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실험 결과를 보면 창의성을 기른다는 말은 모순인 것 같다. 오히려 창의성을 유지하는 것이 교육이 해야 할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와 토론, 프로젝트 수업, 체험활동, 그리고 진로와 관련된 경험 등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이자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생각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사물과 현상을 본질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능력은 창의성의 기초가 되는 비판적 사고로부터 출발하며 이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의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으로부터 얻어진다.

 

독서의 목표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서 비판적 사고를 갖춘 지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교육은 창의성을 기르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동서고금의 명저를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아이들은 스스로를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 자각하게 되고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고 자신과 세계의 관계에 대하여 보다 성숙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명저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비판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려는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한 지성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독서는 책을 읽는 것이다. 그것은 문자를 사용하게 된 이후부터, 특히 인쇄술의 발전 이후 정보나 지식의 전달이 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는 정보를 유통하고 지식을 재생산하는 다양하고 새로운 매체가 존재하니 독서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매체가 다양한 정보를 쏟아냄에 따라 오히려 제대로 정보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보유통의 걸림돌이 생기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신매체들은 즉각적이고 쉽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파급력과 영향력이 매우 크므로 이런 매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모티머 J. 애들러, <독서의 기술>, 범우사, 2011)

 

인터넷, 텔레비전, 라디오, 잡지 등을 통해 사람들은 교묘한 설득에서부터 신중하게 선별된 정보와 통계에 이르기까지 별로 힘들이지 않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잘 정리된 자료들을 제공받는다. 그런데 이것들이 어찌나 효과적으로 포장되어 있는지 시청자나 독자들은 그 의견을 그대로 자신의 사고 속에 주입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즉각 그대로 재생시킨다는 게 문제이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게 위험하다. 생각이 없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적 의미로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들이 전달하는 정보나 지식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어떠한 매체에서 얻은 정보든 그것을 제대로 읽고 재해석해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독서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요즘 제대로 된 독서를 위해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독서토론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독서는 자신과 저자와의 대화이다. 책을 읽는 것은 끊임없는 질문으로 저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고 저자의 문제의식을 파악하고 자신의 주체적 사고로 재정리하는 것이다. 이때 독서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는데 독서란 혼자서 하는 행위라 주관적인 지식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론 다양한 주장을 담은 책들을 고루 읽음으로써 자신만의 생각에 갇히거나 오류에 빠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는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독서는 토론과 함께해야 온전해진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생각을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아집에 갇히는 것을 피할 수 있고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함께 의미를 탐구하면서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토론이 중요한 이유는 좋은 토론을 통해서 소통과 협력, 다른 것을 인정하는 자세 등 민주시민적 가치까지 습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브루타 교육에서 토론을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하브루타 교육이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전 세계 인구의 0.25%도 안 되는 유대인이 전 세계 노벨상 수상자를 20% 이상 배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이유를 그들의 독특한 교육법인 하브루타에서 찾고 있는데, 이 교육의 핵심은 그들의 경전인 탈무드를 읽고 정답이 없는 문제로 토론하는 것이다.

 

독서, 하면 역시나 유태인 출신인 아인슈타인을 빼놓을 수 없다. 수학때문에 낙제를 한 위대한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인문고전 독서광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해서 특허청 말단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매일 저녁 인문고전독서클럽을 운영하였다. 수학을 못하면서도 사물과 현상에 대한 직관력을 가졌던 그의 힘은 바로 독서와 토론으로 부터 나왔음을 스스로도 강조하였다. 또 한 사람의 과학자 레더포드도 독서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독서와 더불어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생각 없이 책을 읽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외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훌륭한 인문고전 독서가였다는 사실은 독서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독서가 좋다고 해도 잘못 읽으면 독이 된다. 그래서 독서교육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겉핥기식의 독서이다. 한 권을 읽더라도 깊게 제대로 읽어야 한다. 독서는 여행과 같다. 해외여행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에는 한 번 해외에 나가는 것이 일생의 꿈이었다. 그래서 한 번 나간 김에 최대한 많이 보는 것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찍고 오기'라고 불리는 이런 여행에서는 갔다 왔다는 자랑거리 외에는 별로 얻는 것이 없다. 여행을 하는 진짜 목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아침독서나 독서록 같은 것에 찬성하기가 어렵다. 독서프로그램은 주로 초등학교에서 많이 이루어지는데 대게 다독을 강조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렇게 다독으로 아이들을 경쟁시키다 보니 한 아이가 6년 동안 수천 권의 책을 읽는 일이 벌어진다. 대단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책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용의 이해보다는 빨리 읽는 것에만 매달리게 된다. 책을 읽는 목적은 무엇일까?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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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독서교육의 사례를 한 번 생각해보자.

