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최고의 학자, 한국 최대의 실학자,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던 다산 정약용은 필자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다. 책을 통해 필자는 그에게서 배우고 또 배웠다. 평생 배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전 독서법이다.

 

오래 전 위인들의 삶을 책을 통해 접하고, 책을 통해 매일 배우고, 가르침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법은 학생이 스승에게 매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대로 그 배움대로 집에 와서 실천하고, 사회에 나가서 행동하고, 직장에서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나은 고전 독서법이 어디 있을까?

 

바로 이런 고전 독서법이 결국 조선조 최고의 학자인 정약용이 실천한 실학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고전은 실학자처럼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방대한 글을 남긴 조선조 최고의 학자이며, 삶과 학문이 나누어지지 않았던 위대한 학자였다. 그래서 필자가 존경하고 스승으로 삼는 것이다. 그 당시 정약용을 억압하고, 유배를 보낸 세도가들은 이름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정약용은 자자손손 오래도록 이름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다산은 그의 든든한 지지자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마흔의 나이에 정계에서 쫓겨나게 되고,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말이 유배 생활이지 가난과 결핍으로 점철된 혹독한 세월이다. 물리적인 환경보다 더 혹독한 것은 정신적인 환경일 것이다.

 

시쳇말로 잘 나가다가 그만 망하게 되고, 주 활동무대인 세상에서 쫓겨나 시골로 귀양을 가게 되면, 더 이상 삶의 희망도, 미련도, 열정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배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3년 안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갑자기 병이 나고, 심지어 죽는 사람도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다. 매일 출근해서 갈 곳이 있고, 자신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해 주고, 강하게 해 주지만, 정년 퇴직을 하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이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심리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유배지로 귀양을 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이다. 건강만 챙겨도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다산 선생은 달랐다.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그는 마치 유배 생활을 40세부터 18년 동안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할 정도로 유배 생활이 그의 인생의 최고의 전성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 관리와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가 다산 정약용 선생을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토록 가난하고 결핍되고 혹독한 세월을 그가 인생의 최고 전성기로 반전시킬 수 있었던 힘은 결국 붓과 책이었다.

 

그가 독서와 집필을 통해 귀양을 오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책을 읽고, 방대한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유배 생활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1년 365일 그에게 허락된 것은 유배지에서의 기거일 뿐이다. 여행도, 휴가도, 취미 생활도, 친구나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다산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다산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 두고, 그의 놀라운 독서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고전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다산처럼 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산이 강조한 독서법은 먼저 바탕을 세우는 독서법이다.

 

"독서에는 반드시 바탕을 먼저 세워야 한다. 무엇을 바탕이라고 하는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할 수 없으니, 학문에 뜻을 두려면 반드시 바탕을 세워야 한다. 무엇을 바탕이라고 하는가. 효도와 공경이 바로 그것이다. 모름지기 효도와 공경에 먼저 힘써 바탕을 세운다면 학문은 저절로 몸에 베게 된다. 학문이 몸에 배면 독서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효도와 공경이라는 바탕을 세우면, 학문이 몸에 배게 되고, 독서는 저절로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효도와 공경은 인간의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마음이다. 즉, 독서를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 필자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3년 동안 다양한 독서법으로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하면서 처음 6개월 동안은 정말 바탕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 낭비식의 독서를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6개월 동안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지만, 그것은 모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독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부터 점차 독서라는 것이 제대로 되기 시작했고, 점차 독서력의 엄청난 도약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6개월 전과 후의 차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바탕이다.

그 당시의 6개월 전에는 그저 마음 관리 없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6개월 이후부터 마음 관리를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6개월 후 부터는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순수한 열정, 순전한 마음으로 모든 이들을 공경하고,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비우고, 낮추는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독서의 기술도 달라졌다. 하지만 독서의 기술, 독서의 방법이 달라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독서를 하는 필자의 마음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산의 말처럼, 바탕을 세우자, 마음이 달라졌고, 마음이 달라지자, 독서의 방법과 기술도 달라졌다. 그러자 알게 모르게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과 점차 닮아졌고, 학문하는 이유와 세상에 대한 세계관과 철학관이 다산을 닮아가게 되었다.

 

그러자 다산처럼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500권을 집필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필자도 다산처럼 닮아지게 되자, 2년 동안 45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집필하는 것은 출간하는 것보다 쉽다. 출간을 하기 위해서는 집필된 원고를 다듬고, 편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얼추 다산 선생의 집필 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다산 선생의 독서력이 필자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그의 다른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통 그는 백 권의 책을 열흘 만에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필자는 보통 하루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읽는다기 보다는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산처럼 읽고, 쓰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런데 평범했던 필자가 위대한 조선조 최고의 학자와 비슷하게 닮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전 독서의 위력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이 고전 독서의 힘인 것이다.

 

자기계발서만 읽었다면, 벤츠를 사고, 부자가 되고, 성공했을 것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부산물이 아닐까?

 

인문 고전을 읽었기 때문에 필자는 다산 정약용, 세종대왕처럼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 분들의 발꿈치도 쫓아가지 못했지만, 평생 노력하고 독서에 매진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산이 쓴 많은 책들 중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쓴 책들도 있다. [소학주관]이라는 책이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을 보면, 독서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지금 내가 슬슬주 1만 섬을 얻었다 하더라도 꿰미로 꿰지 않으면 어디 간들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요즘 학문하는 방법도 이와 마찬가지다. 구경과 구류 백가에 나오는 수많은 책의 이름과 항목들이 모두 슬슬주다. 이것을 꿰미로 꿰지 않는다면 이 또한 얻는대로 곧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정약용 선생은 독서를 해도, 반드시 정리하고 요약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여야 자신의 것으로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필자가 쓴 독서법 책인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초서 독서법과 의식 독서법을 합하여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필자는 명명한 바 있다. 여기서 초서 독서법은 책을 눈으로만 보면 읽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는 문제점을 개선한 독서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 새롭게 생긴 생각들과 주견들을 노트에 정리하고, 필기하고, 요약하면서 책을 읽는 방법이 바로 초서 독서법이다. 여기에 의식 독서법은 책을 읽을 때 마음을 먼저 집중하고, 마음을 관리하면서 책을 읽는 독서법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바탕을 먼저 세우고 독서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필자가 쓴 세 번째 독서법 책인 '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독서법을 그대로 재현시킨 것이고, 그것을 현대식으로 바꾸어, 현대의 독자들이 자신의 독서력이 초급이든, 중급이든, 고급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체적으로 실제 사례를 들어 풀어 써 준 현대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을 읽으면서 눈으로만 읽으려고 하는 것은 자만이다. 왜냐하면 눈으로만 읽어서는 절대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산 선생의 말대로 얻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반드시 꿰어야만 가치 있는 보석이 되는 법이다. 고전 독서도 바로 이와 같다. 한두 번 눈으로만 읽고 그 책의 진짜 가치를 다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법으로 지금까지 그나마 유행했던 것이 토론 독서법인 것이다. 하지만 토론 독서법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 토론해 줄 친구들, 사람들이 필요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양의 고전 독서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 독서법보다는 초서 독서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이다. 필자가 토론 독서법보다 초서 독서법을 추천하는 이유는 또 있다.

 

토론 독서법은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생활 방식이 다른 것이 너무 많다. 생활 방식만 다른 것이 아니다. 당연히 지역적인 환경과 생활환경의 차이로 사고 방식도 다르다. 그런 것들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영향을 주어, 결국 DNA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세계 그 어떤 나라 백성들보다 음주가무에 강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K-POP이 전 세계를 사로잡는 이유가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DNA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양인과 서양인들의 가장 큰 차이는 사고 방식과 사고 프레임의 차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이런 차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문과 책들을 통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차이점 중의 하나가 서양인들은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할 때 사고력이 향상된다는 것과 이와 반대로, 동양인들은 혼자서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글씨를 쓸 때 사고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식 수업, 토론식 독서법은 동양인들보다는 서양인들에게 최적화된 독서법이고 수업이다.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기 보다는 동양인들에게 맞는 독서법을 실천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필자가 교육학자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필자는 교육학 학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방대한 책을 통한 지식과 이론적 근거 때문만이 아니다.

 

실제로 독서력의 도약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초서 독서법을 통해 가장 큰 도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필자가 혼자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토론 독서법보다 초서 독서법을 강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세종대왕, 모택동, 다산 선생, 정조, 박지원 등 많은 위인들이 초서를 통해, 즉 붓을 들고 쓰는 독서법을 통해 위대한 도약을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모택동이 위대한 중국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남다른 독서법 때문이었다. 그가 남긴 위대한 말을 보면 곧 알게 된다.

 

"붓을 들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모택동은 누구보다도 더 붓을 들고 쓰면서 독서를 하는 사람이었다. 세종대왕은 또 어떤가? 백 번 읽고 백 번 쓰는 독서법인 백독백습을 실천했고, 항상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결론은 이것이다. 고전은 다산처럼 읽어라는 것이다. 다산은 초서 독서법으로 고전을 구슬처럼 꿰었다. 그래서 고전의 가치를 극대화 시킬 줄 알았던 위대한 학자였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2. 18:58

 

독서의 참된 정의는 읽기가 아니라 생각하기이다. 이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그래서 필자는 생각하기가 결여된 빨리 읽기 방법인 속독법을 독서법이 아니라고 감히 주장하는 것이다.

