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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심리학 아카데미에 해당되는 글 4건
- 2017.02.10 감사가 답이다_ 이현수 박사
- 2016.12.16 그래도 엄마가 답이다_ 이현수 박사
- 2016.12.12 많이 걷고 뛰어놀아야 공부를 잘한다_ 이현수 박사
- 2016.11.26 조기유학, 절대로 보내지마라_ 이현수 박사
이제는 내가 답이다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는 애착이 잘 되어 큰 어려움 없이 컸을 것이다. 애착은 인생의 첫 단계를 수월하게 넘기도록 도와주는 부모의 큰 유산이다. 이 유산 덕분에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 펼쳐질 참이었다. 부모라면 애착의 결정적 시기인 아이의 어린 시절을 목숨같이 사수하며 사랑을 퍼부어주어야 한다. 온종일 옆에서 지켜주지는 못하더라도, 하루 일정한 시간은 부모 중 한 사람이 반드시 같이 있어주면서 이 유산을 남겨주어야 한다. 이 유산은 돈과 달리 죽기 전에 한꺼번에 주는 것이 아니라 매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는 매우 힘든 시간이지만 이 시기에 부모로부터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아이가 평생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게 된다면, 그 아이의 절절한 눈물을 딱 한 번만이라도 진심으로 보게 된다면, 왜 목숨같이 지켜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것이다.
아영 씨와 4장에 나왔던 선경 씨는 둘 다 힘들게 살아왔다. 하지만 오랜 기간 심리상담을 받고 우울증 약도 먹으며 급기야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겪을 정도로 훨씬 고통스러웠던 아영 씨와 달리, 선경 씨가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엄마에게서 받은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혜와 사랑이 가득한 어머니 덕분에 이 자산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날마다 불어나고 있었다. 선경 씨는 이미 마음만은 부자였기 때문에 이후 삶이 팍팍해졌어도 나름 늠름하게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 유산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걱정할 것 없다. 아영 씨가 그랬듯이 감사로 자수성가하면 된다. '마음의 자수성가'라는 것은 더 많이 사랑하고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주는 방법을 모른다면, 일단 감사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감사에서 출발하면 긍정 감정의 최고봉인 사랑에도 넉넉히 다다를 수 있다. 하다못해 전두엽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으라' 혹은 '사랑에 대해 생각하라'는 명령이라도 내려보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전두엽은 반드시 그 방법을 찾아낸다. 선경 씨 남편이 비록 사랑이라는 단어가 낯설더라도, 아내가 처음 울었을 때 '이건 뭐지? 내가 모르는 감정인데? 어쨌든 이 사람은 사랑을 달라는 것이구나' 하며, 알 듯 모를 듯 확신은 없지만 '전두엽! 어떻게 해봐!' 하고 명령만 내렸어도 최소한 가족에게만큼은 그럴 가치가 있었다. 선경 씨 남편이 그렇게 했다면,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결핍된 사랑'을 아내와 함께 묵직하게 채울 수 있었으리라. 그의 아내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산도 있었고 마음도 있었다.
부모가 내게 옥시토신을 충분히 주지 못했다면, 스스로를 사랑하며 가득 채우라. 감사를 하면 자신이 멋지고 사랑스러우며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매일 부모의 눈치를 보며 사느라 엔도르핀이 부족하게 되었다면, 즐거운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가득 채우라. 아이도 할 수 있지만 어른이라면 더 확실하게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스스로 하는 것이 불편하고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내 어른만의 달콤한 자유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어릴 때는 엄마의 사랑을 받는 대신 이쪽에서도 주는 것이 있어야 했다. 먹기 싫은 콩, 당근, 호박 등을 먹어야 했다. 어른이라면, 콩이 먹기 싫으면 집에 들이지도 말고 당근이 싫으면 산책길에 만나는 토끼에게 주고 호박이 지겨우면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난타 공연을 하면 된다. 다 내 마음대로이다. 나만의 맞춤형 옥시토신과 엔도르핀을 제조할 수 있다.
3장에 나왔던 정우 씨는 아버지와 등산을 다니면서 그토록 원했던 부모의 옥시토신을 만끽했다. 등산을 하면서 아들의 얼굴이 밝아지자 아버지가 매주 산에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사실 정우 씨의 사례는 매우 특별하다. 자신을 힘들게 만들었던 당사자가 20년이나 지난 시점에 "미안했다, 다시 잘 해보자"며 즐거운 일을 같이 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그럼에도 정우 씨는 딱 6개월 만에 싫증이 났다. 여자친구가 생겼고, 행글라이더 취미도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껏 얻게 된 옥시토신이 끊어질까 봐 아버지에게 등산을 그만하자는 말을 못한 채 전전긍긍하기만 했다. 마침 아버지가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미안한 표정으로' 당분간 등산을 같이 못 갈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 내심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게 바로 전두엽이 다 자란 사람의 본색이다. 좋게 말하면 단순하지 않고, 나쁘게 말하면 영악하다. 순수하고 선량한 정우 씨가 이 정도라면 일반 사람은 더 할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부모의 관심과 사랑, 충분히 받기만 했다면 지금 모양 요 꼴로 살지 않을 것 같은 그것은, 막상 지금 받으면 '신 포도'일 수도 있다.
주재원으로 나간 청년은 '부모가 자신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것'을 원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되거니와 행여 일어난다 해도 싱싱한 청포도가 아니라 그저 시어빠진 포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도 알게 될 것이다. 당연히 받았어야 할 유산을 못 받았다면 미련과 분노가 엄청 클 수밖에 없겠지만, 어른이 되었다면 날아가버린 유산에 집착하고 슬퍼하기보다는 감사로 새로운 부를 쌓는 것이 훨씬 빠르고 품격에도 맞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부모의 냉대나 부재로 다른 아이들보다 100미터 처져서 달리기 시작했더라도, 감사의 운동화를 신는다면 이제 다시 똑같은 선에 나란히 설 수 있다. 아니, 인생의 시작 단계에서 받았던 복에 취해 감사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는 그들을 반환점을 돌면서 치고 나갈 것이다. 부모로부터 애착이라는 예쁜 왕관을 받아썼던 그들의 우아함을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스스로 머리에 얹게 되는 월계관은 비장할 정도로 아름답다.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을수록 월계관은 더 눈부시다. 고통이 심했을수록 밥 한 숟가락 먹을 힘만 있어도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상담을 시작한 30대 후반의 두 여성이 있었다. 둘 다 남자친구로부터 실연 당한 후 자살을 시도했다. 여기서는 김 양, 이 양으로 부르기도 하겠다. 김 양은 수면제를 바로 게워 다행히 큰 문제가 남지 않았지만, 이 양은 중환자실에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후유증이 컸다. 김 양은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에 가게 되면서 명문대를 나와 교수와 변호사로 있는 형제들에 비해 열등감을 크게 느꼈다. 운 좋게도 수도권 종합병원의 물리치료사로 취직을 하고 10년 넘게 장기 근속을 하면서 팀장급의 위치가 되어 어느새 연봉이 4500만 원이 넘어 있었지만, 늘 자신의 모습에 불만족스러워하며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가고 싶어 했고, 여의치 않게 되자 치과대학원 준비를 했다. 부모가 사준 아파트에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직장을 부끄러워하며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늘 짜증만 냈다.
반면 이 양은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항상 바보천치라는 말을 들으며 집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했고, 사회에서 처음 만난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사기를 당해 남자가 사용한 카드빚까지 갚아야 하자, 가족들은 아예 그녀를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그녀는 자살 시도로 장기가 심하게 손상되어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였지만 집에서는 "넌 더 이상 우리 가족이 아니다"라며 구타하고 쫓아냈기 때문에 모든 생활을 스스로 해야 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싸구려 월세방을 전전했고, 겨우 인쇄소에 취직했지만 실수할 때마다 월급에서 몇만 원씩 차감하는 악덕 사장으로 인해 빚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상담 첫날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을 때 나는 두 사람에게 똑같이 말했다.
"맞습니다. 우울하시네요. 그런데 더 근본적인 병은,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모르고 다른 사람의 말만 귀담아들으며 인생을 망치려 했다는 거예요. 아주 중증의 병이죠."
이 말을 들었을 때 후회와 희망이 섞이 폭풍 같은 눈물을 흘린 사람은 이 양이었다. 그녀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자신이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아무도 그것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감사 테라피를 시작한 후 몇 주가 지났을 때 모처럼 밥이 식도로 넘어갔다면서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밥을 삼킬 수 있으니 앞으로는 기운을 내서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면 실수도 줄어서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좋아했다. 그야말로 '밥 한 숟가락 먹을 힘'을 감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양이 감사하기 시작하자, 그토록 그녀에게 냉정한 듯이 보였던 운명이 그녀의 편으로 돌아섰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직장에서였다. 그녀가 실수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주 능숙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옮기지 않자, 사장은 그동안 뗐던 돈을 내놓으면서 일을 그만둘 때 줄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실은 선한 사장님 곁에 있었음을 알게 된 그날, 그녀는 또 한 번 크게 울었다. 그렇게 그녀는 일어나서 지금은 빚을 차곡차곡 갚아 나가고 있고 주말에는 햇빛이 잘 드는 방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영화를 보러 간다. 요새 그녀의 유일한 고민은, 그녀가 버는 돈을 받아내려는 가족들을 어떻게 대할지에 관한 것이다.
