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 청춘도반 여러분, 축 처진 어깨를 볼 때마다, 힘없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려옵니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몸과 마음이 힘들진 않았나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니, 지금을 즐겨도 된다고 아무도 허락해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공부에 집중할 테니 네가 진짜로 살고 싶은 삶은 잠시 보류해두라고, 욕망하지 말라고, 세상의 속도에 집중하라고, 그렇게만 이야기한 것 같아요. 연애를 하고 싶어도, 음악이나 춤을 배우고 싶어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지금은 '공부에 집중할 때'라고 만류한 것 같아요. 대학 가서 마음껏 누리라고 해서 10대를 숨 막히는 도서관과 학원에서 보내고 어렵게 대학에 와보니, 어땠나요? 이젠 취업 준비다, 고시 공부다, 각종 자격증 공부다, 또다시 내 욕망을 잠시 미뤄둬야 할 이유들로 가득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정답인 양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괜찮다는 생각에 지금은 그냥 버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살다 보면 느낄 때가 옵니다. 과연 지금 내가 당연하게 참고 있는 현재의 불온전한 느낌이 미래에 올지도 모를 꿈의 성취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요. 그리고 막상 일을 이루고 나서도 그 일이 내가 꾸었던 꿈이 아닌 우리 부모님이, 아니면 우리 사회가 획일적으로 세워둔 성공의 잣대로 '이걸 해야 해, 이게 성공이야.'라고 강요해 끌려온 꿈은 아니었던가, 하는 불안함이요.

 

운이 좋아서 원하는 회사에 취직이 됐다 해도 막상 들어가 보면 나는 저 아래 말단 '을'이나 '병'일 뿐이고, 내 의견이나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직장 선배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처음 배우는 일들이니까 잘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리고 못하면 선배가 좀 천천히 가르쳐주면 좋은데, 귀찮다는 식의 표정 때문에 능력 없는 스스로를 책망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곳에서 내 인생을 바쳐 일해야 하나 잘 모르겠기도 하고, 아니면 단지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기 위해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 그런 '멘붕상태'가 찾아올 수도 있지요.

 

사실은 저도 그랬어요. 좋은 대학 가면 가족이나 친척들로부터, 아니 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것 같았고, 또 인정받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그걸 만회라도 해볼 요량으로 남보다 더욱 노력했고, 크게 공부에 소질이 없는데도 대학원 공부까지 했던 것 같아요. 물론 돌이켜봤을 때, 그 생활이 불행하지도 않았고 후회스럽지도 않지만, 결국 제가 박사학위라는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었느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면 정말로 솔직히 말해 '교수의 삶이 이런 거였구나.'를  깨닫는 정도였어요. '분석하는 학문적 공부로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알아낸 정도입니다. 그래서 학문에 대한 집착이 떨어져 나간 것 정도가 최고의 소득이었던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묻곤 합니다. 어떻게 스님이 될 용기를 냈느냐고요. 그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타인의 시선'을 그만 좀 의식하고 '내 삶'을 살자는 생각으로 선택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잣대에 맞춰서 평생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걱정하며 죽을 때까지 헐떡이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마음의 본성을 제대로 보고 스스로 깨닫고 싶었어요. 그래요, 어떻게 보면 좀 이기적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용기 있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 번쯤은, 내 평생 단 한순간쯤은 그래도 내가 진정한 '갑'인 인생을 살아봐야 하잖아요. 그리고 내 가슴 한곳에서는 솔직히 미치도록 그렇게 살고 싶잖아요? 원이 없는 삶, 후회가 남지 않는 삶, 한 번쯤은 그런 인생을 꿈꾸잖아요? 내 선택을 남들이 봤을 때 '바보 같은 짓'이라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내가 바라는 삶을 한 번쯤은 살아보는 것이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니까요. 그래야 내가 내 삶을 사랑했다고 세상에 대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내 청춘도반 여러분. 내 스스로가 원하는 삶, 살아도 괜찮습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삶, 이 사회가 전망 좋다고 인정하는 삶이 아닌, 내가 정말로 살고 싶은 삶, 내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삶, 그 삶을 살아도 괜찮아요. 주변에서 안 된다고 뜯어말려도 그들이 내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잔아요? 용기가 부족한 심약한 내 마음이 '정말 그래도 돼?'라고 물어보면, 그래도 된다고 웃어주세요. 남들이 가지 않았거나 아니면 잘 모르는 길을 가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말리는 법입니다. 단지 내 선택에 따른 책임도 온전히 내가 다 감당하겠다, 라는 명확한 마음가짐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말고 내 가슴이 하는 말을 따르세요.

