과를 나누면서 수학 공부의 범위를 미리 정해버리는 방식에 대해서도 과연 옳은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소위 문과에 속하는 과목은 상상력을 키워주는 학문인데, 그것이 수학, 데이터 등과 만나 융합할 때 큰 폭발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미분이 무엇인지 통계가 무엇인지 싹 다 잊어 버리는 교육이 아니라, 원리를 알아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자기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악보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원하는 멜로디를 그릴 수 있고 악보만 봐도 멜로디가 떠오르듯이, 수학은 우리의 생각과 논리를 전개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즉 수학을 잘 활용하면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낼 수도, 접할 수도, 확장할 수도 있다.

 

우리는 두 개의 지구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발로 딛고 있는 지구이고, 또 다른 지구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디지털 지구이다. 첫 번째 지구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축구 경기장에 놓인 침대 하나에 불과하지만, 국경이 없는 디지털 지구는 무한하다.

 

물리적 지구가 무대였던 1, 2, 3차 산업혁명은 좁디좁은 지구에서 물건을 만드는 하드파워 경제를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어느덧 우리 앞에 쓰나미처럼 닥친 4차 산업혁명에서 거대한 파도를 헤쳐 나갈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상상이라는 총알에, 도전이라는 방아쇠를 당겨, 혁신이라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소프트파워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은 과거를 고집하는 자가 아닌 미래를 상상하는 자다. 상상의 힘으로 거대한 혁신을 만드는 사람. 0을 1로, 낫씽(nothing)에서 썸씽(Something)을 만들어내는 사람. 이를 위한 교육은 더 넓고 평등하게, 더 새롭고 자유롭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수학적 사고와 데이터 마인드를 갖춰야 살아남는다_ 손현철 PD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합니까?'

 

녹화 때 미래참여단의 한 학부모가 던진 질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로 2020년까지 15개 선진국에서 700만 개의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 반도 안 되는 200만 개의 새 일자리가 생긴다고 하니, 자식을 둔 부모의 불안과 염려에서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절박한 물음이었다. 갓 대학에 입학한 딸을 둔 나 역시 학부모로서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그램 역시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먼저 신생 기업과 인재 채용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기 위해 전문가들을 만나고 관련 매체를 찾아봤다. 4차 산업혁명의 선두에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 데이터 기술 관련 기업이 급증하는 추세였다. 2015년 이후 선진국의 신생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데이터 기반 업체들이었다. 미국의 데이터 관련 기업은 2011년 150개에서 2016년 3800여 개로 늘어났다. 당연히 데이터 전문 인력 수요도 늘어났다. 2016년 1월 미국의 취업전문 사이트 글래스도어는 1700개 직업 중 미래 최고의 직업으로 데이터 과학자를 선정했다. 평균 연봉 1억 3000만 원, 미국 내 상위권 소득이다. 2011년 매킨지는 2018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150만 명의 데이터 관련 전문가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했다.

 

더욱 상징적인 사례도 보였다. 2015년 2월 오바마 대통령이 패틸 박사를 미국 행정부 최초의 수석 데이터 과학자로 임명했다. 그의 임무는 미국 정부가 생산하고 관리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도 축적된 데이터를 미래 자본으로 활용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오죽하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 시대의 핵심 자원은 석유가 아니라 데이터다. 미래의 데이터는 일종의 생산자원이며, 미래의 생산력은 바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컴퓨팅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국내 대학에 개설된 데이터 전문학과는 손에 꼽을 정도다. 국내 굴지의 한 데이터솔루션 업체는 적합한 능력을 갖춘 인력을 채용하기가 어려워지자, 자체 데이터 아카데미를 개설해서 수료한 사람 중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뽑아 쓴다. 왜 이런 인력 수급 지체현상이 일어날까? 결국 교육의 문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인 데이터를 분석하고 통찰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전문가들은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학이라니?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수학을 포기하는 소위 '수포자'가 반을 훨씬 넘는 나라에서 데이터 마인드를 키우는 교육이 가능하기나 할까?

 

미래 사회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을 가장 잘 교육하는 나라가 어디일까 찾아봤다. 그러던 중 세계 최초의 컴퓨터 기반 수학 교육을 시작한 에스토니아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의 데이터 마인드를 키우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통계와 확률을 가르친다.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해 20여 년 만에 1인당 GNP가 열다섯 배 늘어난 나라, 북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면서, 세계적인 영상통화 앱 스카이프를 만들어낸 나라다.

 

에스토니아의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 과정이 합쳐진 김나지움까지 여러 곳의 학교, IT 융합교육지원 단체, 교육부 등을 취재했다. '스카이프 마피아'라고 불리는 스카이프 출신들이 창업한 데이터 기반 스타트업들도 만났다. 인구 130만 명밖에 안 되는 이 작은 나라는 디지털 시민권을 발급해 전 세계의 창의적인 사업가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데이터 교육 열풍을 취재했다. 이들은 대학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데이터 처리, 분석 방법을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서로 토론하면서 학습한다. 이들은 또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열고 전문가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고 정보를 교환한다. 우리가 취재한 한 모임은 십대들의 아이돌 팬 사인회처럼 열기가 뜨거웠다. 강연과 발표 내내 제도권 교육이 해주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열정, 변화하는 시대에 뒤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국내의 수학 교육을 바꿔보려는 작은 노력들도 발견했다. 삼성화재 부사장직을 그만두고 수학 교육 혁명 전도사가 된 조봉한 박사와 함께 새로운 수학 교육의 가능성을 시험해봤다. 인공지능을 전공한 조 박사는, 한국의 수학 교육이 개념 이해도 없이 문제 풀이만 무한 반복시키는 '수포자' 양산 시스템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원리 이해를 바탕으로 순차적,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학적 사고 체화 교육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시급하다고 역설한다. 제대로 된 수학 교육은 학생들이 세상의 변화와 사물들의 관계를 정량적으로 이해하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제작팀은 수원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조 박사가 개발한 수학 교육 프로그램으로 미적분의 원리를 가르쳐 보았다. 4주 동안 총 열두 시간을 놀이기구와 그림으로 재미있게 공부하고 난 뒤 수학을 전공하는 서울대생과 함께 수능문제를 풀어보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초등학생들은 미적분의 공식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 문제에 담김 의미를 읽고 답을 찾아냈다.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구체화한 21세기 들어 학생들에게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을 융합적으로 가르치는 융합인재교육(STEAM)을 시작했다. 미래 사회는 수학적 사고방식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과학, 기술, 공학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인재를 원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서열이 높은 대학에 아이들을 밀어 넣기 위해 기계적인 문제 풀이 위주의 수학을 가르치며 학생 대부분을 수포자로 만든다. 수포자가 아닌 학생들도 대부분은 대학에 합격하는 순간 지긋지긋한 수학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방송이 나간 후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데이터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평소보다 수강생이 몇 배나 늘었다는 것이다. 데이터 과학자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조금이나마 높아진 것이다. 조봉한 박사의 수학 프로그램에도 교육계의 관심이 많아졌다. 하루아침에 교육 과정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학생, 학부모, 교육자, 정책 담당자들이 우리 교육의 미래 효용성에 대해 작은 문제의식이나마 가지게 됐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교육 혁신은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교육 과정을 과감하게 바꾸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선진국 미래 세대와의 경쟁에서 영영 뒤처질지 모른다.

 

명견만리 - 정치, 생애, 직업, 탐구 편

by 미스터신 2017. 11. 16. 16:24

디지털 기술이 인간을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중요한 점들을 잘 짚어주고 있는 책입니다. 표지에는 니콜라스 카를 IT 미래학자,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점을 한마디로 말하면, 디지털 기술이 우리 인간을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뇌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뭐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깊이 들여다볼수록 엄청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책 제목 그대로 인간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전에는 무언가 모르는 것, 생소한 단어를 보면 잠시 멈추고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머릿속에 저장해둔 배경지식들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단어와 연결시켜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잘 모르면, 글의 앞뒤를 다시 읽으며 추론을 해서 이해했지요. 그도 안 될 때 사전을 찾아서 뜻을 익히고요.