반면 이 양에 비해 객관적으로 몇 배나 더 멋진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김 양은 아직도 감사를 어렵게 생각하면서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살고 있기에, 앞으로도 과연 행복을 느낄 날이 올지 불확실하다. 그녀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조차도 한결같이 그녀의 편이었던 운명이 그녀로부터 감사의 말 한 마디 듣지 못해도 계속 그녀의 편을 들어줄지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이 양은 많이 배우지 못해서, 직업이 변변치 못해서, 돈이 없어서,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자신은 결코 행복해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삶의 비밀을 하나 알게 된 것 같다고, 이것을 알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는가 보다, 라고 말하며 햇살같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감사는 고통을 심하게 겪은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행복의 방법이다. 영성가들 사이에 회자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것이 있다. 신과 조우하기 전에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고통의 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는 단순한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신을 부정하기까지 하는 극단적인 좌절의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겪었다는, 신앙심이 투철했던 한 산악인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그는 등반을 했다가 심한 눈보라로 인해 3일 내내 산에 갇혔다. 우리가 그 사람이라면 그 밤들을 어떻게 보낼 것 같은가. '설마' '혹시나' 하며 3일까지 버텨냈는데도 실낱같은 희망조차 사라질 때, 신이 있다면 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으며, 정말로 신이 있다면 처음부터 나를 이곳에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게 아니냐며 울부짖고 분노하며 절망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적같이 구조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삶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끼며 감사하게 된다고 한다. 예전과 똑같은 상황인데도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이들은 모두 '고통이 축복'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확실히, 고통을 겪으면 감사하기가 참 쉽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감사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행복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굳이 고통이 축복임을 경험해보기를 바라지 않는다. 고통은 이겨내기만 하면 분명 당신을 성장시키겠지만, 나는 당신이 다른 방법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감사로 말이다.
깜깜한 밤에 길을 잃으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찾곤 한다. 우리 마음속에도 감사라는 북두칠성이 있다. 마음의 북두칠성을 바라보는 한 인생에서 길을 잃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인생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이것저것 다 해봐도 변화가 없다면, 지금 감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 그러면 선명하게 길이 보일 것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밥 한술 먹을 수 있음을 감사한다면 삶에서 무엇이 아쉽겠는가. 삶에서 아쉬움이 없다면 지금 내 옆에서 반짝이고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할 수가 없다. 그러면 반드시 드레스를 입고 왕궁에 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려도 행복의 마법에서 깨지 않을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당신은 참으로 아름답다. 계속 꿈을 좇아 열심히 노력하자. 목표를 갖고 노력하는 것은 행복의 비결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여기, 훨씬 쉽고 빠르게 행복해지는 방법이 있다. 미래에 행복해지려 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오늘 먼저 행복해지는 것이다. 오늘 당장 행복감을 느낀다면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룰 때 행복은 '따블' '따따블'이 된다. 설령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해도 이미 나는 행복하기에 감정적으로 힘들 일이 전혀 없다. 결과가 안 좋다고 해서 내가 멋진 사람이라는 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며, 그저 다시 도전하거나 다른 길을 찾아 행복의 색깔만 바꾸면 될 뿐이다.
당신은 지금 어느 집 앞에 서 있다. 아쉽게도 당신이 꿈꿔왔던 집이 아니다. 당신이 갖고자 했던 휘황찬란한 집은 그 옆에 다른 사람의 소유로 있다. 눈물이 나려 한다.
"왜 내 인생은 이것밖에 안 되지?"
눈물을 감추려고 뒤도는 순간 황금빛으로 넘실대는,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가을 들판이 펼쳐져 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행복이 내 앞에 보이지 않아 실의에 잠겨 있었을 때도 내 등 뒤에서는 다른 빛깔의, 그리고 더 큰 행복이 한없이 정겹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에 가슴이 먹먹해져 다시 뒤돌아보니, 그토록 부끄러워했던 내 집은 황금 들판에 아주 잘 어울려 100년, 200년 물려주어도 될 만큼 기품이 있고, 그토록 부러워했던 화려한 집은 혼자만 튀어 오래갈 것 같지가 않다.
'왜 이걸 몰랐지?'
우리가 하나의 행복에만 집착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신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더 고귀하고 단단한 행복을 준비해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울어도 모자랄 판이지만 좋은 날이니 웃도록 하자. 이쪽을 봐도 저쪽을 봐도, 앞으로 나아가도 뒤돌아가도 온통 감사할 것 천지이니 이제 우리는 감사의 들녘에서 신명나게 놀 일만 남았다. 덩덩덩더쿵! 덩덩덩더쿵! 신나게 어깨춤을 추며 머금는 그 싱그럽고 담대한 미소를 이제 당신에게서도 볼 생각에 정말 마음이 설렌다.
자, 마지막 초대장을 드리겠다. 열어보니 금빛 테두리를 두른 거울이 들어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반짝이는 내 눈이 보인다. 이어서 글이 뜬다.
오늘부터는 당신이 답이다.
골든 땡큐를 이루셨음을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너무도 멋진 그대.
오늘도, 골든 땡큐_ 이현수 박사
방송 작가가 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_ 임선경 (0) | 2018.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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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일이 답이다_ 이성동 김승회 (0) | 2017.12.24 |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_ 이성동 김승회 (0) | 2017.12.24 |
공부, 인성, 행복의 삼각관계_ 아파테이아 (0) | 2017.06.23 |
마음의 부자_ 이현수 박사 (0) | 2017.02.03 |
사랑하는 내 청춘도반들께_ 혜민스님 (0) | 2016.09.05 |
너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분해_ 혜민스님 (0) | 2016.09.03 |
비교하는 부모_ 박경애 (0) | 2015.12.21 |
아이를 사랑손님처럼 대하라
하루에 3시간이 아니라 10시간씩 붙어 있으면서 최선을 다했는데도 아이가 잘못 자랐다고 혼란스러워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매직타임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는지 또한 중요하다. 블랙매직, 즉 흑마술이란 귀신이나 악마 등 사악한 존재의 힘을 비려 마술의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잘못된 말과 행동이 흑마술처럼 작용할 수 있다. 3시간의 매직타임이 블랙매직이 되지 않기 위해 생각해볼 것이 있다.
아이와 엄마는 서로에게 거울 같은 존재이다. 엄마의 감정, 행동, 말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도 불안 수준이 높아서 지나치게 안달복달하는 엄마라면 아이가 안정적인 정서를 갖기 힘들다. 아이가 늘상 보고 듣는 것이 불안과 관련된 감정과 행동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불안은 각자의 경험에서 형성되었고 개인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겠지만 부모 자신이 풀어야 하는 문제이다. 새로 인생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막무가내로 "엄마가 살아봐서 하는 말인데" 하며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런 부모라면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부모에게 이것처럼 잔인하고 기분 나쁜 말도 없으리라. 하지만 얼마나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상담실에서 "차라리 부모님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흐느끼는지 모른다.
불안이 지나쳐 자식을 과잉보호해서 오히려 망치는 일도 있다. 헬리곱터맘, 혼테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결혼 예단으로 한몫 단단히 챙긴다는 뜻인 혼테크는 망신스럽기까지 하다. 결혼한 지 5년 안에 이혼하는 부부 중 절반이 예단 문제때문이라니 자식을 망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리 부모가 마마보이, 파파걸을 만들려고 해도 자식이 거절하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자식은 거절을 하지 못한다. 불안의 뿌리가 마음 깊이 박혀서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놓이면 극도로 예민해지고 위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악습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한결같이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부정적인 메시지로 사고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 어릴 때 반복한 사고는 지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듣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산다. 냉정하고 폭력적인 부모를 보고 자라면 이 사람의 세계에서 폭력은 물처럼 흔한 것이 된다. 생애 초기에 특정한 상황에서 학습한 경험은 다른 상황에까지 확대되는 일반화가 된다. 어릴 때 맞고 자란 여성이 결혼한 후 남편의 폭력 행동에 둔감해지는 이유이다. 여러 번의 일반화를 경험하면 '나는 원래부터 매를 맞을 만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긴다. 한번 고정관념이 생기면 다른 세상을 경험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주눅이 들면 다른 사람도 나를 그렇게 여기고 신뢰하지 않으며, 나는 세상에 대해 또 눈치를 본다. 이렇게 악순환을 겪으면서 점점 변화하려는 의지는 사라지고 포기하게 된다. 원래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세상이 보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며 단추를 잘 끼웠다면 그다음은 부모의 언행일치, 즉 일관성이 중요하다. 메시지는 긍정적인데 막상 부모의 행동이 그렇지 않다면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언행일치는 특히 아이가 자랄수록 점점 중요해진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무슨 말을 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다 말실수를 해도 어차피 아이도 잘 알지 못하고 금방 잊어버린다. 하지만 아이의 전두엽이 발달하고 맹렬한 도덕적 사고를 시작할 무렵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엄마의 말 한마디 그냥 놓치는 법이 없고 정확하게 허점을 잡아 찔러댄다. 바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몸 고생은 끝나지만 마음고생은 더 심해진다. 아이가 친절하지 못하다고 불친절하게 야단치는 엄마, 아이 얘기는 듣지도 않고 소리를 지른 후 너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말을 안 듣느냐는 아빠. 이런 장면을 자주 본 아이는 일찌감치 인생이 모순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되어 삶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진다. 아이가 어릴 때와 달리 부모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부모의 언행 불일치를 많이 봐서 설득력이 없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부모들이 얼마나 모순되는 언행을 보이는지 하루 일과를 녹화해서 본다면 부끄러워 자리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어떨 때는 80점만 받아도 잘했다고 하고 어떨 때는 90점을 받아도 야단치거나, 만날 쌀쌀맞게 굴다가 100점을 받아 올 때만 힘껏 안아주며 관심을 보이면 아이에게 존경받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부모에게 조건적인 사랑만 받았기 때문에 자기 가치감이 떨어져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쉽다. 심지어 같은 자리에서 변덕을 부리며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화가 나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 "당장 안 나가?" 그래서 나가면 "나가라고 바보같이 나가?" 라고 또 소리를 지른다. "말 좀 똑바로 해." 그래서 똑바로 하면 "어따 대고 또박또박 말대꾸야?"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아이는 차라리 미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는 미쳐버린다.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전문용어로 '이중 구속' 형태의 대화를 만들어버린다. 어느 쪽으로도 행동할 수 없게끔 양쪽에서 조인다는 의미로 아동 정신분열증의 원인 중 하나다.