EBS 다큐프라임에 소개된 경기도의 모 초등학교의 사례인데 딱 한 권의 책으로 5학년 국어수업을 일 년간 진행한 사례가 있다. 이런 수업이 나오게 된 것은 아마도 경기도교육청에서 명저를 수업에 직접 활용하는 교육을 강조한 것이 배경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한 권의 책을 정해서 그것을 일 년 수업의 교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책이 교과서가 되는 것이다. 이 수업에서는 책을 천천히 다 같이 읽으면서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가면서 내용을 파악하다 보니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어휘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정확히 뜻을 이해한 후 넘어간다. 국어교과의 목표인 어휘습득, 내용파악 등이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 한 권만으로 수업을 하면 교육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까 우려하는 교사나 학부모들에게 충분한 답이 될 듯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책에 나오는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토론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나와 다른 다양한 생각을 접하게 되어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이 수업은 책에 나오는 나무를 학교 주변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책에 기술된 생활이나 문화와 자신의 삶을 비교해 보면서 다른 과목의 교육목표까지 포괄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통합교과적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을 아이들이 문단을 나누어서 글과 삽화로 표현하는 과정도 있는데, 이렇게 삽화로 표현하려면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므로 아이들은 내용을 깊게 생각하게 되고 창의성을 키우게 된다. 책 한 권으로 국어수업을 진행하지만 과학, 음악, 미술, 사회, 역사까지 섭렵하면서 아이들은 분리된 지식의 벽을 넘어 통합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통찰력이 생긴다. 이런 사례를 보고 국어교과서라서 책 한 권으로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상력의 문제이다. 다른 과목도 책을 활용해서 수업이 가능하다. 같은 어학과목인 영어는 물론이고 사회, 역사 등의 과목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며 과학과목의 경우도 일부 단원의 경우 시도해볼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수업은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이 생긴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스스로 알아가는 즐거움을 얻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수업이 가능하려면 교사들의 도전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교과서를 이용하면 지도서에 따라서 단계별로 진행하면 되지만 이런 수업에서는 교사가 새롭게 모든 것을 기획해야 하며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교사는 몇 번씩 책을 읽고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목표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교사의 이런 노력은 아이들에게 다른 수업에서 기대할 수 없는 놀라운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혁신학교, 행복한 배움을 꿈꾸다 / 이성대 신안산대학교 부교수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7. 24. 21:04

 

국가적으로도 창조경제를 외치고 창의융합이니 창의인성이니 하면서 입만 열면 창의성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일반화된 개념이다. 그런데 이 창의성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창의성이란 것이 창의성을 기르는 훈련을 하면 생겨나는 것인지 아무도 자신 있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간단하게 '창의적인 생각이란 남들과 다른 새로운 생각'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다른 생각은 어떻게 나오게 될까?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열심히 잘 듣고 암기하려고 몇 번씩 되풀이해서 읽고 쓰기를 반복하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머리에서 나올까? 일 년 내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적막이 감도는 엄숙한 교실에서 나올까?

