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사색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독서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필자에게는 공부가 독서이고 독서가 공부이다. 겉모습과 단어는 달라도 본질과 뿌리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였던 카를 야스퍼스의 표현을 빌려서 하면 다음과 같다.

 

"자기의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파멸한다."

 

우리의 존재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 인정과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곧 불행과 파멸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행복하고 풍성한 삶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배려하고 인정하고 관심을 넓혀 다른 사람과 마주하는 삶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람과 마주하며 세상과 다른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도록 해주는 힘과 도구는 바로 독서인 셈이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과 세상을 더욱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상대를 정확하게 알면 알수록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독서는 자기의 성을 파괴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교각을 창조해나가는 것이다. 새로운 교각을 창조해 나가기 위해서는 독서를 통해 다양하고 좋은 재료들을 얻어야 하고, 그 얻은 것을 가지고 교각을 창조해나가야 한다.

 

교각을 창조해 나가는 방법은 고민하는 것이고, 사색하는 것이고, 사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독서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사색하고 고민하여 사고력을 확장시켜 나가기 위한 것이다.

 

독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하는 이유가 지식을 확장하고 남한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라고 생각한다. 물론 독서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사실에 대해 배우고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힘들게 독서를 하면서 겨우 지식만 얻게 된다는 것은 수영장에 갔다 오면서 수영장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도 하지 않고 목욕만 하고 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면서 심신을 건강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풀고,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고, 물살을 가르는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진정 수영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저 수영장에 가서 이런 것들을 다 느끼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채 수영만 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서는 새로운 지식만 쌓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사고력을 확장시키고, 고민을 하고, 사색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안철수는 독서를 이런 식으로 하는 인물이다. 2009년 2월 20일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설을 읽으면 줄거리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신 주인공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관심이 갔어요. 예를 들어 [금삼의 피]를 읽으면서 '왕인데 왜 이렇게 불행할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왜 화를 내지?' 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해봤어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니까 정작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스토리를 잊어버리더군요."

 

필자는 이 기사를 보고 나서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정작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스토리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제대로 된 독서일까? 라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제대로 된 독서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필자 역시 2009년 2월의 겨울을 잊을 수 없다.

 

필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독서를 시작했던 계절이 바로 그 해 겨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독서가 무엇인지,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독서의 가장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수많은 책을 섭렵하고 혹독하고 치열하게 책에 파묻혀 살다 보니 하나씩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독서의 가장 큰 유익은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다.

 

"독서의 가장 큰 유익은 사고의 확장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깨닫는 데 4년 정도가 걸렸다. 그것도 하루 종일 책만 읽는 생활을 4년 동안 하고 말이다. 안철수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매스컴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은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권의 책이라도 거기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사실 독서에서 글을 읽는 만큼 중요한 것은 사색입니다. 책에 나온 내용을 자신의 경험이나 현재 상황에 대입해 생각해보고, 다른 책과도 비교해 보거나 연관지어서 생각해 보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과정은 책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방법이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요약본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가 디지털타임스와 2003년에 인터뷰한 내용이다. 그의 말처럼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사색이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색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은 자신의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 자신의 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교각을 창조해 나가는 일과 같은 것이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지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협한 성안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공부와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라는 안철수의 말이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님을 우리 모두 명백히 알아야 한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때 나는 항상 책을 통해서 먼저 그 세계를 간접 경험함으로서 그 세계로 진입해 들어갔다."

 

안철수의 이 말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책을 통해 먼저 그 세계를 간접 경험함으로써 그 세계에 진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책을 통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간접 경험하는 도구는 바로 사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독서를 그저 지식의 확장만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독서를 지식의 확장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은 독서를 아무리 해도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다.

우리의 세계를 넓힌다는 것은 독서를 통해 사색을 하면서 미지의 세계에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철수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서 방법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즉, 그가 말하는 유익한 책읽기의 열쇠는 '사색'이었다.

그렇다면 사색한다는 것, 즉 생각한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생각하는 바로 그것으로 우리의 인생과 미래가 형성된다고 할 수도 있다.

 

"인생은 우리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처럼 인생을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의 사고가 우리의 인생이며, 지금의 '우리'라는 존재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생각이고 사고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자신을 만들어 주는 것도 자신의 생각이며 동시에 실패한 자신을 만들어 주는 것도 역시 자신의 생각이다. 생각은 작은 자신을 거인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반대로 거인이었던 자신을 작고 보잘것없는 소인배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나약한 자신이 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도 있고, 강한 인간이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인간은 생각하고, 그 생각은 곧 현실을 창조하여 현실로 인간의 눈에 나타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현실과 환경은 인간의 생각의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즉, 생각에는 창조의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생각은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큰 위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극히 소수만이 이러한 생각의 위력을 깨닫고 위대한 생각과 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평범한 사람들은 특별히 위대하거나 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마다 사고와 의식의 수준이 정해져 있어서 그 수준과 범위를 저절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볼 때 우리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어제 생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어제 생각했던 그 생각들을 오늘 또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우리들의 삶이 그토록 어제와 다른 삶을 살지 못하고 변화가 힘든 것이다.

 

인간은 하루에 보통 7만 가지에서 8만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하며 산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 많은 생각 중에 80% 이상의 생각들이 바로 어제했던 생각의 틀과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쳇바퀴 돌듯 생각의 쳇바퀴를 매일 자신도 모르게 돌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제와 다른 삶을 살고 싶지만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조용한 절망의 삶을 우리가 평생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우리 스스로 생각의 틀과 한계를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비범한 사람들을 가르는 것이 바로 생각의 차이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틀과 한계를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쉽게 뛰어 넘고 벗어날 수 있게 해주어 어제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아 갈 수 있게 해주는 데 비결이 있다. 그것이 바로 '독서'인 것이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적은 사람들보다 좀 더 나은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이유도 이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이유도 이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롭고 낯선 곳을 여행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새롭고 낯선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는 것이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라."

 

중국 명나라 말기의 대학자인 고염무가 남긴 천고의 명언이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게 되면 무엇보다 자신의 사고와 의식의 틀과 한계를 벗어나 도약을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의 수준과 범위를 높이고 넓히는 것이다.

우리가 높은 수준의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는 평범한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생각의 틀 속에 사로 잡혀 평범한 삶밖에는 살지 못한다. 하지만 위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위대한 생각의 틀 속에 사로 잡혀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위대해지는 것이다. 한번 뿐인 인생을 시시하게 살고 싶다면 독서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독서를 반드시 해야 한다. '위대한 생각을 길러라.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생각보다 높은 곳으로 오르지 못한다.' 라고 말하는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을 명심하자.

 

위대한 생각을 스스로 기를 수는 없다. 집을 지으려고 해도 건축자재와 재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 이층집을 지으려는 사람은 그 만큼의 재료가 있어야 하고, 63층 빌딩을 짓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만큼의 재료가 있어야 한다. 독서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독서를 많이 하여 사고와 의식의 수준이 향상되고 도약한 만큼의 인생을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 하듯, 머릿속에 책이 5천 권 이상 들어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꿰뚫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다." 고 한승원 작가는 말했다. "책을 읽어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거야. 인류와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책을 봐야 해. 책을 안 읽는다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모른다는 거지." 라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말한다.

