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러면 귀신도 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신의 극치다_ 관중(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세상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인문고전 독서와 다른 인문고전 독서가 있다. 조선 및 중국의 과거시험 공부와 중세 서양의 라틴어 학교 및 근대 독일의 김나지움에서 시행했던 인문고전 독서교육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입 논술시험 공부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겠다.

 

이 다른 형태의 인문고전 독서를 살펴보면 조금 잔인한 면이 발견된다. 일종의 암기 및 주입식 교육이 특징인데,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암기 및 주입식으로 받으면 효과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두뇌가 인문고전을 조금이라도 맛보기 때문에 인문고전을 전혀 접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하지만 인문고전 독서의 진정한 목표인 사고의 혁명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이런 식의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피지배층인 평민보다는 조금 나은 두뇌를 가져야 하지만 지배층보다 뛰어난 두뇌는 가지면 안 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식의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은 동서양 인재들은 지배층의 수족이 되어 평민들을 다스리는 일을 했다.

 

이 낮은 수준의 인문고전 독서는 '반복독서'와 '필사'까지는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인 '사색'부터 달라진다. 낮은 수준의 인문고전 독서에는 사색이 없다. 오히려 사색을 억압하고 소멸하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마울브론 신학교와 김나지움은 인문고전을 접하고 사색으로 충만해진 헤르만 헤세를 억압했다. 헤세는 정신병에 걸렸고, 김나지움을 떠났다. 루소를 읽고 정신적으로 각성한 톨스토이는 대학이 자신에게 가짜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대학을 버렸다.

 

세상에는 동서양 고전을 줄줄 외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마치 대한제국 말기 어느 궁벽진 시골의 서당 훈장이 가졌을 법한 고루한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의아했다. 천재적인 창조성과 감수성이 번쩍이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젊은 정신을 가진,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진정한 인문고전 독서가들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입만 열면 인문고전의 글귀들을 줄줄 읊고 손에 붓만 잡으면 일필휘지로 인문고전의 내용을 쭉쭉 써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천재들의 혁명적인 사상과 삶을 전혀 알지 못해 삶에 아무런 발전이 없고 세상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인문고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두뇌고 열리고 성장하고 변화하기는커녕 그 반대의 결과만 얻는 사람들 말이다. 서애 류성룡은 '서애선생문집'에서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다섯 수레의 책을 술술 암송하면서도 그 의미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사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애뿐만 아니다. 동양의 천재들은 하나같이 진정한 인문고전 독서는 사색에 있고, 사색이 빠진 인문고전 독서는 헛것이요 가짜라고 강조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관중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러면 귀신도 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신의 극치다'라고 했다.

 

공자는 '논어'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했다.

 

맹자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얻는 것이 있지만 그러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주자는 '책을 읽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글을 숙독하면서 정밀하게 생각하라, 그렇게 오래도록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한 중국의 정자는 '읽고 사색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진다'라고 했다.

 

퇴계 이황은 '낮에 읽은 것은 반드시 밤에 깊이 사색해야 한다'라고 했다.

 

율곡 이이는 '책을 읽으면 반드시 그 이치를 궁리하고 탐구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결코 깊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정조는 책을 많이 읽고 그 내용을 잘 기억하는 박람강기는 겉만 아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궁리 및 격물하여 깊이 파고들어라. 그럴 때라야만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궁리 및 격물이 완벽하면 실천은 저절로 뒤따른다."

 

성호 이익은 사색이 없는 독서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단지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입술이 썩고 이가 문드러지도록 책을 읊어도 희고 검은 것에 대해 말은 할 줄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장님처럼 되고 만다."

 

조선의 천재 성리학자 백호 윤휴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으면 사색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얻는 게 있다. 그러나 만일 사색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사색한 것은 글로 기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색하고 기록한 뒤 다시 사색하고 해석하다보면 깨닫고 알게 되어 언행이 두루 통하게 된다. 만일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설령 깨닫고 알게 됨을 얻었더라도 도로 잃게 된다.'

 

고봉 기대승이 밝힌 독서의 핵심은 1)읽어라, 2)외워라, 3)사색하라, 4)기록하라 였다.

 

서양의 천재들도 이구동성으로 인문고전  독서의 핵심은 단순히 눈으로 읽고 입으로 외우고 손으로 베껴 쓰는 게 아니라 마음과 영혼으로 읽어서 깨달음을 얻는 '사색'이라고 말한다.

