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알려진 대로 대중들 사이에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대학교수 얼 쇼리스의 도전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5년 가을, 얼 쇼리스는 거리의 청소년, 노숙자, 난민, 에이즈에 걸린 싱글맘 등 20여 명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인문학 강의를 시작합니다. 학교에 올 차비도 없는 학생들에게 차비를 나누어 주면서 철학, 예술, 논리, 시, 역사를 가르치는 인문학 강의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이런 행동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비웃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학생들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토론하고,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읽고, 불레이크의 시를 낭송한다는 게 믿어지지도 않았고 또 의심스러웠던 거지요.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웬 인문학? 더구나 직업교육이라면 모를까 고전교육이라니?

 

하지만 얼 쇼리스가 보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저 재활교육이나 직업에 관한 공부만 시켜주면 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어설픈 동정심에 불과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왜 자신들이 가난한지 의문을 품게 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통찰하게 함으로써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여러분은 이제껏 속아왔어요. 부자들은 인문학을 배웁니다.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외부의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칠 때 심사숙고해서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공부입니다. 저는 인문학이 우리가 '정치적'이 되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은 잘 살기 위해, 힘을 얻기 위해 정치를 이용합니다. 이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데 필요한 효과적인 방법을 더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부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에게서, 그리고 사람들이 소유한 것들에게서 나오는 진정한 힘, 합법적인 힘을 갖고자 한다면 정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인문학이 도와줄 것입니다."

 

언뜻 봐서는 황당해 보이는 얼 쇼리스의 시도로 첫 수강생의 31명 중 17명이 끝까지 수업에 참여하여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희망의 인문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우리나라에서도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노숙자, 빈민, 교도소 재소자 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희망의 인문학 강의가 그곳을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은 인문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지적 자산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독서 능력은 문제해결력이요, 나아가 생존전략입니다.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 지식은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냉정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읽기는 싫든 좋든 살아가기 위한 힘입니다. 읽기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힘입니다.

 

배우는 능력이 곧 생존력이다

 

왜 인문독서가 살아가는 힘의 바탕이 되는지를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진로전문가들은 앞으로 100세까지 산다고 할 때 직업을 많게는 열 번 정도 바꿀 수 있다고 예견합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한두 가지 기술로 한두 개 직업만으로 100년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사회 변화에 맞추어야 하고, 개인의 능력이나 처지에도 맞추어야 하겠지요.

 

이럴 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일까요? 바로 배우는 능력입니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싫든 좋든 평생을 배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줄 알았더니 부모가 되어서도 배워야 하고, 직장을 바꿀 때도 배워야 하고, 나이 들어 노인복지관에 가서 취미생활을 하려 해도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합니다. 직장 다닐 때도 직업에 필요한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종교생활을 하려 해도 그냥 믿음만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교리도 배우고 전례도 배워야 합니다.

 

'아웃라이어'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말콤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합니다.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면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타고난 재능이나 적성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법칙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헴브릭과 마인츠라는 학자가 실험해본 바에 따르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들은 57명의 피아니스트가 일정한 수준의 연주 실력을 갖출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260시간에서 3만 1,000시간까지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짧은 기간 안에 도달했고, 어떤 사람은 오래 걸렸습니다. 이런 차이가 단지 재능이나 적성 때문일까요?

 

전문가들은 이 차이의 원인을 '작업 기억력'으로 보았습니다. 작업 기억력이란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 즉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입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이 작업 기억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업 기억력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기존에 저장된 장기기억 창고에서 비슷한 것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정보와 연결지은 후 그것을 이해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의 여러 사물들과 언어를 인지한 후 잊어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장기기억으로 저장시킬 때 학습이 되고 사고력이 발달하지요.

 

그러므로 장기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가 많을수록, 또 작업 기억력이 활발하게 작동될수록 새로운 정보를 빨리 습득하고 익히게 되겠지요. 아는 게 많아야 새로운 것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작업 기억력의 활성화는 독서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서 배경지식이 많으면 새로운 것들을 잘 배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한 안철수씨가 어려서 바둑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고 나서 바둑을 배웠더니 잘 배울 수 있었다는 것도 이런 이치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독서력이 높은 사람은 새로운 것을 습득할 때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한 말들을 정리해보면, 살아가는 생존력을 갖추기 위해 배우는 능력이 중요한데, 그것은 작업 기억력의 활성화와 관련이 깊으며, 작업 기억력은 곧 독서력과 직결되므로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 배우는 능력을 기르는 기초가 됩니다.

 

독서의 마지막 단계, 성찰하기

 

인문독서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두 번째로 꼭 필요한 능력은 성찰하는 능력입니다. 성찰하는 능력이 왜 중요할까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모르면 그 일을 오랫동안 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일을 끈기 있게 하는 원동력은 그 일에 대한 의지와 신념이 얼마나 있는가와 관련이 깊습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하지만 신념은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의 일생을 보면 그들이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점점 더 강해져갔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요즘 방송이나 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다중지능유형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어, 논리수학, 신체운동, 시공간, 음악, 대인관계, 자기성찰, 자연 등 여덟 가지 중에 한두 가지의 비범한 지능을 갖고 있으므로 이것을 발달시키는 것이 좋다는 이론입니다. 다중지능 전문가들은 이 여덟 가지 중에 타고나지 않았어도 반드시 노력을 해서라도 키워야 하는 게 두 가지 지능유형이라고 주장합니다. 바로 대인관계와 자기성찰 지능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어도 이 두 가지 유형을 발달시키지 못하면 재능의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자기성찰 지능은 독서와 관련이 많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성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엄밀하게 말하면 책을 읽는다고 저절로 성찰을 하는 게 아니라 성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의도, 주제를 이해한 후 그 주제를 자기 삶에 적용하여 반추해보는 것이 성찰입니다. 또 작가의 생각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성찰입니다.

 

책을 읽고 재미있다는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되새기고 분석하며 다른 것과 연결지어 생각하고 내 삶에 적용하다 보면 그 책이 내 삶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 과정이 곧 성찰하는 것입니다.

 

초등 인문독서의 기적_ 임성미

by 미스터신 2017. 11. 9. 1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