 

독서는 사고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고, 그것이 또한 독서의 정의다. 마음속에 반드시 새겨야 할 것 같다. 독서에 대한 정의가 잘못되면 독서를 아무리 많이 해도 인생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은 그 어떤 보물보다 더 귀하다. 바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다.

 

칸트는 [프롤레고메나]에서 형이상학은 이성을 위한 하나의 도야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도야된 인간의 이성은 인류 공동체에게 훌륭한 보호막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필자가 독서 혁명 프로젝트를 할 때 참여하신 분들에게 4주 동안 전수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독서에 대한 의식 변화다.

 

이번에는 숭실대학교와 문학동네 아템포가 후원을 아낌없이 해 주어, 멋진 숭실대학교에서 4주 동안 '독서 혁명 프로젝트2기' 과정이 열렸다. 부산, 여수, 울산, 대구, 대전 할 것 없이 매주 토요일 마다 숭실대학교 캠퍼스는 전국에서 독서 혁명 프로젝트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독서 혁명 프로젝트 라는 독서법 수업에 왜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멀리서 비싼 수강료를 내고, 그것도 매주 적지 않은 차비와 시간을 투자해서 오는 것일까?

 

멀리서 오는 사람 중에는 여수에서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 사람은 지금까지 4천 권의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이렇게 독서에 대해 많은 경험과 독서력도 상당한 수준의 사람이 왜 독서 혁명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일까?

 

물론 많은 참여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장 큰 목적은 '4주 만에 독서 천재로 도약'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4주 만에 독서 천재로 도약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한 페이지가 통으로 읽히게 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한 번에 다섯 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라. 하루 열 시간 독서를 꼬박 해도 한 권도 다 읽지 못했던 사람들이 4주 동안의 독서 혁명 프로젝트에서 실시하는 독서 스킬 향상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 열 시간 독서를 하면 최소한 다섯 권에서 열 권 이상의 책을 독파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단 기간에 도약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세계 어디에 가서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세계 최강의 독서 스킬 향상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독서 혁명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는 이렇게 속독하고 통독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성과는 독서를 통해 '깊은 생각, 넓은 생각, 높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의식을 완전하게 바꾸는 것이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한 옛 선인들의 말이 결코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생각하지 않고, 지식만 주입하면 독서는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된다. 그것도 타인에게, 세상에게 큰 해를 끼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지식이 없는 착한 사람은 타인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고, 지식이 있는 악한 사람은 타인에게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지식도 있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독서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시간 독서를 했다면 최소한 십분의 일은 생각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독서를 하는 데 있어서 생각하고 비판하고 취사선택하고 융합하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 나가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가서 많이 생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는 그런 책이 좋은 책임을 알아야 한다.

 

위대한 작가나 영웅이나 박사라고 해서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큰 자만이다. 어떤 위대한 작가도 정답을 알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답이란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답이 있는 그런 책은 절대로 조심해야 한다. 고전의 위대함은 정답이 없고, 위대한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을 읽어라는 것이다. 고전은 기본적으로 많이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고전을 가까이 하는 자는 조급하거나 근시안적인 시야를 가진 상태에서 벗어나 느긋해 질 수 있고, 많은 위기 상황에서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고전의 위력인 것이다. 고전을 가까이 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위기 상황 때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인 것이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8. 2. 17:59

 

나이가 들어가면서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실험 결과를 보면 창의성을 기른다는 말은 모순인 것 같다. 오히려 창의성을 유지하는 것이 교육이 해야 할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와 토론, 프로젝트 수업, 체험활동, 그리고 진로와 관련된 경험 등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이자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생각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사물과 현상을 본질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능력은 창의성의 기초가 되는 비판적 사고로부터 출발하며 이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의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으로부터 얻어진다.

 

독서의 목표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서 비판적 사고를 갖춘 지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교육은 창의성을 기르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동서고금의 명저를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아이들은 스스로를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 자각하게 되고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고 자신과 세계의 관계에 대하여 보다 성숙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명저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비판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려는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한 지성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독서는 책을 읽는 것이다. 그것은 문자를 사용하게 된 이후부터, 특히 인쇄술의 발전 이후 정보나 지식의 전달이 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는 정보를 유통하고 지식을 재생산하는 다양하고 새로운 매체가 존재하니 독서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매체가 다양한 정보를 쏟아냄에 따라 오히려 제대로 정보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보유통의 걸림돌이 생기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신매체들은 즉각적이고 쉽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파급력과 영향력이 매우 크므로 이런 매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모티머 J. 애들러, <독서의 기술>, 범우사, 2011)

 

인터넷, 텔레비전, 라디오, 잡지 등을 통해 사람들은 교묘한 설득에서부터 신중하게 선별된 정보와 통계에 이르기까지 별로 힘들이지 않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잘 정리된 자료들을 제공받는다. 그런데 이것들이 어찌나 효과적으로 포장되어 있는지 시청자나 독자들은 그 의견을 그대로 자신의 사고 속에 주입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즉각 그대로 재생시킨다는 게 문제이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게 위험하다. 생각이 없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적 의미로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들이 전달하는 정보나 지식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어떠한 매체에서 얻은 정보든 그것을 제대로 읽고 재해석해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독서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요즘 제대로 된 독서를 위해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독서토론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독서는 자신과 저자와의 대화이다. 책을 읽는 것은 끊임없는 질문으로 저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고 저자의 문제의식을 파악하고 자신의 주체적 사고로 재정리하는 것이다. 이때 독서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는데 독서란 혼자서 하는 행위라 주관적인 지식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론 다양한 주장을 담은 책들을 고루 읽음으로써 자신만의 생각에 갇히거나 오류에 빠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는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독서는 토론과 함께해야 온전해진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생각을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아집에 갇히는 것을 피할 수 있고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함께 의미를 탐구하면서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토론이 중요한 이유는 좋은 토론을 통해서 소통과 협력, 다른 것을 인정하는 자세 등 민주시민적 가치까지 습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브루타 교육에서 토론을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하브루타 교육이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전 세계 인구의 0.25%도 안 되는 유대인이 전 세계 노벨상 수상자를 20% 이상 배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이유를 그들의 독특한 교육법인 하브루타에서 찾고 있는데, 이 교육의 핵심은 그들의 경전인 탈무드를 읽고 정답이 없는 문제로 토론하는 것이다.

 

독서, 하면 역시나 유태인 출신인 아인슈타인을 빼놓을 수 없다. 수학때문에 낙제를 한 위대한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인문고전 독서광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해서 특허청 말단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매일 저녁 인문고전독서클럽을 운영하였다. 수학을 못하면서도 사물과 현상에 대한 직관력을 가졌던 그의 힘은 바로 독서와 토론으로 부터 나왔음을 스스로도 강조하였다. 또 한 사람의 과학자 레더포드도 독서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독서와 더불어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생각 없이 책을 읽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외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훌륭한 인문고전 독서가였다는 사실은 독서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독서가 좋다고 해도 잘못 읽으면 독이 된다. 그래서 독서교육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겉핥기식의 독서이다. 한 권을 읽더라도 깊게 제대로 읽어야 한다. 독서는 여행과 같다. 해외여행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에는 한 번 해외에 나가는 것이 일생의 꿈이었다. 그래서 한 번 나간 김에 최대한 많이 보는 것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찍고 오기'라고 불리는 이런 여행에서는 갔다 왔다는 자랑거리 외에는 별로 얻는 것이 없다. 여행을 하는 진짜 목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아침독서나 독서록 같은 것에 찬성하기가 어렵다. 독서프로그램은 주로 초등학교에서 많이 이루어지는데 대게 다독을 강조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렇게 다독으로 아이들을 경쟁시키다 보니 한 아이가 6년 동안 수천 권의 책을 읽는 일이 벌어진다. 대단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책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용의 이해보다는 빨리 읽는 것에만 매달리게 된다. 책을 읽는 목적은 무엇일까?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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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독서교육의 사례를 한 번 생각해보자.