 

연구 방법론으로서 귀납법을 제창하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을 남겼으며,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열렬하게 읽히고 있는 '학문의 진보' '신기관' '에세이'의 저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후학들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독서는 오로지 사색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명예혁명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고 300년 넘게 철학 분야에서 가장 뜨겁게 연구되고 있는 저서 중 하나인 '인간 오성론'을 쓴 존 로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얻는 것에 불과하다. 그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사색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출간된 지 200년 넘게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연구되고 있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쓴 영국의 천재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 지적했다.

 

"사색 없는 독서는 전혀 씹지 않고 삼키기만 하는 식사와 다를 바 없다."

 

설명이 필요 없는 천재 철학자 쇼팬하우어의 말은 좀 충격적이다.

 

"사색의 대용품에 불과한 것, 그것이 바로 독서다."

 

핵물리학의 아버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자신은 온종일 독서하고 공부하고 연구한다며 자랑하던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자네는 도대체 언제 사색하나?"

 

우리 시대의 천재인 앨빈 토플러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통찰력의 근원은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입니다."

 

천재들은 어떻게 사색했을까? 인간의 수준을 초월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사색을 했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의 이야기부터 하자.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던 것 같다. 그가 열두 살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서당 훈장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님께서(독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훈장이 대답했다.

"당연히 과거에 합격하는 일이지."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성현이 되는 것을 첫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잘못된 인문고전 독서와는 철저하게 담을 쌓고 독서한 왕수인은 스무 살이 되던 무렵 주자의 책에서 우주의 이치가 모든 사물 즉 한 그루 나무나 한 포기의 풀에도 있다는 글을 읽고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사색을 시작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정원에 있는 대나무 한 그루를 사색하면서 우주의 이치를 깨친다는 목표를 세웠다. 친구는 3일 만에 포기했지만 그는 계속 대나무를 바라보면서 사색에 몰두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혹사해가면서 사색했던지 7일째에 그만 병이 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색은 7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그 뒤로도 우주의 이치를 깨치기 위한 사색을 계속했지만 큰 진전이 없었다.

 

대나무 사건이 있고 15년 뒤인 서른다섯 살 때의 일이다. 그는 조정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그만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어 초주검이 되도록 곤장을 맞았고, 오지 중의 오지인 귀주의 용장이라는 곳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독충과 싸우면서 움막을 짓고 물을 긷고 나무를 하고 밭을 개간했다. 하지만 그런 인간 이하의 환경도 그의 뜨거운 사색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어느 날 밤 그는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은 이미 성인이 되기에 충분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우주의 이치를 마음속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한낱 사물에 불과한 대나무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 잘못된 일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 아홉이었다. 무려 20여 년에 걸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색을 한 결과 주자의 철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자신만의 새로운 철학, 심즉리를 창시했던 것이다. 바로 양명학의 시작이었다.

 

사색을 하다가 병에 걸릴 정도로 치면 왕수인은 조선의 천재성리학자였던 화담 서경덕을 따라갈 수 없다. 화담도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던 듯하다. 그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부모가 나물을 캐오라는 심부름을 보냈다. 화담은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다. 부모는 아이가 나물을 광주리 가득 캐느라 늦었겠거니 하고 광주리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생각만큼 나물이 많지 않았다. 그런 일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부모가 이유를 물었다. 화담이 대답했다.

 

"나물을 캐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땅에서 한 치쯤 멀어지고 다음 날에는 두 치쯤 멀어지고 그다음 날에는 세 치쯤 멀어지고 그런 식으로 차츰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새를 관찰하면서 그 이치를 깊이 사색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터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늦었고, 광주리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이토록 천재적인 자질을 타고난 화담이었지만 인문고전 독서만큼은 죽을힘을 다해서 했다. 그가 열네 살 때의 일이다. 글방에서 '상서'를 배우고 있는데, '기삼백'이라는 대목에 이르자 선생이 갑자기 그 부분을 건너뛰는 게 아닌가. 화담이 이유를 묻자 선생이 대답했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화담이 설마 하면서 읽어보았더니 과연 너무 어려워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화담이 어떻게 했을까? 선생님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하면서 포기했을까? 아니다. 화담은 천재들의 공통된 인문고전 독서법인 '독서하다가 죽어버려라!"를 선택했다. 그는 책상 앞에 단정하게 앉아서 '기삼백'부분을 반복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천 번을 읽자 보름 만에 깨달음이 왔다. 화담은 그제야 멈추었다.