 

필자가 추천하는 독서는 다독이다. 백 권의 책을 읽은 사람과 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의 의식 수준의 차이는 열 배가 아니라 백 배도 될 수 있고, 천 배도 될 수 있다. 한 권의 책이란 작가의 인생의 일부분 또는 사상과 사고의 일부분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롭고 낯선 하나의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세상이 백 개인 사람과 만 개인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큰 격차가 생기게 된다.

 

워런 버핏이나 오프라 윈프리,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가 모두 엄청난 책벌레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책을 적게 읽거나 읽지 않는 사람들과는 생각 자체가 다르다. 생각의 범위와 수준이 평범한 사람의 그것을 이미 뛰어 넘은 사람들인 것이다.

앙드레지드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니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그는 한 권의 책조차도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런데 만약에 한 권이 아니고 만 권의 책을 읽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만 권의 책을 읽어 본 경험이 있는가?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작해 보라. 만 권을 읽어본 경험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뛰어 넘을 수 없는 큰 간격이 있기 마련이다.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이라고도 불렸던 성당시대의 시인인 두보는 이런 말을 했다.

 

"만 권의 책을 읽으면 글을 쓰는 경지가 신과 같아진다."

 

19세기 한국사에서 최고의 인물 중의 한 명인 추사 김정희 역시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을 담아야 그것이 흘러넘쳐 그림이 되고 글씨가 된다.' 라고 했고, 중국 북송 때의 최고의 시인 소동파도 '만 권의 책을 읽으니 비로소 신과 통한다.' 라고 했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 알량한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목표인가? 그것보다는 만 권의 책, 십만 권의 책을 읽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는다면 최소한 당신의 삶은 어제와 달라질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당신의 현재 인생에 복잡하고 풀기 힘든 문제들로 가득 차 있는가? 그렇다면 독서를 통해 사고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사고와 의식을 도약시켜야 한다.

 

그것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오늘 당면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사고 수준으로는 도저히 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의 사고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누군가 필자에게 독서의 가장 큰 유익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독서의 가장 큰 유익함은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독서의 가장 큰 유익함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고의 확장, 그리고 그러한 확장을 통한 위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말이다. 우리가 위대한 생각, 큰 생각을 하게 되면 평범한 것에 매몰되지 않게 된다. 우리가 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큰 생각을 하고 위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 남들이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볼 수 있게 되고, 그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점검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고 말했다. 즉, 우리는 삶에 가치를 부가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사색과 자기 점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색은 인생을 보다 가치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인생의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사색은 주도적이고 당당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이 사색의 힘이다. 하지만 사색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하기 힘들고, 귀찮고, 지겨운 과정이며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토록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 더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나 여가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인생을 점검하고 사색하는 데 사용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분노, 과거의 일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등에 빼앗기는 시간이 자신의 삶과 미래를 계획하고 점검하며 창조적인 사색을 하는 데 투자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책을 통해 사색의 질을 높인 사람은 생각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 가도 환영을 받고 리더가 된다. 그들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이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고, 왜 살아야 하고, 왜 이 길을 가야 하는 지에 대한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존 맥스웰은 저서 [생각의 법칙]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생각이 뛰어난 사람은 언제나 수요가 부족하다. '어떻게'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 일자리를 가질 수 있지만 '왜'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의 보스가 될 것이다. 생각이 뛰어난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며,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가 모자라는 법이 없다. 또한 그들에게는 언제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이 있다."

 

생각이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독서를 하는 방법이 있다. 안철수의 생각이 뛰어난 이유는 그가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많은 독서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안철수에게 배워야 할 법칙 중의 하나는 독서를 통해 사색하는 것이다.

 

_ 김병완, [안철수의 28원칙] 중에서

 

김병완 - 대구 대건고, 성균관대, 삼성전자 공채37기. 삼성전자에서 10년 이상 연구원으로, 6 시그마 전문가로 직장생활을 했다.

회사생활에서 갑자기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고, 과감하게 인생의 길을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부산에 내려와 3년 동안 도서관에서 목숨을 걸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3년 동안 읽은 책이 9000권을 넘었다. 그리고 지금은 만 권을 충분히 넘었다. 누구나 만 권의 책을 읽으면 책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는 것 중에 책 보다 더 나은 것은 절대 존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 대표작인 [48분 기적의 독서법]을 비롯해서,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마흔 행복을 말하다]

[단사리 마음혁명], [이건희 27법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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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러면 귀신도 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신의 극치다_ 관중(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세상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인문고전 독서와 다른 인문고전 독서가 있다. 조선 및 중국의 과거시험 공부와 중세 서양의 라틴어 학교 및 근대 독일의 김나지움에서 시행했던 인문고전 독서교육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입 논술시험 공부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겠다.

 

이 다른 형태의 인문고전 독서를 살펴보면 조금 잔인한 면이 발견된다. 일종의 암기 및 주입식 교육이 특징인데,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암기 및 주입식으로 받으면 효과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두뇌가 인문고전을 조금이라도 맛보기 때문에 인문고전을 전혀 접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하지만 인문고전 독서의 진정한 목표인 사고의 혁명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이런 식의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피지배층인 평민보다는 조금 나은 두뇌를 가져야 하지만 지배층보다 뛰어난 두뇌는 가지면 안 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식의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은 동서양 인재들은 지배층의 수족이 되어 평민들을 다스리는 일을 했다.

 

이 낮은 수준의 인문고전 독서는 '반복독서'와 '필사'까지는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인 '사색'부터 달라진다. 낮은 수준의 인문고전 독서에는 사색이 없다. 오히려 사색을 억압하고 소멸하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마울브론 신학교와 김나지움은 인문고전을 접하고 사색으로 충만해진 헤르만 헤세를 억압했다. 헤세는 정신병에 걸렸고, 김나지움을 떠났다. 루소를 읽고 정신적으로 각성한 톨스토이는 대학이 자신에게 가짜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대학을 버렸다.

 

세상에는 동서양 고전을 줄줄 외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마치 대한제국 말기 어느 궁벽진 시골의 서당 훈장이 가졌을 법한 고루한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의아했다. 천재적인 창조성과 감수성이 번쩍이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젊은 정신을 가진,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진정한 인문고전 독서가들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입만 열면 인문고전의 글귀들을 줄줄 읊고 손에 붓만 잡으면 일필휘지로 인문고전의 내용을 쭉쭉 써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천재들의 혁명적인 사상과 삶을 전혀 알지 못해 삶에 아무런 발전이 없고 세상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인문고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두뇌고 열리고 성장하고 변화하기는커녕 그 반대의 결과만 얻는 사람들 말이다. 서애 류성룡은 '서애선생문집'에서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다섯 수레의 책을 술술 암송하면서도 그 의미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사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애뿐만 아니다. 동양의 천재들은 하나같이 진정한 인문고전 독서는 사색에 있고, 사색이 빠진 인문고전 독서는 헛것이요 가짜라고 강조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관중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러면 귀신도 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신의 극치다'라고 했다.

 

공자는 '논어'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했다.

