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어떤 수업개혁을 준비해야 하는가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받아 적어야 최우등생이 된다?

 

"수업시간에 교수님 말씀을 문장 그대로 똑같이 적어요. 토씨 하나까지도 안 놓치려고 해요. 요약하거나 키워드만 적어서는 부족해요. 농담까지 다 받아적습니다."

 

"필기만으로는 안심이 안 돼 수업시간에 아예 녹음기를 켜놔요. 교수님이 말씀하신 문맥까지 그대로 외우려고요."

 

"아예 노트북으로 속기해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교수님이 말씀을 시작하시는 것과 동시에 자판 소리가 일제히 타다다닥, 말씀 끝나면 탁 소리가 멈추죠."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공부법이 비슷한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교수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이른반 전사를 하고 있는 이 학생들은 놀랍게도 서울대에서 A+를 받는 최우등생들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서울대학교에서도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교수가 전달하는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한국 대학 교육의 현실을 고발한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은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던 2009년. 상위 2.5퍼센트 안에 드는 최우등생들을 인터뷰했다. 당시 두 학기 넘게 4.0 이상의 학점을 받은 학생은 모두 150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46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동안 학생들을 만나 수업 태도, 과제 수행, 학점 관리 등 학습 전략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만 4개월이 넘게 걸렸고, 이를 다시 분석하는 데 1년이 더 걸렸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좋은 학점을 받는 비결은 한결같이 교수의 말을 전부 받아 적는 것, 무려 87퍼센트의 학생이 이와 같이 답했다.

 

더 놀라운 것은 또 있었다. 만일 본인의 생각이 교수와 다를 경우 자신의 생각대로 시험 답안을 써내겠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뭐라고 답했을까? 46명 가운데 무려 41명, 즉 90퍼센트가 자신의 생각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교수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낫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만의 생각이란 학점을 잘 받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할수록 생각하는 능력을 잃는다?

 

이혜정 소장의 연구는 애초에 최우등생들의 공부 비법을 분석해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알려주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조사를 진행할수록 이 소장은 학생들에게 최우등생들의 공부법을 배포할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코 권장할 수 없는 비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이러한 조사 결과가 최우등생들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서울대 전체 학생들의 특징인지 알아내고자 조사 범위를 확대했다. 1111명에게 다시 공부법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리고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학생들의 노트 필기 습관과 학점은 정비례하고 있었다. 학점이 높은 학생일수록 수업시간에 교수의 설명을 모두 필기한다는 비율이 높았다.

 

이 연구에서 중점을 두었던 세 가지 학습 자질은 수용적,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다. 수용적 사고력은 자신이 배운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데 중점을 두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높을수록 시험에서 정확하게 기억해내는 능력도 높을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은 주어진 내용을 여러 방향에서 다시 생각해보면서 배운 내용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창의적 사고력은 주어진 내용을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능력이다.

 

분석 결과, 학점이 높을수록 수용적 사고력이 높았다. 다른 말로 하면 결국 학점이 높은 학생일수록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사고력이 수용적 사고력에 비해 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수용적 사고력도 필요하다. 수용적 사고가 결국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수용적 사고력만 높이 평가하는 학습환경에 놓이면, 배우면 배울수록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모순이 생겨난다. 즉,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공부하는데 오히려 점점 더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서울대 최우등생들이 바로 그런 환경에 놓여 있다. 왜 그토록 똑똑한 인재들이 스스로도 미련하다고 여길 정도로 교수가 강의하는 내용을 모두 받아 적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교수의 말을 다 받아 적고 교수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일치시킬수록 높은 학점을 받아 취업에 성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46명의 최우등생 가운데 80퍼센트인 37명은 전혀 예습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습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높은 학점을 받는 데 예습은 소용이 없었고, 교수의 말을 잘 받아 적어 암기하는 복습만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 이 소장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창의적, 비판적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좋은 학점을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학년 때는 수업시간에 키워드 중심으로 필기하면서 질문도 많이 했고 시험 때는 제 생각을 드러내려 했어요. 그리고 끔찍한 학점을 받았어요. 아, 이렇게 공부하면 안 되는구나... 그 후로는 수업시간에 열심히 필기해요. 물론 학점은 좋아졌지요."

 

이 학생의 고백처럼 대학 초년생 시절 창의적, 비판적인 성향이 높은 학생들은 낮은 학점이라는 결과 앞에서 자책감을 느끼고 창의적, 비판적 사고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공부법을 수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서울대와 같은 명문대 학생들만 그럴까?

