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최고의 학자, 한국 최대의 실학자,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던 다산 정약용은 필자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다. 책을 통해 필자는 그에게서 배우고 또 배웠다. 평생 배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전 독서법이다.

 

오래 전 위인들의 삶을 책을 통해 접하고, 책을 통해 매일 배우고, 가르침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법은 학생이 스승에게 매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대로 그 배움대로 집에 와서 실천하고, 사회에 나가서 행동하고, 직장에서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나은 고전 독서법이 어디 있을까?

 

바로 이런 고전 독서법이 결국 조선조 최고의 학자인 정약용이 실천한 실학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고전은 실학자처럼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방대한 글을 남긴 조선조 최고의 학자이며, 삶과 학문이 나누어지지 않았던 위대한 학자였다. 그래서 필자가 존경하고 스승으로 삼는 것이다. 그 당시 정약용을 억압하고, 유배를 보낸 세도가들은 이름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정약용은 자자손손 오래도록 이름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다산은 그의 든든한 지지자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마흔의 나이에 정계에서 쫓겨나게 되고,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말이 유배 생활이지 가난과 결핍으로 점철된 혹독한 세월이다. 물리적인 환경보다 더 혹독한 것은 정신적인 환경일 것이다.

 

시쳇말로 잘 나가다가 그만 망하게 되고, 주 활동무대인 세상에서 쫓겨나 시골로 귀양을 가게 되면, 더 이상 삶의 희망도, 미련도, 열정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배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3년 안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갑자기 병이 나고, 심지어 죽는 사람도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다. 매일 출근해서 갈 곳이 있고, 자신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해 주고, 강하게 해 주지만, 정년 퇴직을 하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이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심리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유배지로 귀양을 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이다. 건강만 챙겨도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다산 선생은 달랐다.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그는 마치 유배 생활을 40세부터 18년 동안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할 정도로 유배 생활이 그의 인생의 최고의 전성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 관리와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가 다산 정약용 선생을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토록 가난하고 결핍되고 혹독한 세월을 그가 인생의 최고 전성기로 반전시킬 수 있었던 힘은 결국 붓과 책이었다.

 

그가 독서와 집필을 통해 귀양을 오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책을 읽고, 방대한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유배 생활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1년 365일 그에게 허락된 것은 유배지에서의 기거일 뿐이다. 여행도, 휴가도, 취미 생활도, 친구나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다산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다산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 두고, 그의 놀라운 독서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고전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다산처럼 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산이 강조한 독서법은 먼저 바탕을 세우는 독서법이다.

 

"독서에는 반드시 바탕을 먼저 세워야 한다. 무엇을 바탕이라고 하는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할 수 없으니, 학문에 뜻을 두려면 반드시 바탕을 세워야 한다. 무엇을 바탕이라고 하는가. 효도와 공경이 바로 그것이다. 모름지기 효도와 공경에 먼저 힘써 바탕을 세운다면 학문은 저절로 몸에 베게 된다. 학문이 몸에 배면 독서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효도와 공경이라는 바탕을 세우면, 학문이 몸에 배게 되고, 독서는 저절로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효도와 공경은 인간의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마음이다. 즉, 독서를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 필자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3년 동안 다양한 독서법으로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하면서 처음 6개월 동안은 정말 바탕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 낭비식의 독서를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6개월 동안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지만, 그것은 모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독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부터 점차 독서라는 것이 제대로 되기 시작했고, 점차 독서력의 엄청난 도약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6개월 전과 후의 차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바탕이다.

그 당시의 6개월 전에는 그저 마음 관리 없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6개월 이후부터 마음 관리를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6개월 후 부터는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순수한 열정, 순전한 마음으로 모든 이들을 공경하고,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비우고, 낮추는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독서의 기술도 달라졌다. 하지만 독서의 기술, 독서의 방법이 달라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독서를 하는 필자의 마음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산의 말처럼, 바탕을 세우자, 마음이 달라졌고, 마음이 달라지자, 독서의 방법과 기술도 달라졌다. 그러자 알게 모르게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과 점차 닮아졌고, 학문하는 이유와 세상에 대한 세계관과 철학관이 다산을 닮아가게 되었다.

 

그러자 다산처럼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500권을 집필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필자도 다산처럼 닮아지게 되자, 2년 동안 45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집필하는 것은 출간하는 것보다 쉽다. 출간을 하기 위해서는 집필된 원고를 다듬고, 편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얼추 다산 선생의 집필 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다산 선생의 독서력이 필자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그의 다른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통 그는 백 권의 책을 열흘 만에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필자는 보통 하루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읽는다기 보다는 독파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산처럼 읽고, 쓰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런데 평범했던 필자가 위대한 조선조 최고의 학자와 비슷하게 닮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전 독서의 위력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이 고전 독서의 힘인 것이다.

