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교육이 미래와 안전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_ 피터 틸

 

실리콘밸리에는 'IT로 성공하려면 일단 대학을 중퇴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미 '4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대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IT 환경에서 4년이라는 기간을 흘려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사업을 선점할 기회를 놓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실리콘밸리에서는 빌 게이츠, 래리 엘리슨, 스티브 잡스 같은 1세대 IT 기업가들 이후에도 안드로이드나 애플 IOS 등의 플랫폼을 이용한 스타트업을 창업해 억만장자가 된 2세대 IT 거물들의 학력이 화제가 되면서 '대학이 과연 창업에 도움이 되는가?' 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통계를 보면 2000년 이후 탄생한 새로운 IT 부자 열 명 중 절반이 대학중퇴자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해 트위터 회장 겸 스퀘어 CEO인 잭 도시, 스냅챗 창업자 에번 스피겔, 왓츠앱의 얀 쿰, 우버의 트래비스 칼라닉이 그들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창립멤버 대부분이 대학을 뛰쳐나왔다. 트위터는 공동창업자인 잭 도시와 에번 윌리엄스, 비즈 스톤 세 명 모두가 일이 너무 하고 싶어 자퇴를 했고, 페이스북의 초대 최고기술책임자이자 저커버그의 대학 룸메이트였던 더스틴 모스코비츠와 초대회장 숀 파커 역시 학교 대신 사업을 택해 2015년 '포천' 선정 '40세 미만 젊은 억만장자'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왓츠앱의 창업자 얀 쿰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뒤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갔으나 자퇴했다. 그는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과 연락하고 싶어 카카오톡 같은 무료 모바일 메신저앱을 만들었는데 페이스북이 이것을 220억 달러에 인수함에 따라 억만장자가 되었다.

 

UCLA 컴퓨터공학과를 중퇴한 트래비스 칼라닉은 30분 이상 택시를 기다려야 하는 것을 참지 못해 스마트폰 앱을 통한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를 만들어 38억 자산가가 되었으며 '포브스'가 선정한 400대 부호에 진입했다. 소유차량 한 대 없이 소프트웨어만 제공하는 우버의 기업가치는 연간 500만 대를 판매하는 현대자동차와 맞먹는 54조 원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사업을 시작한 칼라닉은 "말도 안 되는 불편과 싸우는 것에서부터 창업과 혁신이 시작된다."라고 말한다.

 

스탠퍼드 대학을 중퇴하고 천문학적 금액을 제시한 페이스북과 구글의 인수 제안을 당차게 거절해 화제가 된 25세의 스냅챗 창업자 에번 스피겔은 메시지가 10초 내외에 자동으로 사라지는 SNS를 성공시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억만장자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실리콘밸리에서는 잡스의 후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잡스가 생전 탐냈던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드롭박스를 드류 하우스턴과 함께 공동창업한 아라시 페르도시는 졸업을 6개월 앞두고 MIT를 중퇴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를 영웅으로 생각했으나 그의 인수 제안은 거절했고 3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세계적 파일 공유 서비스로 드롭박스를 성장시켰다.

 

빌 게이츠처럼 하버드 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중퇴한 30대 한국계 청년 제임스 박은 닌텐도 게임기 '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손목형 웨어러블 건강기기 '핏비트'를 만들었고, 회사가 뉴욕증시에 상장되며 6000억 원 자산가가 되었다. 그는 "창업 결심을 굳히자 졸업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고 한다.

 

잡스를 존경한다는 리트모터스 창업자 한국인 대니얼 킴은 잡스와 동문으로, 리드 대학을 중퇴하고 1년간 28개 나라의 106개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이 혼자 차를 타는데 왜 큰 차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에서 '나만의 자동차를 만들자'는 답을 얻고 모터사이클 크기의 1인용 전기자동차를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자동차는 세계 최대 가전쇼인 'CES 2014'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투자를 받아 현재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대기자가 이미 1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중퇴자를 선호하는 IT 기업들

 

얼마 전 미국 언론에는 '대학 졸업장이 종이 한 장의 가치로 전락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유엔미래포럼의 박영숙 대표는 이런 현상이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것은 2학년이 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4년은 너무 길며,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못 하도록 막는 곳이 바로 대학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은 중퇴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성공을 향한 '명예훈장'으로 여긴다. 콩나물시루 같은 강의실에서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교수들로부터 일방적인 수업을 받는 데 염증을 느끼는 그들은 대학이 성공의 유일한 통로라는 고정관념보다 '대학 중퇴가 내 인생의 최고의 결정'이라는 잡스의 스탠퍼드대 연설에 더 열광한다. 대학 중퇴자들로만 구성된 회사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학 중퇴자들로만 꾸려진 라이브파이어 라는 소설 소프트웨어 업체 직원들은 돈을 벌며 실생활에 관련된 수업을 받는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프린스턴을 중퇴하고 모바일앱 제조사 언드립을 창업한 믹 헤이전은 신입사원을 대학 중퇴자들로만 뽑고 있다. 그들은 생각이 자유롭고 위험을 감수할 줄 알며 집단적 사고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다. 헤이전은 '대학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지나치게 제한을 가한다'는 생각 때문에 대학교육에 대단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런 생각은 IT 공룡들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은 틀에 갇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대학 중퇴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운영 중이고, 스탠퍼드 대학원을 중퇴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공동창업한 구글은 면접 시 학교 성적뿐 아니라 전문성조차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구글 채용팀 수석 부사장인 라즐로 복의 말을 들어보자.

 

학교 성적이나 그 밖의 시험 점수들은 구글 채용기준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합니다. 지난 수년간 구글에는 대학 졸업장이 없는 직원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어떤 팀은 그 비율이 14퍼센트가 됩니다.

 

_ 이준영, '구글은 SKY를 모른다' 중에서

 

구글은 즐길 줄 아는지, 양심적인지, 겸손한지, 무엇이든 배우려는 호기심이 많은지 등의 자질을 중시한다. 한국의 지방대를 졸업하고도 구글 최초 한국인 엔지니어가 된 이준영은 자신의 책 '구글은 SKY를 모른다'에서 "구글에서 면접을 하는 약 5시간 동안 어느 누구도 학교나 학력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MIT 수석을 했든 고졸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으며, 자격증조차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회사를 가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좋은 학교를 갈 필요도, 좋은 성적을 받을 필요도 없다. 부모인 우리는 아이들이 호기심과 인성, 잠재력을 키워주는 것에 더 몰두해야 한다.

 

독특한 장학금 틸 펠로십

 

인기 미국 드라마 <실리콘밸리>에는 천재적인 투자가가 한 명 등장한다. 그는 극 중 TED무대에서 "실리콘밸리는 대학 중퇴자 덕분에 혁신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대학은 빚쟁이 실업자를 찍어내고 있어요. 우리는 이 의심스러운 가치를 제공하는 대학 시스템보다 우리 자신을 더 믿어야 합니다." 라며 청년들에게 "대학에 가는 대신 버거킹에 가서 일을 하고, 숲에 가서 견과랑 산딸기를 채집하세요." 라고 힘주어 말한다. 대학에 대해 지나치게 회의적인 모습이 희극적으로 과장되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캐릭터의 모델이 된 사람은 일론 머스크와 함께 페이팔을 창업했으며 '제로 투 원'의 저자이기도 한 피터 틸이다.

 

2004년 아무도 페이스북의 가능성을 알아주지 않을 때 마크 저커버그에게 최초로 5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그는 벤처사업에 뛰어드는 20세 이하 청년들 중 우수한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을 선발해 2년간 10만 달러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틸 펠로십'이라는 장학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장학금을 받기 위한 독특한 조건이 있으니, 바로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20명의 장학생을 뽑겠다고 처음 발표했을 때 그는 '학교교육 시스템을 무시하는 제도'라는 거센 반발에 부딪혀야 했다. 하지만 4년 만에 그 평가는 완벽히 뒤집혔다. 틸 펠로십은 요즘 '왜 20명밖에 혜택을 안 주는가',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을 정도다. 다행히 2015년에는 장학생이 100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학교를 그만두게 만드는 이유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혁신과 기업가 정신,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순응주의만 장려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명문대의 MBA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등을 나온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아이디어가 없고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그들은 실전에서 백전백패하기 때문이다.

