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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5 물음표 교육을 살려야 천재가 산다_ 이지성
- 2015.05.05 하버드대 교수도 열광한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_ 이지성
- 2015.04.19 학문의 즐거움_ 히로나카 헤이스케
세월호가 있던 날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정말 가만히 있던 아이들도 있었고, 실제 상황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 학생들도 있었다.
위 사건을 계기로 뭔가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스스로 탐구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제기를 내용으로 하는 방송을 본 기억이 난다. 그것이 물음표 교육이 아닐까.
'놀랍게도 지난 몇 년 동안 수업 시간에 '왜?"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던 아이들이 '왜?'라고 묻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치 지식의 끝을 보려고 하는 광적인 학자처럼 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일이 없기로 유명하다. 왜 그럴까? 실제로 궁금한 게 없기 때문이다....ㅋㅋ. 물론 교과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물음표를 떠올리는 능력을 잃어버려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이렇게 된 것은 교육제도 탓이다. 공,사교육을 막론하고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그저 머릿속에 지식을 쑤셔넣기만 하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려 20년 가까이 교육을 시키고도 지적으로 무능력한 인간을 만드는 우리나라 교육이 변화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물음표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22%를 배출해낸 유대인 교육처럼 말이다. 인문고전 독서교육 중 철학고전 독서교육은 학생들 스스로 지식의 근본원리, 즉 지혜에 도달할 때까지 '왜?'라고 묻게 만든다. 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한 사람은 오늘부터 철학고전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 이유를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감히 주장하고 싶다. 만일 철학고전 독서교육이 제대로 정착하면 우리나라는 유대 민족보다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함은 물론이고 천재들을 지속적으로 길러내게 될 것이라고.
초등학교 교사 시절,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플라톤, 장자, 손자 등을 읽혔다. 아이들은 아침 자습 시간마다 철학고전을 한 페이지 이상 읽고, 그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필사했다. 한때 내가 맡았던 반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그 반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한 건 이상의 굵직한 사고를 친 아이들이 모여 있었던 소위 문제아 반이었다. 책가방에 교과서나 노트는커녕 연필 한 자루도 없는 아이, 수업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서 문방구 앞에 설치된 게임기에서 게임을 하는 아이 정도는 귀여운 편에 속했다. 담배를 피우는 아이, 술을 마시는 아이, 중학생 폭력서클에 가입한 아이, 세상이 싫다며 아파트 단지에 불을 지르려다가 붙잡힌 아이, 다른 학교 아이들의 돈을 갈취하다가 붙잡힌 아이, 못을 잔뜩 박은 각목 같은 불법무기를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제공(?)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게다가 심각한 수준의 학교 부적응 증세로 신경정신과를 주기적으로 다니는 아이도 몇 있었다. 덕분에 우리 반은 3월 진단평가에서 최악의 반 평균점수를 자랑하며 전교 꼴찌를 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좋았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열심히 놀았다. 1~2교시는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놀고, 3~4교시는 근처 공원에서 즐겁게 놀고, 학교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5~6교시는 최신 만화영화를 본 날도 있었을 정도다. 게다가 숙제는 보통 '3잘', 즉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기였다. 그렇게 몇 주를 놀고 나니 아이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노는 것도 좋지만 공부도 가끔씩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놀랍게도 문제아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이 임원진을 통해 전달될 정도였다. 나는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와 함께하는 공부는 너희들이 원해서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소위 '수업'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우리 반은 2학기 때 전교 일등을 했다. 전 학년과 비교할 때 대부분 평균 10~30점 정도 올랐고, 평균 40~50점 이상 오른 아이도 몇 있었다. 초등학교 4년 내내 수학 점수를 30점 이상 맞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아이 두 명이 각각 80점, 90점을 맞는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3월 진단평가에서 학습 부진아 판정을 받았던 10여 명의 아이들이 전부 평균 80~90점 이상을 받는 일이 생겼다. 소위 공부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더욱 멋진 일도 일어났다. 담배와 술을 끊고, 폭력서클을 탈퇴하고, 신경정신과를 다니지 않게 되는 등의 변화가 함께 나타났다. 여기에 대해서는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와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등에서 자세히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 반이 만들어냈던 공부기적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철학고전 독서였다. 물론 대학교수들도 어려워하는 철학고전을 초등학교 공부와도 담을 쌓은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니 고충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철학고전을 읽으면서 두뇌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철학고전만큼은 반드시 읽히고 싶었다. 