EBS 다큐프라임에 소개된 경기도의 모 초등학교의 사례인데 딱 한 권의 책으로 5학년 국어수업을 일 년간 진행한 사례가 있다. 이런 수업이 나오게 된 것은 아마도 경기도교육청에서 명저를 수업에 직접 활용하는 교육을 강조한 것이 배경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한 권의 책을 정해서 그것을 일 년 수업의 교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책이 교과서가 되는 것이다. 이 수업에서는 책을 천천히 다 같이 읽으면서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가면서 내용을 파악하다 보니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어휘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정확히 뜻을 이해한 후 넘어간다. 국어교과의 목표인 어휘습득, 내용파악 등이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 한 권만으로 수업을 하면 교육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까 우려하는 교사나 학부모들에게 충분한 답이 될 듯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책에 나오는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토론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나와 다른 다양한 생각을 접하게 되어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이 수업은 책에 나오는 나무를 학교 주변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책에 기술된 생활이나 문화와 자신의 삶을 비교해 보면서 다른 과목의 교육목표까지 포괄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통합교과적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을 아이들이 문단을 나누어서 글과 삽화로 표현하는 과정도 있는데, 이렇게 삽화로 표현하려면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므로 아이들은 내용을 깊게 생각하게 되고 창의성을 키우게 된다. 책 한 권으로 국어수업을 진행하지만 과학, 음악, 미술, 사회, 역사까지 섭렵하면서 아이들은 분리된 지식의 벽을 넘어 통합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통찰력이 생긴다. 이런 사례를 보고 국어교과서라서 책 한 권으로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상력의 문제이다. 다른 과목도 책을 활용해서 수업이 가능하다. 같은 어학과목인 영어는 물론이고 사회, 역사 등의 과목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며 과학과목의 경우도 일부 단원의 경우 시도해볼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수업은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이 생긴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스스로 알아가는 즐거움을 얻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수업이 가능하려면 교사들의 도전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교과서를 이용하면 지도서에 따라서 단계별로 진행하면 되지만 이런 수업에서는 교사가 새롭게 모든 것을 기획해야 하며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교사는 몇 번씩 책을 읽고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목표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교사의 이런 노력은 아이들에게 다른 수업에서 기대할 수 없는 놀라운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혁신학교, 행복한 배움을 꿈꾸다 / 이성대 신안산대학교 부교수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7. 24. 21:04

 

'인문학 고전 100권'의 비밀_ 세인트 존스 대학

 

미국 메릴랜드 주의 작은 도시, 아나폴리스에 특별한 대학이 있다. 학생 수는 600명에 불과한 작은 사립대학이지만 아이비리그와 같은 명문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세인트 존스 대학이다. 세인트 존스 대학은 1696년 전통적인 교양학과만을 가르치던 킹 윌리엄 스쿨이 전신으로, 1937년 교과를 개정하고 지금의 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세인트 존스 대학이 명성을 얻은 이유는 다른 대학과 차별화한 독특한 교육 과정 때문이다. 우선 이 학교에는 별도의 전공이 없다. 선택 과목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학 4년 동안 학생들은 학년별로 모든 교과 과정을 똑같이 배우고 교양 학사 학위를 딴다.

 

학기 말에는 학생이 들었던 4~5개 수업의 담당 교수들이 모여서 교수들이 구두로 학생을 평가한다. 소수 정예의 수업이라 교수들이 그 학생의 생각 패턴이나 화법을 다 꿰고 있어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조언들이 이 자리에서 나온다. 성적표는 원칙적으로 비공개이다. 외부 제출용으로만 사용하고 학생이 원할 때에만 보여준다.

 

세인트 존스 대학에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꽤 있다. 이 대학 2학년 이창재 씨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곳으로 유학 온 경우다. 제작진을 만난 그는 대학에 들어와 맞이한 첫 학기를 "죽을 맛" 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한국에서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수업 시간은 자는 시간이고 공부는 집, 학교 자습실 아니면 학원에서 했다고 한다.

 

대학에 와서도 토론하고 대화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세인트 존스의 모든 수업은 토론 수업이었다. 입학 초기에는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정작 말이 안 나와서 한마디도 못한 채 수업을 마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때는 맨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한국 유학생들은 누구나 창재 씨의 문화 충격을 공감하고 있었다. 현재 1학년인 오현재 씨도 세미나에서 처음 2주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학생들이 느끼는 문화 충격은 그것 말고도 또 있었다.

 

2학년 박주찬 씨는 "수업이 끝났는데 아무도 안 일어났어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밥 먹으러 가서도 수업에서 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고 한다.

 

교수가 강의를 마치자마자 학생들이 서둘러 강의실을 떠나는 우리 대학과는 다르게 학생들은 수업 이후에도 끊임없이 토론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제작진이 캠퍼스를 찾았을 때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는 책을 읽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교내 벤치에서도 책을 읽고 잔디에 누워서도 한 손에 책을 들고 있다. 책을 읽다가 생긴 질문들은 다시 친구들과 열띤 토론으로 이어진다. 캠퍼스 한쪽에 서너 명이 모인 자리에서도, 식당에서도 어김없이 토론이 이뤄졌다. 학생들은 무슨 책을 이처럼 열심히 읽고 토론하는 걸까?

 

학교에서 만난 니콜라스가 읽고 있는 책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학자인 토마스 홉스가 1651년에 쓴 책 [리바이어던].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을 국가에 비유해 쓴 사상 철학이다. 다른 한쪽에서 한 학생이 읽고 있는 책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플루타르코스가 고대 영웅들에 대해 기술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다.

 

이 대학에서 책 읽기는 수업을 듣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학생들은 오늘 있을 학년별 세미나 수업에 들어가기 위해 책을 읽으며 궁금한 점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학년별로 교과 과정이 같기 때문에 같은 학년의 학생들은 같은 책을 들고 있다. 학생들이 든 책에 손때가 많이 묻어 있는 흔적으로 보아 적어도 두세 번은 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의 구성원도 다양하다. 명문대를 다니다 온 학생,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온 학생, 안식년인 대학 총장까지.

 

책 읽는 풍토가 세인트 존스 대학에 자리잡은 이유는 이 학교만의 독특한 커리큘럼에 있다.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는 '100권의 책'이 있다. 100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 이것이 대학 4년 동안 하는 공부의 전부이다.

 

교과 과정도 간명하다. 세미나와 수학, 언어는 4년, 생물학, 화학, 물리학이 포함되는 과학은 3년, 음악은 1년을 배운다. 학점도 매기지 않는다. 세미나 수업은 본격적인 토론 수업으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쓴 책부터 단테, 스피노자, 흄이 쓴 책까지 다양하게 공부한다. 그밖에 서양고전을 기초 소양으로 해서 과목별로 나누어 수업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신입생은 논리학을 탄생시킨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을 생물학을 시작하는 식이다.

 

수학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점, 선을 정의하는 단계부터 시작한다. 단순하고 간단해 보이는 법칙이지만 토론을 하다 보면 내가 아는 것은 진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OECD 국가에서도 학업 성취도 1, 2위를 다투는 우리나라 학생들로서는 왜 이런 기초적인 것부터 배워야 하는지 의아해할 정도로 쉽게 느껴지는 수업도 많지만 갈수록 그 수준은 높아진다.

 

과학은 실험 수업이지만, 실습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토론을 거친다. 예를 들어 영국의 물리학자 뉴턴의 에너지 보존 법칙을 실험한다고 하자. 두 개의 공이 서로 부딪치면 충돌 전과 후에 공이 같은 속도로 접근하거나 서로 멀어지는데 이때 어떻게 에너지가 보존되는지를 토론하는 식이다. 자신이 하는 실험의 개념부터 정리하는 것이다.

 

대충 책을 읽고 아는 척하며 수업 시간을 넘기려고 하는 학생은 이 학교에서 버티지 못한다.

 

시험 공부가 아닌 생각 공부

 

대학 4년 동안 책 100권을 읽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세인트 존스 대학은 미국에서도 공부 많이 시키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하루 읽어야 할 책의 쪽수만 해도 평균 300~400쪽에 다다른다.

 

제작진은 한국 유학생인 은지 씨를 따라 세인트 존스 대학의 자랑이라고 하는 세미나 수업에 들어가 실제로 어떤 수업을 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해가 저물어 어둑해질 무렵, 저녁 8시에 세미나 수업이 시작됐다. 세마나는 보통 일주일에 두 번, 밤늦은 시각에 시작된다. 대학 홈페이지에 들어가 세미나에서 읽어야 할 쪽수를 확인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

 

커다란 테이블에 빙 둘러 앉은 학생 수는 15명, 놀랍게도 이 교실에는 교수가 두 명 있다. 학생 수도 적은데 왜 수업에 두 명의 교수나 필요한 걸까? 3학년인 매트 브라운은 두 명의 교수가 있어서 책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을 갖게 되어 좋다고 했다. 수업에 다른 의견, 다른 목소리가 있으면 새로운 관점들이 생기고 토론도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이 학교 패트리샤 록 교수는 여기에 대해 두 명의 교수가 대화의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대부분의 대화를 이끌어가지만, 두 명의 교수가 글 내용에 관한 상이한 해석을 내리기도 하고 다른 요소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서로 다른 시각을 발견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에 관한 여러 가지 다양성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수업시 시작되자 질문이 꼬리를 물고 토론이 벌어졌다. 다른 학생들의 말에 기죽은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다. 노트 필기를 하는 학생도 없다. 필기를 하다 보면 대화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책 한 권을 펼쳐 놓고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학생들은 토론에 열중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교수가 가르치는 말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교수는 조용히 학생들의 말을 들을 뿐이다. 토론을 들으며 간혹 질문을 던지는 것, 이것이 교수가 하는 일이다.

 

같은 수업에 들어간 제이슨 팁튼 교수는 수업에서 교수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수업 도중에 흥미롭고 몰입력 있는 말은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는 척 하는 걸 없애는 데 몇 년이 걸렸다는 제이슨 팁튼 교수의 말처럼 교수가 수업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수업을 하는 건 다른 대학에서는 보기 힘들다.

 

 이러한 태도는 교수를 프로페서가 이나라 튜터라고 부르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차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튜터는 수업의 안내자, 또는 배움에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과거 지식의 소유자로 여겨졌던 교수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학생 스스로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고, 대화가 주제에서 벗어나면 방향을 다시 잡아주는 교수의 역할을 잘 표현한 말이다.

