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이 인간을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중요한 점들을 잘 짚어주고 있는 책입니다. 표지에는 니콜라스 카를 IT 미래학자,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점을 한마디로 말하면, 디지털 기술이 우리 인간을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뇌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뭐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깊이 들여다볼수록 엄청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책 제목 그대로 인간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전에는 무언가 모르는 것, 생소한 단어를 보면 잠시 멈추고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머릿속에 저장해둔 배경지식들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단어와 연결시켜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잘 모르면, 글의 앞뒤를 다시 읽으며 추론을 해서 이해했지요. 그도 안 될 때 사전을 찾아서 뜻을 익히고요.

 

이렇게 독자는 새로운 정보를 스스로 해독하여 습득하고 그것을 통해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하는 동안 우리의 전두엽이 움직이고 그 속의 해마가 활발히 헤엄치면서 '창의력'이라는 아기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 과정을 과감히 생략해버리고 있습니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를 칩니다. 인터넷에 정보처리과정을 기꺼이 양보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니 인간은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인터넷은 똑똑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생성'과 '연결'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처리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해냅니다. 책을 읽을 때 질문을 하고 그 뜻을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를 생성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인지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누군가는 이런 주장에 반기를 들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취사선택하는 과정도 읽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지요. 이런 주장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정보들도 분명히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이고, 전문가들의 고급정보도 많으니까요. 인터넷 정보들을 인식하는 것도 분명 정보처리과정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 세 가지 면에서 문제점을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터넷은 사람들을 자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꼭 필요한 정보만을 찾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것들도 접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깊은 사고를 해야 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 뇌에서 참신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둘째,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사람들은 자주 길을 잃습니다. 처음에 찾고자 했던 정보는 잊어버리고 여기저기 헤매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학자들은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셋째, 인터넷은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로 기능하기보다 오락적 매체로 기능하는 측면이 더 강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심각하고 진지한 독서를 하려고 하지 않지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자신의 목적에 따라 필요한 정보들을 찾고 그것들을 재가공하고 비판하며, 적절한 곳에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미 요소만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무엇을 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그들이 보는 것은 드라마,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게임, 쇼핑, 로맨스, 소설 등이 압도적입니다.

 

이렇듯 점점 많은 사람들이 진지한 책, 두꺼운 책 읽기를 귀찮아합니다. 아니 사실은 읽지 못한다고 봐야겠지요. 앞으로 사람들은 점점 더 책과 멀어질 것입니다. 이미 뚜렷하게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책이 안 팔리고 있으니까요. 이제 두꺼운 책은 중세시대 일부 귀족들의 책장에만 존재하던 고전의 신세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자녀에게 종이책을 읽히는 IT 기술자들

 

모두가 책을 멀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에 이런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기자가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들이 아이패드를 좋아하느냐?" 라고 질문했더니, 그가 자기 자녀들은 아이패드를 써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잡스의 공식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는 저녁이면 부엌에 있는 길고 커다란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책과 역사, 그 외에 여러 가지 화제를 놓고 이야기했다" 라고 말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뿐만 아니라 IT 기술자나 벤처사업가 중에는 자녀로 하여금 학교 수업이 있는 평일에는 어떠한 기기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주말에만 일정 시간 범위에서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테크놀로지가 아이들에게 미칠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기사에 덧붙여 놓았습니다.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를 쓴 제이슨 머코스키는 아마존 킨들 개발자로 전자책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전자책이 미래의 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린이용 전자책 출간에 대해서는 아직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미국 IT 기술자들의 자녀들이 많이 다닌다는 발도르프 학교에서도 열살 이전에 컴퓨터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하도록 할까요? 그들은 손으로 하는 일, 느리고 오랫동안 몰입하는 일을 하게 합니다. 목공 일, 흙을 만지고 도자기를 만드는 일, 뜨개질을 하거나 산책, 명상, 독서를 하지요. 이런 것들은 느긋하게 사색하고 성찰하는 습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줍니다.

 

디지털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사색과 독서를 하라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유명한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은 이미 1960년대에 미디어가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예견했습니다. 그가 던진 이 말은 '진짜가 아닌 미디어, 즉 매체가 의미를 갖게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이 그토록 유명한 진짜 이유는 이 짧은 한 마디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빨리 갖고 싶어서 매장 앞에서 밤새워가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겼지요. 이처럼 첨단제품 열혈 구매자를 일컬어 가젯러버라고 합니다. 맥루한은 사람들이 이렇게 첨단 디지털 기기에 매혹당하는 이유를 그리스 신화 '나르시스' 이야기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나르시스가 거울을 통해 본 자신에게 매혹당했듯이 인간도 자신을 비춰주는 도구에 매혹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확장된 형태에 매혹되어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것이지요.