 

우리나라 62개 대학에 다니는 4만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국교육개발원 2014년 조사에 따르면, 대학 교육을 통해 전공 지식이 향상되었다는 학생은 꾸준히 늘었다.. 수용적 학습을 잘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력이 향상되었다는 학생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도 그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똑똑하지만 온순한 양이 될 것인가, 급변하는 세상에 필요한 인재가 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연구 결과가 하나 있다. MIT 미디어랩에서 학생의 일상생활과 패턴에 따른 교감신경계 변화를 측정했다. 이 연구의 원래 목적은 몸에 착용하는 작은 센서로 일상의 교감신경계 변화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실험은 이렇다. 피험자의 손과 팔에 기기를 부착하고 일주일 동안 일상생활 패턴에 따라 교감신경계의 전자파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한다. 그런데 실험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피험자인 대학생의 교감신경이 수업시간 중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교감신경계는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흥분되고 긴장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활발하게 활동한다. 반면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을 때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피험자가 직접 실험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할 때는 교감신경계가 활발하게 활동했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특히 초반부에는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었다.

 

반면 텔레비전을 볼 때와 수업을 들을 때는 교감신경계가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수업은 일방적으로 듣고 적기만 하는 식의 수동적 강의다. 즉,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강의식 수업에서 학생은 어떠한 자극도 각성도 없이 멍하게 있는 상태였다. 수업을 들을 때의 긴장상태가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만큼이나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대학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대부분은 이러한 수동적 강의식 수업이다.

 

한국은 물론 영미권의 많은 대학에서 강의해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한국 대학생의 공부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가 요즘 대학생에게 붙여준 별명이 해바라기입니다. 수업 시간에 제가 왔다 갔다 하면 모든 시선이 저만 따라와요. 제가 말 잘 듣는 학생이 제일 싫다. 교수에게 좀 덤벼라, 이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얘기해도 이런 모습이 잘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대학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가 교육제도라면, 대학은 그 교육제도의 정점이자 상징이다. 인류 역사에서 대학은 지식을 쌓고, 생각을 교류하며, 시대의 담론을 펼쳐낸 지성의 장이었다. 한 사회를 발전시키고 미래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생각과 가치들이 바로 대학으로부터 나왔다.

 

한국을 비롯해 서구의 대학교육 제도를 받아들인 곳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대학은 사회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시대 변화를 올바르게 읽어내는 비판의 장이자 시대가 묻는 엄중한 물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성의 공간이었다. 그 때문에 개인과 가족은 물론 전 사회가 대학 교육에 자원을 투여해왔다. 그것이 사회전체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에는 더 이상 큰 배움도, 새로운 도전도 없다.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아닌 학점의 노예만 길러내고 있다. 이혜정 소장은 대다수 서울대생의 관심은 대기업에 취업할 것이냐, 고시를 볼 것이냐, 교수가 될 것이냐와 같은 고민과 선택에 묶여 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세상이나 사회적 정의는 먼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학의 위기는 대한민국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2020년에 대학 캠퍼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고,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는 전 세계 대학의 절반이 20년 내에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대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중요한 모델이 되어왔던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미국 대학도 취업 전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맞고 있다. 미국의 수많은 대학생들 역시 취업이 잘되는 학과, 돈 잘 버는 직업을 얻는 관문으로서 대학 생활을 정의한다. 또 대학 역시 경제, 경영, 컴퓨터공학, 생명과학처럼 취업에 유리한 학과에만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예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환경이 사람이 교육을 통해 키워야 할 능력을 오히려 저해시킨다는 데 있다. 미국 대학 교수의 90퍼센트 이상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대학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꼽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뉴욕대 교육사회학과의 리처드 아룸 교수의 연구는 대학 교육이 처참히 무너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아룸 교수는 대학 교육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4년에 걸친 연구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연구에 참여했던 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대학4년 동안 비판적 사고력이 단 1점도 향상되지 않은 것이다.

