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를 나오자마자 빵집에 가서 찾았던 것이 바로 이색팥빵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당시 천자봉 꼭대기에서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 이런 종류의 빵을 먹곤 있지만 그때 그 맛이 전혀 아니다. 왜일까?

 

훈련을 받던 당시에는 도통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특히 과자 같이 단 음식은 꿈도 못 꿨다. 사실 군에 있을 때는 이색팥빵이 아니라 건빵조차도 입에서 살살 녹았다. 졸병 시절, 나는 몰래 건빵을 숨겨 놓고 선임들이 안 볼 때 하나씩 꺼내 먹었다. 걸리면 큰 사단이 일어나는 것을 알면서도 모험을 했다. 그만큼 맛있었다.

 

세상의 모든 쾌락은 상대적이다. 만약 사탕이나 초콜릿을 매일 먹던 상황이었다면 이색팥빵이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민간인이 된 지금 나는 배가 고프지도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단 것을 먹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당시 이색팥빵의 맛을 느끼기란 불가능하다.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 반찬이 없어도 맛있는데, 배가 부르면 그 어떤 진수성찬이라도 별로 맛이 없는 것과 같다.

 

어디 음식뿐일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하루 종일 서 있을 땐 의자에 앉기만 해도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너무나 편하다. 하다못해 군에 있을 때 이전엔 그토록 힘들었던 공부가 하고 싶었다. 당시 일기장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 밖에 나가면 원없이 공부를 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바로 상대성 이론 때문이다. 훈련이 너무 힘드니 상대적으로 공부가 하고 싶어진 것이다. 고된 훈련에 비하면 차라리 공부는 너무 편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지옥 같은 훈련을 뒤로 하고 책을 볼 수 있다면 짜릿하고 행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훈련 중에는 책이란 존재를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혹 있더라도 절대 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책은 아니더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에게 영어문장을 몇 개 써서 보내 달라고 했다. 그것을 전투복 앞주머니에 넣어 놓고 틈만 나면 몰래몰래 보며 공부했다.

 

이처럼 모든 일은 상대적이다. 공부보다 상대적으로 더 힘든 일을 경험함으로써 공부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공부의 재미를 느끼려면 유혹거리들을 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시험기간만 되면 평소 거들떠도 안 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재미없었던 한국 문학 단편선집도 그렇게 흥미진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20권짜리 대하소설 '토지'도 너무 읽고 싶어졌다. 하다못해 광고 전단지도 교과서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아 읽고 싶어 안달이 났다. 실제로 읽어 보면 아주 재미있었다.

 

왜 그럴까? 이 또한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시험 공부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책 읽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험이 끝나면? 더 이상 책 읽는 게 재미있지 않다. 재미있게 놀 거리가 지천인데.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이처럼 재미도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게임은 상대적으로 공부보다 재미있다. 사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공부는 원래 재미있는 것이다. 공부를 통해 새로운 것을 알아 나가고, 세상 원리를 터득할 때의 재미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럼에도 공부보다 재미있고 짜릿한 게임을 하면 공부가 상대적으로 재미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공부의 재미를 느끼려면 반드시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 유혹거리를 멀리해야만 한다.

 

미쳐야 공부다_ 강성태

by 미스터신 2016. 2. 21. 17:08

 

당부를 하나 하겠다. 앞에서 공부에 방해가 되는 유혹거리라고 적은 것들을 언제 끊을까? 그건 바로 지금이다. 아무리 늦어도 오늘이다. 왜냐? 오늘 바로 실행하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자극을 받아 바로 실천에 옮길 수는 있지만 오늘이 지나면 다시 똑같은 일상이 돌아올 것이다. 변할 수 있는 기회는 매일 찾아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부디 여러분에게 다가온 인생일대의 기회를 놓치지 마라.

 

"강성태 공신님, 다음부터 열심히 할게요."

 

난 이 말을 절대 믿지 않는다. 다음이라니.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오늘 변하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아무 일도 없는 내일 갑자기 변화할 수 있는가? 그럴 리가 없다. 장담하건대, 오늘 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일도 못 한다. 결국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우다 어느 순간부터 후회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 후회를 뒤로 한 채 쓸쓸이 삶을 마감한다.

 

왜 수험생 대부분이 자신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내는 것인가? 이유는 정말 간단한다. 이들 모두 알고 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문제는 생각만 하고 지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대로 머물러 있다.