 

맥루한은 기술과 인간의 의식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합니다. 그는 미국 작가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소용돌이 속에서'를 언급하면서 디지털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황하지 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머리를 굴리라고 조언합니다. 인간은 소용돌이를 만들 재주도 있지만 자기 목숨을 구할 재주도 있다면서 새로운 환경에 휩쓸려 정신을 잃지 말고 그 환경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라고 합니다.

 

디지털 홍수에 떠밀려가지 않으려면 지루함을 즐기고 심사숙고하며 가치를 탐구해야 합니다. 독서를 통해 말입니다. 독서는 디지털 세상과 소통하고 디지털 세상을 성찰하며 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최근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디지털 관련 책들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독서를 해라'입니다.

 

'퓨처 마인드'의 저자 리처드 왓슨은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 머릿속에 저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은 구글 창고에 있어서 언제든지 검색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두뇌에 저장하지 않고 컴퓨터에 저장된 것을 꺼내 쓰다 보니 인간은 점점 더 지식을 저장하고 생성하고 가공하는 기능을 잃어버린다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분석하고 평가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고등사고기능을 상실해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열심히 텔레비전이나 광고를 보지만,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해 못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서서히 우리의 정신세계에 침투하여 우리의 의식을 점령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자주 보았던 것들을 친근하게 여기고 그것들을 진짜로 인식하게 되니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현대인은 읽을 수 있으나 읽지 않는 문맹인이다"라는 말을 한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요?

 

문화에 무지한 디지털 시대

 

"디지털 시대, 21세기의 10대는 문화에 있어서 시골뜨기이다."

이 말은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창업자 빌 조이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이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요?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은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하느라 뇌가 지쳐서 정작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데에 뇌를 쓸 여력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만 관찰해도 쉽게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SNS에 올라온 정보들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사람들은 골치 아픈 뉴스나 고전, 사회과학 도서, 철학적 사유를 필요로 하는 글을 읽으려 하지 않지요. SNS에 올라온 지식들 중에도 유익한 것들이 있겠지만, 일단 이런 글들의 특성은 친근성과 근접성입니다.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주고받는 정보가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문화를 읽어내는 관점이나 시야가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문화에 무지하다. 문화를 읽어내는 능력이 촌뜨기 수준이라는 말은 결국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잘 모르고 그것에 매몰되어버리는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정적 사고에 휘말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지요. 고정적 사고에 휘말린다는 것은 자신만의 생각,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독서는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렇다고 미디어가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괴물은 아닙니다. 텔레비전을 거실에서 치운다고 해서 미디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요. 이미 미디어는 공기와도 같이 우리의 환경 그 자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해결책은 미디어를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미디어를 활요하고 미디어를 통해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 캐나다와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미디어 교육을 공교육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7차 개정교과서에서부터 국어 과목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담당하고 있지요.

 

미디어 리터러시는 독서를 바탕으로 모든 매체들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비판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책을 제대로 읽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되 책과 미디어를 연결지어 새로운 것을 창출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소설을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뮤지컬로, 광고로 변환할 줄 알아야 하며, 반대로 영화를 다시 소설로 구성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매체를 변환하는 것에서 나아가 건축, 패션, 미술, 행정 등 모든 분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오늘날의 독서력은 문화 문식성, 문화적 감수성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독서력을 문화 문식성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독서의 대상을 단지 인쇄매체인 책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모든 매체를 독서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우리가 문학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나 에세이, 시가 더 이상 유일하고 자율적인 전체가 아니라 수많은 사회문화적 기호들이 포함된 복합적이고 상호적인 텍스트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좀 생소한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알고 나면 금방 고개를 끄덕일 말한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천국'을 그리라고 하면 천사가 날아다니는 모습이나 아름다운 궁궐, 때로는 외계인을 그립니다. 어떤 아이는 쿨쿨자는 곳으로 그리기도 하지요. 왜 그렇게 그렸냐고 물으면 교회나 성당에서 보았거나 동화나 텔레비전, 영화, 만화, 미술관에서 보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천국에 대한 이미지는 매체에서 본 것들이지요. 이렇게 천국이라는 이미지는 미술, 종교, 동화, 드라마, 영화, 만화, 대중가요,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들 속에서 서로 연관성을 가지면서도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을 상호텍스트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문화 문식성이란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이런 이미지들을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재생산해낼 수 있음을 뜻합니다. 책과 매체를 연결지어 해석하고 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 이것을 다른 말로 매체통합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체통합독서의 바탕이요 뿌리는 결국 인문독서입니다.