 

아룸 교수는 '학생들의 등록금이 잘 쓰이고 있는가?', '학생들이 돈을 낸 만큼의 가치를 돌려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확언했다. 미국의 대학 등록금은 2005년에서 2014년 사이에 무려 40퍼센트나 상승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주립대학은 1960년대 자유언론운동이 일어났던 곳으로, 미국 내에서도 비판정신과 인문학적 전통이 살아있는 최고의 명문 주립대다. 하지만 이 대학도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 2015년 10월 이곳에서 대학 교육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 참석한 학생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에 비해 그만큼의 일자리도, 학문적 성취도 얻지 못하는 대학 교육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한 버클리 대학생의 말이 인상적이다.

 

"영화 <굿 월 헌팅>에 이런 말이 나와요. '네가 5만 달러를 내고 배운 것을 나는 공공 도서관에서 2달러의 연체료를 내고 배웠어.' 이젠 정보도 손쉽게 얻을 수 있고 그 학교 대학생이 아니어도 청강을 할 수 있지요. 우린 단지 버클리 대학과 자신의 이름이 적힌 졸업장을 받기 위해 등록금을 내는 거예요."

 

최근 미국에서 대학 문제에 커다란 화두를 던지 윌리엄 데레저위츠 교수는 이 세미나에서 대학이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기보다는 실용적 고려라는 명분 아래 대학 본연의 목적을 상실했으며, 바코드를 찍어내는 것처럼 비슷한 스펙,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는 그저 '똑똑하고, 온순한 양'들을 길러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데레저위츠 교수는 그의 최근 저서 <공부의 배신>에서도 대학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비판한 바 있다.

 

"교육의 목표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신을 직장에서는 쓸모 있는 인력으로, 시장에서는 잘 속아 넘어가는 소비자로, 국가에서는 순종적인 국민으로 전락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교육의 의미, 삶의 목적과 같은 중요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이 주제는 청년시절에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생각의 힘을 키우는 교육, 수업개혁을 시작하라

 

데레저위츠 교수가 말하듯 지금의 대학은 학생들이 첫 직장을 준비하는 직업양성소가 되었다. 대학이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교육해야 하는 대학의 임무에도 어긋날뿐더러 시대착오적인 현상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지금의 대학교육이 얼마나 뒤떨어지는지는 아래의 숫자들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3-5-19

 

이 숫자들이 무엇을 뜻할까? 앞으로 미래 세대가 살아가게 될 방식을 말해준다. 미래 세대는 일생 동안 3개 이상의 영역에서 5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19개 이상의 서로 다른 직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래학자들은 단 한 개의 직업으로 평생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나간다고 말한다.

 

즉, 첫 번째로 가지게 될 직업이 인생에서 차지하게 될 중요도를 기계적으로 나누면 5분의 1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첫 직장을 여는 열쇠 하나를 깎느라 4년이라는 시간과 엄청난 등록금을 온전히 다 쓰고 있다. 물론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점을 받고 온갖 스펙을 잘 쌓은 학생은 첫 직장을 수월하게 얻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첫 번째 취업문을 성공적으로 뚫었더라도 10년 뒤에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회사에 다닌다 해도 그 회사의 주력 산업이 완전히 바뀌어서 전혀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럴 때 자신에게 필요한 새로운 열쇠는 무엇일까. 적어도 이미 '옛것'이 되어버린 전공 지식은 아닐 것이며, 수용적 사고 100퍼센트의 능력은 아닐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학 문을 나설 때 손에 쥐어야 하는 것은 방문 하나만 열 수 있는 톱니 열쇠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여야 한다. 그런데 대학은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퇴보하여 단순한 취업 공부로 학생들을 몰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초체력이자 뼈대가 될 수 있는 마스터키를 학생들의 손에 쥐어주기 위해 대학은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미국의 한 오래된 대학에서 이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에는 1696년에 설립된,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세인트존스 대학이 있다. 전교생이 400명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대학인 이곳에서는 어딜 가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이 대학에서는 4년 내내 100권의 고전을 읽는다. 철학부터 수학, 과학,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커리큘럼의 전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어렵고 접하기 힘든 고전을 읽을 뿐 4년 내내 똑같은 과정을 공부한다. 취업에 몰두하는 다른 대학과 달리 세인트존스는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수업은 모두 탁자에 둘러앉아 이루어진다. 모든 수업은 토론 수업이고, 토론을 주도하는 것은 물론 학생이다. 교수는 가르치는 대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만을 한다. 수업이 끝나고 늦은 저녁 시간이 되어도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못다 한 토론에 한창이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은 세인트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학 4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으며 학생들은 긴 안목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그려나간다. 세인트존스 대학의 학생들에게 대학은 생각의 터전이다. 온종일 책을 읽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키워 나간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고 미래를 주체적으로 설계해 나가기 위해 대학 4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특별한 전공 없이 졸업하지만 법, 금융,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이 대학에서 어떤 자질을 키워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이름에 가려지지 않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능력, 나에게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 세밀한 지식만이 아니라 전체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 대학 4년 동안 인생의 마스터키를 얻었다고 확신하는 이 대학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말 속에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담겨 있다.