 

쉬어가는 의미로 잠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살펴보자. 무디스 신용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고, '포천'의 설문조사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보험회사로 뽑힌 미국의 노스웨스턴 뮤추얼은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기업가 정신 테스트'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테스트 항목들 중 특이한 것은 학창시절 학업성취도가 높으면 마이너스 점수를, 낮으면 플러스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높은 점수를 준다. 열심히 그룹 활동을 했던 사람은 1점, 어릴 때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2점을 받는 것에 비해 학업성취 능력이 열등한 사람이 받는 점수는 4점이다. 다시 말해 학교 교육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던 것을 오히려 더 인정하는, 예전 기준으로서는 믿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피터 틸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을 위해선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는 번드르르한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고 있다." 면서 2015년 내한 당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교육이 미래와 안전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 학교에 가지 않으면 인생이 망가진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건 공포체제나 다름없습니다. 마치 16세기 교회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졸업장을 받으면 안전하고 졸업장이 없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창업자가 돼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모두 학교를 관둬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대학에 가는 것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피터 틸은 해상도시와 해상국가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수십억을 투자하고 있다. 그의 친구이며 환경오염을 피해 2030년 안에 8만 명의 지구인을 화성에 이주시키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 X'의 CEO 일론 머스크가 화성으로 떠나기 전인 2020년쯤, 우리는 먼저 바다 한가운데의 해상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될 지도 모른다.

 

초등생부터 기업가로 키우다

 

실리콘밸리 창업주들의 연령은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반도체기업 인텔은 열세 살 소년이 창업한 점자 프린터 회사에 수십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인도계 이민 2세인 슈브함 바네르제가 레고블록 원리를 이용해 개발해 만든 시각장애인용 점자 프린터로 학교 과학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후 부모에게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다. 야후는 영국 고등학생 닉 댈로이시오가 열다섯살 때 만든 온라인뉴스 요약 앱 '섬리'를 3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열한 살 때 만든 앱을 TED에서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한 토머스 수아레즈는 같은 해 회사를 창업하여 일찌감치 구글 글래스 앱개발을 시작했고 열다섯 살이 된 2014년에는 지금보다 10배 빠른 3D 프린터 개발에 착수해 벌써 관련 특허까지 신청해두었다.

 

이렇게 나이 어린 디지털 세대가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무기로 미래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자 기업가 육성을 목표로 한 혁신학교 설립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LA에 위치한 '인큐베이터 스쿨'은 LA 통합교육구에서 시도하는 파일럿 스쿨로 2013년 개교해 11~13세 학생들에게 기업가가 되는 길을 가르치고 있다. 졸업 전까지 자신의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이 목표인 이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친구들과 토론한다. 학생들은 커서도 자신의 회사를 경영할 거라며 "따분한 교과서보다 직접 보고 배우는 것이 즐겁고 학교에 오는 것이 신나고 기다려진다."고 말한다. 학교 설립자는 제2, 제3의 구글 창업자와 스티브 잡스를 배출하기 위해 기존의 교육을 탈피한 새로운 교육법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학교의 철학은 '세계를 바라보며 풀어야 할 문제를 발견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인재를 만드는 것이다.

 

이에 반해 늦은 밤까지 공부하고 대입과 취업이라는 목표만 쫓아가며 가장 열정적이어야 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 청소년들을 떠올리니 답답함이 하늘을 찌른다. 지금 우리가 어떤 교육을 펼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의 깊이와 넓이는 어마어마하게 달라질 것이다.

 

아직도 체감하기 어려운가? 한국 아이들이 강남의 고급 아파트와 멋진 외제 자동차를 사기 위해 모든 젊음을 바쳐 공부해야 한다고 믿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의 소년 소녀 창업가들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화성에 인류를 실어 나를 우주선과 그곳에서 함께 살아갈 거주지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학력파괴자들_ 정선주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5. 24. 15:30

 

'꿈꾸는 다락방'으로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지성, 그는 전주교대를 졸업한 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고, 현재는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나는 그에게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끼곤 하는데, 그가 전주에서 교육대학교를 다녔던 시기에 나 또한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가 초등 교사로 재직하던 시기에 나 또한 초등 교사였고, 그는 작가로서 나의 롤모델이기 때문이다. '인생아, 고맙다'는 이지성이 겪은 이십대 시절의 방황과 아픔을 상세히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한다.

 

"세상 무엇이 가로막더라도 작가의 길을 가겠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작가가 되겠다,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이지성은 저서에서, "내 젊은 날은 방황과 고독, 결핍과 상처로 얼룩진 암흑 그 자체였다"고 회고한다. 그는 대학시절 내내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처절하게 노력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졸업을 앞두게 되었고, 깊은 절망에 빠졌다. 당시의 착잡한 심정을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4학년이 되자, 친구들은 화사하고 멋진 정장을 입고 교생실습을 나갔다. 친구들이 그렇게 어른스러워 보일 수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작가도 되지 못하고 교사도 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는 건가.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내 인생은 무엇인가. 학교에만 가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열아홉 살에 대학을 갔다고 하니,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 일이다. 잠시, 우리의 스물두 살을 떠올려보자. 당신은 스물두 살 때 무얼 하고 지냈는가? 평범하게 살았다면 대학생활의 낭만을 만끽하고 있었거나, 군대에 가 있었거나, 직장을 다녔거나, 취업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지성처럼 존재에 대한 회의와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방황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이지성의 글을 읽으면서 젊은 날 그가 감내해야 했던 시련과 아픔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시련과 아픔이 부러웠다. 뭐 그런 걸 다 부러워하냐고? 세속적인 기준만을 놓고 따졌을 때, 스물둘 전위성은 스물둘 이지성보다 남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신 7등급이라는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포자기의 나날을 보내던 내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시기가 고2겨울 즈음이었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2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셈이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법,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었고, 나에겐 시간이 더 필요했다. 재수를 했다. 원서를 한 군데도 넣지 못할 만큼 참패했다. 삼수를 했다. 원서를 넣은 세군데 대학에 모조리 낙방했다. 삼수를 실패한 것도 암울한데, 한 달 뒤에 입영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나는 몰랐다. 최종 학력이 고졸인 스물두 살 남자는 군대에 강제 징집된다는 사실을. 끌려가듯 훈련소에 입소했다.

 

스물셋 이지성은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주어지는 교대 졸업장을 손에 쥐었지만, 스물셋 전위성은 삼수를 실패한, 고졸 학력이 전부인 군인이었다. 부끄럽다, 초라하다, 비참하다, 죽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내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한 적도 없다. 그건 내가 긍정적 사고방식을 소유한 낙관주의자라서가 아니었다. 인생과 앞날을 걱정할 만큼 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개념으로 살았기 때문에 삼수를 실패했어도 고통스럽지 않았고, 군대에 끌려갔어도 슬프지 않았고, 고졸 학력이 전부였어도 절망하지 않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던가. 나에게는 아품마저도 사치였다. 아픔을 느낄 수 없는 청춘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희망도, 절망도,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정신적 뇌사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것이 방황, 고독, 상처, 결핍, 좌절로 점철된 스물둘 이지성을 내가 부러워하는 이유다. 지금 내 신세를 한탄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당신 아이가 나와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나는 왜 이십대 중반까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해야 했을까? 성공한 이들은 나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그들은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최적의 환경,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우월한 조건을 갖췄던 것일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희귀병을 앓고 있는 1급 지체장애인, 뺑소니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못 쓰게 된 청년, 불의의 사고로 오른손을 잃게 된 군인,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다섯 살에 고아가 된 아이, 16개월 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는 고교자퇴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있는 고졸청년, 15년째 출판 거절을 당하고 있는 무명작가. 이들은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실패할 확률이 높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이들이 성공은커녕 밥 벌어 먹고 살기도 힘들 거라고 판단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나는 최고다 될 것이다", "나는 성공할 것이다"라고 외쳤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네 분수를 알아라.", "너 미쳤냐?"라고 비아냥거렸다.

 

여기, 주제 파악 못하는 젊은이가 또 한 명 있다. 학창 시절, 그의 번호는 언제나 1번 아니면 2번이었다. 키가 158.7c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젊은이는 예술대학에 지원했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그는 단돈 30만 원을 들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시장골목 한 구석에 있는, 보증금 없는 월 12만 원짜리 방을 구했고, 3개월 과정의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그는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발성 연습을 했다. 지독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았다. 그는 공연에서 남자주인공으로 열연하게 되었고,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연기상도 받았다. 연기학원을 수료하던 날, 학원장은 면담 자리에서 그에게 말했다.