그래서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러자 고맙게도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수업 시간에 일어났다. 놀랍게도 지난 몇 년 동안 수업 시간에 '왜?'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던 아이들이 '왜?'라고 묻기 시작했다. 그것도 집요하게, 아니 탐욕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이들은 마치 지식의 끝을 보려고 하는 광적인 학자처럼 굴었다.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을 가르쳤던 날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아마도 내가 철학고전을 읽히지 않았다면 수업은 간단히 끝났을 것이다.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을 도출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를 몇 개 풀어주고, 칠판 앞으로 네 명 정도 불러내서 문제를 풀게 하고, 수학 익힘책 문제를 푸는 숙제를 내주며 끝냈을 것이다. 나와 아이들 사이엔 어떤 질의응답도 없었을 것이다. 고작해야 내가 '자 이렇게 이렇게 푸는 거야, 알았지?'라고 질문하고, 아이들은 기계처럼 '네~!'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이들은 삼각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 더 나아가서 삼각형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지, 그는 왜 하필 삼각형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삼각형의 넓이를 왜 구해야 하는지, 삼각형의 넓이 구하는 공식이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이유는 무엇인지 등도 알고 싶어했다. 심지어는 삼각형과 삼각형 넓이 구하는 공식이 인간의 실생활은 물론이고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궁금해하는 아이도 있었다. 부끄럽게도 난 답변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을 솔직히 시인하고, 아이들을 학교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고는 도서관의 책들을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게끔 했다.
늘 그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식의 근원을 파헤치고자 하는 '왜?'라는 질문으로 채워진 수업을 몇 번 겪고 나자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도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일념 아래 적게는 몇 권 많게는 십수 권의 책을 마치 지적 전투를 치르듯 빠르고 강렬하게 읽는 독서법을 구사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교과서는, 비유하자면 도서관 요약집이다. 도서관의 문학 서가를 요약해놓은 것이 국어 교과서이고, 과학 서가를 요약해놓은 것이 과학 교과서란 소리다. 그렇다면 도서관을 읽은 아이가 교과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의 기적적인 성적 향상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의 철학고전 독서가 단기간, 그러니까 나와 함께 있었던 시간에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깊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냥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우리 교육의 한계 때문이었다는 정도로만 말하고 싶다. 아무튼 우리 반 아이들은 학년이 바뀌면서 철학고전 독서와 서서히 멀어졌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누구도 철학고전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한 동안 보여줬던 지혜의 빛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따금 생각해본다. 만일 우리 반 아이들이 그 뒤로도 철학고전 독서를 꾸준히 제대로 했다면 지금쯤 세계 또는 한국 지식인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줄 인물이 한 명쯤은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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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고전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작가 이지성, 존 스튜어트 밀 독서법이니 뭐니 해서 둔재도 영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 준 사례를 소개해왔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상위1%의 계층들은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를 보내거나, 고급과외를 통해 주입식이 아닌 토론식, 대화식 교육을 받게 한다. 소크라테스식 질문과 공부를 통해 생각하는 사람, 즉 사고력이 발달된 인재로 키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의 일이다. 독일의 한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하던 카를 비테는 장차 태어날 아이를 성공적으로 교육하고자 플라톤, 에라스무스, 존 로크, 루소, 페스탈로치 같은 위인들이 집필한 교육 서적과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로마의 교육에 관한 문헌들을 연구했는데, 하나같이 19세기 당시 독일의 교육과 '다른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를 비테는 그 책들이 옳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고, 자녀를 그 '다른 교육'에 따라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첫째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장티푸스로 죽었고 둘째는 지능이 현저히 낮았다. 비테는 '하나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벌을 내리십니까?'라고 울부짖는 아내를 위로하면서 아들에게 '다른 교육'을 실시했다.
카를 비테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비록 아들이 지능이 떨어지긴 했지만 '다른 교육'을 받으면 얼마든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 그는 태어난 지 15일 된 아들에게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었다. 두 살 때부터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같은 고전을 읽어주었고, 여덟 살 때부터는 혼자 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으로 읽게 했다.