 

책 읽기와 토론 중심의 세미나를 1년 넘게 하게 되면 입을 뗄 줄 모르던 평범한 한국 학생들도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진다.

 

처음 이 대학에 와서 문화 충격을 느꼈던 창재 씨도 대학에 다니면서 일어난 변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슨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얘기해요. 다른 사람이 얘기하고 있고, 만약에 틈을 안 주면 이런 식(두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등의 제스처)으로 '나 얘기하고 싶다'는 걸 보여줘요."

 

자기 의견을 말하는 데 막힘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말하는 건 실전의 문제라며 배움에 있어서 계속 말하려고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2시간의 세미나가 끝난 밤 10시. 학교 안 뜰은 방금 수업을 마친 학생들로 북적였다. 학생들은 여기서도 토론을 그치지 않았다. 각자 세미나를 끝낸 학생들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 시간을 위해 저녁에 세미나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시간이 다 되어서도 학생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우리는 책 읽기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책 읽기가 배움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잘 모른다. 특히 고전을 요약 정리본으로 읽고, 책 한 권 읽을 시간조차 없는 초, 중, 고교 생활을 보낸 유학생들은 책 읽기를 통해서 달라진 점을 이렇게 말했다.

 

2학년 박주찬 학생은 "궁금증이 계속 생긴다고 해야 하나, '왜?'라는 질문을 계속 하게 돼요. 그게 가장 핵심인 것 같아요. 원래 알지만 말을 하면 또다른 게 보이니까. 얘가 이 말을 했으니까 나도 이 생각이 나서 생각이 끊이지 않게 돼요" 라고 말했다.

 

2학년 송원경 학생도 말을 하면 "아 내가 진짜 이걸 배우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책 읽기는 스스로 공부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지식도 만나고, 알지 못하는 것이 나오면 '왜?'라는 궁금증이 발동하기도 한다.

 

책 읽기가 토론과 만나면 더욱 폭발적인 힘을 갖는다.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들을 경청하면서 새로운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공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암기로는 얻을 수 없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책 읽기의 목적은 생각하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저자의 생각과 주장이 실린 글이다. 이를 테면 고전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길게는 몇백 년 전 저자가 살아온 시대의 생각과 주장을 마주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나 세태 등을 알게 된다. 전체의 흐름이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면 책을 넘기기가 힘들다. 그래서 책 읽기를 두고 맥락을 이해하고 지식들을 구조화하는 과정이라고도 말한다.

 

이렇게 책 읽기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쌓으면 저절로 질문이 생긴다. 이를 통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질문을 통해 기존의 선입견이나 편견 등 사고의 틀이 깨지고 생각의 폭은 깊어진다.

 

책을 읽고 나서 한국에서는 주로 독후감 쓰기와 같은 글쓰기와 연결한다. 그런데 세인트 존스 대학은 독서를 질문을 바탕으로 한 토론 수업과 병행시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세인트 존스 대학 총장인 크리스 닐슨은 이를 '대화의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책을 읽고 나서 대화를 함으로써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홉스의 [리바이어던]으로 세미나 수업을 할 때 교수는 '홉스의 사상은 서양 철학에서 위험한 사상으로 인식되는데,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라는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질문은 '그가 완벽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는가?' '위험할 수 있는 다른 사상이나 아이디어들은 무엇인가?' '부정적이고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대중들은 읽지 말아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으로 발전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 읽고 있었는지, 무엇을 몰랐는지 깨달을 수 있다. 특정한 한 가지 해답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게 된다.

 

물론 교수 중에는 세미나가 끝난 뒤에 학생들이 1~2페이지 정도로 글을 쓰도록 해서 자기 생각을 더욱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격려하는 경우도 있다.

 

'왜?'라는 물음이 있을 때 배움에 힘이 생긴다

 

크리스 닐슨 총장은 심리학 개론과 같은 일반적인 대학 교과서를 없애고 고전 작품들로 커리큘럼을 정한 이유를 "다른 책의 기준이 되는 책을 실제로 쓴 저자들의 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상이나 이론을 정립한 원저자들의 책은 흥미롭고 활력이 넘친다. 단순하게 개요를 정리한 게 아니라 중대한 의견을 논리적으로 구성해냈기 때문이다. 그 열정과 상상력 넘치는 주장들을 학생들은 질문을 통해 이해하려고 하고, 자기 스스로 타당성을 검토한다.

 

사람들이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질문에는 배움이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왜'라는 질문을 가지고 배움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질문은 수동적인 학습 상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스스로 배움을 얻으려고 하는 의지가 있고 배움의 과정에 적극 참여할 때 비로소 생긴다. 수업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보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도록 훈련된 한국 학생들에게 질문하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서 한국 유학생들이 세인트 존스 대학에 입학해 교수에게 많이 듣는 말은 "말을 많이 하라, 네가 그냥 말을 한다고 해도 그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라는 독려다. 세인트 존스 대학과 같이 책 읽기로 생각을 키우고 그것을 토론으로 표현하는 환경을 만나면 그 다음에는 폭발적인 배움이 일어난다. 자신이 아는 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입을 여는 것이다. 이는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경험담이기도 하다.

 

취업을 위한 공부는 책 읽기나 토론을 멀리하게 만든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영어 한 단어라도 더 외우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실제로 세인트 존스 대학 졸업생들은 혼다, <뉴욕 타임즈> 등에서 일하며 세계 곳곳의 유명 기업에서도 선호한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있다. 업무와 창의적 사고에 도움이 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분석력, 비판적 사고력을 대학교 때부터 훈련받은 학생들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매력적인 인재들이다. 실질적인 업무 경험은 없어도 그것을 배울 수 있는 기본적인 자질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이 배움을 촉발한다는 메시지는 2009년부터 건국대에서 국제무역학 수업을 하고 있는 레데스마 교수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레데스마 교수는 자신의 수업 방식을 '소크라테스 수업'과 비슷하다고 소개했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거듭하면서 학생들이 참여를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만 수업에서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20여 년간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 레데스마 교수는 처음부터 이런 방법을 썼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나온 정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점차 질문하는 수업으로 바꾸어 갔다고 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판을 깨기 위해서 주도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려고 한다. 수업도 마찬가지로 학생이 참여하는 활동이 있으면, 더 많은 양의 정보를 기억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하게 된다.

 

학생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레데스마 교수는 학점을 산출할 때 참여 점수를 10퍼센트 반영한다. 자신의 질문에 답하거나 질문하는 학생에게 점수를 주는 것이다. 그는 "질문을 하기 시작할 때 학생들은 배우기 시작할 수 있어요. 더 좋은 점은 실수를 하기 시작할 때(학생들의)배움은 가속도를 얻기 시작합니다. 더욱 빠르게 배우지요"라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학기 시작에는 참여 점수가 없다가 학기가 끝나가면서 학생들의 참여 점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참여 점수를 받기 위해서라는 점도 있겠지만, 참여 점수는 질문에 대한 동기 부여일 뿐 학생들이 점차적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수업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진지하게 호기심을 가진 학생들이 나오면 그때는 수업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다른 그룹과 함께 지식을 공유하려고 하고, 다른 학생들의 호기심도 폭발한다. 이른바 전시 효과, 남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효과다.

 

다만 교수가 "그것은 바보 같은 질문이야"라고 말하지 않고 모든 질문과 응답에 "괜찮다"고 말해 주거나 "더 좋은 응답이 나오는지 봅시다"정도로 말할 뿐인데도 말이다.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다큐프레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7. 10. 22:47

 

보통 무엇인가가 생각나지 않을 때 아무거나 휘갈겨 쓰다 보면 생각이 나는 경우가 있다. 쓰면서 손가락을 움직이게 되는데, 이때 뇌가 각성이 되고 깨어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학자들이 모두 필기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도 손가락의 움직임이 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다산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500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공부법 '초서'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베껴쓰면서 손가락을 부단히 움직이며 뇌를 자극하고 단련시켜 수많은 저서를 남길 수 있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남다른 공부법인 '백독백습'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종대왕이 독서를 좋아한 것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그치만 세종대왕이 좋아했던 것은 독서만이 아니다. 그는 눈으로 읽는 독서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 태종이 주는 책이면 어떤 책이든 밤을 세워가며 읽었고, 내용을 그대로 따라 썼다고 한다. 한 번 읽고 한 번 쓸 때마다 '바를 정' 자를  표시하면서 백 번 읽고 백 번 썼다. 결국 손가락을 부단히 움직였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이 있다. 그냥 독서를 할 때는 의식이 살아나지 않았지만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하면서 의식이 깨어나고, 독서한 만큼 머리에 무엇인가가 쌓이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독서노트에 옮겨 쓴다. 손가락을 움직여서 무엇인가를 쓰는 것은 뇌를 깨우고 단련시키는 행동이다. 필기를 하면서 외우고 공부하면 오래 남고 기억도 잘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등 기업,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회사와 성공한 사람을 보면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뇌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습관과 기업 문화, 그리고 환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악기 연주를 비롯한 손가락 활용과 글쓰기가 평범한 두뇌를 깨우고 변화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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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퍼센트 뇌를 활용해 성공한 또 다른 인물,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해 살펴보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어떻게 해서 그토록 위대한 천재가 될 수 있었을까? 1993년 다양한 분야의 천재들을 연구한 앤더스 에릭손은 '재능은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논문은 천재들에 대한 연구로 기념비적인 논문이 되었으며, 그 결과 수천 편의 후속 논문들을 탄생시켰다. 그 결과 천재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앤더스 에릭손의 주장처럼 후천적 재능으로 천재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천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멈추지 않는 인내심 때문이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2의 뇌'라 불리는 '손'에서 찾을 수 있다. 다 빈치는 엄청난 양의 원고와 노트, 메모를 남길 만큼 손으로 무엇인가를 쓰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37세부터 약 30년간 5000쪽 분량의 자필 원고를 남겼다. 그것은 양손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엄청난 양의 노트에 메모를 했다. 그 결과 우뇌와 좌뇌가 균형 있게 발달하여 다방면의 천재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 빈치가 '양손을 사용하여 엄청난 양의 글을 썼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의 다산 정약용은 '둔필승총'이라는 말을 남겼다. 재주가 둔한 사람이라도 필기를 계속하면 총명한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천재로 만든 것이 바로 '둔필승총'이다.

