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태평한 세월이 계속되면 병사들은 모두 나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때에 변란이라도 일어나면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몇 해가 지나면 우리 병사들도 강해지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_ 서애 유성룡

 

이 책 [징비록]은 미국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우리의 고전이다. 하지만 슬프고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필자가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세 번  이상 정독을 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비록 적은 다른 형태, 다른 모습으로, 다른 형식으로 우리 민족을 괴롭히겠지만 그러한 환란에 대처하는 우리 국민들과 지도자들의 정신과 자세는 임진왜란 때의 그 때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세 번 이상 정독하게 되면 최소한 국민들의 마음 자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임진왜란 때 우리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준비 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더 큰 요인은 당장 눈앞에 적이 나타났을 때, 담대하지 못하고 하나같이 도망치고, 혼비백산했다는 데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모두가 겁쟁이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국력이 분산되고 흩어지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준비가 부족했더라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온 국민과 관리와 병사들이 왜적을 물리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까지 수많은 백성들이 적의 창칼에, 그리고 굶주림에, 그리고 같은 나라 사람들의 칼에 허망하게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라도, 아무리 부끄럽고 답답한 역사라도 체험을 하고, 부끄러워하고, 반성을 하게 된다면, 나중에 어떤 위기가 닥친다고 해도 그러한 체험을 하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은 국민들보다는 훨씬 더 잘 대처해 나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든 어떤 전쟁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영화에서 우리가 겪은 이런 답답함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공격해 오자 지레 겁을 먹은 중국군은 대항을 포기하고 항복해 버린다. 수천 명의 중국군은 총 한 번 쏘지 않고 그냥 그 도시를 일본군들에게 내 주었다. 수천 명이 넘는 중국군, 정확히 수만 명이 될 지도 모르는 끝이 없는 중국군 포로들은 무기를 그대로 압수당한 후 몰살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결단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은 비겁함이라고, 그래서 용기 있는 사람이 되자고, 가장 큰 비겁함은 죽음을 두려워해서 적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항복하거나 도망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절대 전쟁을 하게 되면, 절대로 항복하거나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의 선조들 중 많은 이들이 거의 대부분 도망을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죽음을 각오하고 용감하게 맞서 싸우신 위대한 선조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이 훨씬 더 비겁했고, 나약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이런 현상이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이 이 책을 쓴 이유는 책 제목에 잘 나타나 있다

 

서애 선생은 [시경]에 나오는 이 말인,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懲)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毖)'는 말의 뜻과 같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매우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왜적이 매우 지략이 뛰어나고 간교한 자들이었다는 것과 이순신 장군이 모함에 빠져 옥에 갇히게 된 것도 역시 이들의 계략에 우리가 넘어갔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이었다. 정말 귀신같았고, 지략이 뛰어났고, 누구보다 용감하고 담대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를 위해서 하늘이 내려준 귀인이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임진왜란을 승리로 끝마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수군 10만 명을 막아 준 한산도해전의 승첩이었다.

 

"왜적들은 싸움을 시작한 이래 오직 수군에게만 패하였는데, 이를 분하게 여긴 도요토미는 고니시에게 어떻게 해서든 조선의 수군을 무찌르라고 명령을 내렸다. 정면으로 붙어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고니시는 계략을 꾸몄다. 김응서에게 호감을 사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이용해 이순신이 모함에 빠지도록 술수를 부렸고, 그런 후에는 원균을 바다 한가운데로 유인해 습격한 것이다. 그의 간교한 계략에 빠져 큰 피해를 입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_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징비록], 195쪽

 

이 책의 중반까지는 답답함과 억울함과 부끄러움만이 존재 했었다. 하지만 후반부터 이순신 장군, 의병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천 년 동안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임진왜란 그 후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와 정황, 스토리도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임진왜란의 생생한 실상과  국내외적인 정세, 전쟁 이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이며 구체적인 전개와  서술은 이 책의 저자인 서애 선생의 능력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다.