카를 비테 주니어의 두뇌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기적처럼 변했다. 그는 고작 아홉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자격을 취득했고 열세 살에 기센 대학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칭송받았다.
카를 비테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을 책으로 썼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천재로 키우기를 열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했던 비테의 저서는 20세기에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서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접한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레오 위너는 카를 비테의 책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나머지 기자회견을 열어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카를 비테식 교육을 언급했다. 그의 아들 노버트 위너는 열두 살에 태프트 대학에 입학해서 2년 만에 졸업했다. 열네 살에는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고, 열여덟 살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과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가 되었고, 인공두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 레오 위너의 딸 콘스턴스는 열네 살에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고, 다른 딸 버사는 열두 살에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심리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보리스 사이디스도 아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를 카를 비테식으로 교육했는데 가장 중점을 둔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 그가 '속물과 천재'에서 한 고백을 들어보자.
'내 아들은 올해 겨우 열두 살이지만....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그리스어 원문으로 암기하고 있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같은 그리스 고전 원전도 다른 아이들이 '로빈스 크루소'를 읽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는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는 열한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열두 살에는 하버드 대학 수학 클럽에서 4차원 세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100여 명의 교수들을 지적 충격에 빠뜨렸다.
태프트 대학 교수 벌도 자녀에게 카를 비테식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실시했다. 그의 아들 애돌프 벌은 열세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서 3년 만에 졸업했고 곧장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딸 리나는 열다섯 살에 하버드대학교 부속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다. 다른 아들 루돌프와 딸 미리엄 역시 각각 열두 살, 열네 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외견상으로는 학교 교육과 학원 교육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학교 교육 하나다. 학원 교육의 목표가 학교 성적 올리기이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은 프러시아(프로이센)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프러시아는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인들과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는 육체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그 두 가지는 강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군사력과 경제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엄청나게 많이 배출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프러시아 지배계층의 눈에 어느 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계층의 자녀가 들어왔다. 그들은 농민의 자녀들에게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가 되는 교육을 시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를 세웠다. 후일 프러시아는 독일제국에 합병되었다. 독일제국은 프러시아의 교육제도를 한층 더 발전시켜서 아예 군대식 학교를 세웠고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영국은 1860년에 의무교육, 즉 공립학교 교육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도 프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숙련된 공장 노동자가 무한정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농민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제도를 그대로 수입해서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했다.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 게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혹시라도 이 말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다음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라.
* 군대의 상관은 부하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부하들은 그 명령을 기계처럼 수행한다.
* 공장의 장은 휘하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작업지시를 내리고 노동자들은 그 지시를 기계처럼 수행한다.
* 우리나라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기계처럼 암기한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중고 합쳐서 무려 12년이나 교육을 받고도 지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되기는커녕 좀 심하게 말하면 바보가 되어 사회에 나온다. 대학에 입학해서 다시 4년을 배우고 대학원까지 졸업해도 마찬가지다. 당당히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식이 되기는커녕 제 앞길 하나도 헤쳐나가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하기 일쑤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시키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쌓이는 게 아니라 두 눈의 총기를 잃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학교를 부정하거나 다니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사들이나 교육부에 돌을 던지라는 의미도 아니다. 학교는 다녀야 한다. 그것도 될 수 있으면 최고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자가 없다. 또 교사와 교육부는 프러시아에서 유래된 나쁜 공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문고전을 집필한 위대한 천재들이 우리나라의 학교제도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십중팔구 학생의 두뇌를 죽이는, 창조성을 말살하는, 노예를 만드는,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하루빨리 개혁해야 할, 민족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새롭게 고쳐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할 것이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문고전 저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실시한 교육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깊은 대화를 통해 지혜와 진리를 터득하고 발견해가는 교육이다.
새로운 두뇌를 갖고 싶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루 또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을 실천하기 바란다. 위대한 고전을 집필한 인류의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깊은 정신적 대화를 하기 바란다. 그렇게 그동안 받았던 프러시아식 교육을 두뇌에서 털어내고 지혜와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배움의 세계로 들어가기 바란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질문이 인재를 만든다_ 김금선 (0) | 2015.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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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 (0) | 2015.03.15 |
안철수 의원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중의 하나인 '학문의 즐거움'.