 

이렇게 독자는 새로운 정보를 스스로 해독하여 습득하고 그것을 통해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하는 동안 우리의 전두엽이 움직이고 그 속의 해마가 활발히 헤엄치면서 '창의력'이라는 아기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 과정을 과감히 생략해버리고 있습니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를 칩니다. 인터넷에 정보처리과정을 기꺼이 양보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니 인간은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인터넷은 똑똑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생성'과 '연결'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처리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해냅니다. 책을 읽을 때 질문을 하고 그 뜻을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를 생성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인지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누군가는 이런 주장에 반기를 들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취사선택하는 과정도 읽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지요. 이런 주장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정보들도 분명히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이고, 전문가들의 고급정보도 많으니까요. 인터넷 정보들을 인식하는 것도 분명 정보처리과정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 세 가지 면에서 문제점을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터넷은 사람들을 자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꼭 필요한 정보만을 찾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것들도 접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깊은 사고를 해야 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 뇌에서 참신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둘째,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사람들은 자주 길을 잃습니다. 처음에 찾고자 했던 정보는 잊어버리고 여기저기 헤매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학자들은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셋째, 인터넷은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로 기능하기보다 오락적 매체로 기능하는 측면이 더 강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심각하고 진지한 독서를 하려고 하지 않지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자신의 목적에 따라 필요한 정보들을 찾고 그것들을 재가공하고 비판하며, 적절한 곳에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미 요소만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무엇을 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그들이 보는 것은 드라마,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게임, 쇼핑, 로맨스, 소설 등이 압도적입니다.

 

이렇듯 점점 많은 사람들이 진지한 책, 두꺼운 책 읽기를 귀찮아합니다. 아니 사실은 읽지 못한다고 봐야겠지요. 앞으로 사람들은 점점 더 책과 멀어질 것입니다. 이미 뚜렷하게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책이 안 팔리고 있으니까요. 이제 두꺼운 책은 중세시대 일부 귀족들의 책장에만 존재하던 고전의 신세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자녀에게 종이책을 읽히는 IT 기술자들

 

모두가 책을 멀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에 이런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기자가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들이 아이패드를 좋아하느냐?" 라고 질문했더니, 그가 자기 자녀들은 아이패드를 써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잡스의 공식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는 저녁이면 부엌에 있는 길고 커다란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책과 역사, 그 외에 여러 가지 화제를 놓고 이야기했다" 라고 말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뿐만 아니라 IT 기술자나 벤처사업가 중에는 자녀로 하여금 학교 수업이 있는 평일에는 어떠한 기기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주말에만 일정 시간 범위에서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테크놀로지가 아이들에게 미칠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기사에 덧붙여 놓았습니다.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를 쓴 제이슨 머코스키는 아마존 킨들 개발자로 전자책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전자책이 미래의 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린이용 전자책 출간에 대해서는 아직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미국 IT 기술자들의 자녀들이 많이 다닌다는 발도르프 학교에서도 열살 이전에 컴퓨터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하도록 할까요? 그들은 손으로 하는 일, 느리고 오랫동안 몰입하는 일을 하게 합니다. 목공 일, 흙을 만지고 도자기를 만드는 일, 뜨개질을 하거나 산책, 명상, 독서를 하지요. 이런 것들은 느긋하게 사색하고 성찰하는 습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줍니다.

 

디지털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사색과 독서를 하라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유명한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은 이미 1960년대에 미디어가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예견했습니다. 그가 던진 이 말은 '진짜가 아닌 미디어, 즉 매체가 의미를 갖게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이 그토록 유명한 진짜 이유는 이 짧은 한 마디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빨리 갖고 싶어서 매장 앞에서 밤새워가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겼지요. 이처럼 첨단제품 열혈 구매자를 일컬어 가젯러버라고 합니다. 맥루한은 사람들이 이렇게 첨단 디지털 기기에 매혹당하는 이유를 그리스 신화 '나르시스' 이야기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나르시스가 거울을 통해 본 자신에게 매혹당했듯이 인간도 자신을 비춰주는 도구에 매혹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확장된 형태에 매혹되어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것이지요.

 

맥루한은 기술과 인간의 의식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합니다. 그는 미국 작가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소용돌이 속에서'를 언급하면서 디지털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황하지 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머리를 굴리라고 조언합니다. 인간은 소용돌이를 만들 재주도 있지만 자기 목숨을 구할 재주도 있다면서 새로운 환경에 휩쓸려 정신을 잃지 말고 그 환경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라고 합니다.

 

디지털 홍수에 떠밀려가지 않으려면 지루함을 즐기고 심사숙고하며 가치를 탐구해야 합니다. 독서를 통해 말입니다. 독서는 디지털 세상과 소통하고 디지털 세상을 성찰하며 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최근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디지털 관련 책들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독서를 해라'입니다.

 

'퓨처 마인드'의 저자 리처드 왓슨은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 머릿속에 저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은 구글 창고에 있어서 언제든지 검색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두뇌에 저장하지 않고 컴퓨터에 저장된 것을 꺼내 쓰다 보니 인간은 점점 더 지식을 저장하고 생성하고 가공하는 기능을 잃어버린다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분석하고 평가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고등사고기능을 상실해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열심히 텔레비전이나 광고를 보지만,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해 못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서서히 우리의 정신세계에 침투하여 우리의 의식을 점령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자주 보았던 것들을 친근하게 여기고 그것들을 진짜로 인식하게 되니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현대인은 읽을 수 있으나 읽지 않는 문맹인이다"라는 말을 한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요?

 

문화에 무지한 디지털 시대

 

"디지털 시대, 21세기의 10대는 문화에 있어서 시골뜨기이다."

이 말은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창업자 빌 조이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이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요?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은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하느라 뇌가 지쳐서 정작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데에 뇌를 쓸 여력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만 관찰해도 쉽게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SNS에 올라온 정보들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사람들은 골치 아픈 뉴스나 고전, 사회과학 도서, 철학적 사유를 필요로 하는 글을 읽으려 하지 않지요. SNS에 올라온 지식들 중에도 유익한 것들이 있겠지만, 일단 이런 글들의 특성은 친근성과 근접성입니다.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주고받는 정보가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문화를 읽어내는 관점이나 시야가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문화에 무지하다. 문화를 읽어내는 능력이 촌뜨기 수준이라는 말은 결국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잘 모르고 그것에 매몰되어버리는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정적 사고에 휘말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지요. 고정적 사고에 휘말린다는 것은 자신만의 생각,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독서는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렇다고 미디어가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괴물은 아닙니다. 텔레비전을 거실에서 치운다고 해서 미디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요. 이미 미디어는 공기와도 같이 우리의 환경 그 자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해결책은 미디어를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미디어를 활요하고 미디어를 통해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 캐나다와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미디어 교육을 공교육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7차 개정교과서에서부터 국어 과목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담당하고 있지요.

 

미디어 리터러시는 독서를 바탕으로 모든 매체들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비판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책을 제대로 읽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되 책과 미디어를 연결지어 새로운 것을 창출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소설을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뮤지컬로, 광고로 변환할 줄 알아야 하며, 반대로 영화를 다시 소설로 구성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매체를 변환하는 것에서 나아가 건축, 패션, 미술, 행정 등 모든 분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오늘날의 독서력은 문화 문식성, 문화적 감수성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독서력을 문화 문식성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독서의 대상을 단지 인쇄매체인 책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모든 매체를 독서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우리가 문학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나 에세이, 시가 더 이상 유일하고 자율적인 전체가 아니라 수많은 사회문화적 기호들이 포함된 복합적이고 상호적인 텍스트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좀 생소한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알고 나면 금방 고개를 끄덕일 말한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천국'을 그리라고 하면 천사가 날아다니는 모습이나 아름다운 궁궐, 때로는 외계인을 그립니다. 어떤 아이는 쿨쿨자는 곳으로 그리기도 하지요. 왜 그렇게 그렸냐고 물으면 교회나 성당에서 보았거나 동화나 텔레비전, 영화, 만화, 미술관에서 보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천국에 대한 이미지는 매체에서 본 것들이지요. 이렇게 천국이라는 이미지는 미술, 종교, 동화, 드라마, 영화, 만화, 대중가요,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들 속에서 서로 연관성을 가지면서도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을 상호텍스트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문화 문식성이란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이런 이미지들을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재생산해낼 수 있음을 뜻합니다. 책과 매체를 연결지어 해석하고 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 이것을 다른 말로 매체통합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체통합독서의 바탕이요 뿌리는 결국 인문독서입니다.

