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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10 디지털 시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_ 임성미
- 2017.11.09 인문독서가 생존력을 키운다_ 임성미
디지털 기술이 인간을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중요한 점들을 잘 짚어주고 있는 책입니다. 표지에는 니콜라스 카를 IT 미래학자,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점을 한마디로 말하면, 디지털 기술이 우리 인간을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뇌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뭐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깊이 들여다볼수록 엄청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책 제목 그대로 인간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전에는 무언가 모르는 것, 생소한 단어를 보면 잠시 멈추고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머릿속에 저장해둔 배경지식들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단어와 연결시켜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잘 모르면, 글의 앞뒤를 다시 읽으며 추론을 해서 이해했지요. 그도 안 될 때 사전을 찾아서 뜻을 익히고요.
이렇게 독자는 새로운 정보를 스스로 해독하여 습득하고 그것을 통해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하는 동안 우리의 전두엽이 움직이고 그 속의 해마가 활발히 헤엄치면서 '창의력'이라는 아기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 과정을 과감히 생략해버리고 있습니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를 칩니다. 인터넷에 정보처리과정을 기꺼이 양보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니 인간은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인터넷은 똑똑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생성'과 '연결'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처리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해냅니다. 책을 읽을 때 질문을 하고 그 뜻을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를 생성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인지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누군가는 이런 주장에 반기를 들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취사선택하는 과정도 읽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지요. 이런 주장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정보들도 분명히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이고, 전문가들의 고급정보도 많으니까요. 인터넷 정보들을 인식하는 것도 분명 정보처리과정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 세 가지 면에서 문제점을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터넷은 사람들을 자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꼭 필요한 정보만을 찾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것들도 접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깊은 사고를 해야 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 뇌에서 참신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둘째,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사람들은 자주 길을 잃습니다. 처음에 찾고자 했던 정보는 잊어버리고 여기저기 헤매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학자들은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셋째, 인터넷은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로 기능하기보다 오락적 매체로 기능하는 측면이 더 강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심각하고 진지한 독서를 하려고 하지 않지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자신의 목적에 따라 필요한 정보들을 찾고 그것들을 재가공하고 비판하며, 적절한 곳에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미 요소만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무엇을 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그들이 보는 것은 드라마,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게임, 쇼핑, 로맨스, 소설 등이 압도적입니다.
이렇듯 점점 많은 사람들이 진지한 책, 두꺼운 책 읽기를 귀찮아합니다. 아니 사실은 읽지 못한다고 봐야겠지요. 앞으로 사람들은 점점 더 책과 멀어질 것입니다. 이미 뚜렷하게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책이 안 팔리고 있으니까요. 이제 두꺼운 책은 중세시대 일부 귀족들의 책장에만 존재하던 고전의 신세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자녀에게 종이책을 읽히는 IT 기술자들
모두가 책을 멀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에 이런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기자가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들이 아이패드를 좋아하느냐?" 라고 질문했더니, 그가 자기 자녀들은 아이패드를 써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잡스의 공식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는 저녁이면 부엌에 있는 길고 커다란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책과 역사, 그 외에 여러 가지 화제를 놓고 이야기했다" 라고 말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뿐만 아니라 IT 기술자나 벤처사업가 중에는 자녀로 하여금 학교 수업이 있는 평일에는 어떠한 기기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주말에만 일정 시간 범위에서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테크놀로지가 아이들에게 미칠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기사에 덧붙여 놓았습니다.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를 쓴 제이슨 머코스키는 아마존 킨들 개발자로 전자책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전자책이 미래의 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린이용 전자책 출간에 대해서는 아직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미국 IT 기술자들의 자녀들이 많이 다닌다는 발도르프 학교에서도 열살 이전에 컴퓨터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하도록 할까요? 그들은 손으로 하는 일, 느리고 오랫동안 몰입하는 일을 하게 합니다. 목공 일, 흙을 만지고 도자기를 만드는 일, 뜨개질을 하거나 산책, 명상, 독서를 하지요. 이런 것들은 느긋하게 사색하고 성찰하는 습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줍니다.