 

맹자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얻는 것이 있지만 그러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주자는 '책을 읽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글을 숙독하면서 정밀하게 생각하라, 그렇게 오래도록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한 중국의 정자는 '읽고 사색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진다'라고 했다.

 

퇴계 이황은 '낮에 읽은 것은 반드시 밤에 깊이 사색해야 한다'라고 했다.

 

율곡 이이는 '책을 읽으면 반드시 그 이치를 궁리하고 탐구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결코 깊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정조는 책을 많이 읽고 그 내용을 잘 기억하는 박람강기는 겉만 아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궁리 및 격물하여 깊이 파고들어라. 그럴 때라야만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궁리 및 격물이 완벽하면 실천은 저절로 뒤따른다."

 

성호 이익은 사색이 없는 독서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단지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입술이 썩고 이가 문드러지도록 책을 읊어도 희고 검은 것에 대해 말은 할 줄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장님처럼 되고 만다."

 

조선의 천재 성리학자 백호 윤휴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으면 사색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얻는 게 있다. 그러나 만일 사색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사색한 것은 글로 기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색하고 기록한 뒤 다시 사색하고 해석하다보면 깨닫고 알게 되어 언행이 두루 통하게 된다. 만일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설령 깨닫고 알게 됨을 얻었더라도 도로 잃게 된다.'

 

고봉 기대승이 밝힌 독서의 핵심은 1)읽어라, 2)외워라, 3)사색하라, 4)기록하라 였다.

 

서양의 천재들도 이구동성으로 인문고전  독서의 핵심은 단순히 눈으로 읽고 입으로 외우고 손으로 베껴 쓰는 게 아니라 마음과 영혼으로 읽어서 깨달음을 얻는 '사색'이라고 말한다.

 

연구 방법론으로서 귀납법을 제창하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을 남겼으며,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열렬하게 읽히고 있는 '학문의 진보' '신기관' '에세이'의 저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후학들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독서는 오로지 사색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명예혁명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고 300년 넘게 철학 분야에서 가장 뜨겁게 연구되고 있는 저서 중 하나인 '인간 오성론'을 쓴 존 로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얻는 것에 불과하다. 그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사색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출간된 지 200년 넘게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연구되고 있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쓴 영국의 천재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 지적했다.

 

"사색 없는 독서는 전혀 씹지 않고 삼키기만 하는 식사와 다를 바 없다."

 

설명이 필요 없는 천재 철학자 쇼팬하우어의 말은 좀 충격적이다.

 

"사색의 대용품에 불과한 것, 그것이 바로 독서다."

 

핵물리학의 아버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자신은 온종일 독서하고 공부하고 연구한다며 자랑하던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자네는 도대체 언제 사색하나?"

 

우리 시대의 천재인 앨빈 토플러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통찰력의 근원은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입니다."

 

천재들은 어떻게 사색했을까? 인간의 수준을 초월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사색을 했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의 이야기부터 하자.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던 것 같다. 그가 열두 살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서당 훈장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님께서(독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훈장이 대답했다.

"당연히 과거에 합격하는 일이지."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성현이 되는 것을 첫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잘못된 인문고전 독서와는 철저하게 담을 쌓고 독서한 왕수인은 스무 살이 되던 무렵 주자의 책에서 우주의 이치가 모든 사물 즉 한 그루 나무나 한 포기의 풀에도 있다는 글을 읽고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사색을 시작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정원에 있는 대나무 한 그루를 사색하면서 우주의 이치를 깨친다는 목표를 세웠다. 친구는 3일 만에 포기했지만 그는 계속 대나무를 바라보면서 사색에 몰두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혹사해가면서 사색했던지 7일째에 그만 병이 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색은 7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그 뒤로도 우주의 이치를 깨치기 위한 사색을 계속했지만 큰 진전이 없었다.

 

대나무 사건이 있고 15년 뒤인 서른다섯 살 때의 일이다. 그는 조정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그만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어 초주검이 되도록 곤장을 맞았고, 오지 중의 오지인 귀주의 용장이라는 곳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독충과 싸우면서 움막을 짓고 물을 긷고 나무를 하고 밭을 개간했다. 하지만 그런 인간 이하의 환경도 그의 뜨거운 사색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어느 날 밤 그는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은 이미 성인이 되기에 충분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우주의 이치를 마음속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한낱 사물에 불과한 대나무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 잘못된 일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 아홉이었다. 무려 20여 년에 걸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색을 한 결과 주자의 철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자신만의 새로운 철학, 심즉리를 창시했던 것이다. 바로 양명학의 시작이었다.

 

사색을 하다가 병에 걸릴 정도로 치면 왕수인은 조선의 천재성리학자였던 화담 서경덕을 따라갈 수 없다. 화담도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던 듯하다. 그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부모가 나물을 캐오라는 심부름을 보냈다. 화담은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다. 부모는 아이가 나물을 광주리 가득 캐느라 늦었겠거니 하고 광주리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생각만큼 나물이 많지 않았다. 그런 일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부모가 이유를 물었다. 화담이 대답했다.

 

"나물을 캐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땅에서 한 치쯤 멀어지고 다음 날에는 두 치쯤 멀어지고 그다음 날에는 세 치쯤 멀어지고 그런 식으로 차츰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새를 관찰하면서 그 이치를 깊이 사색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터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늦었고, 광주리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이토록 천재적인 자질을 타고난 화담이었지만 인문고전 독서만큼은 죽을힘을 다해서 했다. 그가 열네 살 때의 일이다. 글방에서 '상서'를 배우고 있는데, '기삼백'이라는 대목에 이르자 선생이 갑자기 그 부분을 건너뛰는 게 아닌가. 화담이 이유를 묻자 선생이 대답했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화담이 설마 하면서 읽어보았더니 과연 너무 어려워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화담이 어떻게 했을까? 선생님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하면서 포기했을까? 아니다. 화담은 천재들의 공통된 인문고전 독서법인 '독서하다가 죽어버려라!"를 선택했다. 그는 책상 앞에 단정하게 앉아서 '기삼백'부분을 반복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천 번을 읽자 보름 만에 깨달음이 왔다. 화담은 그제야 멈추었다.

 

화담은 열여덟 살에 '대학'을 읽다가 격물치지에 관한 구절을 접하고는 깊은 탄식을 토했다. 독서는 우주와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그동안 자신은 그것을 모르고 오직 독서 자체에만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화담의 전설적인 사색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다음 날부터 화담은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단정하게 앉아서 천지만물을 하나씩 사색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싶으면 화선지 위에 천자를 써서 벽에 붙이고는 그 이치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 생각한다. 마침내 이를 깨달으면 다음 사물로 넘어간다. 이게 전부였다. 여러 기록이 전하는바 화담은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밥도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화담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사색을 했던지 3년 만에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사색은 그 뒤로도 3년간 계속됐다. 그러자 놀랍게도 화담의 정신력에 병이 굴하고 말았다. 자연 치유된 것이다. 그렇게 6년 만에 화담은 이의 본원을 깨닫고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로 거듭났다. 화담의 나의 스물네 살때의 일이다.