 

화담은 열여덟 살에 '대학'을 읽다가 격물치지에 관한 구절을 접하고는 깊은 탄식을 토했다. 독서는 우주와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그동안 자신은 그것을 모르고 오직 독서 자체에만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화담의 전설적인 사색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다음 날부터 화담은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단정하게 앉아서 천지만물을 하나씩 사색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싶으면 화선지 위에 천자를 써서 벽에 붙이고는 그 이치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 생각한다. 마침내 이를 깨달으면 다음 사물로 넘어간다. 이게 전부였다. 여러 기록이 전하는바 화담은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밥도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화담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사색을 했던지 3년 만에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사색은 그 뒤로도 3년간 계속됐다. 그러자 놀랍게도 화담의 정신력에 병이 굴하고 말았다. 자연 치유된 것이다. 그렇게 6년 만에 화담은 이의 본원을 깨닫고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로 거듭났다. 화담의 나의 스물네 살때의 일이다.

 

비록 병에 걸릴 정도로 혹독하고 극단적으로 사색에 몰입하여 우주와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동양의 천재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서양의 천재들도 '사색'에 무시무시할 저옫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을 쓰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연회도중 그만 사색에 잠기고 말았다. 연회가 절정에 달할 무렵이었다. 아퀴나스는 갑자기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치면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외쳤다. '좋다, 이제 깨달았다!'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가 루이 9세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국왕에게 엄청난 결례를 범한 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루이 9세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이해해주었고 덕분에 아무 탈이 없었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지인들은 전한다. 그가 사색에 잠기면 그 정신적 에너지와 집중도가 얼마나 치열하고 강렬했던지 그와 같은 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진정한 정신적 고통의 현장에 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 사색은 단순히 생각하기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서 치르는 격렬한 전쟁이었다.

 

페트라르카, 니체, 판데르 발스의 사례는 약간 기괴한 느낌까지 준다.

페트라르카의 하루는 인문고전-독서-필사-사색이 주였는데, 사색의 형태가 조금 남달랐다. 그는 호메로스, 키케로, 세네카, 호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 같은 고대 그리스 로마 작가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러니까 유령과 소통하면서 사색을 했다. 그런 식의 사색은 점점 도를 지나쳤는데 말년에는 환상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인문고전 저자를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누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니체도 쇼펜하우어를 읽고 지나치게 깊이 빠진 나머지 그 사색의 수준이 쇼펜하우어와 상상의 대화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마치 기도를 하듯이 '쇼팬하우어,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쇼펜하우어의 초상화를 보면서 자신을 달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무극성 분자 간의 인력에 관한 이론인 '판데르 발스의 힘'으로 유명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판데르 발스는 당시에 이미 세상을 떠난 철학자 라이튼 요한을 상상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는 사색을 하다가 막히면 바로 상상의 스승에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이 부분을 어떻게 풀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여기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겠습니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런 사색 방법이 그의 두뇌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천재들은 인문고전을 읽고 끝없는 사색에 잠겼고, 사색의 와중에 머리와 가슴을 치는 깨달음을 얻었다. 천재들은 그 깨달음을 기록했다. 마치 여기저기 흩어진 채 빛나고 있는 진주알을 하나의 실로 꿰어서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듯이.

 

사색을 기록하는 방법은 1)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따로 준비한 종이나 노트에 즉시 적는다, 2)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책의 여백에 즉시 적는다, 3) 책 한 장 또는 책 전체를 읽고 사색한 뒤 그것을 독후감식으로 적는다. 이 세가지가 대표적이다.

 

첫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중국 송의 천재 성리학자 장재와 우리나라의 천재 실학자 이익과 서양의 천재 철학자 데카르트가 대표적이다.

 

장재의 집안 곳곳에는 벼루와 먹과 붓과 종이가 있었다고 한다. 사색을 하다가 실마리가 풀리거나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그 즉시 기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기록을 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성호 이익은 책을 읽다가 이해가 잘 안 되거나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이내 사색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깨우침이 있으면 붓을 들어서 바로 적었다. 그는 깨우침을 얻기 전에 사색을 그만 두는 일이 결코 없었다고 한다. 성호는 이 방법을 통해 선대 학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경지에 도달하는 일이 많았고, 결국 자신만의 학문을 정립했다.