부모라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는 그렇지 않더라도 자식에게만은 온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엄마가 차고 냉정하다면, 아빠가 성질이 급하고 화를 잘 낸다면, 아이는 나름대로 살길을 찾는다. 냉정한 엄마나 불같이 화를 내는 아빠를 두어도 성공해서 잘 사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는 살길을 찾지 못한다. 처음에는 무력감과 혼란만 느끼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급기야 정신이 통합되지 못해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아이에게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만약 기독교 집안이라서 원죄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면 그 원죄가 이미 사함을 받았다는 얘기도 반드시 해주어야 한다.
죄책감은 자기 가치감, 도덕심, 애타심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죄책감을 갖고 있으면 스스로 떳떳하지 않고 항상 눈치를 보며 기죽어 지내기 때문에 자기 가치감을 느낄 수 없다. 내가 죄가 많으니 당연히 남도 많을 것이라고 여겨서 항상 남을 의심하거나 깔보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도덕심도 발달하지 못한다. 반대로 스스로 당당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들도 나만큼 훌륭하다고 여기며 자연히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애타심이 발달한다. 어려서부터 고귀하고 당당하게 대접받은 아이가 그런 어른이 되고, 죄 없이 무결하고 고귀한 아이로 인정받아야 죄책감을 느낄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물론 죄책감을 남기지 말라고 해서 잘못을 무조건 묵인하라는 뜻은 아니다. 잘못했으면 야단치고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해야 한다.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대가를 치르고 진심으로 뉘우치게 해야 한다. 진심으로 뉘우친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잘못된 네 행동을 꾸짖은 것이지 너를 미워해서가 아니라고,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알려주는 것이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 방법이다.
죄책감 없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네 살 무렵부터 골드 스탠더드를 만들어 지키게 하면 좋다. 살면서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을 부모가 잘 생각하여 정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5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수가 많아지면 희소가치가 떨어져서 꼭 지키겠다는 마음이 사라진다.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골드 스탠더드를 계속 어기면 과감히 매를 들어야 한다. 반드시 매를 들어야 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자신을 해칠 때이다. 두 번째는 남을 해칠 때이다. '거짓말하지 않기'는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이지만 골드 스탠다드에 포함될 정도의 원칙은 아니다. 지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아빠가 싫어도 좋다고 해야 하고, 엄마가 할머니처럼 보여도 예쁘다고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거짓말을 하면 당연히 야단맞고 거짓말을 못해도 영문 모르게 야단맞는 황당한 상황밖에 볼 것이 없으므로 이런 골드 스탠더드는 바람직하지 않다. 골드 스탠더드 2개 정도는 아이가 좀 더 컸을 때 만들어도 좋다.
금쪽같은 골드 스탠더드의 빛이 바래지 않으려면 평소에 웬만하면 잔소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중요한 전략이다. 아무 때나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하다 보면 어느 날 작심하고 골드 스탠더드를 위반한 데 대한 집행을 할 때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무서운 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 무섭게 야단치는 것은 훈육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부엉이처럼 침묵하다가 아이가 정말 잘못했을 때 제대로 한 번 무서운 모습을 보여야 효과가 있다.
아이의 눈을 보지 않고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훈계는 잔소리다. 잘 자라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잔소리를 많이 들은 아이는 오히려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는 독불장군이 되거나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허약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아이가 크면 말을 점점 줄이자. 말을 아끼라는 말이지 마음을 아끼라는 말이 아니다. 웃는 얼굴로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은 부모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엄마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으면서 골드 스탠더드를 만들어 지키게 하면서 아이를 키웠다. 또 평소에는 말을 아꼈고 말을 해야 할 때는 왕창 했다. 이렇게 했다면 거의 완벽하다. 부모 역할의 최고봉에 거의 올랐다. 이때 중요한 마지막 관문이 있다. 바로 감정의 정화이다. 전문가들은 벤틸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쓴다. 벤틸레이션이란 '환기'라는 뜻으로 굴뚝 청소를 떠올리면 된다. 꽉 막힌 굴뚝을 뚫어 연기를 빼주어야 집이 엉망이 되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의 꽉 막힌 감정을 그때그때 뚫어주어야 큰 탈 없이 자란다. 감정은 왜 막힐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너무 감정을 억압해서, 또 하나는 제때 뚫어주지 않아서이다.
아이도 학교를 오가는 길에서, 학교에서, 또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그 분풀이를 하고 싶어 한다. 일단 분풀이가 끝나면 언제 화를 냈느냐는 듯이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하루하루 인생을 헤치고 모으면서 아이는 성장한다. 이 분풀이가 바로 벤틸레이션으로, 올바른 성장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정신과에 내원하는 환자 대부분은 성장기에 제때 벤틸레이션을 하지 못해 분노와 허탈, 우울과 공허감이 누적되어 삶의 동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돈 내고 심리 상담 받으면서 벤틸레이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적된 정서 억압은 사회 부적응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켜 본격적으로 심리 상담을 시작한다 해도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난폭한 행동을 보이고 심지어 교사에게 대드는 것은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낮에 학교에서 화가 날 수도 있고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저녁에 부모가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며 이해시키고 감정을 받아주면 아이는 그날의 스트레스를 잊고 다음 날 즐겁게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의 말을 듣지 않는 부모보다 더 나쁜 것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을 때 오히려 부모가 "그런 것도 참지 못하냐"며 더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의 마음은 집에서도 닫혀버린다. 화난 마음이 닫혔을 뿐 없어지지는 않았으므로 아이는 학교에서 그 화를 주먹과 욕설로 표출한다.
감정의 굴뚝을 그때그때 풀어주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뇌에서 감정을 처리하는 변연계 때문이다. 변연계는 힘이 무척 세서 한 번 나쁜 영향을 받으면 아이가 자라 늙어 죽을 때까지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히 아직 대뇌피질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초등학생 때까지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워 쇠고기 파동 시위에 끌고 나가거나, 단체 행동을 하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삭발하는 부모들은 제 손으로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셈이다. 자유와 민주를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 해도 아이는 그 당시 현장에서의 느낌과 감정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자유와 민주를 위한 행동이라는 이성적인 판단은 훨씬 나중에 할 수 있으며 그전에는 오직 '좋다', '나쁘다'는 감정적 판단만 있을 뿐이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옆에서 무서운 동물들이(나중에 경찰임을 알게 되지만) 엄마를 죽이려 하고, 엄마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며 흐느끼는 행동은 아이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렵고 위협적인 인상으로 남는다. 두렵고 위협적인 인상이 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상 이성의 뇌가 아무리 발달해도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린다.
심리 치료란 이러한 불안의 시발점을 찾아 성인의 시각에서 그 당시 일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어머니의 행동이 사실은 대의를 위한 행동이었으며 그때 나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현실을 성숙한 눈으로 보지 못했음을 깨닫고, 어머니를 용서하고 감정을 털어버리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때로는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 이성이 발달하기 전의 아이에게 부모의 가치관과 대의명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저 세뇌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행동이라도 아이에게 불안을 줄 수 있다면 엄마, 아빠 둘이서만 하는 것이 옳다.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도록 보호한 다음, 어른들의 대의를 생각하자, 제 2차 세계대전 중 처절한 전투를 벌인 영국과 독일은 그 와중에도 최대한 아이들은 보호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가능하면 총성이 들리지 않는 시골로 보냈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 속 아이들의 위대한 모험은 그렇게 탄생했다.
20년 넘게 정신과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한국의 정신 질환 추세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다. 1990년에 정신과 심리실에서 수련을 받기 시작할 때는 정신과 환자들의 연령대에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유아기의 발달 지연 문제를 지나 유년기인 초등학교 입학 무렵의 적응 문제를 넘어가면 잠시 멈추었다가 일부 청년이 전두엽 기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를 감당하지 못해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동안 소강기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50대에 갱년기 우울증, 60대에 노인 우울증과 치매가 발병하는 양상이었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의사들끼리 농담 삼아 "우리는 모두 서른 살이 넘었으니 정신분열증은 걸리지 않겠다. 이제 치매만 조심하면 되네" 했던 기억이 난다. 정신분열병은 전두엽 기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할 때 필요한 도파민 분비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니 그 시기를 잘 넘겼다면 당연히 앞으로는 사고의 혼란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2012년부터 정신분열병이란 용어가 조현병으로 바뀌었지만 일반적으로 정신분열병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환자 연령대에 변화가 생겼다. 일단은 예전에 없던 왕따나 학교 폭력, 인터넷 중동으로 청소년기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졌고, 한국인의 일생에서 가장 힘들다는 고3시기를 잘 버텨냈음에도 20대 환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대학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졸업한 후 직장을 얻지 못해 우울해하며, 직장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애인과 헤어지면 바로 손목을 긋고, 군대는 할 수만 있다면 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군대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청소년기의 혼란은 30대까지 연장되어 결혼을 해도 아이를 건사하지 못해 부모에게 맡기고 주식으로 한 방에 돈을 벌려다가 가정이 파탄 난다. 갱년기 우울증은 과거보다 10년이 빨라진 40대부터 나타난다. 한마디로 소강기가 없어졌다.
놀랍게도 소강기가 없어진 최근 10년은 조기 유학이 급증한 기간이기도 하다. 통합적인 뇌 발달이 아닌 부분적인 뇌 발달을 목표로 한 결과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조기 유학의 열병은 한두 가족의 가정을 파탄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려할 만한 사회현상을 함축한다. 먹고살 만한 경제력과 찬란한 문화를 갖추고 있음에도 조기 유학비율이 세계 1위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무리가 있는데도,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해하지 않는데도, 건강한 가정이 무너지는데도 무리해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신이라면 그 잘못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나는 정부의 무능함을 탓한다. 조기 유학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상대적인 박탈감과 열등감에 허덕인다. 그래서 조기 유학 대신 서울대 법대에 집착하는 터무니없는 보상 심리가 발동하면서 온 가족이 숨 제대로 쉬지 못하니 정신과 내원 환자들의 연령대에 소강기가 없어진 것이다.
