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생각의 힘을 기르는 방법을 찾아서
얼마나 많이 아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풀러는 인류가 가진 지식의 총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리라 예측한 바 있다. 그가 발표한 '지식 두 배 증가 곡선'에 따르면 현재 13개월마다 인류 지식의 총량이 두 배로 증가하며,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주기가 최대 12시간으로 단축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지식의 폭발, 이른바 지식의 빅뱅은 우리가 지금가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다.
이것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2010년 인쇄본 발매를 중단한 이유다. 244년의 전통을 가진 세계적 권위의 백과사전이 종말을 고했다는 것은 곧 쓰여진 지식의 종말을 의미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의 시대가 도달한 지식수준을 따라잡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1~2년이 지나면 금방 옛 지식이 되고 만다. 한 번 배운 것으로 평생 먹고 사는 시대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 정보가 넘쳐나고, 새로운 지식의 창출 속도가 가속화되는 21세기는 더 이상 지식의 시대가 아니다. 한마디로 한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은 중요하지 않고, 그 중요성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얼마나 많이 아는가'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고, 필요할 때 원하는 지식을 찾아내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더없이 중요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생각'이다. 지금 전 세계의 교육 현장은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에 주목하고 있다.
실수해도 괜찮아! 풀이 과정에 점수 주는 프랑스 시험
프랑스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다. 지금까지 총 6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또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노벨상 자체가 학문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프랑스에 유독 뛰어난 수학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의 필즈상 수상자들은 생각을 길러주는 프랑스의 교육을 이유로 꼽는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다른 걸까. 프랑스의 명문 사립인 윌스트 고등학교의 3학년 교실을 찾아가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시험 문제를 풀어보게 했다. 32명의 학생이 우리나라와 똑같은 조건에서 문제를 풀었다. 문제의 양은 프랑스 시험보다 두 배나 많다. 그런데 주어진 시간은 평소의 절반이다. 그러다보니 프랑스 학생들 대부분이 문제를 잘 풀지 못했다. 67점 만점에 평균 점수는 약 15점밖에 되지 않았다. 32명 가운데 30명의 학생이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어려운 이유를 들어보면 단지 문제의 양과 시간 탓만이 아니다.
"한국식 시험은 방정식, 원, 삼각형, 기하학, 대수 등 방대한 주제에 대해 고민해야 하네요. 프랑스 시험은 하나의 주제에 관해 여러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어요."
"프랑스의 시험에서는 문제를 풀 때 참고사항이 많아요. 주가 되는 문제 하나에 대해 연속적인 질문들이 계속 나오는 식이거든요. 정답까지 인도받는 느낌이죠."
"한국식 시험은 선다형이라 정답을 모를 때 아무 답이나 찍을 수 있어요. 프랑스 시험은 모두 서술형이라 그럴 수 없어요."
시험 문제를 푸는 것만 본다면 딱히 수학을 잘한다고 할 수 없는 프랑스 학생들. 이들은 어떻게 수학을 공부할까? 수학 시간에 교사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기본 개념에 대한 설명이다. 프랑스 수학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잘 푸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학생들은 서술형 문제에 풀이 과정을 써야 하는데, 답이 틀려도 자기가 적은 만큼의 부분점수를 받는다.
한국의 수학 문제를 굉장히 길고 어렵고 여러 단계에 걸쳐서 풀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분 점수가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이론을 잘 알고 있어도 풀이 과정에서 한순간 삐끗하면 그 문제는 모두 틀린 게 된다. 반면 프랑스 학생들은 틀리는 데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실수하거나 일부만 알아도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학생들은 문제를 풀 때 유독 그림을 많이 그린다. 머릿속에 있는 수학 개념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스스로 이해한 뒤 풀기 위해서다. 또한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학생이 틀려도 야단치지 않는다. 실수는 정답을 향해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학생에게는 늘 오류를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학 교육과 비교해보자.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내신 시험은 50분 동안 30문제를 푼다. 한 문제를 2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풀어야 하다 보니 프랑스 학생들처럼 그림을 그리는 건 사치다.
그런데 프랑스 학생들보다 문제의 정답을 빠른 시간 안에 훨씬 잘 맞히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관련해 이상한 통계가 하나 있다.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혹은 재미가 없어서 수학을 싫어하거나 포기하는 학생들을 이른바 '수포자'라고 하는데, 수포자의 비율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다. 초등학생은 37퍼센트, 중학생은 46퍼센트, 고등학생은 무려 60퍼센트가 수포자다.