디지털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사색과 독서를 하라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유명한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은 이미 1960년대에 미디어가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예견했습니다. 그가 던진 이 말은 '진짜가 아닌 미디어, 즉 매체가 의미를 갖게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이 그토록 유명한 진짜 이유는 이 짧은 한 마디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빨리 갖고 싶어서 매장 앞에서 밤새워가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겼지요. 이처럼 첨단제품 열혈 구매자를 일컬어 가젯러버라고 합니다. 맥루한은 사람들이 이렇게 첨단 디지털 기기에 매혹당하는 이유를 그리스 신화 '나르시스' 이야기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나르시스가 거울을 통해 본 자신에게 매혹당했듯이 인간도 자신을 비춰주는 도구에 매혹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확장된 형태에 매혹되어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것이지요.
맥루한은 기술과 인간의 의식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합니다. 그는 미국 작가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소용돌이 속에서'를 언급하면서 디지털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황하지 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머리를 굴리라고 조언합니다. 인간은 소용돌이를 만들 재주도 있지만 자기 목숨을 구할 재주도 있다면서 새로운 환경에 휩쓸려 정신을 잃지 말고 그 환경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라고 합니다.
디지털 홍수에 떠밀려가지 않으려면 지루함을 즐기고 심사숙고하며 가치를 탐구해야 합니다. 독서를 통해 말입니다. 독서는 디지털 세상과 소통하고 디지털 세상을 성찰하며 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최근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디지털 관련 책들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독서를 해라'입니다.
'퓨처 마인드'의 저자 리처드 왓슨은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 머릿속에 저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은 구글 창고에 있어서 언제든지 검색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두뇌에 저장하지 않고 컴퓨터에 저장된 것을 꺼내 쓰다 보니 인간은 점점 더 지식을 저장하고 생성하고 가공하는 기능을 잃어버린다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분석하고 평가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고등사고기능을 상실해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열심히 텔레비전이나 광고를 보지만,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해 못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서서히 우리의 정신세계에 침투하여 우리의 의식을 점령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자주 보았던 것들을 친근하게 여기고 그것들을 진짜로 인식하게 되니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현대인은 읽을 수 있으나 읽지 않는 문맹인이다"라는 말을 한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요?
문화에 무지한 디지털 시대
"디지털 시대, 21세기의 10대는 문화에 있어서 시골뜨기이다."
이 말은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창업자 빌 조이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이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요?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은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하느라 뇌가 지쳐서 정작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데에 뇌를 쓸 여력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만 관찰해도 쉽게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SNS에 올라온 정보들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사람들은 골치 아픈 뉴스나 고전, 사회과학 도서, 철학적 사유를 필요로 하는 글을 읽으려 하지 않지요. SNS에 올라온 지식들 중에도 유익한 것들이 있겠지만, 일단 이런 글들의 특성은 친근성과 근접성입니다.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주고받는 정보가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문화를 읽어내는 관점이나 시야가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문화에 무지하다. 문화를 읽어내는 능력이 촌뜨기 수준이라는 말은 결국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잘 모르고 그것에 매몰되어버리는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정적 사고에 휘말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지요. 고정적 사고에 휘말린다는 것은 자신만의 생각,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독서는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렇다고 미디어가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괴물은 아닙니다. 텔레비전을 거실에서 치운다고 해서 미디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요. 이미 미디어는 공기와도 같이 우리의 환경 그 자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해결책은 미디어를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미디어를 활요하고 미디어를 통해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 캐나다와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미디어 교육을 공교육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7차 개정교과서에서부터 국어 과목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담당하고 있지요.