 

비록 병에 걸릴 정도로 혹독하고 극단적으로 사색에 몰입하여 우주와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동양의 천재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서양의 천재들도 '사색'에 무시무시할 저옫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을 쓰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연회도중 그만 사색에 잠기고 말았다. 연회가 절정에 달할 무렵이었다. 아퀴나스는 갑자기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치면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외쳤다. '좋다, 이제 깨달았다!'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가 루이 9세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국왕에게 엄청난 결례를 범한 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루이 9세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이해해주었고 덕분에 아무 탈이 없었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지인들은 전한다. 그가 사색에 잠기면 그 정신적 에너지와 집중도가 얼마나 치열하고 강렬했던지 그와 같은 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진정한 정신적 고통의 현장에 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 사색은 단순히 생각하기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서 치르는 격렬한 전쟁이었다.

 

페트라르카, 니체, 판데르 발스의 사례는 약간 기괴한 느낌까지 준다.

페트라르카의 하루는 인문고전-독서-필사-사색이 주였는데, 사색의 형태가 조금 남달랐다. 그는 호메로스, 키케로, 세네카, 호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 같은 고대 그리스 로마 작가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러니까 유령과 소통하면서 사색을 했다. 그런 식의 사색은 점점 도를 지나쳤는데 말년에는 환상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인문고전 저자를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누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니체도 쇼펜하우어를 읽고 지나치게 깊이 빠진 나머지 그 사색의 수준이 쇼펜하우어와 상상의 대화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마치 기도를 하듯이 '쇼팬하우어,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쇼펜하우어의 초상화를 보면서 자신을 달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무극성 분자 간의 인력에 관한 이론인 '판데르 발스의 힘'으로 유명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판데르 발스는 당시에 이미 세상을 떠난 철학자 라이튼 요한을 상상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는 사색을 하다가 막히면 바로 상상의 스승에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이 부분을 어떻게 풀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여기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겠습니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런 사색 방법이 그의 두뇌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천재들은 인문고전을 읽고 끝없는 사색에 잠겼고, 사색의 와중에 머리와 가슴을 치는 깨달음을 얻었다. 천재들은 그 깨달음을 기록했다. 마치 여기저기 흩어진 채 빛나고 있는 진주알을 하나의 실로 꿰어서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듯이.

 

사색을 기록하는 방법은 1)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따로 준비한 종이나 노트에 즉시 적는다, 2)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책의 여백에 즉시 적는다, 3) 책 한 장 또는 책 전체를 읽고 사색한 뒤 그것을 독후감식으로 적는다. 이 세가지가 대표적이다.

 

첫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중국 송의 천재 성리학자 장재와 우리나라의 천재 실학자 이익과 서양의 천재 철학자 데카르트가 대표적이다.

 

장재의 집안 곳곳에는 벼루와 먹과 붓과 종이가 있었다고 한다. 사색을 하다가 실마리가 풀리거나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그 즉시 기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기록을 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성호 이익은 책을 읽다가 이해가 잘 안 되거나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이내 사색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깨우침이 있으면 붓을 들어서 바로 적었다. 그는 깨우침을 얻기 전에 사색을 그만 두는 일이 결코 없었다고 한다. 성호는 이 방법을 통해 선대 학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경지에 도달하는 일이 많았고, 결국 자신만의 학문을 정립했다.

 

데카르트는 사색을 통해 서양 근대 철학을 탄생시킨 사람이다. 그의 사색은 왕수인의 격물치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자기 자신의 내면과 세상의 사물들의 본질에 관해 깊이 사색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새로운 철학을 창시했다. 데카르트는 침대에 오래 누워 있기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직업군인이었을 때조차 오전 11시까지는 어김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사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데카르트가 침대에서 일어날 때가 있었다. 사색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노트에 즉시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볼테르와 바흐가 대표적이다. 볼테르는 출간된 지 3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독자들을 설레게 하는 '캉디드'의 저자이다. 그의 인문고전 독서법은 책을 읽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책의 여백에 즉시 적는 것이었다. 매우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던 탓에 그가 책의 여백에 남긴 메모들은 철학적 깊이가 풍부한 것들도 있었지만 '이건 정말 바보 같은 말이야!' 라든가 '정말 재미없군!' 같은 순간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들도 많았다고 한다.

 

천재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책이 무척 귀했던 그 시절에 '루터 전집' 경매행사가 열리자 연봉의 십분의 일에 달하는 거액을 제시하면서 뛰어들었을 정도로 인문고전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일에 열정을 발휘했던 전형적인 인문고전 마니아였다. 그는 개인 도서관에 당시로서는 엄청난 수에 달하는 신학고전들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가 읽은 책에는 각 페이지마다 무수히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고, 여백에는 예외 없이 치열한 사색의 흔적인 메모가 잔뜩 적혀 있었다.

 

세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다산 정약용과 도스토옙스키가 대표적이다.

다산 정약용이 '퇴계집'을 읽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면 바로 세수를 한 뒤 '퇴계집'에 실린 편지 한 편을 읽었다. 그러고는 오전 내내 그 내용을 깊이 음미하면서 사색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색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으면 그 내용을 자세히 기록했다. 후일 다산은 그 기록을 모아서 '도산사숙론'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십대 시절부터 거의 미쳤다고 생각될 정도로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타키투스, 플루타르코스,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단테, 괴테, 실러, 칸트, 헤겔 등 문학, 역사, 철학 고전을 치열하게 읽었고 사색 또한 그렇게 했다. 그렇게 질풍 같은 독서와 불같은 사색을 마치고 나면 그는 마치 열에 들뜬 사람처럼 그 내용을 기록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색 독서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글자 하나를 놓고 깊이 사색하는 정약용의 격물 독서법을 소개한다.

 

다산은 어느 날 깊은 사색 없이 책만 읽는 것은 설령 하루에 백 번 천 번 반복해서 읽더라도 전혀 읽지 않은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단 한 권의 인문고전을 읽고도 그 책의 의리를 환하게 꿰뚫게 되어 마치 수백 권의 인문고전을 읽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독서법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도중에 뜻을 알기 어려운 글자를 만나면, 그 글자의 근본을 터득하고 그 글자가 속한 글의 전체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그 글자를 널리 고찰하고 자세하게 연구하는 것이었다. 즉 자신이 잘 모르는 글자의 어원을 공부하고, 여러 책에서 그 글자가 사용된 문장들을 뽑아서 따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독서법이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이 독서법을 , 하나의 사물을 끝까지 사색하고 탐구하여 그 이치를 깨달은 뒤 다음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깨우치는 일로 넘어가는 주자의 격물 공부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기열전' '자객' 편에 나오는 '기조취도'라는 구절의 '조'자를 예로 들어 그 독서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1. 자서 즉 한자사전에서 '조'의 본뜻을 찾는다.

2. 자서의 내용을 근거로 다른 책들은 '조'라는 글자를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상세히 고찰한다.

3. 다른 책들에서 언급된 '조'의 근본 뜻과 지엽적인 뜻을 뽑느다.

4. '통전' '통지' '통고'등의 책에서 조제의 사례를 모아 책으로 만든다.