 

이 책은 매우 가치가 높은 책이다. 책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서애 선생은 작품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은 문학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책에 속한다. 즉 이 책은 역사적, 문학적으로 최고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책을 12년 동안의 혹독한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한국 학생들이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 한국의 교육의 맹점을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임진왜란은 왜적이 시작한 것이지만, 우리 백성과 군사들을 죽이고 굶주림에 죽어가게 했던 것은 무능하고 어리석었던 관리들이었다.

 

우리 군사들은 왜적에 의해서도 많이 죽었지만, 우리의 무능하고 어리석었던 관리들에 의해서도 많이 죽었다. 이러한 사실이 이 책에는 가감 없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용궁 현감 우복룡은 마침 고을 군사들을 거느리고 병영을 향하고 있었다. 영천에 이르러 길가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을 무렵, 하양의 군사 수백 명이 그 앞을 지나고 있었다. 방어사에 귀속되어 가던 군사들이었다. 말을 탄 채 지나가는 군사를 본 우복룡은 그들을 붙잡았다. 그러곤 큰 소리로 질책했다.

 

'너희 태도를 보니 반란을 일으키려는 군사들이 틀림없구나.'

 

깜짝 놀란 군사들은 병사의 공문을 내보이며 변명했다. 그러나 복룡은 듣지 않았다. 그러곤 자신의 병사들을 시켜 그들 모두를 죽이도록 명했다. 결국 온 들은 시체로 가득 찼다. 이 소식을 들은 순찰사 김수는 우복룡의 행동이야말로 공을 세운 것이라고 임금께 보고했다. 급기야 우복룡은 통정대부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정희적 대신 안동 부사에 임명되었다.

 

이 후 하양 군사의 가족들은 조정의 사신을 만나기만 하면 말을 가로막고 그들의 원통한 사정을 울음으로 호소했다. 그러나 이미 이름이 높았던 우복룡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_ 유성룡, 김흥식 옮김, [징비록], 49~50쪽

 

임진왜란 중에는 이렇게 무고한 백성들이, 병사들이 어리석고 무능한 관리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갔던 것이다. 조선 중기의 무신 신각은 관리의 무고를 받아 결국 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것이 아니라 무지하고 몽매한 그리고 악한 관리 때문에 억울한 참형을 당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각은 김명원의 부장이었다. 그런데 한강 싸움에서 패하자 김명원을 따라 가지 않고 이양원을 따라 양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 그곳에 온 함경우도 병사 이혼과 함께 서울로 들어가 민가를 약탈하던 적을 격퇴시켰다. 이야말로 왜적이 우리나라에 침략한 후 처음으로 승리한 싸움이었으므로 백성들은 감격해 모두 나와 환호했다. 그럼에도 김명원은 임진강에서 올린 장계에 이렇게 썼다.

 

'신각이 제 멋대로 다른 곳으로 가는 등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우의정 유흥은 글을 읽은 대로 임금께 보고했다. 결국 조정에서는 신각을 처형하기 위해 선전관을 파견하였는데, 마침 그때 신각의 승리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조정에서는 부랴부랴 사람을 뒤쫓도록 했으나 이미 선전관의 손에 신각이 죽은 후였다."

 

_ 유성룡, 김흥식 옮김, [징비록], 79쪽

 

임진왜란 때 우리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적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위기 대처 능력 부재에 있었던 것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임금부터 조정의 신하들과 전국의 관리들과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왜적을 막는 데 집중했더라면 수많은 병사들과 백성들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왜적을 막는 데 집중함으로써 피해와 손실을 극소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신각은 용맹하고 청렴한 무관이었고, 여러 가지 공도 세운 훌륭한 장군이었다. 그런데 억울하게 아무 죄도 없이 무능하고 어리석고 이기적인 관리의 무고를 받아 죽었던 것이다.

