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이를 사랑손님처럼 대하라
하루에 3시간이 아니라 10시간씩 붙어 있으면서 최선을 다했는데도 아이가 잘못 자랐다고 혼란스러워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매직타임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는지 또한 중요하다. 블랙매직, 즉 흑마술이란 귀신이나 악마 등 사악한 존재의 힘을 비려 마술의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잘못된 말과 행동이 흑마술처럼 작용할 수 있다. 3시간의 매직타임이 블랙매직이 되지 않기 위해 생각해볼 것이 있다.
아이와 엄마는 서로에게 거울 같은 존재이다. 엄마의 감정, 행동, 말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도 불안 수준이 높아서 지나치게 안달복달하는 엄마라면 아이가 안정적인 정서를 갖기 힘들다. 아이가 늘상 보고 듣는 것이 불안과 관련된 감정과 행동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불안은 각자의 경험에서 형성되었고 개인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겠지만 부모 자신이 풀어야 하는 문제이다. 새로 인생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막무가내로 "엄마가 살아봐서 하는 말인데" 하며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런 부모라면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부모에게 이것처럼 잔인하고 기분 나쁜 말도 없으리라. 하지만 얼마나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상담실에서 "차라리 부모님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흐느끼는지 모른다.
불안이 지나쳐 자식을 과잉보호해서 오히려 망치는 일도 있다. 헬리곱터맘, 혼테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결혼 예단으로 한몫 단단히 챙긴다는 뜻인 혼테크는 망신스럽기까지 하다. 결혼한 지 5년 안에 이혼하는 부부 중 절반이 예단 문제때문이라니 자식을 망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리 부모가 마마보이, 파파걸을 만들려고 해도 자식이 거절하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자식은 거절을 하지 못한다. 불안의 뿌리가 마음 깊이 박혀서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놓이면 극도로 예민해지고 위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악습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한결같이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부정적인 메시지로 사고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 어릴 때 반복한 사고는 지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듣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산다. 냉정하고 폭력적인 부모를 보고 자라면 이 사람의 세계에서 폭력은 물처럼 흔한 것이 된다. 생애 초기에 특정한 상황에서 학습한 경험은 다른 상황에까지 확대되는 일반화가 된다. 어릴 때 맞고 자란 여성이 결혼한 후 남편의 폭력 행동에 둔감해지는 이유이다. 여러 번의 일반화를 경험하면 '나는 원래부터 매를 맞을 만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긴다. 한번 고정관념이 생기면 다른 세상을 경험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주눅이 들면 다른 사람도 나를 그렇게 여기고 신뢰하지 않으며, 나는 세상에 대해 또 눈치를 본다. 이렇게 악순환을 겪으면서 점점 변화하려는 의지는 사라지고 포기하게 된다. 원래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세상이 보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며 단추를 잘 끼웠다면 그다음은 부모의 언행일치, 즉 일관성이 중요하다. 메시지는 긍정적인데 막상 부모의 행동이 그렇지 않다면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언행일치는 특히 아이가 자랄수록 점점 중요해진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무슨 말을 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다 말실수를 해도 어차피 아이도 잘 알지 못하고 금방 잊어버린다. 하지만 아이의 전두엽이 발달하고 맹렬한 도덕적 사고를 시작할 무렵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엄마의 말 한마디 그냥 놓치는 법이 없고 정확하게 허점을 잡아 찔러댄다. 바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몸 고생은 끝나지만 마음고생은 더 심해진다. 아이가 친절하지 못하다고 불친절하게 야단치는 엄마, 아이 얘기는 듣지도 않고 소리를 지른 후 너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말을 안 듣느냐는 아빠. 이런 장면을 자주 본 아이는 일찌감치 인생이 모순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되어 삶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진다. 아이가 어릴 때와 달리 부모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부모의 언행 불일치를 많이 봐서 설득력이 없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부모들이 얼마나 모순되는 언행을 보이는지 하루 일과를 녹화해서 본다면 부끄러워 자리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어떨 때는 80점만 받아도 잘했다고 하고 어떨 때는 90점을 받아도 야단치거나, 만날 쌀쌀맞게 굴다가 100점을 받아 올 때만 힘껏 안아주며 관심을 보이면 아이에게 존경받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부모에게 조건적인 사랑만 받았기 때문에 자기 가치감이 떨어져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쉽다. 심지어 같은 자리에서 변덕을 부리며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화가 나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 "당장 안 나가?" 그래서 나가면 "나가라고 바보같이 나가?" 라고 또 소리를 지른다. "말 좀 똑바로 해." 그래서 똑바로 하면 "어따 대고 또박또박 말대꾸야?"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아이는 차라리 미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는 미쳐버린다.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전문용어로 '이중 구속' 형태의 대화를 만들어버린다. 어느 쪽으로도 행동할 수 없게끔 양쪽에서 조인다는 의미로 아동 정신분열증의 원인 중 하나다.