 

'고3이 되면 그때부터 열심히 해야지' 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제법 많다. 마음뿐이다. 이런 학생들은 막상 고3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방학이 되면 정말 역전을 해야지' 마음먹지만 역시 방학이 되면 놀기 바쁘다. 수능 100일 전이 되어도 '아, 해야 하는데' 애만 태운다. 그러다 '수능 10일 전'이 되면 '이제 나도 모르겠다'며 맥을 놓는다.

 

드디어 수능 전날이 되고 수능시험을 치르고 실패하여 울고 재수하고 또 미루다 삼수하고 마침내 꿈을 포기하는 것이다. 실패하는 수험생 대부분이 이렇게 변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있다. 마치 이대로 눈앞에 댐이 무너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대입 수험생에게 있어 합격과 불합격은 언제 결판이 날까? 합격자 발표 날일까? 수능 날일까? 아니면 면접 날? 모두 아니다. 바로 오늘 결정 난다. 합격자 발표 날은 대학에서 발표만 하는 것이지 한참 전에 이미 결과는 나온다. 수능 날? 그날은 시험날일 뿐이다. 그날 공부한 걸로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그 시험을 위한 공부는 언제 하는가? 오늘, 지금이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바로 이 순간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된다. 지금 공부한 내용으로 결국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지금'들이 모여 실력이 된다. 과거도 미래도 우리가 조정할 수 없다. 노력으로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우리 손아귀 안에 있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오늘 하는 이 공부와 행동이 곧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장 해라. 그러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신의 합격과 불합격을 판단해 보라. 합격인가? 불합격인가?

 

미쳐야 공부다_ 강성태

by 미스터신 2016. 2. 21. 16:52

 

말은 늘 쉽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놀지 말고 일하라 한다. 부자들은 돈을 쓰지 말고 저축하라고 한다. 나도 공부를 잘하려면 유혹거리를 끊으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간단한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간단한 말을 실천하지 못한다.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못 한다. 지속적으로 실천하기가 어렵다.

 

나 또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절제하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무기력했고 답답했다. 처음 며칠은 그럭저럭 버텼다. 공부하겠다고 다른 것들은 포기하겠다고 마음먹은 효과가 좀 있었다. 그러나 2주가 거의 다 되었을 때부터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고 나니까 뭔가 달라졌다. 그렇게 강렬했던 유혹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다지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한 달이 넘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르자 나중에는 왜 그렇게 빠져들었던 것인지 생각도 잘 나지 않았다. 신기했다.

 

동시에 참고 공부한 성과가 크진 않았지만 아주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시간 자체가 늘었으니 공부한 양도 전보다 늘어난 것이다. 기뻤다.

 

'이거 별거 아닌데? 안 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매달렸을까?'

 

그 누구보다도 유혹에 약했던 내가 어떻게 절제를 하고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비결이 있었다. 바로 한 번에 완전히 끊었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조금씩 줄이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유혹거리를 조금씩 끊어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나고 또 하게 된다. 게임을 예로 들어 보자. 학생들 중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그 보상으로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실제로 열심히 공부한 다음 게임을 한다. 나 또한 그랬던 적이 많은데, 게임을 할 때마다 그대로 무너졌다. 게임을 하다 보면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칼같이 끊지 못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게임을 계속하기 일쑤였고, 단호하게 게임을 중지하고 공부를 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된다.

 

전에는 숱하게 유혹거리를 끊겠다고 선언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조금씩 줄여 나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조금씩 끊기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하다면 유혹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길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유혹이 아니니까.

 

'딱 한 판만, 딱 한 개비만, 딱 한 잔만'

 

이런 이야기를 누가 가장 많이 할까? 바로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도박 중독 등 중독 환자들이다. 이미 중독되어 있다면 끊기가 더 어렵겠지만 금단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고통스럽더라도 단칼에 끊는 것이 결과적으론 가장 낫다.

 

이미 게임, 스마트폰, 인터넷 등에 중독되어 있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중독의 정도가 심할수록 고통도 크겠지만 딱 3주일까지만 참아 보길 바란다. 유혹의 노예였던 나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잊혔고, 3주가 지나자 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별로 들지 않았다. 나중엔 머릿속에서 아예 떠오르지가 않았다. 재차 강조하지만 한 번에, 완전히 끊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설프게 줄이려고 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줄이지 못했을 것이다.