학생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일단 너무 어렵다. 이 어려운 수학 개념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어디에다 쓰는지도 모른 채 배워야 한다. 다른 과목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데 얻는 결과물은 너무 적다. 그러니 수학이 싫어지는 건 당연하다. 수학의 본질은 원리와 개념을 이해하고 추론하여 결론을 도출해내는 데 있을 터인데, 우리의 수학 교육은 그것과는 거리가 많이 멀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시민을 기르는 프랑스의 철학 교육
프랑스 학생들은 한국 고등학교의 시험 문제를 절반도 풀지 못했지만, 그들이 써낸 풀이 과정에는 문제에 접근하기위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잘 드러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수학을 비롯한 모든 교육의 목적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교육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바탕에는 철학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문과나 이과 진로에 상관없이 누구나 일주일에 네 시간씩 철학 수업을 듣는다. 철학 수업에서 학생들은 철학적 질문에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프랑스가 철학 수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프랑스에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입 시험으로 철학 시험을 본다. 200년 전통의 프랑스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첫 관문이 바로 철학 시험이다. 네 시간 동안 세 개의 주어진 주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논문 형태로 작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들이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어떤 법도 따르지 않는 것인가?"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처러진 다음 날에는 그 주제가 신문에 반드시 실린다. 시험문제 자체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철학 토론 모임이 열리는 카페도 아주 많다. 고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철학을 주제로 토론하는 것은 프랑스 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의 특징은 이 문제들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모범답안이 없기에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한 문장도 쓸 수 없다. 이 시험이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 시민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 위대한 도구였다.
철학 시험뿐 아니라 바칼로레아의 모든 문항은 주관식이다. 20점 만점에 10점을 넘으면 합격이고, 합격한 사람은 어느 지역, 어느 대학에나 지원할 자격을 얻는다. 무려 열흘에 걸쳐 치러지는 바칼로레아 시험에 매년 1조 원 넘는 예산이 들어간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은 바칼로레아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학생들을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올바른 시민으로 길러내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 강국 핀란드는 왜 새로운 교육 혁신을 시작했는가
프랑스가 지적 전통을 기반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핀란드에서는 다른 방향의 교육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핀란드는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교육 강국이다. 그런 핀란드에서 하는 세계 최초의 시도, 무엇일까? 바로 융합교육이다. 서로 다른 과목의 교사들이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과목을 통합해 가르치는 융합교육은 지금 핀란드 교육의 화두다.
교사 재교육이 진행되는 핀란드 헬싱키의 한 대학 실험실을 찾아가 보자. 생물, 화학, 물리, 수학, 미술, 직물 등 여섯 과목의 교사들이 자연의 재료로 염료를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연의 색'이라는 주제로 어떻게 학생들을 함께 가르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해서 최종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전시까지 할 것인지를 협의했다.
'기름으로 오염된 바다를 어떻게 정화할 것인가'와 같은 주제도 훌륭한 융합 수업의 콘텐츠가 된다. 교사들은 이 주제를 위해 생물, 역사, 수학 등을 융합한 커리큘럼을 마련했다. 융합 수업은 이론 공부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바다를 만들어 보고, 기름을 제거하는 방법도 실험한다.
수업의 내용을 예로 들면 이렇다. 어떻게 물은 남겨놓고 기름만 제거할 것인지, 기름 유출량에 따라 필요한 오일펜스의 길이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과거에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들은 어땠는지 등. 하나의 주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여러 과목이 녹아 있다. 심지어 실제로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노를 저어보는 체육 활동도 하고, 물고기로 요리하는 가사 활동까지 겸한다.
이러한 융합교육을 통해 실용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학생들은 예습이라는 걸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중요한 건 사전에 책에서 미리 얻은 지식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집중해서 생각하고 즐겁게 몰두하는 사고력이다.
기존 교육 제도도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핀란드가 이러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이 특정 과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교육이라고 믿는다. 핀란드는 세계 최고의 교육 선진국이지만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부지런히 더 나은 교육을 찾는다.
학습시간은 우리나라 학생의 3분의 1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핀란드 학생들
이쯤에서 핀란드와 우리의 교육 현실을 한번 비교해보자. 핀란드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가계 소득 대비 사교육비 비중이 가장 적은 나라다. 우리나라의 30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핀란드보다 효과가 더 있을까? 우리나라와 핀란드의 중학교 3학년의 일과를 비교해보자.