 

어떤 교육 환경에서 창의적인 사람이 나오는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수업개혁을 진행하는 곳이 또 있다. 하버드 대학 에릭 마주어 교수의 수업은 특별하다. 마주어 교수도 예전에는 250명의 학생을 앞에 앉혀놓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이 그것을 암기해 시험을 치도록 하는 수동적 주입식 강의를 했다. 그는 늘 강의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하버드 내에서도 강의 잘하는 교수로 손꼽힌다. 하지만 정작 시험을 치러 보면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그는 고민끝에,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보다 훨씬 더 큰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교수법을 바꾸었다.

 

그는 단편적이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대신,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주도하는 강의 방식을 개발했다. 핵심은 질문과 토론이다. 그의 수업은 모두 팀 단위로 이뤄지는데, 문제를 풀 때도 학생 혼자 풀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며 함께 해결한다. 마주어 교수의 강의실에서는 단순하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자유로이 소통하고 교류하며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키워 나간다.

 

마주어 교수는 앞서 MIT 미디어랩의 연구에 등장했던, 교감신경을 전혀 자극하지 못한 수업이 우연히 잘 가르치지 못한 지루한 수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의 심리학자 샤나 카펜터의 연구팀이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매우 체계적인 내용으로 유창하게 진행하는 강의든, 그 반대로 체계적이지도 않고 버벅거리며 못하는 강의든, 그저 앉아서 듣기만 하는 수업은 실질적인 학습효과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는 매우 주목할 지점이다.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는 유창한 강의가 어수룩한 강의보다 두 배 이상 높았지만, 실제로 강의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테스트했더니 두 강의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즉 교수의 일방향적인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배움은 수업의 질과 무관하게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의를 졸지 않고 재미있게 듣는다고 해서 정말로 깨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마주어 교수는 이제 학생들에게 현존하는 지식을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지식을 생성할 수 있도록 창의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전략은 '허용'이다. 학생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그저 '허용'하는 것, 교육자는 '나를 이겨봐라, 나를 이길 수 있으면 A+를 주겠다' 하는 열린 마음으로 학생을 대해야 하고, 우리는 그런 교육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 토양에서만 창의적인 사람,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대학 진학률 80퍼센트의 대한민국, 취업률은 OECD 꼴찌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현실은 어떤가? 학생들은 토론하는 대학을 원하지만, 대부분의 강의실에서 토론은 실종됐다. 대학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2011년 83퍼센트에서 2014년 65퍼센트로 뚝 떨어졌다.

 

기성세대들은 아주 쉽게 오늘날의 청년들을 비난한다. 이 비난은 청년 세대의 지적 능력에 대한 저평가로도 이어진다. 요즘 청년들은 자기만 알고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 책임은 기성세대가 만들고 기성세대가 유지하고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에 있다. 사회에 나가면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대학에서마저 '나 홀로 최고'가 되는 공부만 시킨다.

 

무엇보다 평가자부터 바뀌어야 한다. 교수의 말을 앵무새처럼 잘 외운 학생만을 높이 평가하나면 당연히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이 부족하고 소통과 협업에 서툰 사람을 키울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다. '대학을 못 가면 사람 구실 못 한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말 아래,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경이적인 대학 진학률 수치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1990년대까지도 40퍼센트가 채 안 되었지만 2005년부터 급격하게 증가해 2006년 82퍼센트를 넘어섰고 2010년에 들어서도 꾸준히 7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OECD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1위이고, 미국, 일본, 유럽의 대학 진학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그 진학률의 상승폭만큼이나 등록금의 상승세도 가파르다. 1975년부터 2010년까지 35년 동안 대학 등록금은 사립대가 28배, 국립대가 30배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쌀값이 6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전세금도 11배가 올랐으니 대학 등록금 상승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다. 학자금 대출 규모도 엄청나다. 정부학자금 전체 대출액은 2014년 말 10조 7000억 원으로, 학생 1인당 평균 대출액이 704만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졸자의 평균 취업률은 58.6퍼센트에 불과하다. OECD 국가들 가운데 단연 꼴찌다. 문제는 이 비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계 출신 90퍼센트가 논다'는 뜻의 '인구론'이란 말도 있다. 인문학 전공자들은 기업에서 환영받지 못해 십중팔구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복수전공한다. 통폐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존폐 위기에 시달리는 것도 인문계 학과들이다.