 

이렇게 왜적을 막아내는 데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에 분산이 되자 국력은 더 약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100년에 걸친 태평성대가 우리 백성들과 관리들로 하여금 전쟁을 잊게 했고, 그 어떤 대비도 하지 않게 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다가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니, 모두 우왕좌왕하다가 혼비백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제일 위층인 임금부터 아래층 백성까지 확고한 원칙과 신념과 기준이 없었던 것이다. 나약했고, 무지했고, 어리석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나약하지 않았고, 무지하지 않았고, 어리석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역시 남달랐다. 이순신 장군의 남다름과 비범함과 지혜를 엿볼 수 있었던 대목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운주당이라는 집을 지었다. 그는 그곳에서 장수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연구하면서 지냈는데, 아무리 졸병이라 하여도 군사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와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모든 병사들이 군사에 정통하게 되었으며,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장수들과 의논하여 계책을 결정하였던 까닭에 싸움에서 패하는 일이 없었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3. 10:35

 

기록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독서 고수인 율곡 이이는 다독보다는 숙독을 강조했다. 그가 남긴 [격몽요결]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한 가지 책을 습득하여 그 뜻을 모두 알아서 완전히 통달하고 의문이 없게 된 다음에야 다른 책을 읽을 것이요, 많은 책을 읽어서 많이 얻기를 탐내어 부산하게 이것저것 읽지 말아야 한다." _ 이이, [격몽요결] 중에서

 

하지만 율곡 이이 선생이 살았던 조선시대와 현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독서법도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목적에 따라, 심지어 책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조선 시대에 대부분의 선비들이 선호한 독서법은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책을 읽어 뜻을 완전하게 통달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독서백편의자현'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백 번 읽으면 뜻을 자연히 알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하루에도 한국에서만 200여 권의 책이 출간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 200여 권의 책은 과거에는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의식과 패러다임과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는 책들이라는 점이다.

 

조선 시대에는 책이 많이 있지 않았고, 한 권의 책을 구하는 것도 매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굉장히 고가였다.

 

우리의 선조 중에 가장 많은 책을 집필한 혜강 최한기 선생은 매우 부자였지만, 책을 너무 좋아해서 조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책은 모두 구입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결과 부자였던 최한기 선생은 가난해졌다고 한다. 그 정도로 책이 고가였던 것이다.

 

현대는 인쇄술과 기술이 발달해서 한 권의 책값이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약간 비싼 정도이다. 책을 아무리 많이 구입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부자가 가난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또 조선 시대에는 지식의 폭발 정도가 매우 느렸다. 하지만 요즘은 몇 년만 지나면 인류의 지식과 정보의 총합을 두세 배 이상 뛰어넘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한마디로 지식과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조선 선비들은 우리가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 중에서도 중국에서 나온 책만 읽으면 되었다고 말한다면, 지금 우리들은 과거의 고전 중에서도 서양에서 나온 고전, 미국에서 생겨난 고전, 그리고 현대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검증이 안 되었지만 고전의 반열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명저들 까지 읽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와 시대적 변화 때문에 다양한 책들을 읽는 것, 즉 다독하는 것을 필자는 추천하고 있다.

 

창조성이란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질적인 것들을 융합하고 엮고 조합하는 것에서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질적인 생각과 의식에 접해야 한다.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수용과 모방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의 양의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질적 전환이 일어나 새로운 이론과 견해, 가설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인류의 모든 학문과 사상은 발전을 해 왔던 것이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사항은 다양하고 풍부한 양적 수용과 모방인 것이다. 에디슨이 최고의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전쟁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것이고,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장군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장군아기 이전에 문신으로서 다양한 책들을 읽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도 위대한 혁신가임에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스티브 잡스보다도 세종대왕이 더 위대한 혁신가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에 수천 명의 위대한 학자들이 평생을 투자해도 새로운 글자를 하나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세계의 모든 언어학자들이 찬양하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을 창조했다.

 

이것만큼 더 큰 혁신은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독서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그 당시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을 만큼 최고의 부자였고, 최고의 정상에서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과거 시험을 쳐야 하는 선비들보다 더 열심히 더 지독하게 책을 읽고 또 읽었던 위인인 것이다.

 

세종대왕의 모든 창조성과 유연성과 리더십과 백성 사랑은 바로 책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2. 20:11

 

조선조 최고의 학자, 한국 최대의 실학자,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던 다산 정약용은 필자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다. 책을 통해 필자는 그에게서 배우고 또 배웠다. 평생 배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전 독서법이다.

 

오래 전 위인들의 삶을 책을 통해 접하고, 책을 통해 매일 배우고, 가르침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법은 학생이 스승에게 매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대로 그 배움대로 집에 와서 실천하고, 사회에 나가서 행동하고, 직장에서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나은 고전 독서법이 어디 있을까?