 

"넌 키가 유난히 작아서 연기 활동하는 데 장애가 많을 거다. 아마 방송 출연은 어려울 거야. 방송 관련된 다른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

 

이것은 작은 시련에 불과했다. 그의 삶은 탈락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MBC 공채시험에 4번, KBS 공채시험에 3번 떨어졌고, 수년 동안 원서를 넣은 대학에 모조리 낙방했다. 연이은 실패에 좌절한 그는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수면제 40알을 모았고, 옥상 난간에 서보기도 했다.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너처럼 운 없는 놈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다."

 

좌절은 했어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평생을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이 있었고, 희극배우가 되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옥탑방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방송국을 보면서 다짐했다.

 

"난 저기 꼭 들어간다. 방송국아, 기다려라. 지금은 내가 여기서 너를 보지만, 언젠가는 방송국에서 여기를 볼 날이 있을 것이다."

 

그는 7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KBS 공채시험에 합격한다. 현재 그는 영화, 연극,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시련과 좌절을 딛고 성공을 일궈낸,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능인 김병만이다.

 

그들은 성공은커녕 실패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났거나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고, 스무 살에 가장이 되었다. 찢어지게 가난했고, 타고난 재능도 없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었고, 그로 인해 수없는 좌절과 실패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악조건에 굴하지 않았고, 암울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았으며, 거듭되는 실패에 무릎 꿇지 않았다. 끈질기게 도전했고, 무소의 뿔처럼 전진했다. 이러한 불굴의 정신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들이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꿈과 목표에 있었다. 그들에겐 생각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간절한 꿈이 있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뤄내고 싶은 비장한 목표가 있었다.

 

흔히,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을 꼽는다. 이 말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생뚱맞다. 부모가 자녀의 학업성취에 중요한 변수라는 사실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부모 요인에 재력, 무관심, 정보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성적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는 학생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다. 그 의지와 노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꿈과 목표다. 실제로 명문대 합격생들은 확고한 꿈과 명확한 목표를 갖고 공부에 임했다. 그들은 원하는 대학, 가고 싶은 학과, 장래희망을 학창 시절에 이미 확고히 정해 놓았다. 여기서 잠깐, 서울대생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했다. 물론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공부를 했지만, 크면서 서울대에 진학하고 싶은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참 열심히 공부했다."

"중학교 때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교 1등은 해야 된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서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전교 1등을 꼭 해야 한다는 목표를 확실하게 세웠다. 이것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1등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다. 그 후 나는 정말로 1등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반문하는 부모들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서울대는커녕 반에서 중간도 못가는 실력이다. 공부에 특출난 재능을 갖춘 명문대생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아이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들이 서울대에 갈 수 있었던 것은 꿈이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갈만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 아닌가? 꿈과 목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잘하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런 의문을 품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명문대에 들어갈 만큼, 공부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학생들도 이루고 싶은 간절히 꿈과 목표가 있는데, 재능도 실력도 노력도 부족한 당신 아이에게 꿈과 목표마저 없다면, 대체 무슨 수로 그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꿈도 목표도 없는 당신 아이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죽어라 공부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목숨걸고 공부하는 그들을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당신의 어린 자녀에게 기권과 포기부터 가르칠 셈인가"

 

때때로 나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회한에 잠기곤 한다. '나느 왜 스물넷까지 고졸백수로 살아야만 했던가.' '수없이 자문해 보았지만, 결론은 항상 똑같았다. 순리대로 흘러간 것이다. 인생이 잘 풀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남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특출난 재능도 없었고, 출중한 실력도 없었다. 환경도 상당히 열악했다. 무엇보다도 꿈과 목표가 없었다. 눈물날 만큼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이 없었다. 죽음을 각오할 만큼 비장한 목표가 없었다. 꿈 없는 내 청춘은 신경세포가 괴멸된 듯 무감각했다. 목표 없는 내 젊음은 뇌세포가 마비된 듯 무기력했다.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스물넷의 8월 1일을. 그날은 내 생일도 아니었고, 어떤 기념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새롭게 태어난 역사적인 날이었다. 재능도 없었고 환경도 열악했지만, 간절한 꿈과 비장한 목표를 갖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훌륭한 교육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고, 교대 입학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듬해 나는 고졸백수를 탈출했고, 4년 뒤 초등 교사가 되었다.

 

당신 아이에겐 꿈이 있는가? 목표가 있는가? 공부를 안 한다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걱정할 일이 아니다. 당신이 진짜로 걱정해야 할 것은, 꿈 없는 당신 아이가 고통도, 좌절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식물인간처럼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목표 없는 당신아이가 이십대 중반까지 고졸백수로 살면서 아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렇게 살아봤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신 아이에게 꿈과 목표가 없다면 성적이 떨어지는 것보다, 재수 삼수를 하는 것보다, 청년 백수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암울한 일이다.

 

재능이나 환경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성공의 조건은 노력이다. 99%의 노력이 천재를 만들고, 많이 아는 사람도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재능과 실력도 노력을 했을 때만 갖출 수 있는 것이다. 당신 아이가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것이 공부든 다른 무엇이든 쉼 없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그 쉼 없는 노력은 꿈과 목표로부터 나온다.

 

일등, 백점, 우등생, 명문대, 성공은 꿈과 목표라는 씨앗을 뿌렸을 때 비로소 거둘 수 있는 열매들이다. 많은 부모들이 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씨앗을 뿌리지 않고, 열매만 수확하려 든다. 자녀에게 목표를 세워보라고 조언하지 않고, 날을 세워서라도 백점을 받아오라고 종용한다. 꿈을 가지라는 말은 하지 않고, 학원을 가라는 말만 한다. 당신은 어떤 부모인가? 백점 맞아라, 학원가라를 외치는 부모인가? 꿈이 무엇이냐, 무슨 목표를 세웠냐고 묻는 부모인가?

 

꿈과 목표는 인생이라는 배의 목적지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꿈과 목표없이 사는 인생은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다. 꿈 없는 인생의 끝은 좌초요. 목표 없는 인생의 결말은 난파다.

 

초등 6년이 자녀교육의 전부다_ 전위성

 

꼭 꿈과 목표가 있어야만 노력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꿈과 목표가 없어도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꿈과 목표가 있다면 끊임없이 노력할 확률은 높다. 꿈과 목표가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데, 억지로 꿈과 목표를 세울 순 없다, 그래도 어쨌든 참고가 될 만한 글이기에 올려본다.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4. 11. 13:08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부모의 말 한마디에 자녀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로, 자신감입니다. 자녀를 우등생으로 키워내고 싶은가요? 오늘부터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아들아, 넌 할 수 있어!"

"딸아, 네겐 그것을 해낼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어!"

 

어떻게 하면 이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먼저 자신감을 심어주는 부모의 말이 자녀교육에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겠지? 논문을 검색해볼까? 성공한 부모들과 명문대생들의 예화를 찾아볼까?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례들을 싣지 않기로 했다. 자신감이라는 정서적 요소를 무미건조한 통계 수치로 치환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성공한 부모들의 사례나 명문대생들의 일화는 식상한 면이 없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논문이나 성공담을 소개하는 것으로는 메시지 전달에 흡입력이 떨어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호소력 짙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긴 고민 끝에, 내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저자나 독자 모두 논문의 숫자놀음은 따분하고 머리 아플 테고, 일면식도 없는 성공자들의 목소리를 나열하는 것보다는 저자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이 독자들의 가슴에 더 와 닿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 나는 비관과 절망의 포로가 되어 자포자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일일곱 꽃 같은 나이에 인생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이다. 포기와 나태의 대가를 치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학하고 두 달 만에 중간고사를 치렀고, 며칠 뒤에 성적표가 나왔다. 48명 중 10등이었다. '10등이면 잘한 것 아닌가?' 벌써 잊었는가? 뒤에서 10등이었다. 내 앞에 38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밀려드는 좌절감, 한국말로 진행되는 수업을 알아듣지 못하는 당혹감, 해답지를 봐도 뭔 소린지 몰라서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참담함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간혹 어떤 책들을 읽다 보면 저자가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과대 포장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지금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내 말은 과장이 아니다. 고교시절의 방황 때문에 나는 스물네 살까지 고졸백수로 살아야 했다. 믿거나 말거나, 진짜로 그랬다. 당시에는 '짜증난다, 재수없다, 죽고 싶다'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겨우 열일곱 나이에 비관과 염세의 늪에 빠져 인생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절망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이 많은 부모라면 여기서부터 좀 더 진지하게 읽어주길 바란다.

 

밑바닥을 모르고 끝없이 침전하던 나를 건져 올려 준 사람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는 내 인생의 은인이자 구세주였다. 은인이 내게 공부를 가르쳐 주거나 장학금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내게 준 선물은 바로 이것이었다.

