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실험 결과를 보면 창의성을 기른다는 말은 모순인 것 같다. 오히려 창의성을 유지하는 것이 교육이 해야 할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와 토론, 프로젝트 수업, 체험활동, 그리고 진로와 관련된 경험 등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이자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생각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사물과 현상을 본질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능력은 창의성의 기초가 되는 비판적 사고로부터 출발하며 이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의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으로부터 얻어진다.

 

독서의 목표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서 비판적 사고를 갖춘 지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교육은 창의성을 기르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동서고금의 명저를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아이들은 스스로를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 자각하게 되고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고 자신과 세계의 관계에 대하여 보다 성숙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명저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비판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려는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한 지성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독서는 책을 읽는 것이다. 그것은 문자를 사용하게 된 이후부터, 특히 인쇄술의 발전 이후 정보나 지식의 전달이 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는 정보를 유통하고 지식을 재생산하는 다양하고 새로운 매체가 존재하니 독서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매체가 다양한 정보를 쏟아냄에 따라 오히려 제대로 정보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보유통의 걸림돌이 생기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신매체들은 즉각적이고 쉽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파급력과 영향력이 매우 크므로 이런 매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모티머 J. 애들러, <독서의 기술>, 범우사, 2011)

 

인터넷, 텔레비전, 라디오, 잡지 등을 통해 사람들은 교묘한 설득에서부터 신중하게 선별된 정보와 통계에 이르기까지 별로 힘들이지 않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잘 정리된 자료들을 제공받는다. 그런데 이것들이 어찌나 효과적으로 포장되어 있는지 시청자나 독자들은 그 의견을 그대로 자신의 사고 속에 주입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즉각 그대로 재생시킨다는 게 문제이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게 위험하다. 생각이 없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적 의미로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들이 전달하는 정보나 지식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어떠한 매체에서 얻은 정보든 그것을 제대로 읽고 재해석해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독서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요즘 제대로 된 독서를 위해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독서토론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독서는 자신과 저자와의 대화이다. 책을 읽는 것은 끊임없는 질문으로 저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고 저자의 문제의식을 파악하고 자신의 주체적 사고로 재정리하는 것이다. 이때 독서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는데 독서란 혼자서 하는 행위라 주관적인 지식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론 다양한 주장을 담은 책들을 고루 읽음으로써 자신만의 생각에 갇히거나 오류에 빠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는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독서는 토론과 함께해야 온전해진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생각을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아집에 갇히는 것을 피할 수 있고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함께 의미를 탐구하면서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토론이 중요한 이유는 좋은 토론을 통해서 소통과 협력, 다른 것을 인정하는 자세 등 민주시민적 가치까지 습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브루타 교육에서 토론을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하브루타 교육이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전 세계 인구의 0.25%도 안 되는 유대인이 전 세계 노벨상 수상자를 20% 이상 배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이유를 그들의 독특한 교육법인 하브루타에서 찾고 있는데, 이 교육의 핵심은 그들의 경전인 탈무드를 읽고 정답이 없는 문제로 토론하는 것이다.

 

독서, 하면 역시나 유태인 출신인 아인슈타인을 빼놓을 수 없다. 수학때문에 낙제를 한 위대한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인문고전 독서광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해서 특허청 말단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매일 저녁 인문고전독서클럽을 운영하였다. 수학을 못하면서도 사물과 현상에 대한 직관력을 가졌던 그의 힘은 바로 독서와 토론으로 부터 나왔음을 스스로도 강조하였다. 또 한 사람의 과학자 레더포드도 독서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독서와 더불어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생각 없이 책을 읽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외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훌륭한 인문고전 독서가였다는 사실은 독서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독서가 좋다고 해도 잘못 읽으면 독이 된다. 그래서 독서교육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겉핥기식의 독서이다. 한 권을 읽더라도 깊게 제대로 읽어야 한다. 독서는 여행과 같다. 해외여행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에는 한 번 해외에 나가는 것이 일생의 꿈이었다. 그래서 한 번 나간 김에 최대한 많이 보는 것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찍고 오기'라고 불리는 이런 여행에서는 갔다 왔다는 자랑거리 외에는 별로 얻는 것이 없다. 여행을 하는 진짜 목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아침독서나 독서록 같은 것에 찬성하기가 어렵다. 독서프로그램은 주로 초등학교에서 많이 이루어지는데 대게 다독을 강조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렇게 다독으로 아이들을 경쟁시키다 보니 한 아이가 6년 동안 수천 권의 책을 읽는 일이 벌어진다. 대단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책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용의 이해보다는 빨리 읽는 것에만 매달리게 된다. 책을 읽는 목적은 무엇일까?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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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독서교육의 사례를 한 번 생각해보자.