대한민국의 중학교 3학년 용웅이는 오후 네 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바로 일본어 수업을 받는다. 일본어 수업 후 공부를 하다가 일곱 시가 되면 보습학원에 간다.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학원 수업은 밤 열 시까지 이어진다. 밤 열 시 반, 학원에서 돌아와 그제야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그런 뒤에도 쉴 틈 없이 숙제하느라 밤 열두 시까지 책과 씨름하다 잠이 든다.
핀란드의 중학교 3학년(기초학교 9학년) 로우페 역시 오후 네 시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가장 먼저 책상에 앉는다.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로우페의 공부 시간은 하루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숙제를 다 한 로우페는 강아지와 동네 산책을 하고, 저녁 시간에는 소형 오토바이 면허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집 근처 학원을 찾는다. 학원에서 교통법규 수업을 듣는 것이 그의 마지막 일과다.
용웅이와 로우페의 일과표를 비교해 보니, 학교 수업을 제외한 용웅이의 학습시간은 일주일에 총 50시간, 로우페는 17.5시간이었다. 한국의 용웅이는 핀란드의 로우페보다 무려 세 배나 많은 시간을 공부하면서도 이렇게 쫓기듯 말한다. "강남에 사는 학생은 아마 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거예요. 안 하면 바로 뒤처져요. 미리 고등학교 과정을 예습, 복습해야 해요."
OECD에서 실시하는 국제학습프로그램 PISA의 평가 결과를 보면, 점수의 총점은 근소한 차이로 핀란드가 1위, 우리나라가 2위다. 그런데 한 시간 동안 공부해서 몇 점이나 점수를 올리는지를 분석한 학습효율화지수에서 핀란드는 여전히 1위였지만 우리나라는 24위로 뚝 떨어졌다. OECD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핀란드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를 훨씬 뛰어넘는다.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면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그다음부터는 시간을 투자하든 돈을 투자하든 효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학습효율화지수에 따르면, 핀란드 학생들은 효율성이 담보되는 시간까지 공부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섰는데도 끊임없이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입한다. 어느 시점 이후에는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학습효율화 지수가 낮은 건 우리가 아주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나라 학생이 공부에만 치여 살고 있을 때 핀란드 학생은 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취미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우리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왜 이런 비효율적인 레이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단 한 번의 실수로 등수가 밀려나는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는 '실수하면 죽는다'는 무서운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 보니 문제풀이를 무한 반복하고, 정답을 맞히는 기계처럼 공부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자해서 얻는 것은 안타깝게도 딱 한 가지, 바로 문제풀이 기술이다. 커지는 사교육 시장의 대안처럼 등장한 EBS의 교육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이 문제풀이 기술을 가르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인도 틀리는 국어 문제를 풀고 네이티브도 못 맞히는 영어 문제를 풀다
도대체 한국 교육은 얼마나 문제풀이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참고로 60만 명가량의 수험생 가운데 한 해 만점자는 서른 명 이내라고 한다.
"한 문제집을 열 번 이상 풀기도 해요. 영어는 외울 만큼 여러 번 보고, 수학도 한 문제를 풀고 또 풀죠.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이 숫자나 표현만 바꿔 나오기 때문에 평가원 기출 중심으로 반복해서 풀었어요."
거의 모든 만점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답이다. 즉, 이들의 공부 비결은 한마디로 많은 문제를 푸는 것이다. 반복적인 문제풀이로 문제의 패턴을 익히다 보면 정답을 맞히는 요령도 생긴다고 했다. 1993년 처음 수학능력시험 제도가 생겼을 때의 취지가 무색하다.
우리나라는 교육열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가계를 지탱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교육비를 지출한다. 그렇다 보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육비를 쓰고 있고, 특히 사교육비 비중은 다른 나라들을 압도한다. OECD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한 해 사교육비 규모는 18조 원에 달한다. 경기도 한 해 예산과 맞먹는 수치다.
심지어 2002년부터는 교육, 보육비를 의미하는 엔젤계수가 식료품비를 의미하는 엥겔계수를 아주 빠른 속도로 추월하기 시작했는데, 해가 지날수록 이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행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워주지 못한다면, 암기 학습은 효과적일까? 기본적으로 외워야 할 단어가 많아 암기 능력이 중요한 외국어 능력은 어떨까?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이런 질문이 무색할 정도다. 우리나라의 외국어 교육이 가진 함정 때문이다.