 

초등 인문독서의 기적_ 임성미

by 미스터신 2017. 11. 10. 14:46

나는 지금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마다 TV 생방송을 진행한다. 여기에 짬짬이 글을 써서 책을 내고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는 기업이나 학교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한다. 흔히 교수라고 하면 아이들을 가르칠 때만 빼고는 연구실에 머무르며 비교적 여유롭게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론 잠시 책상에 앉을 틈도 없이 누구 못지않게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절대 거르지 않는 것은 바로 독서다. 10분 동안 2페이지를 읽든, 필요한 자료를 찾느라 10권을 읽든 날마다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루도 책을 펼치지 않은 날은 없었다. 내가 책을 쓰는 저자이고, 교수라서가 아니다. 일과 삶 양쪽에서 나를 성장시키고, 눈앞의 문제에만 매달리느라 중요한 결정을 그르치고 후회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유일무이한 도구가 바로 독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 법학부를 졸업한 뒤, 나는 교육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에 진로를 바꾸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큼 하루빨리 논문을 쓰고 졸업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마음은 바빴지만 현실은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장장 8년이라는 시간을 대학원에 다니며 공부하는 동안 나이는 서른이 넘었고, 이렇다 할 직장도 없는 빈털터리였으며, 힘들게 쓴 논문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게 원하던 공부를 하면서도 "지금 하는 일이 뭐예요? 수입은 얼마나 되죠?" 라고 묻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불안하고 초조했다. 다른 이들은 한참 앞서가고 있는데 나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 성과도 없고 초라해 보일 뿐인 것 같아 대학원 따위는 그만둘까 고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 미래에 대한 불안과 회의감 속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고,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그래도 뭔가를 배울 수 있으니 더 낫다는 생각 때문에 미련할 정도로 책의 세계로 파고들었다. 책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와 같은 문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당시에는 매일 책을 읽는 습관을 하나 만드는 것이 유일한 수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시간 강사부터 시작해서 대학에서 자리를 잡고,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동안 그때 내가 얻은 것이 독서 습관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하는 힘, 풍부한 간접 경험, 나와 타인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는 유연성 등 독서를 통해 무수히 많은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흡수한 저자들의 생각과 지식, 삶이 내면에 켜켜이 쌓여 무슨 일이든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주었고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지 않고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다시 말해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은 내가 똑똑하거나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매일 책을 읽은 힘 덕분이었다.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 등 책보다 재미있고 즉각적인 정보와 지식을 주는 도구들이 많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만큼 귀찮고 머리가 아픈 일이 없는데,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냐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으로 살고 싶다면, 단단한 내공을 쌓아 삶의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도 우리가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은 한정되어 있어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깊은 내공을 쌓는 데 필요한 재료의 질과 양을 더하는 행위다. 내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격렬하게 부딪히기도 하고 마치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이기도 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생각이 탄생한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살면서 겪은 경험과 지혜가 합쳐지면서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내공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독서는 사람이기에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시간적, 경험적 한계를 극복해서 내면에 숨겨져 있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고비나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인생을 꾸려 나간다.

 

자꾸 똑같은 실수를 하면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며 스스로를 비하할 때가 있다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크고 작은 실패로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책을 읽길 바란다. 죽음을 이겨 내고 일본 최고의 기업가가 된 손정의나 술과 마약으로 망가졌던 삶을 추슬러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토크쇼 진행자가 된 오프라 윈프리를 만든 것도 다름 아닌 책이었다. 책은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당당한 자존감과 긍정의 힘으로 어디에서나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혹시 지금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내심 독서는 귀찮고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독서의 기술을 모르기 때문이다.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거나 내용이 어려운 책일수록 좋은 책이라는 등의 책과 독서에 관한 수많은 편견과 압박에서 벗어나라. 독서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지금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을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1권을 재미있게 읽어야 100권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남들보다 많은 책을, 정확하게 읽고, 바로 일과 삶에 활용할 수 있다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승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인생의 선택을 '점과 점 이어 긋기'에 비유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금 한 일이 인생에 어떤 점을 찍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래에 그것들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니 그 점들은 이미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어떤 일이 지금 혹은 미래에 어떤 의미인지 당장은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훗날 과거를 돌아보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점과 점들이 이어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현재를 충실하게, 우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독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읽는 책 한 권이 내게 무엇을 줄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직하게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수많은 점들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깨닫게 되지 않을까. 점과 점이 이어져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우리 함께, 책으로 찍은 점을 늘려 나가자.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_ 사이토 다카시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7. 1. 14. 15:39