EBS 다큐프라임에 소개된 경기도의 모 초등학교의 사례인데 딱 한 권의 책으로 5학년 국어수업을 일 년간 진행한 사례가 있다. 이런 수업이 나오게 된 것은 아마도 경기도교육청에서 명저를 수업에 직접 활용하는 교육을 강조한 것이 배경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한 권의 책을 정해서 그것을 일 년 수업의 교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책이 교과서가 되는 것이다. 이 수업에서는 책을 천천히 다 같이 읽으면서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가면서 내용을 파악하다 보니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어휘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정확히 뜻을 이해한 후 넘어간다. 국어교과의 목표인 어휘습득, 내용파악 등이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 한 권만으로 수업을 하면 교육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까 우려하는 교사나 학부모들에게 충분한 답이 될 듯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책에 나오는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토론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나와 다른 다양한 생각을 접하게 되어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이 수업은 책에 나오는 나무를 학교 주변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책에 기술된 생활이나 문화와 자신의 삶을 비교해 보면서 다른 과목의 교육목표까지 포괄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통합교과적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을 아이들이 문단을 나누어서 글과 삽화로 표현하는 과정도 있는데, 이렇게 삽화로 표현하려면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므로 아이들은 내용을 깊게 생각하게 되고 창의성을 키우게 된다. 책 한 권으로 국어수업을 진행하지만 과학, 음악, 미술, 사회, 역사까지 섭렵하면서 아이들은 분리된 지식의 벽을 넘어 통합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통찰력이 생긴다. 이런 사례를 보고 국어교과서라서 책 한 권으로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상력의 문제이다. 다른 과목도 책을 활용해서 수업이 가능하다. 같은 어학과목인 영어는 물론이고 사회, 역사 등의 과목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며 과학과목의 경우도 일부 단원의 경우 시도해볼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수업은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이 생긴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스스로 알아가는 즐거움을 얻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수업이 가능하려면 교사들의 도전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교과서를 이용하면 지도서에 따라서 단계별로 진행하면 되지만 이런 수업에서는 교사가 새롭게 모든 것을 기획해야 하며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교사는 몇 번씩 책을 읽고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목표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교사의 이런 노력은 아이들에게 다른 수업에서 기대할 수 없는 놀라운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혁신학교, 행복한 배움을 꿈꾸다 / 이성대 신안산대학교 부교수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7. 24. 21:04

 

인문고전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작가 이지성, 존 스튜어트 밀 독서법이니 뭐니 해서 둔재도 영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 준 사례를 소개해왔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상위1%의 계층들은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를 보내거나, 고급과외를 통해 주입식이 아닌 토론식, 대화식 교육을 받게 한다. 소크라테스식 질문과 공부를 통해 생각하는 사람, 즉 사고력이 발달된 인재로 키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의 일이다. 독일의 한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하던 카를 비테는 장차 태어날 아이를 성공적으로 교육하고자 플라톤, 에라스무스, 존 로크, 루소, 페스탈로치 같은 위인들이 집필한 교육 서적과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로마의 교육에 관한 문헌들을 연구했는데, 하나같이 19세기 당시 독일의 교육과 '다른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를 비테는 그 책들이 옳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고, 자녀를 그 '다른 교육'에 따라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첫째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장티푸스로 죽었고 둘째는 지능이 현저히 낮았다. 비테는 '하나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벌을 내리십니까?'라고 울부짖는 아내를 위로하면서 아들에게 '다른 교육'을 실시했다.

 

카를 비테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비록 아들이 지능이 떨어지긴 했지만 '다른 교육'을 받으면 얼마든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 그는 태어난 지 15일 된 아들에게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었다. 두 살 때부터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같은 고전을 읽어주었고, 여덟 살 때부터는 혼자 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으로 읽게 했다.