조기 유학을 떠나는 가족에게는 잘 다녀오라고 해주자. 부모와 함께 외국의 문물을 접하면서 영어 능력도 키우는 복 받은 가족에게는 진심으로 부러운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그런 복이 없다면 다른 복이 있음을 알고 빨리 그 복을 찾으면 된다. 내 주머니 속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몰라보고 남의 보물에만 정신이 팔려 탐내고 질투하며 속상해하는 것만큼 시간 낭비가 어디 있을까. 세상에는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으니 어느 것이 진정 행복한 길인지도 알 수 없다. 우리 가족의 상황과 내 행복의 색깔에 맞는 길을 찾아갈 뿐이다.
우리는 행복하고자 많은 것을 시도했지만 행복은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방법을 바꿔야 하지 않을가. 아이만의 조기 유학, 영어 올인 등 특별한 공부 방법은 특정한 아이에게만 효과가 있고 내 아이와 우리 가족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엄마 냄새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정신과에 오는 아이들의 부모 중 가장 많은 유형은 엄마는 너무 약해서 아이의 든든한 벽이 되어주지 못하고, 아빠는 돈 버느라 가족에게 관심이 없는 유형이다. 이런 부모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는 가족 간의 친밀감이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 가치감이 낮다. 게다가 부모에게 문제 해결 능력을 배우지 못해 학교와 사회에서도 자신감이 없고 우울감,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그런 가정이라도 가정의 모습을 유지하며 하루 세끼 밥 먹으면서 살아가면 아이가 입원까지 하지는 않는다. 입원할 만큼 심각해지는 것은 아버지가 아이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아이와 아내를 무시하고 때리거나, 엄마도 아이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오히려 욕을 퍼붓고 밥도 주지 않는 경우이다. 그리고 이런 폭력이 없어도 아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지는 것은 엄마가 갑자기 영원히 가출한 경우이다.
아이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예고 없는 엄마의 가출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여도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잔소리를 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겉돌았다. 변한 것은 엄마가 없어진 것이다. 아이는 평소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도 엄마가 가출한 후 아이는 무너져버렸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며 절규했다. 마음이 여린 아이는 혼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었던 고통과 분노를 가짜 자신, 데이먼을 통해 표출했다.
아이가 무너진 것은 엄마 냄새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엄마 냄새가 사라졌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병에 걸리진 않는다. 아이의 누나와 동생은 이런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정신력이 약했는데 후천적인 스트레스를 만나 정신병을 일으킨 것으로 진단되었다.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담배를 많이 피우고도 폐가 선천적으로 강해 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듯이 선천적으로 정신력이 강한 아이는 같은 스트레스 상황도 잘 이겨낸다. 폐기능이 원래 약한 사람이 담배라는 부정적인 자극을 자주 접하면 쉽게 폐암에 걸리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정신이 유약한 데다 엄마 냄새가 없어진 후천적인 스트레스가 더해져 정신병이 생긴 것이다. 정신이 유약한 아이에게 사라진 엄마 냄새,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 냄새는 너무도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누나와 동생도 사라진 엄마 냄새의 영향이 전혀 없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냄새의 정확한 본질은 무엇일까? 사랑의 냄새는 어디에서 나올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우리는 옥시토신을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특히 여성의 자궁 수축과 젖분비를 촉진하며 모유 수유를 할 때 옥시토신이 다량 분비된다. 옥시토신을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애무해서 아이를 만들게 하고, 자궁을 수축해서 아이가 빨리 나오게 하며, 아이가 먹을 젖이 나오게 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 엄마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오게 하는 등, 온통 사랑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은 남성의 뇌에서도 분비되지만 여성의 자궁과 유방에 옥시토신 수용체가 있어 사랑의 냄새는 여성이 훨씬 더 진하다.
게다가 아이는 엄마 냄새를 가까이에서 맡는 정도가 아니라 10개월 동안 엄마 몸속에서 순도 100%의 냄새를 공유하다가 이 세상에 나온다. 그러니 아이에게 엄마 냄새는 생명의 냄새이기도 하다.
앞서 엄마가 가출하면 아이는 정신과에 입원할 정도로 무너진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가 가출한 집은 어떨까? 아주 복합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아빠가 가출한 집에서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지는 아이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아빠들에게는 서운한 말이겠지만 아빠는 가출해도 집에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밥을 해주지도 빨래를 해주지도 않았고 엄마처럼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았다. 아빠가 갖다주던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면 엄마 혼자서도 아이에게 밥을 해주고 학교에 다니게 한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답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엄마 냄새를 가두는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남편에 남편에 대한 순종을 강조한 전통적 아내의 역할을 잘못 해석하고 남편만 바라보는 남편바라기가 되어서이다. 이런 아내는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남편만 바라보는 망부석이 된다. 가정에 문제가 생겨도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남편이 자식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화만 내다 지쳐 아이를 방치하기까지 하는 엄마들이 많다.
또 하나는 명백한 스트레스다. 오랜 기간 정신과에 내원한 환자들을 볼 때 경제적 스트레스와 대인 갈등 스트레스가 엄마 냄새를 잠그는 요인 1,2위를 다툰다. 병원에서는 그중 대인 갈등 문제를 다루는데, 대인 갈등 중에서도 남편과의 갈등, 남편의 외도는 엄마 냄새와 엄마 마음을 가둬버리는 초강력 마비제이다. 남편의 외도는 아내의 지적수준에도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행동까지 하게 만든다.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지면 자식을 포기하고 가출하는 지경에 이른다.
괜찮다. 두려울 것도, 땅을 치며 후회할 것도 없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먼저 세 가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어야 할 것을 받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 지금부터라도 줄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긍정의 마음,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다리면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는 믿는 마음이 중요하다.
하루 3시간 엄마 냄새_ 이현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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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장난감을 갖고 놀 시간에 글자를 가르치는 것이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라면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전두엽이 발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난감은 전두엽을 가동시키지만 단순한 글자떼기는 고작 측두엽만 가동시킨다는 사실을 모른다. 물론 측두엽은 기억과 학습, 정서까지도 관장하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학습을 기억하는 단계를 넘어 통합과 창조를 해야 하는데 부모들이 너무 측두엽 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지루한 것은 오히려 획일적인 중, 고등학교 환경이다. 지루한 환경이 좋지 않은 이유는 뇌가 지루하다고 받아들이면 도파민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흥미롭고 특히 예상하지 않았던, 도전해볼 만한 자극이 주어져야 분비된다. 텔레비전을 보는 아이의 뇌를 관찰해보면 처음에는 대뇌피질의 발화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한참 지나면 피질 활동이 잠잠해지며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뇌가 지루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주 따끈따끈한 뇌 연구 결과가 있다. 2010년에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연구진이 생후1~2일 된 신생아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신생아의 뇌가 24시간 내내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결과에 대한 연구자들의 해석이 상업적으로 잘못 이용될까 봐 걱정된다.
어린이의 사고 과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스위스의 심리학자 피아제는 어린이의 인지 발달을 감각 동작기(0~2세), 전조작기(3~7세), 구체적 조작기(8~12세), 형식적 조작기(13~16세)의 4단계로 분리했는데, 크게 전조작기 단계(7세 이전)와 조작적 단계(7세 이후), 2개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조작이란 심리적으로 내면화된 정신적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무언가를 비교하고 법칙을 알아내고 새로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이 조작이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추려면 7세를 넘어야 한다. 7세 이전에는 되지 않거나 설령 된다 해도 불완전하므로 전조작기라고 이름을 붙인다. 7세가 넘어 조작을 할 수 있어도 12세까지, 초등학생 때까지는 구체적 조작, 즉 지금 내 눈 앞에 진행되는 사실에 대해서만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중학생이 되어야 비로소 형식적 조작, 즉 현실 세계를 넘어서는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다.
피아제의 인지 발달 이론에 따르면 유치원 때까지는 조작이라는 것을 해보았자 한계가 있다. 아이들의 조작 행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계산하기, 크기 비교하기, 색깔 구분하기, 모양이 다른 그릇에 담긴 100밀리리터의 물을 같다고 인식하기, 특정한 사물이 관찰하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이지만 같은 대상임을 알기, 그리고 문자 습득이 있다. 듣기, 말하기는 선천적인 언어능력이지만 읽기, 쓰기는 조작 행위이다.
ㄱ+ㅏ+ㅇ=강, ㅁ+ㅗ+ㄱ=목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조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어머니들은 왜 이렇게 골치 아픈 음소 맞추기 얘기를 하는지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 유치원 때까지는 한글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시키니까 글자를 그리는 것이지 능숙하게 조작하지 못한다. 그래도 일찍 시작하면 좋지 않냐고 묻는 부모들에게 말한다. 너무 일찍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정신적 조작을 할 시기에 이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다. 외부에서 시키니까 하는 수동적 모방 학습의 경험 때문에 내부에서 유발되는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학습에 흥미를 잃은 것이다. 벌써 뇌 회로가 그렇게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어릴 때부터 문자 교육을 권하는 것은 인지 발달의 단계를 잘 모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나는 부모들에게 피아제의 이론에 근거해 이름을 살짝 바꾼 양육 단계를 제안한다.
