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기를 엄마에게서 떼어내면 지능이 제대로 발달할까?"

 

한 실험에서 새끼 원숭이를 강제로 어미 원숭이에게서 떼어내 따로 자라게 해보았다. 영양은 충분히 섭취하게 했지만 어미의 사랑을 못 받으며 자라게 했다. 걱정과 달리 새끼 원숭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아무 이상 없군. 어미가 없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두뇌를 촬영해보니 새끼 원숭이의 두뇌는 바짝 쪼그라들어 있었고 지능도 크게 떨어졌다.

 

"그럼 가짜 어미를 넣어주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다른 새끼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떼어낸 뒤 우리에 가짜 어미 2마리를 넣어주었다. 하나는 헝겊으로 만든 가짜 어미였고 다른 하나는 철사로 만든 가짜 어미였다. 헝겊 어미에게서는 젖이 나오지 않았지만 촉감이 부드러워 진짜 어미 같은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철사로 만든 어미에게서는 젖이 나왔다. 다시 말해 새끼 원숭이들이 사랑을 선택하는지, 먹이를 선택하는지 살펴본 것이다.

 

"분명히 먹이를 선택하겠지?"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새끼 원숭이들은 젖이 나오는 철사로 된 어미가 아니라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헝겊 어미에게 먼저 달려갔다. 배가 고플 때만 철사로 된 어미에게 가서 젖만 먹은 뒤 얼른 헝겊 어미에게 되돌아가 핥고 쓰다듬었다.

 

그럼 어미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새끼 원숭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까?

 

수컷들은 난폭하고 잔인하거나 외톨이가 되었다. 사랑을 느낄 줄 몰랐던 것이다. 암컷들은 어미가 돼도 자신이 낳은 새끼들을 돌보려 들지 않았고, 오히려 때리거나 무시했다. 모성애는 유전적으로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형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수컷이든 암컷이든 어미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원숭이들은 두뇌가 여전히 작고 지능도 낮았다. 사랑이 끊기면 지능도 끊긴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의 널리 알려진 실험이다. 그러면 사람은 어떨까?

 

1955년 한 해 동안 하와이 군도의 카우아이 섬에서는 모두 833명의 신생아들이 태어났다. 당시 이 섬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신생아들도 온갖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10대 미혼모나 알코올중독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도 많았다. 아예 모유를 못 먹고 자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아이들을 30년간 추적해보면 어떨까?"

 

미국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전무후무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중 마이클이라는 아이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전형적인 아이였다. 마이클은 태어날 당시 체중 2킬로그램에 불과한 미숙아였다. 어머니는 일본계의 16세 소녀였고, 아버지는 필리핀계의 19세 소년이었다.

 

마이클이 10세 되던 해 어머니는 그와 동생 셋을 버리고 도망쳤다. 마이클은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았다. 이쯤 되면 마약중독자나 불량배로 전락할 게 뻔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이클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무척 밝았다. 고등학교 때도 전교 10위 안에 들었고 학생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대입자격 시험인 SAT 성적도 전국 10퍼센트 안에 들어 미국 본토의 유명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합격했다. 어찌된 일일까?

 

"이런 아이는 예외적인 경우겠지?"

과학자들은 그렇게 여겼다. 그래서 아이들이 18세가 됐을 때 그들을 추적해보았다. 그 결과 연구 대상 전체 아이들의 3분의 2는 골칫거리로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3분의 1은 마이클처럼 정상적인 청소년으로 자랐다.

 

"어떻게 된 일이지? 똑같은 불행 속에서도 똑똑하고 밝게 자란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정상적인 청소년으로 자란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 그 한 사람이 엄마든 아빠든,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삼촌이든 이모든 상관없었다. 자신을 가까이서 따뜻한 눈길로 지켜봐 주고 조건 없는 사랑을 보내주는 사람이 딱 한 명만 있으면 되었다. 그 효과는 그들이 30세가 될 때까지도 지속되었다. 단 한 사람에게서라도 사랑의 눈길을 받고 자랐던 아이들은 사업가, 학자, 의사, 변호사 등이 되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어릴 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고, 사랑을 받으면 성공한 인생이 된다."

 

성공하는 아이로 키우는 지름길은 특별한 게 아니다.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영혼이 눈을 뜨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아인슈타인, 에디슨, 빌 게이츠 등 세계적인 천재들의 재능도 기계적 반복 학습의 산물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산물이었다.

 

사랑이 끊긴 아이는 로봇이 된다

 

4세가 된 사내아이 한새는 두 돌이 되기 전부터 영어 알파벳과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TV 화면에 영어 자막이 나오면 "케이, 에스, 더블유" 하며 글자를 콕콕 집어냈다. 차를 타고 가면 길가의 간판들을 더듬더듬 읽었다. 주변에서는 다들 영재 아니냐고 부러워했다. 돌 무렵부터 읽어주기 시작한 그림책 덕분이었다. 책의 바다에 푹 빠진 한새는 장난감도 싫어했고 대부분 시간을 책만 보며 지냈다. 글자를 뗀 후에는 초등학교 3학년 형의 어린이사전과 영어사전까지 탐독했다.