 

'논어'를 원전으로 읽다가 '서'라는 글자를 만났는데 처음 보는 글자라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다산의 격물 독서법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1. 인터넷에 접속해서 대형 포털 사이트로 들어간다.

2. 한자사전 검색창에 '서'를 쳐서 알아본다.

3. 책 검색창에 '서'를 치고, 본문검색을 클릭한 뒤 인문 분야를 클릭한다.(실제로 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았더니 143권의 책이 떴다. 그중 아홉 권은 인문고전이었고 나머지는 해설서였다.)
4. '맹자' '중용' '순자' '한비자' '채근담' '논어집주'(주자) '소학' '근사록' '분서' 같은 인문고전에서 '서'가 언급되었음을 확인한다.

5. 위 원전들을 구해서 읽어보고, 각 원전에서 '서'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를 상세히 고찰한다.

6. 각 원전에서 '서'에 관해 언급한 부분, 각 원전에서 사용한 '서'의 본래 의미와 지엽적인 의미를 뽑아서 노트에 정리한다.

* 5, 6번 작업은 본문검색을 할 때 나오는 해설서를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5. 6. 00:30

 

세월호가 있던 날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정말 가만히 있던 아이들도 있었고, 실제 상황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 학생들도 있었다.

위 사건을 계기로 뭔가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스스로 탐구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제기를 내용으로 하는 방송을 본 기억이 난다. 그것이 물음표 교육이 아닐까.

 

'놀랍게도 지난 몇 년 동안 수업 시간에 '왜?"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던 아이들이 '왜?'라고 묻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치 지식의 끝을 보려고 하는 광적인 학자처럼 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일이 없기로 유명하다. 왜 그럴까? 실제로 궁금한 게 없기 때문이다....ㅋㅋ. 물론 교과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물음표를 떠올리는 능력을 잃어버려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이렇게 된 것은 교육제도 탓이다. 공,사교육을 막론하고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그저 머릿속에 지식을 쑤셔넣기만 하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려 20년 가까이 교육을 시키고도 지적으로 무능력한 인간을 만드는 우리나라 교육이 변화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물음표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22%를 배출해낸 유대인 교육처럼 말이다. 인문고전 독서교육 중 철학고전 독서교육은 학생들 스스로 지식의 근본원리, 즉 지혜에 도달할 때까지 '왜?'라고 묻게 만든다. 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한 사람은 오늘부터 철학고전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 이유를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감히 주장하고 싶다. 만일 철학고전 독서교육이 제대로 정착하면 우리나라는 유대 민족보다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함은 물론이고 천재들을 지속적으로 길러내게 될 것이라고.

 

초등학교 교사 시절,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플라톤, 장자, 손자 등을 읽혔다. 아이들은 아침 자습 시간마다 철학고전을 한 페이지 이상 읽고, 그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필사했다. 한때 내가 맡았던 반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그 반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한 건 이상의 굵직한 사고를 친 아이들이 모여 있었던 소위 문제아 반이었다. 책가방에 교과서나 노트는커녕 연필 한 자루도 없는 아이, 수업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서 문방구 앞에 설치된 게임기에서 게임을 하는 아이 정도는 귀여운 편에 속했다. 담배를 피우는 아이, 술을 마시는 아이, 중학생 폭력서클에 가입한 아이, 세상이 싫다며 아파트 단지에 불을 지르려다가 붙잡힌 아이, 다른 학교 아이들의 돈을 갈취하다가 붙잡힌 아이, 못을 잔뜩 박은 각목 같은 불법무기를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제공(?)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게다가 심각한 수준의 학교 부적응 증세로 신경정신과를 주기적으로 다니는 아이도 몇 있었다. 덕분에 우리 반은 3월 진단평가에서 최악의 반 평균점수를 자랑하며 전교 꼴찌를 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좋았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열심히 놀았다. 1~2교시는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놀고, 3~4교시는 근처 공원에서 즐겁게 놀고, 학교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5~6교시는 최신 만화영화를 본 날도 있었을 정도다. 게다가 숙제는 보통 '3잘', 즉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기였다. 그렇게 몇 주를 놀고 나니 아이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노는 것도 좋지만 공부도 가끔씩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놀랍게도 문제아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이 임원진을 통해 전달될 정도였다. 나는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와 함께하는 공부는 너희들이 원해서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소위 '수업'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우리 반은 2학기 때 전교 일등을 했다. 전 학년과 비교할 때 대부분 평균 10~30점 정도 올랐고, 평균 40~50점 이상 오른 아이도 몇 있었다. 초등학교 4년 내내 수학 점수를 30점 이상 맞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아이 두 명이 각각 80점, 90점을 맞는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3월 진단평가에서 학습 부진아 판정을 받았던 10여 명의 아이들이 전부 평균 80~90점 이상을 받는 일이 생겼다. 소위 공부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더욱 멋진 일도 일어났다. 담배와 술을 끊고, 폭력서클을 탈퇴하고, 신경정신과를 다니지 않게 되는 등의 변화가 함께 나타났다. 여기에 대해서는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와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등에서 자세히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 반이 만들어냈던 공부기적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철학고전 독서였다. 물론 대학교수들도 어려워하는 철학고전을 초등학교 공부와도 담을 쌓은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니 고충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철학고전을 읽으면서 두뇌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철학고전만큼은 반드시 읽히고 싶었다. 그래서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러자 고맙게도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수업 시간에 일어났다. 놀랍게도 지난 몇 년 동안 수업 시간에 '왜?'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던 아이들이 '왜?'라고 묻기 시작했다. 그것도 집요하게, 아니 탐욕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이들은 마치 지식의 끝을 보려고 하는 광적인 학자처럼 굴었다.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을 가르쳤던 날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아마도 내가 철학고전을 읽히지 않았다면 수업은 간단히 끝났을 것이다.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을 도출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를 몇 개 풀어주고, 칠판 앞으로 네 명 정도 불러내서 문제를 풀게 하고, 수학 익힘책 문제를 푸는 숙제를 내주며 끝냈을 것이다. 나와 아이들 사이엔 어떤 질의응답도 없었을 것이다. 고작해야 내가 '자 이렇게 이렇게 푸는 거야, 알았지?'라고 질문하고, 아이들은 기계처럼 '네~!'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이들은 삼각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 더 나아가서 삼각형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지, 그는 왜 하필 삼각형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삼각형의 넓이를 왜 구해야 하는지, 삼각형의 넓이 구하는 공식이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이유는 무엇인지 등도 알고 싶어했다. 심지어는 삼각형과 삼각형 넓이 구하는 공식이 인간의 실생활은 물론이고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궁금해하는 아이도 있었다. 부끄럽게도 난 답변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을 솔직히 시인하고, 아이들을 학교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고는 도서관의 책들을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게끔 했다.