 

카를 비테 주니어의 두뇌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기적처럼 변했다. 그는 고작 아홉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자격을 취득했고 열세 살에 기센 대학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칭송받았다.

 

카를 비테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을 책으로 썼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천재로 키우기를 열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했던 비테의 저서는 20세기에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서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접한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레오 위너는 카를 비테의 책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나머지 기자회견을 열어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카를 비테식 교육을 언급했다. 그의 아들 노버트 위너는 열두 살에 태프트 대학에 입학해서 2년 만에 졸업했다. 열네 살에는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고, 열여덟 살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과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가 되었고, 인공두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 레오 위너의 딸 콘스턴스는 열네 살에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고, 다른 딸 버사는 열두 살에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심리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보리스 사이디스도 아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를 카를 비테식으로 교육했는데 가장 중점을 둔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 그가 '속물과 천재'에서 한 고백을 들어보자.

 

'내 아들은 올해 겨우 열두 살이지만....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그리스어 원문으로 암기하고 있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같은 그리스 고전 원전도 다른 아이들이 '로빈스 크루소'를 읽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는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는 열한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열두 살에는 하버드 대학 수학 클럽에서 4차원 세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100여 명의 교수들을 지적 충격에 빠뜨렸다.

 

태프트 대학 교수 벌도 자녀에게 카를 비테식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실시했다. 그의 아들 애돌프 벌은 열세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서 3년 만에 졸업했고 곧장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딸 리나는 열다섯 살에 하버드대학교 부속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다. 다른 아들 루돌프와 딸 미리엄 역시 각각 열두 살, 열네 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외견상으로는 학교 교육과 학원 교육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학교 교육 하나다. 학원 교육의 목표가 학교 성적 올리기이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은 프러시아(프로이센)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프러시아는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인들과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는 육체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그 두 가지는 강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군사력과 경제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엄청나게 많이 배출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프러시아 지배계층의 눈에 어느 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계층의 자녀가 들어왔다. 그들은 농민의 자녀들에게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가 되는 교육을 시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를 세웠다. 후일 프러시아는 독일제국에 합병되었다. 독일제국은 프러시아의 교육제도를 한층 더 발전시켜서 아예 군대식 학교를 세웠고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영국은 1860년에 의무교육, 즉 공립학교 교육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도 프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숙련된 공장 노동자가 무한정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농민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제도를 그대로 수입해서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했다.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 게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혹시라도 이 말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다음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라.

 

* 군대의 상관은 부하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부하들은 그 명령을 기계처럼 수행한다.

* 공장의 장은 휘하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작업지시를 내리고 노동자들은 그 지시를 기계처럼 수행한다.

* 우리나라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기계처럼 암기한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중고 합쳐서 무려 12년이나 교육을 받고도 지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되기는커녕 좀 심하게 말하면 바보가 되어 사회에 나온다. 대학에 입학해서 다시 4년을 배우고 대학원까지 졸업해도 마찬가지다. 당당히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식이 되기는커녕 제 앞길 하나도 헤쳐나가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하기 일쑤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시키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쌓이는 게 아니라 두 눈의 총기를 잃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학교를 부정하거나 다니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사들이나 교육부에 돌을 던지라는 의미도 아니다. 학교는 다녀야 한다. 그것도 될 수 있으면 최고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자가 없다. 또 교사와 교육부는 프러시아에서 유래된 나쁜 공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문고전을 집필한 위대한 천재들이 우리나라의 학교제도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십중팔구 학생의 두뇌를 죽이는, 창조성을 말살하는, 노예를 만드는,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하루빨리 개혁해야 할, 민족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새롭게 고쳐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할 것이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문고전 저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실시한 교육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깊은 대화를 통해 지혜와 진리를 터득하고 발견해가는 교육이다.

 

새로운 두뇌를 갖고 싶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루 또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을 실천하기 바란다. 위대한 고전을 집필한 인류의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깊은 정신적 대화를 하기 바란다. 그렇게 그동안 받았던 프러시아식 교육을 두뇌에서 털어내고 지혜와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배움의 세계로 들어가기 바란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5. 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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