 

"넌 할 수 있어!"

 

고작 다섯 글자였지만, 내겐 천금보다 값진 말이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린 줄 알았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은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내게 편지로, 전화로, 만날 때마다 쉼 없이 외쳐댔다.

 

"넌 할 수 있어!"

"네겐 무한한 능력이 있어!"

"넌 무조건 잘 될 거야!"

 

자폐적 삶을 살아가던 내 처지에선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그런데 아는가? 아무리 무능하고 비관적이고 무기력한 사람일지라도 '넌 할 수 있다'는 말을 수년 동안 반복적으로 들으면 두뇌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2년이 흘렀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아무런 변화도, 성과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은인은 여전히 외쳐댔다.

 

"넌 할 수 있어!"

 

그 쉼 없는 외침에 나를 감금했던 절망의 벽이 조금씩 금갔고, 갈라진 틈에서 새어 나온 빛줄기들이 나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희망의 빛이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어', '그냥 되는대로 살자',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비관에 빠져 있던 나에게 희망의 날개가 돋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거 같아!',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지 몰라!','사람답게 살고 싶다!'

태양이 지평선까지 내려앉은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아침을 소생시키듯,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은 비관과 절망에 빠진 나를 소생시키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내게도 그 능력이란 게 있을지도 몰라.'

그와 동시에 나를 끝까지 믿어준 은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날 믿어주는데, 그 믿음을 져버릴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절망의 벽을 깨부수고, 빛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절망의 동굴을 벗어나 희망의 광야로 들어선 것이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만일 내게 은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절망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었을 거라고, 밑바닥 삶에서 희망을 꿈꿀 수 없었을 거라고,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은인을 생각할 때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감사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른다.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서 밝힌다. 은인은, 나의 친누나였다.

 

당신은 어떤 부모인가? 자녀에게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한 적이 있는가? 자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적이 있는가?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눈에서 감사의 눈물 대신 원망의 눈물을 쏟게 만들고 있다. 자신감은 불어넣지 않고, 잔소리만 불어넣고 있다.

 

당신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 줄 사람이 있는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희망의 밧줄을 던져줄 사람이 있는가? 수년 동안 변화와 진전이 없어도 끝까지 믿어 주고 격려해 줄 사람이 있는가?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안타깝지만, 당신 아이에게는 그런 은인이 없을 것 같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우리 아이에게 그런 사람이 왜 없나? 엄마인 내가 있는데! 아빠인 내가 있는데!'

 

그렇다. 당신 아이에게 은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바로 당신이다. 오직 당신 밖에 없다. 그 어떤 사람도 당신 아이에게 '넌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당신이 수십 년을 살아오는 동안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던 사람이 몇이나 있었던가를. 당신 아이도 똑같은 처지다. 부모인 당신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당신 아이 또한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평생 듣지 못할 것이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자녀교육의 진리다. 특히,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잘 새겨듣기 바란다. 이제 당신이 자녀의 공부에 도움으 줄 수 있는 일은 오직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 밖에 없다. 물론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많은 부모들이 '공부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한다. 반면 '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부모는 없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자녀에게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준 적이 언제였던가.

 

당신이 자녀에게 불어넣어 주어야 할 것은 잔소리가 아니다. 자신감이다. 오늘부터 "공부해라!", "공부해라!", "공부해라!" 대신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외치는 부모가 되라. 오늘 당신이 외친 이 말 한마디가 자녀의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자신감, 당신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이자,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초등 6년이 자녀교육의 전부다_ 전위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4. 11. 12:11

 

앞서 언급한 메리 고든이라는 캐나다의 교육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유치원 교사를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 아기가 가진 힘'을 발견하고 지역에 사는 갓난아기를 초,중등학교에 초대해 아이들로 하여금 한 학년 동안 성장 과정을 지켜보도록 했다. 특히 초중등 아이들 사이의 폭력이나 공격성, 왕따 현상과 같은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로 대두된 때에 메리 고든의 '갓난아기 요법'은 특별한 마법의 힘을 발휘했다.

 

나는 이 '공감의 뿌리' 이야기를 이미 들은 바 있었기에 몇 년 전 연구를 위해 캐나다 토론토에 머물게 되었을 때, 하루 날 잡아 '공감의 뿌리' 사무실을 방문했다. 운이 좋으면 메리 고든 선생도 직접 만나보고 생생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겠다 싶었다. 사무실은 토론토 시내로부터는 좀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었다. 그 주변은 대단히 조용하고 한가했다. 유리로 된 멋진 건물 5층에 자리 잡은 사무실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메리 고든 선생은 토론토와는 한참 멀리 떨어진 밴쿠버로 출장을 가고 없었다. 직원 한 분이 친절하게도 '공감의 뿌리'를 소개하는 책자를 골고루 챙겨 주었다.

그 속에는 앞의 사례처럼 유치원이나 초중등 학교 교실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들이 자세히 안내되고 있었다.

 

'공감의 뿌리' 재단 대표인 메리 고든 선생은 말한다.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아기가 충동을 조절하는 법을 어떻게 배워나가는지 보여줍니다. 이런 '갓난아기'와의 만남이라는 체험학습을 통해 초등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자신의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공감의 뿌리'식의 교육성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일반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채택하는 학교가 꾸준히 늘어 지금까지 이 교육을 받은 학생은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제는 캐나다는 물론 미국과 호주, 영국, 뉴질랜드 등으로 '공감의 뿌리' 학습법이 확산되면서 학교폭력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거나 줄이는 대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메리 고든은 이미 2010년에 한국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가 정신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해 '공감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갈등을 해결하지도, 이타심을 발휘하지도, 평화를 추구하지도 못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해마다 10대 청소년 300명 내외가 자살하는 나라, 청소년 스트레스 지수가 세계 최고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경제적 여유만 된다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모두들 떠나버리고 싶어 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2014년 4월의 세월호 사고와 그 이후의 과정을 보더라도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러나 떠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어디에 살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공감의 능력'이 필요하다. 사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 한국사회, 특히 언론 및 정치권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온 나라가 돈벌이에 혈안이 된 나머지 사회 전체가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메리 고든의 '갓난아기 요법'은 앞서 살핀 바, 갓난아기와 어머니를 일반 학교에 정기적으로 초대해 1년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 동안 갓난아기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학생들끼리 생각과 감정, 느낌을 공유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대체로 이 교육을 받은 학생 중 70% 이상은 봉사정신과 친사회적 행동이 증가했고, 프로그램 보급이 10년이 지나면서 캐나다 전역에서 집단 괴롭힘이나 따돌림 현상이 90%나 줄어든 것으로 관찰됐다.

 

'공감의 뿌리', 과연 무엇이 어떻게 작용해서 마술 같은 효과를 내게 될까? 내가 보기엔 유치원생이건 초중등생이건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한 아이들과 '갓난아기'와의 만남이 '뜻밖'이라는 사실이 중요하게 보인다. 유치원 아이나 초중등 아이들은 갓난아기를 보면 '뜻밖에' 자기 동생이 온 것처럼 보일 것이고, 무의식적으로나마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신기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런 아기에게 해를 끼치고 싶은 마음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갓난아기의 특성이다. 갓난아기는 아직 사회적 편견이나 고정 관념에 노출되지 않았다. 아주 순수한 편이다. 이런 아기를 만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순수한 마음과 따뜻한 감정을 재발견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곧, 갓난아기와의 '뜻밖의' 만남이 결국은 학생들 자신의 순수한 원래 모습과 접촉하게 함으로써, 사람마다 갖고 있는 '공감의 능력'을 발달시키게 되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강자 동일시'만 하는 게 아니라 '약자 동일시' 곧  '약자와의 공감' 능력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자의 고통이나 약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 그리하여 약자의 내면을 이해하고 약자의 입장에서 사태나 문제를 바로잡고자 하는 역량,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게 아닐까?

 

게다가, 공감 능력의 발달과 함께 학습 능력도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인이나 다른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은 집중력을 높이고 이해력을 높임과 동시에 창의성을 북돋우기 때문이다. 이미 900년 전에 중국의 소동파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대나무가 내 속에서 자라나게 해야 한다. 손에 붓을 쥐고 눈으로 집중을 하면, 그림이 바로 내 앞에 떠오른다. 그럼 그림을 재빨리 잡아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냥꾼을 본 토끼처럼 그림이 잽싸게 사라진다."