 

초등 인문독서의 기적_ 임성미

by 미스터신 2017. 11. 10. 14:46

생각의 힘을 기르는 방법을 찾아서

 

얼마나 많이 아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풀러는 인류가 가진 지식의 총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리라 예측한 바 있다. 그가 발표한 '지식 두 배 증가 곡선'에 따르면 현재 13개월마다 인류 지식의 총량이 두 배로 증가하며,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주기가 최대 12시간으로 단축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지식의 폭발, 이른바 지식의 빅뱅은 우리가 지금가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다.

 

이것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2010년 인쇄본 발매를 중단한 이유다. 244년의 전통을 가진 세계적 권위의 백과사전이 종말을 고했다는 것은 곧 쓰여진 지식의 종말을 의미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의 시대가 도달한 지식수준을 따라잡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1~2년이 지나면 금방 옛 지식이 되고 만다. 한 번 배운 것으로 평생 먹고 사는 시대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 정보가 넘쳐나고, 새로운 지식의 창출 속도가 가속화되는 21세기는 더 이상 지식의 시대가 아니다. 한마디로 한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은 중요하지 않고, 그 중요성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얼마나 많이 아는가'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고, 필요할 때 원하는 지식을 찾아내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더없이 중요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생각'이다. 지금 전 세계의 교육 현장은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에 주목하고 있다.

 

실수해도 괜찮아! 풀이 과정에 점수 주는 프랑스 시험

 

프랑스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다. 지금까지 총 6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또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노벨상 자체가 학문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프랑스에 유독 뛰어난 수학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의 필즈상 수상자들은 생각을 길러주는 프랑스의 교육을 이유로 꼽는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다른 걸까. 프랑스의 명문 사립인 윌스트 고등학교의 3학년 교실을 찾아가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시험 문제를 풀어보게 했다. 32명의 학생이 우리나라와 똑같은 조건에서 문제를 풀었다. 문제의 양은 프랑스 시험보다 두 배나 많다. 그런데 주어진 시간은 평소의 절반이다. 그러다보니 프랑스 학생들 대부분이 문제를 잘 풀지 못했다. 67점 만점에 평균 점수는 약 15점밖에 되지 않았다. 32명 가운데 30명의 학생이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어려운 이유를 들어보면 단지 문제의 양과 시간 탓만이 아니다.

 

"한국식 시험은 방정식, 원, 삼각형, 기하학, 대수 등 방대한 주제에 대해 고민해야 하네요. 프랑스 시험은 하나의 주제에 관해 여러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어요."

 

"프랑스의 시험에서는 문제를 풀 때 참고사항이 많아요. 주가 되는 문제 하나에 대해 연속적인 질문들이 계속 나오는 식이거든요. 정답까지 인도받는 느낌이죠."

 

"한국식 시험은 선다형이라 정답을 모를 때 아무 답이나 찍을 수 있어요. 프랑스 시험은 모두 서술형이라 그럴 수 없어요."

 

시험 문제를 푸는 것만 본다면 딱히 수학을 잘한다고 할 수 없는 프랑스 학생들. 이들은 어떻게 수학을 공부할까? 수학 시간에 교사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기본 개념에 대한 설명이다. 프랑스 수학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잘 푸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학생들은 서술형 문제에 풀이 과정을 써야 하는데, 답이 틀려도 자기가 적은 만큼의 부분점수를 받는다.

 

한국의 수학 문제를 굉장히 길고 어렵고 여러 단계에 걸쳐서 풀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분 점수가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이론을 잘 알고 있어도 풀이 과정에서 한순간 삐끗하면 그 문제는 모두 틀린 게 된다. 반면 프랑스 학생들은 틀리는 데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실수하거나 일부만 알아도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학생들은 문제를 풀 때 유독 그림을 많이 그린다. 머릿속에 있는 수학 개념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스스로 이해한 뒤 풀기 위해서다. 또한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학생이 틀려도 야단치지 않는다. 실수는 정답을 향해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학생에게는 늘 오류를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학 교육과 비교해보자.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내신 시험은 50분 동안 30문제를 푼다. 한 문제를 2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풀어야 하다 보니 프랑스 학생들처럼 그림을 그리는 건 사치다.

 

그런데 프랑스 학생들보다 문제의 정답을 빠른 시간 안에 훨씬 잘 맞히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관련해 이상한 통계가 하나 있다.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혹은 재미가 없어서 수학을 싫어하거나 포기하는 학생들을 이른바 '수포자'라고 하는데, 수포자의 비율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다. 초등학생은 37퍼센트, 중학생은 46퍼센트, 고등학생은 무려 60퍼센트가 수포자다.

 

학생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일단 너무 어렵다. 이 어려운 수학 개념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어디에다 쓰는지도 모른 채 배워야 한다. 다른 과목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데 얻는 결과물은 너무 적다. 그러니 수학이 싫어지는 건 당연하다. 수학의 본질은 원리와 개념을 이해하고 추론하여 결론을 도출해내는 데 있을 터인데, 우리의 수학 교육은 그것과는 거리가 많이 멀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시민을 기르는 프랑스의 철학 교육

 

프랑스 학생들은 한국 고등학교의 시험 문제를 절반도 풀지 못했지만, 그들이 써낸 풀이 과정에는 문제에 접근하기위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잘 드러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수학을 비롯한 모든 교육의 목적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교육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바탕에는 철학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문과나 이과 진로에 상관없이 누구나 일주일에 네 시간씩 철학 수업을 듣는다. 철학 수업에서 학생들은 철학적 질문에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프랑스가 철학 수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프랑스에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입 시험으로 철학 시험을 본다. 200년 전통의 프랑스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첫 관문이 바로 철학 시험이다. 네 시간 동안 세 개의 주어진 주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논문 형태로 작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들이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어떤 법도 따르지 않는 것인가?"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처러진 다음 날에는 그 주제가 신문에 반드시 실린다. 시험문제 자체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철학 토론 모임이 열리는 카페도 아주 많다. 고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철학을 주제로 토론하는 것은 프랑스 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의 특징은 이 문제들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모범답안이 없기에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한 문장도 쓸 수 없다. 이 시험이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 시민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 위대한 도구였다.

 

철학 시험뿐 아니라 바칼로레아의 모든 문항은 주관식이다. 20점 만점에 10점을 넘으면 합격이고, 합격한 사람은 어느 지역, 어느 대학에나 지원할 자격을 얻는다. 무려 열흘에 걸쳐 치러지는 바칼로레아 시험에 매년 1조 원 넘는 예산이 들어간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은 바칼로레아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학생들을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올바른 시민으로 길러내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 강국 핀란드는 왜 새로운 교육 혁신을 시작했는가

 

프랑스가 지적 전통을 기반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핀란드에서는 다른 방향의 교육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핀란드는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교육 강국이다. 그런 핀란드에서 하는 세계 최초의 시도, 무엇일까? 바로 융합교육이다. 서로 다른 과목의 교사들이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과목을 통합해 가르치는 융합교육은 지금 핀란드 교육의 화두다.

 

교사 재교육이 진행되는 핀란드 헬싱키의 한 대학 실험실을 찾아가 보자. 생물, 화학, 물리, 수학, 미술, 직물 등 여섯 과목의 교사들이 자연의 재료로 염료를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연의 색'이라는 주제로 어떻게 학생들을 함께 가르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해서 최종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전시까지 할 것인지를 협의했다.

 

'기름으로 오염된 바다를 어떻게 정화할 것인가'와 같은 주제도 훌륭한 융합 수업의 콘텐츠가 된다. 교사들은 이 주제를 위해 생물, 역사, 수학 등을 융합한 커리큘럼을 마련했다. 융합 수업은 이론 공부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바다를 만들어 보고, 기름을 제거하는 방법도 실험한다.