 

내 경험상 학창 시절 유혹들은 'yes' 아니면 'no'밖에 없는 것 같다. 게임뿐 아니라 무언가를 끊겠다면 아예 끊어야 한다. 사람이라면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어 한다. '10분만 더', '1분만 더' 하고 싶다. 도박, 마약 중독과 다를 것이 없다. 대부분의 유혹들은 이미 우리가 지게 돼 있는 싸움이다. 아예 시비를 걸지 마라.

 

주변에 공대를 나와 게임 업계로 진출한 친구들이 많다. 돈도 많이 번다. 그 친구들이 게임을 만들면서 가장 관심을 갖는 화두가 무엇인지 아는가? 중독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정신 줄 놓고 자신들이 만든 게임에만 빠져들게 할지, 그래서 어떻게 돈을 쓰게 할지 심리학과 공학을 전공한 천재들이 밤낮으로 그것만 연구한다. 매년 게임회사들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게임회사에서 잘 나가던 나의 친구는 큰돈을 받고 좋은 조건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하고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게임 업계에서 일을 하는 것이 종종 죄책감이 들 때가 있었고, 이것보다 사회에 좀 더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게임은 훌륭한 콘텐츠 산업이고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수출품목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임만큼 유망한 분야도 드물지만 게임 업계에 감춰져 있는 이런 내막을 여러분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소중한 인생과 꿈을 버리고 멍하니 생각 없는 허수아비에게 돈을 바치는 노예가 되는 것을 나는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여러분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니까.

 

미쳐야 공부다_ 강성태

by 미스터신 2016. 2. 21. 16:38

 

지금 시작하십시오

내 뜰에 꽃을 피우고 싶으면

지금 뜰로 나가 나무를 심으십시오

내 뜰에 나무를 심지 않는 이상

당신은 언제나 꽃을 바라보는 사람일 뿐

꽃을 피우는 사람은 될 수 없으니까요

 

지금 시작하십시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시작하십시오

지금 그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그 일은 당신으로부터 날마다 멀어져

아무리 애써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지금 뿌리십시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지금 좋은 생각의 씨앗을 마음밭에 뿌리십시오

지금 뿌리지 않으면 내 마음밭에는 나쁜 생각의 잡초가 자라

나중에는 애써 좋은 생각의 씨앗을 뿌려도 싹조차 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나의 전공은 성공입니다_ 이창형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2. 9. 19:25

 

옛날에 나무 네 그루가 모여 살았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최고라고 뽐냈다. 첫 번째 나무가 자랑한다. "나는 단단하고 몸통이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최고급 가구를 만드는 목수들이 나를 좋아하지." 두 번째 나무는 "나는 아주 맛있는 열매를 많이 맺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나를 아주 좋아하지"라며 으쓱한다. 세 번째 나무가 이에 질세라 뽐낸다. "나는 아주 향기로운 예쁜 꽃들을 많이 맺기 때문에 귀부인들이 나를 아주 사랑하지."

 

구석에 쳐 박혀 있던 네 번째 나무는 아무 자랑도 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구불구불 자라고 껍질도 딱딱한 그 나무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저마다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를 말하던 나무들은 사람들에 의해 하나둘 베어졌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네 번째 나무만 덩그러니 남는다. 더운 여름이 오자 사람들이 이 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아, 이 나무 그늘 정말 시원하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500여 년 전 중국의 철학자 장자가 말한 '무용지물'. 즉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의 우화다. 왜 장자는 무용지용을 말했을까? 도대체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 철학자들은 왜 이렇게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것일까?

 

한 회사에서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던 연구원이 있었다. 개발하는 것마다 접착력이 떨어지자 그는 사내 게시판에 공고를 낸다. "이 쓸모없는 접착제가 필요한 사람은 가져다 쓰세요." 이때 성경책 북마크용 접착제를 개발하던 연구원이 그 접착제를 쓰겠다며 찾아온다. 자신이 개발 중인 접착제는 접착력이 너무 강해 한 번 책장에 붙이면 뗄 때마다 종이가 찢어져서 고민이었다. 그런데 접착력이 떨어지는 쓸모없는 접착제를 가져와 사용해보니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해도 괜찮았다. 이것을 시장에 내놓자 대박이 터진다. 바로 3M의 '포스트잇'이야기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 된 실제 사례다.