 

로버트와 미셸 루트번스타인이 쓴 '생각의 탄생'에 나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공감의 힘'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란 책에서 고대 신화적 의식의 시대로부터 기독교 문명의 발흥, 18세기 계몽주의 및 19세기 이데올로기의 시대와 20세기 심리학 시대에 이르는 긴 역사의 여정에서 인간의 공감이 어떻게 계발돼 왔는지 고찰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 그는 앞으로 세계의 경제는 경쟁과 독점의 시대가 아니라 공감과 협력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전망한다.

 

"인간 이해에 기초하고 분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협업의 경제 체제에 동승한 개인, 기업, 나라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 골자다. 그렇다. 갈수록 석유 문명에 기초한 경제 성장의 신화는 종말로 치닫는다. 자본주의는 사상 유례가 없는 생산력을 발달시켰지만, 마치 '이카루스 역설'처럼, 그 과정 속에서는 우리는 자연이나 타자와의 공감 능력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공감 능력마저 잃어버린 게 아닐까?

 

아이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세 아이 모두 내가 직접 경작하는 텃밭에서 지렁이와 함께 놀던 때가 있었다. 보통 도시 아이들은 지렁이를 보면 기겁을 한다. 사실 어른인 나도 지렁이나 뱀을 보면 끔쩍끔쩍 놀란다. 그런데 지렁이는 사실 유기농 농사에서 엄청 중요한 일을 한다. 음식물 등 각종 유기물을 분해하여 마침내 퇴비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밥이 되는' 생태 순환형 살림살이 경제에 지렁이는 매우 소중한 존재다. 이런 걸 알고 난 뒤 나는 아이들에게 "지렁이가 없으면 맛있는 상추도 못 먹는다. 지렁이가 큰 일꾼이란다. 지렁이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라고 알려주었다.

 

그 뒤로 아이들은 지렁이를 친구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행여 지렁이가 밭에서 기어 나와 길가에서 길을 잃고 있으면 아이들은 조심스레 지렁이를 손에 담아 밭으로 넣어주곤 했다. 바로 이런 것이 이 죽임과 혼란의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공감의 능력'일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그런 식으로 자연과 교감하며 자란 아이들은 감성이 살아 있고 오감이 살아 있으며 자기 삶의 책임성 있는 주체로 잘 자란다. 이러한 인간의 능력(공감, 소통, 연대)의 회복이야말로 메리 고든이나 제레미 리프킨의 메시지처럼, 나를 살리고 관계를 살리고 경제와 세상을 살리는 토대가 아닐까 싶다.

 

더불어 교육혁명_ 강수돌

 

by 미스터신 2016. 3. 14. 11:17

 

분명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돈에 대한 결핍의 기억이 없다는 것은, 유년기를 돌이켜보면, 우리 집은 평범한 중산층이었는데도, '돈이 없어서' 무언가를 못해본 기억이 없다.

 

학창 시절에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타서 썼고, 하고 싶은 대로 개인 과외도 두세 개씩 받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등록금이 없어 휴학을 한 적도, 용돈이 모자란 적도 없었다. 물론 쓰고 싶은 만큼 쓸 수 없는 건 불만이었지만, 돈이 없어서 '미치도록 돈을 벌어야겠다'고 이를 갈아 본 적은 없다.

 

결국 내 손으로 제대로 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기자가 된 후다. 내게 경제 관념이란 숱한 짠돌이, 짠순이들을 만나면서 후천적으로 얻게 된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하지만 <짠순이, 짠돌이 시리즈> 연재를 하면서 경제 관념이 뼛속까지 체화된 어린 친구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김나연. 그녀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들 사이에서 특화된 재테크 특강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월 30만 원의 용돈을 모아 대학 졸업 때까지 3000만 원 이상의 종잣돈을 모았다.

 

무엇보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그녀의 어린 나이였다.

'무엇이 이 어린 친구를 짠순이 대학생으로 만들었을까?'

숨겨진 이면이 궁금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용돈을 받았어요.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죠. '이 돈을 다 써도 더 주진 않을 거야. 대신 남는 돈은 다 가져."

 

'남는 돈은 다 가져.'

 

그녀는 이 말에 꽂혔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남는 돈을 가지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항상 조금 더 아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어머니를 설득시킬 이유를 말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친구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같은 뻔한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졌죠.'

 

초등학생 때부터 무엇 하나 쉽게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원하는 걸 손에 쥐기 위해선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했다. 그제야 나를 괴롭히던 의문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맞아. 바로 이거야. 정답은 결핍이었어!'

 

결핍은 사람을 구하게 만든다. 센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사퍼가 쓴 '결핍의 경제학'이란 책을 보면 "인간은 결핍을 느끼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은 보지 못하고 그것만 보게 되는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결핍을 느껴야 비로소 간절히 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한두 가지는 아니겠지만, 결핍은 분명 큰 원동력이 된다.

 

성취란 결국 결핍을 느끼는 데서 출발한다. 결핍을 극복하지 않고 '현실이 마냥 불행하다'고 느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가르친 것은 바로 '결핍을 대하는 자세'였던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가르친 경제 교육은 두 가지였다.

 

첫째, 필요한 게 있으면 먼저 계획하고 돈을 모아라.

둘때, 그것이 필요한 이유를 설득시켜라.

 

사람들이 빚을 지는 이유는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두 가지 원칙을 제대로 지키기 때문이다. 푼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어본 사람은 남들이 보기엔 티끌처럼 작은 것은 소중함을 안다. 푼돈으로 목돈을 만든 사람만이 마지막까지 부를 유지할 수 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나는, 어머니의 후광을 느꼈다. '대학생 재테크'를 만든 그녀의 절약 습관은,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결핍을 가르친 어머니의 훈련 덕분에 어릴 적부터 해온 치열한 고민들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그 무엇보다도 결핍을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원한다는 대로 모든 욕구를 다 충족시켜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진심을 다해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다.

 

원래 사람은 쉽게 얻는 성취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아무리 값비싼 보물일지라도 고마운 줄 모른다. 스스로 간절히 구하기 전에 그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문득 고교 시절, 비상한 머리로 쉽게 공부를 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스캐너가 있다고 했다. 시험 전날 교과서를 한 번만 보면 머릿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정답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그를 '스캐너'라 불렀다. 스캐너는 놀 것 다 놀고, 할 것 다 하면서 공부를 해도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머리보다는 노력으로 공부했던 나는, 스캐너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스캐너는 당당히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 친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스캐너가 보였던 반응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냥 간판 하나 딴 거 뿐이지. 뭐."

 

정말이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심하게 서울대를 간판이라 불렀다. 하지만 스캐너는 끝내 사법 고시를 패스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의 뛰어난 스캐너를 활용해 사교육 시장에서 유명 강사가 됐을 뿐이다. 아주 나중에야 스캐너의 소식을 들은 나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래. 간판을 너무 쉽게 땄어.'

 

돈은 어렵게 벌어야 한다. 쉽게 번 돈은 그만큼 쉽게 나가기 마련이다. 인간은 스스로 결핍을 느끼고, 그것을 자기 힘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뼛속까지 전율하는 성취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핍에도 불구하고, 성취를 해본 사람의 자긍심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무엇보다 자긍심은 곧 행복의 척도가 된다. 행복한 아이를 만들려면 자긍심을 길러줘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부모가 그에게 결핍을 먼저 알려줘야 한다. 돈이 아닌 푼돈을 모으는 습관을 물려주는 것. 아이에게 부자로 가는 '특급 엔진'을 달아주는 것과 같다.

 

결혼보다 월세_ 성선화 기자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2. 27. 10:26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군상을 이루며 살아간다. 아이들에게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 잘 사귀어서 그들 각자에게 좋은 점이 있으며, 그 좋은 점을 본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자. 모든 사람을 가슴에 품을 줄 아는 아이로 키우자.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나와 다른 여러 유형, 여러 계층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독일의 경제학자 마르크스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말했다. '나'라는 개인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다. 사회적 관계 없이는 나도 없다. 관계가 풍요로울수록 인생이 즐겁고 풍요로우며, 관계가 빈약할수록 인생도 재미없고 빈약하다.