 

수업의 내용을 예로 들면 이렇다. 어떻게 물은 남겨놓고 기름만 제거할 것인지, 기름 유출량에 따라 필요한 오일펜스의 길이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과거에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들은 어땠는지 등. 하나의 주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여러 과목이 녹아 있다. 심지어 실제로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노를 저어보는 체육 활동도 하고, 물고기로 요리하는 가사 활동까지 겸한다.

 

이러한 융합교육을 통해 실용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학생들은 예습이라는 걸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중요한 건 사전에 책에서 미리 얻은 지식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집중해서 생각하고 즐겁게 몰두하는 사고력이다.

 

기존 교육 제도도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핀란드가 이러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이 특정 과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교육이라고 믿는다. 핀란드는 세계 최고의 교육 선진국이지만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부지런히 더 나은 교육을 찾는다.

 

학습시간은 우리나라 학생의 3분의 1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핀란드 학생들

 

이쯤에서 핀란드와 우리의 교육 현실을 한번 비교해보자. 핀란드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가계 소득 대비 사교육비 비중이 가장 적은 나라다. 우리나라의 30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핀란드보다 효과가 더 있을까? 우리나라와 핀란드의 중학교 3학년의 일과를 비교해보자.

 

대한민국의 중학교 3학년 용웅이는 오후 네 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바로 일본어 수업을 받는다. 일본어 수업 후 공부를 하다가 일곱 시가 되면 보습학원에 간다.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학원 수업은 밤 열 시까지 이어진다. 밤 열 시 반, 학원에서 돌아와 그제야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그런 뒤에도 쉴 틈 없이 숙제하느라 밤 열두 시까지 책과 씨름하다 잠이 든다.

 

핀란드의 중학교 3학년(기초학교 9학년) 로우페 역시 오후 네 시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가장 먼저 책상에 앉는다.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로우페의 공부 시간은 하루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숙제를 다 한 로우페는 강아지와 동네 산책을 하고, 저녁 시간에는 소형 오토바이 면허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집 근처 학원을 찾는다. 학원에서 교통법규 수업을 듣는 것이 그의 마지막 일과다.

 

용웅이와 로우페의 일과표를 비교해 보니, 학교 수업을 제외한 용웅이의 학습시간은 일주일에 총 50시간, 로우페는 17.5시간이었다. 한국의 용웅이는 핀란드의 로우페보다 무려 세 배나 많은 시간을 공부하면서도 이렇게 쫓기듯 말한다. "강남에 사는 학생은 아마 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거예요. 안 하면 바로 뒤처져요. 미리 고등학교 과정을 예습, 복습해야 해요."

 

OECD에서 실시하는 국제학습프로그램 PISA의 평가 결과를 보면, 점수의 총점은 근소한 차이로 핀란드가 1위, 우리나라가 2위다. 그런데 한 시간 동안 공부해서 몇 점이나 점수를 올리는지를 분석한 학습효율화지수에서 핀란드는 여전히 1위였지만 우리나라는 24위로 뚝 떨어졌다. OECD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핀란드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를 훨씬 뛰어넘는다.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면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그다음부터는 시간을 투자하든 돈을 투자하든 효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학습효율화지수에 따르면, 핀란드 학생들은 효율성이 담보되는 시간까지 공부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섰는데도 끊임없이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입한다. 어느 시점 이후에는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학습효율화 지수가 낮은 건 우리가 아주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나라 학생이 공부에만 치여 살고 있을 때 핀란드 학생은 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취미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우리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왜 이런 비효율적인 레이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단 한 번의 실수로 등수가 밀려나는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는 '실수하면 죽는다'는 무서운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 보니 문제풀이를 무한 반복하고, 정답을 맞히는 기계처럼 공부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자해서 얻는 것은 안타깝게도 딱 한 가지, 바로 문제풀이 기술이다. 커지는 사교육 시장의 대안처럼 등장한 EBS의 교육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이 문제풀이 기술을 가르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인도 틀리는 국어 문제를 풀고 네이티브도 못 맞히는 영어 문제를 풀다

 

도대체 한국 교육은 얼마나 문제풀이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참고로 60만 명가량의 수험생 가운데 한 해 만점자는 서른 명 이내라고 한다.

 

"한 문제집을 열 번 이상 풀기도 해요. 영어는 외울 만큼 여러 번 보고, 수학도 한 문제를 풀고 또 풀죠.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이 숫자나 표현만 바꿔 나오기 때문에 평가원 기출 중심으로 반복해서 풀었어요."

 

거의 모든 만점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답이다. 즉, 이들의 공부 비결은 한마디로 많은 문제를 푸는 것이다. 반복적인 문제풀이로 문제의 패턴을 익히다 보면 정답을 맞히는 요령도 생긴다고 했다. 1993년 처음 수학능력시험 제도가 생겼을 때의 취지가 무색하다.

 

우리나라는 교육열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가계를 지탱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교육비를 지출한다. 그렇다 보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육비를 쓰고 있고, 특히 사교육비 비중은 다른 나라들을 압도한다. OECD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한 해 사교육비 규모는 18조 원에 달한다. 경기도 한 해 예산과 맞먹는 수치다.

 

심지어 2002년부터는 교육, 보육비를 의미하는 엔젤계수가 식료품비를 의미하는 엥겔계수를 아주 빠른 속도로 추월하기 시작했는데, 해가 지날수록 이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행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워주지 못한다면, 암기 학습은 효과적일까? 기본적으로 외워야 할 단어가 많아 암기 능력이 중요한 외국어 능력은 어떨까?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이런 질문이 무색할 정도다. 우리나라의 외국어 교육이 가진 함정 때문이다.

 

2015학년도 수능 외국어 영역에서 오답률이 가장 높았던 세 개의 문제를 영어권 나라에서 온 외국인 대학생 열두 명에게 풀어보게 했다. 세 문제를 모두 맞힌 외국인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반면에 세 문제를 모두 틀린 외국인은 다섯 명이나 되었다. 실험에 참가한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문제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 학생들은 어떨까? 외국인이 쩔쩔매는 이 문제들의 정답을 열 명 가운데 약 여섯 명이 맞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보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일까?

 

사실 외국인들이 풀었던 세 문제는 모두 EBS 교재에 나왔던 지문 그대로 수능에 출제된 것들이다. 이렇게 같은 문제가 나온 것은 사교육없이 EBS만 열심히 공부해도 수능을 잘 볼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 때문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EBS 교재 해석본을 달달 암기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꼬집는다. 결국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 유형을 잘 외운 사람이 경쟁에서 이기는 상황이다.

 

그리고 시를 직접 쓴 시인이 자신의 시를 해석하는 문제를 틀리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최승호 시인은 이 황당한 결과에 대해, "내 시가 교과서나 수능 모의고사에 나오곤 한다. 그런데 나는 다 틀린다. 그래서 지금은 안 풀어본다"며 "모국어의 맛과 멋을 느껴야지, 시의 주제가 무엇이고 사조가 무엇인지 묻는 교육은 '가래침' 같은 것이다. 시 교육의 목표는 웃는 것 그리고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안목을 키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을 암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키울 것인가

 

매년 11월이면 수능이 치러진다. 열아홉 살에 치르는 이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많은 부분이 좌우된다. 그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여기기에 우리는 경쟁하듯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 노력을 투자한다. 하지만 모두가 목을 매는 이 시험이 과연 한 사람의 인생을 판가름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중요한 건 이제 이런 시스템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답 기계'만을 쏟아내는 우리의 교육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중대한 위기 앞에 놓여 있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 모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겪게 될 문제들은 모두 시험지 밖에 있다. 몇 개의 보기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일 리도 없다. 이미 많은 지식을 스마트폰으로 30초 안에 다 검색할 수 있는 시대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누가 어떤 지식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넘쳐나는 지식 속에서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판단력, 어느 것이 핵심인지를 파악해내는 통찰력, 흩어져 있는 지식들을 연결하는 통섭력,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을 느끼는 감각 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 교육은 그러한 능력, 바로 '생각의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그 변화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할 때다.