 

조롱박으로 물병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물병은 물을 충분히 담을 수 있고 또 가지고 다니기에도 편리해야 한다. 그 용도에 꼭 맞는 조롱박만을 골라 물병을 만들었다. 어느 해, 엄청나게 큰 조롱박만 주렁주렁 열리자 고민에 빠진다. 큰 조롱박으로 물병을 만들면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고, 조롱박을 잘라도 너무 커서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조롱박을 헐값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자 가게 밖에 수북이 쌓아 놓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와서 그것을 쓸어 담아가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그 큰 조롱박 둘레에 그물을 씌운 다음, 그것을 허리에 동여매고 물에 띄었다. 조롱박이 커서 공기를 충분히 담을 수 있었기에 둥둥 잘 떴다. 조롱박 안에 물을 담는 것이 신통치 않으면, 바깥에 담을 수도 있지 않은가! 장자가 말하는 무용지용의 또 다른 사례다.

 

장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물의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은 사물에 내재된 속성이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용처를 아는 사람에게는 쓸모 있는 것이고, 용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리만이 있을 뿐이다.

 

철학과 입시생들의 면접을 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모두 부모와 싸우고 온다.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는 순간 전쟁 시작이다. "하고 많은 전공 중에 왜 하필 철학을 하겠다는 거냐."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말이 있다. "너 그럼 굶어 죽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 공부해서 뭐 하려고 그래." 1973년에 연세대 철학과 원서를 쓸 때의 나도 그랬다.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하셨다. 그래도 나는 무슨 생각인지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 쓸모없는 철학으로 더 오래 살아남았다. 철학, 인문학의 그 쓸모없음에 쓸모 있음이 있다.

 

실용을 앞세우는 분야일수록 정신없이 쏟아지는 이론들이 다음날이면 폐기 처분된다. 그러나 철학은 2500년 전 스승들의 말씀이 그대로 남아 우리에게 지혜와 통찰을 준다.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고전으로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철학의 힘은 현실에서 힘이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나온다. 철학한다고 돈이나 권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 철학은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일까?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다. 무엇이 쓸모 있고 없는지는 바로 우리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고, 쓸모 있는 것이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한 장자는 이 모든 것이 우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부디 철학을 만나시길. 인문학을 만나시길. 그 만남이 얼마만큼 쓸모 있을지는 온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다.

 

철학의 힘_ 김형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31. 13:50

 

'버림'은 어렵다. 마음을 비우는 것도 그렇고, 책장이나 옷장 등을 정리하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제대로 버릴 줄 알아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법이다.

 

곤도 마리에는 일본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이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라는 그녀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충고가 나온다.

 

물건을 버릴지 아니면 남겨 놓을지를 구분할 때, '물건을 갖고 있어서 행복한가', '갖고 있어서 마음이 설레는가'를 기준으로 삼아라.

 

마음이 설레지 않는 책들을 쌓아둔다고 행복해지지 않으며, 마음이 설레지 않는 옷을 입는다고 역시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그녀만의 말이겠는가? 우리 중에 누군들 그런 경험 한 두 번 없는 사람이 있을까. 설레지도 않는데 끌어안고 있다가 결국은 '버리던' 그 경험 말이다.

 

그녀는 거듭 말한다. "마음이 설레는 물건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리자." 나는 그녀의 정리 비법은 '물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 즉 사람에게도 때때로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버림'과 '비움'을 통해 더 가치 있는 현재를 구성하라는 그녀의 권면을 받아들여, 집 짓고 도배한 지 12년이나 되는 목사관 사택의 아래층 벽지를 새로 발랐다.

 

벽지를 바르는 김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를 하면서 주워다주신 장식장 여러 개도 버렸다. 도배가 끝날 즈음에 어떤 교우가 '목사님 사시는 집이 궁금하다'는 말을 했대서, 그러면 이참에 목사의 집 여기저기를 구경하도록 열어둘 테니 주일예배 마치고 들어와 보시라고들 했다. 아울러 사택에 있는 목사의 물건들 중에 마음에 드는 걸 점찍어 두면 차차 드리겠다는 말도 했다. 언젠가는 해야 하는 '정리'일 테니까.