6세를 기준으로 이전은 감각 운동 양육기, 이후는 상징 사고 양육기라 하겠다. 감각 운동 양육기는 감각 능력과 운동 능력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시기이다. 감각 가운데 시각의 예를 들어보자. 아기는 시각 기능을 갖추고 태어나지만 3차원 입체시가 발달해 엄마가 앞에 있든, 옆에 있든, 웅크리고 자고 있든, 아파트 10층 창문 밖으로 자기를 내려다보든 '저 사람은 우리 엄마구나' 하고 알 정도로 정교한 조준과 파악을 완성하려면 6세가 되어야 한다. 운동 능력에는 걷고 뛰는 대근육 운동과 가위질하고 단추를 채우는 소근육 운동이 포함된다. 즉 6세까지는 감각 자극에 충분히 노출되고 많이 뛰어노는 것이 뇌 발달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다치지 않고 많이 뛰어놀 공간도 부족하고 하루 종일 붙어서 아이를 보호해줄 시간도 없다. 그래도 6세까지는 뛰어노는 시간이 문자를 익히는 시간의 5배 이상 되어야 하며, 초등학생도 3학년까지는 학원 가는 시간의 3배를 놀아야 한다. 특별한 프로그램도 필요 없다. 널찍한 땅에 몇 가지 도구만 있으면 아이들은 비석치기, 사방치기, 땅따먹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하루 종일 잘 논다. 성추행이나 유괴 등의 위험이 걱정된다면 일자리를 원하는 어르신을 2인 1조로 곳곳에 배치하면 어떨까. 어르신들도 햇빛을 받으며 몸을 움직이면 치매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테니 아이들과 좋은 짝이 되지 않을까.
많이 걷고 뛰어놀 게 하면 뇌에서 비디엔에프라는 뇌유발신경전달인자가 발생한다. 비디엔에프는 강력한 뇌 성장 요인으로, 이 물질 때문에 뇌가 발달해 공부를 잘하게 된다. 그리고 비디엔에프가 더 이상 분비되지 않을 때 노화가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뇌 발달 차원에서 보면 중,고등학생도 아직 뇌가 발달하므로 계속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임상 교수인 존 레이티는 체육 수업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고등학교에서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전 0교시 체육 수업을 한 후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17%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규율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비율이 이전 학기에 비해 83%나 감소했다고 한다. 꼭 체육 수업이 아니라도 그냥 운동장을 돌게 하는 것도 좋다. 햇빛을 받으며 30분 이상 걷는 것만으로도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70%는 해결할 수 있다. 햇빛을 쬐며 친구들과 걸으면서 수다를 떨다보면 긴장이 풀리고 친근감이 늘어나 학교 폭력도 줄어든다. 또 비타민 D가 합성되어 뼈가 튼튼해져 체력도 좋아진다. 무엇보다 햇빛은 기분을 좋게 해준다.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것이 있다. 약물치료와 함께 라이트 테라피를 하면 효과가 좋은데, 라이트 테라피란 빛을 많이 쪼여주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파장과 세기로 광선을 쪼여주지만 햇빛을 많이 쬐는 것으로도 청소년의 우울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내가 교장이라면 운동장을 최대한 넓게 확보해서 수학 2시간 연강하고 30분 운동장을 돌게 하고, 영어 2시간 연강하고 30분 돌게 하겠다. 공부 잘해, 폭력 없어져, 체력 좋아져, 성격 좋아져, 그야말로 일석사조의 효과가 있는 교육법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은 어릴 때 좀 더 많이 뛰어놀게 하지 못한 것이다. 많이 뛰어놀면 학원에 1년 보내는 것보다 더 머리가 좋아진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라도 마음껏 뛰어놀면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해소되니 너무 속상해하지 않으려 한다. 비디엔에프는 스트레스 호르몬에 맞서는 기능도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기는 아이의 언어 상징 양육기이다. 비로소 상징, 즉 문자와 숫자를 익혀야 할 때다. 이때 집중적으로 한글을 익히면 이전에 3~4년에 걸쳐 배운 것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이다. 가르쳐주면 아이는 바로 흡수하고 활용한다.
이러한 아이의 발달 단계를 무시하고 감각 운동 양육기에 문자를 가르치면 스트레스가 된다. 이제 막 일어선 아기에게 자꾸 자전거를 타라고 하면 어떨까? 자전거가 스트레스가 되어 평생 꼴도 보기 싫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려면 흥미와 동기가 반드시 필요한데 스트레스가 된 대상에게는 흥미도, 동기도 생기지 않는다. 또 문자 학습에 치여 감각 운동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고 고작 글자만 아는 매우 협소한 인지 체계가 형성된다. 듣고 보고 걷고 뛰면 되었지 무슨 감각과 운동이 더 발달해야 하느냐는 부모님이 계실까 봐 말한다. 볼 수 있다고, 걸을 수 있다고 아이의 발달이 끝나는 건 아니다. 보기와 걷기가 합작해 어떤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장애물을 잘 피할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아이의 감각 운동 기능은 완성된다. 마데카솔과 후시딘 구입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면 비로소 이 단계에 이른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연구진은 메추라기에게 인위적 자극을 주면 감각이 빨리 발달하는지 연구하기 위해 수백 개의 메추라기 알 중 일부에 갑작스럽게 빛을 쬐었다. 정상적으로는 새끼 새가 부화된 후 빛을 쬐지만, 일찌감치 빛을 쬐면 시각 발달이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알에서 깬 새끼 새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보였다. 새끼 새의 뇌에 시각 발달이 지나치게 빨리 요구되면서 어미 새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머리에 새기는 각인 능력이 발달하지 못해 부화한 후에도 어미 새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이처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교육은 오히려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한다.
6세 이전은 일종의 반수면 상태라 뇌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하지 못한다. 놀면서 만지면서 듣고 보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기술을 익힐 뿐,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우리 인간은, 특히 아이는 상징보다 경험에 먼저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구체적 조작기를 거쳐야 형식적 조작기로 넘어가는 발달 과정 때문이다. 사과를 글로 배우기 전에 만져보고 맛보고 빨간 사과, 파란 사과, 노란 사과가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한다. 상징은 지식 세계를 압축해놓은 것이다. 경험보다 압축된 지식을 먼저 접하는 것은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지 못하고 달랑 비타민 한 알만 먹는 것과 같다. 한글 공부는 초등학교 입학 1년 전에 시작하면 충분하다, 우리 아이들도 모두 그랬다. 고작 두 아이를 가르쳐보고 어떻게 확신하냐고 따지는 분에게는 이렇게 말하겠다. 피아제는 고작 세 명의 자식을 관찰해서 인지 발달 이론을 만들었다. 집중적인 관찰이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한 피상적 통계보다 훨씬 신뢰감을 줄 때가 있다.
6세 이전에 문자와 숫자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다고 해서 책을 읽어 주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책 읽기는 중요하다. 6세 이전에는 스스로 읽도록 지나치게 강요하지 말고 책을 많이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흔히 뇌를 우주에 비유한다. 복잡한 뇌세포들의 구조가 셀수 없이 많은 별로 구성된 우주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우주의 오른쪽 끝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스스로 책을 읽는 것은 몇 억 광년 떨어진 우주의 중간에서, 쓰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몇 조 광년 더 떨어진 우주의 왼쪽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뇌의 발달 과정에 맞게 천천히 진행해야 탈도 없고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낸다. 만약 엄마가 책을 만날 읽어줬더니 아이가 어느 날 스스로 읽는다면? 물론 입을 틀어막을 필요는 없다.
2011년 3월에 한림대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연구 팀에서 사교육 시간과 우울증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하루 4시간 이하의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 가운데 10% 정도가 우울 증상을 보인 반면 4시간이 넘는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30%가 우울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나는 연구 결과보다 과정에 더 눈길이 갔다. 일주일에 4시간이 아니라 하루에 4시간이다. 선진국에서는 방과 후 공부 시간이 일주일에 7시간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하루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방과 후 3시간이다. 어른도 회사에서 일할 때 집중적으로 몰입하는 시간은 3시간 정도이다. 나머지는 그냥 멍하게 있거나 습관적으로 일을 하거나 떠들거나 먹거나 회의를 한다. 학교 수업만 집중해도 이미 7시간 정도 공부하고 오는데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우리는 이 난리를 쳐야 하는 것인가?
뇌가 폭발하는 두 번째 시기인 10세 이전까지는 원 없이 놀아야 이후 뇌가 제대로 발달한다. 굳이 학원을 보내야 한다면 공부보다는 친구와 책과 친해지는 목표만 세워야 한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까지는 상냥하던 엄마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억센 아줌마로 변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잡아먹겠다고 한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초등학교는 유치원 때보다 훨씬 더 긴장되는 곳이다. 순식간에 엄격해진 환경은 문화 충격 수준이다. 한마디로 이때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아직 인간이 아니다. 학교만 무사히 왔다 갔다 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기다. 이때 좋은 성적을 요구하거나 성실한 시험 준비를 강요하는 것은 올챙이에게 얼른 멀리 뛰어보라고 채찍질하는 것과 같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실컷 놀게 하면서 학교 숙제만 지키게 한다. 숙제는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숙제는 사회와 하는 첫 약속이다. 이 약속을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듯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후의 모든 원칙과 규율, 제재가 도통 들어 먹히지 않는다. 숙제를 무시하면 책임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간혹 유명한 학자들이 자신은 어릴 때 숙제도 하지 않고 학교생활도 엉망이었다고 말하는데, 그들은 천재라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를 잘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 천재가 아니라면 숙제를 반드시 하도록 해야 한다. 당신이 늙어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다.
4학년이 되면 아이의 적성과 성격에 맞는 공부 방법을 찾아 뇌의 개발을 도와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고 뇌를 발달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10세부터 20세까지는 인간의 발달 과정 중 뇌 발달이 정점에 이르는 기간이다. 이때 집중적으로 뇌를 단련해야 불이 활활, 물이 펄펄, 힘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또 이 시기에는 성욕과 공격성이 늘어나 책을 통해 지식을 쌓는 시간이 없다면 쾌락과 감각만 추구하는 부정적 자극을 통제할 수 없어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없다. 대한민국 학교수업과 수능의 난이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집에서 차분히 공부하도록 도와줄 수 없는 맞벌이 부부는 학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아이가 학교 공부에 흥미를 전혀 갖지 못한다면 '너 같은 놈은 인간도 아니다'라며 삶의 의욕을 박살 내지 말고 다른 것으로 뇌를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백배 현명하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라도 학교는 큰 의미가 있다. 친구를 만나고 함께 점심 먹고 교양을 쌓는 장소가 되면 된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다른 아이들이 학원 갈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만화책도 좋으니 책을 많이 읽게 하거나 망원경으로 별을 찾게 하는 등 아이가 좋아하는 공부를 시키면 된다. 그것도 안되면 엄마보다 살림을 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하게 해도 좋다. 어떤 활동이든 열심히 하면 된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라면 딱 한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잠을 제대로 자는 것이다. 수면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공부는 모래 위에 올린 성과 같다. 수면이 학습 능력을 높인다는 연구는 매우 많다. 수면은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서적 긴장도 해결해준다. 우리가 격렬한 꿈을 꾸는 것은 낮에 경험한 부정적 정서를 내보내기 위해서이다. 아이가 떼를 쓰다가도 잠을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 웃으면서 깨는 것처럼 우리는 자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낸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분들에게 대뇌피질이 두꺼워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책도 음악도 운동도 아니고 바로 명상이다. 무언가를 계속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자신의 내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 뇌를 더 튼튼하게 해준다.