 

게다가 갈수록 취업의 문이 좁아지는데, 취직을 잘하겠다고 너도나도 대학에 가니 기업의 입사 경쟁률은 고공행진을 멈출 줄 모른다. 현대차 그룹의 경우 2015년 상반기 4000명을 채용하는 대졸 공채에 10만 명 이상이 몰렸다. 이제는 '입사 고시'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학점이 4.0이 넘어도 부족하고, 토익 960점이 넘어도 만점이 아니니 불안하다. 결국 더 높은 학점을 따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포기한다.

 

그러나 폭발적인 기술 발달로 앞날이 예측 불가능해지면서 세상은 개인에게 점점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225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구직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소통 능력'과 '협업 능력'이 꼽혔다. 그러나 학점과 스펙만을 위한 달리기에서 오히려 이런 능력은 없어지게 된다.

 

이미 세계 각국의 교육은 달라지고 있다

 

빅데이터를 통해 지금 우리 대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키워드를 도출해보면 아래와 같은 단어들이 나온다.

 

혼밥, 인구론, 후회, 수강신청, 학점, 학벌, 어학연수, 복수전공, 취업사교육, 토익, 스펙, 청년, 실신, 등골탑, 이태백, 돌취생, 취업 깡패, 전화기, 화석선배, 5포세대, 학위, 취업, 동아리 고시, 학자금 대출, 월급, 자소설, 자원봉사, 결혼, 승진, 출세, 재산, 고액연봉, 평판, 권력, 명성, 인턴, 대기업 공채, 현차 수능일, 삼성 고시

 

단연 취업과 관련된 내용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 '혼밥'이라는 키워드가 특히 자주 등장한다. 대학생의 약 72퍼센트가 혼자 밥을 먹고 그것을 편하게 느끼는, 이른바 '혼밥족'이라고 한다. 극심한 청년 취업난과 경제불황이 대학생들의 밥 먹는 풍경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대학에서 소통과 교류가 사라지는 현상을 확연히 보여주는 우울한 통계다. 게다가 대학 진학 자체를 후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최재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대학 진학을 후회하느냐'고 물었는데 무려 75퍼센트가 '후회한다'고 대답했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해서, 취업이 잘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취업이 안 된다고 대학 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학이 '취업 준비소'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대학, 다른 전공을 가진 청년들이 언제부터인가 모두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속에서 미래 세대는 더욱 외로워지고 있다. 물론 꿈과 낭만을 좇기에 지금의 대학이 처한 현실은 너무 각박하다. 하지만 수천만 원씩 쏟아붓는 대학 교육에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도대체 대학을 나오면 무엇이 더 나아지는 것일까?

 

우리 대학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답을 먼저 준비하는 곳이 훨씬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과거 우리가 교육의 양적인 측면에 수많은 자원을 쏟아부었다면 이제는 질적인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 취업을 위한 실용적인 공부가 아니라 세상과 사회, 인생을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는 교양교육과 기초학문에 다시 집중하고, 학생 중심의 교수법으로 생각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이미 세계 각국의 교육의 압도적인 추세는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 그것을 위해 에너지를 집중할 때 희망이 있을 것이다.

 

대학은 사라질 것인가? / 최진영 PD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던 9월, 한 면접 대기장. 아직은 앳된 모습의 대학생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 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대학생들은 정장 재킷에 넥타이까지 잘 올려 맸다. 한눈에도 긴장한 표정. 면접에 들어갈 지원자끼리 조를 이뤄 '조 구호'를 만들라는 과제에 대기장 공기가 사뭇 진지해진다.

 

면접장 안의 공기는 절박하기까지 하다. "본인이 리더로서 가진 면모는?", "도서정가제에 관한 본인의 생각은?",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찬반 입장은?" 모든 걸 간파하겠다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면접심사관 네 명과 무엇이든 방어하겠다는 네 명의 지원자가 치열하게 기 싸움을 벌인다. 이곳은 다름 아닌 한 경제단체 산하의 '경영 동아리 면접장'이다.

