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동발달학과 매리언 울프 교수는 [책 읽는 뇌]에서 "독서가 뇌에 가장 훌륭한 음식인 이유는 풍성한 자극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자를 이해하고 상징을 해석하는 측두엽, 상황을 파악하고 활자를 시각으로 상상하는 전두엽, 감정을 느끼고 표상하는 변연계 등 독서의 흔적이 남지 않는 영역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매리언 울프는 또한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불과 수천 년 전에 발명한 것이며, 그러한 독서가 인간의 인지 발달을 바꾸어 놓았다고 피력하고 있다. 독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며 독서를 하는 동안 자의식을 버리고 다른 사람, 다른 시대, 다른 문화의 의식으로 넘어가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언급했다.

매리언 울프가 '독서는 인간의 발명품'이라고 말한 것처럼 '스마트폰도 인간의 발명품'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에 인간의 뇌가 장시간 노출되면 책을 읽을 때와는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일본 도호쿠대학 의학부 가와시마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언어 지능이 저하되고 동작성 지능 및 두뇌 전체 지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아침 독서 시간, 아이들 손에는 책이 쥐어져 있지만 책장만 건성건성 넘기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독서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게임)와 무엇이 다를까?

고전읽기의 장점은 아이로 하여금 책의 재미를 느끼게 해 진정한 독서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최대 경쟁자인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게임)와는 전혀 다른 즐거움으로, 다시금 책에 빠져들게 한다. 무엇보다 고전읽기는 아이의 두뇌를 바꾼다. 따라서 엄청난 학습 효과가 덤으로 주어진다. 고전읽기를 통해 향상된 어휘력과 사고력은 물론 집중력이 자연스럽게 학습효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송재환 교사가 집필한 [초등 고전읽기 혁명](글담 출판사)에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한 대목이 나온다.

고전을 읽으면 사고력이 발달한다. 논리적 구조가 탄탄한 글을 읽는 사이 자연스럽게 논리 구조를 배우게 되며, 내용을 계속 되새김질하며 읽는 사이 사고력이 발달하는 것이다. 사고력이 높은 사람은 처음 보는 문제도 해결법을 찾아내며,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지능과도 많은 상관관계가 있는데, 사고력을 키우면 지능도 함께 향상된다.

이처럼 고전은 사고력을 발달시켜 학습 능력을 높여 준다. 작년에는 5학년 아이들과 인성 고전읽기를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망설였다. 교실이든 도서관이든 손만 뻗으면 책이 널려 있는데 고전읽기를 위해 굳이 다른 책을 사야 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 듯했다. 게다가 학원만으로도 벅차고 피곤한데 고전까지 읽게 되면 더 힘들고 귀찮아지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학습 효과만이 목표였다면 오히려 학습 만화가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학습을 위해 고전을 권하는 것이 아니었다. 황폐해진 아이들의 마음이 지금보다 풍요롭고 단단해지기를,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기를, 더 나아가 깊이 있는 읽기를 통해 사고력과 통찰력을 키우기를 바랐다. 이것이 결국에는 지금 당장 문제를 하나 더 풀고 지식 하나를 더 외우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더 가치 있고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보물창고)를 아이들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시 조선 시대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에 대해 두루 알게 되는 것은 물론 당시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약용이 둘째 형님에게 쓴 편지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하나라의 속담에 "무리 지어 다니면서 양식을 먹어 치워, 굶주린 사람은 먹지 못하고 힘든 사람은 쉬지 못한다. 백성들이 서로 흘겨보고 비방하는데도 왕의 명령을 어기고 백성을 학대한다. 그리하여 음식을 물흐르듯 낭비하고, 이곳저곳을 놀러 다니며 주색에 빠짐으로써 제후에게 근심을 끼친다." 라고 했으니, 지금의 관찰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내용을 통해 조선 시대 관찰사라는 직책의 사람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 백성들이 고통을 겪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관찰사는 각 도에 파견되어 지방 통치의 책임을 맡았던 최고의 지방장관이었다. 이렇듯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를 통해 조선 시대 유배 제도와 부패한 권력가의 횡포는 물론 백성들의 피폐한 생활상도 알 수 있다. 아래는 이 책을 읽고 쓴 아이의 글이다.