심리검사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을 위해 아이의 마음을 읽는 다른 방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무언가를 시도했는데 아이가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하거나 얼굴이 어두워지면, 잠을 자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엄마의 눈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면 그 즉시 멈추어야 한다. 아이에게 그 방법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아이가 '싫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면 절대로 시키지 말아야 한다. 좋다는 원어민 영어 학원도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하면 일단 멈추어야 한다. 사랑하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아이는 없다. 다만 엄마들이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을 먼저 직감하고 싫다고 할 뿐이다. 반대로 무언가를 시도했는데 아이가 잘 적응하면 그것은 아이의 장점이자 적성이 된다. 어떤 아이들은 영어 학원을 매우 좋아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그 과가 아니라면 멈춰야 한다. 그러면 영어를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절대로 영어 공부를 시키지 말아야 할까? 6개월이나 1년 후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1년 후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 어릴 때 빨리 영어를 시작할수록 발음이 좋아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내면 자신감과 동기가 없어진다. 발음이 안 좋아도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지만 자신감을 잃은 아이들은 무엇을 해도 먹고살 수 없다.
약한 아이는 강요보다 지지적인 환경에서 쉬운 일부터 시작해 조금씩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서서히 강해지도록 격려해야 한다. 강한 아이는 강한 면의 장점을 말해주면서 서서히 공존과 배려를 배우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의 행동과 모습은 세상의 스트레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성이다. 그 성을 억지로 무너뜨리고 아이를 180도 바꾸려고 하면 부작용만 나타난다.
사랑은 절대로 뒤늦은 법이 없다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한다고 가정해보자. 내 아이는 어떤 상태일까?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못 먹겠지. 그렇다면 교장 선생님을 뵙고 아이를 점심을 먹인 후 다시 보내겠다고 해야 한다. 그런 전례가 없다면 교장실에서 먹게 해달라고 해야 한다. 끈질기고 진정성 있게 호소한다면 학교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줄 것이다.
못하는 것이 있다면 이후의 모든 과정을 스톱시켜야 한다. 참자고 해도 아이가 참아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프다면 병가를 얻어 보살펴주어야 한다. 등, 하굣길에서 친구와 부딪치는 것이 무섭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고등학생이라도 부모가 등, 하굣길을 동반해야 한다. 그것도 못할 정도라면 자퇴시키고 몸을 추스른 후 검정고시를 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남들과 다른 내 아이와 나를 향한 세상의 눈이 당연히 무섭고 부담스럽지만 잠시 내려놓고 오지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문제가 생긴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이 부족해서, 더 정확하게는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사랑을 주어야 한다. 사랑은 뒤늦은 법이 없다. 항상 사랑해왔다면 지금부터는 지혜롭게 주어야 한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쉽게 지혜로운 사랑을 줄 수 있다.
"선생님이 애가 평소에 어떤지 못 봐서 그래요. 직접 보면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걸요? 내가 동생에게 웃어주거나 살짝 어깨만 두드려줘도 동생을 벽에 밀어붙이고 멱살을 잡고 식탁 위의 음식을 다 쓸어버리고 난리도 아니라고요. 완전 또라이라고요."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짐작되는 바가 있어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만약 어머니가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면 어떻겠어요? 아들보다 더 난리를 치지 않겠어요?"
"아이는 동생이 자기보다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거예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껴야 동생도 미워하지 않고 반항도 안 합니다. 억지로 해보았지만 막상 말하고 보니 아이를 아직 사랑한다는 거 아시겠죠?"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절대로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화가 나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아이에게 화를 퍼부어대니 부부 치료도 꼭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하루에 50번도 넘게 아이에게 손찌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아들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로 더 진행되었다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들에게 멱살 잡히는 최악의 상황에 이를 뻔했다.
사랑의 물꼬가 터지면 기적이 일어난다
아이에게 이제부터라도 사랑을 주기로 마음먹었다면 사랑은 절대로 뒤늦은 법이 없다. 별은 어릴 때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뒤늦은 사랑으로 그 행복감을 회복했다. 별은 엄마가 교장실에 쳐들어간 순간 미움과 분노, 혼란감과 무력감의 벽을 무너뜨렸다. 아빠와 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방향을 잡은 엄마는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일사천리에 세상을 평정했고, 그 과정에서 별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아이가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어야 하는 보호이다. 또 자신에게 함부로한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존감을 느꼈다. 아빠는 강압적으로 1등을 요구했지만 엄마는 할 수 있는 것만 조금씩 해보자고 했으니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늘 웃어주고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엄마에게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한번 물꼬가 터진 사랑은 기적을 낳아 무려 14년 동안 분노와 적개심으로 닫힌 마음의 문을 4년 만에 완전히 열었다. 별은 남들이 보기에 좀 특이해 보일 뿐인 건강한 청년으로 자랐다. 마음을 치료하려면 아파온 시간의 2~3배 기간만큼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나의 기준을 뒤집어놓았다. 포기하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도 않으며 어제보다 1% 나은 오늘을 위해 사랑을 주며 노력하다 보니 놀랄 만큼 빠른 시간 내에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 상담을 받으러 온 부모들이 처음에는 치료 지침을 잘 따르다가도 3~4개월이 지나면 슬슬 초조해하며 6개월, 1년이 지나면 왜 아직 낫지 않느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아이가 나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세상에 너무 치였기 때문에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는 별이 엄머처럼 해보았느냐고 묻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하면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은 고생 총량의 법칙이 있는 듯하다. 발등에 고생이 떨어졌을 때 화를 내고 울고 회피할수록 고생의 시간은 늘어난다. 하루라도 빨리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갈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열린다.
별의 사례는 20여 년간의 임상 경력 중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첫 째, 사랑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 때로는 놀랄 만큼 빨른 시간 내에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둘째, 보호자와 치료자가 같이 아파하고 문제를 극복하며 결과까지 지켜보았던 드문 사례였다.
셋째, 치료자가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본 놀라운 사례였다. 별이 꿈에서 아버지와 화해한 것도 그렇다. 어려운 정신분석 치료 과정도 없이 별이 스스로 꿈에서 자신의 상처를 털어버렸다.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 세계도 건강해졌음을 의미한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책에 담고 싶어 "가명을 뭘로 할까?" 라고 물었더니 은이 씨가 또 감동적인 멘트를 날렸다.
"별로 하자. 별 자체로 빛나듯이 모든 아이들은 타고난 빛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이 아이의 빛이 다시 빛나게 도와주었을 뿐이야."
비록 한때 자신의 상처 때문에 아이를 잠시 방치했지만, 상처와 고통을 잘 이겨낸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은이 씨에게 나는 틈만 나면 말한다.
"자리 깔고 앉아!"
하도 내가 이 말을 해서 요즘은 조금 마음이 생겼는지 그럼 '수암골 아줌마'라고 해달란다. 별이 최근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전문대학교를 졸업하면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서 공부를 더 하고, 졸업한 후에는 정식으로 중국어 통역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안전과 사랑, 자존심의 욕구가 채워진 아이가 이제 자기실현 욕구를 보이는 것이다.
엄마와 별은 넉넉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 먹고 자는 안전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사랑을 주는 엄마가 있고, 대학교에 진학해 잘 적응하다 보니 별의 하위 수준의 욕구들이 4년 만에 충족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망설이던 가족에게 별은 중국어 인증 시험 인정서를 갖고 와 꼼짝없이 수용하도록 했다. 그러면 또 돈이 들테니 은이 씨는 수암골 아줌마라도 할 기세다. 별과 은이 씨가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운 일을 보여줄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 전문가를 믿으십시오. 전문가가 개입하는 시간에는 홀가분하게 자신을 벗어던지고 쉬세요.
* 희망이고 절망이고 언어적 유희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지금 할 것을 실행하세요.
* 이 모든 상황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딱 한 번만 진심으로 인정하세요. 눈물이 나온다면 크게 우세요. 하지만 그 뒤로는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말고 죄책감을 느낄 시간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더 아이를 안아주세요.
* 세상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모습'에 목숨을 걸지 마세요.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관된 모습에 아이를 맞추려고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조금 다른 현재 모습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나가세요. 단, 정상이라는 기준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마세요. 정상이라는 기준은 아이가 이 세상에서 편하게 지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 이아가 이렇게 된 이유는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임을 인정하세요. 전문가가 아이를 다루는 몇 가지 기술을 가르쳐줄 것이며 그 지침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사랑 결핍감이 해결되지 않는 한 기술을 100개 익힌들 소용이 없습니다.
하루 3시간 엄마 냄새_ 이현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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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불확실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큰 그림을 그릴 것인가? 혼란스러울수록 기본을 지켜야 한다. 콜라, 사이다, 맥주가 제아무리 맛있어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듯이, 화려한 양육 이론들의 허와 실을 파악하려면 아이의 발달 과정을 지배하는 '뇌'를 아는 것이 기본이다. 인류가 정복할 마지막 영역이라고 할 정도로 뇌는 아직 밝혀진 것보다 숨겨진 것이 더 많은 신비한 기관이다. 가설과 이론이 계속 업데이트 되지만 세 가진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첫째, 뇌는 다구조 다기능으로 이루어져 있다.