 

바로 이런 고전 독서법이 결국 조선조 최고의 학자인 정약용이 실천한 실학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고전은 실학자처럼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방대한 글을 남긴 조선조 최고의 학자이며, 삶과 학문이 나누어지지 않았던 위대한 학자였다. 그래서 필자가 존경하고 스승으로 삼는 것이다. 그 당시 정약용을 억압하고, 유배를 보낸 세도가들은 이름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정약용은 자자손손 오래도록 이름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다산은 그의 든든한 지지자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마흔의 나이에 정계에서 쫓겨나게 되고,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말이 유배 생활이지 가난과 결핍으로 점철된 혹독한 세월이다. 물리적인 환경보다 더 혹독한 것은 정신적인 환경일 것이다.

 

시쳇말로 잘 나가다가 그만 망하게 되고, 주 활동무대인 세상에서 쫓겨나 시골로 귀양을 가게 되면, 더 이상 삶의 희망도, 미련도, 열정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배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3년 안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갑자기 병이 나고, 심지어 죽는 사람도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다. 매일 출근해서 갈 곳이 있고, 자신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해 주고, 강하게 해 주지만, 정년 퇴직을 하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이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심리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유배지로 귀양을 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이다. 건강만 챙겨도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다산 선생은 달랐다.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그는 마치 유배 생활을 40세부터 18년 동안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할 정도로 유배 생활이 그의 인생의 최고의 전성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 관리와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가 다산 정약용 선생을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토록 가난하고 결핍되고 혹독한 세월을 그가 인생의 최고 전성기로 반전시킬 수 있었던 힘은 결국 붓과 책이었다.

 

그가 독서와 집필을 통해 귀양을 오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책을 읽고, 방대한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유배 생활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1년 365일 그에게 허락된 것은 유배지에서의 기거일 뿐이다. 여행도, 휴가도, 취미 생활도, 친구나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다산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다산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 두고, 그의 놀라운 독서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고전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다산처럼 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산이 강조한 독서법은 먼저 바탕을 세우는 독서법이다.

 

"독서에는 반드시 바탕을 먼저 세워야 한다. 무엇을 바탕이라고 하는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할 수 없으니, 학문에 뜻을 두려면 반드시 바탕을 세워야 한다. 무엇을 바탕이라고 하는가. 효도와 공경이 바로 그것이다. 모름지기 효도와 공경에 먼저 힘써 바탕을 세운다면 학문은 저절로 몸에 베게 된다. 학문이 몸에 배면 독서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효도와 공경이라는 바탕을 세우면, 학문이 몸에 배게 되고, 독서는 저절로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효도와 공경은 인간의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마음이다. 즉, 독서를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 필자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3년 동안 다양한 독서법으로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하면서 처음 6개월 동안은 정말 바탕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 낭비식의 독서를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6개월 동안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지만, 그것은 모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독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부터 점차 독서라는 것이 제대로 되기 시작했고, 점차 독서력의 엄청난 도약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6개월 전과 후의 차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바탕이다.

그 당시의 6개월 전에는 그저 마음 관리 없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6개월 이후부터 마음 관리를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6개월 후 부터는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순수한 열정, 순전한 마음으로 모든 이들을 공경하고,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비우고, 낮추는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독서의 기술도 달라졌다. 하지만 독서의 기술, 독서의 방법이 달라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독서를 하는 필자의 마음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산의 말처럼, 바탕을 세우자, 마음이 달라졌고, 마음이 달라지자, 독서의 방법과 기술도 달라졌다. 그러자 알게 모르게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과 점차 닮아졌고, 학문하는 이유와 세상에 대한 세계관과 철학관이 다산을 닮아가게 되었다.

 

그러자 다산처럼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500권을 집필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필자도 다산처럼 닮아지게 되자, 2년 동안 45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집필하는 것은 출간하는 것보다 쉽다. 출간을 하기 위해서는 집필된 원고를 다듬고, 편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얼추 다산 선생의 집필 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다산 선생의 독서력이 필자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그의 다른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통 그는 백 권의 책을 열흘 만에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필자는 보통 하루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읽는다기 보다는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산처럼 읽고, 쓰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런데 평범했던 필자가 위대한 조선조 최고의 학자와 비슷하게 닮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전 독서의 위력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이 고전 독서의 힘인 것이다.

