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는 오늘을 산다
나는 거의 나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지낸다. 나를 찾아오는 제자들에게도 올해 몇 살이냐는 식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처음 만나면 만난 대로 나이를 묻고, 나이를 묻지 않은 채로 친해지는 중이라면 또 그래서 나이를 묻는다.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이다.
지금도 일간지 등의 매체에서 이름 뒤 괄호 안에 나이를 밝히는, 마치 법칙 같은 관행이 남아 있기도 하다. 유명인의 결혼 기사가 나도 두 사람의 나이 차이에 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전 국민이 모두의 나이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중요하다. 나이를 알아야 친구를 할지, 존대를 할지, 아니면 슬쩍 말을 놓을지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이는 그 사람의 행동의 당위성을 고려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잇값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는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나이를 기준 삼아 경험치의 다소를 정해 누군가는 가르치려 들고 또 누군가는 배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왜 이렇게 나이에 집착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 박혀 있는 유교 사상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같은 유교 문화권인 중국, 일본도 나이에 관한 질문은 결례에 해당한다고 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글로벌 에티켓을 다룬 <어글리 코리언, 어글리 아메리칸>을 처음 쓴 것이 1993년이다. 그때부터 2014년까지 다섯 차례나 증보판을 내면서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아 고쳐야 할 '어글리 코리언' 에티켓으로 '개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가 포함되어 있다.
아주 친하지 않다면 묻지 말아야 질문들이란 나이, 결혼의 유무, 자녀의 유무, 연봉에 관한 것이다. 그중 가장 거리낌 없이 늘 묻는 것이 바로 '몇 살인가'이다. 나이가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할까? 나이는 업무를 하는 데에도, 친교를 나누는 데에도 별 의미가 없는 요소이다. 나이는 젊음이나 늙음을 우리끼리의 잣대에 맞춰 표현하려는 이른바 기호일 뿐이다.
나는 젊었을 때에도 나이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생 때부터 파트타임으로 영어를 가르쳤는데 너무나 젊은 나이의 학생이 어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된 입장이어서 더욱이 그랬다. 그래서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나이를 말하는 것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다만 오늘을 살고 있을 뿐, 내가 몇 살이 되려고 몇 살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늘 사회자가 하는 멘트 중 하나가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십니까?"이다.
지금 이 나이가 어때서?
나는 미국 유학 시절부터 방송에 나오는 오늘까지 계속 미디어에 노출이 되어 있다. 과분하게도 국민 영어 선생님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보통 남자가 대학원에 다니는 나이와 방송에 나온 나이를 얼추 계산해 보면 내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이로 살지 않는다. 나이는 현재의 나를 설명하는 데 아무런 상관 요소가 없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목표가 자꾸만 생긴다. 내 컴퓨터에는 가까운 미래, 먼 미래에 반드시 하고자 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올해 88세의 이케아의 창업주가 좋은 예이다. 그는 경영권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 두었지만 여전히 회사의 고문으로서 많은 것을 관여하고 있다. 나이로만 보자면 은퇴한 지 수십 년이 지나 흔들의자에서 무릎 담요나 덮고 있어야 어울리겠지만 아직도 열정적으로 이케아의 미래를 일구고 있다. 여전히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비행기를 탈 때에는 이코노미 석에 앉는다는 그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농담 같은 진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죽을 시간도 없다."
그는 10분은 무척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88세의 나이에도 10분 간격으로 배치된 빡빡한 일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여기에서도 나이에 집착하면 '88세의 할아버지가 무척 건강하시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이를 거둬들이고 생각하면 필생의 사업을 일구려는 집념에 찬 한 남자의 열정적인 성공기가 먼저 보일 것이다.
나이는 내가 태어나 몇 해째 되었는지 알게 하는 시간의 개념일 뿐이다. 우스갯소리로 생일날 케이크에 꽂을 초의 수를 정하려고 기억하는 숫자일 뿐이다. 외국에서는 이마저도 상관없이 꽂기도 한다. 나이가 나의 경계를 정해서는 안 된다. 나이가 내 행동의 반경을 정해서도 안 된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위해 충실히 노력하면 그뿐이다. 나잇값을 고려할 것도, 나이에 걸맞은 행동인가 아닌가도 생각할 필요도 없다.
공중도덕을 해하거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 나이에 영어 공부를 시작해도 될까요?"
"이 나이에 결혼도 못했는데 괜찮을까요?"
"이 나이에 직장을 옮기고 싶은데 어쩌죠?"
큰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중이라면 나이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 원한다면 하면 된다. 몇 살의 당신이 아닌, 목표가 분명한 당신이 원하면 하는 것이다.
결국, 좋은 사람이 성공한다_ 민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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