둘째, 뇌 발달에는 순서가 있다.
셋째, 원시 뇌가 안정되어야 고등 뇌 기능이 잘 발휘된다.
이 세가지 사실을 무시하는 양육법은 일시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소탐대실의 결과만 낳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형태 가운데 소탐대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너무 많아서 위험하기까지 한 것은 바로 조기 유학과 조기교육이다.
혼자 떨어진 아이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사춘기는 두 번째 두뇌폭발기이다
맨처음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인간의 뇌 구조와 기능을 복습해보자. 인간의 뇌는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1층에 호흡, 체온 등 생명 유지를 담당하는 뇌간, 2층에 희로애락의 감정과 욕구를 담당하는 원시뇌인 변연계가 있으며, 생각하고 판단하며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대뇌피질이 3층에 있다. 1층과 2층이 견고해야 그다음 3층이 번듯하게 올라갈 수 있다.
엄마 배 속에서 나온 뒤 생후 2년 동안 유아의 뇌는 뇌 신경을 둘러싸고 있는 시냅스 가지들이 과잉 발달해 성인의 2배까지 이른다. 나중에 어떤 뉴런이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많이 만들고 보는 것이다. 이후 3년째 되는 해에 뇌는 솎아내기에 들어간다. 즉 필요 없는 부분은 없애고 필요한 부분을 강화한다. 이 단계까지가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의 뇌를 맞추는 시기이다.
1단계가 잘 이루어지려면 비교적 평안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의 가장 앞쪽 부위인 전두엽 기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보통 10세부터 시작해 12세 때 본격적으로 발달한다. 이 시기에도 생후2~3년 때와 비슷한 뉴런의 급증과 솎아내기 현상이 다시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뇌는 일시적으로 상당한 과부하에 걸린다. 따라서 질풍노도와 같은 혼란을 느끼고 잘못된 판단이나 위험한 행동에 쉽게 유혹된다. 3세쯤에도 엄청난 혼란을 겪지만 그때는 부모가 모든 것을 다해주었기 때문에 아이는 비교적 힘들지 않게 그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 반면 10세쯤 되면 아이는 좀 더 독립적으로 대처해야 하고, 그동안 습득해둔 지식도 있어서 이를 통합하기 위한 고충이 더 심하다.
아이가 청소년기가 되어 부모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반항하듯이 보이는 것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전두엽에 상응하는 뉴런 협응체의 발달을 준비하기 위해 전반적인 심리 기능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많아지는데 그것을 소화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아직 미약해서 혼란스럽다.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 엄마한테 "아, 짜증 나!"라고 소리치기 일쑤다. 엄마는 한 대 때려주고 싶겠지만 사실 자신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그러는 것이다.
이 시기 아이들은 모든 질문에 한결같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반항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정말 잘 몰라서 그런다. 머릿속에서 수백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공부 잘해야지?" 하고 물어보면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전두엽이 발달해 사고력이 확장되다 보니 '공부를 꼭 잘해야 하나? 내가 잘하면 다른 애는 못해야 하는데 그래도 되나? 잘한다고 인생이 꼭 행복한가? 공부가 도대체 무엇인가?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속으로 터져 나온다. 하지만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으니 짜증 나고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주면 예전에는 무조건 엄마에게 가져다주었지만 지금은 일단 자기가 먼저 읽어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버지 교실을 한다는데, 이걸 꼭 해야 하나? 아버지는 이런 데 올 시간이 없다. 온다 해도 담임 선생님하고 나에 대해 얘기한다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버지가 오지 못하는 다른 애는 어떻게 하나?'
그래서 가정 통신문이 가정과 통신되지 못한 채 비행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고 하필이면 그 비행기를 멋지게 가로챈 담임 선생님이 아이의 전두엽을 톡톡 튕긴다. 가뜩이나 골치 아파 죽겠는데 말이다.
이러한 전두엽 폭발 시기를 잘 보내려면 아이의 정서 뇌가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정서 뇌는 뇌의 심부에 있는 변연계 부위를 말한다. 전두엽이 어떤 사건이나 자극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며 통합하고자 할 때 변연계, 그중에서도 편도체는 감정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즉 전두엽은 감정을 판독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변연계와 계속 회의를 하면서 일을 처리한다. 편도체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으로 가득 차 있고, 정서적으로 흥분되는 사건을 감지하면 기억과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측두엽과 전두엽으로 도파민을 내보낸다.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정서 뇌가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전두엽, 즉 높은 수준의 사고를 담당하는 뇌가 정서 뇌의 신호에 따라 결정 방향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준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미국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행복감에 대한 실험을 했다. 질문은 '당신은 일상적으로 얼마나 행복한가?' 였다. 그 결과 실험자의 조작으로 설문 전에 실험실 바닥에서 10센트짜리 동전을 주운 학생들의 행복감 지수가 한결같이 높게 나타났다. 단지 1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는데도 자기는 평소에도 행복감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분이 좋으면 사고가 바뀐다. 기분이 좋아야 사고 기능이 잘 발휘된다.
매슬로가 심리적 욕구 위계 가설을 발표한 시기는 뇌 과학이라는 용어가 낯선 때였다. 매슬로의 이론은 현재의 뇌 발달 이론에도 잘 부합한다. 생리적 욕구는 뇌간에, 안전과 사랑, 소속, 자존감의 욕구는 변연계에 해당하며 자기실현 욕구는 대뇌피질에 해당한다. 자기실현 욕구는 안전의 욕구를 지나 사랑과 소속, 자존심의 욕구를 지나야 온전히 발휘된다. 아래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위 수준의 욕구를 흉내는 낼 수 있지만 만족스럽게 발현시키지 못한다.
조기 유학, 절대로 보내지 마라
이제 조기 유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기분이 좋아야 공부도 잘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공부를 잘해서 성공하기를 바라면서도 자식을 일찍 분리시켜 정작 공부의 선행조건인 안정적 정서를 망가뜨린다.
전두엽이 폭발하는 시기에는 이미 과부하된 심리 기능을 정리하기에도 눈이 빠질 지경인데 낯선 곳에서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는 과업까지 수행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나마 우리아이들이 머리가 좋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신생아가 억지로 걷고 있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도 팔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걷게 하면 발을 옮기는 걸음마 반사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보고 걷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조기 유학으로 일찍 부모와 떨어져 지낸 아이들도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와 신체적인 안전 욕구는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변연계에 해당하는 정서적 안전의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못하고, 그에 따라 사랑과 소속의 욕구, 자존감의 욕구 또한 온전히 충족되지 못해 부지런히 영어 공부를 하면서 자기실현 욕구를 향해 달려본들 부모의 욕구에 반사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생명체는 무엇보다 안전과 보존의 욕구가 먼저이다. 하버드대학교의 교육학자 커트 피셔는 자신의 아이를 대상으로 이것을 밝혀냈다. 그는 일주일마다 아이의 머리 크기를 재보았는데 생후17~19주 사이에 성장이 멈추어서 살펴보니 감기를 앓았다. 생명체는 안전이 위협받으면 성장 체계의 활동을 멈춘다. 그리고 환경이 우호적이라고 인식한 다음에야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다. 어미 쥐가 햝아주지 않은 새끼 쥐는 성장한 후 스트레스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는데, 스트레스 호르몬의 생산을 억제하는 단백질이 제때 분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도망치느라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은 번식 기능이 일시적으로 멈춘다고 한다.
나는 아이 혼자 조기 유학을 떠난 상태를 심리적 안전이 위협받는 스트레스 상황이라고 본다. 겉으로는 열심히 공부하는 듯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 일시적으로는 적응하는 듯이 보이지만 티눈이 있는 발로 걸음을 내딛는 것과 같다. 언젠가는 발의 모양이 변하고 통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조기 유학은 뇌 발달의 기제에 역행하니 비효율적이고, 여기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해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
조기 유학을 가서 다른 아이보다 영어를 잘하면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더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은 분명히 높아진다. 그렇다고 반드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나는 병원에서 이를 자주 확인하곤 했다. 병원에 있다 보면 정신과에 올 이유가 전혀 없을 만한 환자를 꽤 많이 본다.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데도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알코올의존증, 약물 중독에 빠지거나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살아온 이력을 추적해보면 일찌감치 부모와 떨어져 공부한 사람이 많다.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간 경우뿐 아니라 우리나라 안에서도 좋은 학교에 다니려고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진 경우도 포함된다. 겉으로는 성공한 듯이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심리적 긴장과 불안이 누적되었다가 성인이 된 후 몸이나 마음의 병으로 나타난다. 이르면 20대, 늦으면 30~40대에 증상이 나타난다.
조기 유학이 성인기의 질병과 연결되는 기제는 이렇다.
우리가 원시인이던 시절, 평온하게 쉬는데 갑자기 매머드가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 몸의 부신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해 그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 하지만 과잉 분비되거나 계속 분비되면 혈압과 콜레스테롤 지수가 높아지고 면역성이 떨어져 병에 걸린다. 심지어 뇌세포가 죽기도 한다. 매머드도 없는 현대사회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잉 분비되는 이유는 딱 하나, 사회적 압력 때문이다. 성공 스트레스, 명예 스트레스, 승진 스트레스, 경제적 스트레스, 대인 관계 스트레스가 메머드가 되어 인간을 쫓기게 한다.
조기 유학 또한 사회적 압력 스트레스의 하나가 된다. 이것이 다른 스트레스보다 더 위험한 것은 '조기'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호할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부모 곁에서 위로와 안정을 제공받지 못하고 계속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다. 홀로 떠나는 대부분의 조기 유학은 태생적으로 스트레스 유발 요소를 안고 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아이가 취직했다. 그렇지 못한 아이와 연봉 차이가 얼마나 될까? 평균 1000만 원 정도 될까? 높게 잡아서 2000만 원일까? 물론 연봉을 몇 억씩 받는 사람도 있지만 학력과 다른 능력이 같은데 영어 능력 하나 때문에 2000만 원이나 차이 난다니 화가 날 만도 하다. 하지만 조기 유학에 투자한 비용에 비해서는 어떠할까? 더구나 그렇게 되기까지 힘들었을 아이와 건강 문제까지 생각하면 병원비 차이가 그만큼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조기 유학을 가지 않은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압도적으로 낮은 것은 아니다. 다만 부모 곁에 있는 아이들은 그 스트레스를 완화하거나 풀 수 있는 탁월한 피로 해소제를 즉시 구할 수 있다. 언제든지 집에 상비되어 있는 피로 해소제, 바로 부모 냄새이다.