정약용은 조선 시대 실학자로 정조를 도와 수많은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는 1789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대과에 급제하여 정조의 개혁정치를 적극 도왔다. 규장각에서 중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정조가 화성에 행차할 때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수원 화성을 설계했다. 나도 작년에 수원 화성에 가본 적이 있는데 정약용이 설계한 것인 줄 몰랐다.

이런 훌륭한 학자가 모함을 받아 강진에 유배되었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유배지에서도 당시 지방 통치 책임을 진 관찰사의 부패상을 꾸짖고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는 편지를 보면서 정약용의 훌륭한 정신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지방관은 언제나 청렴결백하고, 명예와 재물을 탐내지 않으며, 절대로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백성에게 봉사하고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지방 관리의 임무"라고 밝히며 [목민심서]를 지었다. 다음에는 [목민심서]를 읽고 싶다.

마침 5학년 때 아이들은 역사를 배운다. 오늘날과 너무 다른 과거의 이야기인지라 아이들에게 낯설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책이지만, 교과 과정과 맞물려 긍정적 시너지를 이끌 수 있었다. 생생한 과거를 엿보는 기회이자 낯선 어휘들에 익숙해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고전이 주는 학습 효과는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동안 밝혀진 학습 효과를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집중력이 향상된다

고전읽기를 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집중력이다. 건성건성 읽거나 오래 집중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고전을 읽고부터 집중력이 높아진다. 고전은 생각을 깊이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많다. 사건이나 인물들 간의 갈등을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은 까닭에 자신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집중력은 공부할 때도 이어져 학습 능력 향상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서술형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국어는 도구 교과이기에 국어를 잘하지 못하면 다른 과목도 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출제 유형이 바뀌면서 배점이 높은 서술형 문제가 시험 결과를 좌우하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문장을 잘 이해해야 풀 수 있다.

고전을 읽으면 사고력이 깊어지고 다양한 어휘를 접할 수 있어 어휘력이 향상된다. 고전에 나오는 한자어나 고어는 새로운 언어 자극이 되어 어휘 세계를 넓혀 준다. 자연히 국어 능력이 좋아져 국어 점수가 높아진다.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고전을 읽은 아이들은 진학하면서 배우게 되는 고전을 미리 접하는 계기가 되어 언어 영역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논술과 토론 능력이 향상된다

논술과 토론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추세다. 이를 이야기할 때 독서를 빼놓을 수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 보고, 많이 써보고, 많이 대화해 봐야 늘기 때문이다. 논술은 단지 글쓰기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삶 속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고전에는 위대한 저자들의 생각이 담겨 있다. 고전을 읽으면서 그들의 사고 과정을 따라갈 수 있으며,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글이 주는 감동은 읽는 이에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싶게 만든다. 앞에서 이야기한 사례를 통해서도 고전을 읽은 뒤 토론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고전을 읽다 보면 논설과 토론 능력이 향상된다.

고전읽기를 진행하다 보면 아이들의 관심 분야가 바뀌거나 확대되는 것을 보곤 한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위인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위인전을 읽다가 과학 분야로 관심이 옮겨 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폭넓은 독서를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를 접하게 된다. 고전에는 아이가 평상시 접할 수 없는 여러 상황들과 주제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이 아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는 모양이다. 이는 두뇌의 힘을 강화시키고 배경지식을 확장시켜, 아이들이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초등인성 고전읽기의 힘_ 이화자

by 미스터신 2017. 7. 29. 17:05

 

조선조 최고의 학자, 한국 최대의 실학자,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던 다산 정약용은 필자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다. 책을 통해 필자는 그에게서 배우고 또 배웠다. 평생 배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전 독서법이다.

 

오래 전 위인들의 삶을 책을 통해 접하고, 책을 통해 매일 배우고, 가르침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법은 학생이 스승에게 매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대로 그 배움대로 집에 와서 실천하고, 사회에 나가서 행동하고, 직장에서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나은 고전 독서법이 어디 있을까?