 

기록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독서 고수인 율곡 이이는 다독보다는 숙독을 강조했다. 그가 남긴 [격몽요결]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한 가지 책을 습득하여 그 뜻을 모두 알아서 완전히 통달하고 의문이 없게 된 다음에야 다른 책을 읽을 것이요, 많은 책을 읽어서 많이 얻기를 탐내어 부산하게 이것저것 읽지 말아야 한다." _ 이이, [격몽요결] 중에서

 

하지만 율곡 이이 선생이 살았던 조선시대와 현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독서법도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목적에 따라, 심지어 책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조선 시대에 대부분의 선비들이 선호한 독서법은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책을 읽어 뜻을 완전하게 통달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독서백편의자현'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백 번 읽으면 뜻을 자연히 알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하루에도 한국에서만 200여 권의 책이 출간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 200여 권의 책은 과거에는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의식과 패러다임과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는 책들이라는 점이다.

 

조선 시대에는 책이 많이 있지 않았고, 한 권의 책을 구하는 것도 매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굉장히 고가였다.

 

우리의 선조 중에 가장 많은 책을 집필한 혜강 최한기 선생은 매우 부자였지만, 책을 너무 좋아해서 조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책은 모두 구입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결과 부자였던 최한기 선생은 가난해졌다고 한다. 그 정도로 책이 고가였던 것이다.

 

현대는 인쇄술과 기술이 발달해서 한 권의 책값이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약간 비싼 정도이다. 책을 아무리 많이 구입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부자가 가난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또 조선 시대에는 지식의 폭발 정도가 매우 느렸다. 하지만 요즘은 몇 년만 지나면 인류의 지식과 정보의 총합을 두세 배 이상 뛰어넘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한마디로 지식과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조선 선비들은 우리가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 중에서도 중국에서 나온 책만 읽으면 되었다고 말한다면, 지금 우리들은 과거의 고전 중에서도 서양에서 나온 고전, 미국에서 생겨난 고전, 그리고 현대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검증이 안 되었지만 고전의 반열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명저들 까지 읽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와 시대적 변화 때문에 다양한 책들을 읽는 것, 즉 다독하는 것을 필자는 추천하고 있다.

 

창조성이란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질적인 것들을 융합하고 엮고 조합하는 것에서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질적인 생각과 의식에 접해야 한다.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수용과 모방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의 양의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질적 전환이 일어나 새로운 이론과 견해, 가설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인류의 모든 학문과 사상은 발전을 해 왔던 것이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사항은 다양하고 풍부한 양적 수용과 모방인 것이다. 에디슨이 최고의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전쟁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것이고,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장군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장군아기 이전에 문신으로서 다양한 책들을 읽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도 위대한 혁신가임에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스티브 잡스보다도 세종대왕이 더 위대한 혁신가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에 수천 명의 위대한 학자들이 평생을 투자해도 새로운 글자를 하나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세계의 모든 언어학자들이 찬양하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을 창조했다.

 

이것만큼 더 큰 혁신은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독서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그 당시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을 만큼 최고의 부자였고, 최고의 정상에서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과거 시험을 쳐야 하는 선비들보다 더 열심히 더 지독하게 책을 읽고 또 읽었던 위인인 것이다.