앞에서 조기 유학이 뇌 발달 순서에 역행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면에서 위험하다고 했지만 내가 더 위험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부모 냄새와 단절되기 때문이다. 부모 냄새는 대체할 수 없다. 아이폰으로 영상통화를 한다 해도 부모 냄새를 맡을 수 없고, 아바타로 부모 냄새를 만들어낸다 해도 인공일 뿐이다. 아무리 평소에 의젓하게 잘 버텨도 어느 날 큰비가 오고, 천둥이 치고, 음식을 먹고 체한 날, 친구의 싸늘한 시선이 생각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눈을 뜬 날,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엄마 냄새로 긴장을 풀어야 한다. 신의 위로와 은총은 너무나 멀다. 신이 너무 바빠서 세상에 엄마를 만들었다는 말이 이처럼 절묘하게 들어맞는 때는 없다.
혼자 조기 유학을 떠나 부모 냄새와 단절된 아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본능적인 유대 관계도 끊어진다. 그나마 엄마만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대안책으로 대한민국에는 기러기 아빠가 탄생했다. 모양은 아빠인데 속은 기러기라니, 솔직하게 말하면 괴물이다. 그 아이가 엄연히 아비 부, 어미 모의 자식인데 아비의 냄새를 3년 이상 맡지 못한다면 정서적 유대 관계는 끊어진다. 아비는 허리가 휘게 돈을 벌어 투자했지만 아이는 같이 있던 어미만 사랑하고 아비는 돈 벌어 오는 사람으로만 인식한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가 철이 없거나 배은망덕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자연이고 본능이다. 보지 않아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냄새를 맡지 못해 멀어진다.
대뇌 발달의 2차 폭발 시기가 언제까지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중학생 나이를 넘겨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한다. 최소한 17~18세, 좀 더 안전성을 보장받으려면 24세가 넘어야 한다. 그러니 통합적인 뇌 기능의 발달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학교에 입학할 때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암기식 지식에 의존하기에 더욱더 확인하기 어렵다. 부모들은 주입식 교육으로 훈련된 아이들이 버젓이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양육 방식이 옳았다고 판단하지만 정작 문제는 대학 이후의 취직과 군대, 결혼과 부모 되기 과정에서 발생한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로 압축되는 다양한 심리적 과업에 직면했을 때, 정서 뇌의 안정 없이 언어 뇌, 수리 뇌만 발달시킨 아이들은 금방 무너진다. 쉽게 포기하거나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다. 인간의 문제 중 머리를 써서 풀어야 하는 문제는 IQ 90만 넘으면 해결하는 데 큰 차이가 없다. 정말 인간답게 살기 위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체를 통합하는 지혜, EQ로 풀어야 하는데 입시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은 EQ를 가동할 정서적 밑천을 만들지 못한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EQ가 낮다고 전두엽이 발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서 뇌발달 단계를 건너뛰기 때문에 전두엽이 더 빠르게 발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서 뇌의 발달이 수반되지 않은 채 전두엽만 발달한 사람은 감정이 없는 슈퍼 로봇에 지나지 않는다. 슈퍼 로봇은 똑똑하지만 인간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슈퍼 로봇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영화 <쿵푸 펜더>에 기술이 뛰어난 타이렁이 나온다. 하지만 감정이 불안정한 타이렁은 위험하기만 하다.
전두엽은 창의적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나는 요즘 전 세계에서 창의력이 가장 뛰어난 나라는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중국인의 창의적 사고는 정점에 이르러서 인공 계란, 합성수지 쌀, 피혁 우유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계란은 당연히 닭에서 나오고 쌀은 당연히 벼에서 나오며 우유는 당연히 소에서 나오는데, 창조주도 하지 못한 발명을 하다니 그 발상과 기술이 얼마나 천재적인가. 합성수지 쌀을 세 그릇 먹으면 비닐 봉투를 하나 먹는 것과 같다니 그 폐해가 대단히 심각하다. 황허 강에서 문명을 꽃피웠던 중화민국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달해 부잣집 아이들은 샤오황디(소황제)가 되었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셰한궁(노동 착취)이 되었다.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면서 결핍감, 무력감, 좌절감, 분노 등의 정서적 불안정은 급증한 반면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전두엽 기능만 과대하게 발휘되기 때문이다.
내 자식 키우기도 힘든 판에, 이 땅에서 벌어지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판에, 언젠가부터 한 가지 걱정이 더 생겼다. '중국을 어찌할꼬?'
지금 전 세계가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데 일부 중국인의 반인류적인 창의적 사고가 계속된다면 그 여파가 우리 아이에게도 미칠 수밖에 없다.
정서적 안정을 무시한 채 영어만 잘하고 시험만 잘 보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 우리가 중국에게 보내는 위험과 안타까움의 시선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날아올 것이다. 그런 중국조차도 초등학생 자녀를 혼자 조기 유학 보내는 일이 많지 않다. 초등학생 조기 유학 비율은 대한민국이 세계 1위이다. 참, 우리나라는 1등도 많이 한다.
부모를 떠나 공부해도 되는 시기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와 로체스터대학교에서 이민자를 대상으로 언어 습득 능력을 연구했다. 예상대로 일찍 왔느냐가 중요한 변수였는데, 테스트를 해보니 3~7세에 이민 와서 영어를 배운 사람들은 원어민 같은 수준의 점수를 받았지만 열 살이 넘으면 점수가 뚝 떨어져 50%까지 낮아졌다.
이민자도 이 정도인데 몇 년 영어 공부하러 간 조기 유학은 점수 하락이 더욱 가파를 것이다. 이 연구자들이 추가로 언급한 내용이 있다. 이런 식으로 언어 습득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현상이 제2 외국어 뿐만 아니라 모국어에도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모국어를 충분한 수준으로 습득하기 전에 제2 외국어를 습득하면 이중 언어 사용자가 될 수도 있지만 이중 언어 장애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요즘 청소년을 보면 영어는 잘하지만 한국어 수준이 너무 낮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k-pop 가수들의 대형 공연이 심심찮게 열리고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k-pop 공연을 보다가 출연한 아이돌 가수의 반 이상이 공연장의 뜨거운 열기에 대해 "정말 장난이 아닌데요?" 하고 똑같이 말하는 것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의 한국말 수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어차피 일곱 살 이후 시작한 조기 유학에서 영어 습득 능력은 거기서 거기다. "우리 애는 영어만 배우러 가지 않았어요"라고 항변하는 부모들에게 말한다. 아이가 일찍 세상에 눈뜬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깨달음은 부모의 살가운 사랑을 충분히 받아 정서 뇌가 안정된 상태에서 전두엽 기능이 온전하게 발달된 후라도 늦지 않다. 오히려 좀 늦게 시도해야 더 성숙한 시각을 갖출 수 있다. 이 세상에 어떤 것도 한 가지로 100%의 효과를 얻는 일은 없다. 포도주는 심장에 좋지만 뇌에는 좋지 않다. 커피는 나쁘다고 알려져 있지만 당뇨와 치매예방에는 좋다. 조기 유학은 외국어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좋지만 안정적인 정서가 우선되어야 하는 뇌 전체의 발달에는 좋지 않다.
예술과 스포츠 영역의 조기 유학은 위험성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적다. 예술이 변연계를 자극하고 정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 이런 음악을 듣고 연주하면서 감정이 정화되면 그나마 정서적 동요가 많이 가라앉는다. 운동 또한 끊임없이 몸을 움직임으로써 부모의 부채에 따른 정서적 긴장을 어느 정도 해소해준다. 하지만 영어 실력만을 목표로 하는 유학은 감정을 발산하고 정화할 기회가 거의 없어 몸과 마음이 이완되기 힘들다. 굳이 조기 유학을 보내고 싶다면 예술 활동이나 운동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부모의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은 똑같으므로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사춘기를 지나 전두엽의 폭발적인 발달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래서 이제는 가정 통신문을 보고도 예전에 했던 수백 가지 생각을 우선순위로 정렬할 수 있을 때가 유학을 가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물론 옛날에도 조기 유학의 전통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 양반집 자제들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일찌감치 떠나곤 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 시험일에 늦지 않기 위해서 서둘러 출발하거나 세도가와 안면을 트기 위해 1년 전부터 한양 성읍 근처에 방을 얻어 공부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방자가 동반했다. 시종이지만 친구이기도 하고 형이기도 했던 존재, 집 안의 냄새와 온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부모의 대리자가 24시간 옆에 있어주었기 때문에 우리의 도련님들은 안심하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행여 공부하는 중에 기생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방자는 부모에게 바로 고자질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도련님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애쓰곤 했다.
방자도 없는 현대사회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조기 유학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다음의 세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는 부모와 아이 모두 같이 가는 것, 두 번째는 첫 번째 방법을 꼭 지켜댜 하는 것, 세 번째는 두 번째 방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미국의 투자가 워런 버핏이 말한 부자 되는 방법을 인용해보았다. 워런 버핏은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첫째, 원금을 절대로 잃지 말야 하고, 이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는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을 유머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다. 조기 유학을 잘못 보내면 원금이, 즉 다이아몬드 같은 아이의 가치가 오히려 손실된다. 아이가 혼자 유학을 가도 되는 나이는 전두엽 폭발이 안정기로 접어든 대학교를 졸업한 후다. 최대한 당겨본다고 해도 고등학생 시기는 넘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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