 

다른 생각은 다르게 보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외국의 한 학교 - 아마 발도로프 계열의 학교일 것이다. - 에서는 예술 수업을 강조하는데 특히 미술 수업이 인상적이었다. 그 학교의 미술시간은 여러 가지 재미있고 특이한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사물을 관찰하고 그리는 수업 장면에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강한 인상을 받았다. 사물을 한 가운데에 두고 아이들이 뺑 둘러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었다. 그게 뭐 그리 특별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특별한 수업이었다. 그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은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다. 하나의 사물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서 그리는 아이들의 그림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바라보는 방향에서의 모습만을 그리기 때문에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아이들이 보는 모습을 그릴 수 없다.

 

이런 수업이 왜 중요할까? 이 수업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바라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것이 사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전체로 투영되어서 모든 사물과 현상에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전부가 아니며 다른 시각을 통해서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시각이 도움이 된다는 의미를 넘어 반드시 다른 시각이 있어야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필자는 이해하였다. 그래서 이 수업이 놀라운 수업이라는 것이다. 교사는 미술 수업을 하면서 다른 생각이라든지 협력이라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배우고 협력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서로 돕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백 번의 말보다 교과서에 담긴 어떤 내용보다도 이런 자연스러운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이 더욱 강하게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창의적인 생각을 기르기 위해 다른 시각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당연한 것에도 의문을 갖는 것이다. 모두가 옳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상식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전문가가 이미 결론을 내놓은 사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지식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세말이다.

 

우리 인류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나 업적은 바로 이런 의문을 갖는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알면서도 실제로 자기 스스로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해는 왜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가? 무거운 것과 물은 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가? 지금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런 사실들을 인간이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불과 몇 백 년 전의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이야기할 때 의심을 가지고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해치는 노력이 있었기에 인류의 역사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우리의 학교에서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고 독특한 호기심을 발하는 아이들이 문제아 취급을 받는 것처럼, 뛰어난 인물들도 그 시대에는 고난을 당하기도 했으니 지식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인가 보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새로운 생각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의문과 질문을 던지는 비판적인 사고로부터 나온다.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암기하는 학습방법으로는 길러지기 힘든 배움의 자세이다. 지식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일 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 출발은 비판적인 사고에서 시작된다. 그럼 비판적 사고는 어떻게 길러지는 것일까?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북돋아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는 세상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나온다. 부모나 선생님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 중에 하나가 "원래 그래." 이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너무 자주 망각하는 듯하다.

 

인간과 전혀 다른 소리를 내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감동하지 않는 아이들은 없다. 햇빛이 커튼 사이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에 흥분하지 않을 아이들이 과연 있을까? 그런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그래." 라는 한 마디로 아이들의 사고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지적 폭력이다. 이런 경험을 반복한 아이들은 마침내 깨닫게 된다. 세상을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친다는 것을. 몇 번만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날아오는 것은 짜증 섞인 어른들의 반응뿐이고, 호기심에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면 돌아오는 것은 문제아라는 낙인뿐이다. 이런 문화가 우리 아이들을 교실에서 질문이 없는 아이들로 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교과서에 적힌 내용만이 정답인 학교에서 다른 생각은 불이익을 가져올 뿐이다. 정작 교과서란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사고의 단초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사실 교과서란 모든 지식을 해체해서 뼈대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국가가 아이들을 교육할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른 교육과정을 만든 후 거기에 필요한 지식들을 제시하는 하나의 사례가 바로 교과서이다. 따라서 이것이 절대화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다.