미디어 리터러시는 독서를 바탕으로 모든 매체들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비판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책을 제대로 읽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되 책과 미디어를 연결지어 새로운 것을 창출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소설을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뮤지컬로, 광고로 변환할 줄 알아야 하며, 반대로 영화를 다시 소설로 구성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매체를 변환하는 것에서 나아가 건축, 패션, 미술, 행정 등 모든 분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오늘날의 독서력은 문화 문식성, 문화적 감수성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독서력을 문화 문식성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독서의 대상을 단지 인쇄매체인 책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모든 매체를 독서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우리가 문학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나 에세이, 시가 더 이상 유일하고 자율적인 전체가 아니라 수많은 사회문화적 기호들이 포함된 복합적이고 상호적인 텍스트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좀 생소한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알고 나면 금방 고개를 끄덕일 말한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천국'을 그리라고 하면 천사가 날아다니는 모습이나 아름다운 궁궐, 때로는 외계인을 그립니다. 어떤 아이는 쿨쿨자는 곳으로 그리기도 하지요. 왜 그렇게 그렸냐고 물으면 교회나 성당에서 보았거나 동화나 텔레비전, 영화, 만화, 미술관에서 보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천국에 대한 이미지는 매체에서 본 것들이지요. 이렇게 천국이라는 이미지는 미술, 종교, 동화, 드라마, 영화, 만화, 대중가요,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들 속에서 서로 연관성을 가지면서도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을 상호텍스트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문화 문식성이란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이런 이미지들을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재생산해낼 수 있음을 뜻합니다. 책과 매체를 연결지어 해석하고 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 이것을 다른 말로 매체통합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체통합독서의 바탕이요 뿌리는 결국 인문독서입니다.
초등 인문독서의 기적_ 임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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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알려진 대로 대중들 사이에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대학교수 얼 쇼리스의 도전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5년 가을, 얼 쇼리스는 거리의 청소년, 노숙자, 난민, 에이즈에 걸린 싱글맘 등 20여 명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인문학 강의를 시작합니다. 학교에 올 차비도 없는 학생들에게 차비를 나누어 주면서 철학, 예술, 논리, 시, 역사를 가르치는 인문학 강의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이런 행동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비웃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학생들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토론하고,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읽고, 불레이크의 시를 낭송한다는 게 믿어지지도 않았고 또 의심스러웠던 거지요.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웬 인문학? 더구나 직업교육이라면 모를까 고전교육이라니?
하지만 얼 쇼리스가 보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저 재활교육이나 직업에 관한 공부만 시켜주면 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어설픈 동정심에 불과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왜 자신들이 가난한지 의문을 품게 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통찰하게 함으로써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여러분은 이제껏 속아왔어요. 부자들은 인문학을 배웁니다.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외부의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칠 때 심사숙고해서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공부입니다. 저는 인문학이 우리가 '정치적'이 되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은 잘 살기 위해, 힘을 얻기 위해 정치를 이용합니다. 이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데 필요한 효과적인 방법을 더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부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에게서, 그리고 사람들이 소유한 것들에게서 나오는 진정한 힘, 합법적인 힘을 갖고자 한다면 정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인문학이 도와줄 것입니다."
언뜻 봐서는 황당해 보이는 얼 쇼리스의 시도로 첫 수강생의 31명 중 17명이 끝까지 수업에 참여하여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희망의 인문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우리나라에서도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노숙자, 빈민, 교도소 재소자 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희망의 인문학 강의가 그곳을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은 인문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지적 자산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독서 능력은 문제해결력이요, 나아가 생존전략입니다.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 지식은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냉정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읽기는 싫든 좋든 살아가기 위한 힘입니다. 읽기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힘입니다.
배우는 능력이 곧 생존력이다
왜 인문독서가 살아가는 힘의 바탕이 되는지를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진로전문가들은 앞으로 100세까지 산다고 할 때 직업을 많게는 열 번 정도 바꿀 수 있다고 예견합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한두 가지 기술로 한두 개 직업만으로 100년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사회 변화에 맞추어야 하고, 개인의 능력이나 처지에도 맞추어야 하겠지요.