 

늘 그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식의 근원을 파헤치고자 하는 '왜?'라는 질문으로 채워진 수업을 몇 번 겪고 나자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도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일념 아래 적게는 몇 권 많게는 십수 권의 책을 마치 지적 전투를 치르듯 빠르고 강렬하게 읽는 독서법을 구사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교과서는, 비유하자면 도서관 요약집이다. 도서관의 문학 서가를 요약해놓은 것이 국어 교과서이고, 과학 서가를 요약해놓은 것이 과학 교과서란 소리다. 그렇다면 도서관을 읽은 아이가 교과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의 기적적인 성적 향상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의 철학고전 독서가 단기간, 그러니까 나와 함께 있었던 시간에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깊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냥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우리 교육의 한계 때문이었다는 정도로만 말하고 싶다. 아무튼 우리 반 아이들은 학년이 바뀌면서 철학고전 독서와 서서히 멀어졌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누구도 철학고전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한 동안 보여줬던 지혜의 빛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따금 생각해본다. 만일 우리 반 아이들이 그 뒤로도 철학고전 독서를 꾸준히 제대로 했다면 지금쯤 세계 또는 한국 지식인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줄 인물이 한 명쯤은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5. 5. 22:52

 

인문고전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작가 이지성, 존 스튜어트 밀 독서법이니 뭐니 해서 둔재도 영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 준 사례를 소개해왔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상위1%의 계층들은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를 보내거나, 고급과외를 통해 주입식이 아닌 토론식, 대화식 교육을 받게 한다. 소크라테스식 질문과 공부를 통해 생각하는 사람, 즉 사고력이 발달된 인재로 키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의 일이다. 독일의 한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하던 카를 비테는 장차 태어날 아이를 성공적으로 교육하고자 플라톤, 에라스무스, 존 로크, 루소, 페스탈로치 같은 위인들이 집필한 교육 서적과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로마의 교육에 관한 문헌들을 연구했는데, 하나같이 19세기 당시 독일의 교육과 '다른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를 비테는 그 책들이 옳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고, 자녀를 그 '다른 교육'에 따라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첫째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장티푸스로 죽었고 둘째는 지능이 현저히 낮았다. 비테는 '하나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벌을 내리십니까?'라고 울부짖는 아내를 위로하면서 아들에게 '다른 교육'을 실시했다.

 

카를 비테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비록 아들이 지능이 떨어지긴 했지만 '다른 교육'을 받으면 얼마든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 그는 태어난 지 15일 된 아들에게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었다. 두 살 때부터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같은 고전을 읽어주었고, 여덟 살 때부터는 혼자 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으로 읽게 했다.

 

카를 비테 주니어의 두뇌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기적처럼 변했다. 그는 고작 아홉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자격을 취득했고 열세 살에 기센 대학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칭송받았다.

 

카를 비테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을 책으로 썼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천재로 키우기를 열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했던 비테의 저서는 20세기에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서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접한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레오 위너는 카를 비테의 책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나머지 기자회견을 열어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카를 비테식 교육을 언급했다. 그의 아들 노버트 위너는 열두 살에 태프트 대학에 입학해서 2년 만에 졸업했다. 열네 살에는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고, 열여덟 살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과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가 되었고, 인공두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 레오 위너의 딸 콘스턴스는 열네 살에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고, 다른 딸 버사는 열두 살에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심리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보리스 사이디스도 아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를 카를 비테식으로 교육했는데 가장 중점을 둔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 그가 '속물과 천재'에서 한 고백을 들어보자.

 

'내 아들은 올해 겨우 열두 살이지만....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그리스어 원문으로 암기하고 있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같은 그리스 고전 원전도 다른 아이들이 '로빈스 크루소'를 읽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는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는 열한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열두 살에는 하버드 대학 수학 클럽에서 4차원 세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100여 명의 교수들을 지적 충격에 빠뜨렸다.

 

태프트 대학 교수 벌도 자녀에게 카를 비테식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실시했다. 그의 아들 애돌프 벌은 열세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서 3년 만에 졸업했고 곧장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딸 리나는 열다섯 살에 하버드대학교 부속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다. 다른 아들 루돌프와 딸 미리엄 역시 각각 열두 살, 열네 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외견상으로는 학교 교육과 학원 교육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학교 교육 하나다. 학원 교육의 목표가 학교 성적 올리기이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은 프러시아(프로이센)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프러시아는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인들과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는 육체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그 두 가지는 강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군사력과 경제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엄청나게 많이 배출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프러시아 지배계층의 눈에 어느 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계층의 자녀가 들어왔다. 그들은 농민의 자녀들에게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가 되는 교육을 시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를 세웠다. 후일 프러시아는 독일제국에 합병되었다. 독일제국은 프러시아의 교육제도를 한층 더 발전시켜서 아예 군대식 학교를 세웠고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영국은 1860년에 의무교육, 즉 공립학교 교육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도 프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숙련된 공장 노동자가 무한정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농민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제도를 그대로 수입해서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했다.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 게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혹시라도 이 말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다음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라.

 

* 군대의 상관은 부하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부하들은 그 명령을 기계처럼 수행한다.

* 공장의 장은 휘하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작업지시를 내리고 노동자들은 그 지시를 기계처럼 수행한다.

* 우리나라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기계처럼 암기한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중고 합쳐서 무려 12년이나 교육을 받고도 지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되기는커녕 좀 심하게 말하면 바보가 되어 사회에 나온다. 대학에 입학해서 다시 4년을 배우고 대학원까지 졸업해도 마찬가지다. 당당히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식이 되기는커녕 제 앞길 하나도 헤쳐나가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하기 일쑤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시키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쌓이는 게 아니라 두 눈의 총기를 잃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학교를 부정하거나 다니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사들이나 교육부에 돌을 던지라는 의미도 아니다. 학교는 다녀야 한다. 그것도 될 수 있으면 최고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자가 없다. 또 교사와 교육부는 프러시아에서 유래된 나쁜 공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문고전을 집필한 위대한 천재들이 우리나라의 학교제도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십중팔구 학생의 두뇌를 죽이는, 창조성을 말살하는, 노예를 만드는,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하루빨리 개혁해야 할, 민족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새롭게 고쳐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할 것이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문고전 저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실시한 교육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깊은 대화를 통해 지혜와 진리를 터득하고 발견해가는 교육이다.

 

새로운 두뇌를 갖고 싶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루 또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을 실천하기 바란다. 위대한 고전을 집필한 인류의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깊은 정신적 대화를 하기 바란다. 그렇게 그동안 받았던 프러시아식 교육을 두뇌에서 털어내고 지혜와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배움의 세계로 들어가기 바란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5. 5. 22:11

 

안철수 의원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중의 하나인 '학문의 즐거움'.

천재들과 공부하면서 보통의 머리를 가진 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남보다 두 세배 더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밖에 없었고 결국 그렇게 끈기 있게 매달려 문제를 풀어내고,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드상까지 받게 된 점은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머니가 일깨워 준 생각하는 기쁨

 

어렸을 때는 누구나 그렇지만 나도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곤 했다. 다섯 살 때라고 기억되는데 목욕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물 속에서는 왜 손이 가벼워지지요?" 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인텔리와는 거리가 먼 분이시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학문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오신 어머니로서는 나의 질문에 대답할 정도의 지식이 없었다.

 

"목소리는 어디서 어떻게 나오지요?"

"코로 어떻게 냄새를 맡지요?"

"작은 눈으로 어떻게큰 집이나 경치를 볼 수 있지요?"