 

국정교과서 시대를 너무 오래 거친 탓에 교과서를 절대적이고 완벽한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교과서에 기초한다는 말이 교과서만 들입다 외우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식이란 교과서이든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것이든 그것을 기초로 다양한 자료와 내용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야 쌓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대단히 불완전하고 일방적인 시각을 가진 것도 많아서 그것 자체가 진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과학에서조차 기존의 주장이 뒤집히는 기막힌 일들이 생기지 않는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수천 년 동안 인간을 우롱해왔던 천동설이었고, 최근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심각한 도전에 빠지기도 했었다. 물론 오류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아인슈타인이라는 대물리학자의 권위에 의문을 갖고 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그 탐구정신이 어쩌면 20세기 최고의 과학적 성과를 송두리째 뒤엎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지식과 업적에까지 도전하는 사람들 덕분에 인류의 역사는 발전해온 것이다. 하물며 다양한 주장과 불완전한 사실을 다루는 교실이라면 더 많은 도전이 있어야 할 일이다. 더 많은 의문을 갖도록 부추기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제대로 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지식의 불완전성과 객관이라는 가치의 허약한 실체를 제대로 이해시킬 때 사물이나 현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다양한 가치와 다른 시각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도, 지식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할 때에서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교사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교실에서 멍하게 공상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깐족거리면서 "왜요?"를 반복하는 아이들에게 꿀밤과 고함을 안기기보다는 그 아이가 정말 훌륭한 아이가 될 것이라는 기대의 눈빛을 보내라고 이야기한다.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말썽피우지 않는 아이가 편하고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잘 따르는 아이가 예뻐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은 어찌 보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욕구와 열망을 억누르는 데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일 수 있다. 주어진 질서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 일반적으로 사회와 학교 시스템이 우수하다고 평가하는 아이들이 바로 이런 부류의 아이들이다.

 

그러나 다루기 힘들고 때로는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들지만 자기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고 인간 본연의 호기심과 의문이 자신의 자제력을 이겨버리는 그런 아이들이 종종 더 대단한 성취를 거두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런 사례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으로 꼽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에 관한 일화를 인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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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으로 유명한 케네디 가에서 촉망받던 아이는 전쟁 중 전사한 케네디의 맏형인 조셉이었다. 형 조셉과 함께 사립명문학교인 초트스쿨을 다녔지만 늘 말썽만 일삼던 케네디는 경쟁상대로 생각했던 형이 졸업하자마자 전혀 다른 학생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당시 초트스쿨 교장이 케네디의 아버지에게 보낸 다음 편지글은 케네디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잭(케네디 대통령의 애칭)은 명민하고 개성이 뚜렷한 개인주의 성향의 소유자입니다. 형인 조와 달리 마구를 채우기 힘든 야생마 같은 심성이 있습니다. 잭에게는 천부적으로 독자적인 관점이 있습니다. 또 기지 넘치는 표현을 구사하는 재능을 타고 났습니다. 잭 같은 학생에게는 적응과 조정과 성장의 기간을 참작해야 합니다. 평범한 모범생의 심성을 가진 아이들은 우리 교사나 부모들의 골치를 썩이는 경우가 훨씬 적습니다만, 결국에는 잭 같은 아이가 더 흥미 있고 더 보람찬 성과를 얻게 되기 마련입니다."(최효찬, <세계명문가의 독서교육>)

 