 

어떻게 생각의 힘을 키울 것인가? / 배선정 PD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수능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달린다. 고등학교까지 1인당 양육비가 2억 3000여만 원에 이르고, 아이들의 일과는 학교, 학원 수업 외에 다른 것이 거의 없으며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학생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12년 교육의 종착지인 수능은 학생들에게 단순 문제풀이 기술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므로 자신의 생각을 지우고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2015학년도 수능만점자 학생 한 명도 "오로지 교육과정이나 교육과정평가원이 정해주는 길만 따라가야 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정답만 찾아가야 한다고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지, 지금 그러한 교육을 받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교육은 얽혀 있는 이해관계자가 많은 영역이다. 또 입시제도와 연결되어 있어 한 부분만을 논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대안을 제시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교육 강국의 사례를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함으로써 그들의 제도가 갖는 장점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 전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또 다른 정답을 찾겠다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교육 문제도 하나의 답이 아니라 여러 답이 있을 수 있으며,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여러 참조점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핀란드와 프랑스 사례는 서로 다른 부분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프랑스와 핀란드, 두 나라의 교육은 전통 대 개혁이란 단어로 정리해볼 수 있다. 프랑스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는 그동안 수차례 우리나라 수능의 대안으로 언급되어왔다. 하지만 서술형이라는 형태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왔던 것 같다. 우리가 바칼로레아라는 시험의 형태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안에 흐르는 프랑스 교육의 정신이다. 바로 '생각의 힘을 기르는 교육'이다. 그 정점에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이 있다.

 

철학시험은 대입시험 공통과목으로 프랑스 특유의 것이다. 학생들은 '인간은 욕망의 지배를 받는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와 같이 정답이 없는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정해진 정답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여러 단계를 밟아 설득력 있게 펼쳐나가야 한다. 이런 과정은 철학뿐 아니라 수학을 포함한 다른 과목을 통해서도 훈련된다.

 

취재 과정에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과 프랑스 고등학교 한 반을 선택해 서로의 수학 시험 문제를 바꿔 풀어보게 했다. 한국의 아이들은 2시간 동안 서술형 6문제를 풀어야 했고, 프랑스 아이들은 50분에 객관식 25문제를 풀어야 했다. 두 나라의 아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한국 아이들은 과정을 서술해야 하는 프랑스 수학시험을 낯설어했지만 아는 만큼 쓰면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용기 내 풀기 시작했다. 수학이 어렵다며 포기했던 아이들조차도 자신이 아는 선에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답을 서술해나갔다.

 

프랑스 아이들도 한국 시험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문제는 건너뛰거나, 점수가 높은 문제를 먼저 풀거나 하는 등의 전략이 부재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첫 장 1번 문제부터 순서대로 풀어나갔고, 모든 문제를 풀어본 학생은 절반도 되지 못했다.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문제를 풀기 위해 도형을 그리고 과정을 서술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에서는 객관식 문제 하나를 틀리면 등급이 내려가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따라서 모르는 문제는 시도 자체를 하지 못한다. 대신, 암기한 공식을 대입해 빨리빨리 풀 수 있는 문제를 선택한다. 하지만 프랑스 아이들은 시도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도 점수를 받아왔기 때문에 한국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아이들은 총점 67점에 평균 15점을 받았지만 크게 낙담하지 않았는데 이런 문화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프랑스 학생들은 이처럼 교육과정을 통해 스스로 시도하고 생각하는 훈련을 받아왔다. 그리고 200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온 바칼로레아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펼쳐 보인다. 그야말로 전통과 역사성에서 기인한 교육의 힘이라 하겠다.

 

반면, 핀란드는 새로운 시대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강력한 개혁을 하고 있었다. 핀란드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 결과에서 한국과 1, 2위를 다툴 정도로 학생들의 학업능력과 성취도가 우수해 교육 강국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핀란드 사회는 이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성취도에 비해 학업에 대한 학생들의 동기와 흥미도가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해왔고, 2012년 교과개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융합교육을 도입했다.

 

과목 간의 벽을 허무는 융합교육은 한 교과목에서 배운 내용이 다른 과목과 어떻게 연결되고 적용되는지 이해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에서는 이를 현상 기반 학습이라고 부른다. '바다에 유조선이 좌초돼 기름이 유출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같이 실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놓고 생물, 수학, 역사 등 여러 과목을 연계해 교육한다. 최근 일어났던 가장 큰 기름유출 사고를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공부하고, 유출량과 면적을 계산하며 수학을 배운다. 또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면서 생물을 접하고, 물 위의 기름때를 제거하는 실험을 하면서 화학을 공부한다. 이렇게 자신의 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통해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다 보니 학생들은 더욱 흥미를 갖고 수업에 임하며, 모르는 것은 스스로 더 찾아본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학습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주었을 뿐인데 학습 태도와 흥미도가 크게 오른 것이다.

 

물론 모든 개혁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핀란드는 교과개혁을 2012년에 시작했는데, 국가 공통 교과과정을 2014년에야 완성했다. 2년 반이 걸렸다. 핀란드 교육위원회는 업무방식의 변화, 배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변화, 효과적인 학습 방법 등과 관련된 연구 자료들을 수집했고, 교육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지방자치단체, 학교, 교사연수원의 관계자들, 연구원, 학부모 및 학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심도 있게 논의했다. 개혁을 실시하기 전에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시대 변화에 따른 개혁의 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핀란드 사회가 또 다른 미래 변화를 감지하고 필요성을 느낀다면, 또 다른 개혁 역시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과 개혁으로 대변되는 프랑스와 핀란드, 이 두 나라의 교육에도 공통점이 있다. 오랜 시간을 거친 사회적 합의가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를 치르기 위해 한 해 1조 원이 넘을 정도로 많은 돈을 투입한다. 하지만 국민의 79퍼센트는 바칼로레아를 없애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렇듯 생각의 힘을 기르는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칼로레아를 유지해올 수있었다.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교육개혁에 대한 요구로 큰 틀을 마련한 핀란드는 40여 년동안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틀을 수정, 보완해왔다. 그 결과 세계 최정상의 교육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2016년부터 전국에 의무화되는 융합교육도 이 큰 틀 안에서 새 시대에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합의한 결과물이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식의 양보다는 창의적인 능력과 생각의 발전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다. 교육은 해당 국가의 국민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사회적 합의다.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 프레임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후세대를 위한 어른의 당연한 책무다.

 

지식의 폭발 이후,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_ 명견만리

by 미스터신 2017. 9. 29. 17:25

대학은 어떤 수업개혁을 준비해야 하는가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받아 적어야 최우등생이 된다?

 

"수업시간에 교수님 말씀을 문장 그대로 똑같이 적어요. 토씨 하나까지도 안 놓치려고 해요. 요약하거나 키워드만 적어서는 부족해요. 농담까지 다 받아적습니다."

 

"필기만으로는 안심이 안 돼 수업시간에 아예 녹음기를 켜놔요. 교수님이 말씀하신 문맥까지 그대로 외우려고요."

 

"아예 노트북으로 속기해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교수님이 말씀을 시작하시는 것과 동시에 자판 소리가 일제히 타다다닥, 말씀 끝나면 탁 소리가 멈추죠."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공부법이 비슷한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교수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이른반 전사를 하고 있는 이 학생들은 놀랍게도 서울대에서 A+를 받는 최우등생들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서울대학교에서도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교수가 전달하는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한국 대학 교육의 현실을 고발한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은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던 2009년. 상위 2.5퍼센트 안에 드는 최우등생들을 인터뷰했다. 당시 두 학기 넘게 4.0 이상의 학점을 받은 학생은 모두 150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46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동안 학생들을 만나 수업 태도, 과제 수행, 학점 관리 등 학습 전략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만 4개월이 넘게 걸렸고, 이를 다시 분석하는 데 1년이 더 걸렸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좋은 학점을 받는 비결은 한결같이 교수의 말을 전부 받아 적는 것, 무려 87퍼센트의 학생이 이와 같이 답했다.