 

자기계발서만 읽었다면, 벤츠를 사고, 부자가 되고, 성공했을 것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부산물이 아닐까?

 

인문 고전을 읽었기 때문에 필자는 다산 정약용, 세종대왕처럼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 분들의 발꿈치도 쫓아가지 못했지만, 평생 노력하고 독서에 매진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산이 쓴 많은 책들 중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쓴 책들도 있다. [소학주관]이라는 책이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을 보면, 독서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지금 내가 슬슬주 1만 섬을 얻었다 하더라도 꿰미로 꿰지 않으면 어디 간들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요즘 학문하는 방법도 이와 마찬가지다. 구경과 구류 백가에 나오는 수많은 책의 이름과 항목들이 모두 슬슬주다. 이것을 꿰미로 꿰지 않는다면 이 또한 얻는대로 곧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정약용 선생은 독서를 해도, 반드시 정리하고 요약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여야 자신의 것으로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필자가 쓴 독서법 책인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초서 독서법과 의식 독서법을 합하여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필자는 명명한 바 있다. 여기서 초서 독서법은 책을 눈으로만 보면 읽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는 문제점을 개선한 독서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 새롭게 생긴 생각들과 주견들을 노트에 정리하고, 필기하고, 요약하면서 책을 읽는 방법이 바로 초서 독서법이다. 여기에 의식 독서법은 책을 읽을 때 마음을 먼저 집중하고, 마음을 관리하면서 책을 읽는 독서법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바탕을 먼저 세우고 독서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필자가 쓴 세 번째 독서법 책인 '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독서법을 그대로 재현시킨 것이고, 그것을 현대식으로 바꾸어, 현대의 독자들이 자신의 독서력이 초급이든, 중급이든, 고급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체적으로 실제 사례를 들어 풀어 써 준 현대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을 읽으면서 눈으로만 읽으려고 하는 것은 자만이다. 왜냐하면 눈으로만 읽어서는 절대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산 선생의 말대로 얻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반드시 꿰어야만 가치 있는 보석이 되는 법이다. 고전 독서도 바로 이와 같다. 한두 번 눈으로만 읽고 그 책의 진짜 가치를 다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법으로 지금까지 그나마 유행했던 것이 토론 독서법인 것이다. 하지만 토론 독서법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 토론해 줄 친구들, 사람들이 필요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양의 고전 독서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 독서법보다는 초서 독서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이다. 필자가 토론 독서법보다 초서 독서법을 추천하는 이유는 또 있다.

 

토론 독서법은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생활 방식이 다른 것이 너무 많다. 생활 방식만 다른 것이 아니다. 당연히 지역적인 환경과 생활환경의 차이로 사고 방식도 다르다. 그런 것들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영향을 주어, 결국 DNA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세계 그 어떤 나라 백성들보다 음주가무에 강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K-POP이 전 세계를 사로잡는 이유가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DNA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양인과 서양인들의 가장 큰 차이는 사고 방식과 사고 프레임의 차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이런 차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문과 책들을 통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차이점 중의 하나가 서양인들은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할 때 사고력이 향상된다는 것과 이와 반대로, 동양인들은 혼자서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글씨를 쓸 때 사고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식 수업, 토론식 독서법은 동양인들보다는 서양인들에게 최적화된 독서법이고 수업이다.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기 보다는 동양인들에게 맞는 독서법을 실천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필자가 교육학자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필자는 교육학 학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방대한 책을 통한 지식과 이론적 근거 때문만이 아니다.

 

실제로 독서력의 도약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초서 독서법을 통해 가장 큰 도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필자가 혼자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토론 독서법보다 초서 독서법을 강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세종대왕, 모택동, 다산 선생, 정조, 박지원 등 많은 위인들이 초서를 통해, 즉 붓을 들고 쓰는 독서법을 통해 위대한 도약을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모택동이 위대한 중국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남다른 독서법 때문이었다. 그가 남긴 위대한 말을 보면 곧 알게 된다.