 

데카르트는 사색을 통해 서양 근대 철학을 탄생시킨 사람이다. 그의 사색은 왕수인의 격물치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자기 자신의 내면과 세상의 사물들의 본질에 관해 깊이 사색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새로운 철학을 창시했다. 데카르트는 침대에 오래 누워 있기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직업군인이었을 때조차 오전 11시까지는 어김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사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데카르트가 침대에서 일어날 때가 있었다. 사색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노트에 즉시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볼테르와 바흐가 대표적이다. 볼테르는 출간된 지 3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독자들을 설레게 하는 '캉디드'의 저자이다. 그의 인문고전 독서법은 책을 읽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책의 여백에 즉시 적는 것이었다. 매우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던 탓에 그가 책의 여백에 남긴 메모들은 철학적 깊이가 풍부한 것들도 있었지만 '이건 정말 바보 같은 말이야!' 라든가 '정말 재미없군!' 같은 순간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들도 많았다고 한다.

 

천재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책이 무척 귀했던 그 시절에 '루터 전집' 경매행사가 열리자 연봉의 십분의 일에 달하는 거액을 제시하면서 뛰어들었을 정도로 인문고전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일에 열정을 발휘했던 전형적인 인문고전 마니아였다. 그는 개인 도서관에 당시로서는 엄청난 수에 달하는 신학고전들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가 읽은 책에는 각 페이지마다 무수히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고, 여백에는 예외 없이 치열한 사색의 흔적인 메모가 잔뜩 적혀 있었다.

 

세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다산 정약용과 도스토옙스키가 대표적이다.

다산 정약용이 '퇴계집'을 읽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면 바로 세수를 한 뒤 '퇴계집'에 실린 편지 한 편을 읽었다. 그러고는 오전 내내 그 내용을 깊이 음미하면서 사색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색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으면 그 내용을 자세히 기록했다. 후일 다산은 그 기록을 모아서 '도산사숙론'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십대 시절부터 거의 미쳤다고 생각될 정도로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타키투스, 플루타르코스,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단테, 괴테, 실러, 칸트, 헤겔 등 문학, 역사, 철학 고전을 치열하게 읽었고 사색 또한 그렇게 했다. 그렇게 질풍 같은 독서와 불같은 사색을 마치고 나면 그는 마치 열에 들뜬 사람처럼 그 내용을 기록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색 독서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글자 하나를 놓고 깊이 사색하는 정약용의 격물 독서법을 소개한다.

 

다산은 어느 날 깊은 사색 없이 책만 읽는 것은 설령 하루에 백 번 천 번 반복해서 읽더라도 전혀 읽지 않은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단 한 권의 인문고전을 읽고도 그 책의 의리를 환하게 꿰뚫게 되어 마치 수백 권의 인문고전을 읽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독서법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도중에 뜻을 알기 어려운 글자를 만나면, 그 글자의 근본을 터득하고 그 글자가 속한 글의 전체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그 글자를 널리 고찰하고 자세하게 연구하는 것이었다. 즉 자신이 잘 모르는 글자의 어원을 공부하고, 여러 책에서 그 글자가 사용된 문장들을 뽑아서 따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독서법이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이 독서법을 , 하나의 사물을 끝까지 사색하고 탐구하여 그 이치를 깨달은 뒤 다음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깨우치는 일로 넘어가는 주자의 격물 공부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기열전' '자객' 편에 나오는 '기조취도'라는 구절의 '조'자를 예로 들어 그 독서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1. 자서 즉 한자사전에서 '조'의 본뜻을 찾는다.

2. 자서의 내용을 근거로 다른 책들은 '조'라는 글자를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상세히 고찰한다.

3. 다른 책들에서 언급된 '조'의 근본 뜻과 지엽적인 뜻을 뽑느다.

4. '통전' '통지' '통고'등의 책에서 조제의 사례를 모아 책으로 만든다.

 

'논어'를 원전으로 읽다가 '서'라는 글자를 만났는데 처음 보는 글자라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다산의 격물 독서법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1. 인터넷에 접속해서 대형 포털 사이트로 들어간다.

2. 한자사전 검색창에 '서'를 쳐서 알아본다.

