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돈에 대한 결핍의 기억이 없다는 것은, 유년기를 돌이켜보면, 우리 집은 평범한 중산층이었는데도, '돈이 없어서' 무언가를 못해본 기억이 없다.

 

학창 시절에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타서 썼고, 하고 싶은 대로 개인 과외도 두세 개씩 받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등록금이 없어 휴학을 한 적도, 용돈이 모자란 적도 없었다. 물론 쓰고 싶은 만큼 쓸 수 없는 건 불만이었지만, 돈이 없어서 '미치도록 돈을 벌어야겠다'고 이를 갈아 본 적은 없다.

 

결국 내 손으로 제대로 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기자가 된 후다. 내게 경제 관념이란 숱한 짠돌이, 짠순이들을 만나면서 후천적으로 얻게 된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하지만 <짠순이, 짠돌이 시리즈> 연재를 하면서 경제 관념이 뼛속까지 체화된 어린 친구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김나연. 그녀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들 사이에서 특화된 재테크 특강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월 30만 원의 용돈을 모아 대학 졸업 때까지 3000만 원 이상의 종잣돈을 모았다.

 

무엇보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그녀의 어린 나이였다.

'무엇이 이 어린 친구를 짠순이 대학생으로 만들었을까?'

숨겨진 이면이 궁금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용돈을 받았어요.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죠. '이 돈을 다 써도 더 주진 않을 거야. 대신 남는 돈은 다 가져."

 

'남는 돈은 다 가져.'

 

그녀는 이 말에 꽂혔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남는 돈을 가지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항상 조금 더 아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어머니를 설득시킬 이유를 말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친구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같은 뻔한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졌죠.'

 

초등학생 때부터 무엇 하나 쉽게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원하는 걸 손에 쥐기 위해선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했다. 그제야 나를 괴롭히던 의문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맞아. 바로 이거야. 정답은 결핍이었어!'

 

결핍은 사람을 구하게 만든다. 센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사퍼가 쓴 '결핍의 경제학'이란 책을 보면 "인간은 결핍을 느끼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은 보지 못하고 그것만 보게 되는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결핍을 느껴야 비로소 간절히 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한두 가지는 아니겠지만, 결핍은 분명 큰 원동력이 된다.

 

성취란 결국 결핍을 느끼는 데서 출발한다. 결핍을 극복하지 않고 '현실이 마냥 불행하다'고 느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가르친 것은 바로 '결핍을 대하는 자세'였던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가르친 경제 교육은 두 가지였다.

 

첫째, 필요한 게 있으면 먼저 계획하고 돈을 모아라.

둘때, 그것이 필요한 이유를 설득시켜라.

 

사람들이 빚을 지는 이유는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두 가지 원칙을 제대로 지키기 때문이다. 푼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어본 사람은 남들이 보기엔 티끌처럼 작은 것은 소중함을 안다. 푼돈으로 목돈을 만든 사람만이 마지막까지 부를 유지할 수 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나는, 어머니의 후광을 느꼈다. '대학생 재테크'를 만든 그녀의 절약 습관은,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결핍을 가르친 어머니의 훈련 덕분에 어릴 적부터 해온 치열한 고민들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그 무엇보다도 결핍을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원한다는 대로 모든 욕구를 다 충족시켜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진심을 다해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다.

 

원래 사람은 쉽게 얻는 성취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아무리 값비싼 보물일지라도 고마운 줄 모른다. 스스로 간절히 구하기 전에 그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문득 고교 시절, 비상한 머리로 쉽게 공부를 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스캐너가 있다고 했다. 시험 전날 교과서를 한 번만 보면 머릿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정답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그를 '스캐너'라 불렀다. 스캐너는 놀 것 다 놀고, 할 것 다 하면서 공부를 해도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머리보다는 노력으로 공부했던 나는, 스캐너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스캐너는 당당히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 친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스캐너가 보였던 반응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냥 간판 하나 딴 거 뿐이지. 뭐."

 

정말이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심하게 서울대를 간판이라 불렀다. 하지만 스캐너는 끝내 사법 고시를 패스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의 뛰어난 스캐너를 활용해 사교육 시장에서 유명 강사가 됐을 뿐이다. 아주 나중에야 스캐너의 소식을 들은 나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래. 간판을 너무 쉽게 땄어.'

 

돈은 어렵게 벌어야 한다. 쉽게 번 돈은 그만큼 쉽게 나가기 마련이다. 인간은 스스로 결핍을 느끼고, 그것을 자기 힘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뼛속까지 전율하는 성취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핍에도 불구하고, 성취를 해본 사람의 자긍심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무엇보다 자긍심은 곧 행복의 척도가 된다. 행복한 아이를 만들려면 자긍심을 길러줘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부모가 그에게 결핍을 먼저 알려줘야 한다. 돈이 아닌 푼돈을 모으는 습관을 물려주는 것. 아이에게 부자로 가는 '특급 엔진'을 달아주는 것과 같다.

 

결혼보다 월세_ 성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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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6. 2. 2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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