 

한 주가 지나자 목사의 사택을 구경한 교우들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돌아다닌다고 했다. "목사님 댁엔 쥐뿔도 없어요. 집이 휑해요."

 

그러면 '없는 것'하고 곤도 마리에가 말하는 '버림'하곤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내 생각에 답한다_ 허태수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30. 13:47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자식마다 다른 품성과 그릇으로 존재한다. 부모는 이 중요한 사실을 알면서도 욕심 때문에 은근히 비교하면서 아이를 멍들게 한다. 비교라는 방법으로는 부모가 바라는 방향으로 바뀌기 힘들다.

 

우리는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가시적, 묵시적 경쟁은 두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기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뒤떨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는 한 가정 내에서도 형제자매끼리 비교하면서 좀 떨어지는 아이를 서슴없이 질책한다.

 

"너는 왜 언니처럼 못하니." "네 동생의 반이라도 닮아봐라." "형이 돼서 만날 그 모양이냐." 등등의 말로 어린 싹을 싹둑 잘라버린다. 자녀가 많지 않은 요즘에는 '엄친아' '엄친딸'과 비교하며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아이가 받을 상처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질책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비교를 당하는 아이가 부모의 말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 더 노력하길 기대할테지만 그것은 아이의 마음에 상처만 남길 뿐이다.

 

그런 아이 중에는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 스스로 분발하고 노력하기보다 마음속 상처에 매몰되어 걷잡을 수 없는 타락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부모의 말처럼 언니나 형보다, 또는 다른 형제만큼이라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부모의 잦은 비교는 이내 아이를 지치게 하고 자존심을 잃고 좌절하게 한다. 결국에는 부모로부터 부여받았던 자기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고 무기력한 아이가 되기도 한다. 그때 아이를 치료해서 원상태로 돌리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부모는 비교하면서 채찍질하던 그때보다 더 큰 상실감을 안고 아이를 바라보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아이는 일어설 수 없는 좌절의 늪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비교하는 것은 인간의 개별적인 특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자식마다 다른 품성과 그릇으로 존재한다. 전 세계 어디에도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저마다의 가치를 가지고 하늘로 돌아가는 날까지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다할 뿐이다.

 

부모는 이 중요한 사실을 알면서도 욕심 때문에 은근히 비교하면서 아이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아이는 격려와 칭찬을 받을 때는 더 잘하려고 애쓰고 자신감을 얻지만 비난이나 비교당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쉽게 포기해버리고 더이상 노력하지 않는다. 비교를 하더라도 열등한 아이에게 '너는 다른 사람보다 이런 것을 잘 하니까 열심히 하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와 같이 우등한 비교를 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소위 문제아의 절반은 줄어들 것이다. 열등한 비교를 해서 아이가 바뀐다 하더라도 좋은 방향보다는 거칠고 나쁜 방향으로 바뀌게 될 뿐 부모가 바라는 방향으로 바뀌기는 힘들다.

 

실제로 부모의 비교 때문에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린 아이도 있었다. 매춘과의 전쟁 선포로 유명했던 한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객원교수 김강자 씨가 종암경찰서장 시절에 만난 S양은 아버지가 개업의이고, 어머니는 유치원을 경영하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S양과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언니와 오빠는 일류대를 다녔는데 S양은 어릴 때부터 줄곧 똑똑한 언니, 오빠와 비교당하며 자라왔다.

 

S양은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받은 성적 때문에 본격적으로 빗나가기 시작했다. 그 성적을 보고 아버지는 "어쩌다가 우리 집에 너 같은 아이가 생겼냐? 네 언니, 오빠만큼만 해라. 그럼 내가 업고 다니겠다." 라는 말을 했고 S양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아 방황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집을 나와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만나 어슬렁거리기 시작했고, 그 중의 한 남자아이와 성관계를 맺었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간 S양은 예상대로 집 안에 갇혔고, 설상가상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임신의 두려움 때문에 다시 가출해서 그 남자아이를 찾아갔지만 남자아이는 자신이 아기의 아빠라는 증거가 어디 있냐며 발뺌했다.