 

세종대왕의 모든 창조성과 유연성과 리더십과 백성 사랑은 바로 책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2. 20:11

운명, 사랑과 상실 그리고 죽음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오늘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새 출발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졸업식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 그저 이야기 세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리드대학이라는 곳을 6개월 다닌 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은 비공식적인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진짜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나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제가 대학을 나온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예정되었고, 그것으로 모든 일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태어났을 때 변호사 부부는 마음을 바꿔, 여자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제 생모는 한밤중에 입양 대기자 명단에 있는 다른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물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 생모는 나중에야 제 어머니(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아버지(양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모는 이 때문에 최종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양부모에게 나를 나중에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나고 저는 정말 대학에 갔습니다. 저는 그때, 연간 약 6천 만원 정도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였던 부모님(양부모)은 평생 동안 모든 돈을 제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만한 돈을 쓰는 것에 대해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살면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살면서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저를 위해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당시 저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결정을 내릴 때는 조금 두려웠지만, 지금 돌아보면 제가 지금까지 한 가장 훌륭한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면서,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이유가 사라진 대신 흥미로운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낭만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청강생이다 보니 기숙사에 방이 없어 친구들 방의 침대 옆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 위해 50원짜리 빈 콜라병 모으는 일을 했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는 무료 급식을 받아 먹기 위해 일요일 밤마다 10킬로미터를 걸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 모든 걸 사랑했습니다. 그렇게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가다가 제가 부딪친 많은 것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이겠습니다.

제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타이포그래피(서체)교육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에 있는 모든 포스터와 표지물들은 손으로 쓴 아름다운 글씨체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규과목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배워보려고 서체 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모든 것이 내 삶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몰랐습니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되살아났습니다. 우리의 맥(Mac)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대학을 그만두지 않고 타이포그래피 강좌를 듣지 않았다면 맥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윈도우즈는 맥을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지금처럼 다양하고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무렵 제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볼 때 그것은 분명 모두 이어진 점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우즈(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와 저는 애플을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애플은, 연매출 20억 달러에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매킨토시 컴퓨터를 시장에 출시한 해에 저는 막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냐구요? 글쎄, 애플이 커가면서 우리는 회사를 운영할 전문 기업인을 고용했고 첫 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보는 관점에 서로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서른 살이었던 저는 쫓겨났습니다. 당시 제 삶의 전부였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려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첫 몇 달 동안 무엇을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앞서 간 세대는 물러나게 된다는 느낌, 내게 지휘봉이 전해진 것처럼 또 누군가에게 전해지도록 내려놓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팩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났고 그들을 그렇게 못살게 군 것을 사과했습니다. 저는 공식적인 실패자였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쳐 떠나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 겪은 일도 그것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거부당했지만, 여전히 내 일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였습니다. 나를 짓누르던 성공에 대한 부담은, 확신은 없지만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내 삶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5년 동안 넥스트(NEXT)라는 회사, 픽사(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시작했고, 나중에 아내가 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놀라운 반전속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저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르네상스를 이루는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 픽사에서 만난 로린과 저는 한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 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나를 이끌어간 유일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그래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처럼, 그것은 해가 지날수록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열일곱 살이었을 때, 어떤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당신은 옳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저는 그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할까?' 그리고 제 안에서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로 이어지면, 그 결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삶에서 큰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숭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약 일 년 전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췌장에 악성이 분명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길어야 세 달에서 여섯 달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의사들이 말하는 죽음의 준비입니다. 그것은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입니다.

그날 저녁 늦게 목구멍에 내시경을 넣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췌장에서 몇 점의 세포를 떼어 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매우 드물게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췌장암이라고 의사들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앞으로 몇 십 년 동안은 그렇기를 바랍니다만,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제 죽음이라는 것을 지적 개념만으로 알던 때보다 좀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으로 가기를 바라는 사람조차 거기 가기 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죽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가장 훌륭한 창조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교체를 만들어내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음을 청소하고 새로움을 위한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새로움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그때, 여러분들도 점차 낡은 것이 되고 치워질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의 마음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전 세계 목록'이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그 책은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책은 스튜워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시적인 표현들을 가미해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생기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고쳐 펴냈고, 결국 그 책의 최종판이 나온 게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여러분 나이 때입니다. 최종판의 뒷표지에는, 여행을 하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기 위해 손을 드는 곳과 같은, 이른 아침 시골길을 찍은 사진이 인쇄돼 있었습니다. 그 밑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

이것이, 그들이 책을 더 이상 찍지 않기로 하면서 한 작별 메시지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저는 나 자신에게 늘 이러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졸업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감사합니다.

* 스티브 잡스(Steve Paul Jobs) 매킨토시, 아이폰, 아이패드로 유명한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이 연설문은 2005년 여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들려준 것으로, 좀 오래되었지만 삶과 교육의 핵심을 짚고 있다고 여겨 소개합니다.

_ 민들레 < vol.72 2010 6th> 중에서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3. 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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