 

악기를 연주하라

 

한국, 중국, 일본 국민들의 지능지수는 세계 일등 수준이다. 그 이유는 '외부로 나온 뇌'인 '손'을 잘 활용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손이 뇌 대부분의 영역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뇌과학에서 이미 밝혀졌다. 손가락을 많이 활용하고 이용하는 것은 뇌를 자극하여 뇌를 잠에서 깨우는 것과 같다.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머리가 좋아지는 것도 이런 원리이다. 피아노뿐 아니라 손가락을 사용해 악기를 연주하면 뇌가 단련된다는 연구 결과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중 미국 온라인 우수 논문 검색 시스템 <1000 생물학 보고 능력>에 소개된 인간의 뇌와 악기 연주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이 연구를 주도한 사람은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심리학자 루츠 잰케교수로, 그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일주일에 한 시간씩 4~5개월 동안 꾸준히 악기를 배우게 했다. 그후 뇌와 IQ 점수를 악기 배우기 전과 후로 나누어 비교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악기를 배우면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 그리고 노인까지도 머리가 좋아진다. 실제로 IQ까 평균 7점이나 올랐으며 음성을 듣고 처리하는 정보인식 능력, 기억력, 운동감각까지 모두 좋아졌다. 악기 연주를 하면 뇌의 형태와 기능이 모두 변하기 때문에 학습 능력 중에서도 외국어 능력이 향상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넓어진다는 재미있고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악기 연주를 좋아했던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손가락을 사용하여 악기를 리듬감 있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뇌의 많은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협동해야 하며, 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뇌의 모든 부분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손가락을 사용하여 피아노 연주를 하면 지능이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연구에서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캐나다의 신경외과 의사 와일더 펜필드가 발표한 '호문클루스(연금술사들이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인조인간의 일종)'의 모형이다. 그는 간질환자의 치료와 수술 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대뇌와 신체 각 부위간의 분포 관계를 발견해 모형을 만들었다. 이 모형을 보면 손과 연결된 뇌신경세포의 양이 가장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뇌는 손가락에 많은 부분이 할당되어 있다는 것이다. 양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눈으로 악보를 인지하면 다시 눈이 양 손가락의 움직임을 통제한다. 이와 동시에 피아노 소리를 귀로 듣고, 그것을 피드백하기 위해 뇌는 분석, 인지, 명령, 그리고 음악적 이해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피아노 연주가 다른 어떤 악기보다도 뇌 활성화에 좋은 것이다. 이는 손을 움직이면 뇌신경을 광범위하게 깨우는 효과가 있음을 의미한다.

 

피아노를 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지닌 것이 바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양손가락을 골고루 눌렀다 땠다하기 때문에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과 완전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피아노 학원을 안 다녀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 않을까. 손을 쓴다고 다 천재가 될 순 없겠지만 손과 뇌가 연결되어 있고 다양한 연구결과가 있는 걸 보면 손을 자극하는 것이 뇌를 자극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당신의 뇌를 경영하라,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7. 5. 09:41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책을 많이 읽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을 오랫동안 지도해 본 경험이 있거나 최근의 수학 학습 트렌드를 이해한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필자는 수업 시간에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혹시 너 책은 많이 읽는 편이니?"

그럼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니오." 라고 대답한다.

 

글을 많이 읽어 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확실히 독해력이 떨어지고 문제에 나와 있는 정보들을 효과적으로 정리하지 못해 그저 문제가 어렵다고만 생각한다. 그런 경우는 교과 수학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특히 사고력 수학 문제에서 그 증상이 더욱 심해지게 마련이다.

 

요즘은 사고력 문제가 대세라고 할 정도로 교과에서도, 학원에서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학생들이 각자의 학습 수준에서 해결하지 못할 수학 문제는 없다. 다만 학생들은 문제에 나와 있는 많은 정보를 찾지 못해 수학을 어렵게만 느끼는 것이다.

 

수학은 정보 찾기 싸움이다. 형사가 사건의 모든 과정을 퍼즐로 맞춰 나가듯이 논리 정연하게 해석하는 것처럼 학생도 수학 문제에 들어 있는 정보들을 잘 찾아내어 순서에 맞게 풀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내 아이가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문장이 긴 수학 문제를 읽는 것조차 싫어한다면 먼저 꾸준한 독서를 권한다.

 

우선 글이나 문장과 익숙해져야 긴 서술형 지문을 읽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문제를 읽는 것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면 답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렵다. 우선 서술형 문제를 부담없이 읽어 내고 효과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독해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영재 사고력 수학, 박종훈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6. 24. 22:40

 

http://m.newsfund.media.daum.net/m/episode/804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6. 1. 19:54

 

독서는 사색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독서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필자에게는 공부가 독서이고 독서가 공부이다. 겉모습과 단어는 달라도 본질과 뿌리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였던 카를 야스퍼스의 표현을 빌려서 하면 다음과 같다.

 

"자기의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파멸한다."

 

우리의 존재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 인정과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곧 불행과 파멸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행복하고 풍성한 삶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배려하고 인정하고 관심을 넓혀 다른 사람과 마주하는 삶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람과 마주하며 세상과 다른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도록 해주는 힘과 도구는 바로 독서인 셈이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과 세상을 더욱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상대를 정확하게 알면 알수록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독서는 자기의 성을 파괴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교각을 창조해나가는 것이다. 새로운 교각을 창조해 나가기 위해서는 독서를 통해 다양하고 좋은 재료들을 얻어야 하고, 그 얻은 것을 가지고 교각을 창조해나가야 한다.

 

교각을 창조해 나가는 방법은 고민하는 것이고, 사색하는 것이고, 사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독서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사색하고 고민하여 사고력을 확장시켜 나가기 위한 것이다.

 

독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하는 이유가 지식을 확장하고 남한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라고 생각한다. 물론 독서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사실에 대해 배우고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힘들게 독서를 하면서 겨우 지식만 얻게 된다는 것은 수영장에 갔다 오면서 수영장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도 하지 않고 목욕만 하고 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면서 심신을 건강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풀고,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고, 물살을 가르는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진정 수영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저 수영장에 가서 이런 것들을 다 느끼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채 수영만 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서는 새로운 지식만 쌓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사고력을 확장시키고, 고민을 하고, 사색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안철수는 독서를 이런 식으로 하는 인물이다. 2009년 2월 20일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설을 읽으면 줄거리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신 주인공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관심이 갔어요. 예를 들어 [금삼의 피]를 읽으면서 '왕인데 왜 이렇게 불행할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왜 화를 내지?' 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해봤어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니까 정작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스토리를 잊어버리더군요."

 

필자는 이 기사를 보고 나서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정작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스토리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제대로 된 독서일까? 라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제대로 된 독서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필자 역시 2009년 2월의 겨울을 잊을 수 없다.

 

필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독서를 시작했던 계절이 바로 그 해 겨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독서가 무엇인지,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독서의 가장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수많은 책을 섭렵하고 혹독하고 치열하게 책에 파묻혀 살다 보니 하나씩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독서의 가장 큰 유익은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다.

 

"독서의 가장 큰 유익은 사고의 확장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깨닫는 데 4년 정도가 걸렸다. 그것도 하루 종일 책만 읽는 생활을 4년 동안 하고 말이다. 안철수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매스컴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은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권의 책이라도 거기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사실 독서에서 글을 읽는 만큼 중요한 것은 사색입니다. 책에 나온 내용을 자신의 경험이나 현재 상황에 대입해 생각해보고, 다른 책과도 비교해 보거나 연관지어서 생각해 보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과정은 책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방법이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요약본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가 디지털타임스와 2003년에 인터뷰한 내용이다. 그의 말처럼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사색이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색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은 자신의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 자신의 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교각을 창조해 나가는 일과 같은 것이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지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협한 성안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공부와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라는 안철수의 말이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님을 우리 모두 명백히 알아야 한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때 나는 항상 책을 통해서 먼저 그 세계를 간접 경험함으로서 그 세계로 진입해 들어갔다."