 

자기계발서만 읽었다면, 벤츠를 사고, 부자가 되고, 성공했을 것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부산물이 아닐까?

 

인문 고전을 읽었기 때문에 필자는 다산 정약용, 세종대왕처럼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 분들의 발꿈치도 쫓아가지 못했지만, 평생 노력하고 독서에 매진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산이 쓴 많은 책들 중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쓴 책들도 있다. [소학주관]이라는 책이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을 보면, 독서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지금 내가 슬슬주 1만 섬을 얻었다 하더라도 꿰미로 꿰지 않으면 어디 간들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요즘 학문하는 방법도 이와 마찬가지다. 구경과 구류 백가에 나오는 수많은 책의 이름과 항목들이 모두 슬슬주다. 이것을 꿰미로 꿰지 않는다면 이 또한 얻는대로 곧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정약용 선생은 독서를 해도, 반드시 정리하고 요약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여야 자신의 것으로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필자가 쓴 독서법 책인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초서 독서법과 의식 독서법을 합하여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필자는 명명한 바 있다. 여기서 초서 독서법은 책을 눈으로만 보면 읽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는 문제점을 개선한 독서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 새롭게 생긴 생각들과 주견들을 노트에 정리하고, 필기하고, 요약하면서 책을 읽는 방법이 바로 초서 독서법이다. 여기에 의식 독서법은 책을 읽을 때 마음을 먼저 집중하고, 마음을 관리하면서 책을 읽는 독서법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바탕을 먼저 세우고 독서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필자가 쓴 세 번째 독서법 책인 '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독서법을 그대로 재현시킨 것이고, 그것을 현대식으로 바꾸어, 현대의 독자들이 자신의 독서력이 초급이든, 중급이든, 고급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체적으로 실제 사례를 들어 풀어 써 준 현대식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을 읽으면서 눈으로만 읽으려고 하는 것은 자만이다. 왜냐하면 눈으로만 읽어서는 절대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산 선생의 말대로 얻는 대로 곧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반드시 꿰어야만 가치 있는 보석이 되는 법이다. 고전 독서도 바로 이와 같다. 한두 번 눈으로만 읽고 그 책의 진짜 가치를 다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이다. 그래서 고전 독서법으로 지금까지 그나마 유행했던 것이 토론 독서법인 것이다. 하지만 토론 독서법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 토론해 줄 친구들, 사람들이 필요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양의 고전 독서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 독서법보다는 초서 독서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이다. 필자가 토론 독서법보다 초서 독서법을 추천하는 이유는 또 있다.

 

토론 독서법은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생활 방식이 다른 것이 너무 많다. 생활 방식만 다른 것이 아니다. 당연히 지역적인 환경과 생활환경의 차이로 사고 방식도 다르다. 그런 것들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영향을 주어, 결국 DNA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세계 그 어떤 나라 백성들보다 음주가무에 강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K-POP이 전 세계를 사로잡는 이유가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DNA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양인과 서양인들의 가장 큰 차이는 사고 방식과 사고 프레임의 차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이런 차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문과 책들을 통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차이점 중의 하나가 서양인들은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할 때 사고력이 향상된다는 것과 이와 반대로, 동양인들은 혼자서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글씨를 쓸 때 사고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식 수업, 토론식 독서법은 동양인들보다는 서양인들에게 최적화된 독서법이고 수업이다.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기 보다는 동양인들에게 맞는 독서법을 실천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필자가 교육학자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필자는 교육학 학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방대한 책을 통한 지식과 이론적 근거 때문만이 아니다.

 

실제로 독서력의 도약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초서 독서법을 통해 가장 큰 도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필자가 혼자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토론 독서법보다 초서 독서법을 강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세종대왕, 모택동, 다산 선생, 정조, 박지원 등 많은 위인들이 초서를 통해, 즉 붓을 들고 쓰는 독서법을 통해 위대한 도약을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모택동이 위대한 중국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남다른 독서법 때문이었다. 그가 남긴 위대한 말을 보면 곧 알게 된다.