꼴통 같은 녀석들을 한 대 쥐어박고 싶겠지만 한 호흡만 가다듬고 그 내면에 감춰져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그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를 탓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그 안에 숨어 있는 거대한 에너지와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냥 빈말이 아니라 세상을 의심하고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이 세상에 큰 족적을 남길 만한 엄청난 일들을 해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중요한 요소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열정을 바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얼마나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가 아니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스스로의 관심과 열정으로 파고들다 보면 전혀 새로운 것들을 창조할 수 있다. 아무리 큰 보상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행복하지 않으면 새로운 아이디어로 발전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런 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이 행복한 일이라면 그 사람은 그 일에 몰입하게 되고 그럴 때 놀라운 성과를 만들게 된다.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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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비유의 하나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페르마의 정리는 수백 년간 수학자들을 괴롭혀온 난제 중의 난제였다. 수많은 천재수학자들이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했기 때문에 더 유명해진 문제이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를 던진 페르마는 전문 수학자가 아니라 프랑스 툴루즈 지방의 의원이자 지방 판사였다. 수백 년간 아무런 보상도 없는 이 문제에 도전한 많은 수학자들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실패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 과정에서 많은 수학적 진전이 있었고 이것은 순수한 학문에 대한 열정에 의한 것이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인류는 한 발씩 더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오일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수학을 배운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이 위대한 수학자도 페르마가 남긴 세기의 난제에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안타까워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 오일러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들어낸 수많은 수학적 업적은 우리 인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다른 수학자들의 도전에 발판이 되었고, 마침내 페르마의 정리는 임자를 만나서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이 문제의 도전자들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문제를 푼다고 누군가가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수많은 수학자들이 이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느라 수년에서 수십 년을 바치기도 했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 매달리게 했을까? 그것은 스스로의 관심과 열정이었다. 그 어떤 보상이나 대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오히려 그런 보상이나 대가가 없을 때 새로운 생각이나 진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인류가 경험으로부터 얻게 된 교훈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은 그런 교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자신을 평가하는 척도로 생각한다. 그 평가라는 것이 자동차, 집, 연봉등으로 정의되는 능력인데, 이것을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정작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가치 없는 일을 좇느라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 기력이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와 상관없이 스스로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관심을 가지면 더 이상 돈이나 지위가 최고의 가치가 아니게 된다. 돈이나 지위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나 지위를 갖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다. 인류를 위한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닌 돈과 자동차, 승진에 자신의 모든 것을 허비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주는 가슴 벅찬 희열을 느끼는 것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충만한 에너지가 새로운 생각,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

 

세상과 사물의 한 면만 보지 않고 그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힘과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새로운 생각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 이것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대가나 보상과 상관없이 집요하게 지식의 본질을 추구하고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힘의 원천이 된다. 이 세가지 요소들이 바로 우리 아이들을 창의적인 인간으로 길러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혁신학교, 행복한 배움을 꿈꾸다 / 이성대 신안산대학교 부교수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7. 23. 21:14

 

1921년 미국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우리에게 창의력의 아이콘으로 잘 알려진 토마스 에디슨이 자신의 회사 - 이 회사가 나중에 미국에 거대기업인 GE가 된다. - 입사 지망생들을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입사 시험을 도입한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한동안 전범처럼 활용했던 150가지 상식문제가 수록된 시험으로, 나중에 '에디슨 질문서'라 불리게 되었고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엉클 샘이 에바를 위해선 한 일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는 어떤 금속으로 만들어졌는가? 등 암기형 지식을 묻는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당시로서는 새롭고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마침 이 시기에 아인슈타인이 미국을 방문했었다.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어떤 기자가 아인슈타인에게 돌발질문을 던졌다. "음속의 값은 얼마인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기자는 어떤 기대를 하고 이 질문을 던졌을까? 아마도 단순히 음속의 값뿐 아니라 파동의 특성과 양자역학적 특성까지 설명하는 해박한 물리학 강의가 뒤따라 나올 것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두지는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대답에 충격을 받은 기자는 에디슨의 입사시험을 소개하면서 그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의견을 재차 물어보았다. 아인슈타인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정보의 습득은 교육의 본질이 아닙니다.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훈련시키는 것, 교육의 본질은 바로 그것입니다. 사고하는 능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니까요." 덧붙여 아인슈타인은 지능의 진정한 지표는 지식이 아니라 상상력이라고 강조했다.

 

1920년대의 이야기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에 아인슈타인은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화는 교육의 본질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대로부터 변하지 않은 진정한 교육의 목표는 사고하는 능력이지, 지식을 머릿속에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필자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현대사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가 한 이야기이니 말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다는 철학자들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세상이 바뀌어서 이런 사고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요구된다는 점이다. 일부 지배계층이 아니라 이제는 모든 개인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능력이 된 것이다.

 

혁신학교, 행복한 배움을 꿈꾸다_ 이성대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7. 22. 19:49

 

고정관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이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은 것들을 그냥 믿어 버리는 것이다. 남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은 '브론토 사우루스'라는 이름을 가진 공룡의 그림이다.