 

안철수의 이 말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책을 통해 먼저 그 세계를 간접 경험함으로써 그 세계에 진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책을 통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간접 경험하는 도구는 바로 사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독서를 그저 지식의 확장만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독서를 지식의 확장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은 독서를 아무리 해도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다.

우리의 세계를 넓힌다는 것은 독서를 통해 사색을 하면서 미지의 세계에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철수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서 방법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즉, 그가 말하는 유익한 책읽기의 열쇠는 '사색'이었다.

그렇다면 사색한다는 것, 즉 생각한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생각하는 바로 그것으로 우리의 인생과 미래가 형성된다고 할 수도 있다.

 

"인생은 우리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처럼 인생을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의 사고가 우리의 인생이며, 지금의 '우리'라는 존재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생각이고 사고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자신을 만들어 주는 것도 자신의 생각이며 동시에 실패한 자신을 만들어 주는 것도 역시 자신의 생각이다. 생각은 작은 자신을 거인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반대로 거인이었던 자신을 작고 보잘것없는 소인배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나약한 자신이 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도 있고, 강한 인간이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인간은 생각하고, 그 생각은 곧 현실을 창조하여 현실로 인간의 눈에 나타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현실과 환경은 인간의 생각의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즉, 생각에는 창조의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생각은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큰 위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극히 소수만이 이러한 생각의 위력을 깨닫고 위대한 생각과 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평범한 사람들은 특별히 위대하거나 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마다 사고와 의식의 수준이 정해져 있어서 그 수준과 범위를 저절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볼 때 우리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어제 생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어제 생각했던 그 생각들을 오늘 또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우리들의 삶이 그토록 어제와 다른 삶을 살지 못하고 변화가 힘든 것이다.

 

인간은 하루에 보통 7만 가지에서 8만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하며 산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 많은 생각 중에 80% 이상의 생각들이 바로 어제했던 생각의 틀과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쳇바퀴 돌듯 생각의 쳇바퀴를 매일 자신도 모르게 돌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제와 다른 삶을 살고 싶지만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조용한 절망의 삶을 우리가 평생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우리 스스로 생각의 틀과 한계를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비범한 사람들을 가르는 것이 바로 생각의 차이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틀과 한계를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쉽게 뛰어 넘고 벗어날 수 있게 해주어 어제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아 갈 수 있게 해주는 데 비결이 있다. 그것이 바로 '독서'인 것이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적은 사람들보다 좀 더 나은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이유도 이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이유도 이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롭고 낯선 곳을 여행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새롭고 낯선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는 것이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라."

 

중국 명나라 말기의 대학자인 고염무가 남긴 천고의 명언이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게 되면 무엇보다 자신의 사고와 의식의 틀과 한계를 벗어나 도약을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의 수준과 범위를 높이고 넓히는 것이다.

우리가 높은 수준의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는 평범한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생각의 틀 속에 사로 잡혀 평범한 삶밖에는 살지 못한다. 하지만 위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위대한 생각의 틀 속에 사로 잡혀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위대해지는 것이다. 한번 뿐인 인생을 시시하게 살고 싶다면 독서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독서를 반드시 해야 한다. '위대한 생각을 길러라.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생각보다 높은 곳으로 오르지 못한다.' 라고 말하는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을 명심하자.

 

위대한 생각을 스스로 기를 수는 없다. 집을 지으려고 해도 건축자재와 재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 이층집을 지으려는 사람은 그 만큼의 재료가 있어야 하고, 63층 빌딩을 짓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만큼의 재료가 있어야 한다. 독서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독서를 많이 하여 사고와 의식의 수준이 향상되고 도약한 만큼의 인생을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 하듯, 머릿속에 책이 5천 권 이상 들어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꿰뚫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다." 고 한승원 작가는 말했다. "책을 읽어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거야. 인류와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책을 봐야 해. 책을 안 읽는다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모른다는 거지." 라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말한다.

 

필자가 추천하는 독서는 다독이다. 백 권의 책을 읽은 사람과 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의 의식 수준의 차이는 열 배가 아니라 백 배도 될 수 있고, 천 배도 될 수 있다. 한 권의 책이란 작가의 인생의 일부분 또는 사상과 사고의 일부분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롭고 낯선 하나의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세상이 백 개인 사람과 만 개인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큰 격차가 생기게 된다.

 

워런 버핏이나 오프라 윈프리,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가 모두 엄청난 책벌레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책을 적게 읽거나 읽지 않는 사람들과는 생각 자체가 다르다. 생각의 범위와 수준이 평범한 사람의 그것을 이미 뛰어 넘은 사람들인 것이다.

앙드레지드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니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그는 한 권의 책조차도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런데 만약에 한 권이 아니고 만 권의 책을 읽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만 권의 책을 읽어 본 경험이 있는가?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작해 보라. 만 권을 읽어본 경험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뛰어 넘을 수 없는 큰 간격이 있기 마련이다.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이라고도 불렸던 성당시대의 시인인 두보는 이런 말을 했다.

 

"만 권의 책을 읽으면 글을 쓰는 경지가 신과 같아진다."

 

19세기 한국사에서 최고의 인물 중의 한 명인 추사 김정희 역시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을 담아야 그것이 흘러넘쳐 그림이 되고 글씨가 된다.' 라고 했고, 중국 북송 때의 최고의 시인 소동파도 '만 권의 책을 읽으니 비로소 신과 통한다.' 라고 했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 알량한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목표인가? 그것보다는 만 권의 책, 십만 권의 책을 읽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는다면 최소한 당신의 삶은 어제와 달라질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당신의 현재 인생에 복잡하고 풀기 힘든 문제들로 가득 차 있는가? 그렇다면 독서를 통해 사고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사고와 의식을 도약시켜야 한다.

 

그것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오늘 당면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사고 수준으로는 도저히 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의 사고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누군가 필자에게 독서의 가장 큰 유익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독서의 가장 큰 유익함은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독서의 가장 큰 유익함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고의 확장, 그리고 그러한 확장을 통한 위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말이다. 우리가 위대한 생각, 큰 생각을 하게 되면 평범한 것에 매몰되지 않게 된다. 우리가 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큰 생각을 하고 위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 남들이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볼 수 있게 되고, 그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점검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고 말했다. 즉, 우리는 삶에 가치를 부가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사색과 자기 점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색은 인생을 보다 가치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인생의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사색은 주도적이고 당당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이 사색의 힘이다. 하지만 사색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하기 힘들고, 귀찮고, 지겨운 과정이며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토록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 더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나 여가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인생을 점검하고 사색하는 데 사용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분노, 과거의 일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등에 빼앗기는 시간이 자신의 삶과 미래를 계획하고 점검하며 창조적인 사색을 하는 데 투자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책을 통해 사색의 질을 높인 사람은 생각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 가도 환영을 받고 리더가 된다. 그들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이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고, 왜 살아야 하고, 왜 이 길을 가야 하는 지에 대한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존 맥스웰은 저서 [생각의 법칙]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생각이 뛰어난 사람은 언제나 수요가 부족하다. '어떻게'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 일자리를 가질 수 있지만 '왜'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의 보스가 될 것이다. 생각이 뛰어난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며,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가 모자라는 법이 없다. 또한 그들에게는 언제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이 있다."

 

생각이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독서를 하는 방법이 있다. 안철수의 생각이 뛰어난 이유는 그가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많은 독서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안철수에게 배워야 할 법칙 중의 하나는 독서를 통해 사색하는 것이다.

 

_ 김병완, [안철수의 28원칙] 중에서

 

김병완 - 대구 대건고, 성균관대, 삼성전자 공채37기. 삼성전자에서 10년 이상 연구원으로, 6 시그마 전문가로 직장생활을 했다.

회사생활에서 갑자기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고, 과감하게 인생의 길을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부산에 내려와 3년 동안 도서관에서 목숨을 걸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3년 동안 읽은 책이 9000권을 넘었다. 그리고 지금은 만 권을 충분히 넘었다. 누구나 만 권의 책을 읽으면 책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는 것 중에 책 보다 더 나은 것은 절대 존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 대표작인 [48분 기적의 독서법]을 비롯해서,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마흔 행복을 말하다]

[단사리 마음혁명], [이건희 27법칙] 등이 있다.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5. 28. 23:54

 

스티브 레빈은 자신이 지은 '지식을 경영하는 전략적 책 읽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의 회로 안에서만 머물게 된다. 그러나 독서를 하면 상대의 회로로 드나들 수 있다. 우습게도 좀 이상하다 싶으면 이유 없이 싫어하고 무엇이든 정상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상식선에서밖에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제까지 배운 것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면 혼란스러워하고 당황해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합리화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때로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사람도, 이런 사회 현상도 현실적인 삶의 한 축으로 포용한다.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단정 짓지 않으며, 정상인 것을 단순한 정상으로 보지 않고 그 이면에 교차하는 무수한 실타래의 연관성을 주시한다. 이 같은 태도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 책을 사랑하는 건 남녀 간의 사랑과 비슷하다. 책에 몰입하는 동안에는 세상사가 덜 고달프고 근심걱정도 잊어버리며 평범한 일상이 즐거워진다.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책과 사랑에 빠지는 건 연인 간의 사랑 못잖게 마음이 따스해지고 온전한 자아를 이루게 한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 하늘은 맑고 환하게 빛나며 부드러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낭만적인 기분에 젖어든다. 세상 모든 일이 잘될 것만 같다.