3. 책 검색창에 '서'를 치고, 본문검색을 클릭한 뒤 인문 분야를 클릭한다.(실제로 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았더니 143권의 책이 떴다. 그중 아홉 권은 인문고전이었고 나머지는 해설서였다.)
4. '맹자' '중용' '순자' '한비자' '채근담' '논어집주'(주자) '소학' '근사록' '분서' 같은 인문고전에서 '서'가 언급되었음을 확인한다.

5. 위 원전들을 구해서 읽어보고, 각 원전에서 '서'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를 상세히 고찰한다.

6. 각 원전에서 '서'에 관해 언급한 부분, 각 원전에서 사용한 '서'의 본래 의미와 지엽적인 의미를 뽑아서 노트에 정리한다.

* 5, 6번 작업은 본문검색을 할 때 나오는 해설서를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5. 6. 00:30

 

세월호가 있던 날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정말 가만히 있던 아이들도 있었고, 실제 상황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 학생들도 있었다.

위 사건을 계기로 뭔가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스스로 탐구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제기를 내용으로 하는 방송을 본 기억이 난다. 그것이 물음표 교육이 아닐까.

 

'놀랍게도 지난 몇 년 동안 수업 시간에 '왜?"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던 아이들이 '왜?'라고 묻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치 지식의 끝을 보려고 하는 광적인 학자처럼 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일이 없기로 유명하다. 왜 그럴까? 실제로 궁금한 게 없기 때문이다....ㅋㅋ. 물론 교과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물음표를 떠올리는 능력을 잃어버려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이렇게 된 것은 교육제도 탓이다. 공,사교육을 막론하고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그저 머릿속에 지식을 쑤셔넣기만 하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려 20년 가까이 교육을 시키고도 지적으로 무능력한 인간을 만드는 우리나라 교육이 변화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물음표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22%를 배출해낸 유대인 교육처럼 말이다. 인문고전 독서교육 중 철학고전 독서교육은 학생들 스스로 지식의 근본원리, 즉 지혜에 도달할 때까지 '왜?'라고 묻게 만든다. 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한 사람은 오늘부터 철학고전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 이유를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감히 주장하고 싶다. 만일 철학고전 독서교육이 제대로 정착하면 우리나라는 유대 민족보다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함은 물론이고 천재들을 지속적으로 길러내게 될 것이라고.

 

초등학교 교사 시절,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플라톤, 장자, 손자 등을 읽혔다. 아이들은 아침 자습 시간마다 철학고전을 한 페이지 이상 읽고, 그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필사했다. 한때 내가 맡았던 반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그 반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한 건 이상의 굵직한 사고를 친 아이들이 모여 있었던 소위 문제아 반이었다. 책가방에 교과서나 노트는커녕 연필 한 자루도 없는 아이, 수업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서 문방구 앞에 설치된 게임기에서 게임을 하는 아이 정도는 귀여운 편에 속했다. 담배를 피우는 아이, 술을 마시는 아이, 중학생 폭력서클에 가입한 아이, 세상이 싫다며 아파트 단지에 불을 지르려다가 붙잡힌 아이, 다른 학교 아이들의 돈을 갈취하다가 붙잡힌 아이, 못을 잔뜩 박은 각목 같은 불법무기를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제공(?)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게다가 심각한 수준의 학교 부적응 증세로 신경정신과를 주기적으로 다니는 아이도 몇 있었다. 덕분에 우리 반은 3월 진단평가에서 최악의 반 평균점수를 자랑하며 전교 꼴찌를 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좋았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열심히 놀았다. 1~2교시는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놀고, 3~4교시는 근처 공원에서 즐겁게 놀고, 학교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5~6교시는 최신 만화영화를 본 날도 있었을 정도다. 게다가 숙제는 보통 '3잘', 즉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기였다. 그렇게 몇 주를 놀고 나니 아이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노는 것도 좋지만 공부도 가끔씩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놀랍게도 문제아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이 임원진을 통해 전달될 정도였다. 나는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와 함께하는 공부는 너희들이 원해서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소위 '수업'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우리 반은 2학기 때 전교 일등을 했다. 전 학년과 비교할 때 대부분 평균 10~30점 정도 올랐고, 평균 40~50점 이상 오른 아이도 몇 있었다. 초등학교 4년 내내 수학 점수를 30점 이상 맞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아이 두 명이 각각 80점, 90점을 맞는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3월 진단평가에서 학습 부진아 판정을 받았던 10여 명의 아이들이 전부 평균 80~90점 이상을 받는 일이 생겼다. 소위 공부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더욱 멋진 일도 일어났다. 담배와 술을 끊고, 폭력서클을 탈퇴하고, 신경정신과를 다니지 않게 되는 등의 변화가 함께 나타났다. 여기에 대해서는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와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등에서 자세히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 반이 만들어냈던 공부기적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철학고전 독서였다. 물론 대학교수들도 어려워하는 철학고전을 초등학교 공부와도 담을 쌓은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니 고충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철학고전을 읽으면서 두뇌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철학고전만큼은 반드시 읽히고 싶었다. 그래서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러자 고맙게도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수업 시간에 일어났다. 놀랍게도 지난 몇 년 동안 수업 시간에 '왜?'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던 아이들이 '왜?'라고 묻기 시작했다. 그것도 집요하게, 아니 탐욕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이들은 마치 지식의 끝을 보려고 하는 광적인 학자처럼 굴었다.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을 가르쳤던 날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아마도 내가 철학고전을 읽히지 않았다면 수업은 간단히 끝났을 것이다.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을 도출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를 몇 개 풀어주고, 칠판 앞으로 네 명 정도 불러내서 문제를 풀게 하고, 수학 익힘책 문제를 푸는 숙제를 내주며 끝냈을 것이다. 나와 아이들 사이엔 어떤 질의응답도 없었을 것이다. 고작해야 내가 '자 이렇게 이렇게 푸는 거야, 알았지?'라고 질문하고, 아이들은 기계처럼 '네~!'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이들은 삼각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 더 나아가서 삼각형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지, 그는 왜 하필 삼각형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삼각형의 넓이를 왜 구해야 하는지, 삼각형의 넓이 구하는 공식이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이유는 무엇인지 등도 알고 싶어했다. 심지어는 삼각형과 삼각형 넓이 구하는 공식이 인간의 실생활은 물론이고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궁금해하는 아이도 있었다. 부끄럽게도 난 답변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을 솔직히 시인하고, 아이들을 학교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고는 도서관의 책들을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게끔 했다.