 

더 놀라운 것은 또 있었다. 만일 본인의 생각이 교수와 다를 경우 자신의 생각대로 시험 답안을 써내겠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뭐라고 답했을까? 46명 가운데 무려 41명, 즉 90퍼센트가 자신의 생각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교수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낫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만의 생각이란 학점을 잘 받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할수록 생각하는 능력을 잃는다?

 

이혜정 소장의 연구는 애초에 최우등생들의 공부 비법을 분석해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알려주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조사를 진행할수록 이 소장은 학생들에게 최우등생들의 공부법을 배포할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코 권장할 수 없는 비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이러한 조사 결과가 최우등생들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서울대 전체 학생들의 특징인지 알아내고자 조사 범위를 확대했다. 1111명에게 다시 공부법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리고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학생들의 노트 필기 습관과 학점은 정비례하고 있었다. 학점이 높은 학생일수록 수업시간에 교수의 설명을 모두 필기한다는 비율이 높았다.

 

이 연구에서 중점을 두었던 세 가지 학습 자질은 수용적,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다. 수용적 사고력은 자신이 배운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데 중점을 두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높을수록 시험에서 정확하게 기억해내는 능력도 높을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은 주어진 내용을 여러 방향에서 다시 생각해보면서 배운 내용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창의적 사고력은 주어진 내용을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능력이다.

 

분석 결과, 학점이 높을수록 수용적 사고력이 높았다. 다른 말로 하면 결국 학점이 높은 학생일수록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사고력이 수용적 사고력에 비해 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수용적 사고력도 필요하다. 수용적 사고가 결국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수용적 사고력만 높이 평가하는 학습환경에 놓이면, 배우면 배울수록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모순이 생겨난다. 즉,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공부하는데 오히려 점점 더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서울대 최우등생들이 바로 그런 환경에 놓여 있다. 왜 그토록 똑똑한 인재들이 스스로도 미련하다고 여길 정도로 교수가 강의하는 내용을 모두 받아 적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교수의 말을 다 받아 적고 교수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일치시킬수록 높은 학점을 받아 취업에 성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46명의 최우등생 가운데 80퍼센트인 37명은 전혀 예습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습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높은 학점을 받는 데 예습은 소용이 없었고, 교수의 말을 잘 받아 적어 암기하는 복습만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 이 소장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창의적, 비판적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좋은 학점을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학년 때는 수업시간에 키워드 중심으로 필기하면서 질문도 많이 했고 시험 때는 제 생각을 드러내려 했어요. 그리고 끔찍한 학점을 받았어요. 아, 이렇게 공부하면 안 되는구나... 그 후로는 수업시간에 열심히 필기해요. 물론 학점은 좋아졌지요."

 

이 학생의 고백처럼 대학 초년생 시절 창의적, 비판적인 성향이 높은 학생들은 낮은 학점이라는 결과 앞에서 자책감을 느끼고 창의적, 비판적 사고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공부법을 수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서울대와 같은 명문대 학생들만 그럴까?

 

우리나라 62개 대학에 다니는 4만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국교육개발원 2014년 조사에 따르면, 대학 교육을 통해 전공 지식이 향상되었다는 학생은 꾸준히 늘었다.. 수용적 학습을 잘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력이 향상되었다는 학생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도 그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똑똑하지만 온순한 양이 될 것인가, 급변하는 세상에 필요한 인재가 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연구 결과가 하나 있다. MIT 미디어랩에서 학생의 일상생활과 패턴에 따른 교감신경계 변화를 측정했다. 이 연구의 원래 목적은 몸에 착용하는 작은 센서로 일상의 교감신경계 변화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실험은 이렇다. 피험자의 손과 팔에 기기를 부착하고 일주일 동안 일상생활 패턴에 따라 교감신경계의 전자파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한다. 그런데 실험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피험자인 대학생의 교감신경이 수업시간 중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교감신경계는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흥분되고 긴장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활발하게 활동한다. 반면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을 때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피험자가 직접 실험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할 때는 교감신경계가 활발하게 활동했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특히 초반부에는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었다.

 

반면 텔레비전을 볼 때와 수업을 들을 때는 교감신경계가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수업은 일방적으로 듣고 적기만 하는 식의 수동적 강의다. 즉,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강의식 수업에서 학생은 어떠한 자극도 각성도 없이 멍하게 있는 상태였다. 수업을 들을 때의 긴장상태가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만큼이나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대학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대부분은 이러한 수동적 강의식 수업이다.

 

한국은 물론 영미권의 많은 대학에서 강의해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한국 대학생의 공부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가 요즘 대학생에게 붙여준 별명이 해바라기입니다. 수업 시간에 제가 왔다 갔다 하면 모든 시선이 저만 따라와요. 제가 말 잘 듣는 학생이 제일 싫다. 교수에게 좀 덤벼라, 이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얘기해도 이런 모습이 잘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대학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가 교육제도라면, 대학은 그 교육제도의 정점이자 상징이다. 인류 역사에서 대학은 지식을 쌓고, 생각을 교류하며, 시대의 담론을 펼쳐낸 지성의 장이었다. 한 사회를 발전시키고 미래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생각과 가치들이 바로 대학으로부터 나왔다.

 

한국을 비롯해 서구의 대학교육 제도를 받아들인 곳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대학은 사회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시대 변화를 올바르게 읽어내는 비판의 장이자 시대가 묻는 엄중한 물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성의 공간이었다. 그 때문에 개인과 가족은 물론 전 사회가 대학 교육에 자원을 투여해왔다. 그것이 사회전체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에는 더 이상 큰 배움도, 새로운 도전도 없다.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아닌 학점의 노예만 길러내고 있다. 이혜정 소장은 대다수 서울대생의 관심은 대기업에 취업할 것이냐, 고시를 볼 것이냐, 교수가 될 것이냐와 같은 고민과 선택에 묶여 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세상이나 사회적 정의는 먼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학의 위기는 대한민국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2020년에 대학 캠퍼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고,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는 전 세계 대학의 절반이 20년 내에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대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중요한 모델이 되어왔던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미국 대학도 취업 전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맞고 있다. 미국의 수많은 대학생들 역시 취업이 잘되는 학과, 돈 잘 버는 직업을 얻는 관문으로서 대학 생활을 정의한다. 또 대학 역시 경제, 경영, 컴퓨터공학, 생명과학처럼 취업에 유리한 학과에만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예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환경이 사람이 교육을 통해 키워야 할 능력을 오히려 저해시킨다는 데 있다. 미국 대학 교수의 90퍼센트 이상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대학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꼽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뉴욕대 교육사회학과의 리처드 아룸 교수의 연구는 대학 교육이 처참히 무너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아룸 교수는 대학 교육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4년에 걸친 연구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연구에 참여했던 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대학4년 동안 비판적 사고력이 단 1점도 향상되지 않은 것이다.

 

아룸 교수는 '학생들의 등록금이 잘 쓰이고 있는가?', '학생들이 돈을 낸 만큼의 가치를 돌려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확언했다. 미국의 대학 등록금은 2005년에서 2014년 사이에 무려 40퍼센트나 상승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주립대학은 1960년대 자유언론운동이 일어났던 곳으로, 미국 내에서도 비판정신과 인문학적 전통이 살아있는 최고의 명문 주립대다. 하지만 이 대학도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 2015년 10월 이곳에서 대학 교육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 참석한 학생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에 비해 그만큼의 일자리도, 학문적 성취도 얻지 못하는 대학 교육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한 버클리 대학생의 말이 인상적이다.

 

"영화 <굿 월 헌팅>에 이런 말이 나와요. '네가 5만 달러를 내고 배운 것을 나는 공공 도서관에서 2달러의 연체료를 내고 배웠어.' 이젠 정보도 손쉽게 얻을 수 있고 그 학교 대학생이 아니어도 청강을 할 수 있지요. 우린 단지 버클리 대학과 자신의 이름이 적힌 졸업장을 받기 위해 등록금을 내는 거예요."