 

S양은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 모르게 뱃속의 아이를 없애려고 했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유흥 업소를 찾아갔다. 그 업소에서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유흥가 생활을 시작했다. 가족들은 밤마다 늦게 들어오는 S양이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오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춤추고 노래만 하던 S양은 처음 화대를 받고 속칭 2차라는 것을 나간 날 아예 집을 나와버렸다.

 

룸살롱과 단란주점을 전전하던 S양은 경찰의 일제 단속에 걸려 김강자 서장에게 붙들려 왔다. S양은 집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렸다. 그러나 가족만이 그녀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던 김 서장은 부모에게 연락해 데리고 가도록 했다. 김 서장은 부모가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생각해 부모에게 모든 사실을 다 말했지만, 딸이 임신중절한 것을 안 아버지가 S양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고 S양은 그 길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처음엔 부모도 그저 자극을 주려고 비교를 하기 시작했겠지만 점점 심해지는 비교는 급기야 자극이 아니라 깊은 칼이 되어 딸의 인생을 깊숙이 찌른 꼴이 되어버렸다. 성경에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 축에 껴들거나 견줄 생각은 하지 말라.' 라는 구절이 있다. 인간이 할 일의 범위는 인간이 정하는 게 아니라 신이 정하는 것이고 우린 그 범위 안에서 행하는 것뿐이라는 의미다.

 

부모가 자꾸 비교하기 시작하면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비교하며 우열을 가리기 시작한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이 어리석은 어른들처럼 우열의 잣대로 평가를 내린다는 게 무섭고 슬프게 다가온다.

 

유대인들은 아이에게 남보다 우월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남과 다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비교하는 대신 각자 다른 개성을 인정하고 길을 터주는 부모가 아이를 큰 사람으로 만든다.

 

차이는 증오를 낳는다_ 니체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 박경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21. 13:35

 

부모의 권위는 소리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뢰감을 자녀에게 확실히 심어줄 때 생긴다. 자녀에게 어떤 행동을 하지 말라고 말하기 전에 부모도 그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을 때 아이는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다. 기준이 되는 사람의 서로 다른 말과 행동 가운데 어느 것을 따라 행동할 것인가는 아이에게 너무 난해한 문제다.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부모의 언행불일치는 곧바로 불신과 저항으로 이어진다.

 

부모의 권위는 소리침으로써 생기는 게 아니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뢰감을 자녀에게 확실히 심어줄 때 생긴다. 말이 많은 부모는 그 말들 중 대부분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꼭 필요한 말 몇 마디로 자녀가 지켜야 할 지침을 제시하고, 부모도 제시한 것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가 동영상 전쟁이다. 성에 눈을 뜬 아이들은 부모 몰래 또래끼리 포르노 동영상 같은 것을 구해서 보곤 한다. 아이가 늘 어린애인 줄만 알고 있다가 그런 광경을 목격하면 부모는 당황하게 되고 일단은 소리부터 지르고 본다. "공부나 할 일이지, 이런 것은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되는 건데 왜 보고 그래! 다신 보지 마!" 하고선 아이를 무안하게 만든 다음 휙 방으로 사라진다.

 

영화 <아메리칸 파이>를 보면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너한테 실망했다"라고 말하지 않고 "아빠도 너만 할 때 그랬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을 마치 아이들이 큰 죄나 지은 것처럼 대하는 데서 오히려 문제가 생기게 된다.

 

요즈음 아이들은 정신적인 성장보다 육체적인 성장이 훨씬 빠르다. 게다가 스마트폰의 대중화 등으로 인해 포르노 영상물을 쉽게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무조건 쉬쉬하면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성교육도 문제지만 일단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의 부모의 행동 또한 반성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환경을 자녀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녀의 행동이 걱정된다면 부모가 그런 것을 곁에 두지 않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너는 보면 안 돼, 나는 너 몰래 볼 거야.'라는 식의 태도는 몰래 보면 된다는 잘못된 기준을 자녀에게 심어주고 그 일을 계기로 부모가 언행이 불일치하는 사람이라는 불신을 가지게 한다. 그 이후로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자녀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게 된다. 자녀에게 무조건 하지 말라고 말하기 이전에 부모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언행이 불일치하는 행동을 학습하게 되어 규칙과 규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도 잘 지키지 않는 성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점차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잃는다. 그러면서 성취동기가 매우 낮아지고 매사에 부정적이며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거나 비도덕적 양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 자녀로 키우고 싶지 않다면 아이 앞에서는 말조심하자. 특히 행동은 더 조심해야 한다.