 

바로 이런 고전 독서법이 결국 조선조 최고의 학자인 정약용이 실천한 실학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고전은 실학자처럼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방대한 글을 남긴 조선조 최고의 학자이며, 삶과 학문이 나누어지지 않았던 위대한 학자였다. 그래서 필자가 존경하고 스승으로 삼는 것이다. 그 당시 정약용을 억압하고, 유배를 보낸 세도가들은 이름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정약용은 자자손손 오래도록 이름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다산은 그의 든든한 지지자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마흔의 나이에 정계에서 쫓겨나게 되고,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말이 유배 생활이지 가난과 결핍으로 점철된 혹독한 세월이다. 물리적인 환경보다 더 혹독한 것은 정신적인 환경일 것이다.

 

시쳇말로 잘 나가다가 그만 망하게 되고, 주 활동무대인 세상에서 쫓겨나 시골로 귀양을 가게 되면, 더 이상 삶의 희망도, 미련도, 열정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배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3년 안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갑자기 병이 나고, 심지어 죽는 사람도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다. 매일 출근해서 갈 곳이 있고, 자신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해 주고, 강하게 해 주지만, 정년 퇴직을 하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이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심리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유배지로 귀양을 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이다. 건강만 챙겨도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다산 선생은 달랐다.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그는 마치 유배 생활을 40세부터 18년 동안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할 정도로 유배 생활이 그의 인생의 최고의 전성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 관리와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가 다산 정약용 선생을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토록 가난하고 결핍되고 혹독한 세월을 그가 인생의 최고 전성기로 반전시킬 수 있었던 힘은 결국 붓과 책이었다.

 

그가 독서와 집필을 통해 귀양을 오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책을 읽고, 방대한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유배 생활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1년 365일 그에게 허락된 것은 유배지에서의 기거일 뿐이다. 여행도, 휴가도, 취미 생활도, 친구나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다산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다산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 두고, 그의 놀라운 독서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고전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다산처럼 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산이 강조한 독서법은 먼저 바탕을 세우는 독서법이다.

 

"독서에는 반드시 바탕을 먼저 세워야 한다. 무엇을 바탕이라고 하는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할 수 없으니, 학문에 뜻을 두려면 반드시 바탕을 세워야 한다. 무엇을 바탕이라고 하는가. 효도와 공경이 바로 그것이다. 모름지기 효도와 공경에 먼저 힘써 바탕을 세운다면 학문은 저절로 몸에 베게 된다. 학문이 몸에 배면 독서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효도와 공경이라는 바탕을 세우면, 학문이 몸에 배게 되고, 독서는 저절로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효도와 공경은 인간의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마음이다. 즉, 독서를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 필자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3년 동안 다양한 독서법으로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하면서 처음 6개월 동안은 정말 바탕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 낭비식의 독서를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6개월 동안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지만, 그것은 모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독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부터 점차 독서라는 것이 제대로 되기 시작했고, 점차 독서력의 엄청난 도약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6개월 전과 후의 차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바탕이다.

그 당시의 6개월 전에는 그저 마음 관리 없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6개월 이후부터 마음 관리를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6개월 후 부터는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순수한 열정, 순전한 마음으로 모든 이들을 공경하고,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비우고, 낮추는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독서의 기술도 달라졌다. 하지만 독서의 기술, 독서의 방법이 달라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독서를 하는 필자의 마음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산의 말처럼, 바탕을 세우자, 마음이 달라졌고, 마음이 달라지자, 독서의 방법과 기술도 달라졌다. 그러자 알게 모르게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과 점차 닮아졌고, 학문하는 이유와 세상에 대한 세계관과 철학관이 다산을 닮아가게 되었다.

 

그러자 다산처럼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500권을 집필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필자도 다산처럼 닮아지게 되자, 2년 동안 45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집필하는 것은 출간하는 것보다 쉽다. 출간을 하기 위해서는 집필된 원고를 다듬고, 편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얼추 다산 선생의 집필 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다산 선생의 독서력이 필자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그의 다른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통 그는 백 권의 책을 열흘 만에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필자는 보통 하루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읽는다기 보다는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산처럼 읽고, 쓰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런데 평범했던 필자가 위대한 조선조 최고의 학자와 비슷하게 닮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전 독서의 위력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이 고전 독서의 힘인 것이다.

 

자기계발서만 읽었다면, 벤츠를 사고, 부자가 되고, 성공했을 것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부산물이 아닐까?

