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1996년, 맥킨지 캐나다의 촉망받는 한 컨설턴트는 한국에서 일해보자는 선배의 제안을 받았다. 그의 멘토들은 한국에서의 근무가 힘들 뿐 아니라 경력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 제안을 거절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행을 택했고 1997년에 맥킨지 한국사무소로 부임했다. 공교롭게도 부임한 직후 IMF가 터졌다. 나라가 휘청거릴 만큼 크나큰 외환위기가 닥친 것이다.
그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과감한 전략을 펼쳤고, 그 실적을 인정받아 2000년에는 한국사무소 대표가 되었다.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자리를 옮겨서 맥킨지 아시아 회장으로 승진했다. 무려 12년을 아시아에서 보낸 특별한 경력은 2009년에 맥킨지 글로벌 회장으로 선출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가 바로 도미니크 바튼이다. 지금은 전 세계 100대 기업 중 90곳을 컨설팅하면서 매출액 10억 달러 이상인 회사 중 315개 회사의 CEO가 몸담았던 세계 최대의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를 이끌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의 7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많은 변화가 있는 곳, 급격한 변화가 있는 곳일수록 빨리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최고의 리더십 경험은 이곳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리더는 변화 속에서 배우거든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많은 도전을 받았고, 그리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서울과 상하이의 삶은 마치 커튼이 열리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 같았습니다."
- [더 인터뷰] (21세기북스) 중에서
그가 캐나다에서 한국을 거쳐 중국에서 일하게 된 것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 때문이었다. 그는 늘 변화를 추구하고 발전을 도모한다. 그에 따르면, 1935년 S&P500 주가지수에 포함된 500개 회사의 평균 수명은 90년이었는데, 지금은 18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업이 변화에 대해 저항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매너리즘을 경계하며,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필요한 만큼 빨리 변화하고 있는가?' 하고 자문한다.
몽골제국을 건설한 칭기스칸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끝없이 이동하는 자는 흥할 것이라고 말했다. 800년 전에 살았던 그가 한 말은 21세기에도 적용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현실에 안주해 견고하게 성을 쌓는 사람은 독선적이고 자만에 빠지기 쉽다. 성벽이 높아질수록 새로운 지식이나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며, 오로지 자신의 시각에서만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며, 성공의 가능성을 찾기보다는 실패할 경우를 걱정한다. 그러다 보니 점점 화석처럼 굳어져서 변화의 가능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만일 이들이 변화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곧 땅이 꺼지거나 하늘이 무너진다는 증거라고 할 만큼 변화를 싫어하고 기피한다.
반면 변화를 추구하며 움직이는 사람은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본다. 사고가 유연하며,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관대하다. 이들에게는 고정된 모습이 없으며,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변화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에 불안을 느낀다.
게다가 실패가 눈에 보이는 듯 자명해도 남은 1%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들이 변화를 멈춘다면 곧 죽음이 눈앞에 왔다고 할 만큼 변화를 좋아하며, 한곳에 안주해 고인 물이 되는 것을 혐오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꺼린다.
변화는 거대 조직의 리더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마음속에 세상을 품고 있다. 변하지 않는 세상은 없다. 그러니 변화가 없는 삶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2009년에 돌잡이를 하는 큰아들을 보며 변화를 경험했다.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내가 죽은 뒤 내 아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라고 던진 질문이 내 생각과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게 든든하고 커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작고 약해지셨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의 아들인 손자를 안고 한없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에는 그간의 고생과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노장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 지난 삶과 앞으로의 인생을 그려보았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폴 발레리의 말을 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 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아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라는 질문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이 질문은 가슴속에 쌓아놓은 유리성을 집요하게 두드렸다. 1년이 지난 뒤 성은 무너졌고, 그 속에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꿈이 잠들어 있었다. 자상한 아버지,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준 아버지, 가정을 우선시했던 아버지로만 기억되기에는 어딘지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답을 찾았다.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고 늘 도전하는 사람, 불가능보다는 가능성을 보는 사람, 그래서 존경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국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업 대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았다. 필자의 삶을 180도 바꾼 것은 이러한 답을 얻기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질문하는 힘, 권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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