 

남녀의 사랑에는 불안이 동반된다. 하지만 책과의 사랑은 영원하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흥분시키고 감동을 주는, 또 변화시킬 수 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 고르는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한 번 다이아몬드 광맥을 발견한 자가 또 그것을 발견하듯이 한 번 성공한 사람은 계속 그 길을 찾아나가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훌륭한 책을 읽으며 호기심이 강하고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이 많다."

 

가슴뛰는 성공 너만의 강점으로 승부하라,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5. 25. 23:58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러면 귀신도 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신의 극치다_ 관중(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세상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인문고전 독서와 다른 인문고전 독서가 있다. 조선 및 중국의 과거시험 공부와 중세 서양의 라틴어 학교 및 근대 독일의 김나지움에서 시행했던 인문고전 독서교육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입 논술시험 공부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겠다.

 

이 다른 형태의 인문고전 독서를 살펴보면 조금 잔인한 면이 발견된다. 일종의 암기 및 주입식 교육이 특징인데,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암기 및 주입식으로 받으면 효과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두뇌가 인문고전을 조금이라도 맛보기 때문에 인문고전을 전혀 접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하지만 인문고전 독서의 진정한 목표인 사고의 혁명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이런 식의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피지배층인 평민보다는 조금 나은 두뇌를 가져야 하지만 지배층보다 뛰어난 두뇌는 가지면 안 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식의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은 동서양 인재들은 지배층의 수족이 되어 평민들을 다스리는 일을 했다.

 

이 낮은 수준의 인문고전 독서는 '반복독서'와 '필사'까지는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인 '사색'부터 달라진다. 낮은 수준의 인문고전 독서에는 사색이 없다. 오히려 사색을 억압하고 소멸하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마울브론 신학교와 김나지움은 인문고전을 접하고 사색으로 충만해진 헤르만 헤세를 억압했다. 헤세는 정신병에 걸렸고, 김나지움을 떠났다. 루소를 읽고 정신적으로 각성한 톨스토이는 대학이 자신에게 가짜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대학을 버렸다.

 

세상에는 동서양 고전을 줄줄 외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마치 대한제국 말기 어느 궁벽진 시골의 서당 훈장이 가졌을 법한 고루한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의아했다. 천재적인 창조성과 감수성이 번쩍이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젊은 정신을 가진,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진정한 인문고전 독서가들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입만 열면 인문고전의 글귀들을 줄줄 읊고 손에 붓만 잡으면 일필휘지로 인문고전의 내용을 쭉쭉 써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천재들의 혁명적인 사상과 삶을 전혀 알지 못해 삶에 아무런 발전이 없고 세상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인문고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두뇌고 열리고 성장하고 변화하기는커녕 그 반대의 결과만 얻는 사람들 말이다. 서애 류성룡은 '서애선생문집'에서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다섯 수레의 책을 술술 암송하면서도 그 의미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사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애뿐만 아니다. 동양의 천재들은 하나같이 진정한 인문고전 독서는 사색에 있고, 사색이 빠진 인문고전 독서는 헛것이요 가짜라고 강조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관중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러면 귀신도 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신의 극치다'라고 했다.

 

공자는 '논어'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했다.

 

맹자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얻는 것이 있지만 그러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주자는 '책을 읽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글을 숙독하면서 정밀하게 생각하라, 그렇게 오래도록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한 중국의 정자는 '읽고 사색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진다'라고 했다.

 

퇴계 이황은 '낮에 읽은 것은 반드시 밤에 깊이 사색해야 한다'라고 했다.

 

율곡 이이는 '책을 읽으면 반드시 그 이치를 궁리하고 탐구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결코 깊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정조는 책을 많이 읽고 그 내용을 잘 기억하는 박람강기는 겉만 아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궁리 및 격물하여 깊이 파고들어라. 그럴 때라야만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궁리 및 격물이 완벽하면 실천은 저절로 뒤따른다."

 

성호 이익은 사색이 없는 독서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단지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입술이 썩고 이가 문드러지도록 책을 읊어도 희고 검은 것에 대해 말은 할 줄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장님처럼 되고 만다."

 

조선의 천재 성리학자 백호 윤휴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으면 사색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얻는 게 있다. 그러나 만일 사색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사색한 것은 글로 기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색하고 기록한 뒤 다시 사색하고 해석하다보면 깨닫고 알게 되어 언행이 두루 통하게 된다. 만일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설령 깨닫고 알게 됨을 얻었더라도 도로 잃게 된다.'

 

고봉 기대승이 밝힌 독서의 핵심은 1)읽어라, 2)외워라, 3)사색하라, 4)기록하라 였다.

 

서양의 천재들도 이구동성으로 인문고전  독서의 핵심은 단순히 눈으로 읽고 입으로 외우고 손으로 베껴 쓰는 게 아니라 마음과 영혼으로 읽어서 깨달음을 얻는 '사색'이라고 말한다.

 

연구 방법론으로서 귀납법을 제창하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을 남겼으며,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열렬하게 읽히고 있는 '학문의 진보' '신기관' '에세이'의 저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후학들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독서는 오로지 사색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명예혁명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고 300년 넘게 철학 분야에서 가장 뜨겁게 연구되고 있는 저서 중 하나인 '인간 오성론'을 쓴 존 로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얻는 것에 불과하다. 그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사색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출간된 지 200년 넘게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연구되고 있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쓴 영국의 천재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 지적했다.

 

"사색 없는 독서는 전혀 씹지 않고 삼키기만 하는 식사와 다를 바 없다."

 

설명이 필요 없는 천재 철학자 쇼팬하우어의 말은 좀 충격적이다.

 

"사색의 대용품에 불과한 것, 그것이 바로 독서다."

 

핵물리학의 아버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자신은 온종일 독서하고 공부하고 연구한다며 자랑하던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자네는 도대체 언제 사색하나?"

 

우리 시대의 천재인 앨빈 토플러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통찰력의 근원은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입니다."

 

천재들은 어떻게 사색했을까? 인간의 수준을 초월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사색을 했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의 이야기부터 하자.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던 것 같다. 그가 열두 살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서당 훈장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님께서(독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훈장이 대답했다.

"당연히 과거에 합격하는 일이지."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성현이 되는 것을 첫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잘못된 인문고전 독서와는 철저하게 담을 쌓고 독서한 왕수인은 스무 살이 되던 무렵 주자의 책에서 우주의 이치가 모든 사물 즉 한 그루 나무나 한 포기의 풀에도 있다는 글을 읽고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사색을 시작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정원에 있는 대나무 한 그루를 사색하면서 우주의 이치를 깨친다는 목표를 세웠다. 친구는 3일 만에 포기했지만 그는 계속 대나무를 바라보면서 사색에 몰두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혹사해가면서 사색했던지 7일째에 그만 병이 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색은 7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그 뒤로도 우주의 이치를 깨치기 위한 사색을 계속했지만 큰 진전이 없었다.

 

대나무 사건이 있고 15년 뒤인 서른다섯 살 때의 일이다. 그는 조정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그만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어 초주검이 되도록 곤장을 맞았고, 오지 중의 오지인 귀주의 용장이라는 곳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독충과 싸우면서 움막을 짓고 물을 긷고 나무를 하고 밭을 개간했다. 하지만 그런 인간 이하의 환경도 그의 뜨거운 사색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어느 날 밤 그는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은 이미 성인이 되기에 충분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우주의 이치를 마음속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한낱 사물에 불과한 대나무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 잘못된 일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 아홉이었다. 무려 20여 년에 걸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색을 한 결과 주자의 철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자신만의 새로운 철학, 심즉리를 창시했던 것이다. 바로 양명학의 시작이었다.

 

사색을 하다가 병에 걸릴 정도로 치면 왕수인은 조선의 천재성리학자였던 화담 서경덕을 따라갈 수 없다. 화담도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던 듯하다. 그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부모가 나물을 캐오라는 심부름을 보냈다. 화담은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다. 부모는 아이가 나물을 광주리 가득 캐느라 늦었겠거니 하고 광주리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생각만큼 나물이 많지 않았다. 그런 일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부모가 이유를 물었다. 화담이 대답했다.

 

"나물을 캐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땅에서 한 치쯤 멀어지고 다음 날에는 두 치쯤 멀어지고 그다음 날에는 세 치쯤 멀어지고 그런 식으로 차츰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새를 관찰하면서 그 이치를 깊이 사색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터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늦었고, 광주리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이토록 천재적인 자질을 타고난 화담이었지만 인문고전 독서만큼은 죽을힘을 다해서 했다. 그가 열네 살 때의 일이다. 글방에서 '상서'를 배우고 있는데, '기삼백'이라는 대목에 이르자 선생이 갑자기 그 부분을 건너뛰는 게 아닌가. 화담이 이유를 묻자 선생이 대답했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화담이 설마 하면서 읽어보았더니 과연 너무 어려워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화담이 어떻게 했을까? 선생님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하면서 포기했을까? 아니다. 화담은 천재들의 공통된 인문고전 독서법인 '독서하다가 죽어버려라!"를 선택했다. 그는 책상 앞에 단정하게 앉아서 '기삼백'부분을 반복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천 번을 읽자 보름 만에 깨달음이 왔다. 화담은 그제야 멈추었다.