 

나의 여러 가지 질문에 어머니는 명확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으셨다. 그러나 "모르겠다"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으셨다. "그런 시시한 것 생각하지 않아도 돼." 라면서 화를 내는 일도 없으셨다.

"글쎄 왜 그럴까?"

어머니가 머리를 갸우뚱하시면 나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커서 공부하면 알 수 있을 거야."라고 하면서 어머니는 같이 생각해 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답이 안 나올 때는 어머니는 동네에 있는 신사의 관리인에게 데려가거나 친분이 있는 의사에게 찾아가기도 했다. 신주나 의사는 그 당시 시골 동네에서는 흔하지 않은 지식인이었다. 어머니가 그들을 찾아가서 "이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하는데 좀 설명해 주세요." 하고 부탁하신 덕분에 나는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일단은 답을 얻곤 했다.

 

이러한 경험을 되풀이하는 동안에 나는 '생각한다는 것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생각하는 기쁨을 체험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것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가 살아가는 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 되었다.

 

왜 배워야 하는가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얻은 지식을 대학에 들어가서 잊어버리거나, 대학에서 배운 것을 취직하고 나면 잊어버리는 경우 등일 것이다. 또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힘들게 공부한 지식이 자격증을 따자마자 잊혀진다든가 하는 일도 망각의 단점으로 나타난 예이다. 여기에서, 열심히 공부해도 결국 잊어버리게 되는 것을 왜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문제가 나오게 된다.

 

나는 그러한 질문을 하는 학생들에게 "그것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즉 공부하는 과정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지혜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공부한 것을 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배우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그러므로 많이 배우고 많이 잊어버리고, 다시 많이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중략)

 

예를 들어 문과 학생이 졸업 논문을 쓰는 데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의 인수분해를 꼭 사용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고 하자. 그런데 그는 그 동안 문과 공부만 해 왔기 때문에 인수분해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든지 이과 친구에게 물어보든지 어떤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그가 인수분해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자마자 "아, 그렇군. 이런 거로군." 하면서 옛날에 배운 것이 생각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속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인수분해에 대한 기초 지식이 무의식중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수분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겠지만, 그는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바로 꺼내 쓸 수 없는 형태로 뇌에 축적된 지식은 영원히 끄집어 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수고와 기회를 제공하면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다. 인간의 두뇌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지혜에는 이런 측면이 있는데 나는 이것을 '지혜의 넓이'라고 부른다. 이 지혜의 넓이는 계속 공부하고 잊어버리는 사이에 두뇌 속에서 자연스레 키워진다.

 

(중략)

 

앞에서 나는 인생에는 깊이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있고,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공부하는 목적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바꾸어 말하면 '지혜의 깊이'는 공부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의 두뇌는 인간 특유의 폭넓은 사고의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힘, 즉 '지혜의 깊이'가 키워지지 않는다.

 

지혜에는 '넓이'가 있고, '깊이'가 있고, '힘'이 있다. '지혜의 힘'이란 결단력을 말한다.

결단할 수 있는 힘, 어느 순간에 '얏!' 하고 비약할 수 있는 힘, 이러한 지혜의 힘은 인생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공부하는 가운데서 키워지는 것이다.

 

지혜에는 내가 말한 것 이외에도 몇 가지 측면이 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지혜를 닦기 위해서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수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끈기'를 신조로 삼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까지에는 남보다 더 시간이 걸리지만 끝까지 관철하는 끈기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한 시간에 해치우는 것을 두 시간이 걸리거나, 또 다른 사람이 1년에 하는 일을 2년이 걸리더라도 결국 하고야 만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나의 신조이다.

 

이러한 신조가 몸에 베어서인지 나는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

 

인간은 1백40억 개나 되는 뇌세포 중에서 보통 10퍼센트, 많아야 20퍼센트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잠자고 있는 세포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두세 베의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보통 두뇌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역경을 반가워하자

 

"사는 것은 배우는 것이며, 배움에는 기쁨이 있다. 사는 것은 또한 무언가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며, 창조에는 배우는 단계에서 맛볼 수 없는 큰 기쁨이 있다."라고 나는 앞에서 말해 왔다. 이것은 누구의 인생에나 해당되는 것으로 학자의 입장에서는 특히 명심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 표현해 보자.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 배우고 창조하는 기쁨은 곧 생각하는 기쁨이다. 어떤 분야의 학문이든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창조하는 데 본래의 의의가 있다. '발견'과 '창조'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의 주고받음은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평가할 가치도 없다. 여러 가지 지식은 생각하기 위한 자료이며, 독서는 생각하기 위한 계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식을 모으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 되고, 독서도 고생스럽지 않게 된다.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읽어서 생각한다. 생각한 후에는 들은 것이나 읽은 것은 잊어버려도 된다.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든가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학문을 하기도 전에 지쳐 버리고 배우는 것 자체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 학문이란 본래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할 수가 있으며, 그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반세기에 걸친 내 인생에서 체험으로 얻은 결론은 이러한 것이다. 이제까지 이러한 나의 인생관과 학문에 대해 말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젊은 독자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창조를 만들어 내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창조의 배경에 있는 중요한 조건이란 무엇일까?

 

이런 말이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수학자 푸앵카레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란 머시룸(mushroom)과 같은 것이다." 머시룸이란 버섯의 일종이다. 버섯 하면 일본 사람인 나는 우선 송이버섯을 연상하게 되므로 푸앵카레의 말은 "송이 버섯과 같은 것이 창조다."라고도 할 수 있다.

 

송이버섯은 잘 알다시피 땅밑에 균근이라고 하는 뿌리를 갖고 있다. 이 뿌리는 조건이 좋아지면 점차 원형으로 퍼지면서 자란다. 그런데 이런 좋은 조건이 한없이 계속되면 뿌리만 발달하게 되어 버섯을 만들지 못하고 결국 노화해서 죽어 버린다. 놀랍게도 5백 년에 걸쳐서 뿌리만 발달하고 고사한 송이버섯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버섯은 어떻게 해야 생기는가? 어떤 시점에서 뿌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조건이 주어지면 된다. 예를 들면 계절 변화에 의한 온도의 상승 또는 하강과 같은 외부적 조건이나, 송진이나 산성물질등의 물리적 조건이다. 이런 방해에 부딪히면 뿌리는 포자라는 형태로 종자를 만들어 계속 발전해 나가려고 하며 그래서 송이버섯이 만들어지게 된다.

 

푸앵카레의 말을 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창조에는 먼저 송이버섯처럼 땅밑에서 뿌리를 뻗어가는 축적의 단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축적만 하고 있어서는 송이버섯이 버섯을 만들지 않고 고사해 버리는 것처럼 창조 없이 인생의 막을 내리게 된다.

 

불교의 '인연'이라는 말을 창조성에 비추어서 생각해 보면, '인'이란 땅밑에서 발달해 온 송이버섯의 뿌리와 같이 사람이 부모에게서 이어받거나, 주변 사람으로부터 배웠거나, 혹은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자기 속에 축적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인'만 가지고 창조나 비약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시점에서 송이버섯의 뿌리가 주어지는 방해 조건에 해당하는 것이 창조에 있어서도 필요하다. 축적을 표출시킬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연'이다.