2015학년도 수능 외국어 영역에서 오답률이 가장 높았던 세 개의 문제를 영어권 나라에서 온 외국인 대학생 열두 명에게 풀어보게 했다. 세 문제를 모두 맞힌 외국인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반면에 세 문제를 모두 틀린 외국인은 다섯 명이나 되었다. 실험에 참가한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문제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 학생들은 어떨까? 외국인이 쩔쩔매는 이 문제들의 정답을 열 명 가운데 약 여섯 명이 맞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보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일까?
사실 외국인들이 풀었던 세 문제는 모두 EBS 교재에 나왔던 지문 그대로 수능에 출제된 것들이다. 이렇게 같은 문제가 나온 것은 사교육없이 EBS만 열심히 공부해도 수능을 잘 볼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 때문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EBS 교재 해석본을 달달 암기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꼬집는다. 결국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 유형을 잘 외운 사람이 경쟁에서 이기는 상황이다.
그리고 시를 직접 쓴 시인이 자신의 시를 해석하는 문제를 틀리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최승호 시인은 이 황당한 결과에 대해, "내 시가 교과서나 수능 모의고사에 나오곤 한다. 그런데 나는 다 틀린다. 그래서 지금은 안 풀어본다"며 "모국어의 맛과 멋을 느껴야지, 시의 주제가 무엇이고 사조가 무엇인지 묻는 교육은 '가래침' 같은 것이다. 시 교육의 목표는 웃는 것 그리고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안목을 키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을 암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키울 것인가
매년 11월이면 수능이 치러진다. 열아홉 살에 치르는 이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많은 부분이 좌우된다. 그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여기기에 우리는 경쟁하듯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 노력을 투자한다. 하지만 모두가 목을 매는 이 시험이 과연 한 사람의 인생을 판가름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중요한 건 이제 이런 시스템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답 기계'만을 쏟아내는 우리의 교육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중대한 위기 앞에 놓여 있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 모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겪게 될 문제들은 모두 시험지 밖에 있다. 몇 개의 보기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일 리도 없다. 이미 많은 지식을 스마트폰으로 30초 안에 다 검색할 수 있는 시대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누가 어떤 지식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넘쳐나는 지식 속에서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판단력, 어느 것이 핵심인지를 파악해내는 통찰력, 흩어져 있는 지식들을 연결하는 통섭력,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을 느끼는 감각 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 교육은 그러한 능력, 바로 '생각의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그 변화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할 때다.
어떻게 생각의 힘을 키울 것인가? / 배선정 PD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수능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달린다. 고등학교까지 1인당 양육비가 2억 3000여만 원에 이르고, 아이들의 일과는 학교, 학원 수업 외에 다른 것이 거의 없으며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학생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12년 교육의 종착지인 수능은 학생들에게 단순 문제풀이 기술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므로 자신의 생각을 지우고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2015학년도 수능만점자 학생 한 명도 "오로지 교육과정이나 교육과정평가원이 정해주는 길만 따라가야 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정답만 찾아가야 한다고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지, 지금 그러한 교육을 받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교육은 얽혀 있는 이해관계자가 많은 영역이다. 또 입시제도와 연결되어 있어 한 부분만을 논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대안을 제시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교육 강국의 사례를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함으로써 그들의 제도가 갖는 장점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 전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또 다른 정답을 찾겠다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교육 문제도 하나의 답이 아니라 여러 답이 있을 수 있으며,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여러 참조점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핀란드와 프랑스 사례는 서로 다른 부분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프랑스와 핀란드, 두 나라의 교육은 전통 대 개혁이란 단어로 정리해볼 수 있다. 프랑스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는 그동안 수차례 우리나라 수능의 대안으로 언급되어왔다. 하지만 서술형이라는 형태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왔던 것 같다. 우리가 바칼로레아라는 시험의 형태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안에 흐르는 프랑스 교육의 정신이다. 바로 '생각의 힘을 기르는 교육'이다. 그 정점에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이 있다.
철학시험은 대입시험 공통과목으로 프랑스 특유의 것이다. 학생들은 '인간은 욕망의 지배를 받는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와 같이 정답이 없는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정해진 정답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여러 단계를 밟아 설득력 있게 펼쳐나가야 한다. 이런 과정은 철학뿐 아니라 수학을 포함한 다른 과목을 통해서도 훈련된다.