 

이 공룡을 보니까 닥치는 대로 다른 짐승들을 잡아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하지만 이 공룡은 실제로는 풀만 뜯어먹고 살았던 양처럼 순한 공룡이다.

 

누구나 이와 비슷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다음 질문에 답을 해 보자.

 

⊙ 하루살이는 과연 이름 그대로 하루만 사는 것일까?

⊙ 곰팡이는 사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라고 생각했는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하루살이는 환경에 따라, 즉 산소와 물의 온도가 얼마나 적당한지에 따라 하루살이들은 약 이틀 반까지 살기도 한다. 또 모든 곰팡이가 사람 몸에 해를 가져다 주는 건 아니다. '페니실린'이라고 하는 푸른 곰팡이는 항생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고정관념은 무수히 많다.

 

과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러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내가 직접 확인해 본 사실만 진리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과학을 잘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무엇일까?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하면 과학을 잘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면 과학 성적은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과학 실력을 쌓기는 어렵다.

 

진정한 과학 실력을 쌓으려면 먼저 책을 통해 언어 능력을 키워야 한다. 과학 지식을 비롯한 모든 지식은 언어를 통해 전달된다. 따라서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으면 과학 실력을 쌓을 수 없다.

 

교과서 외에 다른 과학책을 많이 읽어 보자. 서점에 나가 보면 과학에 관련된 책들이 엄청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나오는 어린이 전문 과학 잡지도 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 보자.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어린 시절 탐정 추리 소설을 통해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웠다고 한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탐정 추리 소설은 '셜록 홈즈'와 '루팡' 시리즈이다. 이러한 추리 소설을 통해 추리력과 논리력을 길러 두면 과학 공부를 하는 데 큰 힘이 된다.

 

물론 과학을 잘 하는 능력이 과학 서적이나 추리 소설을 통해서만 길러지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여러 분야의 책을 모두 닥치는 대로 읽어야 한다. 과학, 문학, 예술, 역사, 호기심, 리더십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가리지 말고 고루 읽어 보자.

 

물론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과학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과학을 잘하려면 이밖에도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절대 과학을 잘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푸르넷 뉴스 2015학년 7월호, 금성출판사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7. 10. 21:34

 

보통 무엇인가가 생각나지 않을 때 아무거나 휘갈겨 쓰다 보면 생각이 나는 경우가 있다. 쓰면서 손가락을 움직이게 되는데, 이때 뇌가 각성이 되고 깨어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학자들이 모두 필기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도 손가락의 움직임이 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다산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500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공부법 '초서'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베껴쓰면서 손가락을 부단히 움직이며 뇌를 자극하고 단련시켜 수많은 저서를 남길 수 있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남다른 공부법인 '백독백습'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종대왕이 독서를 좋아한 것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그치만 세종대왕이 좋아했던 것은 독서만이 아니다. 그는 눈으로 읽는 독서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 태종이 주는 책이면 어떤 책이든 밤을 세워가며 읽었고, 내용을 그대로 따라 썼다고 한다. 한 번 읽고 한 번 쓸 때마다 '바를 정' 자를  표시하면서 백 번 읽고 백 번 썼다. 결국 손가락을 부단히 움직였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이 있다. 그냥 독서를 할 때는 의식이 살아나지 않았지만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하면서 의식이 깨어나고, 독서한 만큼 머리에 무엇인가가 쌓이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독서노트에 옮겨 쓴다. 손가락을 움직여서 무엇인가를 쓰는 것은 뇌를 깨우고 단련시키는 행동이다. 필기를 하면서 외우고 공부하면 오래 남고 기억도 잘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등 기업,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회사와 성공한 사람을 보면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뇌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습관과 기업 문화, 그리고 환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악기 연주를 비롯한 손가락 활용과 글쓰기가 평범한 두뇌를 깨우고 변화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

 