 

최근 미국에서 대학 문제에 커다란 화두를 던지 윌리엄 데레저위츠 교수는 이 세미나에서 대학이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기보다는 실용적 고려라는 명분 아래 대학 본연의 목적을 상실했으며, 바코드를 찍어내는 것처럼 비슷한 스펙,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는 그저 '똑똑하고, 온순한 양'들을 길러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데레저위츠 교수는 그의 최근 저서 <공부의 배신>에서도 대학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비판한 바 있다.

 

"교육의 목표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신을 직장에서는 쓸모 있는 인력으로, 시장에서는 잘 속아 넘어가는 소비자로, 국가에서는 순종적인 국민으로 전락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교육의 의미, 삶의 목적과 같은 중요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이 주제는 청년시절에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생각의 힘을 키우는 교육, 수업개혁을 시작하라

 

데레저위츠 교수가 말하듯 지금의 대학은 학생들이 첫 직장을 준비하는 직업양성소가 되었다. 대학이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교육해야 하는 대학의 임무에도 어긋날뿐더러 시대착오적인 현상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지금의 대학교육이 얼마나 뒤떨어지는지는 아래의 숫자들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3-5-19

 

이 숫자들이 무엇을 뜻할까? 앞으로 미래 세대가 살아가게 될 방식을 말해준다. 미래 세대는 일생 동안 3개 이상의 영역에서 5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19개 이상의 서로 다른 직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래학자들은 단 한 개의 직업으로 평생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나간다고 말한다.

 

즉, 첫 번째로 가지게 될 직업이 인생에서 차지하게 될 중요도를 기계적으로 나누면 5분의 1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첫 직장을 여는 열쇠 하나를 깎느라 4년이라는 시간과 엄청난 등록금을 온전히 다 쓰고 있다. 물론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점을 받고 온갖 스펙을 잘 쌓은 학생은 첫 직장을 수월하게 얻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첫 번째 취업문을 성공적으로 뚫었더라도 10년 뒤에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회사에 다닌다 해도 그 회사의 주력 산업이 완전히 바뀌어서 전혀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럴 때 자신에게 필요한 새로운 열쇠는 무엇일까. 적어도 이미 '옛것'이 되어버린 전공 지식은 아닐 것이며, 수용적 사고 100퍼센트의 능력은 아닐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학 문을 나설 때 손에 쥐어야 하는 것은 방문 하나만 열 수 있는 톱니 열쇠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여야 한다. 그런데 대학은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퇴보하여 단순한 취업 공부로 학생들을 몰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초체력이자 뼈대가 될 수 있는 마스터키를 학생들의 손에 쥐어주기 위해 대학은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미국의 한 오래된 대학에서 이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에는 1696년에 설립된,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세인트존스 대학이 있다. 전교생이 400명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대학인 이곳에서는 어딜 가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이 대학에서는 4년 내내 100권의 고전을 읽는다. 철학부터 수학, 과학,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커리큘럼의 전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어렵고 접하기 힘든 고전을 읽을 뿐 4년 내내 똑같은 과정을 공부한다. 취업에 몰두하는 다른 대학과 달리 세인트존스는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수업은 모두 탁자에 둘러앉아 이루어진다. 모든 수업은 토론 수업이고, 토론을 주도하는 것은 물론 학생이다. 교수는 가르치는 대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만을 한다. 수업이 끝나고 늦은 저녁 시간이 되어도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못다 한 토론에 한창이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은 세인트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학 4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으며 학생들은 긴 안목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그려나간다. 세인트존스 대학의 학생들에게 대학은 생각의 터전이다. 온종일 책을 읽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키워 나간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고 미래를 주체적으로 설계해 나가기 위해 대학 4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특별한 전공 없이 졸업하지만 법, 금융,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이 대학에서 어떤 자질을 키워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이름에 가려지지 않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능력, 나에게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 세밀한 지식만이 아니라 전체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 대학 4년 동안 인생의 마스터키를 얻었다고 확신하는 이 대학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말 속에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담겨 있다.

 

어떤 교육 환경에서 창의적인 사람이 나오는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수업개혁을 진행하는 곳이 또 있다. 하버드 대학 에릭 마주어 교수의 수업은 특별하다. 마주어 교수도 예전에는 250명의 학생을 앞에 앉혀놓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이 그것을 암기해 시험을 치도록 하는 수동적 주입식 강의를 했다. 그는 늘 강의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하버드 내에서도 강의 잘하는 교수로 손꼽힌다. 하지만 정작 시험을 치러 보면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그는 고민끝에,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보다 훨씬 더 큰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교수법을 바꾸었다.

 

그는 단편적이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대신,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주도하는 강의 방식을 개발했다. 핵심은 질문과 토론이다. 그의 수업은 모두 팀 단위로 이뤄지는데, 문제를 풀 때도 학생 혼자 풀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며 함께 해결한다. 마주어 교수의 강의실에서는 단순하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자유로이 소통하고 교류하며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키워 나간다.

 

마주어 교수는 앞서 MIT 미디어랩의 연구에 등장했던, 교감신경을 전혀 자극하지 못한 수업이 우연히 잘 가르치지 못한 지루한 수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의 심리학자 샤나 카펜터의 연구팀이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매우 체계적인 내용으로 유창하게 진행하는 강의든, 그 반대로 체계적이지도 않고 버벅거리며 못하는 강의든, 그저 앉아서 듣기만 하는 수업은 실질적인 학습효과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는 매우 주목할 지점이다.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는 유창한 강의가 어수룩한 강의보다 두 배 이상 높았지만, 실제로 강의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테스트했더니 두 강의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즉 교수의 일방향적인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배움은 수업의 질과 무관하게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의를 졸지 않고 재미있게 듣는다고 해서 정말로 깨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마주어 교수는 이제 학생들에게 현존하는 지식을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지식을 생성할 수 있도록 창의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전략은 '허용'이다. 학생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그저 '허용'하는 것, 교육자는 '나를 이겨봐라, 나를 이길 수 있으면 A+를 주겠다' 하는 열린 마음으로 학생을 대해야 하고, 우리는 그런 교육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 토양에서만 창의적인 사람,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대학 진학률 80퍼센트의 대한민국, 취업률은 OECD 꼴찌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현실은 어떤가? 학생들은 토론하는 대학을 원하지만, 대부분의 강의실에서 토론은 실종됐다. 대학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2011년 83퍼센트에서 2014년 65퍼센트로 뚝 떨어졌다.

 

기성세대들은 아주 쉽게 오늘날의 청년들을 비난한다. 이 비난은 청년 세대의 지적 능력에 대한 저평가로도 이어진다. 요즘 청년들은 자기만 알고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 책임은 기성세대가 만들고 기성세대가 유지하고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에 있다. 사회에 나가면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대학에서마저 '나 홀로 최고'가 되는 공부만 시킨다.

 

무엇보다 평가자부터 바뀌어야 한다. 교수의 말을 앵무새처럼 잘 외운 학생만을 높이 평가하나면 당연히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이 부족하고 소통과 협업에 서툰 사람을 키울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다. '대학을 못 가면 사람 구실 못 한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말 아래,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경이적인 대학 진학률 수치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1990년대까지도 40퍼센트가 채 안 되었지만 2005년부터 급격하게 증가해 2006년 82퍼센트를 넘어섰고 2010년에 들어서도 꾸준히 7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OECD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1위이고, 미국, 일본, 유럽의 대학 진학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그 진학률의 상승폭만큼이나 등록금의 상승세도 가파르다. 1975년부터 2010년까지 35년 동안 대학 등록금은 사립대가 28배, 국립대가 30배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쌀값이 6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전세금도 11배가 올랐으니 대학 등록금 상승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다. 학자금 대출 규모도 엄청나다. 정부학자금 전체 대출액은 2014년 말 10조 7000억 원으로, 학생 1인당 평균 대출액이 704만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졸자의 평균 취업률은 58.6퍼센트에 불과하다. OECD 국가들 가운데 단연 꼴찌다. 문제는 이 비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계 출신 90퍼센트가 논다'는 뜻의 '인구론'이란 말도 있다. 인문학 전공자들은 기업에서 환영받지 못해 십중팔구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복수전공한다. 통폐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존폐 위기에 시달리는 것도 인문계 학과들이다.