이럴 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일까요? 바로 배우는 능력입니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싫든 좋든 평생을 배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줄 알았더니 부모가 되어서도 배워야 하고, 직장을 바꿀 때도 배워야 하고, 나이 들어 노인복지관에 가서 취미생활을 하려 해도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합니다. 직장 다닐 때도 직업에 필요한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종교생활을 하려 해도 그냥 믿음만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교리도 배우고 전례도 배워야 합니다.
'아웃라이어'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말콤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합니다.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면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타고난 재능이나 적성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법칙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헴브릭과 마인츠라는 학자가 실험해본 바에 따르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들은 57명의 피아니스트가 일정한 수준의 연주 실력을 갖출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260시간에서 3만 1,000시간까지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짧은 기간 안에 도달했고, 어떤 사람은 오래 걸렸습니다. 이런 차이가 단지 재능이나 적성 때문일까요?
전문가들은 이 차이의 원인을 '작업 기억력'으로 보았습니다. 작업 기억력이란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 즉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입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이 작업 기억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업 기억력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기존에 저장된 장기기억 창고에서 비슷한 것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정보와 연결지은 후 그것을 이해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의 여러 사물들과 언어를 인지한 후 잊어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장기기억으로 저장시킬 때 학습이 되고 사고력이 발달하지요.
그러므로 장기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가 많을수록, 또 작업 기억력이 활발하게 작동될수록 새로운 정보를 빨리 습득하고 익히게 되겠지요. 아는 게 많아야 새로운 것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작업 기억력의 활성화는 독서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서 배경지식이 많으면 새로운 것들을 잘 배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한 안철수씨가 어려서 바둑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고 나서 바둑을 배웠더니 잘 배울 수 있었다는 것도 이런 이치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독서력이 높은 사람은 새로운 것을 습득할 때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한 말들을 정리해보면, 살아가는 생존력을 갖추기 위해 배우는 능력이 중요한데, 그것은 작업 기억력의 활성화와 관련이 깊으며, 작업 기억력은 곧 독서력과 직결되므로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 배우는 능력을 기르는 기초가 됩니다.
독서의 마지막 단계, 성찰하기
인문독서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두 번째로 꼭 필요한 능력은 성찰하는 능력입니다. 성찰하는 능력이 왜 중요할까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모르면 그 일을 오랫동안 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일을 끈기 있게 하는 원동력은 그 일에 대한 의지와 신념이 얼마나 있는가와 관련이 깊습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하지만 신념은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의 일생을 보면 그들이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점점 더 강해져갔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요즘 방송이나 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다중지능유형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어, 논리수학, 신체운동, 시공간, 음악, 대인관계, 자기성찰, 자연 등 여덟 가지 중에 한두 가지의 비범한 지능을 갖고 있으므로 이것을 발달시키는 것이 좋다는 이론입니다. 다중지능 전문가들은 이 여덟 가지 중에 타고나지 않았어도 반드시 노력을 해서라도 키워야 하는 게 두 가지 지능유형이라고 주장합니다. 바로 대인관계와 자기성찰 지능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어도 이 두 가지 유형을 발달시키지 못하면 재능의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자기성찰 지능은 독서와 관련이 많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성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엄밀하게 말하면 책을 읽는다고 저절로 성찰을 하는 게 아니라 성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의도, 주제를 이해한 후 그 주제를 자기 삶에 적용하여 반추해보는 것이 성찰입니다. 또 작가의 생각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성찰입니다.
책을 읽고 재미있다는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되새기고 분석하며 다른 것과 연결지어 생각하고 내 삶에 적용하다 보면 그 책이 내 삶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 과정이 곧 성찰하는 것입니다.
초등 인문독서의 기적_ 임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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