부모라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는 그렇지 않더라도 자식에게만은 온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엄마가 차고 냉정하다면, 아빠가 성질이 급하고 화를 잘 낸다면, 아이는 나름대로 살길을 찾는다. 냉정한 엄마나 불같이 화를 내는 아빠를 두어도 성공해서 잘 사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는 살길을 찾지 못한다. 처음에는 무력감과 혼란만 느끼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급기야 정신이 통합되지 못해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아이에게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만약 기독교 집안이라서 원죄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면 그 원죄가 이미 사함을 받았다는 얘기도 반드시 해주어야 한다.
죄책감은 자기 가치감, 도덕심, 애타심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죄책감을 갖고 있으면 스스로 떳떳하지 않고 항상 눈치를 보며 기죽어 지내기 때문에 자기 가치감을 느낄 수 없다. 내가 죄가 많으니 당연히 남도 많을 것이라고 여겨서 항상 남을 의심하거나 깔보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도덕심도 발달하지 못한다. 반대로 스스로 당당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들도 나만큼 훌륭하다고 여기며 자연히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애타심이 발달한다. 어려서부터 고귀하고 당당하게 대접받은 아이가 그런 어른이 되고, 죄 없이 무결하고 고귀한 아이로 인정받아야 죄책감을 느낄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물론 죄책감을 남기지 말라고 해서 잘못을 무조건 묵인하라는 뜻은 아니다. 잘못했으면 야단치고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해야 한다.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대가를 치르고 진심으로 뉘우치게 해야 한다. 진심으로 뉘우친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잘못된 네 행동을 꾸짖은 것이지 너를 미워해서가 아니라고,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알려주는 것이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 방법이다.
죄책감 없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네 살 무렵부터 골드 스탠더드를 만들어 지키게 하면 좋다. 살면서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을 부모가 잘 생각하여 정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5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수가 많아지면 희소가치가 떨어져서 꼭 지키겠다는 마음이 사라진다.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골드 스탠더드를 계속 어기면 과감히 매를 들어야 한다. 반드시 매를 들어야 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자신을 해칠 때이다. 두 번째는 남을 해칠 때이다. '거짓말하지 않기'는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이지만 골드 스탠다드에 포함될 정도의 원칙은 아니다. 지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아빠가 싫어도 좋다고 해야 하고, 엄마가 할머니처럼 보여도 예쁘다고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거짓말을 하면 당연히 야단맞고 거짓말을 못해도 영문 모르게 야단맞는 황당한 상황밖에 볼 것이 없으므로 이런 골드 스탠더드는 바람직하지 않다. 골드 스탠더드 2개 정도는 아이가 좀 더 컸을 때 만들어도 좋다.
금쪽같은 골드 스탠더드의 빛이 바래지 않으려면 평소에 웬만하면 잔소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중요한 전략이다. 아무 때나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하다 보면 어느 날 작심하고 골드 스탠더드를 위반한 데 대한 집행을 할 때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무서운 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 무섭게 야단치는 것은 훈육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부엉이처럼 침묵하다가 아이가 정말 잘못했을 때 제대로 한 번 무서운 모습을 보여야 효과가 있다.