취재 과정에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과 프랑스 고등학교 한 반을 선택해 서로의 수학 시험 문제를 바꿔 풀어보게 했다. 한국의 아이들은 2시간 동안 서술형 6문제를 풀어야 했고, 프랑스 아이들은 50분에 객관식 25문제를 풀어야 했다. 두 나라의 아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한국 아이들은 과정을 서술해야 하는 프랑스 수학시험을 낯설어했지만 아는 만큼 쓰면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용기 내 풀기 시작했다. 수학이 어렵다며 포기했던 아이들조차도 자신이 아는 선에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답을 서술해나갔다.
프랑스 아이들도 한국 시험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문제는 건너뛰거나, 점수가 높은 문제를 먼저 풀거나 하는 등의 전략이 부재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첫 장 1번 문제부터 순서대로 풀어나갔고, 모든 문제를 풀어본 학생은 절반도 되지 못했다.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문제를 풀기 위해 도형을 그리고 과정을 서술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에서는 객관식 문제 하나를 틀리면 등급이 내려가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따라서 모르는 문제는 시도 자체를 하지 못한다. 대신, 암기한 공식을 대입해 빨리빨리 풀 수 있는 문제를 선택한다. 하지만 프랑스 아이들은 시도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도 점수를 받아왔기 때문에 한국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아이들은 총점 67점에 평균 15점을 받았지만 크게 낙담하지 않았는데 이런 문화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프랑스 학생들은 이처럼 교육과정을 통해 스스로 시도하고 생각하는 훈련을 받아왔다. 그리고 200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온 바칼로레아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펼쳐 보인다. 그야말로 전통과 역사성에서 기인한 교육의 힘이라 하겠다.
반면, 핀란드는 새로운 시대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강력한 개혁을 하고 있었다. 핀란드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 결과에서 한국과 1, 2위를 다툴 정도로 학생들의 학업능력과 성취도가 우수해 교육 강국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핀란드 사회는 이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성취도에 비해 학업에 대한 학생들의 동기와 흥미도가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해왔고, 2012년 교과개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융합교육을 도입했다.
과목 간의 벽을 허무는 융합교육은 한 교과목에서 배운 내용이 다른 과목과 어떻게 연결되고 적용되는지 이해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에서는 이를 현상 기반 학습이라고 부른다. '바다에 유조선이 좌초돼 기름이 유출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같이 실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놓고 생물, 수학, 역사 등 여러 과목을 연계해 교육한다. 최근 일어났던 가장 큰 기름유출 사고를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공부하고, 유출량과 면적을 계산하며 수학을 배운다. 또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면서 생물을 접하고, 물 위의 기름때를 제거하는 실험을 하면서 화학을 공부한다. 이렇게 자신의 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통해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다 보니 학생들은 더욱 흥미를 갖고 수업에 임하며, 모르는 것은 스스로 더 찾아본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학습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주었을 뿐인데 학습 태도와 흥미도가 크게 오른 것이다.
물론 모든 개혁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핀란드는 교과개혁을 2012년에 시작했는데, 국가 공통 교과과정을 2014년에야 완성했다. 2년 반이 걸렸다. 핀란드 교육위원회는 업무방식의 변화, 배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변화, 효과적인 학습 방법 등과 관련된 연구 자료들을 수집했고, 교육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지방자치단체, 학교, 교사연수원의 관계자들, 연구원, 학부모 및 학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심도 있게 논의했다. 개혁을 실시하기 전에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시대 변화에 따른 개혁의 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핀란드 사회가 또 다른 미래 변화를 감지하고 필요성을 느낀다면, 또 다른 개혁 역시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과 개혁으로 대변되는 프랑스와 핀란드, 이 두 나라의 교육에도 공통점이 있다. 오랜 시간을 거친 사회적 합의가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를 치르기 위해 한 해 1조 원이 넘을 정도로 많은 돈을 투입한다. 하지만 국민의 79퍼센트는 바칼로레아를 없애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렇듯 생각의 힘을 기르는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칼로레아를 유지해올 수있었다.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교육개혁에 대한 요구로 큰 틀을 마련한 핀란드는 40여 년동안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틀을 수정, 보완해왔다. 그 결과 세계 최정상의 교육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2016년부터 전국에 의무화되는 융합교육도 이 큰 틀 안에서 새 시대에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합의한 결과물이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식의 양보다는 창의적인 능력과 생각의 발전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다. 교육은 해당 국가의 국민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사회적 합의다.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 프레임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후세대를 위한 어른의 당연한 책무다.
지식의 폭발 이후,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_ 명견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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