 

이 동아리의 회원이 되려면 최대 15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경영 동아리 중 하나인 이곳에서 활동하면 취업때 하나의 스펙으로 쓸 수 있음은 물론 경제계 인사들과 인맥을 쌓아 취업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입소문 때문이다. 자신이 경제, 경영 관련 학과이냐 아니냐는 고려사항이 아니다. 요즘은 어떤 학과라도, 취업하려면 경영 동아리 스펙 하나쯤은 필수라고 여긴다. 그래서 매년 학기 초만 되면 취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각종 경제, 경영 동아리에 몰려든다.

 

기본 8대 스펙을 만들기 위해 대학생들은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학점을 기본으로 자격증, 외국어 점수, 공모전 수상, 인턴, 동아리 등 대학교 안팎의 기본 항목들을 충실히 채우고 나서야 조금 안도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난 대학생은 '스토리가 있는 스펙'을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스펙 리스트'를 만들어 여름방학과 아르바이트 임금을 모두 투자했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취업할 수도, 잘 살아갈 수도 없는 세상이 됐기에 나타나는 서글픈 트렌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학은 왜 존재해야 할까? 대학은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기에, 우리는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대학에 시간과 돈을 쏟고 있는 걸까. 학자금 대출액만 연간 무려 2조원인 시대. 예전처럼 취업을 보장해주지도 않고, 그러한 대학 본연의 기능인 '지성과 지혜의 축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바로 이 질문을 확인하고 그 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시작은 먼저 한국 대학생의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명문 사립대에 임시 부스를 설치해 학생들의 속마음을 듣고, 서울대에서 A+만을 받는다는 학생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K는 주변의 많은 학생들처럼 지역의 유수 특목고를 졸업했고 내로라하는 대학에 와서도 고학점을 유지하는,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다. 그에게 "고학점을 유지하는 비밀을 들려달라"고 질문했다. K는 교수님의 말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모두 적는 '전사'기술과, 책과 노트의 완벽한 암기를 고득점의 비결로 털어놓았다. 또한 어떻게 필기를 하고, 어떻게 중간, 기말고사에 대비하는 것이 좋은지도 자세히 알려주었다. 요약하자면 '비판적인 생각'은 버리고, 교수와 대학의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였다.

 

K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지금과 같은 공부 방법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도 아니고 창의적인 사고에도 적합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학자가 꿈이었던 K에게 고등학교 시절에 꿈꿨던 대학 공부는 창의적인 생각을 실현하는 장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K에게 대학은 다음 과정을 위해 '길들여져야만 하는' 하나의 관문이 됐다. 강의를 그대로 받아적어 암기하지 않고,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공부한 소수의 다른 친구들은 좋은 학점을 받지 못했다. 교수님에게, 대학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다고 K는 털어놓았다. K는 자책했다.

 

많은 학생들이 K와 같았다. 분명 지금의 대학이 자신에게 일자리도, 그렇다고 지식과 지혜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길들여져야 한다. 그나마 그렇게 4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 졸업장 하나라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있었다.

 

취재를 해나가면서 지금의 대학 문제, 교육 문제는 사실상 사회, 경제 문제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모두가 극한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고, 남보다 더 높은 학점과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에서 '온순한 양으로 길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는 UC버클리와 같은 미국 명문 대학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천문학적인 돈과, 20대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대학.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 밖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목소리도 미국 내에서 나온다. 대학은 그야말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결국 제작진이 찾은 대학의 방향은 '지혜'였다. 방송에서는 '마스터키'로 표현했지만, 이는 사실상 '지혜'다. 학점 은행식, 취업학원이 아닌, '삶의 순간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 일자리가 부족한 이 시대에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경쟁 속에서 스펙 쌓기에 발버둥 치는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라 '함꼐 잘 사는 방법을 같이 도모할 수 있는 지혜', 틀에 맞춰져 한정된 일자리를 다투는 게 아닌 '새로운 직업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지혜'다. 미국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본 '지혜를 다루는 기술'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상상한다. 우리에게 적용하는 길이 쉽지 않겠지만, 진정 미래 세대가 더욱 잘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믿는다.

 

왜 우리는 온순한 양이 되어갈까_ 명견만리

by 미스터신 2017. 9. 29. 1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