 

사회적 관계가 없는 아이들은 외로움을 호소한다. 집에 갈 때도 혼자 가고, 도시락을 함께 먹을 친구가 없어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배회한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부모들은 때로 너무나 이기적이고 편협하게 행동할 때가 있다. 자기 아이들이 반듯하고, 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아이와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괴롭히는 못된 행위도 집에서 배운 경우가 많다. 물론 악화가 양화를 구촉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처럼 품행이 안 좋은 아이들과 어울리면 그렇게 물들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얼마나 심지 있는 교육을 시키냐에 따라서 나쁜 행위를 따라가기보다는 좋은 행동의 모범을 보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군상을 이루며 살아간다. 아이들에게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 잘 사귀어서 그들 각자에게 좋은 점이 있으며, 그 좋은 점을 본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다양한 계층,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인간관계는 우리 삶의 질과 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혼자서 하는 생각은 다른 사람의 생각도 자신과 같은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없는 독백이다. 상호교환적이지 못하고 일방통행이 되기 때문에 사고가 공상으로 흐를 수 있고,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과 동떨어질 수 있다.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자기 사색의 현실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극을 받음으로써 나와 다른 많은 생산적인 반응들을 유도할 수 있다. 이 사람, 저 사람도 가슴에 품을 줄 아는 인간이 되면서 사람은 성장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바로 이종교배가 아닌 동종교배로 인한 다양한 열성인자의 출현에서 비롯된다. 이 말은 유전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암수가 동종인 경우 번식할 때 부모의 유전자중에서 각기 잠재해 있던 악성 유전자가 합류해 작용함으로써 활력, 몸의 크기, 또는 번식력에 절감을 가져온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황족끼리만 결혼을 했던 과거 일본 황실에서는 저능아가 많았다고 한다.

 

바로 이 동종 번식의 원리처럼 아이들이 만나고 관계하는 사람이 자기와 유사한 처지의 사람들에만 국한되어 있을 때 성장의 가능성은 상당히 제한된다. 반면에 아이들이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살아갈 때는 무한 성장의 무대가 마련된다. 따라서 부모들은 아이가 친구를 사귈 때 꼭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모든 일을 친구와 의논하라. 자기애 때문에 판단이 흐려질 때 친구의 충고가 도움이 될 것이다_ 세네카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 박경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20. 17:04


교육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지능이 보통(IQ 85~115) 수준만 되면 어떤 공부도, 어떤 일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바라는 일을 성취하고 못하고는 노력의 정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아이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큰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리가 비상한 아이일지라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원대한 꿈을 이루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_ 박경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14. 08:50

 

머리를 쓰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분석적인 사고는 어느 정도 체계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에 자꾸 깊이를 더해야 하는 단계가 되면 자기 머릿속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뭔가 순간적 깨달음을 얻기 쉽게 하는 방법이라거나 또는 선생님만의 독자적 사고 패턴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지요.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이게 뭐지?'라는 궁금증이 생기면 '아, 그렇구나!'라고 이해가 될 때까지 이리저리 생각하기를 좋아했어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여름에 콜라를 마시려 할 때였습니다. 병에 빨대를 꽂았더니 빨대가 훅 떠오르는 겁니다. 대부분 귀찮게 여기겠지요. 그런데 저는 '어? 이거 뭐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빨대가 왜 떠올랐을까? 빨대와 콜라의 관계에 관해 한동안 생각했지요.

 

그렇게 해서 빨대 주위에 탄산가스 기포가 가득 생겨서 빨대와 기포의 무게 합이 액체보다 가벼워졌기 때문에 떠올랐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콜라와 빨대를 끊임없이 주시하는 아이였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정도였을 겁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 들어가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왕관의 무게 측정 방법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무렵이라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따끈따끈한 밥 위에 가쓰오부시(말린 가다랑어를 대패로 아주 얇게 깎아 낸 식재료)를 올리면 가쓰오부시가 춤을 추듯이 마구 움직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재미있어서 '이건 또 뭘까?'하는 의문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결론은 이랬습니다. 밥의 열기 때문에 따뜻해진 공기가 가벼워져서 상승기류가 생기고, 가쓰오부시가 그 상승기류로 인해 떠오른다. 그런데 밥에서 나는 김이 가쓰오부시에 닿으면 마른 가쓰오부시가 수분을 흡수하게 되어 무거워지기 때문에 다시 밥 위로 내려앉는다. 그 반복 작용이 가쓰오부시가 춤추는 것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해야 직성이 풀렸어요.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알아보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지요. 호기심이 왕성했어요. 조금씩 이해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렸고, 마지막에 가서 의문이 풀리는 순간에는 대단히 기분이 좋았어요. 몰랐던 것을 안 순간 가슴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 느낌을 잊지 못하고 지금도 저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싶어서 연구를 계속하는 겁니다.

 

관찰력이 대단했군요. 그런데 초등학교 때는 보통 '일단 외우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 '이건 뭘까?' 하는 아이들의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제 수업은 그런 부분을 별로 크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측면이 확실히 적다고 봅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암기해야 하는 게 사실이고, 구구단을 모르고 초등학교를 졸업해서도 안 되겠지요. 그렇지만 2~3분만이라도 '어떻게 생각하니?', '생각해 봐'라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요? 저는 전체를 달달 외우는 수업을 싫어했습니다. 백지도에 평야, 하천, 산지의 이름을 써놓고 외우는 수업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도통 점수가 안 나왔습니다. 그래도 한자를 외우는 건 좋아했어요. 한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배웠으니까요. 상형문자, 형성문자 등의 구분이라든지 부수가 뜻을 나타내고 방은 소리를 나타낸다는 구성 방식을 알면 이치를 알고 접근할 수 있지요.

 

역사도 연호나 인물명 암기는 젬병이었는데 역사 드라마에는 흥미를 느꼈습니다. 과학자의 전기도 자주 읽었습니다. 대발견의 이면에는 하나하나의 맥락이 있지요. 유소년기의 환경과 경험이 훗날의 대발견으로 이어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다이내믹한 드라마에 가슴이 뛰었어요. 우리는 아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훈련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뭔가를 부수고 새로 구성하는 작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담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이라는 작업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쌓게 해서 대담성을 길러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학을 하는 사람은 데이터와 추론을 쌓는 과정에서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순간을 반드시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때 잘 판단해서 정말 문제가 있을 때는 미련 없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학의 역사를 보면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 최초의 대전환입니다. 그 이후 '빛은 파장이다'라는 믿음이 깨졌습니다. '빛은 입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전자'라는 소립자는 입자라고만 여겨지다가 파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기존에 당연시되던 사항들을 전제로 사물을 이해하던 사고의 토대는 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에 대한 개념조차 바꾸었습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달리는 누군가에게는 느리게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과학은 이전의 사고방식을 버려야만 하는 순간을 끊임없이 맞이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지금 상식이라 여겨지는 내용들도 머지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런 변화 속에서 탐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 들어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사물을 보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물리학의 바깥 영역에서는 실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책을 읽어 보면 상당히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었습니까?

 

제가 학위를 따고 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때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입니다. 당시 소립자론에서는 표준 모델, 우주론에서는 빅뱅 모델이 정립되었습니다. 그 두 이론이 잘 수렴되면서 기본 방향성이 옳다는 분위기가 확립되던 시기였지요. 학계로서는 한편으로 뿌듯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차 무엇을 더 알아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 교착상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탓에 과학자들이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퇴짜를 맞기 일쑤였어요.

 

그런데 그 후 10년가량 지났을 때, 그 지식적 토대의 취약성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물리학이 갑자기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지요. 가장 놀라웠던 것은 1998년에 발견된 '암흑에너지'입니다. 암흑에너지가 발견됨으로써 '우주는 빅뱅이라는 폭발로 인해 시작되었으나, 중력의 영향으로 점점 그 세력이 약해져 팽창이 느려지고 있는 상태다'라는 종래의 사고방식이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무언가가 중력에 반하는 작용을 해 우주의 팽창을 부추기고 가속화하고 있더라'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2003년에는 우주 에너지의 정체가 상당히 정확하게 규명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흔히 '물질'이라 불렀던 원자가 우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4%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초등학교 때 '만물은 원자로 구성된다'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던 것지요. 또 사람들은 우주라는 단어를 들으면 밤하늘에 빛나는 아름다운 별들을 떠올리지만, 별과 은하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5%밖에 되지 않습니다. 원자를 제외한 나머지 95%의 정체를 보면, 22%가 '암흑물질'이고, 73%가 '암흑에너지'입니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모두 현재로서는 그 정체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우주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우주의 95%는 아직 수수께끼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기존의 물리학 이론에 거대한 균열이 발견된 셈이고, 이를 계기로 물리학은 엄청난 패러다임 전환기에 돌입했습니다. 거대한 균열을 발견한 이들이 줄줄이 노벨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연구자들은 그 균열을 어떻게 수선할지를 놓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을 생각하는 데에만 지난 10년가량이 흘렀습니다. 이제 겨우 실제 실험과 관측에 들어가, 뭔가가 발견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안게 된 상황이지요. 최근의 흐름은 그렇습니다.