 

인문 고전을 읽었기 때문에 필자는 다산 정약용, 세종대왕처럼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 분들의 발꿈치도 쫓아가지 못했지만, 평생 노력하고 독서에 매진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산이 쓴 많은 책들 중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쓴 책들도 있다. [소학주관]이라는 책이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을 보면, 독서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지금 내가 슬슬주 1만 섬을 얻었다 하더라도 꿰미로 꿰지 않으면 어디 간들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요즘 학문하는 방법도 이와 마찬가지다. 구경과 구류 백가에 나오는 수많은 책의 이름과 항목들이 모두 슬슬주다. 이것을 꿰미로 꿰지 않는다면 이 또한 얻는대로 곧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정약용 선생은 독서를 해도, 반드시 정리하고 요약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여야 자신의 것으로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필자가 쓴 독서법 책인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초서 독서법과 의식 독서법을 합하여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필자는 명명한 바 있다. 여기서 초서 독서법은 책을 눈으로만 보면 읽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는 문제점을 개선한 독서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 새롭게 생긴 생각들과 주견들을 노트에 정리하고, 필기하고, 요약하면서 책을 읽는 방법이 바로 초서 독서법이다. 여기에 의식 독서법은 책을 읽을 때 마음을 먼저 집중하고, 마음을 관리하면서 책을 읽는 독서법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바탕을 먼저 세우고 독서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필자가 쓴 세 번째 독서법 책인 '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독서법을 그대로 재현시킨 것이고, 그것을 현대식으로 바꾸어, 현대의 독자들이 자신의 독서력이 초급이든, 중급이든, 고급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체적으로 실제 사례를 들어 풀어 써 준 현대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을 읽으면서 눈으로만 읽으려고 하는 것은 자만이다. 왜냐하면 눈으로만 읽어서는 절대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산 선생의 말대로 얻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반드시 꿰어야만 가치 있는 보석이 되는 법이다. 고전 독서도 바로 이와 같다. 한두 번 눈으로만 읽고 그 책의 진짜 가치를 다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법으로 지금까지 그나마 유행했던 것이 토론 독서법인 것이다. 하지만 토론 독서법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 토론해 줄 친구들, 사람들이 필요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양의 고전 독서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 독서법보다는 초서 독서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이다. 필자가 토론 독서법보다 초서 독서법을 추천하는 이유는 또 있다.

 

토론 독서법은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생활 방식이 다른 것이 너무 많다. 생활 방식만 다른 것이 아니다. 당연히 지역적인 환경과 생활환경의 차이로 사고 방식도 다르다. 그런 것들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영향을 주어, 결국 DNA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세계 그 어떤 나라 백성들보다 음주가무에 강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K-POP이 전 세계를 사로잡는 이유가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DNA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양인과 서양인들의 가장 큰 차이는 사고 방식과 사고 프레임의 차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이런 차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문과 책들을 통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차이점 중의 하나가 서양인들은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할 때 사고력이 향상된다는 것과 이와 반대로, 동양인들은 혼자서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글씨를 쓸 때 사고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식 수업, 토론식 독서법은 동양인들보다는 서양인들에게 최적화된 독서법이고 수업이다.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기 보다는 동양인들에게 맞는 독서법을 실천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필자가 교육학자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필자는 교육학 학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방대한 책을 통한 지식과 이론적 근거 때문만이 아니다.

 

실제로 독서력의 도약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초서 독서법을 통해 가장 큰 도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필자가 혼자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토론 독서법보다 초서 독서법을 강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세종대왕, 모택동, 다산 선생, 정조, 박지원 등 많은 위인들이 초서를 통해, 즉 붓을 들고 쓰는 독서법을 통해 위대한 도약을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모택동이 위대한 중국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남다른 독서법 때문이었다. 그가 남긴 위대한 말을 보면 곧 알게 된다.

 

"붓을 들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모택동은 누구보다도 더 붓을 들고 쓰면서 독서를 하는 사람이었다. 세종대왕은 또 어떤가? 백 번 읽고 백 번 쓰는 독서법인 백독백습을 실천했고, 항상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결론은 이것이다. 고전은 다산처럼 읽어라는 것이다. 다산은 초서 독서법으로 고전을 구슬처럼 꿰었다. 그래서 고전의 가치를 극대화 시킬 줄 알았던 위대한 학자였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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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5. 8. 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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