 

늘 그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식의 근원을 파헤치고자 하는 '왜?'라는 질문으로 채워진 수업을 몇 번 겪고 나자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도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일념 아래 적게는 몇 권 많게는 십수 권의 책을 마치 지적 전투를 치르듯 빠르고 강렬하게 읽는 독서법을 구사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교과서는, 비유하자면 도서관 요약집이다. 도서관의 문학 서가를 요약해놓은 것이 국어 교과서이고, 과학 서가를 요약해놓은 것이 과학 교과서란 소리다. 그렇다면 도서관을 읽은 아이가 교과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의 기적적인 성적 향상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의 철학고전 독서가 단기간, 그러니까 나와 함께 있었던 시간에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깊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냥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우리 교육의 한계 때문이었다는 정도로만 말하고 싶다. 아무튼 우리 반 아이들은 학년이 바뀌면서 철학고전 독서와 서서히 멀어졌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누구도 철학고전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한 동안 보여줬던 지혜의 빛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따금 생각해본다. 만일 우리 반 아이들이 그 뒤로도 철학고전 독서를 꾸준히 제대로 했다면 지금쯤 세계 또는 한국 지식인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줄 인물이 한 명쯤은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5. 5. 22:52

 

인문고전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작가 이지성, 존 스튜어트 밀 독서법이니 뭐니 해서 둔재도 영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 준 사례를 소개해왔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상위1%의 계층들은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를 보내거나, 고급과외를 통해 주입식이 아닌 토론식, 대화식 교육을 받게 한다. 소크라테스식 질문과 공부를 통해 생각하는 사람, 즉 사고력이 발달된 인재로 키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의 일이다. 독일의 한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하던 카를 비테는 장차 태어날 아이를 성공적으로 교육하고자 플라톤, 에라스무스, 존 로크, 루소, 페스탈로치 같은 위인들이 집필한 교육 서적과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로마의 교육에 관한 문헌들을 연구했는데, 하나같이 19세기 당시 독일의 교육과 '다른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를 비테는 그 책들이 옳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고, 자녀를 그 '다른 교육'에 따라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첫째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장티푸스로 죽었고 둘째는 지능이 현저히 낮았다. 비테는 '하나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벌을 내리십니까?'라고 울부짖는 아내를 위로하면서 아들에게 '다른 교육'을 실시했다.