 

암흑에너지, 암흑물질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쯤에서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질문을 할까 하는데요. 어째서 그런 사실을 이제야 발견한 걸까요?

 

실은 1930년대에 중력만으로는 설명하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은하단을 관측하던 연구자들이었지요. 은하단에는 수많은 은하가 모여 있는데, 각 은하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데도 불구하고, 위치가 고정적인 것을 보고 연구자들이 이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은하들이 중력의 작용으로 서로 끌어당기고 있다지만, 고정적으로 그 자리에 머무르려면 눈에 보이는 별의 중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지요.

 

그래서 무언가 보이지 않는 무거운 물질이 존재하고, 그로 인한 중력이 발생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가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관측기술이 미흡했고, 관측 데이터가 있다 한들 그것을 해석할 이론이 발달하지 못해 그 이상을 알아내거나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물질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 관해 '빛을 내지는 않지만 거대질량을 가진 물질'일 거라 추측했고, '암흑물질'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암흑물질은 현재 관측 가능한 일반 물질의 약 5배나 되는 질량을 가졌고, 우주 탄생의 기원이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즉 빅뱅으로 인해 암흑물질이 생겼고, 암흑물질들이 모이자 그 중력으로 인해 보통의 원자들이 끌려들어와 별이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은하로 성장했다는 줄거리입니다.

 

별은 생명의 원천이니까 그 별을 만든 암흑물질이 없었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암흑물질은 우리 주위에도 대량으로 존재하면서 우리 신체를 통과하고 다닌다고 여겨집니다. 신체를 통과한다고 하면 뭔가 기묘하고 무서운 느낌도 들겠지만, 보통의 물질과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암흑물질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는 은하계 안에서 초속 220km라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은하계로부터 튕겨 나가지 않고 그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도 암흑물질 덕분입니다. 지구의 공전속도도 무려 초속 30km나 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초등학교에서 우리가 매초 30km 로 움직이는 구체 위에 있다고 가르쳤다가는, 상상만 해도 현기증을 일으키는 아이가 나올까 봐 안 가르치는 거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빠른 속도지요.

 

도쿄대 리더육성 수업, 문제해결의 사고력편_ 요코야마 요시노리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8. 10:12

 

한 방학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소년이 혼자서 자신의 사물함을 비우고 있었다. 아직 캠프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사물함을 비우고 있을까? 그때 갑자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야, 말더듬장이 바보다!"

"어디? 정말! 신난다!"

 

한 아이가 번개처럼 달려와 소년이 든 가방을 걷어찼다. 가방이 내동댕이쳐졌고 물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른 아이가 필통을 발로 쾅 짓밟았다. 미동도 않고 서 있는 소년의 뒤통수를 누군가 주먹으로 갈겼다. 한 아이가 그걸 보고 외쳤다.

 

"어, 이쪽으로 쓰러진다.!"

 

그 아이는 반대편에서 소년의 얼굴에 펀치를 날렸다. 소년의 코에서 코피가 쏟아졌다.

 

"야!, 도망가자!"

"이 자식, 누구한테 알리면 죽어!"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달아났다. 소년은 코피를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목석처럼.

 

잠시 후 교사가 나타났다. 그는 금방 상황을 알아차렸다. 소년은 말을 더듬는 데다 행동이 굼떠 외톨이로 지내는 아이였다. 캠프에서는 아무도 그 소년과 놀아주려 하지 않았다. 사건을 본 교사는 캠프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 소년을 자신의 팀에 소속시켰다. 수업이 끝나면 따로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뜻밖에도 소년은 나이에 비해 생각이 매우 깊었다.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똑똑하기도 했다. 교사는 그 소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몇 년 후 교사는 그 소년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초청을 받았다. 놀랍게도 소년은 예전에 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소년은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는 대표였다. 많은 참석자 앞에서 소년은 교사와 처음 만났던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는 그때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제가 죽은 후 부모님이 제 물건들을 정리하면 더 슬퍼하실까 봐 미리 사물함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 저를 위로해주고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내미는 작은 사랑의 손길 하나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언청이 친구가 있었다. 그는 늘 놀림감이었다. 우리는 그에게는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원래 못생긴 데다 공부도 못하고 친구들과 놀 줄도 모르는 아이인 줄 알았다. 아무리 때리거나 놀려도 몸과 마음이 안 아픈 줄 알았다. 선생님들도 그 친구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4학년이 되어 새로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달랐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심술꾸러기 아이들이 친구를 놀리다가 도시락을 발로 뻥 차버렸다. 반찬과 밥이 사방에 흩어졌다. 그때 드드륵 문이 열리더니 선생님이 들어왔다.

 

"누가 그랬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도 말이 없었다. 고자질했다간 보복이 뒤따른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연 선생님이 허리를 굽히더니 바닥에 나뒹구는 밥을 정성스레 쓰레받기에 담았다. 학교에서 기르는 개에 가져다줄 요량인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한 그 친구에게 말했다.

 

"영훈이는 교무실로 오너라."

 

우리는 선생님이 그 아이를 혼낼 줄 알았다. 정말 호되게 혼났는지 영훈이는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심술꾸러기들이 달려가 물었다.

 

"너, 매 맞았지?"

 

영훈이는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선생님이랑 도시락 같이 먹었어."

 

아이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선생님이 못난 언청이 영훈이와 도시락을 나눠 먹다니! 선생님이 외톨이의 편이라니!

 

그때부터 영훈이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훈이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선생님이 수학 시험지를 영훈이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저번보다 또 점수가 올랐어."

 

사실 영훈이의 점수는 고작 60점에 불과했다. 반에서 여전히 밑바닥에 속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사실은 덮어버리고 점수가 점점 오르고 있다는 사실만 말해주었다.

 

그 말이 요술을 부렸는지 영훈이의 점수는 정말 점점 올랐다. 수학만 오르는 게 아니었다. 전 과목 성적이 조금씩 올라갔다. 꼴찌권을 맴돌던 친구는 첫 학기 말에는 중상위권으로 들어섰다. 학년 말에는 놀랍게도 1, 2등을 다툴 만큼 뛰어올랐다. 그는 더는 놀림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선생님이 보여준 작은 행동 하나, 작은 말 한마디가 언청이 소년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심술꾸러기 아이들의 인생도 바꿔놓았다.

 

우리는 다수에 휩쓸려 홀로 서 있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방관하기도 한다. 고립된 이에게는 작은 사랑의 손길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소중한 희망의 등불이 될 수도 있다. 참된 영혼은 늘 낯선 사람의 상처를 눈여겨본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그 상처가 언젠가는 나의 상처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김상운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0. 10. 19:54

 

"갓난아기를 엄마에게서 떼어내면 지능이 제대로 발달할까?"

 

한 실험에서 새끼 원숭이를 강제로 어미 원숭이에게서 떼어내 따로 자라게 해보았다. 영양은 충분히 섭취하게 했지만 어미의 사랑을 못 받으며 자라게 했다. 걱정과 달리 새끼 원숭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아무 이상 없군. 어미가 없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두뇌를 촬영해보니 새끼 원숭이의 두뇌는 바짝 쪼그라들어 있었고 지능도 크게 떨어졌다.

 

"그럼 가짜 어미를 넣어주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다른 새끼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떼어낸 뒤 우리에 가짜 어미 2마리를 넣어주었다. 하나는 헝겊으로 만든 가짜 어미였고 다른 하나는 철사로 만든 가짜 어미였다. 헝겊 어미에게서는 젖이 나오지 않았지만 촉감이 부드러워 진짜 어미 같은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철사로 만든 어미에게서는 젖이 나왔다. 다시 말해 새끼 원숭이들이 사랑을 선택하는지, 먹이를 선택하는지 살펴본 것이다.

 

"분명히 먹이를 선택하겠지?"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새끼 원숭이들은 젖이 나오는 철사로 된 어미가 아니라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헝겊 어미에게 먼저 달려갔다. 배가 고플 때만 철사로 된 어미에게 가서 젖만 먹은 뒤 얼른 헝겊 어미에게 되돌아가 핥고 쓰다듬었다.

 

그럼 어미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새끼 원숭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까?