천재들과 공부하면서 보통의 머리를 가진 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남보다 두 세배 더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밖에 없었고 결국 그렇게 끈기 있게 매달려 문제를 풀어내고,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드상까지 받게 된 점은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머니가 일깨워 준 생각하는 기쁨
어렸을 때는 누구나 그렇지만 나도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곤 했다. 다섯 살 때라고 기억되는데 목욕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물 속에서는 왜 손이 가벼워지지요?" 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인텔리와는 거리가 먼 분이시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학문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오신 어머니로서는 나의 질문에 대답할 정도의 지식이 없었다.
"목소리는 어디서 어떻게 나오지요?"
"코로 어떻게 냄새를 맡지요?"
"작은 눈으로 어떻게큰 집이나 경치를 볼 수 있지요?"
나의 여러 가지 질문에 어머니는 명확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으셨다. 그러나 "모르겠다"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으셨다. "그런 시시한 것 생각하지 않아도 돼." 라면서 화를 내는 일도 없으셨다.
"글쎄 왜 그럴까?"
어머니가 머리를 갸우뚱하시면 나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커서 공부하면 알 수 있을 거야."라고 하면서 어머니는 같이 생각해 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답이 안 나올 때는 어머니는 동네에 있는 신사의 관리인에게 데려가거나 친분이 있는 의사에게 찾아가기도 했다. 신주나 의사는 그 당시 시골 동네에서는 흔하지 않은 지식인이었다. 어머니가 그들을 찾아가서 "이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하는데 좀 설명해 주세요." 하고 부탁하신 덕분에 나는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일단은 답을 얻곤 했다.
이러한 경험을 되풀이하는 동안에 나는 '생각한다는 것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생각하는 기쁨을 체험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것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가 살아가는 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 되었다.
왜 배워야 하는가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얻은 지식을 대학에 들어가서 잊어버리거나, 대학에서 배운 것을 취직하고 나면 잊어버리는 경우 등일 것이다. 또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힘들게 공부한 지식이 자격증을 따자마자 잊혀진다든가 하는 일도 망각의 단점으로 나타난 예이다. 여기에서, 열심히 공부해도 결국 잊어버리게 되는 것을 왜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문제가 나오게 된다.
나는 그러한 질문을 하는 학생들에게 "그것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즉 공부하는 과정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지혜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공부한 것을 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배우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그러므로 많이 배우고 많이 잊어버리고, 다시 많이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중략)
예를 들어 문과 학생이 졸업 논문을 쓰는 데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의 인수분해를 꼭 사용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고 하자. 그런데 그는 그 동안 문과 공부만 해 왔기 때문에 인수분해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든지 이과 친구에게 물어보든지 어떤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그가 인수분해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자마자 "아, 그렇군. 이런 거로군." 하면서 옛날에 배운 것이 생각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속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인수분해에 대한 기초 지식이 무의식중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수분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겠지만, 그는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바로 꺼내 쓸 수 없는 형태로 뇌에 축적된 지식은 영원히 끄집어 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수고와 기회를 제공하면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다. 인간의 두뇌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지혜에는 이런 측면이 있는데 나는 이것을 '지혜의 넓이'라고 부른다. 이 지혜의 넓이는 계속 공부하고 잊어버리는 사이에 두뇌 속에서 자연스레 키워진다.
(중략)
앞에서 나는 인생에는 깊이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있고,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공부하는 목적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바꾸어 말하면 '지혜의 깊이'는 공부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의 두뇌는 인간 특유의 폭넓은 사고의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힘, 즉 '지혜의 깊이'가 키워지지 않는다.
지혜에는 '넓이'가 있고, '깊이'가 있고, '힘'이 있다. '지혜의 힘'이란 결단력을 말한다.
결단할 수 있는 힘, 어느 순간에 '얏!' 하고 비약할 수 있는 힘, 이러한 지혜의 힘은 인생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공부하는 가운데서 키워지는 것이다.
지혜에는 내가 말한 것 이외에도 몇 가지 측면이 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지혜를 닦기 위해서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수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끈기'를 신조로 삼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까지에는 남보다 더 시간이 걸리지만 끝까지 관철하는 끈기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한 시간에 해치우는 것을 두 시간이 걸리거나, 또 다른 사람이 1년에 하는 일을 2년이 걸리더라도 결국 하고야 만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나의 신조이다.