 

"붓을 들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모택동은 누구보다도 더 붓을 들고 쓰면서 독서를 하는 사람이었다. 세종대왕은 또 어떤가? 백 번 읽고 백 번 쓰는 독서법인 백독백습을 실천했고, 항상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결론은 이것이다. 고전은 다산처럼 읽어라는 것이다. 다산은 초서 독서법으로 고전을 구슬처럼 꿰었다. 그래서 고전의 가치를 극대화 시킬 줄 알았던 위대한 학자였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2. 18:58

 

독서의 참된 정의는 읽기가 아니라 생각하기이다. 이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그래서 필자는 생각하기가 결여된 빨리 읽기 방법인 속독법을 독서법이 아니라고 감히 주장하는 것이다.

 

독서는 사고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고, 그것이 또한 독서의 정의다. 마음속에 반드시 새겨야 할 것 같다. 독서에 대한 정의가 잘못되면 독서를 아무리 많이 해도 인생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은 그 어떤 보물보다 더 귀하다. 바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다.

 

칸트는 [프롤레고메나]에서 형이상학은 이성을 위한 하나의 도야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도야된 인간의 이성은 인류 공동체에게 훌륭한 보호막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필자가 독서 혁명 프로젝트를 할 때 참여하신 분들에게 4주 동안 전수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독서에 대한 의식 변화다.

 

이번에는 숭실대학교와 문학동네 아템포가 후원을 아낌없이 해 주어, 멋진 숭실대학교에서 4주 동안 '독서 혁명 프로젝트2기' 과정이 열렸다. 부산, 여수, 울산, 대구, 대전 할 것 없이 매주 토요일 마다 숭실대학교 캠퍼스는 전국에서 독서 혁명 프로젝트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독서 혁명 프로젝트 라는 독서법 수업에 왜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멀리서 비싼 수강료를 내고, 그것도 매주 적지 않은 차비와 시간을 투자해서 오는 것일까?

 

멀리서 오는 사람 중에는 여수에서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 사람은 지금까지 4천 권의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이렇게 독서에 대해 많은 경험과 독서력도 상당한 수준의 사람이 왜 독서 혁명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일까?

 

물론 많은 참여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장 큰 목적은 '4주 만에 독서 천재로 도약'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4주 만에 독서 천재로 도약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한 페이지가 통으로 읽히게 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한 번에 다섯 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라. 하루 열 시간 독서를 꼬박 해도 한 권도 다 읽지 못했던 사람들이 4주 동안의 독서 혁명 프로젝트에서 실시하는 독서 스킬 향상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 열 시간 독서를 하면 최소한 다섯 권에서 열 권 이상의 책을 독파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단 기간에 도약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세계 어디에 가서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세계 최강의 독서 스킬 향상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독서 혁명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는 이렇게 속독하고 통독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성과는 독서를 통해 '깊은 생각, 넓은 생각, 높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의식을 완전하게 바꾸는 것이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한 옛 선인들의 말이 결코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생각하지 않고, 지식만 주입하면 독서는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된다. 그것도 타인에게, 세상에게 큰 해를 끼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지식이 없는 착한 사람은 타인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고, 지식이 있는 악한 사람은 타인에게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지식도 있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독서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시간 독서를 했다면 최소한 십분의 일은 생각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독서를 하는 데 있어서 생각하고 비판하고 취사선택하고 융합하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 나가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가서 많이 생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는 그런 책이 좋은 책임을 알아야 한다.

 

위대한 작가나 영웅이나 박사라고 해서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큰 자만이다. 어떤 위대한 작가도 정답을 알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답이란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답이 있는 그런 책은 절대로 조심해야 한다. 고전의 위대함은 정답이 없고, 위대한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을 읽어라는 것이다. 고전은 기본적으로 많이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고전을 가까이 하는 자는 조급하거나 근시안적인 시야를 가진 상태에서 벗어나 느긋해 질 수 있고, 많은 위기 상황에서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고전의 위력인 것이다. 고전을 가까이 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위기 상황 때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인 것이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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