 

부디 한순간만이라도 주변 사람들의 기대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종 같은 인생이 아닌,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쥐고 가는, 주인으로 사는 용기를 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파이팅!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_ 혜민스님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9. 5. 14:48

그의 걱정은 다름 아닌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이런 불안증세가 있어 몸과 마음이 지쳐 갔는데 최근에는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부인인 제인은 이러다 남편 몸이 크게 상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컴퓨터 앞에서 매일 밤 12시가 넘도록 일만 하고, 잠도 깊이 들지 못하고, 항상 바쁘다는 것이다. 물론 열심히 일한 덕분에 학계에서도 인정받고, 교수 승진도 누구보다 빨랐지만 일을 멈출 수가 없을뿐더러, 일이 없으면 계속해서 마음이 불안하다고 했다.

 

밤이 되니 제법 서늘해졌다. 모기를 피해 집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친구는 조용한 첼로 음악을 틀고는 자신은 차 대신 와인을 한잔하겠다며 잔을 채웠다. 오래전 친구는 내게 자신의 유년 시절이 참으로 힘겨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땐 성공했지만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 안에서 화와 짜증으로 푸는 아버지 때문에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특히 술을 마실 때면 아버지는 이상한 사람으로 돌변했고, 가끔씩 손찌검까지 하셨다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피해 집을 떠나 있곤 했고,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친구는 장남으로서 여러 동생을 돌봐야 했다. 아버지가 언제 또 폭발할지 몰라 늘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시간이었다.

 

친구의 어린 시절 상황을 다시 떠올리고 보니 친구의 일중독 현상과 불안증세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일중독이 되는 원인 중 하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해준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뭔가를 잘했을 때만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는다고 느끼며 자랐던 데 있는 것 같아. 자식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칭찬에 아주 인색했던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아. 더군다나 아버지의 주사와 폭력으로 인해 어린 네 마음은 항상 불안했을 것이고, 너를 보호해야 할 엄마마저 집에 없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니. 아마도 아버지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린 네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아버지가 원하는 바를 잘 들어주는 일이었을 거야. 그렇게 자라 성년이 된 지금은 아버지 대신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들어주고 있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내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수 있을 거야."

 

친구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느끼는 불안함의 근원을 찾아보려는 듯했다.

 

"그런데 너는 이미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랑받을 만한 거야. 세상이 너에게 요구하는 것을 잘했을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그전부터 너는 소중한 존재야. 아직도 불안에 떨고 있는 네 안의 내면 아이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고 그 아이를 사랑해줘. 엄마도 없이 동생들을 위해 혼자 아버지의 화를 감당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니?"

 

대화를 나누다 보니 친구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친구는 눈물로 가득한 눈을 한참 동안 감고 있다 차분히 말했다.

 

"그렇구나.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랑받지 못한 꼬마아이가 내 안에 있었구나. 그 아이는 어른인 나에게 자기를 버려둔 채 일만 하지 말고 자기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아.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봤지 내 안에서 떨고 있는 내면 아이에게는 너무도 무심했구나."

 

며칠 후 그 집을 떠나면서 친구를 위해 작은 메모를 남겨놓았다.

 

"넌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여러 번의 힘든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준 큰형 같은 존재야. 너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의지가 되고 고마웠는지 몰라. 그러니 제발 꼭 기억해줘. 네가 큰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나에겐 너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분해."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_ 혜민스님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9. 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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