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등불, 하브루타
유대인들은 어떻게 세계 곳곳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까? 유대인 교육에 어떤 특별한 부분이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학문에 대한 철학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접근, 질문식 교육 등 '살아있는 수업'을 받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탈무드 원전을 바탕으로 하나의 스토리나 논제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며 가치 있는 지혜를 찾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스승은 같이 의견을 나누는 상대가 되며, 자기들끼리 지혜를 모으는 것이 힘들 때는 선생님인 랍비가 도와준다.
이러한 일련의 수업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뭘까? 먼저 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또한 상대의 얘기를 차분하게 경청하며 그 속에서 지혜를 찾는 현명함을 기를 수 있다. 이렇게 길러진 논리적인 힘은 수학과 언어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또 비판적 사고가 자리 잡게 되고 본인이 수행하고 있는 학문의 수준을 높이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근본적인 바탕을 이루는 교육을 소홀히 한 반면, 아이들에게 얕고 짧은 지식을 넣어주기에만 급급했다. 멀리 보고 깊이 보고 넓게 보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부모의 혜안과 지혜로운 선택이 곧 우리 아이들에게는 밝은 등불인 것이다.
질문과 토론으로 다져진 아이는 세상이 만만하다
한국 유학생이 유대인 친구 집에서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한국 학생은 공부도 아주 잘했고 스펙도 매우 뛰어났다. 두 친구 모두 하버드대에 지원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유대인 친구만 합격한 것이다. 한국 학생은 당연히 자신이 합격할 줄 알았다. 내신 성적이나 스펙이 유대인 친구에 비해 월등했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은 유대인 친구에게 "어떻게 합격할 수 있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대답은 의외였다.
"하버드 인터뷰에서 나온 질문이 우리 아버지와 나눴던 토론 주제보다 더 쉬웠어."
유대인들은 가정에서 아버지가 스승이 되어 자녀와 함께 탈무드나 일상 주제를 가지고 규칙적인 하브루타 시간을 갖는다. 유대인들의 근원적인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학교에서도 학과목 공부보다 탈무드 하브루타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사고력 확장과 수많은 개념들을 체계화시키며 하브루타를 통해 도덕적 기준이나 인성을 키운다. 몸과 머리로 익힌 체계화된 개념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원동력으로 이어진다. 항상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사는 유대인들은 질문으로 체득한 지혜와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이것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사고를 하고 좋은 결실을 맺는다.
유대인들의 학습 시간은 우리보다 짧다. 대신 토라(유대 율법서)를 공부하고 탈무드 하브루타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학습시간이 짧아도 세계 인류사에 많은 연구와 업적을 남기고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며 그 영향력을 최고로 유지하고 있다.
그 비결은 근본적으로 '생각의 힘'에서 나온다. 학습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며 이런 방식이 어려서부터 생활화, 문화화되어 있다. 몇천 년 동안 내려온 유대인의 전통은 삶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힘의 근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교육 현실과 문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우리도 이제 달라질 필요가 있다.
질문의 문화는 후츠파(유대민족 특유의 도전정신을 이르며, 히브리어로 뻔뻔함, 담대함 등을 뜻한다) 정신으로 이어지고 후츠파정신은 기업정신으로 이어진다. 유대인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을 가장 많이 일으키고 있는 이유다. 질문을 유난히 두려워하고 질문에 답을 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우리의 문화와 교육 현실도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말 잘하는 아이가 창의성을 갖는다
눈망울이 유난히 반짝이는 초등학교 1학년 남자 아이를 만났다.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쉴 새 없이 얘기를 시작했고 엄마는 계속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행동에 난감해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니 아이는 더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기에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아이는 논리적인 표현은 물론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능력이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 보였다.
하지만 이 아이의 뛰어난 장점이 한 교실에서 여러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학교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었다. 선생님과 아이 사이에 시시콜콜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고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이를 공교육에 적응시킨다고 하면서 말 잘하고 말 많은 창의적인 아이의 입을 닫게 할까봐 그것도 걱정이었다.
별 다른 대안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의 심정이 안타까웠다. 며칠 전에는 아이가 '상자 같은 교실 안에서 왜 말없이 색칠만 해야 하는 거야? 난 정말 싫어!'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표현을 했을까 싶다.
이런 환경을 만든 어른을 대표하여 한없이 미안했다. 여기에서도 마음껏 '왜?'라는 세상 속으로 신나는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하는 것에만 답을 하라고 하고 그 이상의 생각이나 질문을 하면 외면하면서 어떻게 창의적인 인간이 되라고 하는 것인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내가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한 시간 동안 탈무드 이야기로 친구들과 마음껏 토론하고, 한 시간은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나서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질문의 공부법 탈무드 하브루타는 우리나라 공교육의 현실을 타개해나갈 대안이다. 질문하면서 깊이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생각이 날카로워진다. 자신의 생각에 친구의 생각을 더하니 사고의 폭도 넓어진다. 이렇듯 많은 것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질문의 공부법이 하루 빨리 공교육에서도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질문의 공부, 이제라도 시작하자
언젠가 모 신문에 실렸던 '서울대 학생들의 공부법'에 관한 기사가 큰 충격을 주었다. 조사에 따르면 "시험을 치를 때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접근하면 성적이 엉망으로 나오고, 교수의 말을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적으면 A가 나온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날부터 대학 졸업에 이르기까지 '암기로봇'을 만들어버리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슬프기까지 했다.
암기 지식만 가지고는 미래를 이끌어갈 수 없으며 특히 인재대열에 합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교육 현장에서 안된다면 가정에서라도 매일 하브루타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깊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내공은 학원에 가서 몇 달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달달 외운 질문과 답은 아이의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근본적인 사고력과 창의적 생각은 시간과 더불어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오랫동안 문화로 지속되고 남아야 하는 것이다.
황희 정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도 옳고, 그도 옳고, 나도 옳다."
이것이 바로 하브루타다. 서로를 인정하는 열린 생각이 발전과 성숙으로 이어진다는 하브루타의 핵심과 우리 조상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이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정신을 기르는 것은 우리 모두를 발전시키는 최고의 교육이다.
교육은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까지도 암기교육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런 교육현실을 하브루타로 바꾸어나갈 필요성이 절실하다.
듣는 강의는 5% 기억에 남고, 말하는 강의는 90% 기억에 남는다
우리교육은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는 수업이다. 물론 구조적으로 각 교실 안의 학생 수가 많아서 쉽지 않은 점도 있지만 교육의 초점이 시험에 맞추어져 있다 보니 그저 일방적으로 듣고 외우고 암기하고 시험보고 잊어버리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E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에서는 충격적인 내용이 소개됐다. 학습 효율성으로 볼 때 강의를 들으면 기억이 5%만 남고, 읽으면 10%, 강의를 직접 하거나 설명을 하면 90%가 남는다는 실험 결과다.
중학교 3학년 두 남학생이 하브루타 짝을 한지 1년이 넘는다. 이 친구들은 영어 지문을 읽고 서로에게 설명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하브루타를 했는데 한 달이 지난 뒤 내용을 물어보니 둘 다 지문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운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모두가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인 듯하다.
부모교육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탈무드 이야기를 소재로 각자 질문을 만들고 짝을 지어 하브루타를 한다.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에서 질문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하브루타를 한 내용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혼자서 읽고 만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하지만 하브루타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생각을 접하면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니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브루타로 크는 아이들, 김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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