아이의 눈을 보지 않고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훈계는 잔소리다. 잘 자라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잔소리를 많이 들은 아이는 오히려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는 독불장군이 되거나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허약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아이가 크면 말을 점점 줄이자. 말을 아끼라는 말이지 마음을 아끼라는 말이 아니다. 웃는 얼굴로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은 부모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엄마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으면서 골드 스탠더드를 만들어 지키게 하면서 아이를 키웠다. 또 평소에는 말을 아꼈고 말을 해야 할 때는 왕창 했다. 이렇게 했다면 거의 완벽하다. 부모 역할의 최고봉에 거의 올랐다. 이때 중요한 마지막 관문이 있다. 바로 감정의 정화이다. 전문가들은 벤틸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쓴다. 벤틸레이션이란 '환기'라는 뜻으로 굴뚝 청소를 떠올리면 된다. 꽉 막힌 굴뚝을 뚫어 연기를 빼주어야 집이 엉망이 되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의 꽉 막힌 감정을 그때그때 뚫어주어야 큰 탈 없이 자란다. 감정은 왜 막힐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너무 감정을 억압해서, 또 하나는 제때 뚫어주지 않아서이다.
아이도 학교를 오가는 길에서, 학교에서, 또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그 분풀이를 하고 싶어 한다. 일단 분풀이가 끝나면 언제 화를 냈느냐는 듯이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하루하루 인생을 헤치고 모으면서 아이는 성장한다. 이 분풀이가 바로 벤틸레이션으로, 올바른 성장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정신과에 내원하는 환자 대부분은 성장기에 제때 벤틸레이션을 하지 못해 분노와 허탈, 우울과 공허감이 누적되어 삶의 동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돈 내고 심리 상담 받으면서 벤틸레이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적된 정서 억압은 사회 부적응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켜 본격적으로 심리 상담을 시작한다 해도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난폭한 행동을 보이고 심지어 교사에게 대드는 것은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낮에 학교에서 화가 날 수도 있고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저녁에 부모가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며 이해시키고 감정을 받아주면 아이는 그날의 스트레스를 잊고 다음 날 즐겁게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의 말을 듣지 않는 부모보다 더 나쁜 것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을 때 오히려 부모가 "그런 것도 참지 못하냐"며 더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의 마음은 집에서도 닫혀버린다. 화난 마음이 닫혔을 뿐 없어지지는 않았으므로 아이는 학교에서 그 화를 주먹과 욕설로 표출한다.
감정의 굴뚝을 그때그때 풀어주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뇌에서 감정을 처리하는 변연계 때문이다. 변연계는 힘이 무척 세서 한 번 나쁜 영향을 받으면 아이가 자라 늙어 죽을 때까지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히 아직 대뇌피질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초등학생 때까지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워 쇠고기 파동 시위에 끌고 나가거나, 단체 행동을 하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삭발하는 부모들은 제 손으로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셈이다. 자유와 민주를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 해도 아이는 그 당시 현장에서의 느낌과 감정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자유와 민주를 위한 행동이라는 이성적인 판단은 훨씬 나중에 할 수 있으며 그전에는 오직 '좋다', '나쁘다'는 감정적 판단만 있을 뿐이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옆에서 무서운 동물들이(나중에 경찰임을 알게 되지만) 엄마를 죽이려 하고, 엄마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며 흐느끼는 행동은 아이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렵고 위협적인 인상으로 남는다. 두렵고 위협적인 인상이 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상 이성의 뇌가 아무리 발달해도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린다.
심리 치료란 이러한 불안의 시발점을 찾아 성인의 시각에서 그 당시 일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어머니의 행동이 사실은 대의를 위한 행동이었으며 그때 나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현실을 성숙한 눈으로 보지 못했음을 깨닫고, 어머니를 용서하고 감정을 털어버리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때로는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 이성이 발달하기 전의 아이에게 부모의 가치관과 대의명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저 세뇌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행동이라도 아이에게 불안을 줄 수 있다면 엄마, 아빠 둘이서만 하는 것이 옳다.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도록 보호한 다음, 어른들의 대의를 생각하자, 제 2차 세계대전 중 처절한 전투를 벌인 영국과 독일은 그 와중에도 최대한 아이들은 보호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가능하면 총성이 들리지 않는 시골로 보냈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 속 아이들의 위대한 모험은 그렇게 탄생했다.