이러한 신조가 몸에 베어서인지 나는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
인간은 1백40억 개나 되는 뇌세포 중에서 보통 10퍼센트, 많아야 20퍼센트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잠자고 있는 세포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두세 베의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보통 두뇌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역경을 반가워하자
"사는 것은 배우는 것이며, 배움에는 기쁨이 있다. 사는 것은 또한 무언가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며, 창조에는 배우는 단계에서 맛볼 수 없는 큰 기쁨이 있다."라고 나는 앞에서 말해 왔다. 이것은 누구의 인생에나 해당되는 것으로 학자의 입장에서는 특히 명심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 표현해 보자.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 배우고 창조하는 기쁨은 곧 생각하는 기쁨이다. 어떤 분야의 학문이든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창조하는 데 본래의 의의가 있다. '발견'과 '창조'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의 주고받음은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평가할 가치도 없다. 여러 가지 지식은 생각하기 위한 자료이며, 독서는 생각하기 위한 계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식을 모으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 되고, 독서도 고생스럽지 않게 된다.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읽어서 생각한다. 생각한 후에는 들은 것이나 읽은 것은 잊어버려도 된다.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든가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학문을 하기도 전에 지쳐 버리고 배우는 것 자체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 학문이란 본래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할 수가 있으며, 그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반세기에 걸친 내 인생에서 체험으로 얻은 결론은 이러한 것이다. 이제까지 이러한 나의 인생관과 학문에 대해 말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젊은 독자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창조를 만들어 내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창조의 배경에 있는 중요한 조건이란 무엇일까?
이런 말이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수학자 푸앵카레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란 머시룸(mushroom)과 같은 것이다." 머시룸이란 버섯의 일종이다. 버섯 하면 일본 사람인 나는 우선 송이버섯을 연상하게 되므로 푸앵카레의 말은 "송이 버섯과 같은 것이 창조다."라고도 할 수 있다.
송이버섯은 잘 알다시피 땅밑에 균근이라고 하는 뿌리를 갖고 있다. 이 뿌리는 조건이 좋아지면 점차 원형으로 퍼지면서 자란다. 그런데 이런 좋은 조건이 한없이 계속되면 뿌리만 발달하게 되어 버섯을 만들지 못하고 결국 노화해서 죽어 버린다. 놀랍게도 5백 년에 걸쳐서 뿌리만 발달하고 고사한 송이버섯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버섯은 어떻게 해야 생기는가? 어떤 시점에서 뿌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조건이 주어지면 된다. 예를 들면 계절 변화에 의한 온도의 상승 또는 하강과 같은 외부적 조건이나, 송진이나 산성물질등의 물리적 조건이다. 이런 방해에 부딪히면 뿌리는 포자라는 형태로 종자를 만들어 계속 발전해 나가려고 하며 그래서 송이버섯이 만들어지게 된다.
푸앵카레의 말을 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창조에는 먼저 송이버섯처럼 땅밑에서 뿌리를 뻗어가는 축적의 단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축적만 하고 있어서는 송이버섯이 버섯을 만들지 않고 고사해 버리는 것처럼 창조 없이 인생의 막을 내리게 된다.
불교의 '인연'이라는 말을 창조성에 비추어서 생각해 보면, '인'이란 땅밑에서 발달해 온 송이버섯의 뿌리와 같이 사람이 부모에게서 이어받거나, 주변 사람으로부터 배웠거나, 혹은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자기 속에 축적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인'만 가지고 창조나 비약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시점에서 송이버섯의 뿌리가 주어지는 방해 조건에 해당하는 것이 창조에 있어서도 필요하다. 축적을 표출시킬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연'이다.
불교에서는 '연'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순연'과 '역연'이다. 실생활에서는 가끔 역연이 표출 에너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역연'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말로 바꾸면 '역경'이 될 것이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벽촌 장사꾼의 열다섯 남매의 일곱 번째 아들. 유년학교 입시에서 보기좋게 물먹고, 한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곡절 많던 소년.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 밭에서 거름통을 들고, 대학 3학년이 돼서야 수학의 길을 택한 늦깎이 수학자.
끈기 하나를 유일한 밑천으로, 미국 하버드로 건너가 박사를 따내고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까지 받은 사람. 골치 아픈 수학에서 깨달음을 얻은, 즐겁게 공부하다 인생에도 도통한 평범하고 희한한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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