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에게는 15학번인 아들이 있다. 며칠 전 아침을 같이 먹으며 혹시 올해에 입학하는 후배들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은 말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말할 것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들놈은 단호하게 한 마디로 표현했다. '기-승-전-공부'라는 것이다. 그럼 '니가 생각하는 공부란 어떤 것이냐' 하고 다시 물었다. 여기서 잠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또 한 마디로 대답한다. '현실 공부'라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대학 1학년 동안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내린 결론이란다. 시간이 없어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었지만 그 날 하루 종일 아들이 말한 '현실공부'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았다.
먼저 아들이 한 말은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었다는 의미일 터이다. 이 말엔 많은 학생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럼 대학 수업은 진짜 공부인가? 자기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를 결정하고 대학입시를 치르는 학생은 사실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시험 성적에 따라 학과를 결정하며, 미리 진로를 생각한다 해도 대부분 사회적 평판이나 수입에 따른 결정을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대학 강의실에서의 수업이라 해도 정말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과목이 아닌 경우, 그저 시간을 때우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3월 개강 후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 풍경을 잠깐 그려보자. 조그만 흑백사진이 붙어있는 출석부를 펼치고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듯 한 사람씩 부른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면 처음의 긴장이 20분을 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가장 단기적인 시간이 20분이라 한다. 이 때쯤이면 학생들의 잠을 깨우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학 입학 후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여행,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대답과 함께 미팅이나 소개팅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럼 다시 구체적으로 물어본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났을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 여기서부터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경험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상대인지 명확히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묻는다. 서로 질리지 않고 오래 만나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여기에 대해서도 대답하기 어렵다. 이제 학생들이 반문한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어떻게 하면 될까?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공부해라' 학생들은 다시 말한다. '데이트 하는데 무슨 공부를 해요?' 그럼 나는 또 대답한다. 발전하지 않는 관계는 금방 질리고 끝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보자. 미술관에 가거나 박물관에 가거나 아니면 영화를 보러간다고 생각해보자. 아무런 준비 없이 둘이 같이 본 그림이나 유물들 혹은 영화에 대해서는 짧은 감탄사 이외의 느낌을 더 말하기 힘들다.
오직 입시 준비만을 해 온 학생들에게 모든 그림이나 영화는 내 인생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일 뿐이다. 데이트를 마친 두 사람은 다시 먹고 마시며 일상적인 소비생활로 돌아간다. 단순하고도 지속적인 소비밖에 없다. 그런데 미리 공부를 하고 가면 어떨까? 간단하게라도 미술사에 대하여, 영화감독에 대하여, 장르적 특성에 대하여 실로 공부를 하자면 끝이 없다. 데이트를 하고 나온 이후에도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앞으로의 만남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상대를 새롭게 보게 될 것이고 내가 얼마나 좋은 상대를 만나게 되었는가 감사해 할 것이다. 나는 어떤 데이트를 할 것인가?
모든 공부는 시험용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공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더욱 알차게 만들어준다. 공부는 현실과 접목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이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생들은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 살아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어떻게 하면 멋있는 대학생활을 할 것인가. 답은 한마디로 '기-승-전-공부'다.
_ 전승주 서울과기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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