 

카를 비테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비록 아들이 지능이 떨어지긴 했지만 '다른 교육'을 받으면 얼마든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 그는 태어난 지 15일 된 아들에게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었다. 두 살 때부터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같은 고전을 읽어주었고, 여덟 살 때부터는 혼자 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으로 읽게 했다.

 

카를 비테 주니어의 두뇌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기적처럼 변했다. 그는 고작 아홉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자격을 취득했고 열세 살에 기센 대학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칭송받았다.

 

카를 비테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을 책으로 썼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천재로 키우기를 열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했던 비테의 저서는 20세기에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서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접한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레오 위너는 카를 비테의 책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나머지 기자회견을 열어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카를 비테식 교육을 언급했다. 그의 아들 노버트 위너는 열두 살에 태프트 대학에 입학해서 2년 만에 졸업했다. 열네 살에는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고, 열여덟 살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과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가 되었고, 인공두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 레오 위너의 딸 콘스턴스는 열네 살에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고, 다른 딸 버사는 열두 살에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심리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보리스 사이디스도 아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를 카를 비테식으로 교육했는데 가장 중점을 둔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 그가 '속물과 천재'에서 한 고백을 들어보자.

 

'내 아들은 올해 겨우 열두 살이지만....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그리스어 원문으로 암기하고 있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같은 그리스 고전 원전도 다른 아이들이 '로빈스 크루소'를 읽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는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는 열한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열두 살에는 하버드 대학 수학 클럽에서 4차원 세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100여 명의 교수들을 지적 충격에 빠뜨렸다.

 

태프트 대학 교수 벌도 자녀에게 카를 비테식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실시했다. 그의 아들 애돌프 벌은 열세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서 3년 만에 졸업했고 곧장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딸 리나는 열다섯 살에 하버드대학교 부속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다. 다른 아들 루돌프와 딸 미리엄 역시 각각 열두 살, 열네 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외견상으로는 학교 교육과 학원 교육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학교 교육 하나다. 학원 교육의 목표가 학교 성적 올리기이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은 프러시아(프로이센)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프러시아는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인들과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는 육체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그 두 가지는 강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군사력과 경제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엄청나게 많이 배출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프러시아 지배계층의 눈에 어느 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계층의 자녀가 들어왔다. 그들은 농민의 자녀들에게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가 되는 교육을 시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를 세웠다. 후일 프러시아는 독일제국에 합병되었다. 독일제국은 프러시아의 교육제도를 한층 더 발전시켜서 아예 군대식 학교를 세웠고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영국은 1860년에 의무교육, 즉 공립학교 교육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도 프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숙련된 공장 노동자가 무한정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농민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제도를 그대로 수입해서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했다.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 게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혹시라도 이 말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다음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라.

 

* 군대의 상관은 부하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부하들은 그 명령을 기계처럼 수행한다.

* 공장의 장은 휘하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작업지시를 내리고 노동자들은 그 지시를 기계처럼 수행한다.

* 우리나라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기계처럼 암기한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중고 합쳐서 무려 12년이나 교육을 받고도 지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되기는커녕 좀 심하게 말하면 바보가 되어 사회에 나온다. 대학에 입학해서 다시 4년을 배우고 대학원까지 졸업해도 마찬가지다. 당당히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식이 되기는커녕 제 앞길 하나도 헤쳐나가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하기 일쑤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시키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쌓이는 게 아니라 두 눈의 총기를 잃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학교를 부정하거나 다니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사들이나 교육부에 돌을 던지라는 의미도 아니다. 학교는 다녀야 한다. 그것도 될 수 있으면 최고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자가 없다. 또 교사와 교육부는 프러시아에서 유래된 나쁜 공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문고전을 집필한 위대한 천재들이 우리나라의 학교제도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십중팔구 학생의 두뇌를 죽이는, 창조성을 말살하는, 노예를 만드는,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하루빨리 개혁해야 할, 민족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새롭게 고쳐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할 것이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문고전 저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실시한 교육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깊은 대화를 통해 지혜와 진리를 터득하고 발견해가는 교육이다.

 

새로운 두뇌를 갖고 싶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루 또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을 실천하기 바란다. 위대한 고전을 집필한 인류의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깊은 정신적 대화를 하기 바란다. 그렇게 그동안 받았던 프러시아식 교육을 두뇌에서 털어내고 지혜와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배움의 세계로 들어가기 바란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5. 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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