 

게다가 갈수록 취업의 문이 좁아지는데, 취직을 잘하겠다고 너도나도 대학에 가니 기업의 입사 경쟁률은 고공행진을 멈출 줄 모른다. 현대차 그룹의 경우 2015년 상반기 4000명을 채용하는 대졸 공채에 10만 명 이상이 몰렸다. 이제는 '입사 고시'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학점이 4.0이 넘어도 부족하고, 토익 960점이 넘어도 만점이 아니니 불안하다. 결국 더 높은 학점을 따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포기한다.

 

그러나 폭발적인 기술 발달로 앞날이 예측 불가능해지면서 세상은 개인에게 점점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225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구직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소통 능력'과 '협업 능력'이 꼽혔다. 그러나 학점과 스펙만을 위한 달리기에서 오히려 이런 능력은 없어지게 된다.

 

이미 세계 각국의 교육은 달라지고 있다

 

빅데이터를 통해 지금 우리 대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키워드를 도출해보면 아래와 같은 단어들이 나온다.

 

혼밥, 인구론, 후회, 수강신청, 학점, 학벌, 어학연수, 복수전공, 취업사교육, 토익, 스펙, 청년, 실신, 등골탑, 이태백, 돌취생, 취업 깡패, 전화기, 화석선배, 5포세대, 학위, 취업, 동아리 고시, 학자금 대출, 월급, 자소설, 자원봉사, 결혼, 승진, 출세, 재산, 고액연봉, 평판, 권력, 명성, 인턴, 대기업 공채, 현차 수능일, 삼성 고시

 

단연 취업과 관련된 내용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 '혼밥'이라는 키워드가 특히 자주 등장한다. 대학생의 약 72퍼센트가 혼자 밥을 먹고 그것을 편하게 느끼는, 이른바 '혼밥족'이라고 한다. 극심한 청년 취업난과 경제불황이 대학생들의 밥 먹는 풍경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대학에서 소통과 교류가 사라지는 현상을 확연히 보여주는 우울한 통계다. 게다가 대학 진학 자체를 후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최재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대학 진학을 후회하느냐'고 물었는데 무려 75퍼센트가 '후회한다'고 대답했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해서, 취업이 잘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취업이 안 된다고 대학 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학이 '취업 준비소'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대학, 다른 전공을 가진 청년들이 언제부터인가 모두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속에서 미래 세대는 더욱 외로워지고 있다. 물론 꿈과 낭만을 좇기에 지금의 대학이 처한 현실은 너무 각박하다. 하지만 수천만 원씩 쏟아붓는 대학 교육에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도대체 대학을 나오면 무엇이 더 나아지는 것일까?

 

우리 대학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답을 먼저 준비하는 곳이 훨씬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과거 우리가 교육의 양적인 측면에 수많은 자원을 쏟아부었다면 이제는 질적인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 취업을 위한 실용적인 공부가 아니라 세상과 사회, 인생을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는 교양교육과 기초학문에 다시 집중하고, 학생 중심의 교수법으로 생각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이미 세계 각국의 교육의 압도적인 추세는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 그것을 위해 에너지를 집중할 때 희망이 있을 것이다.

 

대학은 사라질 것인가? / 최진영 PD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던 9월, 한 면접 대기장. 아직은 앳된 모습의 대학생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 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대학생들은 정장 재킷에 넥타이까지 잘 올려 맸다. 한눈에도 긴장한 표정. 면접에 들어갈 지원자끼리 조를 이뤄 '조 구호'를 만들라는 과제에 대기장 공기가 사뭇 진지해진다.

 

면접장 안의 공기는 절박하기까지 하다. "본인이 리더로서 가진 면모는?", "도서정가제에 관한 본인의 생각은?",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찬반 입장은?" 모든 걸 간파하겠다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면접심사관 네 명과 무엇이든 방어하겠다는 네 명의 지원자가 치열하게 기 싸움을 벌인다. 이곳은 다름 아닌 한 경제단체 산하의 '경영 동아리 면접장'이다.

 

이 동아리의 회원이 되려면 최대 15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경영 동아리 중 하나인 이곳에서 활동하면 취업때 하나의 스펙으로 쓸 수 있음은 물론 경제계 인사들과 인맥을 쌓아 취업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입소문 때문이다. 자신이 경제, 경영 관련 학과이냐 아니냐는 고려사항이 아니다. 요즘은 어떤 학과라도, 취업하려면 경영 동아리 스펙 하나쯤은 필수라고 여긴다. 그래서 매년 학기 초만 되면 취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각종 경제, 경영 동아리에 몰려든다.

 

기본 8대 스펙을 만들기 위해 대학생들은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학점을 기본으로 자격증, 외국어 점수, 공모전 수상, 인턴, 동아리 등 대학교 안팎의 기본 항목들을 충실히 채우고 나서야 조금 안도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난 대학생은 '스토리가 있는 스펙'을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스펙 리스트'를 만들어 여름방학과 아르바이트 임금을 모두 투자했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취업할 수도, 잘 살아갈 수도 없는 세상이 됐기에 나타나는 서글픈 트렌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학은 왜 존재해야 할까? 대학은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기에, 우리는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대학에 시간과 돈을 쏟고 있는 걸까. 학자금 대출액만 연간 무려 2조원인 시대. 예전처럼 취업을 보장해주지도 않고, 그러한 대학 본연의 기능인 '지성과 지혜의 축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바로 이 질문을 확인하고 그 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시작은 먼저 한국 대학생의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명문 사립대에 임시 부스를 설치해 학생들의 속마음을 듣고, 서울대에서 A+만을 받는다는 학생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K는 주변의 많은 학생들처럼 지역의 유수 특목고를 졸업했고 내로라하는 대학에 와서도 고학점을 유지하는,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다. 그에게 "고학점을 유지하는 비밀을 들려달라"고 질문했다. K는 교수님의 말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모두 적는 '전사'기술과, 책과 노트의 완벽한 암기를 고득점의 비결로 털어놓았다. 또한 어떻게 필기를 하고, 어떻게 중간, 기말고사에 대비하는 것이 좋은지도 자세히 알려주었다. 요약하자면 '비판적인 생각'은 버리고, 교수와 대학의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였다.

 

K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지금과 같은 공부 방법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도 아니고 창의적인 사고에도 적합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학자가 꿈이었던 K에게 고등학교 시절에 꿈꿨던 대학 공부는 창의적인 생각을 실현하는 장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K에게 대학은 다음 과정을 위해 '길들여져야만 하는' 하나의 관문이 됐다. 강의를 그대로 받아적어 암기하지 않고,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공부한 소수의 다른 친구들은 좋은 학점을 받지 못했다. 교수님에게, 대학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다고 K는 털어놓았다. K는 자책했다.

 

많은 학생들이 K와 같았다. 분명 지금의 대학이 자신에게 일자리도, 그렇다고 지식과 지혜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길들여져야 한다. 그나마 그렇게 4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 졸업장 하나라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있었다.

 

취재를 해나가면서 지금의 대학 문제, 교육 문제는 사실상 사회, 경제 문제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모두가 극한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고, 남보다 더 높은 학점과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에서 '온순한 양으로 길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는 UC버클리와 같은 미국 명문 대학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천문학적인 돈과, 20대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대학.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 밖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목소리도 미국 내에서 나온다. 대학은 그야말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결국 제작진이 찾은 대학의 방향은 '지혜'였다. 방송에서는 '마스터키'로 표현했지만, 이는 사실상 '지혜'다. 학점 은행식, 취업학원이 아닌, '삶의 순간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 일자리가 부족한 이 시대에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경쟁 속에서 스펙 쌓기에 발버둥 치는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라 '함꼐 잘 사는 방법을 같이 도모할 수 있는 지혜', 틀에 맞춰져 한정된 일자리를 다투는 게 아닌 '새로운 직업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지혜'다. 미국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본 '지혜를 다루는 기술'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상상한다. 우리에게 적용하는 길이 쉽지 않겠지만, 진정 미래 세대가 더욱 잘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믿는다.

 

왜 우리는 온순한 양이 되어갈까_ 명견만리

by 미스터신 2017. 9. 2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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