 

수컷들은 난폭하고 잔인하거나 외톨이가 되었다. 사랑을 느낄 줄 몰랐던 것이다. 암컷들은 어미가 돼도 자신이 낳은 새끼들을 돌보려 들지 않았고, 오히려 때리거나 무시했다. 모성애는 유전적으로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형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수컷이든 암컷이든 어미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원숭이들은 두뇌가 여전히 작고 지능도 낮았다. 사랑이 끊기면 지능도 끊긴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의 널리 알려진 실험이다. 그러면 사람은 어떨까?

 

1955년 한 해 동안 하와이 군도의 카우아이 섬에서는 모두 833명의 신생아들이 태어났다. 당시 이 섬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신생아들도 온갖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10대 미혼모나 알코올중독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도 많았다. 아예 모유를 못 먹고 자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아이들을 30년간 추적해보면 어떨까?"

 

미국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전무후무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중 마이클이라는 아이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전형적인 아이였다. 마이클은 태어날 당시 체중 2킬로그램에 불과한 미숙아였다. 어머니는 일본계의 16세 소녀였고, 아버지는 필리핀계의 19세 소년이었다.

 

마이클이 10세 되던 해 어머니는 그와 동생 셋을 버리고 도망쳤다. 마이클은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았다. 이쯤 되면 마약중독자나 불량배로 전락할 게 뻔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이클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무척 밝았다. 고등학교 때도 전교 10위 안에 들었고 학생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대입자격 시험인 SAT 성적도 전국 10퍼센트 안에 들어 미국 본토의 유명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합격했다. 어찌된 일일까?

 

"이런 아이는 예외적인 경우겠지?"

과학자들은 그렇게 여겼다. 그래서 아이들이 18세가 됐을 때 그들을 추적해보았다. 그 결과 연구 대상 전체 아이들의 3분의 2는 골칫거리로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3분의 1은 마이클처럼 정상적인 청소년으로 자랐다.

 

"어떻게 된 일이지? 똑같은 불행 속에서도 똑똑하고 밝게 자란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정상적인 청소년으로 자란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 그 한 사람이 엄마든 아빠든,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삼촌이든 이모든 상관없었다. 자신을 가까이서 따뜻한 눈길로 지켜봐 주고 조건 없는 사랑을 보내주는 사람이 딱 한 명만 있으면 되었다. 그 효과는 그들이 30세가 될 때까지도 지속되었다. 단 한 사람에게서라도 사랑의 눈길을 받고 자랐던 아이들은 사업가, 학자, 의사, 변호사 등이 되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어릴 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고, 사랑을 받으면 성공한 인생이 된다."

 

성공하는 아이로 키우는 지름길은 특별한 게 아니다.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영혼이 눈을 뜨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아인슈타인, 에디슨, 빌 게이츠 등 세계적인 천재들의 재능도 기계적 반복 학습의 산물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산물이었다.

 

사랑이 끊긴 아이는 로봇이 된다

 

4세가 된 사내아이 한새는 두 돌이 되기 전부터 영어 알파벳과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TV 화면에 영어 자막이 나오면 "케이, 에스, 더블유" 하며 글자를 콕콕 집어냈다. 차를 타고 가면 길가의 간판들을 더듬더듬 읽었다. 주변에서는 다들 영재 아니냐고 부러워했다. 돌 무렵부터 읽어주기 시작한 그림책 덕분이었다. 책의 바다에 푹 빠진 한새는 장난감도 싫어했고 대부분 시간을 책만 보며 지냈다. 글자를 뗀 후에는 초등학교 3학년 형의 어린이사전과 영어사전까지 탐독했다.

 

하지만 엄마는 마음 한편에 불안을 느꼈다. 두 돌이 넘도록 한새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 마" 하면 "엄, 마" 하고 겨우 따라 할 뿐이었다. 한새는 책이 보고 싶으면 엄마 손을 이끌고 책장 앞으로 갔다. 목이 마르면 냉장고 앞으로 끌고 갔다. 간혹 또래 아이들과 모이면 혼자 등을 돌리고 책만 읽어댔다. 억지로 아이들과 섞어놓으면 한새는 하고 싶은 말을 못해 답답해하며 짜증을 냈다. 아이들도 함께 놀아주지 않았다. 증세가 심해지자 36개월 때 마침내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경계성 자폐(유사자폐)' 였다.

 

"의미도 모른 채 낭독만 잘하는 겁니다. 전형적인 초독서증이죠."

의사의 말을 듣는 엄마는 억장이 무너졌다.

"아이가 똑똑한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자극을 줬어요. 온종일 책만 읽혔고 한글, 영어, 비디오를 너무 많이 보여주었죠.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요."

 

서른여덟에 첫딸을 낳은 김지영 씨도 육아에 관심이 많았다. 늦게 낳은 아이를 잘 길러보려는 욕심에 생후 6개월 무렵부터 책을 읽어주었다. 인터넷 육아 사이트와 블로그에는 돌도 안 된 아기에서부터 유치원생에 이르기까지 책의 바다에 빠진 아이들이 줄줄이 소개되어 있었다.

 

김 씨도 210만 원에 전집 4질을 들였다. 남편은 돌도 안 된 아기에게 무슨 책을 사주느냐고 반대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나중에 사교육 따로 안 한다는 아내 말에 고집을 꺾었다. 김 씨의 아기는 그렇게 10개월에 500권, 두 돌 때는 1000권을 읽어야 했다.

 

아이는 생후 10개월부터 책 중독 증세를 보였다. 기저귀 갈고 젖먹는 시간 외에는 온종일 책만 찾았다. 엄마가 목이 쉬도록 읽어주면 아이는 동공도 움직이지 않은 채 새벽까지 책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이상해졌다고 느낀 건 첫돌이 지났을 때부터다. 모든 사물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의 눈빛이 흐리멍덩해졌다. 때가 되어도 아이는 기지 않았고 돌이 지나도 걷지 못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유명 육아 사이트에서는 그런 현상에 대해 "몰입할 수 있다는 게 영재성의 증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기뻤어요... 미련했던 거죠. 책만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는 말만 믿고 애를 망가뜨린 거예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책을 딱 끊은 게 두 돌 때였다. 한눈에 봐도 김 씨의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래 신체 발달이 뒤떨어졌고 세 돌이 되도록 계단을 서너 개밖에 올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평범한 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자, 그저 많이 놀아주자 하면서 애쓰고 있어요. 책을 읽히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니까 희한하게도 책에 빠져 있던 아이가 금세 책에서 멀어지더군요. 아이들은 엄마의 눈빛을 통해 엄마가 뭘 원하는지 온몸으로 간파하는 거예요. 그동안 제가 아이를 학대했구나, 저도 모르게 책 읽기를 강요했구나 싶어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요."

 

한국일보에 실렸던 기사다. 아이를 천재로 키우고 싶다면 기계적으로 지식을 주입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대신 학문을 좋아하는 마음이 저절로 싹트도록 사랑부터 심어주어야 한다.

 

한 아이가 멀찌감치 놀이터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내가 책 한 권 읽기를 거의 끝낼 때까지도.

"무슨 일 있니?"

아이는 여전히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요."

"왜?"

"집에 가면 짜증만 나요. 피아노 연습해야 해요."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아이는 정말 많은 악기를 배우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악기를 배워서 뭐 하려고?"
"엄마가 시켜서 하는 거예요. 몇 년 해보고 제일 잘하는 걸 배우게 한대요."

 

아이는 몹시 지쳐 보였다. 나는 아이의 등 뒤로 손을 올려 심장쪽에 살며시 가져다 댔다. 잠시 후, 가만히 앉아 있던 아이의 운동화 위로 눈물 두 방울이 툭 떨어졌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레슨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하지만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일까?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너 힘들어하는 거 아니? 엄마한테 말해봤어?"
아이가 눈가를 훔치며 대답했다.

"그런 말 하면 막 화내요.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더 많이 하는지 아느냐며."

 

영혼을 모르는 엄마들은 마치 고속도로로 차를 몰 듯 아이들을 몰아댄다.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끌려가는 아이가 얼마나 아파하는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엄마가 너보다 널 더 잘 알아.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만 해."

 

이렇게 마음이 짓눌린 아이는 어떻게 출구를 찾을까? 저항적으로 성장하거나, 아예 감정이 없는 로봇으로 전락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행복감은 OECD 국가 중 꼴찌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가 낳은 아이라고 해서 내 것인가? 일단 뱃속에서 나오면 독립된 영혼을 지닌 독립된 인격체다. 그런데도 자기 욕심에 집착한 나머지 내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캥거루 새끼처럼 계속 배 속에 넣고 다니고 싶어 한다. 내 말만 잘 듣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못하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김상운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0. 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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