 

하지만 엄마는 마음 한편에 불안을 느꼈다. 두 돌이 넘도록 한새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 마" 하면 "엄, 마" 하고 겨우 따라 할 뿐이었다. 한새는 책이 보고 싶으면 엄마 손을 이끌고 책장 앞으로 갔다. 목이 마르면 냉장고 앞으로 끌고 갔다. 간혹 또래 아이들과 모이면 혼자 등을 돌리고 책만 읽어댔다. 억지로 아이들과 섞어놓으면 한새는 하고 싶은 말을 못해 답답해하며 짜증을 냈다. 아이들도 함께 놀아주지 않았다. 증세가 심해지자 36개월 때 마침내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경계성 자폐(유사자폐)' 였다.

 

"의미도 모른 채 낭독만 잘하는 겁니다. 전형적인 초독서증이죠."

의사의 말을 듣는 엄마는 억장이 무너졌다.

"아이가 똑똑한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자극을 줬어요. 온종일 책만 읽혔고 한글, 영어, 비디오를 너무 많이 보여주었죠.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요."

 

서른여덟에 첫딸을 낳은 김지영 씨도 육아에 관심이 많았다. 늦게 낳은 아이를 잘 길러보려는 욕심에 생후 6개월 무렵부터 책을 읽어주었다. 인터넷 육아 사이트와 블로그에는 돌도 안 된 아기에서부터 유치원생에 이르기까지 책의 바다에 빠진 아이들이 줄줄이 소개되어 있었다.

 

김 씨도 210만 원에 전집 4질을 들였다. 남편은 돌도 안 된 아기에게 무슨 책을 사주느냐고 반대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나중에 사교육 따로 안 한다는 아내 말에 고집을 꺾었다. 김 씨의 아기는 그렇게 10개월에 500권, 두 돌 때는 1000권을 읽어야 했다.

 

아이는 생후 10개월부터 책 중독 증세를 보였다. 기저귀 갈고 젖먹는 시간 외에는 온종일 책만 찾았다. 엄마가 목이 쉬도록 읽어주면 아이는 동공도 움직이지 않은 채 새벽까지 책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이상해졌다고 느낀 건 첫돌이 지났을 때부터다. 모든 사물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의 눈빛이 흐리멍덩해졌다. 때가 되어도 아이는 기지 않았고 돌이 지나도 걷지 못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유명 육아 사이트에서는 그런 현상에 대해 "몰입할 수 있다는 게 영재성의 증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기뻤어요... 미련했던 거죠. 책만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는 말만 믿고 애를 망가뜨린 거예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책을 딱 끊은 게 두 돌 때였다. 한눈에 봐도 김 씨의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래 신체 발달이 뒤떨어졌고 세 돌이 되도록 계단을 서너 개밖에 올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평범한 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자, 그저 많이 놀아주자 하면서 애쓰고 있어요. 책을 읽히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니까 희한하게도 책에 빠져 있던 아이가 금세 책에서 멀어지더군요. 아이들은 엄마의 눈빛을 통해 엄마가 뭘 원하는지 온몸으로 간파하는 거예요. 그동안 제가 아이를 학대했구나, 저도 모르게 책 읽기를 강요했구나 싶어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요."

 

한국일보에 실렸던 기사다. 아이를 천재로 키우고 싶다면 기계적으로 지식을 주입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대신 학문을 좋아하는 마음이 저절로 싹트도록 사랑부터 심어주어야 한다.

 

한 아이가 멀찌감치 놀이터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내가 책 한 권 읽기를 거의 끝낼 때까지도.

"무슨 일 있니?"

아이는 여전히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요."

"왜?"

"집에 가면 짜증만 나요. 피아노 연습해야 해요."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아이는 정말 많은 악기를 배우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악기를 배워서 뭐 하려고?"
"엄마가 시켜서 하는 거예요. 몇 년 해보고 제일 잘하는 걸 배우게 한대요."

 

아이는 몹시 지쳐 보였다. 나는 아이의 등 뒤로 손을 올려 심장쪽에 살며시 가져다 댔다. 잠시 후, 가만히 앉아 있던 아이의 운동화 위로 눈물 두 방울이 툭 떨어졌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레슨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하지만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일까?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너 힘들어하는 거 아니? 엄마한테 말해봤어?"
아이가 눈가를 훔치며 대답했다.

"그런 말 하면 막 화내요.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더 많이 하는지 아느냐며."

 

영혼을 모르는 엄마들은 마치 고속도로로 차를 몰 듯 아이들을 몰아댄다.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끌려가는 아이가 얼마나 아파하는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엄마가 너보다 널 더 잘 알아.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만 해."

 

이렇게 마음이 짓눌린 아이는 어떻게 출구를 찾을까? 저항적으로 성장하거나, 아예 감정이 없는 로봇으로 전락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행복감은 OECD 국가 중 꼴찌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가 낳은 아이라고 해서 내 것인가? 일단 뱃속에서 나오면 독립된 영혼을 지닌 독립된 인격체다. 그런데도 자기 욕심에 집착한 나머지 내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캥거루 새끼처럼 계속 배 속에 넣고 다니고 싶어 한다. 내 말만 잘 듣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못하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김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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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5. 10. 6.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