 

"붓을 들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모택동은 누구보다도 더 붓을 들고 쓰면서 독서를 하는 사람이었다. 세종대왕은 또 어떤가? 백 번 읽고 백 번 쓰는 독서법인 백독백습을 실천했고, 항상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결론은 이것이다. 고전은 다산처럼 읽어라는 것이다. 다산은 초서 독서법으로 고전을 구슬처럼 꿰었다. 그래서 고전의 가치를 극대화 시킬 줄 알았던 위대한 학자였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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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5. 8. 2. 18:58

 

중년 이후의 공부는 치매도 예방한다

 

예부터 공부하는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여러 가지 문헌들을 조사해보면 이 말이 정확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공부하는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일까? 이는 끊임없이 흥미로운 과제를 부과함으로써 뇌를 골고루 활용하고 단련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뇌가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 뇌에서 좋은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어 뇌가 더욱 활성화되고 건강해진다.

 

졸저인 <40대, 다시 한 번 공부에 미쳐라>를 보면 왜 40대에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와 있다. 또 공부를 하면 장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치매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치매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언제나 바쁘게 움직이고, 끊임없이 머리를 사용하여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일수록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놀라운 것이 메리 수녀의 연구 결과다. 그녀는 10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상적인 인지 능력을 유지했지만, 부검 결과 놀랍게도 알츠 하이머병에 걸려서 뇌가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알츠하이머병 전문가들은 이 결과에 주목하며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더라도 지속적으로 머리를 사용하는 활동, 즉 공부와 같은 지적 활동을 꾸준히 하면, 정상적인 인지 능력을 평생 유지할 수 있다고 전한다. 다시 말해, 중년 이후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더 쉽게 치매에 걸리고 증상도 심해지지만,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고 심지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학자이자 공부하는 기쁨을 전파했던 공자는 과연 몇 살까지 살았을까? 지금보다 훨씬 더 과거의 인물이니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아마도 지금의 절반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무려 72세까지 살았다. 유학을 집대성하고 주자학을 창시한 주자 역시 70세까지 살았다. 조선의 명재상이었던 황희 정승은 90세 가까이 살았던 인물이다. 동방의 주자로 불리는 퇴계 이황은 70세까지 살았고, 다산 정약용은 70세 이상을 살았다. 학문의 금기를 깬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 역시 70세 이상, 19세기를 대표하는 학자 최한기도 70세 이상을 살았다. 한국사에서 19세기 최고의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추사 김정희 역시 70세 이상을 살았다. 그리고 이 땅의 수많은 어린이들을 천연두의 위협에서 구해낸 지석영은 80세 이상을 살았다. <열하일기> <연암집> <허생전> 등을 쓴 조선 후기 실학자 겸 소설가인 박지원도 70세 가까이 살았던 인물이다.

 

우뇌를 많이 사용하면 더 오래 산다

 

이공계 공부를 하는 사람들보다 인문계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 산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있다. 뇌내 모르핀이 우뇌에서 먼저 분비되므로 더 장수한다는 것인데 확실히 이공계는 논리적이고 계산을 위주로 하는 좌뇌를 많이 사용하는 반면, 인문계는 우뇌를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이 장수한다고 할 때 그 공부는 수학이나 과학이라기보다는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을 지칭한다고 말할 수 있다.

 

<뇌내혁명>에서는 장수하는 사람들은 모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생활한 사람들이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생활이란 우뇌 중심의 삶이라고 주장한다.

 

"장수하는 사람을 보면, 공통적으로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우뇌 중심으로 살고 있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사회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 생활방법이나 사회에서 걸어가야 할 운명까지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비슷한 생활 조건 속에서 누구는 오래 살고 누구는 일찍 죽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차이는 바로 우뇌 중심으로 사는가, 좌뇌 중심으로 사는가에서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인류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며 따지기 좋아하고 계산적인 좌뇌 중심의 삶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게 되었지만,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우뇌와 좌뇌를 균형적으로 사용할 때 가장 이상적인 존재가 되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좌뇌 중심의 삶은 타인과 경쟁하면서 자기의 것과 남의 것을 따지고 누가 옳은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그런 냉정한 삶이다. 그래서 좌뇌 중심의 삶을 살면 좌뇌 계통의 투쟁적인 호르몬이 많이 분비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현대 교육과 환경이 좌뇌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우뇌 중심의 사고를 하지 않고서는 좌뇌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뇌 중심으로 사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뇌 중심의 삶은 감성과 직관을 중시하는 삶이다. 자유롭게 자신의 직관에 따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건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부를 해도 계산과 분석 중심의 이공계 공부보다는 감성과 직관을 깨우고 자율과 예술을 존중하는 인문학 공부를 해야 우뇌를 깨울 수 있다. 시, 소설, 희곡을 비롯한 문학과 철학, 역사, 예술이 인간의 감성, 삶, 직관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신의 뇌를 경영하라,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7. 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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