20년 넘게 정신과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한국의 정신 질환 추세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다. 1990년에 정신과 심리실에서 수련을 받기 시작할 때는 정신과 환자들의 연령대에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유아기의 발달 지연 문제를 지나 유년기인 초등학교 입학 무렵의 적응 문제를 넘어가면 잠시 멈추었다가 일부 청년이 전두엽 기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를 감당하지 못해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동안 소강기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50대에 갱년기 우울증, 60대에 노인 우울증과 치매가 발병하는 양상이었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의사들끼리 농담 삼아 "우리는 모두 서른 살이 넘었으니 정신분열증은 걸리지 않겠다. 이제 치매만 조심하면 되네" 했던 기억이 난다. 정신분열병은 전두엽 기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할 때 필요한 도파민 분비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니 그 시기를 잘 넘겼다면 당연히 앞으로는 사고의 혼란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2012년부터 정신분열병이란 용어가 조현병으로 바뀌었지만 일반적으로 정신분열병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환자 연령대에 변화가 생겼다. 일단은 예전에 없던 왕따나 학교 폭력, 인터넷 중동으로 청소년기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졌고, 한국인의 일생에서 가장 힘들다는 고3시기를 잘 버텨냈음에도 20대 환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대학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졸업한 후 직장을 얻지 못해 우울해하며, 직장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애인과 헤어지면 바로 손목을 긋고, 군대는 할 수만 있다면 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군대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청소년기의 혼란은 30대까지 연장되어 결혼을 해도 아이를 건사하지 못해 부모에게 맡기고 주식으로 한 방에 돈을 벌려다가 가정이 파탄 난다. 갱년기 우울증은 과거보다 10년이 빨라진 40대부터 나타난다. 한마디로 소강기가 없어졌다.
놀랍게도 소강기가 없어진 최근 10년은 조기 유학이 급증한 기간이기도 하다. 통합적인 뇌 발달이 아닌 부분적인 뇌 발달을 목표로 한 결과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조기 유학의 열병은 한두 가족의 가정을 파탄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려할 만한 사회현상을 함축한다. 먹고살 만한 경제력과 찬란한 문화를 갖추고 있음에도 조기 유학비율이 세계 1위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무리가 있는데도,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해하지 않는데도, 건강한 가정이 무너지는데도 무리해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신이라면 그 잘못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나는 정부의 무능함을 탓한다. 조기 유학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상대적인 박탈감과 열등감에 허덕인다. 그래서 조기 유학 대신 서울대 법대에 집착하는 터무니없는 보상 심리가 발동하면서 온 가족이 숨 제대로 쉬지 못하니 정신과 내원 환자들의 연령대에 소강기가 없어진 것이다.
조기 유학을 떠나는 가족에게는 잘 다녀오라고 해주자. 부모와 함께 외국의 문물을 접하면서 영어 능력도 키우는 복 받은 가족에게는 진심으로 부러운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그런 복이 없다면 다른 복이 있음을 알고 빨리 그 복을 찾으면 된다. 내 주머니 속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몰라보고 남의 보물에만 정신이 팔려 탐내고 질투하며 속상해하는 것만큼 시간 낭비가 어디 있을까. 세상에는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으니 어느 것이 진정 행복한 길인지도 알 수 없다. 우리 가족의 상황과 내 행복의 색깔에 맞는 길을 찾아갈 뿐이다.
우리는 행복하고자 많은 것을 시도했지만 행복은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방법을 바꿔야 하지 않을가. 아이만의 조기 유학, 영어 올인 등 특별한 공부 방법은 특정한 아이에게만 효과가 있고 내 아이와 우리 가족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엄마 냄새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정신과에 오는 아이들의 부모 중 가장 많은 유형은 엄마는 너무 약해서 아이의 든든한 벽이 되어주지 못하고, 아빠는 돈 버느라 가족에게 관심이 없는 유형이다. 이런 부모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는 가족 간의 친밀감이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 가치감이 낮다. 게다가 부모에게 문제 해결 능력을 배우지 못해 학교와 사회에서도 자신감이 없고 우울감,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그런 가정이라도 가정의 모습을 유지하며 하루 세끼 밥 먹으면서 살아가면 아이가 입원까지 하지는 않는다. 입원할 만큼 심각해지는 것은 아버지가 아이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아이와 아내를 무시하고 때리거나, 엄마도 아이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오히려 욕을 퍼붓고 밥도 주지 않는 경우이다. 그리고 이런 폭력이 없어도 아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지는 것은 엄마가 갑자기 영원히 가출한 경우이다.