100퍼센트 뇌를 활용해 성공한 또 다른 인물,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해 살펴보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어떻게 해서 그토록 위대한 천재가 될 수 있었을까? 1993년 다양한 분야의 천재들을 연구한 앤더스 에릭손은 '재능은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논문은 천재들에 대한 연구로 기념비적인 논문이 되었으며, 그 결과 수천 편의 후속 논문들을 탄생시켰다. 그 결과 천재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앤더스 에릭손의 주장처럼 후천적 재능으로 천재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천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멈추지 않는 인내심 때문이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2의 뇌'라 불리는 '손'에서 찾을 수 있다. 다 빈치는 엄청난 양의 원고와 노트, 메모를 남길 만큼 손으로 무엇인가를 쓰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37세부터 약 30년간 5000쪽 분량의 자필 원고를 남겼다. 그것은 양손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엄청난 양의 노트에 메모를 했다. 그 결과 우뇌와 좌뇌가 균형 있게 발달하여 다방면의 천재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 빈치가 '양손을 사용하여 엄청난 양의 글을 썼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의 다산 정약용은 '둔필승총'이라는 말을 남겼다. 재주가 둔한 사람이라도 필기를 계속하면 총명한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천재로 만든 것이 바로 '둔필승총'이다.

 

악기를 연주하라

 

한국, 중국, 일본 국민들의 지능지수는 세계 일등 수준이다. 그 이유는 '외부로 나온 뇌'인 '손'을 잘 활용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손이 뇌 대부분의 영역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뇌과학에서 이미 밝혀졌다. 손가락을 많이 활용하고 이용하는 것은 뇌를 자극하여 뇌를 잠에서 깨우는 것과 같다.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머리가 좋아지는 것도 이런 원리이다. 피아노뿐 아니라 손가락을 사용해 악기를 연주하면 뇌가 단련된다는 연구 결과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중 미국 온라인 우수 논문 검색 시스템 <1000 생물학 보고 능력>에 소개된 인간의 뇌와 악기 연주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이 연구를 주도한 사람은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심리학자 루츠 잰케교수로, 그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일주일에 한 시간씩 4~5개월 동안 꾸준히 악기를 배우게 했다. 그후 뇌와 IQ 점수를 악기 배우기 전과 후로 나누어 비교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악기를 배우면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 그리고 노인까지도 머리가 좋아진다. 실제로 IQ까 평균 7점이나 올랐으며 음성을 듣고 처리하는 정보인식 능력, 기억력, 운동감각까지 모두 좋아졌다. 악기 연주를 하면 뇌의 형태와 기능이 모두 변하기 때문에 학습 능력 중에서도 외국어 능력이 향상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넓어진다는 재미있고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악기 연주를 좋아했던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손가락을 사용하여 악기를 리듬감 있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뇌의 많은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협동해야 하며, 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뇌의 모든 부분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손가락을 사용하여 피아노 연주를 하면 지능이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연구에서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캐나다의 신경외과 의사 와일더 펜필드가 발표한 '호문클루스(연금술사들이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인조인간의 일종)'의 모형이다. 그는 간질환자의 치료와 수술 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대뇌와 신체 각 부위간의 분포 관계를 발견해 모형을 만들었다. 이 모형을 보면 손과 연결된 뇌신경세포의 양이 가장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뇌는 손가락에 많은 부분이 할당되어 있다는 것이다. 양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눈으로 악보를 인지하면 다시 눈이 양 손가락의 움직임을 통제한다. 이와 동시에 피아노 소리를 귀로 듣고, 그것을 피드백하기 위해 뇌는 분석, 인지, 명령, 그리고 음악적 이해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피아노 연주가 다른 어떤 악기보다도 뇌 활성화에 좋은 것이다. 이는 손을 움직이면 뇌신경을 광범위하게 깨우는 효과가 있음을 의미한다.