불교에서는 '연'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순연'과 '역연'이다. 실생활에서는 가끔 역연이 표출 에너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역연'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말로 바꾸면 '역경'이 될 것이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벽촌 장사꾼의 열다섯 남매의 일곱 번째 아들. 유년학교 입시에서 보기좋게 물먹고, 한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곡절 많던 소년.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 밭에서 거름통을 들고, 대학 3학년이 돼서야 수학의 길을 택한 늦깎이 수학자.

 

끈기 하나를 유일한 밑천으로, 미국 하버드로 건너가 박사를 따내고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까지 받은 사람. 골치 아픈 수학에서 깨달음을 얻은, 즐겁게 공부하다 인생에도 도통한 평범하고 희한한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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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5. 4. 19. 22:43

운명, 사랑과 상실 그리고 죽음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오늘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새 출발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졸업식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 그저 이야기 세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리드대학이라는 곳을 6개월 다닌 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은 비공식적인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진짜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나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제가 대학을 나온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예정되었고, 그것으로 모든 일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태어났을 때 변호사 부부는 마음을 바꿔, 여자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제 생모는 한밤중에 입양 대기자 명단에 있는 다른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물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 생모는 나중에야 제 어머니(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아버지(양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모는 이 때문에 최종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양부모에게 나를 나중에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나고 저는 정말 대학에 갔습니다. 저는 그때, 연간 약 6천 만원 정도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였던 부모님(양부모)은 평생 동안 모든 돈을 제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만한 돈을 쓰는 것에 대해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살면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살면서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저를 위해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당시 저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결정을 내릴 때는 조금 두려웠지만, 지금 돌아보면 제가 지금까지 한 가장 훌륭한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면서,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이유가 사라진 대신 흥미로운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낭만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청강생이다 보니 기숙사에 방이 없어 친구들 방의 침대 옆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 위해 50원짜리 빈 콜라병 모으는 일을 했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는 무료 급식을 받아 먹기 위해 일요일 밤마다 10킬로미터를 걸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 모든 걸 사랑했습니다. 그렇게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가다가 제가 부딪친 많은 것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이겠습니다.

제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타이포그래피(서체)교육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에 있는 모든 포스터와 표지물들은 손으로 쓴 아름다운 글씨체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규과목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배워보려고 서체 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모든 것이 내 삶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몰랐습니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되살아났습니다. 우리의 맥(Mac)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대학을 그만두지 않고 타이포그래피 강좌를 듣지 않았다면 맥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윈도우즈는 맥을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지금처럼 다양하고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무렵 제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볼 때 그것은 분명 모두 이어진 점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우즈(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와 저는 애플을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애플은, 연매출 20억 달러에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매킨토시 컴퓨터를 시장에 출시한 해에 저는 막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냐구요? 글쎄, 애플이 커가면서 우리는 회사를 운영할 전문 기업인을 고용했고 첫 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보는 관점에 서로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서른 살이었던 저는 쫓겨났습니다. 당시 제 삶의 전부였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려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첫 몇 달 동안 무엇을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앞서 간 세대는 물러나게 된다는 느낌, 내게 지휘봉이 전해진 것처럼 또 누군가에게 전해지도록 내려놓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팩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났고 그들을 그렇게 못살게 군 것을 사과했습니다. 저는 공식적인 실패자였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쳐 떠나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 겪은 일도 그것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거부당했지만, 여전히 내 일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였습니다. 나를 짓누르던 성공에 대한 부담은, 확신은 없지만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내 삶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5년 동안 넥스트(NEXT)라는 회사, 픽사(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시작했고, 나중에 아내가 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놀라운 반전속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저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르네상스를 이루는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 픽사에서 만난 로린과 저는 한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 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나를 이끌어간 유일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그래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처럼, 그것은 해가 지날수록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열일곱 살이었을 때, 어떤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당신은 옳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저는 그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할까?' 그리고 제 안에서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로 이어지면, 그 결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삶에서 큰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숭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약 일 년 전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췌장에 악성이 분명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길어야 세 달에서 여섯 달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의사들이 말하는 죽음의 준비입니다. 그것은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입니다.

그날 저녁 늦게 목구멍에 내시경을 넣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췌장에서 몇 점의 세포를 떼어 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매우 드물게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췌장암이라고 의사들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앞으로 몇 십 년 동안은 그렇기를 바랍니다만,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제 죽음이라는 것을 지적 개념만으로 알던 때보다 좀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으로 가기를 바라는 사람조차 거기 가기 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죽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가장 훌륭한 창조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교체를 만들어내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음을 청소하고 새로움을 위한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새로움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그때, 여러분들도 점차 낡은 것이 되고 치워질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의 마음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전 세계 목록'이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그 책은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책은 스튜워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시적인 표현들을 가미해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생기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고쳐 펴냈고, 결국 그 책의 최종판이 나온 게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여러분 나이 때입니다. 최종판의 뒷표지에는, 여행을 하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기 위해 손을 드는 곳과 같은, 이른 아침 시골길을 찍은 사진이 인쇄돼 있었습니다. 그 밑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

이것이, 그들이 책을 더 이상 찍지 않기로 하면서 한 작별 메시지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저는 나 자신에게 늘 이러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졸업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감사합니다.

* 스티브 잡스(Steve Paul Jobs) 매킨토시, 아이폰, 아이패드로 유명한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이 연설문은 2005년 여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들려준 것으로, 좀 오래되었지만 삶과 교육의 핵심을 짚고 있다고 여겨 소개합니다.

_ 민들레 < vol.72 2010 6th> 중에서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3. 30. 22:24

자영업에 관한 기사를 봤다. 내가 아는 지인도 부부가 고깃집을 냈다가 6개월만에 1억을 손해보고 접고 다시 월급생활을 하고 있다. 그동안 몇 년동안 알뜰살뜰 모은 돈인데 말이다.

권리금이다, 인테리어비용이다 해서 그만큼 들어간 것 같다. 정주영 회장의 유행어인 '하면 된다' '이봐,해봤어?' 라는 말이 오히려 안좋을 때도 있다. 도전이라는 말도 좋긴 하지만 그것도 성공했을 때나 실패해도 후회없을 때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물론 당사자들도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일 것이다. 요즘엔 수익률 광고도 많이 하지만 그냥 원금보전하면서 사기안당하고 손해안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근성, 조서환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3. 29. 19:44

다독이 좋다고 해서 허겁지겁 읽기보다는 읽은 후에는, 또는 읽으면서 곱씹어보는 과정이 필요한 거 같다. 그래야 내용도 소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곱씹으면서 읽기란 쉽진 않은 게 사실이다. 본인이 취미생활이나 필요로 읽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충실할까 by 도쓰카 다카마사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3. 28. 07:11

넌 꿈이 뭐니? 할 때 꿈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넌 종교가 뭐니? 할 때도 마찬가지다. 넌 결혼 안 하니? 할 때도 마찬가지다. 넌 좋아하는 게 뭐니? 넌 하고싶은 게 뭐니? 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3. 28. 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