아이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예고 없는 엄마의 가출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여도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잔소리를 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겉돌았다. 변한 것은 엄마가 없어진 것이다. 아이는 평소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도 엄마가 가출한 후 아이는 무너져버렸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며 절규했다. 마음이 여린 아이는 혼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었던 고통과 분노를 가짜 자신, 데이먼을 통해 표출했다.
아이가 무너진 것은 엄마 냄새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엄마 냄새가 사라졌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병에 걸리진 않는다. 아이의 누나와 동생은 이런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정신력이 약했는데 후천적인 스트레스를 만나 정신병을 일으킨 것으로 진단되었다.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담배를 많이 피우고도 폐가 선천적으로 강해 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듯이 선천적으로 정신력이 강한 아이는 같은 스트레스 상황도 잘 이겨낸다. 폐기능이 원래 약한 사람이 담배라는 부정적인 자극을 자주 접하면 쉽게 폐암에 걸리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정신이 유약한 데다 엄마 냄새가 없어진 후천적인 스트레스가 더해져 정신병이 생긴 것이다. 정신이 유약한 아이에게 사라진 엄마 냄새,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 냄새는 너무도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누나와 동생도 사라진 엄마 냄새의 영향이 전혀 없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냄새의 정확한 본질은 무엇일까? 사랑의 냄새는 어디에서 나올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우리는 옥시토신을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특히 여성의 자궁 수축과 젖분비를 촉진하며 모유 수유를 할 때 옥시토신이 다량 분비된다. 옥시토신을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애무해서 아이를 만들게 하고, 자궁을 수축해서 아이가 빨리 나오게 하며, 아이가 먹을 젖이 나오게 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 엄마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오게 하는 등, 온통 사랑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은 남성의 뇌에서도 분비되지만 여성의 자궁과 유방에 옥시토신 수용체가 있어 사랑의 냄새는 여성이 훨씬 더 진하다.
게다가 아이는 엄마 냄새를 가까이에서 맡는 정도가 아니라 10개월 동안 엄마 몸속에서 순도 100%의 냄새를 공유하다가 이 세상에 나온다. 그러니 아이에게 엄마 냄새는 생명의 냄새이기도 하다.
앞서 엄마가 가출하면 아이는 정신과에 입원할 정도로 무너진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가 가출한 집은 어떨까? 아주 복합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아빠가 가출한 집에서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지는 아이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아빠들에게는 서운한 말이겠지만 아빠는 가출해도 집에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밥을 해주지도 빨래를 해주지도 않았고 엄마처럼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았다. 아빠가 갖다주던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면 엄마 혼자서도 아이에게 밥을 해주고 학교에 다니게 한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답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엄마 냄새를 가두는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남편에 남편에 대한 순종을 강조한 전통적 아내의 역할을 잘못 해석하고 남편만 바라보는 남편바라기가 되어서이다. 이런 아내는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남편만 바라보는 망부석이 된다. 가정에 문제가 생겨도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남편이 자식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화만 내다 지쳐 아이를 방치하기까지 하는 엄마들이 많다.
또 하나는 명백한 스트레스다. 오랜 기간 정신과에 내원한 환자들을 볼 때 경제적 스트레스와 대인 갈등 스트레스가 엄마 냄새를 잠그는 요인 1,2위를 다툰다. 병원에서는 그중 대인 갈등 문제를 다루는데, 대인 갈등 중에서도 남편과의 갈등, 남편의 외도는 엄마 냄새와 엄마 마음을 가둬버리는 초강력 마비제이다. 남편의 외도는 아내의 지적수준에도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행동까지 하게 만든다.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지면 자식을 포기하고 가출하는 지경에 이른다.
괜찮다. 두려울 것도, 땅을 치며 후회할 것도 없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먼저 세 가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어야 할 것을 받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 지금부터라도 줄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긍정의 마음,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다리면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는 믿는 마음이 중요하다.
하루 3시간 엄마 냄새_ 이현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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