 

피아노를 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지닌 것이 바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양손가락을 골고루 눌렀다 땠다하기 때문에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과 완전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피아노 학원을 안 다녀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 않을까. 손을 쓴다고 다 천재가 될 순 없겠지만 손과 뇌가 연결되어 있고 다양한 연구결과가 있는 걸 보면 손을 자극하는 것이 뇌를 자극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당신의 뇌를 경영하라, 김병완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7. 5. 09:41

 

사과나무 아래를 걸어가다가 떨어지는 사과를 보았다. 우리는 만유인력을 발견했다고 외칠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올시다. 그럴 리가 없지요.' 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탕 안에 가득 물이 들어있는 목욕탕에 들어가서 쏟아지는 물을 보면서 '유레카!'라고 외칠 수 있을까? 역시 대답은 '아니올시다. 그럴 리가 없지요.' 라고 할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같은 현상이라도 발견할 수 있는 '선험지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다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몰입 상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변하게 만든 과학적 지식의 발견은 선험지식과 몰입이라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선험지식을 많이 가질수록 질 높은 몰입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몰입의 대가들이다. 아인슈타인도 몰입의 대가였다. 아인슈타인의 몰입의 정도를 느끼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날 아인슈타인이 집에 남아 연구를 하고 있을 때다. 아인슈타인의 아내가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 난로 위에 물 있으니, 배고프면 계란을 삶아 먹도록 해요."

 

아인슈타인은 대답을 하고 몰입을 계속하였다. 아인슈타인은 배가 고픈 것을 알고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계란을 집어서 끓는 물 속에 넣었다. 잠시 후 몰입에서 깨어나 물통 안을 들여다본 아인슈타인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물통 속에는 계란이 아닌 시계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몰입해 있어서 시계가 계란인줄 착각하고 집어넣었다는 이야기다.

 

유레카가 그리스시대에 아르키메데스가 외친 말이다. 왕이 아르키메데스에게 물었다.

 

"이 왕관이 정말로 순금으로 만든 게 맞느냐?"

"그거야 간단하지요. 녹여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난 이 아름다운 왕관을 그대로 두고 싶어. 녹여서는 안 돼. 하지만 순금으로 만들었는지 알아야겠어. 자네가 그걸 해야겠어."

"예? 왕관을 녹이지 않고 순금인지 알아보라고요?"

 

아르키메데스는 난감했다.

 

'어떻게 녹이지도 않고 순금인지 알 수 있단 말이야.'

 

솜씨 좋은 왕관 제조업자가 금을 빼돌렸다는 소문을 들은 왕은 소문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왕관의 모습을 바꾸기 싫어서 아르키메데스를 찾은 것이다. 왕의 앞에서 물러나면서 아르키메데스는 생각해보았다.

 

'녹이지 않고 어떻게 순금인지 알 수 있을까?'

 

아르키메데스는 집에서도, 길을 갈 때도 왕관만 생각했다.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르키메데스는 지친 몸을 쉬려고 목욕탕에 갔다. 탕 안에는 물이 가득했다. 탕 안으로 들어가자 물이 쏟아져 나왔다. 한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몸이 가볍지?'

 

탕 안에 들어간 아르키메데스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래, 가볍다고 느낀 것은 쏟아진 물 때문이야. 쏟아진 물은 물속에 잠긴 내 몸의 부피와 같아. 그 때문에 가벼워진 거야. 금관의 부피도 그렇게 잴 수 있어. 그리고 왕관의 부피만큼 금과 은을 모아 저울에 비교하면 알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한 아르키메데스는 옷도 입지 않은 채 목욕탕 안에서 뛰쳐나왔다.

 

"유레카, 유레카!"

 

아르키메데스는 옷도 입지 않고 길거리로 나와 궁궐로 달려간 것이다. 호기심만으로 과학자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관련 지식과 몰입이 같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기초지식에 튼튼한 과학적 지식과 호기심이 있을 때 아르키메데스가 나오고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나오지 않을까?

 

푸르넷 뉴스, 2015년 6월호, 금성출판사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6. 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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