 

화담은 열여덟 살에 '대학'을 읽다가 격물치지에 관한 구절을 접하고는 깊은 탄식을 토했다. 독서는 우주와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그동안 자신은 그것을 모르고 오직 독서 자체에만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화담의 전설적인 사색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다음 날부터 화담은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단정하게 앉아서 천지만물을 하나씩 사색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싶으면 화선지 위에 천자를 써서 벽에 붙이고는 그 이치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 생각한다. 마침내 이를 깨달으면 다음 사물로 넘어간다. 이게 전부였다. 여러 기록이 전하는바 화담은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밥도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화담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사색을 했던지 3년 만에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사색은 그 뒤로도 3년간 계속됐다. 그러자 놀랍게도 화담의 정신력에 병이 굴하고 말았다. 자연 치유된 것이다. 그렇게 6년 만에 화담은 이의 본원을 깨닫고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로 거듭났다. 화담의 나의 스물네 살때의 일이다.

 

비록 병에 걸릴 정도로 혹독하고 극단적으로 사색에 몰입하여 우주와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동양의 천재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서양의 천재들도 '사색'에 무시무시할 저옫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을 쓰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연회도중 그만 사색에 잠기고 말았다. 연회가 절정에 달할 무렵이었다. 아퀴나스는 갑자기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치면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외쳤다. '좋다, 이제 깨달았다!'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가 루이 9세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국왕에게 엄청난 결례를 범한 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루이 9세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이해해주었고 덕분에 아무 탈이 없었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지인들은 전한다. 그가 사색에 잠기면 그 정신적 에너지와 집중도가 얼마나 치열하고 강렬했던지 그와 같은 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진정한 정신적 고통의 현장에 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 사색은 단순히 생각하기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서 치르는 격렬한 전쟁이었다.

 

페트라르카, 니체, 판데르 발스의 사례는 약간 기괴한 느낌까지 준다.

페트라르카의 하루는 인문고전-독서-필사-사색이 주였는데, 사색의 형태가 조금 남달랐다. 그는 호메로스, 키케로, 세네카, 호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 같은 고대 그리스 로마 작가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러니까 유령과 소통하면서 사색을 했다. 그런 식의 사색은 점점 도를 지나쳤는데 말년에는 환상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인문고전 저자를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누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니체도 쇼펜하우어를 읽고 지나치게 깊이 빠진 나머지 그 사색의 수준이 쇼펜하우어와 상상의 대화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마치 기도를 하듯이 '쇼팬하우어,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쇼펜하우어의 초상화를 보면서 자신을 달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무극성 분자 간의 인력에 관한 이론인 '판데르 발스의 힘'으로 유명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판데르 발스는 당시에 이미 세상을 떠난 철학자 라이튼 요한을 상상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는 사색을 하다가 막히면 바로 상상의 스승에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이 부분을 어떻게 풀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여기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겠습니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런 사색 방법이 그의 두뇌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천재들은 인문고전을 읽고 끝없는 사색에 잠겼고, 사색의 와중에 머리와 가슴을 치는 깨달음을 얻었다. 천재들은 그 깨달음을 기록했다. 마치 여기저기 흩어진 채 빛나고 있는 진주알을 하나의 실로 꿰어서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듯이.

 

사색을 기록하는 방법은 1)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따로 준비한 종이나 노트에 즉시 적는다, 2)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책의 여백에 즉시 적는다, 3) 책 한 장 또는 책 전체를 읽고 사색한 뒤 그것을 독후감식으로 적는다. 이 세가지가 대표적이다.

 

첫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중국 송의 천재 성리학자 장재와 우리나라의 천재 실학자 이익과 서양의 천재 철학자 데카르트가 대표적이다.

 

장재의 집안 곳곳에는 벼루와 먹과 붓과 종이가 있었다고 한다. 사색을 하다가 실마리가 풀리거나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그 즉시 기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기록을 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성호 이익은 책을 읽다가 이해가 잘 안 되거나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이내 사색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깨우침이 있으면 붓을 들어서 바로 적었다. 그는 깨우침을 얻기 전에 사색을 그만 두는 일이 결코 없었다고 한다. 성호는 이 방법을 통해 선대 학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경지에 도달하는 일이 많았고, 결국 자신만의 학문을 정립했다.

 

데카르트는 사색을 통해 서양 근대 철학을 탄생시킨 사람이다. 그의 사색은 왕수인의 격물치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자기 자신의 내면과 세상의 사물들의 본질에 관해 깊이 사색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새로운 철학을 창시했다. 데카르트는 침대에 오래 누워 있기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직업군인이었을 때조차 오전 11시까지는 어김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사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데카르트가 침대에서 일어날 때가 있었다. 사색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노트에 즉시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볼테르와 바흐가 대표적이다. 볼테르는 출간된 지 3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독자들을 설레게 하는 '캉디드'의 저자이다. 그의 인문고전 독서법은 책을 읽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책의 여백에 즉시 적는 것이었다. 매우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던 탓에 그가 책의 여백에 남긴 메모들은 철학적 깊이가 풍부한 것들도 있었지만 '이건 정말 바보 같은 말이야!' 라든가 '정말 재미없군!' 같은 순간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들도 많았다고 한다.

 

천재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책이 무척 귀했던 그 시절에 '루터 전집' 경매행사가 열리자 연봉의 십분의 일에 달하는 거액을 제시하면서 뛰어들었을 정도로 인문고전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일에 열정을 발휘했던 전형적인 인문고전 마니아였다. 그는 개인 도서관에 당시로서는 엄청난 수에 달하는 신학고전들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가 읽은 책에는 각 페이지마다 무수히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고, 여백에는 예외 없이 치열한 사색의 흔적인 메모가 잔뜩 적혀 있었다.

 

세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다산 정약용과 도스토옙스키가 대표적이다.

다산 정약용이 '퇴계집'을 읽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면 바로 세수를 한 뒤 '퇴계집'에 실린 편지 한 편을 읽었다. 그러고는 오전 내내 그 내용을 깊이 음미하면서 사색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색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으면 그 내용을 자세히 기록했다. 후일 다산은 그 기록을 모아서 '도산사숙론'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십대 시절부터 거의 미쳤다고 생각될 정도로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타키투스, 플루타르코스,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단테, 괴테, 실러, 칸트, 헤겔 등 문학, 역사, 철학 고전을 치열하게 읽었고 사색 또한 그렇게 했다. 그렇게 질풍 같은 독서와 불같은 사색을 마치고 나면 그는 마치 열에 들뜬 사람처럼 그 내용을 기록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색 독서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글자 하나를 놓고 깊이 사색하는 정약용의 격물 독서법을 소개한다.

 

다산은 어느 날 깊은 사색 없이 책만 읽는 것은 설령 하루에 백 번 천 번 반복해서 읽더라도 전혀 읽지 않은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단 한 권의 인문고전을 읽고도 그 책의 의리를 환하게 꿰뚫게 되어 마치 수백 권의 인문고전을 읽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독서법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도중에 뜻을 알기 어려운 글자를 만나면, 그 글자의 근본을 터득하고 그 글자가 속한 글의 전체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그 글자를 널리 고찰하고 자세하게 연구하는 것이었다. 즉 자신이 잘 모르는 글자의 어원을 공부하고, 여러 책에서 그 글자가 사용된 문장들을 뽑아서 따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독서법이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이 독서법을 , 하나의 사물을 끝까지 사색하고 탐구하여 그 이치를 깨달은 뒤 다음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깨우치는 일로 넘어가는 주자의 격물 공부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기열전' '자객' 편에 나오는 '기조취도'라는 구절의 '조'자를 예로 들어 그 독서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1. 자서 즉 한자사전에서 '조'의 본뜻을 찾는다.

2. 자서의 내용을 근거로 다른 책들은 '조'라는 글자를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상세히 고찰한다.

3. 다른 책들에서 언급된 '조'의 근본 뜻과 지엽적인 뜻을 뽑느다.

4. '통전' '통지' '통고'등의 책에서 조제의 사례를 모아 책으로 만든다.

 

'논어'를 원전으로 읽다가 '서'라는 글자를 만났는데 처음 보는 글자라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다산의 격물 독서법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1. 인터넷에 접속해서 대형 포털 사이트로 들어간다.

2. 한자사전 검색창에 '서'를 쳐서 알아본다.

3. 책 검색창에 '서'를 치고, 본문검색을 클릭한 뒤 인문 분야를 클릭한다.(실제로 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았더니 143권의 책이 떴다. 그중 아홉 권은 인문고전이었고 나머지는 해설서였다.)
4. '맹자' '중용' '순자' '한비자' '채근담' '논어집주'(주자) '소학' '근사록' '분서' 같은 인문고전에서 '서'가 언급되었음을 확인한다.

5. 위 원전들을 구해서 읽어보고, 각 원전에서 '서'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를 상세히 고찰한다.

6. 각 원전에서 '서'에 관해 언급한 부분, 각 원전에서 사용한 '서'의 본래 의미와 지엽적인 의미를 뽑아서 노트에 정리한다.

* 5, 6번 작업은 본문검색을 할 때 나오는 해설서를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5. 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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