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편지 | 김아영

 

지난 5월, 어김없이 오빠의 생일이 다가왔다. 그동안 오빠 생일에 축하한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오빠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용돈을 받으면 바로 다 써 버리는 나쁜 습관 때문에 돈이 만 원밖에 없었던 것이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생일 선물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뭘 살까 고민하며 나가봤지만 역시 그 돈으로 큰 선물을 사는 건 무리였다. 평소에 돈을 잘 모아 둘걸, 하는 생각만이 계속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결국 오빠의 생일 선물로 고른 것은 비타민 편지와 볼 펜 두 자루였다. 비타민 편지는 알약처럼 생긴 캡슐을 열면 작은 쪽지가 있는데 거기에 글을 쓰는 것이다. 오빠도 즐거워하며 볼 거라 생각하고 그것을 샀다. 집에 돌아와 비타민 편지통에 담긴 20개쯤 되는 캡슐을 열고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간지러운 응원의 말들을 적었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았지?ㅠㅠ 힘내! ^^" 라든가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되니까! 그때까지 파이팅!" 같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로 알약 20여 개를 다 채웠다. 약통에 "힘들 때마다 한 알씩" 이라는 말을 적어 펜과 함께 오빠한테 줬더니 뜻밖의 선물을 받은 오빠는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맙다고 했다.

 

얼마 지난 뒤 오빠 방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꽉 차 있는 비타민 편지통이었다. 하나도 안 봤다는 생각에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펼쳐 보고 다시 넣어 두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금방 잊어버렸다. 시험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며칠 전, 오랜만에 오빠의 방에 들어가 보니 비타민 편지통이 반쯤 비어 있었다. 시험이 점점 다가오자 힘이 든 오빠가 편지를 한 알씩 꺼내 읽으며 힘을 냈을 거라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오빠의 행동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비타민 편지를 입안으로 털어 놓고 물과 함께 넘기는 모습을........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까 오빠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갑자기 그런 오빠가 무척 귀여워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당황한 오빠가 자꾸 왜냐고 물어봤지만 터진 웃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가까스로 웃음을 멈추고 오빠에게 사실을 말해 주자 오빠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우리 둘은 그냥 오랫동안 웃었다.

 

이제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빠는 부쩍 긴장하는 것 같다. 가끔은 저녁에 내 방으로 와서 내가 적은 쪽지를 보이며 비웃고 장난도 치지만 시험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남은 비타민은 몇 개 안 되지만 오빠가 그거라도 보고 힘을 내서 시험을 잘 치르면 좋겠다.

 

비타민 캡슐 편지로 생긴 재미난 오해와 수험생 오빠에 대한 응원을 담은 학생 수필로, "청소년 문학" 2010년 겨울 호(나라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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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5. 3. 17. 21:21

 

괜찮아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제기동에 있는 작은 한옥이었다. 골목 안에는 고만고만한 한옥 여섯 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 집에 아이가 네댓은 되었으므로 골목길 안에만도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줄잡아 열 명이 넘었다. 학교가 파할 때쯤 되면 골목은 시끌벅적,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 책만 읽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래서 방과 후 골목길에 아이들이 모일 때쯤이면 대문 앞 계단에 작은 방석을 깔고 나를 거기에 앉히셨다. 아이들이 노는 걸 구경이라도 하라는 뜻이었다.

 

딱히 놀이 기구가 없던 그때, 친구들은 대부분 술래잡기, 사방치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등을 하고 놀았지만 나는 공기놀이 외에는 그 어떤 놀이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골목 안 친구들은 나를 위해 꼭 무언가 역할을 만들어 주었다. 고무줄놀이나 달리기를 하면 내게 심판을 시키거나 신발주머니와 책가방을 맡겼다. 그뿐인가. 술래잡기를 할 때는 한곳에 앉아 있어야 하는 내가 답답해할까 봐 어디에 숨을지 미리 말해 주고 숨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 집은 골목에서 중앙이 아니라 모퉁이 쪽에 있었는데 내가 앉아 있는 계단 앞이 늘 친구들의 놀이 무대였다. 놀이에 참여하지 못해도 난 전혀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내가 소외감을 느낄까 봐 친구들이 배려해 준 것이었다.

 

그 골목길에서의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하루는 우리 반이 좀 일찍 끝나서 나 혼자 집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골목을 지나던 깨엿 장수가 있었다. 그 아저씨는 가위를 쩔렁이며, 목발을 옆에 두고 대문 앞에 앉아 있는 나를 흘낏 보고는 그냥 지나쳐 갔다. 그러더니 리어카를 두고 다시 돌아와 내게 깨엿 두 개를 내밀었다. 순간 아저씨와 내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주 잠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 몰랐다. 돈 없이 깨엿을 공짜로 받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목발을 짚고 살아도 괜찮다는 말인지....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그날 마음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라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고 "괜찮아." 라는 말처럼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래전의 학교 친구를 찾아 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한번은 어떤 가수가 나와서 초등학교 때 친구를 찾았는데, 함께 축구하던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허리가 36인치일 정도로 뚱뚱한 친구가 있었는데, 뚱뚱해서 잘 뛰지 못한다고 다른 친구들이 축구팀에 끼워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그가 나서서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얜 골키퍼를 시키면 우리 함께 놀 수 있잖아!"

 

그래서 그 친구는 골키퍼를 맡아 함께 축구를 했고,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 가수의 따뜻한 말과 마음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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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5. 3. 17. 21:03

 

십대에 만난 나의 돈보스코

 

나의 십대는 얼어붙은 겨울이였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학교마저 압류당한 나는 가장 가난한 소녀였다.

그 꽁꽁 언 시절에 그분을 만났다.

 

책가방 없는 소녀는

하루하루 공처럼 뒹굴다

중졸 이력서를 들고

을지로에 있는 출판사에 취직했다.

 

소녀는

'사환'으로 돈을 벌면서

얇은 지폐뭉치에 꿈을 눌러버렸다.

쉽게 살고 싶었다.

 

1년이 흘렀다.

그분이 공채 합격 사원으로 들어왔다.

'김양'이라 부르는 다른 어른들과 달리

소녀를 '인숙씨'라 불러줄 때

어색했으나 존중받는 것 같았다.

 

퇴근 길, 어느 날

그분이 막내뻘 소녀를

조용한 찻집에 데리고 가

준비한 말을 심어주었다.

 

"여기서 멈추기엔 아까운 나이에요.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말아요."

 

처음이자 마지막이던 짧은 몇 마디

소녀는 픽, 웃었다. 당신이 뭘 안다고.....

하지만 나쁘게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분이 사직서를 썼을 때

소녀는 알고 있었다.

좋은 곳과 원하는 곳은 다르다던

그분은 늦었으나 꿈을 향해 떠났다.

 

나는 사람들 이름을 잘 기억 못한다.

그러나 그분의 이름 석 자는

죽을 때까지 못 잊는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알고 있기에

 

그분

가난한 소녀의 이름을 불러주고

존중해주고

포기한 꿈을 흔들어 깨운 그분은

십대에 만난 나의 돈보스코였다.

 

출처 : 너는 늦게 피는 꽃이다 ㅣ김인숙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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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5. 3. 17.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