 

언제나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진지하게 그렇게 하고자 할 때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_ 카알 힐티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 박경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21. 13:11

 

뭐든지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과도한 기대를 자녀에게 품지만 그것은 대리만족일 뿐이다. 아이에게 자꾸만 잔소리하고 완벽하기를 강요하지 말라. 자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슈퍼맨은 아니다. 부모도 슈퍼맨이 아니다.

 

우리는 평소 '완벽'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 만큼 완벽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완벽한 인간이 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부모가 되면 자녀에게 완벽하기를 강요한다. 뭐든지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과도한 기대를 자녀에게 품지만 그것은 대리만족일 뿐이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대신 이루게 하고 싶은데 자신의 시행착오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자꾸만 잔소리하고 완벽하기를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C양은 자식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부모에게 흡족한 딸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완벽'이라는 틀에 가두고 무엇이든지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기 시작했다. C양은 중학교 때까지는 1등을 놓치지 않고 무엇이든지 잘하는 아이로 손꼽혔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 자기보다 더 잘하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C양은 공부뿐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아이보다 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늘 이겨야 한다는 긴장감을 극복하지 못해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성적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몸도 마음도 쇠약해져 모든 것에 무기력해지고 나서야 C양은 상담실을 찾았다. C양은 부모와 더불어 완벽한 것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면서 건강한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오래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양파'라는 예명의 여고생 가수가 있었다. 수능시험 당일에도 각 방송국의 연예 프로그램 카메라가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녀는 시험 도중 위경련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갔고 그해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 항상 1등을 한다는 사실에 이목이 집중되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은 끝이라는 강박관념이 그녀를 괴롭힌 탓이었다.

 

완벽을 추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항상 아름답다. 그러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다 완벽을 기하다 보면 정작 필요한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고 만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옥석을 가리는 혜안과 함께 대소의 비중을 가늠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자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슈퍼맨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도 슈퍼맨이 아니다. 완벽을 지향하는 지나친 간섭과 압력보다는 애정 어린 보살핌이 아이에게 더 효과적이다.

 

아이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게 대하거나 내버려두는 것은 피해야 할 교육법이다_ 루소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 박경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21. 12:57

 

자식에게 무관심한 부모는 의외로 많다. 그들은 아이를 낳기만 했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과잉보호나 자유방임도 문제지만 아이를 가장 황폐하게 만드는 부모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무관심한 부모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식에게 무관심한 부모는 의외로 많다. 부모가 될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를 얻게 된 사람, 또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사람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유형이다.

 

그들은 아이를 낳기만 했을 뿐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어 '부모'라고 부르기에도 안타까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라는 말로써 자식이 어떻게 자라든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출을 하건 비행에 가담을 하건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철저히 자녀를 방치한다. 이런 부모에게서 자라는 아이일수록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비행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왜 나를 낳았냐는 말로 반항하고 부모를 원망하면서 영영 나쁜 길로 빠져 버리고 만다.

 

부모의 무관심은 아이의 가슴에 아물지 못할 상처를 내며, 이 상처가 깊을수록 원망도 깊어 아이에게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자랄수록 상처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커진다면 아이는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 기생하는 독버섯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L군의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술로 힘들게 버티고 있었다. 음주와 폭언이 가정을 뒤덮고 있었고 그저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에 묶여 한지붕 아래서 같이 살 뿐 '가족'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L군의 삶에 부모는 중요한 존재로 내면화되어 있지 않았다. 삶의 기준이 되고 지도가 되어줄 부모가 없었기에 마음 깊은 곳의 외로움은 분노로 변하고, 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다가 법정에 서게 되었다. L군은 소년부 법정에서 1호 자원보호처분을 받고 전문 상담사에겟 맡겨졌지만, 폭력을 부른 근본적인 문제는 가정에 있었고, 그것을 해결해 줄 부모가 L군에게는 없었다는 게 상담의 큰 한계로 작용했다.

 

과잉보호나 자유방임도 문제지만 아이를 가장 황폐하게 만드는 유형의 부모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무관심한 부모다.

 

사랑에는 사람의 개성 전체를 꽃피우게 하는 힘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른 것들은 그 일을 할 수 없다_ 투르게네프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 박경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12. 21. 1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